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1일 수요일

에스겔 2:1-10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전하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전하라
에스겔 2:1-10

1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2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3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 4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5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찌니라 6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찌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찌어다 7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찌어다 8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9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1.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일으켜 세우심

본문 1-2절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하셔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일어서라’고 하실 때 자기가 일어서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힘을 쓰면 하나님의 신이 와서 힘을 주셔서 일어서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일어서라’고 하실 때 힘을 쓰지 않으면 하나님의 신이 일으켜 세워주시지 않습니다.
‘일어서라’는 말씀을 먼저 받아야 하고, 받은 다음에는 자신이 일어서려고 힘을 써야 하며, 힘을 쓸 때에 하나님의 신이 힘을 주셔서 일어서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앉은뱅이 신앙, 힘이 없어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일어서라는 명령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앉은뱅이 신앙을 원치 않으십니다. 쓰러져 있고, 절망 상태에 빠져 있고, 일어서지 못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일어서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어서라’고 하실 때에 ‘예’하고 일어서야 합니다. ‘예’하고 일어서려고 힘을 쓰면 그때 하나님의 신이 와서 그 사람이 일어서도록 세워주십니다. 능력의 신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
나 ‘일어서라’고 하실 때 일어서려고 힘을 쓰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힘을 쓰려고 하는 자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일어서라’고 하시면 다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사람, 병든 사람, 앉은뱅이, 절름발이, 혈기 마른 사람, 힘이 다 빠진 사람도 하나님께서 ‘일어서라’고 하실 때에 ‘예’하고 일어서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신이 와서 그 사람을 일으켜서 강건하게 만들어주시고, 힘을 쓰게 만들어주시고, 일어서서 걸어가게 만들어주십니다.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도 힘을 써야합니다.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어서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일어서야 합니다.

에스겔은 일어선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영이 깨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그 말씀이 자신에게 생명이 되고 힘이 됩니다. 영이 일어서지 못하고 말씀을 들으면 무슨 말씀인지 모르고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힘이 되지 않습니다. 일어선 다음에 말씀을 들어야 꿀보다 달고 생명이 되고 힘이 됩니다.

2. 패역한 백성에게 에스겔을 보내심

본문 3절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은 유다 백성, 아브라함 자손 전체를 다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를 드리는 자들이지만 패역한 백성, 하나님을 배반하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강퍅하고, 얼굴이 뻔뻔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만 하나님 말씀 거역하기를 잘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 배반하기를 잘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고 섬기는 사람들이 다 이런 사람들입니다. 성경말씀 그대로 순종할 생각을 안 하고, 성경말씀을 내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요새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말씀을 내버리고 믿는 사람, 제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진리에 대해 잘못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 신학자들이나 해방 신학자들, 그 외에도 잘못된 신학 사상을 배워서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주어도 거역합니다.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는 것입니다.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해서 자신들이 잘못 깨닫고 잘못 배우고 잘못 생각하는 것을 옳다고 하며 계속 뻔뻔하게 나가고 강퍅하게 나갑니다.
그렇게 옳은 진리를 배반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요새 많이 있습니다. 바른 진리를 말해주어도 듣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 그것이 옳다고 합니다.

본문 4절에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그를 환영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패역하고, 반대하는 백성,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3.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고 하심

에스겔의 사명

본문 5절에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패역하고 거역하며 듣지 않아도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 하시다고 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숫자는 상당히 많고 에스겔은 혼자입니다. 그들은 수백 명, 수천 명, 수만 명의 많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혼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몇 천 몇 만 명이 함께 나가는데 에스겔 혼자 가서 말하면 그것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는 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하여서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는 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본문 6절에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찌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이 전한 참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가시, 찔레, 전갈같이 사람을 쏘고 찌릅니다. ‘전갈같이’는 독사같이 쏘는 것입니다. 에스겔을 말로 찌르고, 말로 죽이려 하고, 정죄하고, 이단 취급을 하고, 독선주의라 하며, 몹쓸 사람이라고 합니다. 가시가 찌르는 것처럼 전갈이 쏘는 것처럼 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두려워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쏘는 말, 죽이는 말을 하지만 그 말을 두려워말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52편 4절에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라고 하였는데,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 시편 52편 2절에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혀가 날카로운 삭도와 같이 거짓을 섞어서 남을 찌르고 잡아먹습니다. 참된 진리를 전하면 잘못 나가는 사람들이 날카로운 삭도같이 찌르고 거짓말을 보태서 정죄하며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말로 잡아 죽이는 것입니다. 과거에 바로 나가는 선지자들을 다 말로 잡아 죽였습니다. 말로 예레미야를 죽이고, 예수님은 귀신이 들렸다고 미치광이라고 하며 말로 죽였습니다. 바울은 전염병 같은 놈이고, 이단자의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을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말로 사람을 죽여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워하면 두려워지지만, 마귀의 말인 줄 알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됩니다. 아무리 별 소리를 다 해도 새가 짹짹거린다, 개가 멍멍 짖는다 이렇게 알고 흘려보내면 죽이려고 공모하고 떠들어대도 돌담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돌담 앞에서 땅강아지가 아무리 왔다 갔다 하며 떠들어도 돌담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뒷발로 치고 앞발로 밀어도, 수백 마리가 밀어도 돌담은 끄떡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돌담에 깔려 땅강아지가 죽게 되어 있지, 돌담이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바로 나가면 되는 것 입니다. 그런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땅강아지가 돌담을 무너뜨리려는 것과 같습니다. 끄떡없습니다. 성경말씀대로 바로 해나가기만 하면 별 일이 다 생기고, 별의 별 시험이 다 들어오고, 별의 별 사람이 다 죽이려고 해도 끄떡없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죽이려 하고, 올무를 놓고, 모략중상하고, 거짓말로 비방하고 매장해도 말씀대로 바
로 나가면 끄떡없습니다.

문제는 자신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 나가느냐, 나가지 못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반대하는 사람, 뒤에서 허물려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무너뜨리려는 사람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무너뜨려야 무너집니다. 자신이 무너뜨리지 않으면 세계 모든 사람이 무너뜨리려고 해도 안 무너집니다. 예수님을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예수님의 제자,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 베드로, 그리고 예수님의 모친, 형제들, 누이들이 귀신에 들렸다면서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대로 바로 나가시니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오고, 형제가 오고, 온 식구가 다 왔습니다. 제자들이 오고, 바리새인, 헬라인 등 다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 바로 나가시니 끄떡없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하여간 자신이 문제입니다. 자신만 말씀대로 바로 나가면 대적하는 세력들이 아무리 많아도 문제없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둘 뿐입니다. 밀어내고 걸어 넘어뜨리려고 해도 말씀대로 나가면 그러다가 그만 둘 뿐이지,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누구 때문에 그랬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자기 때문입니다. 자신만 바로 나가면 아무것이나 와서 무너뜨리려고 해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가정이 다 와도, 제자가 다 와도, 당시 종교가들이 다 와도, 정치가가 다 와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만 말씀에 바로 서나가면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 때문에 못하겠다는 사람은 무엇을 모르는 것입니다. 형제들 때문에, 가족 때문에, 딸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못하겠다고 하는데 땅강아지가 아무리 들썩거리며 떠들어대도 돌담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땅강아지가 올라가든지 내려가든지 내버려두면 됩니다. 그러다 그만 둘 것입니다. 땅강아지 때문에 돌담이 무너질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못하는 사람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너를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잡아먹으려고 하고, 전갈과 찔레와 가시 가운데 있지만 두려워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붙들고 있고, 내 능력대로 나가고, 내가 너를 견고케 한다. 내가 너를 견고케 하는데 누가 너에게 도전하겠는가?’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1장 17-19절에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너를 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고 하였는데, 두려워하면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지 않으십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가면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십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였은즉’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쇠기둥, 놋 성벽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쳐들어와도 다치지 않습니다. 또 ‘내가 너와 함께 하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쇠기둥, 놋 성벽만 되어도 그들이 꼼짝을 못하는데, 거기에 만군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므로 끄떡없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계속 전하라

본문 7절에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계속 고하라는 것입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계속 고하면 좋겠습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국을 하나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밤에 약간 쉬고 낮에 계속 하나님의 옳은 말씀만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프로는 그만 두고 틀기만 하면 성경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을 듣다가도 성경을 듣자고 해서 틀면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양심 똑바로 써라. 주일 지켜라. 주일을 범하면 죄다. 중생한 영을 써라. 영이 자라나야 한다’라고 계속 이것만 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계속 전하라는 것입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옳은 말씀을
계속 전하면 그래도 그중에 듣는 사람이 있게 됩니다. 그중에 깨달은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 떠내려가도 안 떠내려가는 사람이 생길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방송국이 없어도 개개인이 나가서 전하면 그 역시 방송국입니다. 조그만 방송국입니다. 큰 방송국은 없어도 진리를 배운 사람 개개인이 전하고, 가는 곳마다 나팔을 불면 많은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4. 하나님 말씀을 먹으라고 하심

먼저 자신이 먹어야 함

본문 8-9절에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나가서 전파하기 전에 먼저 말씀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 먼저입니다. 먹어야 전파합니다. 먹지 않고 어떻게 전파하겠습니까? 자신이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힘을 얻어야 합니다. 자신이 옳은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옳은 진리에 관한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그 진리의 말씀대로 영이 날마다 자라나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나가서 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먹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신이 먹어야 힘이 나고 지혜가 생기고, 또 나가서 전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먹는 것은 영의 양식으로 먹는 것입니다. 이전에 잘 먹었으면 이제는 먹지 않아도 됩니까? 매일 먹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전에 잘 배워 났으니 이제 배우지 않고 아무 곳에 가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매일 먹어야 합니다. 주기도문에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매일 매일 자기 먹을 양식을 하나님께 구해서 먹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육신의 양식이라고 가르치면 안됩니다. 그것은 영의 양식을 매일 하나님께 구해서 먹는 것을 가리킵니다. 영의 양식을 먹고 매일 매일 살아야 합니다. 영이 새 힘을 얻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전진하고, 자기 영이 소생할 힘을 얻고, 새 사람이 되고, 새 노래를 부르고, 장성하는자가 일용할 양식을 먹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젖으로만 먹으면 안 되고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젖은 어린 아이가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장성한 자는 젖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5장 12-14절에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자라납니다. 어린 아이 때는 젖을 먹어도 건강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젖만 먹어서는 건강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늘 영양 부족입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장성한 사람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젖 먹는 것과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 

그러면 젖 먹는 것은 무엇이고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은 무엇입니까? 젖 먹는 것은 초보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된다고만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를 가보면 압니다. 젖으로 먹이는 교회인지 단단한 식물을 먹이는 교회인지 들어보면 압니다. 젖 먹이는 교회의 목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데까지, 즉 초보적인 진리만 가르칩니다. 이것이 젖을 먹이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을 그 관점으로 가르칩니다. 성경의 어느 부분을 가르치든지 예수를 믿고 구원 받는 데까지만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아놓고 이제는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하자, 전도하자, 사업하자고 합니다. 전도를 나가도 할 일이 없으니 일만 하는 것입니다. 젖을 먹고 일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단단한 식물은 자라나는 진리입니다. 좀 더 깊은 진리, 영이 자라날 수 있는 진리, 영적 힘이 되는 진리, 그 말씀을 듣고 새 힘을 얻는 진리, 깊은 진리, 깊은 뜻, 이것이 단단한 식물입니다.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육신의 양식이라고 하면 젖을 먹는 것입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고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하였는데, 육신의 양식이라고 하면 금년에 흉년 들지 않고 음식을 주셨으면 그것으로 다 된 것입니다. 따라서 흉년만 들지 않으면 되니까 일 년에 한 번만 기도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부자들은 일용할 양식 걱정이 없으니까 매일 기도하지 않아도 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의 양식이
라고 해야 합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그날에 하나님께 주시는 양식을 받아야 삽니다. 요한복음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영 살리는 것을 중요시한 예수님께서 육신의 양식을 가리킨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영이 사는 것, 영의 양식을 받아먹으면 육의 양식은 덤으로 따라옵니다. 영의 양식을 먹고 영이 살면, 하나님께서 육신의 양식은 덤으로 주십니다. 무엇을 하나 사면 더 주는 것과 같습니다. 무 열 개를 사면 한 개 더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데 열 개 산 것은 보지 않고 한 개 더 주는 것만 보고 한 개 더 주라고만 합니다. 저 사람은 한 개 더 주는 데 왜 자기는 안 주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열 개를 샀기 때문에 더 준 것입니다. 그런데 열 개를 사지도 않고 더 달라고 합니까? 그러므로 덤을 먼저 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원래 사야 하는 것을 사야 덤으로 따라 옵니다. 영의 양식이 첫째입니다. 영의 양식을 먹고 영적 생활을 잘하면 육의 양식은 따라옵니다.
그런데 육신의 양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잠언 30장 8-9절을 갖다 댑니다. 잠언 30장 8-9절에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누구나 배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고, 누구나 가난하면 도둑질을 합니까? 거지 나사로가 가난해서 거짓말을 하면서 도둑질을 하였습니까? 동방 일등 부자 욥이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까? 물질적으로만 갖다 붙이면 안 됩니다. 바울이 배부를 때도 있었고 배고플 때도 있었는데, 배부를 때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였고 배고플 때는 도둑질하였다고 하였습니까?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초월했다는 것입니다. 배부를 때도 제재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배고플 때도 죽을까봐 겁내지 않고 여전히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삼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것이 참 신앙입니다. 바울의 신앙이 바로 된 신앙입니다. 배불러서 하나님을 못 섬기고 배고파서 하나님을 못 섬기는 것은 믿음이 연약한 것입니다. 어린 믿음, 유치원생과 같습니다. 제대로 된 신앙에 선 사람은 바울과 같이 일체의 비결을 배웁니다. 풍부함에 처할 때나 비천함에 처할 때나 제재를 받지 않고 믿음으로 살고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이겨나갈 수 있었다고 바울이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의 양식으로 해석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모든 성경을 단단한 식물로 해석할 수 있고, 젖으로 설명할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을 젖으로 설명하면 아브라함이 낳고, 낳고, 계속 낳기만 하다가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오고,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나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르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여자 이름 넷이 나오는데 그들이 비록 이방 여자들이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젖으로 먹이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까지만 나갑니다.
마태복음 1장을 단단한 식물로 설명하면 기생 라합이 어떻게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갔는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라합은 상천하지의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유다 사람을 통해서 올 것을 믿고, 여리고 성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붙이신 것을 믿고, 여리고를 장차 망할 성으로 알고, 장차 예수님께서 오실 그 민족, 그 성도를 사모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에게 있으니 그 민족에 참여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약속을 믿고, 지키고, 여리고 성이 자기 고향이지만 완전히 그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향하고, 구원에 참여하려고 애를 쓰고, 멸망성에서 나오려고 하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려고 힘을 썼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이것이 얼마나 단단한 식물입니까?

동방 박사가 예수님 탄생 시에 찾아왔습니다. 별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그리스도를 찾아왔습니다. 여기까지 해석하는 것이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단한 식물은 오늘날 영적 빛을 보고 찾아가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만 해석하면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신령한 교훈도 있음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동방 박사가 별을 보고 찾아온 것은 영적 빛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인데, 영적 빛이란 성령님께서 우리 중생한 영혼을 감동해서 성령과 함께 인도하시는 빛입니다.
우리는 영의 빛을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그 영의 빛이 우리를 앞으로 인도합니다. 그 빛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빛을 따라가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동방 박사가 처음에는 별 보고 따라가다가 요단강을 건너가서는 별을 보지 않고 인간의 지식대로 예루살렘에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별은 베들레헴으로 인도하는데 동방 박사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인본주의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흑암을 만났습니다. 별을 잃어버렸습니다. 빛을 따라가다가 인본주의를 쓰면 빛을 잃어버립니다. 인본주의를 쓴 대가로 흑암을 만났고, 원수가 일어났고, 오던 길로 다시 못가고, 고생을 많이 하고 돌아가고, 베들레헴의 아이가 다 죽었습니다. 빛을 따라가다가 인본주의, 곁길로 들어가면 자기도 죽을 고생을 하고, 원수를 많이 일으키고, 예수님을 피난 가게 만들 수밖에 없고,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오던 길로도 못 가고, 죽도록 고생하면서 가는 등 손해가 막심합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단단한 식물을 먹이는 것입니다.

신, 구약 전부를 단단한 식물로 먹일 수 있고, 또 젖으로 먹일 수 있습니다. 노아 방주를 젖으로 해석하면 노아 방주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럼 다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알 것이 없으니 설교 시간에 잠만 잡니다. 그러나 단단한 식물로 해석하면 노아 방주는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노아 방주를 탄 것이지만 믿는 사람 가운데서도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산에 가서 나무를 캐어다가 방주 하나씩 지어나가는 것입니다.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말씀을 받아다가 신령한 인격을 하나씩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실력을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실력을 길러 나가면 홍수 같은 큰 환난이 올 때에 빠져 죽지 않습니다. 실력이 있으니까 홍수를 다 발로 밟고 그 위를 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단단한 식물입니다. 우리가 단단한 식물로 먹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젖이나 먹으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평생 믿어도 제 자리입니다.

본문 10절에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감할 수 없도록 완전하게 기록된 것을 가리킵니다. 즉,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본 두루마리 책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심판 받을 내용이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에
게는 복을 주시고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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