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7일 목요일

마태복음 15:29-39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심
마태복음 15:29-39

29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31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32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제자들이 가로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의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36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에 가시니라

1.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

본문 29-31절에,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까 큰 무리가 환자들을 많이 데리고 왔습니다.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예수님은 고쳐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육신의 병만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심령의 병, 영적 병을 고쳐주십니다.

절뚝발이와 불구자의 신앙

절뚝발이는 잘 걷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다리가 길고, 한 다리가 짧아서 잘 걷지 못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한번은 제대로 일이 되었다가 한번은 쏙 들어갔다가 합니다. 한번은 믿는 일 제대로 했다가 한번은 또 쏙 들어가서 못했다가 그럽니다. 모든 것을 늘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잘 행하다가 쏙 들어갔다가 또 나오고, 어떤 때는 하고 어떤 때는 안하고, 이러는 것이 절뚝발이 신앙입니다. 새벽기도도 어떤 때는 하고 어떤 때는 못하고, 십일조도 어떤 때는 하고 어떤 때는 못하고, 그것이 절뚝발이입니다. 산기도도 어떤 때는 하고 어떤 때는 못하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나중까지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할 때에는 하다가 안 할 때는 안 하는 그것이 절
뚝발이 신앙입니다. 성경 보는 어떤 날에는 제대로 보다가 어떤 날에는 안 보고,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는 충성하다가 그 다음엔 쏙 들어가서 안 할 땐 안하고, 연보할 때 어떤 때는 정성을 다해서 하다가 어떤 때는 안 하다가, 모든 것을 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절뚝발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절뚝발이 신앙, 이것을 고쳐야합니다. 또 어떤 때는 힘을 얻어서 잘하다가 어떤 때는 힘이 팍 풀어져서 쏙 들어가 못하고, 계속 달음박질하다가 어떤 때는 쏙 들어가서 안 하고 그것이 절뚝발이 신앙입니다. 시종여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절뚝발이 신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 입니다. 계속입니다. 했다 안 했다 하는 것이 절뚝발이 입니다. 그런 것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불구자도 정상으로 모든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심령의 불구자들을 말합니다. 육신의 불구자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소경, 영적 소경을 말하고, 벙어리, 말 못하는 사람입니다. 최권능 목사가 전도할 때에, 사람 만나면 ‘예수천당!’ 이랬다고 하는데, 길에서 젊은 사람을 만나서 그 앞에서 ‘예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젊은이 말이 자기는 신학생이랍니다. 그래서, ‘벙어리 신학생이다’라고 했답니다. 벙어리가 되어서 전도하지 못하고 다니는 것이 벙어리 신학생입니다. 모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불구자 입니다. 제대로 해야 되겠는데, 이것을 고치는 것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번 사경회도 제대로 참여해야 되겠습니다. 첫날 월요일 저녁에 안 오는 사람들이 많고 교역자들도 교인 하나도 안 데려오는 교역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병신 아닙니까? “왜 안 데려오나?”라고 물으니까 화요일에 온다는 것입니다. 첫날부터 와야지 왜 화요일에 옵니까? 그리고 하나도 못 데려온 교역자도 있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또 목사하고 조사하고 교대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번엔 조사가 가라. 다음번엔 목사가 간다’하고 왜 교대합니까? 이것이 다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다 고쳐야합니다. 새벽기도 인도하라고 둬두었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인도할 사람이 그렇게도 없습니까? 직장에 나가는 사람들 여기 올 수 없다고 하면 새벽기도 인도하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할 사람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얼마나 교회 인도를 못했으면 새벽기도 하나 인도할 사람 길러내지 못했느냐는 말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으면 새벽기도 인도하라고 하겠는데, 그렇게 믿음 있는 사람이 없습니까? 이거 지금 전부 병신들입니다. 그것은 교회 인도 제대로 못한 것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어떤 기도원에 가보니까, 그 기도원 원장하고 부원장이 있는데, 그 기도원은 새벽기도도 안 하고 삼일예배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장한테 “왜 안 하느냐?” 물어보니까 두 명 밖에 안 나와서 인도 안 한다고 합니다. 그 원장, 부원장이란 이름도 자기네들끼리 붙인 이름 같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8장을 읽어주고 새벽기도 인도하라고 했습니다. 그저 둘이서라도 인도하라고 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라고 했는데 그 성경 갖다가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 보다는, 기도원에 있으면 두세 사람이 모여서 찬송을 하고, 성경을 읽고, 대표기도를 하고, 주기도를 하고 폐하라고 했습니다. “삼일 예배 왜 안 드리느냐?” 물으니까 그것도 두 사람 밖에 안 와서 안 한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라도 모여서 찬송하고 대표기도 하고, 성경 읽고, 좀 설명하고, 설명 못하겠으면 강해서라도 갔다가 읽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 안에 그것 할 사람이 없습니까? 설명 못하겠으면 성경만 읽어도 됩니다. 성경 읽고, 찬송 한 장 더 하고, 주기도하고 폐회하면 됩니다. 예배인도를 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모여서 찬송하고, 대표기도하고, 성경 읽고, 좀 설명하고, 설명할 만한 실력이 없으면, 강해서를 읽어주십시오. 그리고, 찬송 한 장 더 하고, 주기도하고 폐회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기도할 줄 모르면, 주기도하면 됩니다. 대표기도 못하겠습니까? 그거 별거 아닙니다. 자기 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잘하려고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자기 실력대로 하는 것이지 무얼 잘하려고 하느냐 말입니다.

일어서라

그 모든 병을 고쳐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려고 하십니다. 개인 심령에 대한 병, 절뚝발이, 소경, 불구자, 그것을 다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에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 앞에서 ‘일어서라’ 하시면, ‘예!’ 하고 일어서면 되는 것입니다. ‘낫고자 하느냐?’ 하실 때에 ‘일어서라’ 하시면 ‘예!’ 하고 일어서면 됩니다. ‘예!’ 하고 일어서십시오. ‘못 일어섭니다’ 하면 못 일어섭니다. 일어서려고 ‘예!’ 하고 일어서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일어서게 만드십니다. 고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이 없는 사람은 ‘힘을 써라!’ 할 때에 ‘예!’ 하고 힘을 쓰면 힘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그러고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 사천 명을 먹이심

긍휼을 베푸시는 예수님

본문 32절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고 하시는데, 이것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가르치실 때에 사람들이 사흘 동안 따라다녔는데, 먹지 못하고 따라다닌 모양입니다. 그럴 때에 누가 걱정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걱정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 배우는 데만 열중하고 따라 다니느라 굶어서 다녔는데, 먹을 것 걱정은 누가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비로우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저 하나님 말씀만 열심히 사모하고 열중하느라 먹을 것을 구하러 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말씀만 따라가고 말씀만 받아서 생명으로 삼느라, 사흘 동안 못 먹은 것을 예수님께서 다 아시고, “불쌍히 여기노라. 사흘이나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굶겨 보내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먹을 것 염려 걱정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첫째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말씀입니다. 먹을 것은 둘째입니다. 말씀만 사모하고 말씀으로 생명을 삼고 말씀만 따라가면 먹을 것은 예수님께서 다 염려해주시고, 먹을 것은 주님께서 다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그것을 가져오라

본문 33-34절에, “제자들이 가로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의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어디서 이런 무리의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제자들이 이만큼의 무리를 먹일 식량을 어디서 구하겠냐고 반문합니다. 얼마치 식량이 필요하다고 했습니까? 이백 데나리온입니다. 상당한 분량입니다. 여자와 아이를 제외하고 사천 명이니까, 다 하면, 만 명이 넘을 것이란 말입니다. 만 명을 먹이려면 얼마나 가져와야 될지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몇 개나 있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만 명을 먹이려면 요즘 돈으로 얼마가 필요합니까? 식권 하나에 2500원이면 만 명이면 이천오백만원 입니다. 그런 돈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이천오백만원이 있다고 해도 그 많은 떡을 어디서 사가지고 오겠습니까? 그 때는 트럭도 없고, 소달구지, 말 달구지 이렇게 실어와도 몇 십대는 실어와야겠는데, 어디 가서 가져오겠습니까? 그래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너희에게 몇 개가 있느냐?” 너희에게 몇 개가 있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없다, 없다’ 하지 말고 ‘없어서 못 한다’, ‘먹을 것이 없다’, 하지 말고 너희에게 몇 개가 있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살펴보니 얼마나 있었습니까?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보고했습니다. “그것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가져갔습니다.

사천 명을 먹이심

본문 36-38절에,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고 했습니다.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 그것을 가져가야 됩니다.
안 가져가면 안 됩니다. 가져가야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떡 일곱 개, 그것 얼마 안 되는 것이지만, 그것을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크게도 하시고 많게도 하시고 계속 역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시니까 그 사천 명이 다 배불리 먹고 일곱 광주리에 가득히 차도록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너희에게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살펴보니까 얼마 안 됩니다. 그것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조금 떼어먹지 말고 다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가져가니까 하나님께서 축사하시고 그것을 가지고 일하셨단 말입니다. 축사하시고 떼어서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 먹고 일곱 광주리에 찼다고 했습니다. 광주리는 바구니보다 큰 것입니다. 오병이어는 열두 바구니이고, 이번에는 광주리로 일곱 개가 찼다고 했습니다.

표적의 목적

이런 표적을 행하신 궁극적인 원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떡은 예수님의 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예수님의 살을 많은 사람에게 주어서 생명을 살리실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사흘을 굶어서 먹을 것이 없어 죽겠다고 불쌍히 여기신 것은, 원 목적은 예수님의 살을 주어서 많은 생명을 살리시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육신의 양식 떡을 먹이신 것은 덤이고, 원 목적은 예수님의 살을 먹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됩니다. 그래야 삽니다.
이것을 두 번씩이나 행하지 않으셨습니까? 14장에서는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이번에는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 먹이셨습니다. 얼마 지나서 또 이적을 행하십니다. 이렇게 자주 자주 행하신 것은, 예수님의 살을 먹어라, 먹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예수님의 살 밖에 없고 예수님의 피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육신의 양식 한번 먹어도 얼마 안 있으면 또 배고플 것인데, 육신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주셔서 영생하는 양식, 영원히 사는 양식을 주셔서 영원히 살리려고 하시는데, 그것을 할 때에 육신의 양식은 덤으로 필요할 때에 주셔서 살리시는 것입니다.

한 시간도 빠지지 말자

사흘을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배웠다고 했는데, 사흘 내내 가르치셨을까? 좀 쉬시면서 가르치셨겠습니까? 우리도 여기 사경회 며칠동안 합니까? 우리는 사경회 5일간 하는데, 예수님은 3일간 하셨습니다. 우리처럼 좀 쉬시면서 하셨는지, 3일 동안 내내 하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무엇 좀 사먹으러 가려해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시간 빠질까봐 사먹으러 갈 수 없습니다. 한 시간도 빠지면 안 됩니다.
가르치는 말씀이 생명입니다. 그것이 영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이 생명이요 영인데, 약인데, 이것을 먹어야만 모든 심령들이 살겠는데, 언제 무엇을 사먹으러 갈 시간이 없단 말입니다. 사흘 동안 계속해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계속해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먹을 것 염려 걱정은 예수님께서 하셨다는 말입니다.

흩어져 가서 일하라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데,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먹을 것을 준다고 해서 일하지 않고 그저 교회만 나와 있고, 전도하러만 다니고, 그렇게 하면 먹을 것을 준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흘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 39절에,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에 가시니라.”
사흘 끝난 다음에는 흩어 보내셨습니다. 가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일해 먹으라는 것입니다. 가르치실 때에는 한 말씀도 안 배우면 안 되니까 먹을 것 염려하지 않고 열중해서 배우기만 하고, 사흘 끝난 다음에는 일해 먹으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지 말고 전도만 하라고했다고 하면서, 일 안한다고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일 안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좀 도와달라고 하면서 거지가 되었습니다. 거지 되고 난 뒤에도 거짓말을 하면서 다닙니다. 성경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왜 일 안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가서 얻어먹습니까? 그런 사람은 도와주면 안 됩니다. 안 도와주어야 일합니다. 전도사로서 전문적으로 교회에서 일하는 것으로 월급을 주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월급을 주면서 일을 시킬 자격이 없으면 안 됩니다. 조그마한 아이 둘을 데리고 어떻게 전도사 일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믿음이 있어야 전도를 하고, 덕이 있어야 전도를 하는데, 교회에서 덕망이 없이하면 전문적으로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나가서 이따금 하면 몰라도 교회에서 월급 받으면서 전문적으로 하려면 자격이 있어야 됩니다. 덕망이 있어야 하는데 자격도 없는 것이 일하지 않고 전도하겠다고 돌아다니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런 것은 안 도와줍니다. 일 하면서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서 있든지 하나님이 갖다 놓으신 대로 전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도하려면 일 하면서 전도하십시오. 그런 식으로, 어떤 사람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어디서 전도부인 시켜주겠는가, 이 교회, 저 교회, 이 교단, 저 교단 알아보다가 한 군데에서 전도부인 시켜주겠다고 했나봅니다. 다른 교회 간다고 하기에, 어느 교회인지 물어보니까 장로교가 아닌 교회 입니다. 가지 말라고 하니까, 기도해보니까 하나님이 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발람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가고 싶어서 작정을 하고 기도하는 것에는 가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발람의 기도 아닙니까? 발람의 기도라고 했더니, 목사님이 자기한테 그러신다고 너무 섭섭하다고 울고 불평하고, 그러다가 갔습니다. 발람의 기도했으니까 갈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가봤자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해야 가는 것이지, 가라고 하시지도 않는데 가서 월급 받으려고 가는 것이 말이 됩니까? 세상 월급쟁이가 되지 왜 진리를 내어버리고, 진리대로 나가는 교회가 아닌데, 왜 그리로 가느냐는 말씀입니다. 

사흘 동안 말씀 받는 데에 열중했다가 흩어져서 가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일하다가 또 와서 말씀 배울 수 있습니다. 일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또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주는 줄 알고 오면 안 됩니다. 늘 주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때에 특별한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늘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라

귀중한 것은 ‘예수님의 살’, ‘예수님의 피’입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순교는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되 생명보다 사랑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 생명보다 진리를 사랑하는 신앙, 육신의 생명보다 영의 생명을 사랑하는 신앙, 생명보다 하나님의 일을 사랑하는 신앙 그것이 진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인의 신앙은 뭐라고 했습니까? 그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을 생명으로 믿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으셔도 따라가고 상관없다고 해도 따라갔습니다. 생명으로 믿으니까 개라고 해도 따라가고 부스러기라도 먹으려 한다고 따라가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십니까? 이방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셔서 가나안 여자의 딸도 나았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떡 일곱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 먹이셨다는 것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칠병이어’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먹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먹어야만 산다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육신의 양식은 덤으로 주셨다가, 원 양식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기 위한 부속물로 주신 것입니다. 육신의 양식 먹으면서 영의 양식 먹으라는 것입니다. 또 영의 양식 먹으면 육신의 양식은 예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사흘 후엔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가서 일해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이제 16장에도 내내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가장 중요한 것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 이고, 말씀을 생명으로 삼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내내 그것입니다. 신약성경 어디를 봐도, 내내 그것 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사경회에 와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병 다 고치고 가십시오. 심령의 병부터 고치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면 육신의 병도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절름발이, 불구자, 소경, 벙어리 다 낫게 해주셨는데, 다 고침을 받아서, 건전한 몸으로, 강건한 신앙으로, 강건한 영의 사람으로 믿음을 지켜나가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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