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勝利)
아가 8:1-14
1네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2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 3너는 왼손으론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론 나를 안았었으리라 4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찌니라 5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6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7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8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9그가 성벽일찐대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찐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10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11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들로 각기 그 실과를 인하여서 은 일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12솔로몬 너는 일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13너 동산에 거한 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무나 14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아가 8:1-14
1네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2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 3너는 왼손으론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론 나를 안았었으리라 4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찌니라 5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6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7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8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9그가 성벽일찐대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찐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10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11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들로 각기 그 실과를 인하여서 은 일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12솔로몬 너는 일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13너 동산에 거한 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무나 14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1. 육에 속한 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령한 생활
예수님과 입 맞추는 생활
본문 1-4절까지는 술람미 여자의 말입니다. 본문 1절에 “네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네가’에서의 ‘네’는 예수님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면’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비와 같았다면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께 입을 맞추어도 다른 사람들이 멸시하지 않았을 것이나 예수님이 오라비가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과 입을 맞추면 멸시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라비와 입을 맞추면 다른 사람들이 멸시하지 않지만 예수님과 입을 맞추면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라비는 육신에 속한 자를 뜻하는데, 육신에 속한 형제들과 입을 맞추는 것은 업신여길 자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세상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과 입맞춤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세상이 업
신 여긴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9절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여 세상 말을 하면 다 좋아하겠지만,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오라비는 세상에 속한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세상 일을 하면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멸시할 자가 없지만, 성도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령한 일을 하니, 신령한 세계에 이르지 못한 세상 사람들은 신령한 세계의 성도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5-6절에는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면 세상이 다 듣지만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말을 안 듣고 미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예수님과 입 맞추는 생활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영의 일이고 영의 길을 걷는 것이므로 세상에 속한 자들이 이상히 여기고 멸시할 것은 정해놓은 것입니다. 차라리 세상에 속한 일을 했더라면 그 사람들이 업신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신랑을 왜 업신여기는가 하면 신랑은 세상에 속한 신랑이 아니고 하늘에서 온 신랑이라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신랑이므로, 그 신랑이랑 입을 맞추었다고 하니 세상 사람들이 그 여자를 이상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그 신령한 예수님과 동행하고 입 맞추는 생활을 하면, 세상 사람들은 ‘밤낮으로 주여, 주여가 뭐야? 예수만 믿으면 다 되나?’하고 멸시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현실주의, 기독교 사업주의는 믿음이 없는 사람도 좋아하고, 기독교 정치주의 같으면 야당이나 여당이나 다 환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 운동을 하지 않습니다. 영의 운동이고 하늘의 운동이고 생명 운동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이해를 못합니다.
어저께도 기도원에서 봉사하느라 일자로 서서 흙을 나르는데 논에서 일하는 사람이 척 쳐다봅니다. 척 쳐다보길래 ‘저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고 저렇게 쳐다볼까?’하고 생각해보니 ‘저것들이 정신이 있나? 이렇게 분주할 때 잔뜩 모여 흙을 나른다고 일제히 서 있고 한심스
럽기 짝이 없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어도 우리는 예수님과 입 맞추는 생활을 하는 것이 괜찮습니다. 보배가 있고 신랑이 있으므로 상관없습니다.
돈도 세상 일을 하면서 세상에 기부하면 다 환영해도 예수님을 위해서 바쳤다고 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정신이 나갔다. 뭐 하러 예배당에 바쳤냐?”라고 하면서 멸시합니다. 또 ‘돈 있으면 다른 것이나 하지, 예배당에 갖다 바치니 목사가 돈 많이 벌겠다’고 하며 목사가 다 받는 줄로 압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목사에게 “목사님, 교인이 몇 명이니 수입이 상당히 많겠습니다”라고 합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십일조를 왜 하느냐?”고 묻길래 “자기가 벌었어도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또 환경을 주시고 일이 다 되게 해주셨기 때문에 당연한 하나님의 것을 바치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라고 했으므로 해야 한다”고 하면 “목사님 혼자 많이 가져서 좋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설명해주었습니다. “그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십일조든 일반 교인의 연보든 두, 세 사람의 회계와 서기가 임명된 제직회라는 재정 처리 기관에서 맡아 은행에 저금을 해놓고 관리를 한다. 사용 할 때에는 꼭 필요한 데에만 제직회를 통해 결의하여 사용한다. 또 교인의 수와는 상관없이 교역자에게는 월급으로 정해진 만큼의 돈을 주고 나머지는 구제와 하나님 일에 사용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구제도 하느냐?”고 물어서 “구제를 많이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그때서야 이해가 되는 듯하였습니다. 이렇게 영적인 신앙 생활은 무시하고 오라비 입 맞추는 세상 육신의 일을 하면 좋아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은 다 업신여깁니다. 그러나 그렇게 업신여긴다고 해도 해야 합니다.
영의 세계에서 예수님의 말씀의 교훈을 받으라
본문 2절에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를 이끌어’라는 것은 예수님을 붙잡고 이끌어서라는 뜻입니다. 아가 3장 4절에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침상에서 잠자다가 잃고 나서, 찾으려고 성읍과 거리에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갔으나 못 찾다가 바로 가르치는 교역자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조금 힘을 써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을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내 어미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고 하였는데, ‘어미 집’은 우리 영이 거듭난 집이고, 진리와 영감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너를 낳았다’고 하였는데, 어미의 집은 영의 세계이고, 진리와 영감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잉태한 자의 방’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만나서 붙잡고 어미의 집, 신령한 세계, 영의 세계로 들어가 예수님에게서 교훈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 예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며, 거기서 바른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가 예수님께 드릴 것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이 꿀송이보다 달게 되면 이제 예수님에게 향기로운 술, 석류즙을 대접해야 합니다. 향기로운 술, 석류즙은 말씀대로 산 열매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그 말씀을 새김질하며, 나아가 말씀이 속에서 역사하여 그대로 살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석류즙’이라고 하였는데, 겉이 단단한 석류처럼 단단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새김질하면 그것이 생명이 되고 자기의 힘과 기쁨이 됩니다. 또 자기의 영이 소생해 올라오면 그것이 예수님에게 대접하는 향기로운 술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드리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은 석류즙으로 예수님께 마시우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것을 마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왼손만 베지 말고 오른손에 붙들리라
본문 3절에 “너는 왼손으론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론 나를 안았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왼손은 위로와 안식과 평화를 주는 손이고, 오른손은 능력의 손이요 우리를 붙들어서 일으켜 세우는 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왼손을 베고 위로와 안식과 평강을 얻어야 하고, 예수님의 능력의 손에 붙들려서 새 힘을 얻고 벌떡 일어서서 걸어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런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왼손만 붙잡지 말고, 오른손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왼손만 베고 있으면 마음이 기쁘고 평안한데, 또 오른손에 붙들려야 일어섭니다. ‘주여, 능력의 손을 붙듭니다’라고 하며 오른손을 붙잡으며 ‘일어섭니다’하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갑니다’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능력의 손에 붙들려서 일어서는 생활을 하면 약한 자가 강해지고 병든 자가 나아지고 힘없는 자의 다리에 새 힘이 생깁니다. 주님의 오른손에 붙들려서 소경이 눈뜨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혈기마른 자가 힘을 얻어 일어서고 달음박질합니다. 그런 능력의 손에 붙들려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다 능력의 손에 붙들리시기 바랍니다. ‘위로와 평강만 얻으려고 하지 말고 능력의 손에 붙들리는 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주님의 오른손을 언제나 힘 있게 붙들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능력의 손으로 그 사람을 붙들어주십니다.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새 힘을 주셔서 걷게 만드십니다. 강건하게 만드십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의 신앙과 술람미 여자의 신앙
본문 4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아가 2장 7절과 아가 3장 5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깨우기 잘하고 흔들기 잘하고 돌아오라는 말을 잘하는 성격임을 알고 나가야 합니다. 또 예수님과 같이 사는 술람미 여자에게 “예수를 믿어도 별나게 광적으로 믿는 너는 잘못됐다”라며 흔들어 깨워서 자기와 같이 만들어놓으려고 하는 것이 예루살렘 여자들, 보통 신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아가 2장 7절에 ‘노루와 들 사슴으로 부탁한다’고 하였는데, 노루와 들 사슴은 놀래기를 잘하는 짐승으로서, 이것은 성도의 깨어나기를 잘하는 신앙 상태를 가리킵니다. 또 예수님께도 노루와 들 사슴으로 표현한 것은(본문 14절) 예수님의 재림이 빨리 온다는 뜻입
니다. 성도에게 비유된 것은 성도가 깊은 신앙에 들어갔다가도 노루와 들 사슴처럼 후닥닥 뛰어나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번 깊은 신앙의 자리에 들어갔다고 마음을 푹 놓았다가는 까딱하면 노루와 들 사슴처럼 뛰쳐나오게 되기 때문에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흔들고 깨우지만, 그래도 깨우지 말라고 부탁하는 것이 효과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여자에게 깨우지 말라고 했는데도 그들이 깨웠으니 양심에 가책이 올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깨우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술람미 여자 같은 신앙의 성도가 가장 좋은 신령한 궁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더불어 신령한 교통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깨워서 보통 예루살렘 여자들 식으로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새 2부 예배, 3부 예배를 보는 교회들은 예배당이 좁아서 그런 데도 있으나, 대개는 놀러다닐 시간 외에 예배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주일날 놀러 다니고 일하는 것을 허가 내주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를 드렸으니 마음 편안하게 가서 놀고, 마음 편안하게 가서 장사하고, 마음 편안하게 직장에 다녀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차라리 1부 예배를 안 보고 일을 보러 가고 놀러를 가면, 주일 범한 것에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고 회개할 기회가 오겠는데 이것은 회개할 기회도 없습니다. 낮에 예배 1시간 왔다가 가면 주일에 믿는 일을 다 한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온갖 할 일을 하고 자기 볼 장을 다 보며 돌아다니는 자들이 예루살렘 여자들입니다.
새벽 기도도 별로 안 하고, 새벽에 나와도 잠시 왔다가 가니 깊은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성경말씀대로 나가려는 생각도 없이 평생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요새 신 신학 교회나 에큐메니칼 교회가 그런 식으로 하면서 연보는 잘하고 예배당 지을 때면 잘 짓고 또 사업도 잘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깊은 자리, 신령한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젖으로나 먹이는 교훈, 목사 자신이 기도도 안 하고 깊은 세계에 못들어가는데 어떻게 신령한 젖을 먹일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잘 되어가고 사업도 잘하고 전도도 잘하고 선교 사업도 많이 하지만,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므로 깊은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과 같이 들로 나가고 동네로 가지 못하므로 깊은 교제가 없고,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로 가지 못하므로 바짝 주님을 의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보통으로 그저 왔다 갔다 하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하여간 깊은 신앙의 세계에 들어가서 깨지 않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신앙의 길이 다르고 종류가 다릅니다. 예루살렘 여자는 술람미 여자와 다릅니다. 같이 믿는 사람이지만 신앙의 종류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하나님이시고 성경도 한 성경이고 성령도 한 성령이고 세례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지만, 길이 다릅니다. 종류가 다릅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밤낮 돌아오라고 깨우고, 술람미 여자들은 언제나 깨지 않으려고 깊은 세계에 들어가 살려 합니다. 그러니 서로 다르지 않습니까? 다른 것을 분별하고 나가야 우리가 술람미 여자의 길을 걸어가며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분별하지 못하면 신 신학도 같은 신자, 인본주의도 같은 신자가 됩니다. 또 교역자들이 노라리하러 다니는 것도 괜찮아집니다. 교역자들은 놀러 다니면 안 됩니다. 교역자 수양회로 모이면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배우고 일심정력을 다해서 신령한 자리에 들어가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요새 신 신학이 들어오고 교회 안에 정치 운동이 들어와서 교회가 데모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옳습니까? 목사나 신부가 반 정부 데모하는 것이 옳습니까? 교회가 세상 운동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유다 나라가 로마 가이사 황제의 속국이었어도 가이사 황제에게 할 것은 다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독립 운동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가 개인적으로 나가서 자기 소신대로 정치 운동을 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 안에서는 정치 운동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성경에 맞습니다.
2. 거친 들에서 오는 성도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성도가 깨어남
본문 5절에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올라오니 누구인가 하고 술람미 여자의 고향 동네 여자들이 물어봤습니다. 그 말에 왕이 대답하기를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너’는 술람미 여자를 말합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성도가 깨어남
본문 5절에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올라오니 누구인가 하고 술람미 여자의 고향 동네 여자들이 물어봤습니다. 그 말에 왕이 대답하기를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너’는 술람미 여자를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미가 복음으로써 낳느라 신고(辛苦)한 것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4장 19절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고 하였는데, 사과나무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고 봐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자고 있는 성도, 세상에 빠져 있는 성도를 깨워서 데리고 가시는 곳이 ‘사과나무 아래’라는 것입니다. 아가 2장 3절에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 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깨어나려면 해산하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일심정력을 기울이며 해산하는 수고를 할 때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깨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깨어나는 은사를 안 주십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우려고 애를 많이 썼고, 갈라디아 교회를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를 하였습니다. 또 교인들도 해산하는 수고를 하였는데, 그럴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과나무 아래에서 깨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애를 많이 쓰고 일심정력으로 나아갈 때에 깨어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저것이 가짜냐 진짜냐, 참으로 예수님만 의지하고 오는 자인가, 인본주의인가’, 이러한 것들을 세상 사람들이 보고 압니다. ‘거친 들’은 세상인데, 거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만 바짝 의지하고 가며 누군가 물어보니 예수님께서 낳은 자가 애를 많이 썼고 어머니가 신고를 많이 했고 자기 자신이 애를 많이 썼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사과나무 아래에서 술람마 여자로 깨워졌다고 답한 것입니다. 교역자도 힘을 많이 써야 술람미 여자가 되어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술람미 여자는 그저 자다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애쓰는 것, 해산하는 수고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3. 사랑의 힘
술람미 여자의 사랑
본문 6-7절은 술람미 여자의 말입니다.
본문 6절에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너’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께 자기를 인같이 예수님의 마음에 품고 또 옛 시대에 도장을 팔에 매었듯이 예수님의 팔에 매어달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자가 인같이, 도장같이 손바닥에서 떠나지 않게 해주실 줄을 믿고 간구하니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49장 15-16절의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술람미 여자의 사랑
본문 6-7절은 술람미 여자의 말입니다.
본문 6절에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너’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께 자기를 인같이 예수님의 마음에 품고 또 옛 시대에 도장을 팔에 매었듯이 예수님의 팔에 매어달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자가 인같이, 도장같이 손바닥에서 떠나지 않게 해주실 줄을 믿고 간구하니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49장 15-16절의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께 이렇게 부탁하면 예수님께서 손바닥에 새겨주십니다. 벌써 새겨놓으셨습니다. 벌써 마음에 품고 다니십니다. 그러면 나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계셔서 좀 더 깊은 사랑의 교제, 좀 더 깊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인 술람미 여자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사랑은 적극적으로는 생명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에게 정복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듯이 소극적으로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우상을 섬기는 때, 예수님께서 죽음과 같은 기세로 투기하셔서 불같이 다 살라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39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폭포수와 같이 사랑을 쏟아 부어주시는데 거기서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아예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그냥 내리 부어주시므로 끊을 수 없습니다. 달아나면 끝까지 따라오면서 내려줍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사랑도 이제 끊을 수 없습니다.
2세기 경에 폴리갑이라는 감독을 로마 정부가 잡아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 태워 죽일 때에 예수님을 한 번만 모른다고 하면 놔준다고 하자, 폴리갑이 “예수님은 나를 86년 동안 사랑하시되 한 번도 모른다고 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한 번이라도 모른다고 하리요”라고 하여 불타서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랑에 감격해서 사랑에 삼키어진 순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모든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도가 그 사랑 가운데 거하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에 생명도 단 마음으로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같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또 성도가 죄를 지으면 예수님께서 그를 징벌하고 성도를 죄짓게 하는 것을 투기하셔서 다 멸망시키십니다. 여호와의 불을 누가 막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투기로 내려오는 그 불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본문 7절에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찌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3장 2-4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하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만큼 우리를 지극한 사랑으로 폭포수와 같이 계속해서 쏟아 부어주는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이 와도, 불이 와도, 죽음이 와도, 다른 어떤 것이 와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합니다. 또 우리가 그 사랑에 감격해서 예수님을 사랑할 때에 창수가 나도 죽음이 와도 예수님을 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에 감격해서 그사랑에 삼키어져서 생명을 단 마음으로 내놓고 나가는, 그 자리에 나가는 것이 술람미 여자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 가운데 우리가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4. 작은 누이 보호
심령이 어린 성도를 돌봐야 함
본문 8절에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술람미 여자의 고향에 왔을 때, 그 형제들이 하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술람미 여자가 어렸을 때에 그들의 형제들이나 남동생이 한 말이라고 하기도 하고, 영적으로는 작은 성도, 즉 심령이 어린 성도를 말합니다. 영이 자라나지 못한 성도는 심령이 어리니 말씀을 잘 먹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도도 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나눠 먹여줄 수 없는 것을 유방이 없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좀 도와주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어린 성도를 위해서 무엇을 하여야 좋겠는가 하며 심령이 어린 성도를 위해서 염려하는 것입니다.
은으로 망대를 세워주고 백향목 판자로 둘러줄 때에 감사할 것
본문 9절에 “그가 성벽일찐대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찐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성도가 성벽이라면 또는 문이라면 우리가 은 망대가 되어 또는 백향목 판자가 되어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끔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어리니 분멸하지 못하여 사이비나 이단, 또 인본주의나 비 진리 등의 잘못된 것이 와도 예수님이면 다 좋다고 받아주게 됩니다. 자기 심령에 손해를 줄 이리 떼인 줄도 모르고 문을 열어주어 일이 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것을 판자로 둘러서 막아야 어린 심령이 손해를 안 보고 곁길로 안 갑니다. 여기서 ‘백향목 판자’라고 한 것을 보면 그 판자가 값을 많이 들인, 좋은 향기가 나는 고급의 목재로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를 많이 하고 일심정력을 기울여 공력을 많이 들인다는 뜻입니다. 하여간 은 망대를 세워 올라가서 원수를 막아주어야 되겠다는 결심이 매우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어린 누이가 조심할 것은 막아줄 때에 “막지 말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그거 하나 모르겠느냐? 내가 철이 없느냐? 날 아이로 본다”라고 하거나 “내가 예수 믿은 지가 몇 십년이 되었는데 그거 모르겠느냐? 다 가라, 보기 싫다”고 하면 막아주려고 해도 막아주지 못합니다. 자기가 어리면 어린 줄 알아야지,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가만히 있으면 거저먹을 것인데 공연히 반대하다가 그만 일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가 복이 있고 순종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겸손하고 순종하면 와서 망대도 세워주고 판자도 둘러주고 신앙이 보전되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잘 자라나서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입니다. 자라난 사람들은 가서 이렇게 만들어 주어야 하고, 자라나지 못한 사람은 만들어줄 때에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하게 생각해서 하나님의 일이 잘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5. 포도원을 위해 일하는 자의 상급
자라난 성도가 귀함
본문 10절에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여자의 말입니다. 쑥 자라나서 키가 종려나무와 같이 많이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견고한 성벽, 쇠기둥, 놋 성벽, 유방은 망대와 같이 많이 자라난 술람미 여자가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화평을 얻은 자와 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자라난 성도가 귀한 것입니다. 자라난 성도는 이 만큼 견고해져서 악한 자가 와서 침입하지 못합니다. 유방은 망대와 같습니다. 믿음과 소망이 아주 견고하고 신령한 젖이 풍성해서 많은 사람에게 나눠 먹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라난 성도가 귀함
본문 10절에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여자의 말입니다. 쑥 자라나서 키가 종려나무와 같이 많이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견고한 성벽, 쇠기둥, 놋 성벽, 유방은 망대와 같이 많이 자라난 술람미 여자가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화평을 얻은 자와 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자라난 성도가 귀한 것입니다. 자라난 성도는 이 만큼 견고해져서 악한 자가 와서 침입하지 못합니다. 유방은 망대와 같습니다. 믿음과 소망이 아주 견고하고 신령한 젖이 풍성해서 많은 사람에게 나눠 먹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도원을 만드신 목적
본문 11절에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들로 각기 그 실과를 인하여서 은 일천을 바치게 하였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 여자 고향 근처에 바알하몬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솔로몬의 포도원이 있습니다. 바알하몬은 세상을, 포도원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포도원, 즉 교회를 두셨는데, 그 실과를 인하여 예수님께 은 일천을 바쳐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일천이라는 것은 많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많이 돌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포도원을 맡은 사람들은 일심정력,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아름다운 행실을 하나님께 많이 돌려야 합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모든 좋은 것과 값진 것을 하나님께 예수님께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쳐야 될 것을 다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야 될 것을 안 바치고 자기만 먹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다 빼앗으십니다. 먹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조금 먹고, 바치는 것은 하나님께 다 바쳐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 충성하고 전심전력으로 예수님께 시간과 물질을 바치고 마음을 바쳐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솔로몬 너는 일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예수님께서 더 많이 받으십니다. 실과를 지키는 자는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몫의 5분의 일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조금 주시면 조금 받고, 예수님께만 다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조금 주신다며 더 받으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포도원, 즉 교회는 이제 예수님을 위해서 은 일천을 바치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은 일천을 바친다’는 것은 모든 정성과 물질, 모든 힘과 노력, 희생, 모든 영광을 예수님께 바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실과를 지키는 사람에게도 예수님께서 조금 떼어 주십니다. 영화롭게 되도, 새 힘을 주시며, 존귀하게도 해주십니다. 모든 것을 조금씩 주십니다. 포도원을 지켜서 예수님께 다 바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서 5분의 1만 받아도 대단한 것입니다. 술람미 여자에게 속한 포도원이 이렇게 술람미 여자 앞에 있는 것입니다.
6. 동산에서 재림을 고대함
본문 13절에 “너 동산에 거한 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무나”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말입니다. ‘동산에 거한 자’는 술람미 여자인데, 술람미 여자가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어 부르는 새 노래를 예수님께서 듣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도 듣기 원합니다. 좋아합니다.
본문 13절에 “너 동산에 거한 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무나”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말입니다. ‘동산에 거한 자’는 술람미 여자인데, 술람미 여자가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어 부르는 새 노래를 예수님께서 듣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도 듣기 원합니다. 좋아합니다.
본문 14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술람미 여자의 말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이신데, 즉 ‘예수님이시여, 빨리 달리십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향기로운 산들에서’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늘나라를 가리킵니다. 또 노루와 사슴은 빠른 것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 하늘나라에서 빨리 달려오십시오.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술람미 여자는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합니다. 예수님께서 빨리 오시기를 날마다 고대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잘 준비한 술람미 여자가 예수님께 속히 오시라고 한 것처럼, 우리도 그런 자리에 들어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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