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로마서 12:1-3 하나님께 바치는 몸과 마음의 산 제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께 바치는 몸과 마음의 산 제사
로마서 12:1-3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1.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몸과 마음을 바치는 영적예배

본문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는 구원론 전체를 말하는데, ‘은혜로 택해주시고, 그리스도를 믿게 해주시고, 믿음으로 구원받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해주신 이런 큰 은혜를 주셨으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는 구
원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몸’이라 하는 것은 육신도 가르치고, 마음도 가리킵니다. 중생한 영이 사용하는 거룩한 마음, 그 마음에 이용되는 거룩한 몸을 말하는 것인데, 그 거룩한 마음과 거룩한 몸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중생한 영혼의 인도를 따라서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산 제사는 거룩한 제사이고 영적 예배입니다. 

몸을 산 제물로 바치는 역사

우리 몸이 어디에 사용되든지 그 사용되는 것의 종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6장 13절에,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고 했고, 본문 16절에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6장에 ‘의의 병기’와 ‘불의의 병기’가 나오는데,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사용할 수도 있고, 의의 병기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죄의 병기로 사용할 수 있고 의의 병기로 사용할 수도 있는데,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언제나 드리라고 하십니다.
‘거룩한 산 제물로 삼으라’, 하나님께 바쳐놓는 것, 이제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 다 바쳐놓고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겠습니다. 영에 이용되는 몸, 성령에 이용되는 몸, 항상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야 되겠습니다.
산 제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 생명이 있는 제사, 살아 역사하는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살아서 역사하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산 제사, 산 역사, 산 운동력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명륜교회의 어떤 청년 하나가 군대에 가 있었는데 휴가 나와서 저한테 찾아왔습니다. 제가 부대에서 성경 가르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못 가르친다고 합니다. 얼마나 섭섭한지, “여기서 신학교까지 졸업했는데 가서 가르쳐야지 왜 못 가르치느냐? 가르치는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산 역사가 있으면 안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안 가르치는 걸 보면 산 역사가 없는 모양입니다. 가르치면 살아 역사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씀 순종’하는 것인데,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 역사하는 산 제사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2. 마음을 새롭게 하며 변화를 받으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본문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고, 빌립보서 2장 15절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4절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시며,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17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정욕대로 나가지 말 것과 안목의 정욕대로 나가지 말 것, 이 세상의 자랑으로 나가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 것들이 다 어디서 왔습니까? 마귀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세대가 지금 말세가 되서 노아시대와 같고, 소돔 고모라 시대와 같이 되었는데, 이 세대를 본받으면 이 세상과 함께 망합니다. 노아시대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세대가 지금 얼마나 악한 세대가 되었고, 얼마나 음란방탕한 세대가 되었습니까? 지금 이 세대가 얼마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시대가 되었고, 노아의 시대와 같이 먹고 마시는 시대가 되었습니까?
음식점, 술집 이런 모든 곳들이 먹고 마시는 곳입니다. 다니다 보면 매일 하나씩 늘어납니다. 또 뭐가 늘어납니까? 노래방 같은 곳들, 술 먹고 가서 노래 부르는 곳들입니다. 요새는 가족들이 다 같이 가서 아이들 데리고 노래 부른다고 합니다. 얼마나 찬송을 안 불렀으면 그렇게 됐는지 교회 나간다는 집 아이가 5살이 되었다는데, 찬송해보라니까 찬송은 못하고 세상 유행가만 부릅니다. 아이에게 찬송가는 안 배워주고 이게 말이 되겠습니까? 유행가를 배우게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찬송을 배워줘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로 마음의 변화를 받아 분별하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라는 것은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인데, 육신 중심으로 나가던 것을 영을 중심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것이 영에 속한 것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령의 인도하시는 대로 나가는 마음, 이러한 마음으로 새롭게 되라는 것입니다.
‘변화를 받아’라고 했는데, 마음부터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기뻐하시는 뜻,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인가, 어떤 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인가 그런 것을 잘 분별해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나가야만 합니다.
몸을 바쳐놓고, 그 다음에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마음이 변화가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몸을 언제나 산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영적 제물로 바쳐서 영의 역사에 이용당하는 몸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아예 몸 바쳐 놓고 믿어야 됩니다. 몸이 자기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4장 7절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

본문 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하라고 하십니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고 하십니다. 높은 마음을 품으면 시험에 빠집니다. 시편 131편 1절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높은 마음을 품으면 다 망합니다. 허영심이 높은 마음인데, 마귀가 허영심과 높은 마음을 품은 사람을 미혹해서 멸망시킵니다. 그러니까 낮은 데 처해야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자족을 배우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언제나 예수님을 본받아 나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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