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심
누가복음 8:16-25
누가복음 8:16-25
16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7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18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19예수의 모친과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20혹이 고하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 21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22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행선 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1. 등불을 등경 위에 놓아 비취게 하라 (16-18)
세상의 빛
세상의 빛
본문 16절에,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본절에서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는 사람도 없고, 평상 아래 두는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등경 위에 둔다고 하였습니다. 등경 위에 두어야 여러 사람에게 그 빛이 비추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의 빛인데, 그 빛을 여러 사람에게 비추게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빛이시고, 또 예수 믿는 사람이 빛입니다.
마태복음 5:14-15에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의 빛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빛이 믿는 사람을 통해서 세상에 비추어 나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 자체가 벌써 예수를 영접한 것인데, 예수의 이름이 믿는 사람에게 있고, 믿는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타나게 되고, 또 예수님의 말씀이 세상에 비추어 나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는 사람에게는 중생한 영혼이 빛입니다. 중생한 영혼은 이 캄캄한 세상에 영적 생명이 있기 때문에 빛이 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아는 것 자체가 빛이고, 성경말씀을 아는 그 자체가 빛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세상에 빛을 계속 비추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빛을 가져다가 성경대로 사는 것, 그것이 또한 세상의 빛입니다. 그것은 우상섬기지 않는 것 같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우상 섬기지 않습니다. 주일날 지키는 것도 빛이고, 또 도적질 않는 것, 살인하지 않는 것 등, 계명 지키는 것이 다 빛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 자체가 빛입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다’ 하면 빛이 된 것입니다. 성경대로 한 가지를 행하면, 그것이 또 빛이 됩니다.
빛을 덮어 두지 말라
등불을 켜긴 켰는데, ‘그릇으로 덮지 말라,’ 또 ‘평상아래 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등불을 켜놓고 그릇으로 덮으면 캄캄해집니다. 또 ‘말 아래 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등불을 켜서 말을 가져다가 덮든지, 또는 평상아래, 즉 침대 아래 잡아넣던지, 또는 컨테이너와 같은 그 큰, 사면을 다 밀봉한 그런 그릇 아래 잡아넣던지, 그러면 그 옆에서 볼 때 그 속에 빛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통 안에 잡아 넣었으므로 통 속에는 밝겠지만, 그 밖에는 그 빛이 비추어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불 켜놓아도 밖에서는 있으나 마나입니다. 마찬가지로 평상 아래 잡아넣어도 있으나 마나이고, 또 곡식 말로 갖다 덮어 놓아도 있으나 마나입니다. 등불이 그 속에 있으나 마나라는 것입니다.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의 빛인데, 이 빛을 평상 아래 넣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평상은 잠자는 것, 안일주의이므로, 평안히 잠자는 안일주의에 빠지면, 빛이 비추어 나아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졸고 잠자는 생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안일주의에 빠지면, 등불을 켜긴 켰지만,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나가지 못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향락주의에 빠지면 안됩니다. 그릇으로 덮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통을 짜놓고 당파를 묻는다는지 하는 인간의 무슨 통들을 많이 짜 놓습니다. 지연, 학연, 혈연, 이런 것들이 다 통을 짜놓는 것이고 그릇으로 덮는 것입니다. 지역주의도 통을 짜 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통을 짜 놓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빛이 비추어 나가지 못합니다. 또한 말은 곡식 재는 말인데, 욕심의 말 아래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욕을 가지고 다니면, 그 빛이 비추어 나가지 못합니다.
등경 위에 두어 비취게 하라
그러면 빛을 어디에 두라고 하였습니까? 등경 위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등경이라는 것은 주를 위해서 희생하는 생활입니다. 주를 위해서 희생하는 생활, 그것이 등경인데, 그 위에 두어야, 주를 위해서 희생하는 생활을 해야만, 주와 진리를 위하여 주님만 높이고 진리만 높이고 자기는 희생하는 생활을 해야만, 그 빛이 널리 전파되어서 많은 사람에게 비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와 같이 말씀을 위해서 희생 봉사해야 합니다. ‘나는 쇠하여야 되겠고, 그는 흥하여야 되겠다’라는 희생 봉사하는 그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우리에게 있는 빛이 널리 여러 사람에게 비취어 나갈 수 있습니다.
본문 17절에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숨은 것은 신령한 영적인 역사, 영의 역사를 말합니다. 감추인 것은 진리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영감의 역사, 영의 역사는 숨겨져 있습니다. 그 영적인 역사가 있는 것은 다 처음에는 숨겨져 있고,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장차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 나타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배우고 자기 영혼이 자라나면, 그것이 반드시 인격으로 나타나고, 이 세상에 나타나고, 오는 세상에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으로 자기 자신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성경을 바로 배우고, 성경대로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속에 배운 것이 없으면, 이 다음에 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배우길 바로 배워야 되고, 영의 역사가 있어야 되고, 그것으로 자기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빛으로 나타납니다. 성경을 언제나 바로 배워야 되고, 늘 깨어서 기도하며, 영의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새벽기도를 늘 해야 됩니다. 우리가 주일날 예배 끝마치고 기도원에 기도하러 가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가서 한 두 세 시간 기도 할 수 있습니다. 두 세 시간 기도하는 것 이것이 아주 큰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감의 역사로 인해서 만들어집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주일날 말씀이 받아지면, 가서 새김질 하고, 자기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18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신령과 진리가 있으면, 더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신령과 진리가 없는 사람은 현재 있는 것도 다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씀에 거하고 신령한 세계에 거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2. 진정한 모친과 동생들 (19-21)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데리러 옴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데리러 옴
본문 19-21절에, “예수의 모친과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혹이 고하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러 왔습니까? 마가복음 3:30-32에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3:20-21에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의 모친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미쳤다 하는 소문을 듣고 잡으러 왔던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 들렸다 하는 소문을 듣고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데리러 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모친과 동생들
사람이 많아서 그들이 가까이 하지 못하였는데, 예수님께서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고 “누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렸다, 미쳤다’ 하는 말을 듣고 잡으러 온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방해 놓으러 온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잡으러 왔으니깐 마귀의 종들입니다. 육신적으로는 모친이요 형제지만, 영적으로는 마귀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온 겁니다. 그 때 나갔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하나님 일 못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모친도 아니고 마귀란 말씀입니다. 즉 말하자면, 마귀의 종이고 마귀인데, 그때에 예수님이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님의 친척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은 그 원수이고,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친구요, 모친이요, 형제요, 자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바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3. 바람과 물결을 명령으로 잔잔케 하심 (22-25)
행선할 때에 광풍을 만남
본문 22-23절에,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 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습니다. 호수는 갈릴리 바다를 가리킵니다.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가자 하시고,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로 건너가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행선 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습니다. 다른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다고 하였습니다(막 4:38). 고물은 배 뒤를 가리킵니다. 배 뒤에 있는 나무로 된 곳입니다. 그곳에서 베개 하고 잠을 주무셨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23절 하반절에, “…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광풍이 갑자기 일어나서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물결이 넘어 치는 바람에, 물결이 넘어서 배에까지 들어왔습니다. 아주 위태하게 되었습니다. 또 배가 어느 순간에 전복될지 침몰될지 알 수 없습니다. 물결이 산더미같이 올라가서 막 내려오고, 배는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고, 조금 만 더 기울어지면 물에 쏙 들어갈 정도가 되었는데, 예수님은 그냥 잠만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렇게 위태한데, 예수님은 평안히 안식을 하고 계십니다. 아주 위태해서 제자들은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배가 이리로 기울어지면, 이리로 ‘어!’ 하고, 저리로 기울어지면 저리로 ‘어!’ 하면서, 배를 붙잡고 참 죽을 지경인데, 예수님은 잠만 주무십니다.
그래서 지금 본문 24절에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8:25-26에는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잠을 깨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졌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심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5절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마태복음 8:26에는,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리고 마가복음 4:33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믿음이 없다고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물결이 쳐서 배가 당장 바다에 빠질 것과 같은, 파선 될 것과 같은 지경인데, 그 때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자체가 믿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는 증거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어
찌 믿음이 없느냐?’ 마태복음에서는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셨고,마가복음에서는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하셨으며, 누가복음에서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다 믿음이 없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 풍파를 만나봐야 압니다. 이 풍파 만나기 전에는 다 믿음 있는 것 았는데, 풍파 만나고 보니까 전부 믿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풍파를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
여기 배에서 누가 믿음이 있습니까?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물결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을까봐 겁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진 믿음은 무슨 믿음이셨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입니다. 생명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께 있고, 물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모든 것이 달려있으므로, 아무리 바람이 불든지, 물결이 치든지, 배에 물이 들어오든지, 당장 뒤집어 질 것 같든지, 하나님께서 뒤집어지게 하시면 뒤집어질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라앉게 하시면 가라앉을 것이고, 파선되게 하시면 파선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안되게 하시면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순전하게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생명은 하나님께 있는 것을 믿었습니다. 생명이 하나님께 있지, 물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배가 깨지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있고, 생명도 하나님께 있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생명을 자신이 보호하려고 그런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은 하나님께 있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걸 믿으셨지만, 제자들은 자기 생명을 자기가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서 벌벌 떨기만 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호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믿을 때, 예수님께서는 안심하고 평안히 주무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기 생명을 제가 보호하려고 하니까, 그만 벌벌 떨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바람과 물결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바람과 물결이 아무리 일어나도, 다 하나님의 장중(掌中)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물결이 자기들을 죽일 줄 생각했습니다. 물결이 사람을 죽일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틀렸습니다. 물결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냐는 말씀입니다. 물결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 안 죽이시면 물결이 절대 죽일 수 없습니다. 물에 빠져도 안 죽습니다. 또 안 빠질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안 죽을 줄 믿었습니다. 아무리 물결이 쳐도, 자기 사명이 있기 때문에 안 죽을 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기 위해서 보내셨는데, 왜 물에 빠뜨려 죽이시겠냐는 것입니다. 빠져 죽으면 하나님께서 실패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구속을 이루려 보내셨다가 물에 빠뜨려 죽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절대 안 죽일 거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구속사업을 완성하기까지 절대 죽이지 않으실 것이다 하고 확실히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평안히 안심하고 잠을 잘 수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왜 두려워했습니까? 자기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불러서 구속사업을 계승하려고 하는데, 왜 죽이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죽이시겠습니까? 제자들은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을 누리셨습니다. 어떠한 풍파가 일어나도 안식입니다. 항상 안식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안식 밖에서 살았기 때문에, 환경과 물질에 지배를 받고 죽겠다고 아우성 친 것입니다.
왜 믿음이 없습니까? 우리도 이런 믿음, 예수님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풍파를 만날 때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생명이 하나님께 있는 것을 믿고, 물결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사명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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