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9일 토요일

호세아 5:1-15 이스라엘의 범죄와 하나님의 심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이스라엘의 범죄와 하나님의 심판
호세아 5:1-15

1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서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서 친 그물이 됨이라 2패역자가 살륙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저희를 다 징책하노라 3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이 이미 더러웠느니라 4저희의 행위가 저희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5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그 죄악을 인하여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저희와 한 가지로 넘어지리라 6저희가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 7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8너희가 기브아에서 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호각을 불며 벧아웬에서 깨우쳐 소리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찌어다 9견책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무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 필연 있을 일을 보였노라 10유다 방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같이 부으리라 11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좇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당하는도다 12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13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저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14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나 곧 내가 움켜 갈찌라 내가 탈취하여 갈찌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15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저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여 이르기를

1.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책망하심

행음과 음란한 마음, 교만

본문 1절에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서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서 친 그물이 됨이라”고 하였습
니다.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속들과 왕족들은 다 이 말을 듣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라고 하였는데, 너희가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미스바에서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서 친 그물이 됨이라’고 하였는데, ‘미스바’는 사무엘이 부흥 운동을 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하나님을 잘 섬기던 그 자리에서 백성들이 타락이 되어 올무가 되고 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볼’도 범죄하는 지역입니다. 형식적인 미스바 생활과 의식주의 다볼 생활은 다 올무가 되고 친 그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고 의식주의로 나가는 것은 아무리 좋은 방
법이라고 해도 올무가 되고 덫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패역자가 살륙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저희를 다 징책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다 패역하고 남을 죽이는 죄에 깊이 빠졌습니다. 서로 미워하는 것이 살인죄라고 하였습니다. 패역하고 거스르는 죄에 깊이 빠졌기 때문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징책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 3절에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이 이미 더러웠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라고 하였는데, ‘에브라임’은 북쪽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킵니다. 에브라임을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이들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이 죄 지은 것도 아시고, 이스라엘이 죄 지은 것도 하나님 앞에 숨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죄를 알고 계십니까?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이 이미 더러웠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이
미 더러워졌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하나님 앞에 숨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 아시므로 숨길 수가 없습니다. 행음하고 더러워졌는데, 네가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저희의 행위가 저희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음란한 마음이 속에 있습니다. 행음하고, 또 음란한 마음이 속에 있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5절에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그 죄악을 인하여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저희와 한 가지로 넘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라고 하였는데, 교만한 것이 얼굴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얼굴에 거만하고 교만한 것이 나타납니다. 얼굴을 보면 어느 정도 나타납니다. 교만이 얼굴에 나타났고 증거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죄악을 인하여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저희와 한 가지로 넘어지리라’고 하였는데, 행음한 죄, 악한 행위를 한 죄, 교만이 얼굴에 나타난 죄 등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한 가지로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죄 가운데 빠지면 넘어집니다. 교만 죄, 음행한 죄, 음란한 마음, 더러워지는 일, 이것으로 인해서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저희와 한 가지로 넘어지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죄 지은 이스라엘을 떠나셨으므로, 하나님을 찾아도 만날 수 없음

본문 6절에 “저희가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가도 하나님께서 안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이미 하나님께서 저희를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1장 11절에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많은 제물과 수만 강수의 기름을 가지고 와도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너희의 오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와야지, 죄를 그냥 가지고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십니다. 만나지 못합니다. 이미 피해갑니다.

무슨 죄였습니까? 행음한 죄, 더러운 죄, 교만 죄, 음란한 마음, 거역하는 죄, 남을 미워하는 죄, 순종하지 않고 살륙하는 죄 등입니다. 이런 죄를 그냥 가지고 오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오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오면서 이런 죄를 회개하지 않고 나오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냥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미스바로 오는데,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기 때문에 못 만난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옛날 사무엘 때에 백성들이 미스바에 가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잘 받으셨어도, 이제 회개하지 않고 나오면 미스바에 와도 안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피하셨기 때문에 만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않으면 망하게 됨

본문 7절에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라고 하였는데, 신앙의 정조가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 양심을 써서 믿음을 지키고, 그 진리를 양보하면 안 됩니다. 신앙 양심을 양보하고 진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정조를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지키다가 죽어도 진리를 지켜야 하고, 신앙 양심을 양보하면 안 됩니다. ‘여호와
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낳은 자녀는 좋은 자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낳은 것이 아니라 정조를 지키지 않고 음행하여 낳은 자녀이니 사생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의 정조를 지키지 않고 신앙 양심을 안 쓰고 믿음을 양보하며 얻은 것은 세상과 짝해서 얻은 것으로, 사생자입니다. 믿음을 잘 지켜서 얻은 것은 좋은 것이고, 믿음을 양보하고 믿음을 안 지키고 세상과 짝해서 얻은 것은 다 사생자입니다. 재물도 사생자입니다. 직장도 사생자입니다.
믿음을 지키지 아니하고 신앙을 양보하고 얻은 모든 것은 다 사생자라는 것입니다. 신앙 양심을 쓰고, 진리의 말씀을 양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순종하면서 얻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새 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으면 새 달(그 다음 달)에 가서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새 달에 망한다는 것은 달이 바뀔 때 망한다는 뜻입니다. 환경이 바뀔 때, 흑암과 광명이 올 때, 시험이 올 때 등, 지금은 잘될 것 같지만 다음 단계에 가서 그 기업과 함께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지키지 아니하고 잘된 것 같아도 다음 단계에 가서는 그 기업과 함께 삼키어져서 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합니다. 신앙을 양보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양심을 써야 합니다. 한 번만 절하면 다 준다고 해도, 한 번 절하는 것이 신앙의 정조를 빼앗기는 것이므로 절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귀가 한 번만 절하면 천하만국을 다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번 절하면 신앙의 정조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달에 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절하지 않아야 합니다. 양보하지 않아야 합니다.

2. 이스라엘을 징벌할 것을 예고하심

경계를 지키라

본문 8절에 “너희가 기브아에서 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호각을 불며 벧아웬에서 깨우쳐 소리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기브아에서 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호각을 불며’라고 하였는데, ‘기브아’와 ‘라마’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국경 지대에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팔을 분다는 것은 전쟁준비를 가리키므로, 국경 지대에서 전쟁의 나팔을 불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벧아웬에서 깨우쳐’라고 하였는데, ‘벧아웬’은 벧엘의 별명입니다. 백성들이 벧엘에서 금송아지를 섬겼는데, 거기서 그것을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견책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무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 필연 있을 일을 보였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견책하시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무해집니다. 한 번 하나님께서 손을 드시면 황무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의 정조를 안 지키고 잘해놓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한 번 견책하시는 날에는 다 황무지가 되고 맙니다.

본문 10절에 “유다 방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같이 부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지계표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 나왔습니다. 신명기 19장 14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경계들이 다 있지 않습니까?
밭이나 논도 다 경계가 있고, 산도 경계가 있고, 집터도 경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경계를 따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의 것을 따서 자기 것에다 조금씩, 조금씩 붙이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많이 하면 알아채겠으니 조금씩 합니다. 그 옆에 땅을 한 삽 파가지고 자기 땅에 붙입니다. 쭉 도랑을 옮기는 것입니다. 경계에 도랑이 있다고 하면 조금씩 따서 이쪽에다 붙이는 것입니다. 일 년에 한 삽씩만 떠붙여도 한 십 년쯤 붙이면 1m 정도 더 나가게 됩니다. 이렇듯 경계표를 따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지계표를 옮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네 기업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찌니라’고 하셨습니다. 경계선을 이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경계를 침범하지 말라는 뜻이 있습니다. 땅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는 많은 경계가 있습니다. 그 경계선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인이 그어놓은 경계선을 그대로 지켜 나가고 그것을 이동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 면에 있어서도 진리에 대한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 경계선을 이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경계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옳은 것을 세워나가는 경계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키지 않고 어물어물하다가 한 삽이라도 저쪽에 가서 붙이면 안 됩니다. 확실하게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이쪽이면 이쪽, 저쪽이면 저쪽으로 경계를 확실하게 하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남의 경계를 침범하면 안 됩니다.

또 여기에는 하나님의 경계를 옮기지 말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계가 있는데, 요한계시록 16장에 보면 유브라데 강이 경계입니다. 유브라데 강이 말세에 가서는 다 마릅니다. 그래서 경계가 다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브라데 강은 하나님의 나라와 이방 나라와의 경계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세상과 교회의 경계입니다. 세상과 교회의 경계를 잘 지켜야 합니다. 이 경계를 지키지 못해서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고 세상이 교회로 들어오는데, 이것은 경계를 못 지킨 결과입니다. 세상이 교회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또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도 안 됩니다. 세상과 교회의 경계를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또
진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면 교단을 옮기면 안 됩니다. 교단이 하나님의 주신 진리의 경계인데, 진리의 경계를 잘 지켜야만 합니다. 경계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사람에게도 인륜의 경계가 있고, 도덕의 경계가 있습니다. 또 자기 집과 다른 사람의 집 사이에도 경계가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경계가 있습니다. 경계를 넘어서 남의 경계를 침범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경계 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남의 경계를 넘어서 남의 것을 좀 갖다가 붙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경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계를 넘어서 다른 가정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계를 넘으면 죄입니다. “유다 방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같이 부으리라”고 하였는데, 지계표를 옮기면 하나님께서 징계를 물같이 쏟아 부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말을 따라가면 학대와 재판의 압제를 당하며 다 썩어지고 맘

본문 11절에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좇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당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이 사람의 명령 쫓아가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명령 쫓아가기를 좋아하여야 하는데, 사람의 명령 쫓아가기를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서 사람이 말하면 귀를 솔깃해하고 그 말을 듣고 따라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지, 사람의 말을 따라가면 어떻게 합니
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라고 하셨는데, 사람은 저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말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지, 왜 사람의 말을 따라갑니까? 하나님의 말씀 따라가는 것을 중지하고 사람의 말을 따라가다가는 반드시 학대를 받고, 또 재판할 때에 압제(억울함)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십니다. 하여간 누가 어떻게 말해도 하나님의 명령만 따라가야지, 사람의 말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믿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가 그것을 못하게 한다. 남편이 못하게 한다. 아이가 못하게 한다. 친구가 좋은 길이 있다고 한다’고 하며 사람의 명령을 따라가다가는 반드시 학대를 받고 재판할 때에 압제를 당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라고 하였는데, 좀 먹는 것처럼 에브라임을 먹어치운다는 것입니다. 또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라고 하였는데, 좀이나 썩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사람의 말을 따라가면 좀이 먹는 것과 같게 됩니다. 그리고 썩어지는 것처럼 다 썩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회개하고 병 낫기를 구해야 함

본문 13절에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저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이 자기 병을 깨달았습니다. 또 유다는 자기 상처를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병이 났다. 내가 상처를 당했다. 마음이 상했다’하고 자기의 병을 깨닫고 상처를 깨달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서 회개하고 고침을 받아야 하는데,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고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낫게 하겠습니까? ‘야렙 왕’은 큰 왕이라는 뜻이 있고, 또 변호자인 왕이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하여간 거기에 찾아가서 병을 고치려고, 또 상처를 고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병이 난 것을 깨달았으면 하나님께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하는데, 이 사람을 찾아가고 저 사람을 찾아가고 앗수르를 찾아가고 야렙 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상처를 고침 받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병이 났을 때 의사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를 찾아가도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것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의사를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생각은 하지 않고 의사만 찾아다니면 안 됩니다. 아사 왕이 병이 났는데,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사에게만 병 낫기를 구하다가 죽었습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의사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본문 14절에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나 곧 내가 움켜 갈찌라 내가 탈취하여 갈찌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에게는 사자와 같이, 유다에게는 젊은 사자와 같이 강하시기 때문에 탈취하여 가실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심판이 이렇게 강하다는 것입니다. 사자는 백수(百獸)의 왕인데, 어느 짐승이 사자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한 번 손을 대시면 사자와 같아서 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징계하실 때에는 사자가 움킨 것과도 같아서 사람이 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길 자가 절대 없습니다.

3.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 회개함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라

본문 15절에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저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여 이르기를”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곳으로 돌아가셔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이 죄로 인해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징계를 받
다가 마침내는 하나님께 와서 구할 것인데,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곳으로 가서 기다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곳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께서 계신 곳은 은밀한 곳입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중에 계시고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중에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계신 곳은 은밀한 곳입니다. 은밀한 곳에 가야 찾지, 복잡다단한 곳에 가면 하나님을 못 찾습니다. 자기 마음이 은밀하여야 하고, 심령이 은밀하여야 하고, 은밀한 골방을 찾아야 하며,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야 합니다. 은밀한 중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때에 받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은밀한 중에 하여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기 곳으로 돌아가셔서 기다리십니다.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찾기를 기다리시는데, 그 기간이 오래면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저희가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미스바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하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해도 만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소를 찾아가야 합니다. 은밀한 곳이 하나님의 주소입니다. 거기를 찾아가서 하나님을 만나면 빨리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징계를 다 받고 고난을 다 받아 쫄딱 망한 다음에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면 시일이 오래 걸립니다.

다 망하기 전에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십니다. 기다리신다는 것은 자기가 많은 고난을 받고 하나님을 간절히 구할 그때에 만나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고난을 받기 전에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많은 고난을 받고 다 망한 다음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망하기 전에 만나려면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야 합니다. 은밀한 곳, 골방, 은밀한 신앙 생활, 회개하면서 은밀한 골방을 찾아서 은밀한 신앙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고난을 받고 쫄딱 망한 다음에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려면 은밀한 곳을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찾아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순종하고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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