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이다
갈라디아서 1:11-24
갈라디아서 1:11-24
11형제들아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14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 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 일을 유할새 19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21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23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1: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는데,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다.
1:12 나는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지도 않았고, 배우지도 않았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았다.
1:13 너희는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한 행실을 들었으니,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으며 파괴하려고 하였다.
1:14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많은 동년배보다 유대교에서 뛰어났고, 내 조상들의 전통에 대해 훨씬 더 열심 있는 자였으나,
1:15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1:16 자기 아들을 이방인들 가운데 전하게 하시려고 그분을 내 안에 나타내기를 기뻐하셨을 때, 나는 곧 혈육과 의논하지도 않았고,
1:17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으며,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다.
1:18 그리고 삼 년 후에 나는 게바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와 함께 십오 일을 지냈으나,
1:19 주님의 형제 야고보 외에 사도들 중 다른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하였다.
1:20 보아라,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데, 내가 너희에게 쓰고 있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1:21 그 후에 나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역으로 갔다.
1:2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에게 내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
1:23 다만 그들은 "전에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파괴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하고 있다." 하는 소문을 듣고,
1: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1:12 나는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지도 않았고, 배우지도 않았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았다.
1:13 너희는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한 행실을 들었으니,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으며 파괴하려고 하였다.
1:14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많은 동년배보다 유대교에서 뛰어났고, 내 조상들의 전통에 대해 훨씬 더 열심 있는 자였으나,
1:15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1:16 자기 아들을 이방인들 가운데 전하게 하시려고 그분을 내 안에 나타내기를 기뻐하셨을 때, 나는 곧 혈육과 의논하지도 않았고,
1:17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으며,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다.
1:18 그리고 삼 년 후에 나는 게바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와 함께 십오 일을 지냈으나,
1:19 주님의 형제 야고보 외에 사도들 중 다른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하였다.
1:20 보아라,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데, 내가 너희에게 쓰고 있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1:21 그 후에 나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역으로 갔다.
1:2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에게 내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
1:23 다만 그들은 "전에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파괴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하고 있다." 하는 소문을 듣고,
1: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1. 직접 계시 받은 바울
하나님께 받은 복음임을 증거
하나님께 받은 복음임을 증거
본문 11-12절에 “형제들아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하랴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해 주신, 하나님이 직접 주신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지어낸 것도 아니고, 사람이 연구해서 터득한 것도 아니고, 객관적인 계시로서 하나님이 직접 복음을 사도 바울과 다른 사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다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고 사람의 지식에서 나왔는데, 기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주신 계시의 종교입니다. 복음도 하나님이 직접 주신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 직접 받아서 이 복음을 너희에게 전했다고 확실히 증거 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의 잘못
이 말씀을 가지고, 신비주의자들은 자기도 바울과 같이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직접 받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도와 선지자들은 표준계시를 하나님께 직접 받아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도시대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성경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고, 표준계시는 사도시대에 종결이 되었습니다. 사도 시대 이후에는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고, 표준계시는 사도시대에 종결이 되었습니다. 사도 시대 이후에는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1-2절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날 마지막에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와서 우리에게 계시를 주셨는데, 그 계시를 사도들을 통해서 성경에 기록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는 이 말씀에 더해도 안 되고 감해도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가감을 하면 하나님 앞에 벌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표준계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주셨는데, 그것을 사도시대까지 종결시키신 것입니다. 사도와 그 수종자들에게까지만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로는 성경과 같은 표준계시가 없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직접 주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베드로서는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계시의 말씀이고, 복음서들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여러 성경들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 진리를 배울 때에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말씀으로 믿고 배워야 합니다. 또한 성경을 배울 때,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내게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 앞에 우리가 꺼꾸러져서 회개하고 자기가 바로 설 것을 바로 서고, 고칠 것을 고치고, 감사할 것을 감사하며, 말씀으로 생명을 삼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를 믿기 전의 바울
본문 13절의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라고 하였는데 예수 믿기 전의 일을 바울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고 잔해하던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바리새교에 있을 때, 유대교에 열심이 있었습니다. 믿기 전에는 복음을 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복음을 주셨다는 것을 믿기 전의 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믿기 전에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한 것을 바울은 늘 원통히 생각하면서 회개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3-15절에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믿기 전에 하나님의 교회를 훼방하고 성도를 핍박하던 포행자였던 것을 늘 생각하면서 회개하고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죄를 늘 원통히 생각했습니다. 그 전에만 괴수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하나님 앞에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괴수라고 한 것입니다. 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충성되이 섬겼습니다.
바울의 사명과 우리 각자의 사명
본문 15-16절에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모태로부터 택했다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는 ‘창세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모태로부터 바울을 쓰려고 택했다고 하셨습니다. 쓸 만한 그릇으로 삼기 위해서 합당한 재능과 은사를 바울에게 주고, 모태로부터 쓸 만한 그릇으로 택하시고, 다메섹에서 회개시키시고 하나님이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불러준 목적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사명을 주시려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실 때에 그 부르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려고 부르셨는가?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이 다 다릅니다. 유대 사람을 위해서 세운 베드로와 같은 사람도 있고, 사도바울과 같이 이방인을 위해 세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와 같이 모든 성도도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이 다 있습니다.
부르신 원 목적은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에 두어야 합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있는 사명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 보면 다섯 달란트 맡긴 사람이 있고, 두 달란트 맡긴 사람이 있고, 한 달란트 맡긴 사람이 있습니다. 안 맡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복음에 대한 사명을 다 맡겼습니다. 자기 민족을 위해서 일할 사명을 맡긴 사람도 있고, 이방, 외국에 나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맡긴 사람도 있습니다. 다 맡겼다는 것입니다. 찬송가에 있는 것과 같이 멀리 가서 이방 사람 구원하지 못하나 네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습니다. 멀리 가서도 전해야 하고, 가까운데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맡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아론과 훌과 같은 사람은 모세를 도와서 모세의 팔을 들어주면서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 나가는 사명을 감당해야 되겠습니다. 사르밧 과부와 같은 사람에게 엘리야를 공궤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 일을 잘 해나갔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몫 쓰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 줄 알아야 합니다.
집에 가면 여러 가지 기구들, 그릇들이 많이 있습니다. 압력솥도 있고, 바가지, 대야, 주전자, 대접, 접시, 종지 그릇, 다 있습니다. 그것들을 쓰려고 가져다 놓은 것이지 가만히 두려고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집에는 술병만 수두룩하게 진열해 놓은 집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집인데 술은 안 먹을 텐데 왜 술병이 많을까하고 물어보니, 빈 병이라고 합니다. 진열장에 보기 좋으라고 가져다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보시오, 보기 좋아도 다른 것을 가져다 놓아야지, 술병을 가져다 놓은 것이 말이 되느냐? 예수 믿는 사람이 술 안먹는 것을 뻔히 아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보면 이 집은 술만 많이 사다 먹어서 병이 가득하다 하지 않겠느냐? 당장 집어내라”고 했습니다. 아주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부르신 목적은 이방인을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셨습니다. 복음 전하는데 각자의 사명이 다릅니다. 가까운 데서 전할 사람, 먼데서 전할 사람, 밖에 나가 전할 사람, 여러 가지로 사명이 다 다른데,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쓰지 않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못 쓸 그릇은 집에 둘 필요가 없습니다. 다 집어 내버려야 합니다. 집에 놓아 둔 것은 하나님이 쓰시겠기 때문에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에 쓰려고 나를 부르셨을까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바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려고 하시는 그 자리에 이용을 당해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다 쓰려고 하시는데 저기가면 안 되고, 반대로 저기에 쓰려고 하시는데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숟가락은 밥 푸는데 써야지 다른데 쓰면 안 됩니다. 젓가락은 젓가락질하는데 써야지 밥 푸는데 쓸 수 없습니다. 각자가 다 적재적소가 있습니다. 적절히 맡은 바 사명이 다 있는데, 그 사명감을 깨닫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이 구원 운동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해야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바울은 그래서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2. 복음 전파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과 직접 해결
본문 16절 하반 절에 “내가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람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무슨 문제나 사람과 의논하려면 일이 안됩니다. 직접 하나님께 찾아가서 하나님과 직접 해결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직접 해결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사람과 의논해 봐야 어디에 쓰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사람을 찾아다니며 의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한테 가서 의논하고, 또 저 사람한테 가서 의논하고, 또 다른 사람들, 친구들 모아 놓고 물어보고, 식구들 불러놓고 물어보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일이 안됩니다.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께 자기 죄를 회개하고 직접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밝히 알아서 하나님과 더불어 해결해 나가야합니다. 바울이 아라비아로 가서 직접 하나님과 더불어 깊은 교제를 하며 거기서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3년 걸렸습니다. 3년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고, 직접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많은 진리를 거기서 연구하고 깨닫고 바로 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 생길 때, 물론 교역자에게 가서 의논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 직접 해야 합니다. 이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봐야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바로 못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바로서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해결할 것
자기가 바로 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인데, 사도 바울처럼 아라비아에 가서, 하나님께 직접 부르짖는 것이 있어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백 사람한테 물어봐야 자기가 바로 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바로 서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개는 자기가 바로서면 해결됩니다. 문제는 자기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막히는 것도 언제나 자기 때문인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자기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바로 서고,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 속에서 머물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웬만한 것은 하나님께서 바로 세워 주십니다. 사람이 바로 세울 수 없는 문제라도 자기가 깊은 기도를 하고, 기도하면서 회개하고, 바로 설 바를 바로 서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있고, 온유하고 사랑이 충만하고, 하나님 말씀을 바로 깨닫고 나가면, 여러 가지 얽혀 있던 사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던 것들이 술술 다 풀려나갑니다. 문제는 자기에게 있습니다.
아라비아에서 3년간 직통해결
그러므로 바울이 혈육과 더불어 의논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기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예 아라비아에 가서 3년 동안 하나님께 직통으로 해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결이 다 되었습니다. 아라비아에 가기 전에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메섹에서 회개하기는 했지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어제까지 핍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무슨 수를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전부 오해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말로 잘 설명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라비아에 가서 아예 하나님과 더불어 해결해서, 자기가 과거의 모든 것을 회개하고 많은 것을 깨닫고 바로 섰다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오니까 술술 다 풀려나갑니다. 하나님이 바나바를 보내서 예루살렘에 가서 바울을 소개하게 만드셨습니다. 바나바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예루살렘 사람들이 바울 말은 신용하지 않아도 바나바의 말은 신용합니다. 바나바는 좋은 사람이고 믿음이 독실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서 일만 마디 말하는 것보다 예루살렘에서 바나바가 한 마디 말하는 것이 도리어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안디옥에서 가르침
그리고 바울이 고향 다소에 가 있었는데, 바나바가 다소에 있는 바울을 찾아서 안디옥에 같이 유하면서 성경을 일 년 간 가르쳤습니다. 바울에게 성경 가르칠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만일 바울이 혼자 가서 성경 가르치겠다고 했다면 교인들이 모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 사람 무슨 꿍꿍이로 나왔는지 모른다고 했을 것입니다. 바나바가 앞장서서 사람들을 모으고, 바나바가 가르치고 그 다음에 바울이 가르쳤으니 일이 술술 잘 풀려나간 것입니다. 바나바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 때 바울이 혼자 가서 안디옥 교회 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착하고 믿음이 독실하고 진실한 바나바라는 사람을 이렇게 내세워서 바울을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소개하게 만드시고, 또 성경 가르칠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성경 가르쳤을 때 얼마나 잘 가르쳤겠습니까? 바나바보다 바울이 가르치는 면에는 썩 낫습니다. 바울은 아라비아에 가서 하나님께 직접 받은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접 받아서 가르치기에 아주 우수한 강의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안디옥에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바울이 가르치는 것을 듣고 많이 믿었습니다. 거기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처음으로 생겼습니다.
그것을 보면, 아라비아에 가서 삼 년 동안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며 교제한 결과 좋은 결실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바울은 다른 사도에게 배우지 않음
본문 18-19절에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 일을 유할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아라비아에 갔다가 돌아와서 예루살렘에 있던 게바를 찾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베드로가 수제자이므로 베드로를 한번 가서 찾아뵈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베드로와 더불어 신앙적 교제를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을 해서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를 찾아보고 십 오 일 동안 같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는 다른 사도들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왜 못 만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모든 제자들을 다 찾아봤을 것 같은데, 제자들 가운데는 베드로 한 사람만 만나보고 아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주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 감독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 때 감독이었던 야고보를 만나봤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그 다음에도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라비아에 갔다 와서도 십 오 일간 베드로와 같이 있었을 뿐이고 다른 사도들은 만나보지 못했으므로 언제 배웠겠습니까? 예수 믿기 전에는 핍박하느라 못 배웠고, 믿은 다음에는 아라비아에서 삼 년 있었고, 아라비아에 갔다 와서는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와 십 오 일 있었던 것뿐이고, 다른 사도는 하나도 만나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울 시간이 없었습니다.
진실한 바울
본문 20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라고 했는데, 진실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언제나 진실한 말을 합니다. 진실한 것은 언제나 이기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5절에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진실이 이깁니다. ‘거짓’은 가다가 반드시 탄로 날 때가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진실이 언제나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선 목사님은 기독교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로 중요한 것도 진실, 셋째로 중요한 것도 진실이라고 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진실하면 하나님 편이고, 거짓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이고 거짓의 아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진실하므로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진실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반드시 성공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진실 하라는 말입니다. 진실하게 끝까지 나가면 사람들도 알아줍니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처음에는 조금 속지만, 조금 가면 속지 않습니다. “저 사람 또 거짓말 한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 가면 거짓말하는 사람은 생명이 다 없어집니다. 얼마가면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첫째도 진실이고, 둘째도 진실이고, 셋째도 진실입니다. 진실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털끝만큼도 거짓이 들어가면 하나님이 내버리시고 심판하십니다. 거짓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진실하면 하나님 편이므로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진실함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해 나가야겠습니다. 바울도 진실함으로 모든 것을 해나갔습니다.
회개하고 바로 서서 복음을 전하자
본문 21-24절에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 바울을 얼굴로 보지 못했지만, 전에 핍박하던 바울이 회개하고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전한다 함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전에 핍박하던 바울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전에는 핍박했지만, 회개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고, 복음을 전하는 이 세 가지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얼굴을 보지 못하던 사람들도 바울의 소식을 전해 듣고는 다 기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도 회개하고 바로만 서서 복음 전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잘 해 나가면, 얼굴 보지 못한 사람들도 다 그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유익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유익을 보게끔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만나보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못 만나보았지만, 그 사람이 전에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고, 복음을 바로전한다는 사람에 대해서는, 보지 못했어도, 멀리서도 다 그 사람을 흠모하고 사모하고,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이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철저한 회개, 말씀에 바로 서는 것,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구원 운동에 협력해서 복음을 전한다면 보지 못한 사람들도 다 기뻐하고 보기를 원하고, 어떻게 하든지 도와줄 생각이 납니다. 복음 전파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회개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고, 복음을 바로 전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많이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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