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디모데전서 1:1-11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디모데.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디모데
디모데전서 1:1-11

1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 3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5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6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8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가 아노라 9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10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
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11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1: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울은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 된 디모데에게 편지를 쓴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너에게 있을지어다. 

1:3 내가 마케도니아로 떠날 때에 너에게 부탁한 대로, 너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어라. 이는 어떤 이들에게 명령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1: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니, 이런 것들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도리어 논쟁만 일으킬 뿐이다. 

1:5 이 명령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니, 

1:6 어떤 이들은 이것들에서 벗어나 헛된 논쟁에 빠져, 

1:7 율법의 교사가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확신 있게 주장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8 그러나 어떤 이가 율법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그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 

1:9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의로운 자를 위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오직 법을 어기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와,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않은 자와, 속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와, 

1:10 음행하는 자와, 남성 동성애자와, 사람을 유괴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를 하는 자와, 그 밖에 건전한 교훈을 거스르는 자 때문에 세워진 것이다. 

1:11 이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따른 것이니, 이 복음이 내게 맡겨졌다. 

1. 참 아들 된 디모데

본문 1절에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사도 된 경위를 말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서 사도가 된 것입니다. 

‘사도(使徒)’는 ‘보내심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 직접 보내심을 입은 자가 사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복음 전하는 자로 ‘직접’ 부르셔서 보냄을 입은 자입니다. 그래서 사도직의 출처는 사람도 아니고 또 교회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시고 명령하셔서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열두 사도밖에 없습니다. 열두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 대신에 바울이 들어가 열두 사도가 된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참 아들 된 디모데’라고 말하였습니다. 빌립보서 2장 21-24절에,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
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했습니다. 
디모데가 참 귀합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 사람을 길러냈고 여러 사람과 같이 일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을 구하며 일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자식이 아버지께 함 같이, 바울을 아버지와 같이 여기며 대한 것입니다. 또 바울도 디모데에게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
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를 아들과 같이 귀하게 여긴 것을 알 수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잘 받들어 나갔고, 바울도 그를 귀하게 여겨 아들과 같이 대한 것입니다.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라고 한 바울의 말을 통하여, 바울이 요긴한 곳에 디모데를 보내고자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같이 이렇게 순종하며, 또 ‘요긴한 곳에 이 사람을 보내야겠다’ 하고 믿고 필요한 데로 보낼 수 있는 관계가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자기 볼 장은 하나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일만 잘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디모데도, 바울도 하나님의 교회 일, 구원 운동만 잘 되게 하는 데에 언제나 목표를 두고 잘 해 나갔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으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디모데와 같은 사람도 있고 또 떠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버리고 떠나간 사람이 누구입니까? 디모데후서 4장 10, 11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하였는데, 다 떠나갔다는 말입니다. 또 처음에 복음 변명할 때 같이 있던 사람들이 다 갔다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6절에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복음을 변명할 때에 바울과 같이 했던 자들이 지금은 다 바울을 버리고 갔습니다. 그래도 사도 바울은 그 사람들에게 허물 돌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처럼 함께 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의사 누가는 사도 바울과 늘 함께 있으면서 사도 바울을 잘 받들어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버리고 도망친 사람, 떠나는 사람,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 자기 볼 장 보는 사람, 또 디모데와 같이 자기 볼 장 보지 않고 바울을 아버지처럼 잘 받들며 복음 운동을 위해 희생적으로 수고하며 나가는 사람 등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디모데와 누가가 잘 한 것 같습니다. 누가는 의사인데 사도 바울을 잘 받들어 나갔습니다. 

2. 반드시 성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반드시 성공하십니다. 하나님은 이기고 또 이기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계속 성공이 되어 나갑니다. 바울을 버리고 떠나간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이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 사람은 가더라도 하나님께서 할 일을 해 나가십니다. 다른 여러 사람들을 또 세워서 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할까?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되게끔 다 해놓으셨습니다. 저도 좀 염려가 될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인가 하면,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및 야간신학교에 졸업생들이 많이 나오면 어디로 보내야하는가 생각할 때 입니다. 교회에 자리가 나야 보내겠는데, 교회에 그렇게 자리가 많지 않습니다. 은퇴하는 교역자들을 몇 명 없는데, 신학교 졸업생들은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 그 졸업생들을 다 어디다 보내야 되겠는지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가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보낼 곳이 있으니까 신학교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아이가 다 제 밥 먹고 산다는데, 졸업생들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하나님께서 다 쓸 데가 있으시니 보내신 것이다, 괜히 보낼 것 가지고 염려하는 것은 마귀 시험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회개합니다. 이제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아무리 많이 와도 아무리 많이 졸업을 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다 제 밥 먹고 사는 것처럼 졸업생들도 자기 할 일이 다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할 일을 다 맡겨서 보냈기 때문에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바른 진리만 가르치면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십니다.
바른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에 신학교 졸업생이 매년 많이 나옵니다. 광나루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일 년에 천 명이 나오고 사당동 총신대학교에서 팔백 명이 나옵니다. 그 두 신학교만 해도 한 해에 졸업생 천팔백 명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다른 여러 신학교도 합하면 몇 천 명이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일 년에 한 삼, 사 천 명은 졸업생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일 년에 사천 개의 교회가 늘어나느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졸업생들이 다 어디로 갑니까? 다른 신학교 졸업생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제가 다 모르겠으나, 우리가 하는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및 야간신학교에서 바른 진리를 가르쳐서 바른 교역자를 만들어 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쓸데가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쓸데가 있으시기 때문에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이미 말했듯이 저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러니까 염려가 없습니다. 염려 없이 나갑니다.

3.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 것

본문 3, 4절에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못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른 교훈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교역자는 참된 교훈인 성경 외에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4절에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신화, 또 끝없는 족보 이야기 그것을 하지 못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화’를 어떤 성경에는 ‘우화’라고 번역했는데, 근거 없는 우화 같이 지어 낸 이야기, 실제가 아닌 것을 실제인 것처럼 지어 낸 이야기, 그것을 신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화에 착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끝없는 족보’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족보 자랑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베냐민의 지파다, 히브리 사람 중에 히브리 사람이다’, 이런 것들입니다. 족보 자랑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한국으로 말하면 양반 자랑입니다. ‘경주 김 씨가 양반이다, 전주 이 씨가 양반이다, 파평 윤 씨가 양반이다, 또 유 씨도 양반이다’ 이런 것들입니다. 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들을 하는 것입니다. 족보 이야기,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내셨는데, 옛날 조상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 얘기를 해야 합니다. 양반이 사실은 예수 믿기가 힘듭니다. 양반 촌에는 교회가 잘 안 된다고 합니다. 양반들이 교만해서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양반 촌에 교회 개척했던 것 다 실패했습니다. 교회는 서민층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세워야 잘 됩니다. 훌륭한 사람들, 높은 사람들 있는 곳에 세워놓으면, 사람들이 교회 잘 안 나옵니다. 교만해서 잘 안 나옵니다.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경륜은 구원의 역사와 계획을 가리킵니다. 즉, 신화와 족보,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것보다 변론만 내는 것입니다. 구원 운동에 아무 소용도 유익도 없습니다.

4. 경계의 목적

본문 5-7절에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경계(警戒)’라는 것은 ‘계명’입니다. 경계의 목적, 즉 왜 계명을 주셨느냐 하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을 이루기 위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안 하고 서로 율법 선생이 되려고 하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 ‘거짓 없는 믿음’, ‘거짓 없는 사랑’, ‘믿음으로 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더러운 마음을 가지지 말고 언제나 깨끗하고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경건한 마음, 거룩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선한 양심’입니다. ‘양심을 똑바로 쓰라’고 김현봉 목사님이 늘 가르치셨습니다. 양심을 똑바로 쓰라고 몇 십 년을 계속 김 목사님이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양심 쓰는 사람도 좀 있지만 양심 안 쓰는 사람도 많습니다. 양심을 똑바로 써야 합니다. 양심 안 쓰면 믿음이 파선(破船)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배가 깨졌다는 말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착한 양심을 버린 사람은 믿음이 파선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파선’이라는 것은 이미 말했지만 배가 깨졌다는 소리입니다. 즉, 믿음이 깨졌다는 것입니다. 깨진 배, 물이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많이 배웠지만 양심 안 씁니다. 그래서 양심 쓰는 사람은 제대로 배운 사람이고, 양심 안 쓰는 사람은 제대로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이 깨집니다, 

배가 깨지는 것입니다. 깨지면 물이 들어옵니다. 배가 깨져서 물이 들어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믿음의 배가 깨지면 물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나중에 침몰합니다. 가라앉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써야 합니다.
선한 양심을 쓰면 믿는 사람이고, 양심을 안 쓰면 믿음을 버린 사람입니다. 믿음이 깨진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는 청결한 마음, 깨끗한 마음,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더러운 마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더럽고, 방탕하고,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사욕적인, 그런 마음들이 못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마음을 잘 지키고 청결한 마음을 늘 가져야 합니다. 청결한 마음을 가지면 속이 시원합니다. 평안합니다. 그 다음에는 양심 똑바로 쓰라는 것입니다. 거짓말하고 속이지 말고 양심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양심 안 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버리십니다. 선한 양심을 쓰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편이 되어주십니다. 양심을 버린 사람은 하나님이 내버려서 배가 깨진 것처럼 물이 들어와 가라앉게 됩니다. 침몰 당하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는 사랑이어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의 사랑, 진실한 믿음, 진실한 성도, 얼마나 좋습니까? 옛날에는 믿음 잘 지키는 사람을 진실한 성도라고 했습니다. 요새는 교회 잘 나오는 사람, 열심 있는 성도를 알아주지만, 우리 어렸을 때는 진실한 사람을 알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는 사랑, 즉 진실한 사랑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5. 율법을 바로 사용할 것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선한 것임

본문 6-8절에,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가 아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을 바로 써야 합니다. 율법을 ‘바로 쓰면[선용∙善用]’ 유익이 되고 바로 못 쓰면 도리어 손해가 납니다. 율법을 바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하지만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저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하지만 바른 진리를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즉 바로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가 안다’고 했습니다. 율법을 바로 쓰면, 율법이 선하다는 것입니다. 선한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잘못 쓰니까 남을 정죄하고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깨달아야 할 것들

본문 9, 10절에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불법한 자,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 경건치 아니한 자, 죄인, 거룩하지 아니한 자, 망령된 자, 아비를 치는 자, 어미를 치는 자, 살인하는 자, 음행하는 자, 남색하는 자, 사람을 탈취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 등과 같이 옳지 않은 사람들을 위하여 일부러 세웠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이런 사람들에게 주어서 그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서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보고 무슨 죄를 깨달아야 합니까? ‘불법한 자’는 불법으로 나가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발견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복종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법을 복종치 않았음을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또 ‘경건치 아니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바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율법을 보고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또 그 다음에 ‘죄인’입니다. 율법을 보고 자기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아니한 자’는 거룩하지 아니하고 속된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말도 속된 말, 더러운 말, 음담패설, 거룩하지 아니한 그런 모든 말을 하던 이런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망령된 자’는 정상적으로 모든 것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비를 치는 자’, ‘어미를 치는 자’, 이런 사람들은 다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닫고 돌아와서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또 ‘살인하는 자’가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하였듯이, 남을 미워하는 것이 살인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이 성경을 보고 회개하고 돌아와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본문 10절에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 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음행하는 자’, 음행하는 자가 이 성경을 보고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서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음행하는 자가 계속 그렇게 나가다가는 망하고 맙니다. 성경을 어기는 것은 반드시 가다 망합니다. 성경 어기는 것은 망하는 죄에요. 그러나 음행하는 자도 자기 죄를 깨닫고 돌아가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면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음행하는 사람들, 얼마나 불쌍합니까? 여자들, 몸 팔고 돌아갑니다. 어제 신문에 난 것을 보니 이북에 있는 여자 하나는 아버지는 굶어 죽고 어머니도 굶고 있으니 자기랑 다 같이 굶어 죽을까봐 두만강을 건너가서 몸을 판다고 합니다. 사만 육천 원에 팔려간다고 합니다. 그 돈 가지고 자기 어머니 양식 사줄 모양입니다. 자기는 팔려가서 갖은 고난 다 당하고 몸 다 버리고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두만강 건너가다가 얼어 죽은 사람이 하나 있는데, 두 달 동안 치우지 않고 그냥 얼음판에 내버려 두었다고 합니다. 이북에 있는 사람들이 중국에 가서 돌아가는 게 몇 십만 명이에요. 몇 십만 명인데, 얼마나 비참한지 그 것을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랍니다. 사만 육천 원에 팔려 가면 그 다음에 어디에 갔다가 팔고 어디에 갔다가 팔고 하면서 돌아가며 음행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이북에 있는 사람들 참 불쌍합니다. 하
나님이 건져줄 때가 반드시 있겠는데, 건져줄 때가 거의 가까워 온 것 같습니다. 아무리 도와줘도 평양에 있는 사람들이나 간부들이나 잘 먹고 굶어죽는 사람한테는 잘 안 간다고 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굶어 죽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내야 하겠는데, 그래서 보내주는 건데, 굶어 죽는 사람들은 안 주고 저들만 그것 가지고 호화생활 한답니다. 그
래서 도와주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남색(男色)하는 자’는 동성연애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성경을 보고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사람을 탈취하는 자’, 사람 탈취 하는 것은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식모 빼앗아 가는 것, 일군 빼앗아 가는 것, 돈 좀 더 준다 하면서 빼앗아 가는 것 말입니다. 요새는 의사도 빼앗아 간다고 합니다. 의사도 큰 병원에서 돈 많이 줄 테니 가자고 빼앗아 간답니다. 남의 일군이나 자녀들 빼앗아 가는 것이 죄입니다. 탈취하는 죄입니다. 또 ‘거짓말하는 자’, 거짓말하는 것이 죄입니
다. 성경을 보고 거짓말 하는 것이 죄인 줄 알고 회개하고 거짓말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거짓말 하지 않는 자는 진실한 자입니다. 기생라합이 정탐꾼을 숨겨놓고 안 숨겨놨다고 그랬죠? 그것은 생명이 관계된 것이라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그들의 생명에 관계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내려가면 죽으니까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죽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그래서 왔다가 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에 관계 되는 것 그 외에는 거짓말 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거짓 맹세하는 자’, 거짓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 맹세하면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께 죄입니다. 다음으로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것 역시 죄입니다. 이런 많은 죄를 율법을 통하여 죄인 줄로 깨닫는 것입니다. 죄인 줄을 깨닫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인하여 회개하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
 
본문 11절에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닫게 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기신 바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좇아가게 하십 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게 하십니다. 복음 좇아가는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복음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 도인데, 복음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승리하고 전진하고 자라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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