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나오며 그 꼴을 얻으라
요한복음 10:1-18
요한복음 10:1-18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 예수님은 양의 문이심
본문 9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꼴은 양이 먹는 양식을 가리킵니다.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이고 나간다는 것은 순종하러 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 꼴이 있습니다. 들어가서 꼴을 먹어야 합니다. 또 순종하러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꼴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먹고
자라나 풍성해지는 금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라고 하였습니다.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오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오지 않는 자들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아닙니다. 불교, 마호메트교, 공자교 등의 종교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 이름 없이는 절대 구원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만일 누군가 예수 이름 외에 다른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자는 절도요 강도입니다. 부처 믿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합니다. 다 망하고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전부 지옥 갈 자들입니다.
또, 여러 다른 종교들이 많이 있지만, 모두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을까요? 먼저,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히 9:22). 그런데 다른 종교들은 우리의 죄 값으로 누군가 피 흘려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부활의 생명을 받아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
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것인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외에는 다 절도요 강도이며, 도적에게 당하는 것입니다.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알고 따라감
본문 3절에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문지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 문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또, 양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즉, 양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문도 예수 그리스도, 문지기도 예수 그리스도, 목자도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목자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해 내신다,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다 아십니다. “마리아야”하고 마리아를 불러주셨습니다. ‘이름을 아신다는 것’은 우리의 인격과 상태를 아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인격과 상태를 다 아시고 우리를 항상 긍휼히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또, 양된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다. 그 음성을 압니다.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목자가 앞서가면 양들이 그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간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 뿐 아니라 영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복음은 우리에게 영적인 위안이 되며 생명이 되고 힘이 됩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먹어야만 살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음성을 알고 좋아합니다. 또, 그 음성을 사모하고 따라갑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아닌 것은 양들이 듣지 않습니다. 목사가 아무리 강단에서 설교를 잘 한다 해도, 그 내용이 인간의 지식이나 세상의 과학과 학문 등으로 채워져 있다면, 그 설교는 신령한 예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이에 양들은 예수님의 음성이 아니기 때문에 따라가지 않습니다.
참된 양 떼들은 자신의 주인(主人),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어야만 만족하고 평안합니다. 거기에 기쁨과 위안이 있고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어디 있을까, 하며 주의 음성을 사모하고 따라가는 것이 참된 양들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양들의 이름을 다 아시고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십니다. 그리고 앞서 가시며 양들을 인도하십니다. 성도들을 앞서 가며 인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앞서서 인도하시는 주님을 우리는 따라가야 합니다.
3. 예수님보다 앞세우는 것은 절도요 강도임
본문 8절에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또 ‘절도요 강도’가 나왔습니다.어떤 자가 절도요 강도라고 하였습니까?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왔다는 것은 구약시대 선지자들이나 세례 요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보다 앞서 돌아가는 자를 가리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세례 요한이 절도요 강도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선지자들이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라고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절도요 강도로서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는 예수님보다 자기를 앞세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보다 자기가 낫다고 하는 자들, 예수님보다 자기를 앞세우고 자기를 위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보다 앞세워 가지고 온 것들 전부가 절도요 강도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더 따라가고, 더 좋게 여기는 것이 다 절도요 강도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온 것만 우리에게 유익하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들어오는 것들은 다 절도요 강도입니다. 예수님보다 자기를 앞세우면 자기가 절도요 강도입니다. 부모를 앞세우면 부모가 절도요 강도입니다. 부부를 앞세우면 부부가 절도요 강도입니다. 직장을 앞세우면 직장이 절도요 강도가 됩니다. 돈을 앞
세우면 돈이 절도요 강도가 됩니다. 어떤 것이 먼저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앞서야 합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뒤에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 한 분만 바라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 외의 것들은 그 다음에 와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서 예수님보다 앞세워 다른 것을 따라가게 되면 그것이 절도요 강도입니다.
각자에게 명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우리에게 다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첫째로 하여 따라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제쳐 놓고 그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것을 먼저 따라 가면서 예수님을 섬기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 다른 것 전체가 다 절도요 강도가 됩니다. 즉, 물욕과 정욕과 사욕으로 들어오는것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물욕, 정욕, 사욕, 명예, 영광심, 자기 위하는
마음과 출세욕, 이런 것들을 예수님보다 앞세우고 주의 명령보다 앞세우면 그것들이 다 절도요 강도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가다가 다 망합니다. 도적에게 모두 빼앗기고 망합니다.
도적은 멸망시키려고 온다고 하였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입니다. 도적에게 멸망당하지 않으려면 예수님보다 앞세우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며 주님만 따라가고 주님의 명령만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적에게 다 빼앗기고 마지막에는 멸망입니다.
4.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음
본문 9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들어간다’는 것,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벌써 예수님 문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법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다는 말은 신령한 세계에 조금 더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즉, 신령한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들어가면 꼴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꼴은 양식입니다. 양의 양식이 꼴입니다. 다시 말해, 신령한 세계에 조금 더 들어가면 양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또, 나간다는 것은 순종하러 나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러 나갈 때에도 ‘꼴을 얻을 것이다, 양식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외부적으로만 들어가면 안 되고 조금 더 들어가야 합니다. 조금 더 조금 더,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조금 더 나아가서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또, 나가서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 날은 좀 더 깊이, 그 다음 주일날은 좀 더 깊이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신령한 세계에 깊이 들어가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오직 구속의 주(主)만 보이는 세계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면 그곳이 낙원입니다. 시편 43편 4절에 하나님은 ‘극락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안에 깊이 들어가면 그곳에 극락이 있다는 말입니다. 즐거움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면 그곳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새로운 꼴이 있습니다. 새로운 양식이 있습니다. 거기서 먹고 힘을 얻어 새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려면 먼저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서는 못 들어갑니다. 좁은 문이므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죄를 회개하고 낮아져야 합니다. 빈 마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는 생활은 두 말할 것 없이 기도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생활이 들어가는 생활입니다. 기도 하지 않는 것은 들어가는 생활이 아닙니다. 성도가 기도하지 않으면, 법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그 심령은 돈을 따라가고 사람을 따라가고 세상을 따라가게 됩니다. 마음이 세상에 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밖의 생활입니다. 이렇게 지내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긴 믿지만 그리스도 밖에서 사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조금 더 찾고 조금 더 그리스도를 얻고 조금 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고 하는 신앙, 깊이 들어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우리는 현실에 너무 깊이 속하여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한 발짝 들여놓고 그 다음에 더 안 들어갑니다. 그 와중에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혹하고 상황을 복잡하고 뒤숭숭하게 만들며 시험을 일으킵니다.
마귀는 마음을 상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세상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게 만들고 돈이나 사람을 따라가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듭니다. 여러 가지로 유혹을 시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마음을 끌어 내 더러운 농락에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마귀의 농락에 돌아가는 자가 많습니다. 죄 많이 짓고 밤낮 시험에 들어 돌아가고 불평불만이나 하고 자포자기하고 낙망하고 교만하는 자들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이 아니고 그리스도 밖에 나가 있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데, 어떤 사람은 십 년을 믿어도 신자 구실을 못합니다. 예를 들어, 주일날은 교회에 잘 나옵니다. 한 주일 동안 마귀 종노릇 하다가 주일에 예배드리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주일날 어느 정도 기도하고 어느 정도 은혜 받아 가지고 나갑니다. 그러나 주중에 또 그 생활합니다. 하지만 심령이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 있는 사람은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 있는 사람은 세대를 본받지 않습니다. 들어가 있지 못하므로 여러 가지 유혹을 받아서 이것 따라가고 저것 따라가며, 그렇게 끌리어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 때문에 걱정이다 무엇 때문에 큰일 났다 무엇 때문에 안 되었다, 하지 말고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안 되었다’하
지 말아야 합니다. 다 자기 때문에 안 된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안 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못했으므로 힘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권(靈權)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역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일들이 안 됩니다. 또, 자녀들을 인도하는 것도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서 인도하면 잘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지 못 하면, 자녀들이 그것을 다 보고 인도를 안 받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학생들도 다 압니다. 반장들이 기도 많이 하고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을 가지고 온 날은 아이들이 꼼짝 안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온 날은 아이들이 떠들썩하여 “가만히 있어라”, 그것만 한 시간 하다가 그만 두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떠드는 것도 자기 탓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껏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는 생활을 못한 것에 대하여 회개하고, 이제부터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않고 예수 믿는 것이 좋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않고 예수 믿는 생활, 그것이 얼마나 힘 드는 생활인 줄 아십니까?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는 물고기가 물 속에서 나와 사는 것과 같습니다. 물고기가 물 밖에 나와 살려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자꾸 몸이 말라지지 않나? 숨이 막히지를 않나? 짐승들이 와서 잡아먹을 염려가 있지 않나? 아이들이 와서 막대기로 찌를 염려가 있지 않나?, 물고기가 물 속에 있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틀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깊이 있는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영의 세계에 조금 더 들어가야 합니다. 조금 더 신령한 신앙을 찾아야 합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신령한 신자가 되지 못하고 어린아이가 되어서 젖이나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깊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1-2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신령한 성도가 아니고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회개하고 이제부터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또, 절도와 강도를 다 내어 쫓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오지 않은 것은 다 절도요 강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오지 않은 절도와 강도를 다 내어 쫓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금년에는 기도 많이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가복음 9장에 기도를 하지 않고서는 마귀를 이길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를 이기려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금년에는 기도를 많이 하는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도를 얼마나 해야 할까요? 하루 두 시간 이상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못 하는 날도 한 시간은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제자들에게 “한 시간도 나와 같이 깨어 있지 못하느냐”고 하셨는데, 한 시간 깨어
서 기도하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정신을 바짝 차려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기도를 하루 한 시간 이상씩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 안에서 꼴을 얻어먹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면 생명의 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양식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생명의 양식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생명의 양식은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이미 배우고 들은 말씀이 생각 나고 깨달아집니다. 성경 말씀이 깨달아져서 생명이 됩니다. 이것이 양식을 얻어먹는 것입니다.
또, 나갈 때에 꼴을 얻는다고 하였는데, 나가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나가는 생활은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무엇부터 순종해야 할까요? 주일 지키는 것부터 순종해야 합니다. 주일 지키는 것, 십일조 드리는 것, 우상의 제물 먹지 않는 것, 이 세 가지부터 순종해야 합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힘써 일하고, 이레 되는 날은 너나 네 남종이나 여종이나 자녀나 우양이나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 지키는 것부터 순종을 잘 하여야 하겠습니다. 주일 지킬 때에 예배 시간에 늦는 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늦는 것은 주일을 제대로 못 지키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늦는 것은 제물로 말하면 흠 있는 제물입니다. 예배시간 전에 나와서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야 그것이 바로 된 제사입니다. 또,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사입니다. 예배시간에 늦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를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또, 그렇게 믿는 사람은 평생 늦습니다. 그것 하나 순종을 못하고 무엇을 순종하겠습니까? 직장에 나
갈 때에도 그렇게 나갑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금년에는 들어가는 생활을 할 때에 먼저 예배시간에 빠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삼일예배나 주일날 오후예배에 빠지지 말고 늦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또, 나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앞서 가며 인도하시므로, 우리는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돈 따라가지 아니하고 세상 따라가지 아니하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라 하는 데로만 가고, 가자 하는 데로만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라고 하지 않으시면 안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순종은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자기 자신부터 순종해야 합니다. 자신의 처신부터 하나님께 바로 순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처신을 바로 하여 순종을 하고, 그 다음으로 가정에 대하여 바로 하여야 합니다. 가정을 돌보지 않는 자는 믿지 않는 사람보다 악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교회에 대하여 바로 순종을 하고, 그 다음으로 국가에 대하여 바로 순종을 하여야 합니다. 또, 사회에 대하여 바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한문(漢文)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는데, 먼저 자신을 세우고, 그 다음에 집을 바로 세우고, 그 다음에 나라를 바로 세우고, 그 다음에 천하를 평정케 한다는 뜻입니다.
순종할 때에도 먼저 자신에 대하여 바로 해야 합니다. 남보고 바로 하지 못한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부터 바로 해야 합니다. 자신은 바로 안 하고 “누구 잘못했다, 누구 잘못했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바로 서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바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자기 가정에 대하여 바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또, 이 말을 듣고 부부끼리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아내들은 남편보고 오늘 목사님이 가정에서부터 바로 하라고 하였는데, 요새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남편들은 부인보고 요새 어떻게 돌아는 겁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책임은 언제나 자기가 져야 합니다. ‘내가 바로 하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자기만 바로 하면 상대방은 하나님께서 바로 세워 주십니다. 자기부터 바로 하여야 합니다. 혹 고약한 남편이 있다고 합시다. 자기부터 바로 하고, 자기부터 할 것을 온전히 하여 남편을 잘 대접하면 남편이 감동을 받아 언젠가는 돌아올 날이 옵니다.
5.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림
“나는 선한 목자라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희생하러 나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희생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생활, 또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적인 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생활,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본문 17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무엇을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사랑하라, 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남을 사랑하고 희생하여 목숨까지도 버리는, 그러한 희생과 충성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6. 우리에 들지 않은 양을 인도하심
본문 16절에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나가라는 말입니다. 이 우리에 들어오지 아니한 양이 있는데 그들도 나가서 인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이라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 즉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을 말합니다. 둘째는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아직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가서에 보면 술람미 여자가 있고 예루살렘 여자가 있습니다. 술람미 여자는 우리에 들어간 여자입니다. 예루살렘 여자는 우리에 들어가지 않은 여자입니다. 이에 예루살렘 여자와 같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을 인도하기 위하여 나가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믿지 못하는 사람을 잘 믿는 가운데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믿음을 잘 못 지키는 사람을 신령한 세계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을 이 우리에 들어오도록 나가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또, 이방 사람들에게 선교사를 보내어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들지 않은 양들 전부를 인도하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때에 일꾼들을 시켜서 인도하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우리에 들어오도록 하시는, 그 역사에 우리도 이용당하여 다른 사람들을 우리 안으로 인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즉, 잘 믿도록 인도하여야 하겠습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신령한 성도가 되도록 인도하여야 하겠습니다. 또, 나가서 안 믿는 사람들을 전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심방하여 잘 돌보아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이방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어 그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가르침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순종하면 우리가 꼴을 얻습니다. 자기가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서 선교하러 구 공산권에 갔다 온 사람들은 다 은혜 받아서 돌아옵니다. 자기가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는 사람마다 이구동성(異口同聲)입니다.
내일 우즈베크스탄에 갔던 최광일이 돌아오는데, 아마 은혜를 많이 받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최광일이 지난번에 그곳에 한 번 갔다가 은혜를 많이 받아서 신학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또 갔다 오면 또 큰 은혜 받아 가지고 올 것입니다. 내일은 또 유영길 목사와 조영일 목사가 중국에 갑니다. 또, 한 주간 더 있다가 두 사람이 또 갑니다. 갔다가 올 때는 다 꼴을 얻어 가지고 올 것입니다. 가르치고 오는 데도 꼴을 얻어 가지고 옵니다. 우리는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들을 다 우리 가운데로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명이 있습니다. 나가서 인도하는 생활, 우리가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또 선교도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잘 했다”라고 칭찬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 날에 상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모든 일에 날마다 들어가는 생활을 하고, 날마다 나가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데, 너무들 기도를 안 합니다. 기도 안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도원에 나가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하고, 또 교회에도 일찍 나와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하고, 집에서도 매일 아침 기도를 해야 하고, 새벽기도에 나와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들어가는 생활입니다. 이처럼 들어가는 생활을 잘 하고 또 나가는 생활을 잘 하는 저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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