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8일 금요일

마태복음 16:13-27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실패다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실패다
마태복음 16:13-27

13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21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우리의 목숨은 육신의 목숨과 영원히 사는 영의 목숨이 있는데 영의 목숨을 얻는 자가 있고 또 잃어버리는 자가 있습니다.

1.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

본문 13-14절에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성인 가운데 하나다, 모든 종교 가운데 하나다, 선지자 가운데 하나다”하며 자기의 생각대로 취급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으로 알지마는“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본문 16절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란 구약의 성도들이 소망하면서 고대하던 메시야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그 때를 보지 못하고 죽었으나 기다리던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셔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며 그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은 것은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요, 도성인신하여 임마누엘로 오신 하나님으로 믿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것은 기름 부었다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 삼직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제사장으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려고 오셨고, 선지자로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이루어 주기 위해서 오셨으며, 왕으로 모든 마귀의 세력을 이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여 통치하며 영원토록 왕노릇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살아계셔서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서 일을 하시는데, 그 아들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주시고,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구속사업과 심판하시는 일을 아들을 통해서 다 하실 것을 베드로가 믿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진리를 제일 먼저 깨닫고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깨닫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본문 1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요나 시몬이란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본 이름은 시몬이며 그 아버지는 요나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속주요, 그리스도요, 우리를 인도하는 왕이요, 선지자로 믿은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택한 백성에게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믿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예수님이 처음으로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진리를 바로 깨달은 그것이 반석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깨달았으면 속사람이 그대로 만들어지므로 그것이 벌써 반석이 된 것입니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말이 아니고 베드로가 깨달은 진리 위에다 교회를 세운다는 말입니다. 깨달은 진리대로 교회가 이루어져 나아갑니다. 가령 열 가지 교리를 바로 깨달은 사람이 교회를 세우게 되면 열 가지 밖에 세워 나가지 못하고, 칠십 가지를 바로 깨달은 사람이 교회를 세우면 칠십 가지 진리만 세워 나갈 수 있습니다. 깨달은대로 교회를 세워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하였으므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웠다고 해석하며 베드로의 후계자는 법황들로 법황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십자가를 멀리 하라”고 할 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는데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웠다면 사탄의 위에 교회를 세운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깨달은 진리 위에 교회를 세웠다 하여야 맞습니다.
예수님과 구속의 도리를 바로 깨닫는 그 진리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깨달은 진리는 음부의 권세나 마귀의 세력이 이기지 못합니다. 한번 바르게 깨달은 것은 마귀가 아무리 흔들어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깨달은 진리가 있으면 그대로 행하게 되어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이 견고합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치리권을 준다는 것입니다. 땅에서 네가 진리에 어긋나는 것을 정죄하면 하나님도 정죄하시고 또 진리에 옳은 것을 시인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옳다고 시인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대로 심판하십니다.

십자가의 구속에 감격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

본문 21절에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구속을 믿게 하려고 이 말씀을 하셨는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 다음에는 십자가의 구속에 대해 감격에 넘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영원한 목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만 하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늘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감사하며 부활의 신앙과 구속의 신앙에 서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본문 22절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십자가가 오는 것을 반대하고 자기도 십자가 없이 예수님을 따라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23절에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 없이 예수님을 따라가겠다는 것은 마귀의 종이고 진리를 무너뜨리는 자입니다. 또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만 생각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1)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함 

본문 24절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영원한 목숨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가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예
수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자기 생각, 자기 뜻, 자기 유익을 다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주를 위해서 살고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생활입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간 신앙이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간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애굽의 모든 지위와 재산과 영광과 권세를 내어놓고 말씀만 따라간 생활이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있어서 “자기”라는 것이 언제나 우상입니다. 이 우상이 걸림돌이 되어서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위하는 정신을 다 버려야 예수님만 따라갈 수 있고, 영원한 자기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2)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함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를 감

동시키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므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고 또 예수님은 진리이시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떠난 영감을 따라가면 마귀에게 빠집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고 말씀을 따라가는 생활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십자가가 있어도, 고난이 있어도 그 말씀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반드시 십자가가 옵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고 십자가가 올 때에 당연한 것인 줄 알고 달게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따라가려면 마귀의 세력들이 방해를 하고 불신 가족이나 친척들이 핍박과 방해를 합니다.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모든 세상이 핍박과 방해를 하기 때문에 고난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생명이 위태해도 생명 내놓고 말씀과 성령의 감동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2. 영원한 생명을 잃는 길

세상 명예, 영광, 부귀권세, 물질을 따라가는 것

영원한 생명을 잃는 길은 자기 명예 영광, 세상 권세, 물질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천하를 다 얻었어도, 대통령이 되어 세상 권세를 다 가졌어도 예수님을 못 따라갔으면 자기를 잃어버린 자입니다. 그러나 천하에 있는 것을 다 잃어버렸을지라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따라가므로 믿음을 지켰다면 그것은 영원히 성공한 사람입니다.
잠시 잠간 지나가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천하를 다 얻었어도 죽어서 흑암과 마귀 권세가 가득한 물 한방울 없는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세상 것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하고 믿는 일을 하지 못했다면 불쌍한 사람입니다. 죽은 후에 관은 수정관을 만들고, 육신은 썩지 않게 방부제를 넣고 미라를 만든다고 하여도 영혼은 지옥에 가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명예, 영광, 부귀, 권세, 재물 ... 등을 따라가느라고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면 다 헛된 일입니다.

자기 만들 것을 빼앗기는 것

누가복음 9:25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어도 믿음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으로 다 실패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고 영의 생명은 육신의 생명보다 더 귀합니다. 왜냐하면 영이 사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이고 육신의 생명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다 얻었어도 자기 영적 생명을 잃어버리고 자기 만들 것을 빼앗긴다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를 만들 요소를 많이 주셨습니다. 그것은 목숨, 건강, 시간, 재산, 환경, 시험, 지혜와 지식, 세상 만물 등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모든 자본을 전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데 이용하면 자기가 잘 만들어집니다. 말씀을 지키다가 죽으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워져서 영원한 자기가 만들어집니다(고후 5:4).

시험을 이기지 못하는 것

예수님을 믿어도 시험에 넘어가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과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며 자기 만들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바로 깨달은 사람은 천하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하나님 말씀만 끝까지 따라갑니다. 말씀을 따라 갈 때 환난과 핍박이 오지만 그 사람은 자기를 잘 만들어서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시험을 당해도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생명 내놓고 말씀만 따라가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면 영원한 자기를 만드는 것이고,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영원한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이 우상에게 절하라고 할 때 우상에게 절하면 자기를 빼앗기는 것이고, 자기 만들 것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육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으므로 영원한 자기를 만들었으며, 영원한 생명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이루어졌습니다(단 3장).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

스데반이 생명 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한 것도 영원한 자기를 만들어 간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죽는 것이 두려워 스데반이 전도하지 못했다면 영원한 생명과 자기를 잃어 버리고 빼앗겼을 텐데 그 때에 믿음을 써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생명을 내놓고 복음을 전하였으므로 영원한 자기를 만들었습니다(행 7:54-60).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는 것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에 나귀 바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나귀를 바쳐서 자기를 만들었고 마가요한은 다락방을 바쳐서 자기를 만들었습니다(막 14:14-15). “바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때, 바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영원한 자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바치라는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데도 바치지 않고 절반만 바치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절반만 바치므로 하나님의 벌을 받았습니다(행 5:1-10).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시험이나 환경을 당해도 거기에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영원한 자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이 환난과 핍박과 결박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환난과 핍박과 결박이 무서워서 가지 않았다면 영원한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행 21:13).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환난과 결박을 마주하고 올라간 것입니다. 심령의 매인바 되어서 올라갔다고 했는데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결
박당할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결박당했으며 로마 감옥에까지 갔습니다. 그것이 영원한 자기를 만든 것입니다.
결박과 환난이 무서워서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다고 해도 왜 가지 않았냐고 물어볼 사람이 없습니다. 도리어 제자들이 가지 말라고 만류할 때이므로 가지 않으면 제자들이 더 좋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영원한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옳은 진리를 깨달았으면 옳은 진리를 양보하면 안됩니다. 그 진리를 양보하는 것은 생명을 양보하는 것입니다. 옳은 진리를 깨달은 다음에는 생명을 내놓고 옳은 진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시험이 아무리 커도 따라가야 합니다. 시험에 넘어가서 옳은 진리를 양보하게 되면 그것은 영원한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목숨을 내놓고 나가야 합니다.

영적 목숨보다 육신의 목숨을 귀히 여기는 것

본문 25-26절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목숨이 둘입니다. 육신의 목숨과 영의 목숨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느라고 육신의 목숨을 잃어 버리면 영의 목숨은 삽니다. 육신의 목숨이 살기 위해서 옳은 진리를 양보하면 영의 목숨은 잃어버립니다. 자기 만들 것을 잃어버리고, 영적 생명을 빼앗기는 것이므로 영원히 실패입니다. 옳은 진리인줄 알고 진리를 따라가다가 남편이 그런 교회 나간다고 핍박을 많이 하기 때문에 남편이 가자고 하는데로 갔습니다. 거기는 주일을 바로 지키지 않고, 추도 예배도 하는 곳입니다. 남편의 핍박을 못 이겨서 진리를 양보하였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자기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진리를 양보하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것은 자기가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벌써 진리를 양보했는데 무엇이 만들어지겠습니까? 남편이 우상이고, 자기의 목숨이 우상이고, 세상이 우상이 되었는데 무엇이 만들어지겠으며 어떻게 영원한 생명이 자라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깨달은 진리는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면 자기의 생명을 얻고 자기 영혼이 자라납니다. 중생한 영혼이 자라나서 영원히 큰 자가 됩니다. 육신의 목숨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므로 그것을 표준하면 안됩니다. 육신의 목숨보다 말씀이 더 크고, 예수님이 더 크고, 영이 사는 것이 더 크기 때문에 영이 사는 길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갈 때 “무엇 때문에 못 따라 갑니다”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서양 교회들은 여름이 되면 성도들이 절반이나 줄어들기 때문에 어떤 교회는 방학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한국도 여름 휴가철이 되면 성도들이 많이 줄기 때문에 방학하는 교회가 혹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주일날은 정한 장소, 정한 시간에 모여서 공중으로 예배드리는 것인데 예배드리지 않고 놀러 다니는 것은 주일을 범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기를 잃어버리고 자기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환난과 핍박이 들어와도, 생명이 위태해도 말씀을 지키면서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한 자기가 만들어집니다. 또 자기가 마땅히 말씀대로 순종할 것을 순종하는 것이 영원한 자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에 100세에 난 독자 이삭을 어떻게 바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예”하고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가서 바쳤습니다(창 22:1-12). 그것이 자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그릿시냇가, 사르밧 과부의 집, 갈멜산 여러 곳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내놓고 전하였습니다(왕상 17, 18장). 그러므로 영원한 자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매일 자기를 만들 수도 있고, 자기를 잃어버리고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매사건, 매시험이 들어올 때마다 거기서 믿음을 지키고, 말씀을 지키면 영원한 자기 목숨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영원히 빛나는 것이며, 영원히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양보하고 믿는 사람은 영원한 자기를 잃어버리고 영원한 자기를 만들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작은 자입니다. 짧은 세상에서 자기를 만들어서 가는 자가 영원히 성공이고, 자기를 만들지 못하면 영원히 실패입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일시적 육신의 평안, 육신의 향락, 육신의 부귀 영화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만들어 가고, 영원한 생명이 자라나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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