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4일 월요일

마태복음 9:1-8 반신불수가 완전하여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반신불수가 완전하여짐
마태복음 9:1-8

1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3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4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6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1. 병의 원인 

본문 1-2절에,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신 것을 보면, 이 중풍 병이 죄 때문에 들린 것이 분명합니다. 병이 죄 때문에 들리는 것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병 들리는 것도 있고(요 5장), 마귀로 인해 병 들리는 것도 있고, 신체가 고장이 나서 되는 병자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마귀 때문에 들리는 것도 있지만, 전부 마귀 때문에 병 들린 것이라고 하면서 마귀 내쫓아야 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김기동씨의 경우 모든 병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하면서, 마귀만 내쫓으면 병 낫는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병은 죄 때문이기도 하고, 마귀 때문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입니다. 여기서 이 사람은 죄 때문에 병이 들렸습니다. 

본문 3-5절에,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인 반신불수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시니까,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참람하도다’하며 주제 넘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사람이 죄사하는 권세가 있는가?’하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리고선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말 중에 어느 말이 쉽겠습니까? 여기서는 “걸어가라”하는 것이 더 어려운 말이라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병이 났기 때문에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말에는 죄 사함을 받은 결과가 담겨있습니다. 걸어가게 되면 죄 사함을 받은 증거가 됩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은, 병의 원인을 가리키는 것이고,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말은, 죄 사함의 결과를 가리키는데 어느 것이 더 쉬운 말입니까? 결과가 더 어려운 것입니까? 원인이 더 어려운 것입니까? 결국, 죄 사함을 받아야 걸어가는 것이니까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말이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이 더 쉬운 말이라는 것입니다. 

2. 중풍병자를 고치심

본문 6절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라고 되어있습니다.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걸어가라 하실 때에 걸어가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죄사하는 권세가 있으신 줄을 너희가 알라는 말씀입니다. 걸어가는 것이 죄 사함을 받은 결과이니까, 죄 사함을 받지 않으면 걸어가지 못합니다. 걸어가라 할 때에 걸어가면,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하시려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7절에,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그 중풍병자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병자를 보고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하셨고, 침상을 가지고 가라고 하셨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병자가 곧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네 사람이 메고 다니던 중풍 병자입니다. 또한 그 중풍 병이 오래된 병자입니다. 그 반신불수가 되어 침상에 누워 걸어가지 못하던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환자를 보시고 뭐라고 하습니까? “일어나라”고하십니다. “일어나라”고 하실 때에 일어나면 됩니다. 아무리 오래된 병이어도 “네!”하고 일어나면 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38년 된 병자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하실 때에 일어나면 병이 38년 되었어도 일어나고, 중풍병자도 일어나고, 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네 침상을 가지고’, 누웠던 침상을 가지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병자가 자기의 침상을 가지고 가니까 기쁘고 즐거움으로 걸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8절에,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고 했습니다. 

3. 믿음의 반신불수

반신불수, 이것을 예수님께서 고치러 오셨는데, 예수님 앞에서 어떻게 고침을 받았습니까? 요새, 믿음의 반신불수가 많습니다. 한쪽은 건전하고 한쪽은 병들어서 못 쓰는 믿음의 반신불수 입니다. 한쪽은 괜찮은데 한쪽이 병들어 못 씁니다. 이렇게 온전하지 못합니다. 요새 신자들이 어떤 면으로 보면 괜찮은데, 다른 쪽으로 볼 것 같으면 다 병신입니다. 다 병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 힘을 못 씁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면은 건전하여 잘 믿는 것 같고 괜찮은 것 같은데, 다른 면을 보면 이것이 개차반입니다. 나가서 못된 짓 다하고 돌아가고, 죄만 짓고 돌아가고, 아무 힘을 못 씁니다. 약간의 반신불수는 어떻게 걸어갑니까? 한쪽 다리는 잘 올라갔다가 한쪽은 짧게 떨어집니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한 주일은 잘 나왔다가 또 다른 한 주일은 쏙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반신불수 입니다. 어떨 때에 보면 잘 믿는 것 같은데, 어떨 때 보면 쏙 들어가서 없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어떤 날은 잘 나오고 어떤 날은 쏙 들어가서 없습니다. 그것이 반신불수 입니다. 기도원에 오는 것도 어떤 날은 잘 오는데, 어떤 날은 쏙 들어갔습니다. 오늘도 쏙 들어간 사람 더러 있을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십일조를 내는데, 어떤 때에는 안냅니다. 어떨 때에 십일조 안내는가 하면 액수가 많을 때 안냅니다. 만원에 천원, 십만 원에 만원 이렇게 액수가 적을 때에는 잘 하는데, 한 일억 대의 돈이 들어왔으면 얼마를 십일조 해야 합니까? 천만 원을 해야 합니다. 또 십억이 들어왔으면 얼마를 해야 합니까? 일억을 내야합니다. 이것이 힘듭니다. 그 때에 쏙 들어가기 쉽습니다. 그렇게 반신불수 신앙이 많습니다. 

시종일관, 추우나 더우나, 분주하나 괴로우나, 계속 걸어 나가야 되겠는데, 그것이 아니고 어떤 때에 쏙 들어가는 것입니다. 보통 때에는 잘 나가다가 어떤 때에 쏙 들어가는 것이 반신불수 신앙인데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것을 늘 메고 다니고 하면 그 사람이 무슨 사람구실을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고쳐주시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십니다. 반신불수를 고쳐주시는 것을 목적으로 하십니다. 

4. 일어나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

고침을 받으려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려하니까 사람들이 많아서 갈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병자를 메고 갔다고 했는데, 여기 메고 간 사람들이 믿음이 있는 자들입니다. 지붕에 그 반신불수를 데리고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네 사람이 병자를 달아 내렸습니다. 반신불수를 데리고 올라간 자들의 신앙도 아주 좋은 신앙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반드시 그 병이 나을 줄을 믿는 신앙, “믿습니다”하는 반신불수의 신앙, 메고 간 사람들도 “예수님께 나아가면 반드시 고쳐주실 줄을 믿습니다”하는 신앙입니다. 난관이 많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고침을 받아야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모두 다 같습니다. 난관을 돌파하고 달아 내리우니까 예수님께서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실 때에는 ‘믿습니다’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일어나라”고 하실 때에는 일어나면 됩니다. 벌떡 일어났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라”는 말씀하실 때에는 말씀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일어나게 하시는 모든 권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하시면 그 말씀 속에는 권능이 있습니다. 이루어 놓으시는 권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서 “예!”하고 일어나면 벌떡 일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신불수가 다 낫습니다. 다리가 다 말라서 비틀어지고 말라지고 꼬부라져서 안 펴지고 해도 일시에 다 펴지고 그 혈기가 다 통하며, 일시에 다 나을 수 있습니다. 

일어나라 하실 때에 “못 일어납니다”하면 못 일어납니다. 일어나라 하실 때에 “예!”하고 일어나려고 힘을 쓰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하실 때에 “제가 어떻게 일어나겠습니까?”하면 그것은 희망이 없습니다. “제 다리가 가늘어지고 꼬부라지고 비틀어졌는데 어떻게 일어나겠습니까?”라는 잔소리 하지 말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일어나라!”하실 때에 “예!”하고 일어나면 다 일어납니다. 병자가 올 때에 자기 힘이 아니라 메여져서 왔습니다. 메는 사람들이 가자고 하니까 메여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하실 때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믿고 “예, 오늘부터 일어납니다”한 것입니다. 일어나면 일어나게 됩니다. “힘이 없습니다. 못 일어납니다”하면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능인데, 무엇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은 다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능인데, 아무리 말라 비틀어졌어도 일어나고, 38년 되었어도 일어나고, 58년 되었어도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주실 때에 일어나십시오. 절름발이들 다 일어나십시오. 한 주일은 나왔다가 한 주일은 안 나오는 사람들, 다 일어나십시오. 또 무얼 좀 하다가 못하는 사람들 다 일어나십시오. 빠지는 사람들 다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을 하니까 그 능력이 쑥 들어옵니다. 발과 발목에 힘을 얻습니다. 
일어난 다음에는 네 침상을 가지고 걸으라고 하십니다. 그 침상을 가지고 가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일어났으면 내어버리고 가도 상관없을 텐데, 환자의 냄새나는 침상을 병이 낫고 난 뒤에 가져갈 생각이 없겠지만, 필요가 없겠지만, 버리고 가고 싶겠지만, 그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하실 때에 “네!”하고 둘러메고 가야합니다.

그 침상을 두어두면 어떻게 됩니까? 또 와서 드러눕고 싶어집니다. 거지노릇 사흘만 하면 그보다 더 좋은 팔자가 없다고 하는데, 누워 있을 때에 좋은 것도 있습니다. 누워먹는 팔자가 좋았는데 일어나 한참 걸어가려면 힘이 들 것이 아니겠습니까? 누워있을 때에는 누가 먹을 것을 갖다가 주었겠지만, 이제는 걸어 다니니까 누가 먹을 것을 갖다가 주겠습니까? 힘들어서 다시 가서 누우면 좋겠다고 하고 다시 가서 누우면 안 됩니다. 아예, 네가 병신노릇을 하고 거기서 발버둥을 치고 냄새가 나고, 걸어가지 못하고 병신 노릇하던 것 그 자리를 아주 집어치우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두어두고 가면 안 됩니다. 자리를 들고 가서 없애 치워야지, 자리가 있으면 가다가 힘들면 또 가서 누울 것입니다. 다시 가서 누울 수 없도록 만들라는 것입니다. 끊어버렸으면 다 집어치워야지, 그것을 두어두면 이 다음에 또 할 염려가 있습니다. 그렇게 다 집어서 치우고, 이제는 걸어가는 것입니다. 자리를 두어두지 말고 메고 가야 됩니다. 드러누울 곳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5. 갈 길을 찾으면 길이 있음

이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에 나아오면 고침을 받을 줄 믿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예수님께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내려가는 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무리 난관이 첩첩으로 가로막히고 갈 길이 없어도, 그래도 갈 길이 또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갈 길이 없어도 찾으면 갈 길이 있습니다. 갈 길이 어디입니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서로들 예수님 앞에 가까이 가려고 겹겹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침상이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겠습니까? 

예수님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다 이기주의입니다. 이기주의가 되어서 자기가 은혜를 받아야하고, 자기가 나음을 얻어야 하고, 자기가 복 받으려고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생각 못합니다. 그 때에도 예수님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이기주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보니까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고, 남을 위하는 생각은 없고 전부 이기주의자들이라는 생각에 “가자. 여기서 무얼 바랄게 있겠는가?”하고 돌아갔으면 그 반신불수는 끝장이 났을 것입니다. 그 병자가 예수님 따라다니는 사람들 보고 왔습니까? 누구를 보고 왔습니까? 예수님을 보고 왔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이기주의이고 양보하지 아니하는 것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왔는데, 다른 사람들이 자리 안 내어주면 어떠합니까? 사람들이 그래도 “나는 나가야겠다. 예수님께 가서 해결을 받아야겠다”하니까 길이 하나 났습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지붕에 올라가서 구멍을 뚫고 내려가는 길입니다. 그저 앉아서 길이 없다, 못한다 하지 말고, 아예 나서면 길이 생깁니다. 

코소보에 다음 주간에 목사 한 사람을 보내는데, 코소보에 가면 말이 제일 문제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러시아말도 못하고, 코소보 알바니아 말을 한다고 합니다. 누가 알바니아 말을 알겠습니까? 그래도 그저 “믿습니다”하고 가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십니다. 어떻게든 열어주실 것을 믿으면 됩니다. 다음 주간에 목사님 하나 가는데, 가면 어떻게든지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십니다. 가면 전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실 것이고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지붕으로 해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붕 뚫을 때에, 집주인은 예수님 오셨더니 집다 허물어진다고 걱정하며 책망도 했을 것입니다. 그까짓 주인의 욕하는 말은 귀에도 안 들어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고, 자기의 병이 낫는 것이 목적이지, 그런 욕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예수님께서 “소자야 네가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에 참 좋았을 것입니다.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조금 있으니까 바리새교인들에게 몇 마디 말씀을 하시더니, “일어나라!”라고 하시는데 이것이 얼마나 천하의 희소식이었겠습니까? 그 말씀에 일어났더니, 그 다음에는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 침상이 자기가 누워있던 것인데 조금 무거웠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들고 걸어가니까 발목에 힘이 생기고 안 펴지던 것이 펴져서 척척 걸어가는 것입니다.

6. 온전한 신앙을 갖고 걸어가라

이것은 우리의 믿음의 반신불수, 믿음의 절름발이를 고쳐주시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실제로 신체의 반신불수를 고쳐주셨는가 하면, 모든 믿음의 반신불수도 일으켜 고쳐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자 함입니다. 그것의 표징으로 고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은 전부 표징입니다. 병 고쳐주시는 목적은 영적인 병을 고쳐주시는 것에 대한 표징, 그 증거로 해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신불수를 고쳐주시는 표징으로 이런 신체의 반신불수를 고쳐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은 다 표징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다 고침 받아야 됩니다. 병신노릇하지 말고, 쓰러져 있지 말고, 한쪽을 못 쓰고 있지 말고,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야 합니다. “예!”하고 대답할 때에 병이 다 낫습니다. 잘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병이 다 나아서 온전한 신앙을 가지고 걸어가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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