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1일 화요일

빌립보서 1:1-8 복음에서 교제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복음에서 교제함
빌립보서 1:1-8

1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간구할 때마
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7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1: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의 모든 성도들과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를 쓴다.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1:4 항상 너희 모두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하는 것은 

1:5 너희가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에 동참해 왔기 때문이다. 

1:6 나는 너희 가운데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 

1:7 너희 모두에 대하여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니, 이는 내가 너희를 마음에 품고 있으며, 내가 사슬에 매였을 때에나 복음을 변증하고 확증할 때에나 너희 모두는 나와 함께 은혜에 동참한 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1:8 내가 너희 모두를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시다.


1. 문안축복
바울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에 있음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기록한 옥중서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옥중서신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본문 1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라고 하였는데, 바울은 언제나 그리스도 종의 위치에 있습니다. 종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만 하고, 주인을 위하여 삽니다. 자기 것은 없고, 모든 것이 다 주인의 것입니다. 종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귀합니다.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의 종의 위치에 서서 주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고, 모든 것을 다 주님의 것으로 삼아 놓고, 주인을 위하여 충성하는 종이 귀한 종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종의 위치에 항상 있어야겠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과 같이 사랑하며 하나님의 일을 같이 해 나갔고, 디모데는 바울을 아버지와 같이 받들며 하나님의 일을 잘 도왔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하였는데, 교회는 성도가 있고, 감독이 있습니다. 감독은 장로와 목사를 가리킵니다. 장로와 목사와 집사 등을 하나님이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서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 나가게 했습니다. 즉 교회의 모든 일꾼들은 하나님이 세워서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 나가도록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함

본문 2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은혜란 구속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은혜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은혜 속에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힘입어 살고,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즉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구속의 세계에서 살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은혜 속에서 심령이 강건하여 집니다.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영적 평강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평강이 언제나 성도에게 있기를 축원한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은혜 속에 살아야 하고, 은혜 속에서 강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영적 평강을 누리면서 살아야겠습니다.

2. 복음에서 교제함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함

본문 3절에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늘 감사했고,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항상 기쁨으로 간구했습니다. 왜 빌립보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고, 또 간구할 때마다 항상 기쁨으로 간구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다음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본문 5절에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뻐한 이유는 빌립보 교인들이 복음에서 바울과 교제하였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유럽에서 전도하여 제일 처음으로 생긴 교회입니다. 빌립보에서 자주장사 루디아가 제일 먼저 믿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전도하려고 했으나 기도하는 중에 마게도냐의 한 사람이 와서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환상을 보고 빌립보로 건너갔습니다(행16:9-10).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 지방에 가서 기도할 곳이 있는가? 하여 강가에 나갔다가 여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것을 보고, 거기서 전도하였는데, 그 때에 제일 먼저 믿은 사람이 루디아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교회가 제일 처음으로 설립이 되었습니다. 즉 유럽으로 건너가서
제일 먼저 세운 교회가 빌립보 교회입니다.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고 하였는데, 복음에서 교제했다는 것은, 7절에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는 말이 있는데,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첫날부터 이제까지 너희가 참예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에서 교제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교제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빌립보 교회이기 때문에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나오고,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 항상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착한 일(중생시키심)을 시작하심 

1) 중생한 영의 특징 

본문 6절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교인들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착한 일을 시작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믿음을 선물로 준 일과, 진리와 영감으로 중생시킨 일, 즉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리고, 새 생명을 주신 것이 착한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죽었던 영혼을 살려 주신 것이 하나님이 착한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중생은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믿기 전에는 다 죽었던 영혼입니다. 그런데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죽었던 영혼을 살려서 산 영혼이 되게 하셨습니다. 

중생한 영혼 속에는 진리와 영감이 언제나 있습니다. 우리가 중생할 때에는 진리와 영감으로 중생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 속에는 항상 성령의 감동이 있고, 그리고 떠나지 않으십니다. 또 진리의 역사도 중생한 영 속에 늘 있습니다. 우리의 중생은 하나님의 신령한 역사입니다. 즉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중생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중생한 영에는 성령의 감동과 진리가 언제나 그 속에 있고, 중생한 영은 다시 죽지 않습니다. 중생한 영은 다시 죽지도 않고, 범죄하지도 않습니다. 또 하나님이 떠나지 아니하시고, 계속하여 “중생한 영”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착한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중간에 가다가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 예수의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성도를 끝까지 붙들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즉 성도를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까지 지켜주시고, 성령으로 인도해주시다가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에 주 앞에 서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시작해 놓으셨으므로 중생한 사람은 지옥에 가는 법이 없습니다. 즉 예수 믿은 사람은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착한 일은 절대 실패가 없으며, 중생한 영은 절대 범죄하지 않습니다. 범죄는 육체의
부패성이 합니다. 즉 육체의 욕심, 육체의 소욕, 육체의 일 등이 범죄합니다. 육체의 일은 육체의 소욕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공산권 내에도 중생한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이북에도 많이 있습니다. 현재는 교회로 모이지 못하게 하고,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지만, 하나님이 한번 시작해 놓으신 것은 그대로 있습니다. 즉 중생한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활동만 못하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몰래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는데,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복음의 문을 열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전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또 착한 일을 하시려고 전도자를 보내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고, 죽었던 영혼을 살려나가십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실패하시지 않고 예수님의 재림의 날까지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2) 육체의 부패성으로 죄를 지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살려놓으시고,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중생시키신 것은 오래 걸려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적이고 찰나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었다가 살았는데 그것은 순간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 것이 순간적으로 된 것이고, 말 한마디로 되는 것입니다. 죄를 끊어버리는 일은 ‘성
화’이고, ‘중생’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중생하는 것이고, 한번 중생하면 다시 죽을 수 없고, 영원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 놓으신 것이기에 죽지 않습니다.

중생한 사람도 범죄하고 타락하면 다시 죽는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러나 우리는 한번 중생하면 죽지 않고 지옥가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참된 진리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얻어 놓았습니다. 한번 믿은 사람은 다시 죽지 않습니다. 지옥에 못 갑니다. 하나님이 이끌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는데, 중생한 영혼은 진리와 영감으로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불구덩이에 들어가려 한다고 해도 아버지께서 잡아다가 못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한번 중생한 사람은 절대로 지옥 안 갑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지옥 가는 줄로 아는 것은 잘못 깨달은 것입니다. 아침에 회개했다가도 저녁에 죄짓고 죽으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가 죄짓는 것은 중생한 영혼이 죄짓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것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끊으라는 것입니다. 영혼을 거스른다는 걸 보니까, 부패성이 죄를 짓는 것이고 영혼이 죄를 짓는 게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일, 육체의 소욕, 그러한 육체의 것들이 영혼과 거스려 싸운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은 영혼이 아니고 우리의 부패성이 하는 것입니다. 몸속의 부패성이 죄짓는 것이고, 우리의 영혼은 죄짓지 않습니다. 영혼은 새 생명을 받았기에 죄를 짓지 않지만, 우리 부패성이 죄를 짓습니다. 우리의 영은 중생했지만 우리 몸은 아직 부패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한 영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중생한 영은 새사람이고, 몸의 부패성은 옛사람인데 그 둘이 늘 싸웁니다. 육체의 부패성은 죄만 좋아합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중생한 새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육체의 소욕이 죄를 지으려고 하면, 새사람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새사람이 육체의 부패성과 싸우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그렇기에 죄를 지으면 기도가 막히고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가령 병이 나거나 힘든 일을 당하여 회개하게 하십니다. 믿는 자가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회개 시키려 하실 때에는, 회개하지 않을 장사가 없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하다가 징계를 받고 바다에 빠뜨림을 당했습니다. 결국 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회개를 한 뒤에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행했습니다. 요나는 회개하고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길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회개시키십니다.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욕심 때문에 죄를 계속 지으면 구원의 요소를 다 빼앗기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지 못한 채 불붙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중생한 영혼이 몸의 구원을 이루어나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양식을 먹으며 자라남으로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어릴 때는 젖을 먹고 자나랍니다. 그러나 조금 더 장성하고 나면, 신령한 양식 즉, 단단한 식물을 먹으며 구원을 이루며 자라나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바울과 함께 은혜에 참여함

본문 7절에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라고 하였는데,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마음에 있다는 말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에 어린아이가 있는 것처럼 언제나 바울의 마음에는 빌립보 교인들이 있습니다. 어머니 마음에는 아이가 언제나 떠나지 않습니다. 나가서 일해도 어머니 마음에는 아이가 늘 있습니다. 또 아이의 마음에는 늘 어머니가 있습니다. 

1) 바울의 매임에 참여함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고 하였는데,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매임과 감옥에 갇힌 것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다 참예했습니다. 그러므로 상급도 같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같이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0:41절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빌립보 교인들이 감옥에 갇히는 일에 어떻게 참여하였겠습니까? 본문 14절에,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고 하였는데, 빌립보 교인들이 자기도 바울과 같이 감옥에 들어갈 각오를 가지고 나간 것입니다. 바
울이 하다가 못 다한 것을 “담대히 우리가 나가서 해야 되겠다”고 하며, 생명을 내어 놓고 나가서 복음을 더욱더 힘 있게 전파한 것이, 바울이 감옥에 갇히는 일에 같이 참여한 것입니다. 교인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 여러 가지로 도와주었습니다. 자기도 감옥에 갇힐 위험이 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바울을 부지런히 찾아가 만나서 위로해 주고, 물질로 공궤해 준 것 등이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에 같이 참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들도 하늘나라에서 바울과 같은 상급을 같이 받게 됩니다. 

또 한 가지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그 감옥에 갇힌 바울을 생명을 내어 놓고 도와주었습니다. 일제시대에 이기선 목사님이 신사참배 거부하다 감옥에 갇혔을 때 선천에 있는 김순실 권사 부부가 자기의 전답을 팔아서 감옥에 갇힌 이기선 목사님을 위해서 돈으로 사식을 사서 넣어주고, 의복도 해드리며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잘 이기실 수 있었습니다. 의복을 안 도와드렸다면 겨울에 추워서 얼어 죽었을지도 모르고, 또 사식을 넣어 주지 않았더라면 영양부족으로 기진맥진해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의 토지를 팔아서 잘 공궤했기 때문에 8.15해방 후에 건강한 몸으로 나오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기선 목사님이 감옥에 갇힌 데에 같이 참여한 것입니다. 그 땅을 그대로 두었다면 부자로 잘 살 수 있고, 또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지만,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종이 감옥에 갇혔는데 여기에 써야겠다”고 하며 그것을 다 팔아서 공궤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선 목사님이 감옥에서 나와서 늘 김순실 권사 부부를 잘 대접했다고 합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 같이 참여하는 방법은, 바울을 사랑해서 바울과 같이 감옥에 갇힐 각오를 하고 “바울이 하던 것을 우리가 해야겠다”고 하며 생명을 내어 놓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과,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 자기 재산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도와주는 것입니다. 즉 음식이나 의복이나 또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는 대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매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나의 매임에 너희가 같이 참여했다”고 했는데, 교역자가 고난 당할 때에 같이 참여하는 성도는 귀한 성도입니다. 바울의 매임에 같이 참여한 빌립보 교회는 바울과 같은 상급을 받습니다.

2) 복음을 변명함에 참여함 

그 다음에는 “복음을 변명함과”라고 하였는데, 복음을 변명함에도 같이 참여했습니다. 복음을 변명함이란 말씀을 밝히는 것입니다. 즉 바울의 대적자들과 싸우며 복음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4-5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
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적하는 자의 이론을 다 파하고 복음을 세워나가는 일이 복음을 변명하는 일입니다. 

3) 복음을 확정함에 참여함 

그 다음에는 확정하는 일에 참여했다고 했습니다. 확정이라는 말은 입증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1:8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는데, 확정이란 진리를 확고히 세워 나가는 일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인격을 통해서 세워져 나가야 합니다. 즉 성도의 생활에서 진리가 세워져 나가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배웠어도 진리
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진리를 배우고도 안 배운 사람과 같이 분별하지 못하고 나갑니다. “이것이 옳다, 이대로 믿어야 되겠다”는 확정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확정함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확정해서 진리의 사람, 진리의 교회를 세워나가야겠습니다. 참 진리로 교회를 세우고, 참 진리에 굳게 서는 사람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울이 하는 일인데, 여기에 빌립보 교회가 참여했습니다.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혼자 하려면 잘 안 됩니다.
또 바울이 아무리 진리를 가르쳐 주어도 빌립보 교인들의 속에 진리가 확정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교인들 속에 “이것이 옳다, 이 진리대로 믿어야 된다”고 하며 진리가 확립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참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리를 확정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먼저 교인들이 진리를 바로 깨달았고, 그 깨달은 진리대로 바른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참여했습니다.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몇 가지에 참여했습니까? 3가지에 참여했습니다. 첫째는 바울의 매임과 감옥에 갇힌 데에 참여했고, 둘째는 복음을 변명하는데 같이 참여했고, 셋째는 확정함에 참여했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이 우리도 참여해야 합니다. 즉 복음을 전하는데 참여하여야 합니다. 
강해서 출판하는데 참여하는 것도 복음을 변명하는 데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우리 강해서를 보내달라고 하는데, 앞으로 많이 보내야 될 것 같습니다. 선교하는 일에 우리가 힘을 많이 쓰는 것도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변명함과 복음을 확정함에 다 같이 참여하는 게 중요합니다. “확정함에 다 너희가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고 하였는데, 복음을 위해서 감옥에 갇히는 일이 큰 은혜이고, 감옥에 갇힌 것보다 죽는 것이 더 큰 은혜입니다. 순교는 제일 큰 은혜입니다.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참여하여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진리의 교회를 세우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에 참여하다가 하늘나라에 가야 하겠습니다. 

빌립보 교인을 향한 바울의 뜨거운 사랑

본문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는 것을 볼 때,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뜨거운 사랑이 어떠한지 알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러한 심정을 가진 것은 바울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증거입니다. 교역자가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교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보서 2:17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믿음의 제물로 하니님께 바치고 봉사한다고 하면, 바울은 자신의 피를 그 위에 쏟아 붓는다고 할지라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이 우리에게도 있어야겠으며, 이런 사랑이 없는 것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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