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악인을 징계하시고 성도를 도와주심
시편 94:1-23
1여호와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취소서 2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에게 상당한 형벌을 주소서 3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4저희가 지껄이며 오만히 말을 하오며 죄악을 행하는 자가 다 자긍하나이다 5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백성을 파쇄하며 주의 기업을 곤고케하며 6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며 7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생각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8백성 중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9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10열방을 징벌하시는 자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자가 징치하지 아니하시랴 11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12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13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14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15판단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좇으리로다 16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 17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18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19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20율례를 빙자하고 잔해를 도모하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교제하리이까 21저희가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나 22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 23저희 죄악을 저희에게 돌리시며 저희의 악을 인하여 저희를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저희를 끊으시리로다
시편 94:1-23
1여호와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취소서 2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에게 상당한 형벌을 주소서 3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4저희가 지껄이며 오만히 말을 하오며 죄악을 행하는 자가 다 자긍하나이다 5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백성을 파쇄하며 주의 기업을 곤고케하며 6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며 7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생각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8백성 중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9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10열방을 징벌하시는 자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자가 징치하지 아니하시랴 11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12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13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14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15판단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좇으리로다 16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 17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18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19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20율례를 빙자하고 잔해를 도모하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교제하리이까 21저희가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나 22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 23저희 죄악을 저희에게 돌리시며 저희의 악을 인하여 저희를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저희를 끊으시리로다
1. 악인의 악행과 하나님의 심판
본문 1-2절에 “여호와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취소서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에게 상당한 형벌을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세계를 판단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세계를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일어나
서 교만한 자를 형벌하시고 보수하십니다.
본문 3절에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승리의 노래)를 부르겠습니까? 하는 뜻입니다.
본문 4절에 “저희가 지껄이며 오만히 말을 하오며 죄악을 행하는 자가 다 자긍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이 죄를 지으면서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백성을 파쇄하며 주의 기업을 곤고케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백성을 파쇄하며’라고 하였는데, ‘파쇄(破碎)’라는 것은 다 깨뜨려 부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백성을 파쇄하며’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 깨뜨려 부수며’라는 뜻입니다. 또 ‘주의 기업인 하나님의 나라를 곤고케 하며’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입니다. 즉, 악인이 교회를 곤고케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6-7절에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생각지 못하리라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백성을 파쇄하고 그 기업을 곤고케 하며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며 여호와
께서 보지 못하신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사람을 교훈하심
본문 8-10절에 “백성 중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열방을 징벌하시는 자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자가 징치하지 아니하시랴”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중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 무지한 자들아 너희는 지혜를 좀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손을 만드신 자가 일하지 아니하시냐’라고 하였는데, 귀를 지으신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듣지 못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열방을 지시하시는 자, 세계 열방을 다스려 징계하시는 자가 어찌해서 너희 모든 것을 직시하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지 못하시고 알지 못하시고 듣지 못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지 않으신다, 내버려 두신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까?
귀를 지으신 자가 다 듣고 있고 눈을 만드신 자가 다 보고 있으며 열방을 다 징치하시는 자가 다 다스리고 계시는데 어찌해서 하나님께서 보지 못하시고 듣지 못하시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못하시며 악한 자를 징벌하지 못하신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도 보고 계시고, 악한 자의 말도 듣고 계시고 악한 자에게 손을 대고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고 택한 백성에도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3장에 택한 백성을 다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장 7-8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계시며,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며, 그 우고를 근심을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려가셔서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고 그 땅에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내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의 악을 행하는 것도 다 보시고 그들이 오만한 말을 하는지 신앙의 말을 하는지도 다 들으시사 그들과 세계를 징치하는 자를 징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성도까지도 보지 아니하시랴는 것입니다. 또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라고 하였는데 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악한 자의 것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부르짖음도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손을 지으신 자가 일하지 아니하시랴’라고 하였는데, 성도를 위해서 일하시고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안 들으시는 것 같아도 다 들으시고, 안 보시는 것 같아도 다 보십니다. 무엇을 봐서 다 보는 줄 알라고 하였습니까? 귀를 지은 신 것을 봐서 다 들으시는 줄을 알고, 눈을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므로 다 보시는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징치하시는 자가 다 징계하시고 택한 백성을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알아야 합니다. 눈을 지으신 하나님, 귀를 지으신 하나님, 손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입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안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의 모든 것도 보시고 들으시고 징치하시고 또 택한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도 다 들으시고 고통당하는 것을 다 봐주시고 사정을 다 알아주십니다. 그러므로 걱정이 없습니다.
3. 주께 징계 받는 자는 복이 있음
본문 11-12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다 허무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징계당하고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징계 받는 자와 하나님의 법(말씀)을 잘 배운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징계를 잘 받는 사람, 하나님의 법 되는 말씀을 잘 배운 사람에게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 징계하고 회개하고 돌아서므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잘 배우므로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가게 되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본문 13절에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이 득세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파십니다. 왜 구덩이를 파십니까? 악인을 구덩이에 쓸어 넣으시고 다 묻으시되
믿는 사람에게는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잘 깨달아 바로 서서 하나님의 법으로 교훈을 잘 받는 사람에게는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심
본문 14절에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백성’은 믿는 사람이고 ‘그 기업’은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껍데기만 가리키는 교회가 아니라 새 포도주의 역사가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라는 것은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시지만, 잘못하면 징계하고 알지 못하면 법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나왔듯이 잘못하는 사람은 징계하시고 주의 법으로 교훈을 해서 바로 인도해 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4절에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백성’은 믿는 사람이고 ‘그 기업’은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껍데기만 가리키는 교회가 아니라 새 포도주의 역사가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라는 것은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시지만, 잘못하면 징계하고 알지 못하면 법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나왔듯이 잘못하는 사람은 징계하시고 주의 법으로 교훈을 해서 바로 인도해 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악한 사람은 오만한 말을 하고 남을 죽이고 과부를 죽이고 나그네를 죽이고 고아를 살해하고 하나님이 보지 못한다고 하고 보기에 잘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보고 다 듣고 계시므로 악한 자를 징벌하실 것입니다. 악한 자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구덩이를 파신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악한 자를 거기에 다 잡아넣고 묻으려는 구덩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망할 사람을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평안함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고 그 기업을 버리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포도 운동을 하는데, 왜 버리고 왜 떠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살려 나가는 일을 하는데 왜 버리고 왜 떠나시겠습니까?
본문 15절에 “판단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좇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임시로 잘되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의로 돌아가고 맙니다. 하나님의 판단에는 의만 나타나고 마음이 정직한 자는 의만 세워 나갑니다.
5. 여호와께서는 악인을 징벌하고 성도를 도와주심
본문 16절에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너무 환난이 심하니까 이렇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하고 살펴보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행악자를 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도와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한 사람도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본문 16절에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너무 환난이 심하니까 이렇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하고 살펴보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행악자를 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도와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한 사람도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본문 17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가 어떻게 될 뻔 했습니까?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셨으면
벌써 죽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죽을 뻔한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병이 나서 죽을 뻔한 것, 교통 사고로 죽을 뻔한 것, 사기를 당해서 죽을 뻔한 것 등,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면 다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지 않으시면 죽을 뻔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있지 우리는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죽을 고비가 얼마나 많이 넘어 갔는지 모릅니다. 6·25 사변을 당한 사람들은 6·25 사변 때 얼마나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까? 따라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오늘까지 살려주셨다는 것을 늘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18절에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라고 하였습니다. 내 발이 미끄러질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붙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발이 미끄러져서 넘어지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넘어지고 집안에서 미끄러져서 발이 부러지는 등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겨울에 얼음판에 넘어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기도원에서 나도 겨울에 넘어졌습니다. 고 목사도 넘어져서 얼굴을 다쳤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발이 미끄러질 때에 나를 붙들어 주셔서 오늘날까지 다리 안 부러지고 머리 안깨지고 나왔습니다.
본문 19절에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속에 생각이 많을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무엇을 어떻게 할까?’ 생각이 많습니다. ‘이사를 갈까 이사를 가지 말까? 어떻게 할까? 분풀이를 좀 할까 하지 말까? 가만 두니깐 안 되겠다. 한 번 혼내볼까? 혼내지 말까 잡아넣을까 잡아넣지 말까?’ 생각이 많습니다. ‘할까 말까, 손을 땔까 내버려두고 관둘까, 그래도 해야 되겠나 안해야 되겠나’ 생각이 많습니다. 그런데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주의 위
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들어올 때에 잠깐 근심이 되고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때에 하나님을 의뢰합니다. 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가까이하고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가까워지시고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는데 그러면 기쁨이 옵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여러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한 가지 생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야 되겠나? 저렇게 해야 되겠나?’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을 때에 ‘떡을 치고 판을 내겠느냐? 그냥 놔둬야 되겠느냐? 내쫓아야 되겠느냐 놔둬야 되겠느냐? 도망쳐야 되겠느냐? 그냥 있어야 되겠느냐?’ 생각이 많습니다 생각이 많을 때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모든 염려는 다 주께 맡겨야 합니다. 모든 염려, 모든 일, 모든 되어 나가는 일, 모든 해야 될 일을 다 주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에게는 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맡겨놓았으므로 내 것도 하나도 없고 내가 해야 될 것도 하나도 없고 내가 걱정할 것도 하나도 없습니
다. 다 맡겨놓았으므로 남의 일이 되었는데 내가 남의 일을 가지고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또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잘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더 잘해주십니다. 나를 더 잘 아시므로 더 잘해주시고 나보다 더 능력이 많으시므로 나에게 생각이 많을 때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야 합니다. ‘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주의 것입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주께 맡겨놓고는 그 다음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서 하나님을 절대로 의뢰하라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나가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와주시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힘이 되시고 기쁨이 되시고 즐거움이 되십니다. 모든 것이 다 없어졌어도 하나님께서 즐거움이 되십니다. 나에게 무슨 소유가 있다고 해서 이것저것 생각이 많을 때에 잘 돼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원도의 산에 불이 붙어서 소와 돼지가 죽고, 집이 타는데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이거 큰일이다 저거 큰일이다 하면서 걱정한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소가 안 죽습니까? 벌써 불살라진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요새 자연 재해로 이재민이 된 사람들이 감자 씨, 보리 씨 등 씨가 다 불붙었고 소, 돼지가 다 죽었다는데 ‘어떻게 살까?’하며 생각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아야 됩니다. 걱정하려고 하면 한이 없고 원망하려고 하면 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원망하려면 전부 원망입니다. 내가 이사 안 오려고 했는데 아무개가 이사를 오자고 해서 이사 왔다가 망했다, 국가에서 대책을 안 세워주고 화재가 나는 것도 모르고 눈까지 멀게 되니 왜 이렇게 만들어놨느냐? 아이들은 왜 여기 와서 살라고 해서는 집까지 얻어 준다고 하더니 이게 무엇이냐? 강철과 콘크리트로 집을 지었으면 불이 붙어도 안 탔을 텐데 나무를 지붕으로 해서 타게 만들어 놓았느냐? 하며 이런 저런 원망을 많이 할 것입니다.
작년에 수해가 나서 파주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까? 집이 다 무너지고 다 떠내려갔으므로 원망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나라 원망, 지방의 책임자들 원망,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하나는 감사를 했답니다. “생명을 살려준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다 없어졌어도 자기 목숨하나 살려준 거 얼마나 감사합니까?”하고 감사를 했답니다. 감사하려고 하면 다 감사합니다. 심지어 집이 다 떠내려갔어도 감사하고 소가 다 떠내려갔어도 감사한 것입니다. 생명을 살려주셨으니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원망하고 불평하려면 아무리 많이 줘도 원망, 불평이 나옵니다. “이게 고작 뭐냐?”하는 식으로는 전부 원망일 뿐입니다. 원망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느냐?”라고 하는데, ‘누구 때문’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소리를 다 집어치우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이북에서 늘 굶고 앉았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리 오래 있어보아도 소생할 희망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경제적으로 자기네 때문에 못 산다고 하면 잘 살려고 노력을 해보겠는데 그것이 아니라, ‘미군 때문에 못 산다. 남한 때문에 못 산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나서 “당신들 왜 이렇게 됐습니까?”라고 하면 “미 제국주의가 남쪽에 와서 우리가 이렇게 됐습니다. 남한 정부가 잘못돼서 이렇게 됐습니다.”하고 경제적인 책임을 남한에 돌리고 미국에 돌립니다. 자기네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니 잘하려고 하는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희망이 없습니다. 자기네가 잘못해서
못 산다고 하면 잘하면 된다, 농사를 져서 잘하면 된다, 일도 잘하면 된다, 군사 비용으로 쓰지 않고 백성들 생활하는 데 쓰자, 하면서 군사비만 돌려도 백성들이 굶지를 않습니다. 또 김정일 생일잔치에 돈을 많이 쓰는데 김정일 생일 잔치를 하지 말고 백성들에게 다 나눠주면 됩니다. 백성들 몇 달치 먹을 것을 생일 잔치하는 데에 다 없앱니다. 그러니까 원망하기 시작하면 전부 원망이고 안 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요셉이 원망했습니까? 원망했으면 요셉이 망할 뻔했고 또 원망을 하려면 얼마나 많이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버지가 공평하게 사랑하지 않고 나만 좋은 옷을 해 입혀서 형들한테 시기를 얻게 했다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형들은 왜 자기를 팔아먹었느냐 형들이 잘못했다고 형들 원망하고, 보디발이 자기 아내 말만 듣고 알아도 안 보고 감옥에 잡아 넣은 것을 원망하고, 또 술 감독이 자기가 꿈 해석을 잘 해주어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는데 나가서는 소식이 영 없으므로 이런 사람이 무슨 감독이냐 하고 술 감독을 원망만 했다면 요셉은 총리대신이 못됩니다. 요셉이 원망을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 않은 것을 무엇으로 압니까? 자기 형들이 애굽에 온 다음에 “당신들이 애굽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나를 이곳으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너희들이 나 팔아먹었지 당해봐라, 이따위가 형이냐 넌 나랑 원수다. 이것들을 감옥에 가두어라’ 하며 형들을 가둘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을 믿었습니다. 감옥에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줄로 믿고 형이 자신을 종으로 판 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줄로 믿어 원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소화하
고 감사함으로 통과했기 때문에 요셉이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
첫째 믿음의 복을 받았습니다. 가족을 구원하고 애굽을 구원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생각이 많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원망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다 맡기라는 것입니다. 근심한다는 것은 맡기지 않은 증거입니다. 맡겼는데 왜 근심하겠습니까? 근심 하는 이유는 맡기지 않은 까닭입니다. 하나님께 맡겼다는 건 앞으로 잘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관리도 잘해주시고 처리도 잘해주시고 앞 길 인도도 잘해주시고 내가 하는 것보다 더 잘해주실 것을 믿고 맡기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아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만난 바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뭘 주신다고 했습니까?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하나님의 위안이 나를 즐겁게 해주십니다. 기쁘고 즐거움이 옵니다. 내게 있는 것이 다 없어져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박국 3장 17절을 보십시오. 다 없어져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또 욥이 재산이 다 없어지고 아들 일곱, 딸 셋이 다 죽었어도 욥은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이시고 하나님께서 구원이시고 하나님께서 영원이시고 하나님께서 전체이시므로 다 없어졌다고 해도 하나님으로 기쁠 수 있습니다.
생각이 많을 때에 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한 분 만 모셔야 합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천지에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하나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 기업을 떠나지 않으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데 무엇 때문에 걱정을 합니까? 하나님 한 분만 모시고 즐거워하면 하나님께서 잘해주십니다. 생각이 많을 때 하나님께 다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의뢰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평안한 마음이 오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옵니다. 생각이 많을 때 늘 생각하면 신경쇠약에 걸리고 밤잠을 못잡니다. 잠이 안 옵니다. 잠이 안 올 때 잠 오는 약을 사서 먹으면 처음에는 잠이 오는데 나중에는 또 못 잡니다. 그러면 2알을 먹습니다. 얼마 있다가 또 잠 안 오면 3알을 먹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잠이 안 올 때 평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잠이 잘 옵니다. 어떻게 하면 편안한 마음을 가집니까? 모든 것을 다 주께 맡기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영접해서 자기는 심부름만 해야 합니다. 저기 가라고 하면 가고 이것을 갖다 놓으라고 하면 갖다 놓고 여기 오라고 하면 여기 오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심부름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제가 하는 것보다 몇 백 배 낫게 만들어 주십니다.
본문 20절에 “율례를 빙자하고 잔해를 도모하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교제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율례를 빙자하고 잔해를 도모하는 악한 재판장은 주와 교제할 수 없습니다. 재판장은 하나님을 대표해서 공의의 판단을 해야 되겠는데 법률을 빙자해서 잔해를 도모한다는 것입니다. 재판장들이 법률을 빙자해서 악한 일을 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재판장 위에 또 재판장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21-22절에 “저희가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하며 무죄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나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성도를 죽이려고 핍박을 하지만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저희 죄악을 저희에게 돌리시며 저희의 악을 인하여 저희를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저희를 끊으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에게는 죄악을 저희에게 돌리시고 저희의 악을 끊으시지만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산성이 되시고 피할 반석이 되십니다. 보호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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