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9일 목요일

에스겔 13:1-16 우매한 선지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우매한 선지자
에스겔 13:1-16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찐저 4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5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6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7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8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또 말하노라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9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0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혹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11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그것이 무너지리라 폭우가 내리며 큰 우박덩이가 떨어지며 폭풍이 열파하리니 12그 담이 무너진즉 혹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것에 칠한 회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겠느냐 13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으로 열파하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이로 훼멸하리라 14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훼파하여 땅에 넘어뜨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 담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 가운데서 망하리니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5이와 같이 내가 내 노를 담과 회칠한 자에게 다 이루고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담도 없어지고 칠한 자들도 없어졌다 하리니 16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본다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1. 우매한 선지자의 상태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자

1)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화가 있음

본문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 있을찐저”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예언하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선지자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요즘 신비주의자라고 하는데, 이들은 자기 마음에서 생각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느껴지는 것을 말합니다.
감정으로 느껴지는 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도 이런 선지자와 교역자들이 많습니다. 기도해보고 하나님께 이런 지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에 느껴지는 대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느껴지는 것이 하나님의 지시인 줄 아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 가르치고, 성도들도 그대로 그 가르침을 받습니다.

2) 성경말씀을 표준으로 삼고 나가야 함 

‘해야 됩니까, 하지 말아야 됩니까? 가야 됩니까, 가지 말아야 됩니까?’를 물어서 행하는 것은 발람의 기도입니다. 발람은 첫 번째 기도 후에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가지 않았는데, 두 번째에는 더 많은 선물을 가져오니까 욕심이 생겨 똑같은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또 물어봅니까? 이것은 돈이 우상이 되어서 가고 싶은 마음이 속에 가득했기 때문에 반복해서 물은 것입니다.
예전에 부산에서 신학교를 다니던 최 장로님이 기도를 하는데 ‘아무개와 살라’고 하는 지시를 받았답니다. 그래서 자기 부인에게 “여보, 하나님께서 아무개와 살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어 보니까 부인이 “하나님께서 살라고 하셨는데 살아야지요”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래서 그 아무개와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퇴학을 맞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시입니까? 자기가 살고 싶으니까 하나님께 기도해보고 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니까 살아야 되
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도적하고 3년을 살면 둘 다 도적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여간 그 장로님은 느껴지는 것이 하나님의 지시인 줄로 알았기 때문에 산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장로가 신학교를 퇴학 맞고 종자 백성 교회를 세웠는데 27일간 금식 기도를 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살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데 ‘해야 됩니까, 하지 말아야 됩니까?’라고 하면서 의심하는 기도를 합니까?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당 노릇을 하며 딱딱 맞춘다는 곳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무당이 점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표준이 되어 감동되는 것 중에는 바로 된 것도 있고 잘못된 것도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감동이 바로 된 것이면 괜찮습니다. 그 감동은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경으로 검토한 후에 성경 어디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를 보면서 깨닫고 만약 성경에 맞지 않으면 잘못된 줄 알고 잘라버려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2절에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제를 받지 않고 속에서 나오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하는 것은 100% 탈선되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박태선 씨 같은 사람도 처음부터 탈선된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남대문 교회 집사로 시작을 했을 때에는 한 번 봤는데
사람이 참 순진했습니다. 기도도 많이 하고 하나님을 위한 희생 정신도 있는 좋은 집사였습니다. 그런데 느껴지는 것을 따라가다가 그만 탈선이 된 것입니다. 초반에는 생수를 주라는 것이 느껴져서 물통에 안수를 하고 그 생수를 마시면 병이 낫고 바르면 좋다고 했답니다. 그러다가 요즘은 자기가 성공했다고 느껴지니까 예수님을 욕하며 형편없이 다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성경대로 했는데 이제는 성경을 내버리고 예수님을 욕하면서 박태선을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느
껴지는 것을 따라가지 말고. 느껴지는 곳에 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투시법, 독심술(讀心術)로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을 어느 정도 알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지시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에게 쌀을 한 움큼 쥐고 가서 몇 알인가 말해보라고 하면 말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서 딱딱 맞추는 사람도 쌀이 몇 알인지, 내일 증권이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모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말인데, 내일 주식이 올라가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기도할 때 느껴지는 것이 하나님의 지시인 줄 알기 때문에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표준으로 삼아야 하겠습니까? 성경말씀을 표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에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보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도 간혹 잘 모르는 것이 있어서 이기선 목사님을 찾아뵈면, 이기선 목사님께서는 성경 어디를 찾아보라고 하시면서 성경말씀대로 하면 되는데 왜 물어보느냐고 하셨습니다. 성경대로 하는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무당이 점을 치는 식으로 “내가 기도해보고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아무개가 무슨 사정이 생겼사오니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라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신다”라는 응답을 받았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감정으로 느껴지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아닙니다. 자기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예언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성경을 깨달아 바른 예언을 하는 사람,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예언을 하는 사람, 
마귀의 주장을 받아 예언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도 먼저는 성경에 맞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이 성경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 마귀 역사인 줄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꿈도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제일 많고, 간혹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이 있는데 이것도 성경에 맞아야 합니다. 방언도 마찬가지로 마귀가 주는 것이 많고, 간혹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있는데 이것 또한 성경에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성경말씀을 가지고 기도할 때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신, 구약 성경을 최대한 상고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하시는지를 참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 양심을 써서 기도하면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양심을 써서 기도하면 알게 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성경말씀과 신앙 양심과 신앙 경험에 입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입각하여 기도하면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다’라는 것을 알게 해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은 계시를 받아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는데 저는 그것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데, 모른다는 것이 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하신다고 따라가면 신비주의가 되는데,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부터 느껴지는 것이 많기 때문에 성경에서도 탈선되고, 또 느껴지는 것은 바뀌기 때문에 변덕이 많습니다. 요한계시록2장 24-25절에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없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알아서는 도리어 탈선될 만한 일들이 많은데 알아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경말씀대로 나가는 것이 제일입니다. 마음에 느껴지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고 따라가면 손해만 납니다.

황무지의 여우와 같이 성이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 않는 자

본문 4-5절에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너희 선지자들이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족속을 위하여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게 하려고 성벽을 수축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선지자는 황무지에 있는 여우와 같은 자로서, 성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않고 여호와의 날에 전쟁을 방비하지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시, 또는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황무지에 있
는 여우와 같이 사람만 미혹하며 성 무너진 것을 막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감리교에서 신비주의 강사를 초청해 방언과 입신을 하며 열심히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 녀 청년들과 학생들이 예배당에 와서 철야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간음죄를 지어서 교회가 완전히 망하였습니다. 성경이 표준이 아니다 보니 모여서 감정이 느껴지는 대로 힘을 얻고, 마음이 기쁜 것이 표준이다 보니 성경은 지키지 않고 주일날을 지키지 않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집안도 돌보지 않습니다. 이것이 과연 맞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무엇이 맞는 것인지, 성경 기준에 합한 것인지를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참 선지는 그와 반대로 사람을 미혹하지 않고 소와 같이 진실하며 충성됩니다. 여우가 간교한 동물인데, 참 선지자는 소나 양과 같이 진실합니다. 또 무너진 성에 올라가서 막습니다. 에스겔 22장 30절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성에 올라가 막을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진노를 내리려고 하시다가도 이러한 사람을 찾으시면
진노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죄악으로 진리의 성, 진리의 도성이 무너져 내려가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면서 자기가 느껴지는 대로 믿고 따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성도들이 성 무너진 곳을 올라가서 막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계명이 무너져 내려가고 4계명이 무너져 내려가고 5계명이 무너져 내려가고 7계명이 무너져 내려가고 8계명이 자꾸 무너져 내려가는데, 이것을 막아야 합니다. 신사 참배가 들어와 2계명이 무너질 때 막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4계명이 무너질 때 그것을 막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성경말씀을 이 세상에 적용시켜 이용하는데, 그것을 막고 영적인 면을 보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지킬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주일날 사먹으면서 ‘믿사오니’라고 기도하고, 도적질을 하면서도 ‘믿사오니’라고 기도합니다. 별의 별 죄들을 지으면서도 ‘믿사오니’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것을 막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서도록 무너진 도성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이제 무너진 성을 막는 사람이 필요하고, 여호와의 날을 위해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올 환난을 위해 전쟁 준비를 하며 영적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참으로 바로 믿는 선지자나 교인들은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사고 무너진 곳을 막아 예루살렘 성을 점점 수축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도성을 수축하여 영적 성전을 지어나가고, 이로 인해 자기의 영이 자라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예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시온성을 건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라고 하면서 시끌벅적해야 정신이 들고,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말하면 졸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시온 산 정복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봉우리에 올라갔기 때문에 성을 쌓을 수가 없습니다. 시온 성 건축을 바로 하려면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하고, 말씀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말씀을 내놓고 역사하는 성령은 시온 산 정복으로 올라가는 바른 봉우리가 아닙니다. 참 선지와 성도는 이리와 도적이 들어와 망하는 것을 깨닫고 계명이 무너짐을 알아 생명을 바쳐서 이것을 막는 사람들입니다. 또 여호와의 날을 위한 전쟁, 앞날의 환난을 위한 전쟁을 위해서 영적 무장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온 성, 영적 성전을 말씀대로 건축해나가는 것입니다.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하는 자

본문 6-7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으로 그 말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옛날의 거짓된 점괘는 허탄한 것이고, 이러한 자는 여호와께서 보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껴지는 대로 행하고 말하는 자의 그 말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성경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단단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목사님이 기도할 때에 성경에 구제하라는 말씀을 즉시 깨닫게 해주셨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합니다. 일전에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간신히 살아나온 가정이 있는데 기도하다가 깨달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즉시 깨닫게 해주시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자기 마음에 느껴지는 대로 ‘어디로 가거라’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남을 구제 하지 못했다’라는 성경말씀을 깨닫게 되었다면 ‘아, 내가 성경말씀대로 구제하지 못했구나’라고 하면서 구제를 실천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생활이 어려우면 형편이 되는 부분까지 도와주면 됩니다. 그리고 구제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며 말씀대로 바로 서려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도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구제하라’는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가진 모든 재산을 바치고 본인은 먹을 것이 하나도 없이 사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맞는 말씀도 성경보다 지나치게 오용하고 성경의 목적과 다르게 이용하는 것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시편 90편 11절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 팔을 붙드시고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해주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오용한 것입니다. 무조건 내리 뛴다고 붙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며 나가다가 위태한 일을 만날 때에 붙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말씀을 잘못 이용한 것입니다. 
예를들어 남편이 쌀 한 가마니를 사왔는데 그것을 전부 바쳐 구제를 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렇게 한 부인에게 남편이 들어와 책망을 하면 ‘마귀 역사가 또 일어났구나.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핍박이 있다더니 정말이구나. 주여,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제하라고 하신 성경말씀을 가지고 마귀가 지나치게 속여서 거기에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기가 마귀가 된 셈입니다.

그러므로 원리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잘못된 것인 줄 알고 성경대로 서야 합니다. 사람은 영물이라서 간혹 자기 심령에 느껴지는 것이 맞을 수도 있는데,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마음에 느껴지는 바가 개인의 어떤 사건과 아무리 맞아 떨어져도 성경말씀이 중요하지, 자신의 체험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100% 맞는 줄로 알고 성경말씀을 믿으면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 마음에서 나온 것, 마귀에게서 온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도 성경말씀에 맞아야 합니다. 또 성경의 원리 원칙에 맞아야 합니다. 원리 원칙에 맞으면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신 줄 알고 성경을 따라가고,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은 전부 잘라버려야 합니다. 말씀의 제제를 받으면서 나가야 건전한 신앙으로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감정을 따라가다가는 반드시 100% 실패인데, 성경을 따라가면 자라납니다. 앞으로 성경을 잘 따라가면 희망이 있습니다.

2. 우매한 선지자는 벌을 받게 됨

여호와께서 우매한 선지자를 내치심

본문 7-8절에 “너희가 말하기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여도 내가 말한 것이 아닌즉 어찌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또 말하노라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말씀에 맞지 않는 것은 다 허탄한 것이고, 거짓된 것입니다.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 기록되지 못하게 하심

본문 9-10절에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 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혹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은 허탄한 묵시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점을 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이들의 밥 투정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예전에 광목 한 필을 바치려고 했다가 바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가서 보니 예전에 바치려고 했던 것이 있었다는데, 참 어떻게 아는지 마귀도 정말 신기하게 알긴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무리 불을 떼도 구들장이 막혀서 연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물어봤더니, 그 사람이 기도를 한 후에 답변을 준 것이 “네 속이 빽빽 막혀서 구들장이 안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신, 구약 성경의 원리 원칙대로 다스려나가시고 이대로 길러나가시는 분이십니다.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물어보고 느껴진 것도 다 마음에서 느껴진 허탄한 묵시와 거짓된 진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고 하였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평강만 외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선지자의 증거입니다. 예레미야 6장 14절에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참 선지자는 십자가를 말하고, 또 환난이 올 것을 말하며 환난을 이겨야 한다는 것과 죄에서 바로 서라는 것을 말하지만, 거짓 선지자는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 좋으신 하나님만 소개하는 것입니다. 평안하며 잘된다고 말해주는 자가 거짓 선지자입니다. 요새도 교인들에게 듣기 좋아하는 것만 말해주라는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죄는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림하고 돈을 버느라 신경 쓰고 고생해서 마음이 답답한데, 주일날까지 나와서 죄를 회개해라, 환난이 온다,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하면 어떻게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예수, 죄가 없는 예수, 죄가 없는 교회, 좋으신 하나님, 기쁘신 하나님, 복 주시는 하나님, 축복을 내리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시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멍에를 메고 회개하라고 하였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멍에는 메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포로 생활은 2년 내로 끝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돌아올 것이며 늘 평강하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좋은 것만 얘기하고 죄를 책망하는 것이 없습니다. 환난이 온다는 말도 없고, 앞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도 없고, 오직 잘되는 것만 말해주니 큰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전부 거짓 선지자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 평안하다는 말씀만 있습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며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잘된다고 하니까 나빠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속이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사기꾼들입니다. 그리고 평강이 없는데 평강이 있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면 사기당하는 것을 좋다고 하면서 따라다니는 셈입니다. 잘될 이유가 있어야 잘되지, 잘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잘됩니까? 바벨론 멍에를 메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을 해야 하는데, 순종도 안 하면서 평안하길 바라겠습니까? 2년 내로 돌아온다고 하니까 육신이야 즐겁게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이 즐겁고 육신이 좋은 대로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가야 합니다.

회칠한 담은 훼파하여 기초를 드러내시고 칠한 자도 없애심

본문 11-16절에 “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그것이 무너지리라 폭우가 내리며 큰 우박덩이가 떨어지며 폭풍이 열파하리니 그 담이 무너진즉 혹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것에 칠한 회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분노하여 폭풍으로 열파하고 내가 진노하여 폭우를 내리고 분노하여 큰 우박덩이로 훼멸하리라 회칠한 담을 내가 이렇게 훼파하여 땅에 넘어뜨리고 그 기초를 드러낼 것이라 담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 가운데서 망하리니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와 같이 내가 내 노를 담과 회칠한 자에게 다 이루고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담도 없어지고 칠한 자들도 없어졌다 하리니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본다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입술로는 평강을 외치지만 회칠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속은 아닌데 외부로는 회칠을 해서 거룩하고 깨끗하게 보이도록 다니는 것입니다. 그냥 보면 희니까 아주 신성해 보이는것입니다.
‘회칠한 무덤’은 속에서는 썩어진 냄새가 나지만 외부의 담은 거룩하여 깨끗한 척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겉의 좋은 부분만 광고하고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속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외부만 잘 보이게 화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강단에서 자기 자랑만 하면서 자기를 나타내는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것인데, 이들은 자기는 잘한다고만 하고 교인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을 잘 안 합니다. 오히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사랑한다고 말하며 다닙니다. 자기 집에 돌아가서 자기 부인보고 "내가 진심으로 사랑합니다”라고 합니까? 미혹시키려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잘해주는 것입니다. 

대인(大人)은 소나무와 참대나무같이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이나 변함없이 진득하게 서 있는 자이고, 소인(小人)은 복숭아나무와 외지 나무처럼 꽃이 피었다가 져버리는 자입니다. 소인배들은 서로 믿고 잘해주며 겉으로는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미혹을 시키는 사람들인데, ‘회 칠한 자’도 거룩한 체하고 깨끗한 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지도 않은데 무엇이 거룩하며 왜 자랑을 하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이 약한 것과 부족한 것을 자랑한 것처럼 참 선지자
는 자기의 약한 것과 부족한 것, 사랑이 없는 것과 되지 못한 것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자기가 잘했다는 것만 자랑합니다. 이처럼 무엇을 자랑하는지를 보면 참 선지자인가, 거짓 선지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랑할 것은 예수님, 하나님 말씀 밖에 없습니다. 또 잘 믿는 것이 아니라 잘 믿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잘 믿는다는 것은 교만이며, 잘못된 것이지만 잘 믿어보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좋은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사랑해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바리새교인들과 서기관들의 속에는 썩어진 것이 가득하여 회를 칠하고 다녔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다 허시고 뽑아버리십니다. 우리도 잘 믿어보려고 하지만 잘 안 되고, 또 사랑하려는 것이 잘 안 되더라도 늘 애를 쓰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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