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 하나님의 선택과 구속과 인침
에베소서 1:1-14
에베소서 1:1-14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를 쓴다.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 분이시다.
1:4 그분께서 창세전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으며,
1:5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예정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의 아들로 받아들였으니,
1:6 이는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그분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
1:7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용서를 받았다.
1:8 하나님께서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시어,
1: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그분의 기뻐하시는 의도를 따라 그분의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1:10 이 비밀은 때가 찬 경륜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 곧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다 통일시키려는 것이다.
1:11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는 그분의 의도대로 우리가 예정되어 그분 안에서 유업이 되었으니,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소망을 가진 우리가 그분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하려는 것이다.
1:13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1:14 이 성령이 우리 유업의 보증이 되시니, 이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의 구속을 위한 것이며, 또한 그분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 분이시다.
1:4 그분께서 창세전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분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으며,
1:5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예정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의 아들로 받아들였으니,
1:6 이는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그분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
1:7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용서를 받았다.
1:8 하나님께서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시어,
1: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그분의 기뻐하시는 의도를 따라 그분의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1:10 이 비밀은 때가 찬 경륜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 곧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다 통일시키려는 것이다.
1:11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는 그분의 의도대로 우리가 예정되어 그분 안에서 유업이 되었으니,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소망을 가진 우리가 그분의 영광의 찬미가 되게하려는 것이다.
1:13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1:14 이 성령이 우리 유업의 보증이 되시니, 이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의 구속을 위한 것이며, 또한 그분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4가지는 옥중서신으로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기록했습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62년경 로마 옥중에서 기록했습니다.
1. 문안축복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임
본문 1절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직분을 맡는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직분을 맡는 것이고, 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모든 일이 이루어져 나갑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되어나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의 직분 맡는 일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맡는 것입니다. 인본주의로 되는 경우가 혹시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므로, 하나님이 앞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은 하나님이 가꾸어 나아가시고,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시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함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 한다고 하였는데, 성도들은 “신실한 자들”입니다. 즉 믿는 사람은 신실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받았고, 중생한 영혼이 있고, 신앙 양심을 쓰기 때문에 성도는 신실합니다. “신실”이란 성도의 별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쓰는 사람은 다 신실합니다. 신실하지 않은 사람은 믿음을 배반하고, 신앙에서 떠난 사람입니다. 성도가 믿는 일을 조금이라도 하면 신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양심을 쓰고, 말에 진실해야 되고, 행동에 진실하여야 합니다. 성도에게 진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또 신실한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거짓은 마귀에게서 나오며, 거짓의 아비는 마귀라고 하였습니다(요 8:44).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언제나 양심을 쓰고, 거짓이라는 것이 털끝만큼도 없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함
본문 2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이고, 그리스도 예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께로부터 모든 은혜가 내려오는데, 이것은 우리를 창세전에 택해 주시고, 구속해 주시고, 믿게 해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고, 영원한 나라를 주신 것입니다. 즉 구속에 대한 모든 전체를 은혜로 거저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일한 공로로 주신 게 아닙니다. 거저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혀서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령한 은혜를 많이 주셨는데, 그 은혜의 결과는 평강입니다.
2. 성부의 선택
본문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복 주시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말할 때에 “찬송하리로다”라는 말부터 나왔습니다. 즉 구속의 은혜에 대해서 말하려고 할 때에 제일 첫마디가 “찬송하리로다”입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늘에 속한 복이 무엇입니까?
창세 전에 택자를 예정하심
본문 4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복 가운데 제일 첫째 복은, 창세 전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를 하나님이 창세전에 하나님의 아들로 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스스로 계신 하나님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줄 만한 대상자가 필요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실 대상자를 내기로 예정하셨는데,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선택예정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창조예정, 타락예정, 구속예정입니다.
예정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전택설과 후택설이 있습니다. 후택설은 창조예정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사람들이 타락을 할 것을 예정한 타락예정, 그 다음에 타락한 백성 가운데서 일부를 하나님이 선택 하기로 한 선택예정의 순서로 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창조한 다음에 타락이고, 타락한 다음에 선택이고, 그 다음에 구속입니다. 이것을 후택설이라고 합니다. 즉 타락한 후에 택했으므로 후택설입니다. 그 다음에 전택설이 있는데, 전택설은 타락전에 택했다는 것입니다. 즉 타락예정 전에 선택예정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창조예정이며, 그 다음에 타락예정, 그리고 구속예정입니다. 우리는 전택설을 믿습니다.
후택설은 타락된 가운데서 하나님이 일부를 택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처음에 창조할 때에 목적 없는 창조가 됩니다. 목적 없이 창조했다가 타락된 가운데서 얼마만 선택하였다면, 사람을 왜 창조하기로 예정했는가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택설은 하나님께서 사랑의 대상자가 필요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를 먼저 택하셨습니다.
즉 선택이 먼저로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하시고 창조예정을 하셨습니다. 창조해 놓은 다음에 타락을 예정하셨고, 그 다음에는 구속을 예정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야 맞습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는 말로,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는 말은 속죄를 전제로 택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책임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속죄를 전제로 하지 않아도 우리를 온전케 만드시는 책임을 지시고 우리를 택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도덕적, 영적, 능력적으로 여러 면에 있어서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책임지
시고 택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창세전에 택했다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께서 책임지시고 우리를 택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셨는데, 이 큰 은혜를 늘 감사해야합니다. 우리를 선택하기로 예정하지 않으셨다면, 죄 값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 받을 자인데, 창세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택해주신 은혜를 항상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구속, 곧 죄 사함을 받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을 탕감 받았습니다. 우리의 얼마나 많고 큰 죄를 예수님의 피로 다 사함을 받았습니까?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죄값으로 하나님의 주신 벌을 받아서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면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얼마나 고통이 많고, 뜨겁고 견딜 수가 없는 곳이고, 물 한 방울이 없는 고통스러운 곳입니까? 그런 지옥에 비하면 세상 감옥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죄 값으로 말미암아 물이 펄펄 끓는 뜨거운 유황불에서 무서운 고통을 세세무궁토록 받아야 하는데, 이것을 예수님의 피로 다 사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의 피에 감사한지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음
본문 5절에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 창세전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했다는 것입니다. 즉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할 때에 “너는 내 아들이다”로 예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언제부터 아들로 택함을 받았는가? 하면 창세 전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누가 택한 백성인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이 세상에는 택한 백성도 있고, 또 불택자도 있습니다. 택한 백성인지 여부를 아는 방법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면 택한 백성이고, 안 믿으면 택한 백성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안 믿으면 그것은 불택자입니다.
요한일서 5:1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불택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믿을 수 없고, 오직 택한 백성만 믿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서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어떤 사람에게 주는가 하면 택한 백성에게만 줍니다. 불택자에게는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불택자는 예수를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고, 택한 백성만 예수를 믿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구주로 믿어지는 사람은 언제나 택함 받은 데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택한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임
본문 6절에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택한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고 택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의 그릇입니다. 그러나 불택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입니다. 택한 백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세세토록 나타내시려고 택자를 내셨습니다.
로마서 9:22-23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릇이 두 가지입니다. 진노의 그릇과 영광 받기로 예비 된 긍휼의 그릇입니다. 로마서 9:20에는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어떤 사람은 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안택하셨는가?” 하며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렇게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하며 답변하는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도 택한 백성이 필요하시기 때문에 택한 백성을 내셨고, 불택자가 필요하시기 때문에 불택자를 내셨다는 것입니다. 같은 흙인데 토기장이가 하나는 밥그릇을 만들어서 밥을 담아 먹고, 하나는 요강을 만들어서 소변을 봅니다. 그러면 토기장이가 불공평한가? 토기장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필요에 따라서 귀히 쓸 것을 만들고 또 천히 쓸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불공평이다, 무자비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택한 백성이 필요하시기 때문에 택한 백성을 내신 것이고, 또 불택자가 필요하시기 때문에 불택자를 내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불택자는 무엇에 필요합니까? 불택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데 필요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데 필요합니다. 불택자가 있어야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있고, 그 다음에 지옥에 가서 세세 무궁토록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택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입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긍휼과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과 인간은 조물주와 피조물의 차이로 너무 차이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 항거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아들 생일에 닭을 한 마리 잡았습니다. 아들은 생일이라고 좋다고 하는데 닭은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불공평입니까? 아닙니다. 아들 생일에 닭을 잡아먹었다고 해서 부모가 불공평도 아니고, 무자비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무자비도 아니고, 불공평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조물주로 당신의 원하시는 대하시는데, 거기에 대해서 피조물이 감히 항거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길을 걸어가다가 개미 한 마리를 밟아 죽였다고 해서, 그것이 무자비하고, 불공평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거기에 감히 갔다 붙이지 못합니다. 창조자 하나님은 영원자존자로 하나님께서 필요하시기 때문에 택한 백성을 예정하셨고, 하나님께서 필요하시기 때문에 불택자도 내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3. 성자의 구속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 받음
본문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통하여 택한 백성을 위해서 피 흘려주실 것을 창세 전에 예정해 놓으셨는데, 그 예정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흘려주시므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기도원에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트럭 운전사가 목탁소리와 함께 중들이 녹음한 것을 틀어놓고 갑니다. 가다가 신호등에 걸려서 그 차도 서고, 우리 차도 섰습니다. 그래서 내가 문을 열고 “예수 믿어 죄 사함 받고 천당 가라”고 하였습니다. 신호가 떨어져서 그 사람이 갔는데, 이제 그 사람에게 남는 것은 “예수 믿고 천당 가라”는 것 하나 남는 것입니다. 목탁 치는 것, 백날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게 복입니다. 하여간 예수의 피가 없이는 죄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선한 일을 많이 해도 다 헛된 일입니다. 사람이 전적 부패했고 원죄가 있는데, 어떻게 구원을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시므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자만을 위해서 피 흘려주셨음
또 예수님이 피 흘려주실 때에 택한 백성의 죄만 위해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불택자를 위해서 피 흘려주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만일 예수님이 불택자를 위해서 피를 흘려주셨다고 하면, 불택자도 예수를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피를 흘려주셨는데, 그 사람이 믿지 않는다고 하면 예수님의 피가 무능력한 피가 되고, 낭비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는 능력 있는 피입니다. 그런데 만일 모든사람을 위해서 피를 다 흘려주셨다고 하면, 다 믿어야지 안 믿으면 예수님의 피가 무능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성경을 보면 불택자는 분명히 안 믿게 되어 있는데, 안 믿을 사람을 위해서 피를 흘려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안 먹을 사람을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동네에 100명이 살고 있는데, 어떤 집에서 잔치를 하면서 음식을 장만하고 초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50명은 오지 않을 것을 확실히 압니다. 그러면 그 집에서 음식을 50명의 음식만 장만합니다. 만일 100명의 음식을 장만했다가 50명이 와서 음식을 먹게 되면, 남은 50명의 음식은 내어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불택자를 위해서 예수님이 피를 흘려주셨다고 하면, 그 피가 낭비가 됩니다. 그러므로 택한 백성만 위해서 피를 흘려주셨고, 불택자를 위해서는 피를 흘려주신 것이 아닙니다.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알게 함
본문 8절에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심
본문 9절에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는 비밀, 즉 복음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는 말입니다.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라고 하였는데, 경륜이란 원어로 “집을 지킨다”는 뜻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섭리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계획해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계획해 놓으시고, 이루어 나가시는데 때가 있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가 차야 됩니다. 하나님의 구속 예정도 그 예정한 때가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성자의 구속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되게 하려는 것임
본문 10절에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신 목적은 우리를 구속하는 게 첫째 목적이고, 둘째,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는 게 목적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에게 오고, 성도에게 온 사랑이 만물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또 만물이 성도에게 이용되고, 성도는 하나님께 이용되어서 그 결과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만물을 성도가 이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입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것이 만물에게 나가고, 만물의 모든 것이 성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입니다. 마귀에게 돌아가는 것은 통일이 아닙니다.
요새 마귀에게 이용되는 것이 많이 있는데, 우상섬기는 것은 전부 마귀에게 이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도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것이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안 된 것입니다. 만민과 만물이 하나님께 이용당하여, 영광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를 통해서 만민에게 나가고, 막히는 게 없어야 통일입니다. 죄가 아직도 이 세상에 많고, 말씀 불순
종 하는 것이 많고, 또 우상섬기는 것도 많기 때문에 통일이 안 되었습니다. 이제 그것이 점점 성도를 통해서 정복이 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만물통일입니다.
종 하는 것이 많고, 또 우상섬기는 것도 많기 때문에 통일이 안 되었습니다. 이제 그것이 점점 성도를 통해서 정복이 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만물통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통일세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 가운데 아직도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이용당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만물통일의 완성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악의 세력을 심판하고, 천년왕국이 될 때에 만물 통일이 완성됩니다. 지금은 성도와 교회를 통해서 만물통일이 점점 이루어져 나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일을 계속해서 힘써나가야 됩니다.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고 그 안에서 기업이 됨
본문 11절에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예정을 입어서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하나님의 기업체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가 기업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업체 되는 성도와 교회에 하나님의 눈이 항상 함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권고가 늘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업체에 손해를 주는 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업에 절대 손해를 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도와주어야 복을 받습니다. 또 하나님의 기업이 잘 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즉 성도가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기업이 잘 되는 것입니다. 믿는 일이 잘못되면 하나님의 기업체가 잘못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믿는 일을 잘해서 열매를 많이 맺어 나가면, 하나님의 기업이 성공이 됩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악한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의 기업이 잘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기업이 아름답게 창성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많이 맺혀나가도록 힘을 써야합니다.
성도를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려고 택하심
본문 12절에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전부터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예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6절에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는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 자체가 하나님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생활이 하나님께 찬송이 돌아가도록 하여야 하고, 우리 인격이 하나님께 찬송이 돌아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성도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셨습니다.
4. 성령의 인침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믿어지는 것은 성령의 인침을 받은 증거임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믿어지는 것은 성령의 인침을 받은 증거임
본문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성령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이것이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는 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침을 받은 증거입니다. 즉 인 맞은 증거입니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는 것은 인 맞은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3:33에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 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증거’는 말씀인데 말씀의 인을 쳤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은 사람은 주께서 말씀의 인을 친 것입니다.
그 인은 성령께서 치시는데, 말씀의 인을 우리 심령 속에 쳐서 그 말씀이 믿어지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구속이 믿어지게 하시고,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지도록 성령께서 우리에게 인 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인 치셔서, 구속의 도리를 적용시켜서 죽었던 우리 영혼을 살려 중생시키시고, 우리 심령 속에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 인 맞은 것이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는 게 인 맞은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인입니다.
인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말씀임
왜 성령의 인이라고 하였는가 하면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믿어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도장을 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도장의 내용은 십자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도장을 친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는 것은 성령이 인 친 증거입니다. 성령이 인을 안 쳐주시면 아무리 믿고 싶어도 못 믿습니다. 성령이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기 때문에 믿습니다.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업의 보증으로 우리를 인치심
본문 14절에,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고, 그 사랑으로 즐거워하라고 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이익이 되든지 손해를 보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잘 먹을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잘 합니다. 그러나 굶을 때에는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겠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굶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졸졸 굶게 만들어 주신 줄 알아야 합니다. 병들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병을 주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들이 죽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랑하면 우리 아들 왜 데려가겠나?”라는 말을 합니다. 왜 데려갔겠습니까? 사랑하지 않아서 데려갔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신다면 왜 교통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만들어 놨냐?”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아서 사고 나게 하시고 병을 주신 것입니까? 마귀가 그렇게 따지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따지지 말고, 먹든지 굶든지 살든지 죽든지 건강하든지 병들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하려하심과, 또한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도록 하기 위하여, 또한 우리를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는 줄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를 회개시키고 우리가 처한 고난 가운데에서 믿음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우리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굶어 죽든 어떻게 되는 우리가 회개하고 믿음 지키게 하시려고 그러한 상황을 주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죽어도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를 기뻐하시고 다 주심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무슨 손해가 납니까? 아닙니다. 이익이 납니다. 물질은 손해 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인격적으로도 손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물질에 손해 볼 수도 있고, 인격에 손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면,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매 맞는 사람을 하나님이 데리고 쓰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손해까지도 보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 사람 편이 되어주시고 하나님이 즐거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에게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시편 84편 11절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했는데, 모든 것을 다 준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 나라와 의를 구하니까,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하시면서 모든 좋은 것을 솔로몬에게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 잘되기를 구하니까 부귀영화까지도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손해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매도 맞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감옥에 갇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멸시당하고 쫓겨나는 믿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의 것을 빼앗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돌에 맞아 죽었는데 하나님께서, 스데반 편입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들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데반의 편이고, 생명과 하나님의 영광의 역사가 스데반에게 이루어졌고, 비록 매는 맞았지만 영원한 것을 스데반에게 주셨습니다. 스데반은 또한 순교자로 천당 가서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순교자의 반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순교자의 반열은 영원한 반열입니다.
창세전에 우리를 택해 주시고 세상에 나게 하신 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안 태어났으면 뭐합니까? 우리를 택해주셨는데 무엇으로 택해 주셨습니까? 세상적으로는 우리가 아무리 못난 자들이라도 하나님의 아들로 창세전에 택함 받은 존귀한 자들입니다.
5. 하나님의 기업체만 잘되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자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체임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체임
에베소서 1장 11절에,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의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기업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우리가 기업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만물통일,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체입니다. 그러므로 기업체가 잘되면 하나님께서 잘되시고 기업체가 잘못되면 하나님이 잘 못되십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무슨 기업하는 사람에게는 그 기업체가 잘되어야 그 사람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 기업체가 잘못되면 그 사람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농사하는 사람은 농사가 잘되어야 그 사람이 잘되는 것이고, 또 공장하는 사람은 공장이 잘되어야 그 사람이 잘되는 것이고, 포도하는 사람은 포도가 잘되어야 그 사람이 잘되는 것입니다. 포도원이 실패하면 그 사람이 실패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기업이 잘되면 하나님이 잘되십니다. 기업이 잘 못되면 하나님이 잘못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대합니까? 하나님께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기업이 잘되는 것이 주인이 잘되는 것입니다. 돼지 먹이는 사람은 돼지가 잘되어야 그 사람이 잘되는 것입니다. 돼지만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사람의 기업이니까 돼지가 잘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돼지보다 나을게 없지만 우리들이 잘되어야 하나님께서 잘되는 것입니다. 우
리가 잘못되면 하나님이 잘 못됩니다. 또한 소먹이는 사람이 잘되려면 소가 잘되어야 성공합니다. 소가 잘못되면 그 사람은 실패합니다. 소가 아무것도 아니고 돼지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기업으로 하는 사람은 거기에 마음을 기울이고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정성을 투자합니다. 그것이 잘되어야 자기가 잘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인데 우리가 잘되어야 하나님께서도 잘되십니다.
우리가 잘못되면 하나님께서 잘못되십니다. 얼마나 중대합니까? 하나님 잘못되게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실패하게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못되게 나가면 하나님께서 실패하십니다. 아주 못되게 거역하고, 양심 삐뚤게 쓰고, 싸움하고 도적질하고, 못된 짓하고, 음란 방탕하고, 부모 거역하면 하나님의 일이 잘못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되 나가면 하나님의 기업체가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참 기쁘다. 내 기업이 참 잘 되는구나”하십니다.
하나님 기업체만 잘되기를 구하라
옛날 소먹일 때 콩을 먹였습니다. 콩을 섞어 주었습니다. 어떤 집은 콩을 한 바가지씩 주었습니다. 그러면 소가 콩을 먹고 살이 찌고 힘이 나서 힘써 일을 잘하는 것입니다. 콩으로 자기들 두부 해먹지 소에게 콩을 왜 줍니까? 그것은 소가 잘되어야 자기가 잘되기 때문입니다. 소가 일 잘해야 자기들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는 것입니다. 일 잘하는 소는 콩을 더 많이 먹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일하자고 할 때, 뺑 돌아서고, 수레 끌게 하면 뛰어 넘어가고, 논 갈게 하면 삐뚤게 나가는 소에게 콩을 주겠습니까? 무엇에 써먹겠다고 콩을 주겠습니까? 그런 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잡아먹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인데 우리가 잘되면 하나님께서 기뻐서 “무엇을 줄까?”라고 하십니다. 소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주어야 할까 주인이 생각하듯이, 어떤 좋은 것을 줄까? 하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업이 잘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가장 좋은 것으로 다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우리가 잘되는 것도 좋지만 누가 잘되는 게 좋은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잘되시는 게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잘되셔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또,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쇠하여야 되겠고 그는 흥해야 되겠다”(요3:30)는 정신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일, 즉, 하나님의 기업이 잘되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이 잘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기업체로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잘되어 나가야 합니다. 자기 구원이 잘되어져 나가야 되고, 개교회의 구원이 잘되어져 나가야 되고, 교단적인 구원이 잘되어져 나가야 되고, 교단적으로 선교하는 일이 잘되어져 나가야 됩니다. 또 하나님이 시키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잘되어져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기쁘셔서 “무엇으로 줄까?내가 무엇으로 줄꼬?”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그러셨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기업체가 잘되게 하려고 지혜를 구하니까, “내가 무엇을 줄꼬?”하시며 너무 좋으셔서 가장 좋은 것으로 다 주셨습니다. 솔로몬에게 부귀영화 등, 가장 좋은 것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체가 잘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줄까 하십니다. “이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무얼 더 줄까?”하시며 넘치게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회개하고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일이 잘되게 해야 합니다. 나는 쇠하여야 되겠고 그분만 흥해야 되겠다는 마음, 하나님의 기업체만 잘되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고,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다 주십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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