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에 맺히는 열매
요한복음 15:4-19
요한복음 15:4-19
15:4 내 안에 거하여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15:5 내가 곧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들이다. 그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으니, 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5:6 누구든지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는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게되고,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운다.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너희가 원하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너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15: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어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안에 거하여라.
15: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켜서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과 같이 너희가 내 계명들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이다.
15:11 내가 너희에게 이것들을 말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한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5:12 "내 계명은 이것이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15: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이다.
15:15 내가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아니할 것이니, 종은 자기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 불렀으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으니, 이는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고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5:17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명령하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다. 그러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1. 포도나무에 열매를 맺으라
예수님은 양의 문지기이시며, 우리의 목자가 되시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를 받으며 예수님을 따라가야 되고, 우리 가운데 있어야 되며, 또 문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다른 문으로 넘어가는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서 오지 않은 것은 전부 절도요 강도입니다. 이것 때문에 망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온 것만, 말씀대로 온 것만, 주님이 허락하신 것만, 그 안에 들어오면 전부 생명입니다. 그러나 다른 데로 넘어오는 것, 즉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또 가족이나, 계하는 것이나, 무엇이든지 예수님을 통해서 오지 않은 것은 전부 절도요 강도입니다.
어떤 교인이 계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곗돈 물어나가느라고 밤낮 바느질하고 있습니다. 믿음도 못 지킵니다. 십일조도 안 합니다. 밤낮 바느질하면서 곗돈 물어나가느라고 연보도 못하고, 심방도 못하고, 그렇게 돌아가다가 계가 깨졌습니다. 어떻게 깨졌는지 모르겠으나 심방 가서 참 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도 그렇다고 인정을 합니다. 그 때부터는 계를 안 들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바로 섰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마음으로 예수님을 떠나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전도하는데 힘이 없고, 심방 가는데 힘이 없고, 기도하는데 입이 안 떨어집니다. 그래서 심방 갈 때에는 “오늘 나, 기도 시키지 마십시오”라고 미리 부탁을 합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돌아다니는데 입이 떨어질 수가 있나요. 예수님과 더불어 동행하며,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은 전도하면 말씀도 술술 나가고, 심방할 때에 기도도 술술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떠나면 심령이 뻑뻑하게 말라집니다. 찬송가를 부르라면 자기의 심령이 말랐으므로 무슨 찬송가를 부르는가 하면 “가물어 메마른 땅”만 부릅니다. 또 결혼식 집에 가서 찬송을 부르라고 하면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이 찬송을 불러 신랑, 신부를 다 울려놓습니다. 제 속에 근심이 많으므로 속에 있는 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말라진 것이 분명하죠? 왜 말라졌습니까? 원나무에 붙지 않아 진액이 통하지 않아서 말라졌습니다. 진액만 통하면 생기가 납니다. 생기가 나서 펄떡펄떡합니다. 예수님과 진액이 통하면 새 힘이 나고, 독수리와 같이 올라가고, 영적 평안이 오고, 기쁨이 넘칩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서 진액이 통하면, 즉 생명이 통하면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그러면 깨끗에서 깨끗으로, 점점 더 깨끗해져 나가며 자라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열매
그러나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는 자는 열매를 못 맺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열매입니다. 포도나무 농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열매를 바라보고 포도나무 농사를 합니다. 포도나무를 길러서 무슨 재목으로 쓰려는 것도 아니고, 무슨 가구를 만들어 쓰려는 것도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다만 열매 하나 바라 보고 심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로 무슨 집을 짓겠나?, 무슨 가구를 만들겠나?, 무슨 도구를 만들겠나? 아무데도 못 씁니다. 열매 하나 보고 심어 놓았는데 열매가 없으면 그것은 전부 불에 태우는 장작감 밖에는 못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열매 하나 보고 이 포도 동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 우리가 포도나무 가지가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포도나무 과수원을 만든 목적이 열매를 맺으라고 만들었고, 또 울타리를 두른 것도 열매를 바라 보고 해주신 것입니다. 가지를 전정해주고, 잡초를 제거해 주시고, 소독을 해주는 것도, 물을 주는 것도, 비료를 주는 것도 열매를 바라보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지 못하면 다 쓸데 없는 것으로 불에 태웁니다. 열매만 잘 맺히면 비료를 더 많이 주고, 물도 더 많이 주고, 짐승이 와서 따 먹을까봐 울타리도 더 든든하게 해줍니다. 열매만 잘 맺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즙 짜는 틀도 만들어 놓고, 여러 일꾼들을 붙여놓습니다. 열매 하나 보고서 원수 오지 못하게 막아 주고, 또 못쓸 가지는 잘라내 버리고, 그 다음에 벌레가 먹으면 소독해 주고, 또 마르면 물 주고, 또 기운이 없으면 비료 쳐 주고, 또 사람이 많이 필요하면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도 하나님이 열매 하나 바라 보시고 이만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교회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교회들이 열매 맺게 하시려고 지금까지 지켜주신 것입니다. 열매 맺게 하시려고 안 될 것 같은데 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열매 맺게 하시려고 못 살 것 같은데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또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보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석유 한 방울이 나나, 원자재가 있나, 안 될 것 같은데 자꾸 되어 나갑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중국에서 한국을 본받는다, 러시아에서 본받는다, 독일에서 본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만큼 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왜 되게 해주셨습니까? “교회가 열매 맺으라, 성도들이 열매 맺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 기도원 주신 것도 왜 주셨습니까? 여기 와서 신령한 생명의 단비를 받아서, 말씀을 받아서 열매 맺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까?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해주신 것은 열매 맺으라고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입니다.
열매를 잘 맺었습니까? 어떤 사람은 말라 비틀어진 것도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열매 안 맺고 못 되게 돌아가다가 말라져서 불태움을 받습니다.
열매를 맺는 방법
열매를 맺는 방법
본문 6절에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원나무에서부터 진액을 받지 못하고 말라지는 가지가 되면, 즉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말씀으로 생명을 삼지 아니하면 말라지는데 말라지면 사람이 가져다가 불사릅니다. 즉 환난 가운데 빠진다는 것입니다. 불사른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붙어서 환난을 준다는 것입니다. 불사른다는 것은 불같은 시험, 불같은 환란을 말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갖다가 불에 던져 사릅니다. 불 붙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절반 불이 붙고 있는 사람도 있고, 불에 던지워져서 지금 거의 다 불 붙은 사람도 있고, 또 조금 붙기를 시작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대로 열매 안 맺었으므로, 말라 비틀어졌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회개하고 이제는 열매 맺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열매 맺으려면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야 되고,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되어야 되고,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내 속에 역사해야 자라나기도 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과 교통이 잘 안 됩니까? 그것은 막힌 것이 있어서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앙망하고, 예수님만 사모하고, 그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말씀을 순종하면 새 생명이 자라
나고 열매가 맺힙니다.
포도나무의 열매는 예수님의 열매, 성령의 9가지 열매임
그러면 포도나무의 열매는 무엇인가? 포도나무 열매는 선한 열매이고, 예수님의 열매이고, 깨끗해지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깨끗해지는 것이 포도나무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열매, 성령의 열매가 포도나무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포도나무 열매는 성령의 열매도 맺히고, 또 예수님의 열매도 맺힙니다.
예수님의 열매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는데 온유, 겸손이 예수님의 열매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시며 제자들을 가르쳐 주신 일이 예수님의 열매입니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열매입니다. 또 선한 열매가 예수님의 열매입니다. 선한 열매를 맺지 않는 자는 찍어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2.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됨
본문 7-8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으면서 원하는 대로 구하면 다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나 정욕대로 잘못 기도하는 것은 안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또 그리스도의 말씀이 안에 있는 사람은 정욕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구합니다. 예수님의 말이 그 안에 거하므로 말씀대로 구할 것이 아닙니까? 말씀대로 살기를 구하면 하나님이 다 이루어주십니다. 즉 말씀대로 이루어 나가기를 원하면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십니다. 말씀은 만능입니다. 그러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은 말씀대로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그 속에 없는 증거입니다. 말씀이 그 속에 있으면 다 주십니다.
그 다음에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또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어야 예수님의 제자로서 배워 나갑니다. 즉 예수님을 배워 나갑니다. 제자는 선생을 배워나가는 사람입니다. 과실을 많이 맺으면 누가 영광을 받아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습니다. 과실을 맺으면 첫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 다음에는 우리는 예수님의 것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참 제자, 즉 예수님을 닮아가는 참 제자가 됩니다.
3.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함
그 다음에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또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어야 예수님의 제자로서 배워 나갑니다. 즉 예수님을 배워 나갑니다. 제자는 선생을 배워나가는 사람입니다. 과실을 많이 맺으면 누가 영광을 받아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습니다. 과실을 맺으면 첫째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 다음에는 우리는 예수님의 것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참 제자, 즉 예수님을 닮아가는 참 제자가 됩니다.
3.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함
본문 9-10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예수님이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명령을 지키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4:23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킨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거처를 함께 하십니다. 즉 예수님이 동고, 동락, 동행하여 주십니다.
본문 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거하면 너희 기쁨이 충만하다고 하였는데 믿음이 자라나면 기쁨이 충만합니다. 또 열매가 맺혀야 기쁨이 충만하며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4. 신자는 예수님의 친구임
본문 12-14절에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하였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사랑이 아니고 영적 사랑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목사가 책을 냈는데 구약 시대의 성도는 하나님의 벗이고, 신약 시대의 성도는 신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되지 못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성도도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왜냐하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약 시대의 성도도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다 신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심
본문 15-16절에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였는데 예수
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믿게 해서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택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서 믿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주셨고, 또 믿음을 선물로 주셨고, 또 택한 백성을 위해서 예수님이 피 흘려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알미니안주의는 자기가 믿고 싶으면 믿고, 믿고 싶지 않으면 안 믿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주의는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안 믿으면 구원을 못 얻는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3: 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구역에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는데 알미니안주의는 “누구든지”를 하나님의 구원의 밧줄이 멸망의 구렁텅이로 내려왔는데 이것을 붙잡으면 “누구든지 살려주고, 안 붙잡으면 죽는다”고 하면서 붙잡고 안 붙잡는 것은 자기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의 밧줄이 하나님의 은혜로 내려왔는데 자기가 붙잡으면 구원이고, 붙잡지 않으면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이 자기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주의는 잘못된 것입니다.
칼빈주의는 구원의 밧줄이 내려와서 나를 동여매고 끌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순전히 나를 택하시고, 나를 붙들어 끌고 가시므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가 없는 이것이 칼빈주의입니다.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어긋난 길로 갈 때에도 예수님의 사랑이 끝까지 와서, 나를 권면하시고 혹은 징계하여 돌이키게 하여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실 때에 모든 사람이 다 타락 되어서 지옥으로 가는데, 그 가운데 몇 사람만 하나님이 택하여 건져주셨다는 것이 맞습니까? 그것은 맞지 않습니다.
왜 맞지 않는가? 택하실 때에 다 구원하지 왜 몇 사람만 택하였는가?, 가령 열 사람이 지금 멸망의 구렁텅이로 내려가는데 그 가운데 몇 사람만 “너희는 내려가지 말아라, 넌 내가 만든 것이다”하며 몇 사람만 못 내려가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구렁텅이에 빠져 죽게 만들어 놓았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그러면 구렁텅이에 빠져 죽으러 가는 것을 가만히 두면 책임이 없습니까? 많은 사람이 지옥에 가는데 몇 사람만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계획 생기기 전에 선택계획을 먼저 하셨습니다. 창조계획은 그 다음입니다. 선택계획을 먼저 해서 택자를 하나님이 다 택해놓으시고, 그 다음에 창조계획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타락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이 먼저입니다.
선택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과 열매를 맺기 위함
왜 맞지 않는가? 택하실 때에 다 구원하지 왜 몇 사람만 택하였는가?, 가령 열 사람이 지금 멸망의 구렁텅이로 내려가는데 그 가운데 몇 사람만 “너희는 내려가지 말아라, 넌 내가 만든 것이다”하며 몇 사람만 못 내려가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구렁텅이에 빠져 죽게 만들어 놓았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그러면 구렁텅이에 빠져 죽으러 가는 것을 가만히 두면 책임이 없습니까? 많은 사람이 지옥에 가는데 몇 사람만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계획 생기기 전에 선택계획을 먼저 하셨습니다. 창조계획은 그 다음입니다. 선택계획을 먼저 해서 택자를 하나님이 다 택해놓으시고, 그 다음에 창조계획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타락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이 먼저입니다.
선택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과 열매를 맺기 위함
선택의 원인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자가 필요하시기 때문에 택한 백성을 내기로 했고, 그 다음에 인류를 창조하셨고, 그 다음에는 타락을 허용하셨고, 타락 가운데 택한 백성만 구속하시려고 구속을 예정해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택한 백성만을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을 다 위해서 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죄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멸망받기에 마땅한 우리들을 창세전부터 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불러서 믿음을 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라고 하였는데 포도나무 열매가 항상 맺히게 하려고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함이니라”고 하였는데 예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다 그대로 되게 해주십니다. 말씀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대로 하겠다고 하면 왜 안해주시겠습니까? 더 잘해 주십니다.
본문 17-19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이므로 구별시켜서 하나님이 세상에서 건져 내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합니다. 세상에 속했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할터이지만,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바로 나가면 세상과 맞지 않습니다. 세상은 내려가는 것이고 우리는 올라가는 것인데 올라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이 마찰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미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상급이 크다고 하였습니다. 말씀대로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환난과 핍박이 오는데 그것을 달게 받고 이기면,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이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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