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게 믿음 지킨 성도가 창성해짐
이사야 54:1-17
이사야 54:1-17
1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3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4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6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7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9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10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찌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11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12홍보석으로 네 성첩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13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14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 15그들이 모일찌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모여 너를 치는 자는 너를 인하여 패망하리라 16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기계를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17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 의롭게 믿음 지키는 성도를 여호와께서 창성케 하심
본문 1절에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벨론에서 과부와 같이 외로이 지내던 유다 백성들이 해방되어 나올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나님 없이 살았고, 율법도 없고, 의와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도 하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범죄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고통 가운데 사는 사람들도 앞으로 회개하면 잘된다는 것입니다.
‘잉태치 못하며 생산하지 못하고, 구로치 못한다’는 것은 남편이 없는 것을 뜻합니다. 이방인은 하나님도 없었고, 의와 구원을 얻을 가망도 없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살았던, 하나님의 약속 밖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이방으로 나가서 많은 이방인들이 믿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쫓겨나서 외롭게 살던 사람들도 하나님을 찾으면 잘됩니다. 세상에 의지할 곳이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무엇을 붙잡을 것 없이 고독한 가운데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홀로 된 자들입니다. 그리고 잉태치 못하고, 구로치 못하고,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의지할 데도 없고, 붙잡을 것도 없고, 무엇을 내놓을 것도 없고, 어디에 가서 도움을 받을 곳도 없음으로 전심으로 하나님만 찾아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즉, 믿음의 자식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요셉과 같은 사람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고, 애굽에 팔려 종살이를 하면서 홀로 살았습니다. 홀로 살면서 요셉이 하나님만 찾았습니다. 하나님께만 매달렸습니다. 전에 부모의 슬하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으면서 호사 생활을 하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애굽에서 홀로 되어 하나님께 더욱 더 부르짖고, 전심전력을 다해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가서 도움을 받을 곳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그때에 하나님만 찾아야 합니다. 전심전력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부르짖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하나님으로만 살려고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가 은혜 받는 때입니다. 요셉에게는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감옥에 갇힐 때가 은혜 받을 때였고, 요나는 고기 뱃속에 들어간 때가 은혜 받을 때입니다. 고기 뱃속이 요나의 신학교입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가 요셉의 신학교 시절입니다. 모세가 미디안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만났는데, 모세는 미디안이 신학교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구원 받는 사람이 많아졌고, 요셉을 통해서 구원 받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또 요나를 통해서 구원 받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이와 같이 홀로 된 그때가 참으로 하나님을 찾는 때입니다. 그때가 참으로 하나님을 발견하는 때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다 알아주고, 의지할 때가 있고, 환영 해주는 때가 좋은 것이 아니고, 홀로 된 때가 좋은 것입니다. 홀로 된 때에야 의지할 데가 없으므로 하나님만 찾게 되고 하나님께만 부르짖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갈 때에 영적으로 창성해지고 믿음의 자손이 많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다 알아주고, 의지할 때가 있고, 환영 해주는 때가 좋은 것이 아니고, 홀로 된 때가 좋은 것입니다. 홀로 된 때에야 의지할 데가 없으므로 하나님만 찾게 되고 하나님께만 부르짖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갈 때에 영적으로 창성해지고 믿음의 자손이 많아집니다.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고 하였는데, ‘남편 있는 자’는 율법주의자들을 가리키며(갈 4:22-27), 또 신약시대 교인 중에 세상과 짝하여 넓은 길을 걷는 자를 가리킵니다(계 18:7). 즉, 율법이나 종교 의식을 가진 사람들보다 홀로 된 여인이 영적으로 창성하며 믿음의 자식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홀로 된 사람을 통해서 구원 역사가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장막터를 넓히라고 하였습니다. ‘장막’은 교회를 말하며, 교회가 창성하여질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하는 자는 반드시 창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가까운 데에서부터 멀리까지 전하여 창성의 기쁨을 얻어야겠습니다.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라’는 것은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을 널리 전하라는 것이며, 바른 진리의 교회를 확장시켜나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줄을 길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측량줄을 길게 하여 영적 구원 운동의 설계를 크게 하면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고 허영심으로 설계한 것은 실패합니다.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란 믿음의 터가 되는 진리를 반석과 같이 견고히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반석 위에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장막터를 넓히라고 하였습니다. ‘장막’은 교회를 말하며, 교회가 창성하여질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하는 자는 반드시 창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가까운 데에서부터 멀리까지 전하여 창성의 기쁨을 얻어야겠습니다.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라’는 것은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을 널리 전하라는 것이며, 바른 진리의 교회를 확장시켜나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줄을 길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측량줄을 길게 하여 영적 구원 운동의 설계를 크게 하면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고 허영심으로 설계한 것은 실패합니다.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란 믿음의 터가 되는 진리를 반석과 같이 견고히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반석 위에 세워집니다.
본문 3절에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좌우로 퍼지고, 열방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황폐했던 유다가 재건되어 열국에 뛰어나게 될 것을 가리키는 동시에, 이방들이 장차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구원 받아 창성해질 것을 가리킵니다.
2. 여호와를 믿는 자는 두려움과 수치를 당하지 않음
본문 4-5절에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청년 때의 수치’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를 가리키고, ‘과부 때의 치욕’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며 받게 될 수치를 가리킵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수치를 당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해내시어 그 수치와 치욕을 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구속하셔서 모든 죄의 수치를 씻으시고 위로와 영광을 주십니다.
그리고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유다가 범죄할 때는 하나님께서 내버리셔서 과부같이 되게 하셨으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징계를 거두시고 긍휼을 베풀어 사랑하는 남편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수치가 있습니다. 과부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면 남편을 만난 것과 같습니다.
3. 여호와께서 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셨으나 다시 불러주심
본문 6절에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으나 도로 데려다가 아내로 맞아주신다는 것입니다(호 2:14-23).
본문 7-8절에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
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부가 되어 홀로 살았는데, 이제 백성들이 하나님께만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다시 데려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보다 더 행복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버림 받았던 사람을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주시면, 그 사람은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지 않으시고 권고해주지 않으시며 내버리셨는데,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내 것이다. 나는 네 남편이다’라고 하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잠시 징계하셔도 영원히 버리지는 않으십니다. 욥기 5장 18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잠시 버리실지라도 크신 긍휼과 영원하신 자비로 다시 건져주시고 영접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3장 2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 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0편 5절에는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라’고 하였습니다.
4. 다시는 버리지 아니하시며 평화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심
본문 9절에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시대에 홍수로 심판하셨지만,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9:11).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아니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과 같이, 다시는 노하거나 책망치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신령한 이스라엘을 영원한 구원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징계하시어 버리셨으나, 홀로 되어 하나님께 부르짖고 회개하니까 하나님께서 다시는 노하지 않으시고 책망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버림 받았던 자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시는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노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아 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버림받았다고 해서 ‘억울하다. 불공평하다. 왜 다른 사람은 안 버리고 나만 버립니까?’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 볼 것 없습니다. 누구 도와줄 사람을 찾을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영접해주십니다.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시는 노아에게 홍수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아니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과 같이, 다시는 노하거나 책망치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신령한 이스라엘을 영원한 구원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징계하시어 버리셨으나, 홀로 되어 하나님께 부르짖고 회개하니까 하나님께서 다시는 노하지 않으시고 책망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버림 받았던 자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시는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노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아 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버림받았다고 해서 ‘억울하다. 불공평하다. 왜 다른 사람은 안 버리고 나만 버립니까?’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 볼 것 없습니다. 누구 도와줄 사람을 찾을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다시 영접해주십니다.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시는 노아에게 홍수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본문 10절에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찌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천지는 변동되고 없어질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영혼을 구원하시고, 영적 화평을 주시며, 영원한 안식 세계로 인도할 언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언약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5. 성도가 원수를 이기게 될 것을 약속하심
본문 11-13절에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첩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홀로 된 여인과 같이 하나님께만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신다고 하였습니까? 안위를 받게 해주시는데,
첫째는 화려한 채색으로 더해주시고,
둘째는 청옥으로 기초를 쌓아주시고,
셋째는 홍보석으로 성읍을 짓게 해주시고,
넷째는 석류석으로 성문을 만들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아름다움을 가리키고, 또 성도들의 영적 구원의 아름다움과 천년왕국의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성첩(城堞)은 망대와 같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0-21절을 보면 새 예루살렘 성을 각종 보석으로 꾸몄는데, 그것은 영적 세계, 천년 왕국, 천국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을 보석으로 아름답게 단장해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집을 잘 지었어도 이런 집이 어디 있습니까? 아주 좋은 집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였는데(요14:2), 아버지의 집은 아주 좋은 집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사는 사람은 보석 집에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세계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0-21절을 보면 새 예루살렘 성을 각종 보석으로 꾸몄는데, 그것은 영적 세계, 천년 왕국, 천국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을 보석으로 아름답게 단장해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집을 잘 지었어도 이런 집이 어디 있습니까? 아주 좋은 집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였는데(요14:2), 아버지의 집은 아주 좋은 집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사는 사람은 보석 집에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세계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또 네 자녀들은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여호와의 교훈으로 교훈을 받게 하시고, 크게 평강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홀로 되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외로워서 어떻게 할지 몰랐는데, 이제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해주십니다. 홀로 되어서 하나님께만 부르짖고, 하나님만 찾고, 하나님 앞에만 간구하고, 하나님으로만 살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것을 다 주십니다. 남편되는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시고, 영원한 화평을 주시고, 자녀들은 여호와의 교훈으로 교훈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평강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본문 14절에 “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홀로 된 여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므로 하나님을 만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홀로 된 여인의 남편이 되셨는데, 누가 학대할 수 있겠습니까? 또 공포가 올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원수를 이길 것을 가리킵니다. 일시적으로는 마귀가 득세하나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이기시고 진리가 이깁니다.
본문 15절에 “그들이 모일찌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모여 너를 치는 자는 너를 인하여 패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원수가 성도를 치면 반드시 패망합니다. 즉, 홀로 되었던 여자가 남편이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 여자를 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합니다. 성도를 핍박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원수가 성도를 치면 반드시 패망합니다. 즉, 홀로 되었던 여자가 남편이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 여자를 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합니다. 성도를 핍박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본문 16-17절에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기계를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들이 아무리 날카로운 무기를 가지고 성도를 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 원수들을 막으셔서 성도가 상처입지 않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를 죽이려고 하면, 죽이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이것은 계란으로 돌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죽이려고 기계를 만들어도 그 기계가 날카롭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과 같이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원수도 문제없습니다. 대적하여 송사하는 사람의 혀는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도리어 자기가 정죄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을 정죄하면 자기가 정죄를 받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창 12:3).
또 죽이려고 기계를 만들어도 그 기계가 날카롭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과 같이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원수도 문제없습니다. 대적하여 송사하는 사람의 혀는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도리어 자기가 정죄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을 정죄하면 자기가 정죄를 받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창 12:3).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는데 누가 정죄합니까? 그러므로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바로 섰는가, 안 섰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께만 바로 서면 아무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적하려고 기계를 만들어도 그 기계가 날카롭지 못해서 죽이지 못하고, 송사하는 자가 여러 가지 준비를 해서 “무슨 죄다.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하나님께 바로 섰으면 도
리어 송사하려던 그 사람이 정죄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억울해서 잠이 안 온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송사한다고 해서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결국에는 송사하던 사람이 도리어 정죄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평안합니다. 시편 118편 6절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나가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13장 6절에는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바로만 서면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께 바로 서는 것이 문제이지, 사람이 내게 어찌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바로 서고, 홀로 하나님만 찾아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병이 났을 때에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만 사모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려 하지 말고, 자기가 하나님 편이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 편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자기편으로 만들려 하지 말고, 자기가 하나님 편이 되어서 하나님과 한 편으로 하나가 되어 나가면 사람이 내게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면, 홀로 되었다고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사람의 자식보다 많습니다. 그러므로 장막의 터를 넓게 하고, 줄을 길게 매고, 말뚝을 견고히 하고 나가야 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란 성도가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이용하여 구원을 이루어나가면 하늘에 기업을 쌓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21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들이 성도를 온전케 만드는 일에 이용되며, 성도가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한 기업을 받을 자격을 만드는데 이용됩니다.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란 성도가 승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기업이며, 성도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증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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