2017년 3월 12일 일요일

시편 102:1-28 고난을 토로하며 도움을 간구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고난을 토로하며 도움을 간구함
시편 102:1-28

1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2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3대저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냉과리같이 탔나이다 4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같이 쇠잔하였사오며 5나의 탄식 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6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 7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8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훼방하며 나를 대하여 미칠 듯이 날치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9나는 재를 양식같이 먹으며 나의 마심에는 눈물이 섞었사오니 10이는 주의 분과 노를 인함이라 11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12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13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 14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연휼히 여기나이다 15이에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16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17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18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9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20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21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 22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23저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시며 내 날을 단촉케 하셨도다 24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년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25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26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27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 28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 그 후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1. 괴로운 날에 주께 부르짖음

본문 1-2절에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괴로운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얼굴을 숨기지 말아달라고, 또 귀를 기울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2. 곤고(困苦)를 당하는 성도의 형편

본문 3절에 “대저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냉과리같이 탔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저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라는 것은 다 타져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내 뼈가 냉과리같이 탔나이다’라고 하였는데, 냉과리는 덜 구워져 연기와 냄새가 나는 숯을 가리킵니다. 불덩이로 다 탔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같이 쇠잔 하였사오며”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고통이 심하기 때문에 음식도 먹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이 풀같이 쇠잔해졌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5-6절에 “나의 탄식 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라고 하였습니다. 피골이 상접했다는 것입니다. 너무 고통이 심해서 살이 뼈에 다 붙었습니다. 음식 먹기도 잊었습니다. 마음이 쇠잔해지고 살이 뼈에 붙었으며, 탄식 소리가 나옵니다.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라고 하였는데, 당아새나 부엉이는 황폐한 곳에 사는 새입니다. 자기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고통이 심합니다. 그래서 밤잠이 안 와서 밤을 새우므로, 그것이 마치 지붕 위에 외로이 앉아 있는 참새 한 마리와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훼방하며 나를 대하여 미칠 듯이 날치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원수들은 종일 나를 훼방하고 미칠 듯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며 핍박을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나는 재를 양식같이 먹으며 나의 마심에는 눈물을 섞었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양식같이 먹습니까?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며 기도하므로 재가 입으로 들어가서 그 재를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물을 많이 흘리는데 물을 마실 때에 눈물이 물에 떨어져서 눈물을 섞어 먹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상당한 고통 중에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에서 밤잠을 못자고 밥을 못 먹고 있습니다. 풀같이 쇠잔하여 재를 음식같이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물을 마실 때에도 눈물을 섞어 마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자포자기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본문 10절에 “이는 주의 분과 노를 인함이라 주께서 나를 드셨다가 던지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온 줄로 알고 ‘주님이 노하셔서 나를 높이 드셨다가 던지셨나이다’라고 하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 값으로 진노하시어 나를 높이 드셨다가 던지셨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던져 놓으시면 괜찮겠는데, 높이 드셨다가 던져놓으시니 상처가 많습니다.
아프기도 더 아프고 상처도 더 많이 나고 소리도 더 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회개시키시려고 높이 드셨다가 내던지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 드셨다가 내던지시는 것은 나에게 분노하셨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더욱 더 겸손하게 회개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것입니다. 또 원수들은 종일 훼방하며 미친 듯이 날뛰면서 나를 가리켜 맹세합니다. 음식은 재를 섞어 먹고, 마시는 물은 눈물을 섞어서 마십니다. 물 마시는 동안에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니 그것을 섞어 마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리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본문 11절에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울어지는 그림자는 얼마 못 가서 다 퍼집니다. 해가 기울어지면 산 그림자가 오고 해가 좀 더 들어가면 그림자는 쑥 지나가고 맙니다. 잠시 잠깐이면 지나갑니다. 그런데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와 같은 줄 알아야 합니다. 해가 쏙 넘어가면 다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풀이 시들어갈 때에는 금방 말라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풀의 쇠잔함과 같이 다 쇠잔해졌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도 ‘마음이 풀같이 쇠잔하였사오며’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녹아졌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맥을 못 추고 이리저리 놀아난 것입니다. 마음을 잃어서 힘이 없습니다.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낙심하였습니까?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왜 소망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자신을 드셨다가 내던지셨지만, 다 회개시키시려는 뜻이 있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분노하셔서 내 죄를 회개토록하시기 위해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더욱 회개하면서 가까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가는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낮은 자를 부르시어 시온을 건설하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본문 12절에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대대에 이를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진리는 대대에 변치 아니할 것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본문 13절에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실 때가 올 것을 믿는 것입니다. ‘시온’은 예루살렘,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오늘날에는 교회와 성도를 가리킵
니다. 그러므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라는 것은 성도를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자신은 지금 비참하게 됐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 즉 성도를 긍휼히 여기실 것을 믿습니다.

또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고 하였습니다. 또 ‘정한 기한이 벌써 옴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성도를 긍휼히 여기실 때인데, 그것은 정한 기간이 왔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정한 기한이 있습니다. 무한정으로 흘러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정한 기한이 있어서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의 긍휼의 팔이 나타납니다. 시편 98편 1절에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손으로 구원하셨습니까?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우리를 구원해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으시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긍휼히 여기실 때라고 하였습니다. 또 정한 기한이 왔습니다. 긍휼히 여기실 기한이 와서, 때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른손을 펴시어 성도를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되게 해주십니다. 때가 되면 시온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시온을 구원해내십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심 - 복음을 전하자

본문 14-15절에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연휼히 여기나이다 이에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종들이 하나님을 즐거워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신 시온의 돌이나 그 티끌까지 즐거워하고 긍휼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너무 시온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온의 돌들과 그 티끌을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돌을 좋아 하며 티끌도 좋아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시온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의 돌이 다 귀하고 티끌도 귀하여 아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성전이 아름다우니까 티끌도 아름답고 성전의 마당도 아름답고 성전의 돌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이 좋으니까 돌도 좋고 티끌도 좋은 것입니다. 또 성전이 좋은 사람은 성전의 돌과 티끌도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 계시는 곳을 좋아하는 사람은 성전을 좋아합니다. 교역자도 좋아하고 교인들도 서로 좋아합니다.
그리고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세계 열방과 열왕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을 믿고 증거하는 말입니다.

본문 16절에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시온을 건설한다고 하였습니다. 시온을 건설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영광 중에 나타나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토(凍土)인 북한을 녹여놓으시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서 시온을 건설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녹이실지는 모르지만, 동토를 녹이시면 복음을 전하게 해주실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역사하실 줄로 믿는 것입니다. 시온을 건설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시온을 건설해나가시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라는 것은 심령이 가난해서 간절히 사모하는 자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배불러서 기도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언제나 심령이 가난해서 갈급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멸시치 아니하시고 돌봐주십니다.

본문 18절에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창조함을 받을 백성’은 성도를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낳은, 새로이 창조함을 입은 성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 바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19-22절에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이 세상을 하감하시며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다는 것입니다.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셔서 건져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감옥에 갇힌 자의 탄식을 들어주셔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시고, 죽이기로 정해진 자를 해방시켜주시는 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점점 더 많은 민족, 더 많은 나라가 모여서 여호와를 섬겨야 될 것을 믿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4. 중년에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기도함

본문 23-24절에 “저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시며 내 날을 단촉케 하셨도다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년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시며’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젊을 때에 힘을 쇠약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날을 단촉케 하셨도다’라는 것은 내가 사는 날을 짧게 만드셨다는 것으로, 젊었을 때에 죽게 된 것을 뜻합니다.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라는 것은 젊었을 때에 데려가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주의 년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중년에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해놓고 ‘주의 년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중년에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기도는 했지만, 중년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셔도 자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대대 무궁토록 주와 같이 영생할 것이라고 믿고 하는 말입니다. 자신이 중년에 죽어도 하나님께 가 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갈 것이니까,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대대 무궁토록 주와 같이 영생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어도 영생함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기도는 했지만, 만약 자신을 데려가셔도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년대는 대대에 무궁하므로 그곳에 가서 대대에 무궁토록 살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5. 천지는 없어져도 주께서는 영존(永存)하심

본문 25절에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시고,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6-27절에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지 만물은 다 의복과 같이 낡아지며, 또 의복과 같이 바꿔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천지 만물은 점점 낡아지고 없어지고 쇠퇴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여상(如常)하시고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또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절대 변하지 않으시고 낡아지지도 않으시며, 쇠퇴하지도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영원불변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늘과 땅과 만물은 다 낡아지고 쇠하여지며, 없어집니다. 사람도 다 점점 늙어서 세상을 떠나므로 의복과 같습니다. 의복을 처음 해 입을 때는 새 것인데, 얼마 가면 낡아지고 구멍이 뚫리게 됩니다. 헌 옷이 됩니다.

세상 만물이 다 그와 같습니다. 모든 것이 다 낡아지고 쇠퇴해지고 소멸해지고 맙니다. 세상 것은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불변의 하나님이시고, 주의 년대는 영원토록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사는 생명,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생명은 하나님과
함께 영존 불변하는 영생의 세계에서 살게 됩니다. 이 세상 것들은 다 쓸데없습니다. 잠시 잠깐이면 다 낡아지고 없어지며 쇠퇴합니다. 헌 옷과 같이 헐어져서 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영존하시므로, 주님의 생명과 그 말씀으로 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생명체를 가지고 살면, 주님과 영생 복락을 같이 누리게 됩니다. 다시 쇠함이 없습니다. 다시 죽는 것도 없습니다. 영원히 성공하는 길은 주님과 함께 사는 생명뿐입니다.

6. 주의 종의 자손

항상 있고 주의 앞에 굳게 설 것임

본문 28절에 “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 그 후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종들의 자손이 어떻게 있습니까? 항상 있습니다. 또 주의 종들의 후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있습니다. 주의 종들의 후손들은 멸하지 않습니다. 항상 있고 굳게 서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멸하지 않으십니까? 첫째로 믿음의 자손이 내내 계승되어나가고, 그 다음에 육신의 자손도 부모의 믿음을 본받았기 때문에 내내 계속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후손이 잘되는 이유

‘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라고 하였는데, ‘영원히 있다. 굳게 선다.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항상 있습니까?
첫째는 그 자손이 부모에게서 믿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들에게는 부모에게서 배운 말씀이 있습니다, 찬송가에 부모님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배웠습니까? 다윗의 역사, 엘리야가 병거 타고 올라간 것,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다니엘 등을 부모에게서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장에는 아이가 그 말씀들을 다 무시하고 돌아가도 언젠가는 배운 것이 나올 날이 옵니다. 어떤 목사의 아들이 의사인데, 그 사람이 예수를 안 믿는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예수 믿으려면 목사님이나 믿으시오”라고 합니다. 그 의사가 세브란스에 있는데, 만날 때마다 교회에 나오라고 해도 목사님이나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만날 때마다 예수 믿으라고 자기 아버지를 대신해서 말해주었더니, 한 번은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이 그 사람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 아버지한테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셋째는 부모가 하나님 경외한 것을 본 것이 있고, 그것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야곱도 자기 아버지가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늘 보았으므로, 아버지가 하나님을 경외한 것이 생각나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넷째는 부모가 매일 기도해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주는 것은 눈이나 비가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토지가 젖고 싹이 나서 자라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5장 10절에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해주는 것이 다 비와 눈이 오는 것과 같습니다. 매일 기도해주면 비가 옵니다. 그리고 땅이 자꾸 젖어서 싹이 나고 열매를 맺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 그 후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라는 것은 믿음의 후손이 잘되고 또 육신의 후손도 대개는 잘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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