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9일 수요일

히브리서 11:7 신령한 방주를 지으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신령한 방주를 지으라
히브리서 11:7

7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창세기 6:9-14
9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 이었더라 13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1. 말세에는 노아의 때와 같음

노아는 아담의 십대손입니다(눅 3:36-38).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충만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하셨습니다(창 6:13). 창세기 6:11에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고 하였는데, 패괴하다는 것은 부패했다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도 말세에는 노아 때와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4:37-39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도 이 세상이 노아시대와 같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땅에 죄악이 가득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2. 노아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구원받음

히브리서 11:7에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라는 것은 장차 하나님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물로 심판한다”고 경고를 하셨는데,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
을 믿고 방주를 예비하여, 하나님이 말씀대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실 때에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만든 기간은 얼마일까요? 창세기 6:3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는데,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는 것은 그 때부터 120년 후에는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때에는 노아가 방주 짓기 전입니다. 즉 하나님이 노아에게 나타나시기 전입니다. 창세기 5:32에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고 하였는데,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홍수는 노아가 육백 세 때에 났습니다(창 7:6). 창세기 6:13-18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나타나셔서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실 때에, 그 방주에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과 자부가 다 들어가게 하신다고 약속 했습니다(창6:18). 따라서 방주 지으라고 명하신 때는, 노아의 세 아들들과 자부들이 이미 있을 때입니다. 노아가 세 아들을 오백 세 된 후에 낳은 후, 모두 결혼한 다음에 방주 짓기 시작했으니 아들들이 자라나서 결혼하기까지 삼십 년 정도 걸렸다고 하면, 오백 삼십 세 즈음에 방주를 짓기 시작했다고 보고, 육백 세에 홍수가 났으니까, 방주 짓는 기간은 약 70년 정도 됩니다.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
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라고 하였는데, 노아는 앞으로 세상을 물로 심판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는 말씀을 노아가 그대로 믿고 순종했습니다. 노아는 앞으로 오는 심판에 대한 경고와 구원받는 길을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다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될 것을 믿고 방주를 예비했습니다. 즉 “이 세상을 하나님이 물로 심판하실 것이다, 구원받는 길은 방주를 짓는 것이다”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믿고 순종했습니다.

3. 하나님의 명령대로 신령한 방주를 지을 것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앞으로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잘 받아 믿는 일을 해야 합니다. 노아시대에는 물로 심판하셨지만 앞으로는 불로 심판한다는 것을 알고 신령한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13-15에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불심판이 올 것입니다. 믿음을 잘 준비해서 불심판을 예비하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10:37-38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예수님이 오십니다.
베드로후서 3:7-10에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온다고 하였고, 그 때에는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 준비를 잘 하여야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매일 방주를 지었습니다. 약 70년간 매일 일꾼들을 불러서 방주를 짓는 것입니다. 노아는 재산을 방주를 짓는데 다 투자했습니다. 노아의 며느리들은 일꾼들 밥 해주느라고 매일 나가서 수고했습니다. 또 노아의 세 아들은 방주 짓는 것을 감독했습니다. 다른 것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물 심판으로 다 없어질 것이기에, 살 길은 방주 짓는 것이며, 여기에 생명이 달려 있음을 믿었습니다.

방주를 지을 때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짓는 게 아닙니다. 즉, 말씀대로 지어야 됩니다. 창세기 6:14-16에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방주의 신령한 뜻은 무엇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초보적인 해석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방주 짓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것이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으면 다 방주를 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무슨 짓을 해도 구원받는다”는 오해가 들어오기 쉽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3:15에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하였듯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믿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불붙는 집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나온 것과 같은 구원을 얻습니다. 사도바울 같은 사람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바를 순종하는 것이 믿은 일을 하는 것으
로서 곧 방주를 짓는 것입니다. 즉 “구원을 이루어나가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에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방주를 짓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영적 성전을 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초보적인 것으로 “믿으면 된다, 구원받았다”고 하며 죄만 지으며 신앙생활 하는 것은 망하는 길이고, 불타지고, 없어질 것으로 결국 비참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는 것, 세상을 이기는 것, 영적 성전을 지어 나가는 것이 신령한 방주를 짓는 것입니다.
학개 1:8에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산에 올라가라는 것은 신령한 시온산에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나무를 가져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으로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방주 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시온산에 올라가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영적 시온산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목사들부터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영적 시온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면, 교인들은 그 나무를 받아서 영적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방주 짓는 것입니다.

토요일에 우리 경기도 광주기도원에 48명의 목사들이 기도하러 나왔습니다. 대전에서도 오고, 천안에서도 오고, 여러 곳에서 왔는데, 기도실에서 기도하면서 신령한 시온산에 올라가 거기에서 나무를 가져다가 즉, 신령한 진리의 말씀을 받아다가, 주일날 모든 성도에게 나누어 주고, 성도들은 교역자와 같이 그 말씀대로 영적 성전을 지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시온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나무가 없습니다. 그러면 영적 신령한 시온산에 올라가기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기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또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대로 해야만 성전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즉 방주가 만들어 집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야 됩니다. 즉 하나님이 지키라고 하는대로, 그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있어서, 보편적으로 지킬 말씀이 있고 또 특별히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것을 지켜야 됩니다. 보편적으로 지켜야 될 말씀은 주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를 잘 드리고,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또 십계명을 잘 지켜야 됩니다. 그 다음에 개별적으로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지켜야 됩니다. 그래야 영적 성전이 건축됩니다.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모세로 말하면 바로 왕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달라고 하는 것이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고 할 때에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엘리야에게는 “그릿 시냇가로 가라”, “갈멜산으로 가서 거짓 선지자를 숙청해라”,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가라”고 할 때에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엘리야가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영접해서 공궤하라”고 할 때에 엘리야를 영접하여 공궤하는 것이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잘 참아라”고 할 때에, 잘 참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라고 할 때에,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당나귀를 바쳐라”고 하면 당나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게 하나님 뜻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에서 너무 핍박이 심하므로 도망쳐 나갈 때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버리고 가는 양떼를 위해 다시 십자가를 지러 로마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회개하고 다시 로마에 돌아와서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 당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베드로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일하기 싫은 사람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말씀을 통하여, “일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잘 찾아서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방주를 짓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2-13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재료가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으로 그 중에 불에 안타는 재료는 금, 은, 보석이고 나머지 재료는 불에 타는 재료입니다. 성전을 지을 때에 불에 안 타는 재료로 지어야 됩니다. 불에 타는 재료로 지은 것은 불에 타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방주를 지을 때에, 불에 안 타는 재료로 지으라는 것입니다. 금, 은, 보석으로 짓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짓는 것입니다. 즉 진리와 영감으로 지어 나가는 일,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으로 지어나가는 일이 금, 은, 보석으로 짓는 것입니다.

금, 은, 보석으로 짓는 것은 자기가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또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명예영광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자기 명예영광을 위하거나, 또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 것은 나무, 풀, 짚으로 짓는 것으로 전부 다 불에 타서 없어집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희생함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것이 금, 은, 보석으로 짓는 것입니다. “죽으라”고 하면 죽는 것입니다. “내 놓아라”고 하면 다 내 놓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가라”고 하면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는 것입니다. 방주 짓는 것은 제 힘으로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방주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먹으라” 하면 먹고, “굶으라” 하면 굶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자신을 잘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강하게, 거룩하게, 진리와 영감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이 신령한 방주를 짓는 것입니다. 신령한 방주를 잘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노아 때에 하나님이 홍수 심판을 칠일 전에 알게 해주셨습니다(창7:4). “이제 칠일 후면 홍수가 임한다, 다 배에 들어가라”고 해서 노아 가족과 짐승들이 다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칠일 후에 밤낮 40일간 비가 와서, 땅 위의 호흡 있는 자는 다 죽고 방주에 탄 여덟 사람과 짐승만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방주 짓는 일을 잘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믿는 일은 방주 짓는 일입니다. 방주 안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역청으로 칠하라고 했는데, 세상이 배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즉 세상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세상을 발로 밟고,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요일 5:4). 배가 항해하려면 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세상에 살지만 배가 물 위로 가는 것처럼, 세상을 밟고 그 위로
걸어가야 됩니다. 앞으로 대환난이 오는데, 대환난이 오면 그 환난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환난을 발로 밟고, 그 환난을 이기며 걸어가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환난을 이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많이 닮아가므로 자기를 잘 만들어 나가면, 앞으로 올 대 환난을 발로 밟고 승리적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을 길러나가는 것이, 믿음의 방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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