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에베소서 3:12-21 이방을 향한 바울의 전도와 기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이방을 향한 바울의 전도와 기도
에베소서 3:12-21

12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13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14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17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을 알아 19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3:12 우리는 그분 안에서 담대함을 얻고, 그분을 믿음으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 

3:1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당부하니, 너희를 위한 나의 환난들 때문에 낙심하지 마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다. 

3:14 그러므로 내가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빈다. 

3:15 그분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분이시다. 

3:16 그분께서 너희에게 그분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분의 영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고,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의 마음속에 계시게 하시고, 너희가 사랑가운데 뿌리를 박고 터가 굳어져, 

3:18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고, 

3:19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빈다. 

3:20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수 있는 분께 

3: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이 모든 세대에 영원 무궁히 있을지어다. 아멘.


1. 이방이 믿게 됨
당당히 주의 나라에 들어감

본문 12절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앉아 계시고, 천군천사가 옹위하고, 깊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고, 성의 빛이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고, 문은 진주고, 해와 달이 쓸데없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환하게 비취는 그 나라에 들어 가는데, 신령한 몸으로 부활해서 들어갑니다. 들어가서 하나님께 나가서 하나님만 찬송합니다. 즐거워합니다. 영원무궁토록 즐거워하며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영원무궁토록입니다.

이제 주의 나라에 들어갔다가 예수님 재림할 때 다시 와서 예수님 몸과 같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해서 천년왕국에서 천년동안 왕 노릇 하다가 그 다음 백보좌 심판을 거쳐서 영원한 하늘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가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당히 들어갑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못 들어가게 하면 뭐라고 해야겠습니까? “내게는 예수의 피가 있다!”고 하면, 천사가 벌벌 떨며 “아 들어가라”고 합니다. 당당히 들어감을 얻습니다.

이제 천사가 못 들어가게 하려하면 어떻게 할지 방법을 배워가지고 가야 합니다. 우물우물하다가 괜히 문밖에서 골탕 먹게 됩니다. 문밖에서 골탕 먹지 말고, “내게는 예수님의 피가 있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 들어오십시오”하고 천사들이 벌벌 떱니다. 그때는 가슴 딱 내밀고 당당히 들어갑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천군천사가 마중 나오고 영접하고, 우리는 신령한 노래를 부릅니다. 그 곳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당당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들어갑니까? ‘예수의 피’를 가지고 들어갑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당당히 나아감을 얻었습니다.

바울의 환란이 이방교회의 영광이 됨

본문 13절에,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을 위해서 여러 환난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감옥에도 갇혔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너희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방을 위해서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여러 환난 당한 것이 이방 사람의 영광입니다. 또한 바울의 영광입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갇히면서까지 전해주니까, 이방사람들이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받아가지고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상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바울에게도 영광 아닙니까? 복음을 위해서, 복음 전하다가 환난 당하는 것이 저희의 영광이란 말입니다. 또한 바울의 영광입니다. 낙심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뻐하고 찬송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감옥에 있는 바울을 잘 도와줘야 되겠습니다. 이방인 자신들의 영광이고, 자기들을 위해서 갇혔으니까 바울을 잘 도와줘야 됩니다.
그리고 이방사람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에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기회를 써서 전하지 않았다고 이기죽대면서 바울을 비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이 갇힌 것은 하나님이 그런 환란과 고난을 당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난당하는 가운데서 복음이 더 잘 전파되고, 또 이방 성도들에게 더 힘이 되었다고 빌립보서 1장에 말하였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힘으로 그 교인들에게 더 힘이 되고, 그들이 더 기도 많이 하고 생명도 내놓고 나갔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영광 아닙니까?
‘너희를 위한 영광이다’라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2. 각 족속에게 주신 분복
이름과 분복을 주신 하나님

본문 14-15절에,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러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빕니다. 모든 족속에게 다 이름을 주었습니다. 이름이 없는 족속은 없습니다. 또한 사람들에게도 다 이름을 주었습니다. 이름을 주었다는 것은 거기에 대한 분복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이 적당하게 다 이름을 주었습니다. 또한 분복도 주었습니다.

한문에 ‘하늘은 뜻이 없는 사람은 내지 않았다’, ‘땅에 이름 없는 풀은 내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땅에 이름 없는 풀은 내지 않았다는 것인데,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땅에 풀을 냈는데 다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만 해도 많지 않습니까? 고사리, 취나물 등 이름 다 있지 않습니까? 땅에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습니다.

하늘은 뜻 없는 사람을 내지 않습니다. 사람을 낼 때 다 자기 먹고 살게끔 냈습니다. 이제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었다는 것도 그와 비슷한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었다고 했는데, 각 족속에게 하나님께서 적당하게 다 분복을 주었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족속마다 각각의 분복을 다 주었습니다. 백인종들에게 분복 준 것하고 흑인종들에게 준 것하고 황인종들에게 준 것하곤 다릅니다. 백인종들에게는 특별히 무슨 분복을 주었습니까? 창대하고 연구하고 발전하는 그런 분복을 준 것 같습니다. 흑인종들에게서는 그런 것 못합니다. 흑인종들에게는 하나님이 무슨 분복을 주셨습니까? 몸을 건강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들은 장사들입니다. 흑인종들은 하루 종일 나가서 일해도 피곤하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하루 종일 나가 일하면 ‘아이고’ 합니다. 그런데 흑인종들은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매일 하루 종일 나가 있어도 끄떡없습니다. 아침에 나갈 때와 같습니다.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권투는 누가 잘 합니까? 세계 챔피언 급 권투 선수들은 대개 다 흑인입니까, 백인입니까? 백인은 없습니다. 다 흑인입니다. 백인은 한 대만 맞으면 다 넘어집니다. 타이슨이 얼마나 셉니까? 그 사람도 흑인종입니다. 하나님이 흑인종에게는 건강의 축복을 주었습니다. 건강한 몸의 축복을 주어서 일해도 하나 피곤하지 않고 끄떡없이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황인종에게는 무슨 분복을 주었습니까? 황인종에게는 하나님 잘 섬기는 복을 주었습니다. 황인종에게는 종교성의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황인종만큼 종교가 많은 데가 없습니다. 뭐 여러 가지 종교가 많습니다. 일본, 중국에도 얼마나 종교가 많고, 한국의 종교도 얼마나 많습니까? 각 족속마다 종교성을 주었지만 종교가 다릅니다.

한국 사람의 특성과 분복

그런데 예수를 복음으로 믿게 되니까 이제는 한국 사람이 예수를 잘 믿습니다. 새벽기도도 잘 나오고, 십자가가 제일 많은 나라는 한국이라고 합니다. 서울에 얼마나 십자가가 많습니까? 산 높은데서 차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한 이, 삼십 개가 한꺼번에 보입니다. 예배당 십자가가 한, 몇 십 개가 보입니다. 그런 나라는 세계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황인종에게는 그런 분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미신을 잘 섬기고, 미혹 잘 당하고, 싸움을 잘 합니다. 황인종 중에 한국 사람이 싸움을 제일 잘 합니다. 몇 사람만 모이면 싸운답니다. 그게 세계 제일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면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가보면 한인회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끼리 모이는 회입니다. 한국 사람끼리 모여서 회의를 하고 친목도 하고 일도 의논해서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게 좋습니다. 일본 사람은 일본 사람들 모임이 있고, 중국 사람은 중국 사람들 모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회는 잘
될 것 같습니까? 처음에 하나였는데 갈라져 둘이 되고 또 갈라져 넷이 되고, 지금은 한인회가 몇 개인지 모릅니다. 다른 나라회의는 언제나 하나로 나가고 여러 개가 아닙니다. 한국 사람은 가서 여러 개 만들어 놓습니다. 그거 보면 한국 사람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 세우는 것도 일등입니다. 싸움도 일등입니다. 다른 나라 가서 교회 세우는 것도 한국 사람만큼 세우는 나라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 참 신기합니다. 미국에도 가보면 한국 교회가 제일 많고, 다른 나라에서 모인 여러 민족이 있고 중국 사람이 우리보다 더 많지만 중국 교회는 얼마 없습니다. 미국에 일본 사람이 더 많지만 일본사람 교회는 얼마 없습니다. 한국사람 교회가 굉장히 많습니다. LA만 해도 한국 교회가 약 300개 된다고 합니다. 또, 러시아 가보면 한국 선교사가 제일 많습니다. 미국 선교사, 다른 선교사 있지만 한국 선교사가 제일 많습니다. 알마타에도 한국 교회가 제일 많습니다. 중국 가 봐도 한국 목사가 제일 많습니다. 이것을 보면 한국 사람에게 주신 분복은 하나님을 통해서 복 받으라는 것 같습니다. 분명합니다.

한국 사람은 믿기 잘하니까 “믿사오니”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도 3일 만에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말씀도 그저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알아야지 믿는다 하지 않고, 그저 덮어놓고 믿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동정녀 탄생이 과연 있을까?”, “어떻게 죽은 사람이 살아날까?” 또 “어떻게 우리 죄를 사해줄까?”라고 하지만, 한국 사람은 따지는 게 아니고 무조건 믿고, 무조건 “믿사오니” 합니다.
바르게만 믿으면 이제는 수가 나는 것입니다. 비뚤게 나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비뚤게 믿다가는 망하는데, 한국에서는 바르게 “믿사오니”해서 복 받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비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3. 바울의 성도들의 장성을 위한 기도

본문 16절에,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한 기도입니다. 속사람 강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17절 상반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 하였는데, 둘째는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17절 하반에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고 하였는데, 셋째는 사랑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 다음에 본문 18절에는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라고 했습니다. 넷째는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
의 사랑을 알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몇 가지입니까?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어떻게 해달라고 바울이 기도했습니까?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교인들의 속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해달라는 것이 바울의 첫째 기도입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셋째는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랑 가운데서, 아예 뿌리가 그리스도께 깊이 박히고 터가 굳어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점점 더 많이 알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하게 해주시기를 기도

첫째 기도인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써야 합니다. 늘 은혜가운데 거해야 되고, 능력을 쓰는 사람이 더 강해집니다. 그런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바울은 기도했고, 교인들은 이렇게 힘을 써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해달라고 기도

본문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속에 계시게 하옵시고”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항상 마음에 계시는 성도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스도가 속에 계시면 겁낼 것도 없고, 외롭지 아니하고, 항상 기쁘고 항상 만족합니다. 마음이 그리스도에게서 떠나지 않아야 됩니다. 언제나 마음을 그리스도에게 두고,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생활을 해야만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게 됩니다.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기도

그 다음에는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혀야 됩니다. 뿌리가 박히려면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돌밭에는 뿌리가 못 들어갑니다. 가시밭에 뿌리가 들어가면 시원치 않습니다. 길가에도 뿌리가 못 들어갑니다. 너희가 옥토가 되어서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깊이 박히고, 또 터가 굳어져서 이제 요동하지 않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 가운데 뿌리가 깊이 박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뿌리가 깊이 박히면 뽑으려 해도 못 뽑습니다. 그리고 땅이 더 굳어져야 됩니다. 땅이 굳어지는데 어떻게 뽑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 가운데 뿌리를 깊이 박고, 또 견고한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합니다. 그러면 마귀가 와서 건드리지 못하고 뽑지도 못합니다. 진리 가운데서 뿌리가 박혀야 됩니다. 또한 진리를 깊이 깨달아야 하고, 진리를 한번 깨달았으면 그 진리에 굳게 서야 됩니다.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뿌리가 깊이 박히고 터가 굳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주시기를 기도

그 다음이 사랑입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점점 더 알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떻게 알게 해달라고 하였습니까? 본문 19절에,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습니다.

그 넓이가 얼마나 넓은지 너희가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가 얼마나 긴가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깨달아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케 하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가 얼마나 압니까? 다 압니까? 다 모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을 다 모릅니다. ‘부모의 은덕은 넓은 하늘보다 크다’라고 하는데, 자녀들이 이것을 모릅니다. 때리면 미워서 때리는 줄 알고, 책망하면 자기에게 손해 주려고 하는 줄 압니다. 부모의 사랑을 모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긴 하지만 너무 얕고 짧고 낮게 압니다.

이제부터는 좀 더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를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넓은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계보다 넓습니다. 세계가 사랑 안에 다 들어가도 안 찹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세계보다 넓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넓은 사랑, 세계보다 넓은 사랑을 깨달아 알아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높습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사랑, 하늘에 가기까지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깊습니까? 음부보다 깊습니다. 음부에까지 내려갔던 저희를 그리스도께서 사랑으로 거기서 건져 주셨습니다. 얼마나 깊습니까? 깊은 바닥보다 더 내려갔던 저희를 건져주셨던 그리스도의 깊으신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가 얼마나 깁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은 영원만큼 깁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 넓이 ,깊이, 높이 이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 깨닫지 못 합니다. 그분의 넓은 사랑도, 긴 사랑도, 높은 사랑도, 깊은 사랑도 다 깨닫지 못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이렇게 해 놨을까?”, “사랑하면 왜 이렇게 됐을까”, “사랑한다고 하는데 왜 병날까?”, “주님이 사랑했다면 왜 그 아들이 죽었을까?”, “왜 남편이 죽었을까?”, 또는 “왜 다리가 부러졌을까?”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문둥병 들린 사람이 “아, 참 감사하다”고 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참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문둥병이 들게 하셔서, 수용소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영생을 얻게 돼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제가 만나 봤습니다. 또 가까운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 잘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처음엔 손해나는 것 같아도 좀 나가다 보면 그게 유익입니다. 그것을 사랑으로 주는 것입니다. 바울의 눈병인 가시를 사랑으로 준 것입니다. 깊은 사랑, 긴사랑, 그런 사랑입니다. 바울의 가시가 아니면 바울은 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 긴사랑, 그 높으신 사랑, 그 깊은 사랑, 그 넓으신 사랑, 이것을 점점 더 깨달아 아는 자가 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20-21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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