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는 열매를 맺자
누가복음 13:1-9
누가복음 13:1-9
1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2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3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6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1. 삼년간 열매 맺히지 못한 나무를 참아주심
지난 해에 열매를 잘 못 맺었는데 금년에야말로 열매를 잘 맺는 해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은 열매입니다. 무화과나무 열매를 예수님께서 구하시려다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그 나무를 저주하시니까, 그 무화과나무가 다음날 뿌리에서부터 다 말랐다고 하였습니다.
이 본문에서는 주인이 삼년이나 과원에 와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했다고 그랬습니다. 결국 찍어버리라 하며, “어찌 땅만 버리느냐”라고 했습니다. 삼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매를 구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버린다는 것입니다.
‘3’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만수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수는 하나님의 만수인데, 삼년 기다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을 만수만큼 기다리셨다는 것입니다. ‘이번엔 열매 맺지 못했지만 이 다음에 열매 맺을까’하고 또다시 참아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또 못 맺었습니다. 몇 개의 열매를 맺었겠는가 하고 그 다음에도 참아주셨는데, 또 와보니까 열매를 못 맺었습니다. 그래도 다음에 열매를 맺겠는가 하고 다시 한 번 용서해주셨지만 그 다음에 와 봐도 여전히 열매를 못 맺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상태가 아닌가 한번 반성해 봐야 됩니다. 열매를 얼마나 맺었나 생각해볼 때, 열매 맺은 것이 별로 없고, 또 열매를 맺었다고 해도 시원치 않습니다. 열매가 많이 맺혔어야 되겠는데 제대로 맺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열매 못 맺고, 또 맺어도 시원치 않은 것을 뭣에 쓰겠습니까.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제대로 맺으면, 백 개 이상 맺습니다. 한 백 개 이상 맺어야 제대로 맺는 겁니다. 사과나무는 과실을 몇 개나 맺습니까? 사과나무는 좋은 나무 같으면 몇 백 개 아마 맺을 것입니다. 근데 지나간 해 우리가 열매 몇 개 맺었을까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도 못 맺은 사람, 열매 맺어도 그저 몇 개, 두어 개, 서너 개, 그것도 또 찌그렁이, 충실하지도 못하고 이런 열매를 맺는 데 그치지 않았는가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게 열매 맺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도 언제까지 참아주시겠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내내 참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도가 있습니다. 참는 데에도 한도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아주시는 데에도 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서는 한도가 얼마입니까? 삼년입니다. 하나님의 ‘내정수(內定數)’입니다. 내정수의 연한까지는 참아주십니다. 그러다가 그래도 열매 맺지 못하면, 그러면 찍어버리십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이 옴
찍어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온다고 하십니다. 본문 1절부터 보면, ‘어떤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에게 숙청을 받아서 그 피를 그 제물에 섞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열 여덟 명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당한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 망할 처지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죄 값으로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망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처지에 있다는 것을 여기서 알게 해주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습니다. ‘만일 너희가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시는 말씀 가운데 우리가 포함된 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의 심판이 임박한 줄 알고 정신 차려야 됩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갑자기 옵니다. 그 심판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본문 8-9절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과원지기가 이제 그 주인에게 청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라고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한 해만 더 참아 달라’고 그랬습니다. “금년에도 참아주소서. 금년에도 참아주소서” 하고 한해만 더 참아달라고 연기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연기해주신 일 년, 참아주시는 일 년, 열매를 꼭 맺어야 될 일 년 입니다. 이 일 년은 연기 받은 일 년이고, 하나님께서 열매 맺기를 참아주시는 일 년이고,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꼭 맺어야 될 일 년입니다. 금년에 열매 안 맺으면 어떻게 해도 된다고 했습니까? “찍어 버리소서” 했습니다. 금년에 만일 열매 안 맺히면 찍어버려도 된다고 말합니다. 한 해만 더 연기해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연기해 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금년만 더 연기해 주겠는지, 금년에 연기를 안 해줄지 모릅니다. 전쟁이 날지도 모릅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입니다. 지금 전쟁이 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전쟁이 날 위험도 있고, 우리 한국도 전쟁이 날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 이북에서 핵을 다 철수하라고 하는데, 이북에선 핵 만들어서 감추어 놓고 남한의 미군을 철수시키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미국에선 신무기 다 쌓아 놨는데, 이북이 감춰놨던 핵을 가지고
내밀면 전쟁이 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소련에서 전쟁이 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가 다 전쟁바다가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소련의 물가가 올랐습니다. 어저께 소련에 있는 김종기 목사에게 전화를 넣으려고 했는데, 노대영 목사가 하는 말이, 자기가 소련에 간지 3주간도 못 됐는데 지금은 물가가 네 배나 뛰었답니다. 그럼, 만 원하던 것이 4만 원짜리가 된 것입니다. 알마타 그쪽이 네 배가 뛰었다고 하는데, 모스크바는 뭐 열배가 뛴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월급 받아가지고 어떻게 살겠는지 문제입니다. 물가가 뛰기 전에 받은 월급이 네 배 뛰고, 열배 뛰었으니, 그렇게 되면 생활 곤란에 빠지게 되고, 먹을 것이 없으면 문제가 생길 우려가 많습니다. 세계가 전쟁 바다에 들어갈는지, 또 한국이 남북 회담한다고 왔다 갔다 하다가도 전쟁이 나지 않겠는지, 하여간 전쟁의 위험성이 많습니다.
3. 금년만 참아주소서
그러면 금년만 참아주소서 하는 것은 열매 맺는 기회를 좀 달라는 것인데, 얼마를 주실지 모릅니다. 금년에는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저 하루가 가고, 이틀 가고, 뭐 이렇게 지나가지 말고 금년에는 반성을 좀 하고, 금년에는 어떻게 하든지 조금이라도 열매 맺는 저희가 돼야 되겠습니다. 안 맺으면 이대로 내내 둬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금년에 열매가 없으면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금년만 참아주면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라고 8절 본문에서 말했습니다. 두루 파고 거름을 줘서 열매 맺게 한다는 것입니다. 두루 판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또, 거름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루 파는 것’은 땅땅한 땅, 굳은 땅을 파고 그 속에다가 거름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판다는 것은 완고한 마음,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 고집, 이런 것들을 다 깨뜨려 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파는 것입니다. 또한 회개하는 것, 교만하고 완악한 이 자만심들을 다 깨뜨려버리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땅을 파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한 심령을 가지는 것이 필요한데,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그랬습니다. 시편 51:17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상한 심령은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해야 됩니다. 무얼 회개해야 되겠는가 하면, 모든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자기의 죄가 잘 생각이 안 나면 자신의 완악한 마음, 그런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나’라는 자가 일평생 원수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막는 것은 ‘죄’이고 또한 ‘자기 자신’입니다, ‘나’라는 것, “내가 했다”, “내가 안 한다”, “내 것이다”라고 하는 이기주의들, ‘나’라는 것이 전부 하나님과 나 사이를 막습니다. 이걸 깨쳐 내버리고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 잘못을 봐야 됩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고, 그 들보를 먼저 빼 내야만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도 빠지게 할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무엇입니까?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입니다. 속에 있는 부패성, 다른 사람이 도둑질 할 때 ‘도둑질 했다’, ‘나쁘다’고 하기 전에, 자기 속에 있는 도둑놈부터 먼저 잡으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간음했다’ 하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이전에 먼저 자기 속에 있는 음란한 마음부터 잡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사람들이 음행한 여자를 현장에서 잡아서 예수님에게로 왔습니다. 예수님에게 바리새교인들이 말하기를, “모세의 계명에는 이러한 여자는 때려 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하고 물어봤습니다. 예수님께서 “때려 죽여라”고 대답하면, ‘이건 뭐 모세보단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할 것이고, “죽이지 말라”고 하면 ‘이건 모세의 반역자다’라고 몰아세우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정죄할 목적으로 사람들은 현장에서 여자 하나를 잡아가지고 왔습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악합니까? 죄 지은 사람을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한 도구로 삼으려고 잡아가지고 끌고 왔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셨습니다. 글씨를 두 번 쓰셨는데, 요한복음 8:6-8에,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라고 했습니다.
그 음행한 여자를 데리고 온 바리새교인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예수님께서 땅에다 글씨를 쓰셨습니다. 지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하고 물어본 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아니하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셨습니다.
무슨 글씨를 쓰셨을까? 아마 레위기 19:18의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을 쓰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실 때에 바리새인들이 또다시 묻기를 마지아니하니까, 예수님은 이에 일어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 말씀하시고 또 다시 몸을 굽히셔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셨습니다.
두 번째는 무슨 글씨를 쓰셨을까? 두 번째는 아마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은 자는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는 글씨를 쓰셨을 것같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나니까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땅에 글씨 쓰신 것을 보고, 자기들도 음란한 마음 품었던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다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하나씩 하나씩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여자만 남았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물으시니까, 그 여자가 대답하기를 “주여 없나이다”하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까지 말씀하시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신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죄를 범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4. 땅을 파고 거름을 주는 회개
그렇게 열매 맺으려면 회개해야 됩니다. 자기 죄를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욕심이 다 있고, 속에 부패성이 가득하고, 들보와 같은 것들이 누구나 다 있는데, 그걸 날마다 회개하면서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아와서 하나님께 회개해야 됩니다. 그것이 ‘땅을 파는 것’입니다.
거름은 주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거름을 준다’고 그랬는데, 거름을 준다는 것은 회개하는 그 자체입니다. 회개가 거름이 됩니다. 자기 영혼에게 거름이 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을 가지고 늘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번만 회개해도 다 용서해주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회개를 자주 자주 해야 합니다. 한 번 범죄 한 것 때문에 다윗은 침상이 뜨고 요가 젖도록 회개했다고 그랬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죄로 인해서 일평생을 닭이 울 때마다 일어나서 회개했다고 합니다.
주님은 한 번만 회개해도 용서해 주시는데, 그거 뭘 자꾸 회개를 하고 또 하고, 회개를 일평생동안 해야겠는가 생각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이전에 지은 죄를 회개하면 자기 영혼에게 그 회개가 거름이 됩니다. 회개하고 또 회개하면 그것이 다시 거름이 됩니다. 나중에 다시 회개하면 그것이 거름이 또 됩니다. 사도바울도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였으나’라고 하면서 늘 회개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을 ‘죄인 가운데 괴수라’고 그랬습니다. 바울이 늘 회개하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영혼에 거름을 삼았습니다. 회개하면 다 용서해 주시지만 또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자기를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자기 영혼에 거름이 됩니다.
죄를 안 지은 사람은 물론 회개할 것이 없겠지만, 그러나 사람은 다 회개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사람은, 전에 큰 죄를 지은 것으로 인해 그걸 늘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영혼에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죄를 안 지었던 사람보다 죄를 지었던 사람이 의외로 자기 부인하는 것을 더 많이 하게 되고, 더 겸손해지고, 더 하나님만 우러러보고 십자가만 바라보게 됩니다. 결국 그것이 거름이 되어서 자기의 영혼이 자라날 수 있게 됩니다.
또 무엇이 거름인가? ‘거름을 준다’고 말씀했는데, ‘은혜와 진리’를 주는 것입니다. 언제나 은혜 받으려고 힘을 써야 되고, 언제나 진리를 배우고 진리에 서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예레미야 17:7-8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뿌리를 강변에 뻗쳤다는 것은 ‘생명 강’에다가 뿌리를 뻗친 것을 말합니다. ‘생명 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으로 영감의 역사가 일어나는 생명의 역사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다
가 우리 영혼의 뿌리를 박은 것을 말합니다. 말씀에다가 자신의 영의 뿌리를 박고 거기에서부터 그 수분을 빨아올리고, 더위가 와도 걱정이 없고 가물어도 걱정이 없이 잎이 청청하여,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은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의 뿌리, 영혼의 뿌리를 그 강변에 박아야 되겠습니다. ‘강변에 뻗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다가 마음을 둔다는 것입니다. 말씀에다가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언제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는 이것이 뿌리를 강변에 뻗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또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언제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은혜를 받아서 은혜 속에서 강건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거름을 주는 것입니다. 진리를 날마다 배워야 됩니다. 늘 진리를 배워야 되고, 성경 배우는 것에 힘을 써야 됩니다. 그것이 자기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늘 기도하기를 힘을 써야 됩니다. 기도를 안 하면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성도는 늘 계속해서 기도하기를 힘써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게으르지 말라”고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또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새벽 미명에 예수님께서는 나가셔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곤 했습니다.
금년에는 우리 자신이 거름을 많이 줘야 열매를 맺겠는데, 거름을 주는 방법으로 은혜 받는 것과, 회개하면서 은혜 받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서 기도를 많이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기도 못하던 사람은 금년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뿌리에 거름이 있어야 나무에 양분이 많이 올라가서 열매를 많이 맺히게 됩니다. 뿌리에 거름이 없는데 어떻게 되겠습니까? 뿌리가 견고해야 됩니다. 기도 많이 하고, 회개하고, 언제나 은혜가운데서 강건하고, 그 다음은 진리의 말씀을 배워서 말씀에 마음을 두고, 그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열매를 계속 맺는 것과 같이 열매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새벽기도 다 하십시오. 금년은 새벽기도 하는 해로 하고 새벽기도 다 나와야 합니다. 새벽기도 안하는 사람은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거름을 안 주는데 무슨 열매가 맺히겠습니까? 새벽기도를 금년에는 매일 하도록 힘을 쓰십시오. 안하던 사람은 이제부터 새벽기도 하고, 또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기를 힘을 쓰십시오. 밤에 예배당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 또 철야예배 하는 사람은 철야기도를 하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을 계속 힘을 써야 됩니다. 그래야 거름을 주는 것이 되고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5. 노력하는 나무가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 스스로가 계속 노력을 해야 됩니다. 자신의 뿌리에서 양분을 다 흡수해서 나무줄기, 위에 있는 잎사귀로 올려 보내야 됩니다. 잎사귀에서 태양광선을, 공기에서 받은 양분을 또한 나무줄기를 통해서 뿌리로 내려 보내야 됩니다. 뿌리에서 흡수한 양분을 위로 올려 보내고, 또 잎사귀에서 흡수한 양분은 내려 보내고, 그렇게 올려 보내고 내려 보내고 하면서 이걸 계속 해야 됩니다. 계속해야만 나무도 굵어지고 가지도 자라나고 열매도 맺힙니다. 그 나무 스스로가 계속 올려 보내고 내려 보내는 노력을 해야 됩니다. 계속 아래서 흡수한 양분을 올리고 위에 잎사귀에서 받은 양분은 내리고,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계속 해야 됩니다. 나무껍질하고 나무하고 새롭게 노력을 계속 하는 것입니다.
고무나무도 고무가 되는 진이 그렇게 계속 진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데, 거기서 중간을 좀 째 놓으면 그 진액이 나와서 고무가 된다고 합니다. 진액이 계속 올라가니까 짼 곳에서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계속해서 위에 잎사귀에서 받은 양분을 내려 보내니까, 계속 고무가 나오는 것입니다.
고무나무에서 고무 나오는 그 원리를 들어보니까, 저는 보진 못했지만, 나무가 쭉쭉 솟으면 나무 밑에 껍질을 좀 째놓는답니다. 껍질을 째놓으면 그 째놓은 데에서 고무가 술술 흘러나오고 거기다 그릇을 대면 거기에 모인답니다. 마치 소나무 째놓으면 속에서 송진 나오도록 하는 것처럼, 계속 흘러나오는 것을 받아가지고 쓴답니다. 동남아나 이런 데를 가면 그런 고무나무가 굉장히 많은 모양입니다. 보루네오, 인도네시아 부분 거기서 많이 나는 것이 같은데, 보루네오 같은 데는 상당히 많은 모양입니다.
그렇게 계속 나무의 뿌리에서 양분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계속 또 잎사귀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무 째놓으면 올라가는 진액과 내려오는 진액 나오는 것을 모으니 많은 것을 보면, 나무가 얼마나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열매를 맺으려면 쉬지 않고 노력해야 될 것 같습니다.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나무도 계속 노력합니다. 밤에도 노력하고 낮에도 노력하고, 아침저녁 할 것 없이 계속 노력합니다. 뿌리에서 양분을 흡수해서 올려 보내고 또 잎사귀에서 흡수하면 내려 보내고, 그렇게 계속 노력해야만 나무도 열매를 맺히게 되는데, 우리가 게으르고 나태하면 못씁니다.
‘게으른 것은 악한 종이라’고 그랬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주인이 그랬는데, 게으른 것은 악한 것입니다. 계속 노력을 하고 힘을 써서 이렇게 열매 맺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먼저는 굳은 땅을 파야 되고, 그 다음에는 거름을 줘야 됩니다. 그래야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계속 노력을 해야 됩니다.
땅을 판다는 것은 완고한 마음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교만, 완고, 고집, 이기주의, 자기생각, 제 때 이걸 회개하는 것이 땅을 파는 것입니다. 깨뜨려 내버리라는 것입니다. 제 고집대로 나가 살려고 하지 말고 상한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거름을 준다는 것은, 진리를 가지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거하려고 항상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생명을 삼는 노력이 거름을 주는 것입니다.
6. 맺어야 할 열매들
열매를 맺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제일 첫째 열매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갈라디아 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희락, 화평한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오래 참음’, 오래 참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양선, 충성, 온유한 사람, 모든 것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온유와 절제’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우리가 늘 맺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영혼이 자라나는 열매’가 맺혀져야 됩니다. 영혼이 자라나야 됩니다. 우리가 자라나는 자체가 열매이고, 자라나야 열매가 맺힙니다. 자라나려면 마음이 넓어져야 됩니다. 인격이 커져야 됩니다. 영혼이 자라나는 사람은 마음이 넓어집니다. 그리고 인격이 커집니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할 수 있습니다. 자라나는 건 그런 것입니다. ‘마음이 좁은 사람’은 자라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넓혀야 되고, 인격이 커져야 됩니다. 세세한 인격, 대인이 되고, 큰 인격자가 되어야 그것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자라나면 무슨 열매가 맺히는가? 능력의 열매가 맺힙니다. 자라나면 능력이 점점 강해집니다. ‘영권’이 강해집니다. 그 영권으로 모든 것을 다 이기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명을 위해서 노력을 할 때에 성도는 자기 구원을 위해서 노력해야 됩니다. 자기의 구원성취, 자신이 자라나는 것을 위해서, 자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해야 됩니다. 자라나는 것만큼 마음이 넓어지고, 영권은 강해지고, 인격은 커지고, 그리곤 도덕적인 열매가 맺힙니다. 자라나면, 도덕적인 열매가 맺힙니다. 말하자면 사랑이 많아지고, 또한 선한 마음이 넓어지고, 참는 것이 강해지고, 진실해집니다. 그런 것이 도덕적인 열매입니다. 열매 맺을 때 사랑의 열매가 많이 맺힙니다.
자라나기 전보다 자라난 다음에는 사랑이 많아지고, 선한 열매가 많아지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많아지고, 모든 것을 선으로 해결하려하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려고 합니다. 자라나면 선한 양심을 쓰는 도덕적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지혜가 늘어납니다. 지혜 중에 ‘영적 지혜’가 늘어서 진리에 대한 분별력이 생깁니다. 영의 역사에 대한 분별, 마귀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에 대한 분별을 잘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라난 사람은 미혹을 잘 받지 않습니다. 분별력이 있으니까 “이건 마귀 역사다, 이건 비 진리다” 그렇게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라지 못한 사람은 이게 마귀 역사인지 진리인지 분별 못하고 따라가게 됩니다. 영적지혜가 자라난 사람은 환합니다. 무엇이 아닌지, 무엇이 하나님의 것인지, 무엇이 마귀의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건 육의 운동이다. 이건 영의 운동이다”, 분명히 다 알 수 있습니다.
자라나면 지혜가 늡니다. 자라나면 사랑이 늘고, 선이 늘고, 인격이 선해집니다. 사랑의 사람으로 점점 만들어지고 마음은 넓어지고 인격은 커집니다. 자신이 자라나서 장성한 열매를 맺히도록 힘을 써야 됩니다.
그리고, 전도의 열매가 맺힙니다.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열매, 이것이 맺힙니다. 바울은 자기 사명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는 줄 알면서도 마주 올라갔습니다. 사명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갔습니다. 우리도 이런 전도의 열매가 많이 맺혀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작년에 몇 사람 전도했는지 살펴보십시오. 전도의 열매 몇이나 맺혔습니까? 전도 열매가 제대로 맺히려면, 아까 무화과나무에 열매 몇 개 맺혀야 된다고 그랬습니까? 한 백 개 맺혀야 된다고 했는데, 작년에 전도 열매 백 개 맺혔습니까? 맺혔습니까? 백 개 못 맺은 모양입니다. 그러면 열 개는 있는가, 오십 개, 어떤 사람은 한두 개 맺힌 사람도 있고, 하나도 못 맺힌 사람도 있습니다. 쭈그렁이 한 두어 개, 반 쭈구렁이 열매, 전도를 하긴 했는데 한 절반만 나옵니다. 한 달에
두어 번 씩 나옵니다. 삼분지 일인 쭈그러진 열매, 또 한 달에 한번 나오는 열매, 몇 달에 한 번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도의 열매를 금년에는 맺혀야 되겠습니다. 이 열매 못 맺힌 것이 회개해야 되는 것들입니다. 기도하기를 쉰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그렇게 자기 개인의 전도하는 열매를 맺혀야 되고, 그리고 우리가 다른 데에 교회 세우는 것을 해야 합니다. 지교회를 세워서 거기에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그런 열매를 맺혀야 됩니다. 선교사 보내는 것, 외국에 선교사를 보내서 거기에서 또한 많은 열매를 맺히도록 해야 됩니다. 세 가지의 전도 열매를 맺혀야 합니다. 자기 개인이 하는 것과, 또 우리 교회적으로 개척교회 세우는 것, 그리고 선교사 보내는 것, 그렇게 일꾼 양성하는 열매가 맺혀야 됩니다.
선교사 보내는 일이나 개척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를 보내려면 일꾼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일할 것은 많은데 일군이 없습니다. 누구를 보내야 되겠는지 보낼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를 보내야 되겠느냐 할 때에, 보내달라는 사람은 많은데 보낼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소련도 더 보내야 되겠는데 보낼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이북이 얼마 안 있으면 하나님께서 복음의 문을 열어줄지도 모르는데, 열어주시면 거기에 일시에 일할 사람을 보내야 되겠는데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신학교에서 일군을 많이 양성을 해야 하고, 또 신학교 갈만한 사람을 많이 보내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선교의 열매를 많이 맺혀야 되겠습니다. 또한 중동에 있는 선교사들을 많이 초청을 해다가 여기에서 가르쳐서 또다시 가서 중동 거기에다 교회를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전도 열매, 금년에는 특별히 전도 열매를 많이 맺혀야 될 해로 여겨야 합니다. 결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자라나야 되고, 그 다음은 전도의 열매 맺혀야 되고, 사명을 다해야 되고, 그 다음엔 성령의 열매가 맺혀야 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자신의 영혼이 자라나는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점점 나아져야 됩니다. 전보다 사람이 나아져야 되는데, 전보다 더욱 개꼬리가 되어있으면 안 됩니다. 개꼬리가 황모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라나서 좀 나아지고, 그렇게 해서 전도의 열매가 많이 맺혀지는 금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