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로마서 3:21-31 하나님의 의를 믿는 자에게 주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의 의를 믿는 자에게 주심
로마서 3:21-31

21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
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3: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하여 증언을 받은 것이다. 

3:22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다.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나, 

3: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3:25 하나님께서 이 예수님을 그분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속죄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며 이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시어 자신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다. 

3:26 이때에 자신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자신도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는 분이심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3:27 그렇다면 자랑할 것이 어디 있느냐? 있을 수 없다. 어떤 율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다. 오직 믿음의 법으로이다. 

3:28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우리는 인정한다. 

3:29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정으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 

3:30 할례자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3:31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냐? 결코 그럴 수 없으니,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운다.


1.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본문 21-22절에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의로 인해서 살고, 죄로 인해서 죽습니다. 즉 “죄사의생(罪死義生)”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고, 의는 사는 것입니다. 의가 있으면 살고 의가 없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현 세계에 의가 있습니까? 의가 없습니다. 전부 다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다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의가 있어야 살겠으므로 하나님이 한 의를 세워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의를 받으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를 어떻게 세워 놓으셨습니까? 하나님의 “의”외에는 다른 “의”가 없습니다. 인간의 의는 다 더러운 것과 같습니다. 인간에게 의가 없습니다. 의가 없어 다 망하겠으므로 하나님이 의를 하나 크게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 의를 태양 빛처럼 비추는데 이것을 받으면 삽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완성하셨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님의 의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은 우리의 죄 값을 다 물어주셨고, 신구약 성경을 다 행하시고, 죽기까지 완전 복종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입니다. 법정에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할 수 있는 의입니다. 즉 법정적 선언의 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하나님의 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전부 다 죄인인데 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죄인이 의를 행하는 것은 더러운 옷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즉 도적질해서 나누어 준 것과 같습니다. 근본이 도적질 한 물건인데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구제했다고 해서 그것이 의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것을 나누어 주었어야 하는데 도적질해서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무슨 의가 있겠습니까? 또 무슨 자기 것이 있습니까? 전부 다 죄 값으로 넘어간 것으로 자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절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죽음이고, 절반은 우리를 위해서 대신 의를 이루어 놓으신 죽음입니다. 즉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것이 절반이고, 또 우리를 위해서 의를 이루어 주신 것이 절반으로 합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 값을 100% 다 물어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신구약 성경을 다 행하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는데 이것이 완전한 의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다 행하셨고, 죽기까지 복종했으므로 완전한 의입니다. 그리고 부활로 새생명을 주셨습니다. 

차별이 없음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가지고 나오면 빈부귀천, 남녀노소, 민족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의를 흠뻑 입혀주어서 과거의 죄를 다 씻어주십니다. 즉 의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의가 없다고 하면 세상에서 구원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다 죄인인데 이제 이 의를 받기만 하면 전부 의인이 됩니다. 무조건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의를 하나님이 세워놓고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에게 거저 주심

의도 우리에게 주시고, 사죄도 우리에게 주시고, 생명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을 받으면 됩니다. 즉 하나님이 완전무결한 의를 세워놓으셨고, 대속을 이루어 놓으셨고, 새생명을 이루어 놓으셨으므로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의를 받으려면 어떻게 받습니까? 믿음으로 거저 받습니다. 무슨 값을 내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거저 주시긴 주시는데 받을 그릇은 가져가야 주십니다. 기름 배급을 주는데 그릇은 가져가야 배급을 받지, 빈손바닥 가지고 가서 손바닥에 가지고 오겠습니까? 그릇을 가지고 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의를 받으려면 누구나 그릇만 가지고 가면 그릇에 가득히 채워 주십니다. 넘치도록 채워 주십니다. 그러면 그릇은 무엇입니까? 그릇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그릇을 가져가야 합니다.

로마서 4:25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범죄함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의를 완전히 완성하셨고, 생명을 주시려고 살아 나셨는데 믿음의 그릇만 가져오면 사죄, 칭의, 새생명을 다 주십니다. “믿습니다”하면 됩니다. 그것이 그릇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의를 완성하신 것과 부활해서 새생명을 주신 것을 “믿습니다” 하면 됩니다. 입으로만 믿지 말고 마음으로 믿어야 되고, 영으로 믿어야 됩니다. “참으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또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믿습니다, 나의 죄 값을 물어 주신 것을 믿습니다, 내 대신 의를 완성해 주신 것을 믿습니다, 또 부활로 새생명을 주신 것을 믿습니다, 믿으면 주신다는 말씀을 또 믿습니다”하며 믿음의 그릇을 가져 오면, 그 그릇에 넘치도록 담아 주십니다. 한 그릇 받아 가져가면 얼마나 살 수 있다고 하였습니까? 한번 받아 가지고 먹으면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먹으면 또 나오고, 먹으면 또 나옵니다.
사르밧 과부의 집의 떡가루와 기름과 같이 계속 나옵니다. 계속 나와서 계속 배부르고, 계속 충만하고, 계속 생명이 자라나고, 계속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것이 보배입니다. 믿음은 금보다 귀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다 해놓으신 것을 그저 “믿습니다”만 하면 쏟아 부어 주십니다. 넘치도록 주십니다. 믿음이 무슨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로는 다 예수님의 공로이고, 우리는 그릇만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릇만 가져 오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모든 것을 주시는데 일생동안 먹고도 남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무엇을 가지고 오면 됩니까? 믿음의 그릇만 가지고 오면 의를 다 받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받았으면 이제는 하나님 앞에 다 의인이 되었습니다. “의인 오라”고 할 때에 하나님 앞에 가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갈 때에 죄인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으로 갑니다. 에베소서 3:12에 하나님 앞에 정정당당히 의인으로 곧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의인으로서 당당히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천사들이 섰다가 “여기 의인만 들어가는 곳인데 너 같은 것이 어떻게 왔느냐?”하면 “예, 의인이 하나 왔습니다.” “네가 의인이냐?” “예, 의인입니다.” “네가 행한 것이 무엇이 있어서 의인이냐, 네가 행한 것을 내가 다 아는데 무슨 의인이냐?” “예, 내가 행한 것이 의가 아니더라도 ‘의’ 하나 받은 것이 있습니다.” “어디 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았는데 이것이 의인이 아닙니까?” “의인이다, 들어가라”하면 “의인 들어갑니다.” 하며 당당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들어갈 때 당당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 의인이 우물쭈물 합니까? 우물쭈물 할 것 없습니다. 정정당당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누가 “너 같은 죄인이 어떻게 들어가냐?”고 말하면 “예, 나는 죄인이지만 이것이 있습니다.” 뭔가? “그리스도의 의입니다.”하면 “아, 이것은 진짜 의다, 들어가라.”고 하며 천사들이 쩔쩔맵니다. 미가엘도 쩔쩔매고, 가브리엘도 쩔쩔맵니다. 천사가 다 와서 굽실굽실 하는 것입니다. 의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보시오, 호적에 올라있습니다, 양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이만큼 큽니다. 이 얼마나 큰 의를 주셨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쭈구리고 다닙니까?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서고, 하늘나라에 의인으로서 당당히 나아가게 됩니다. 이런 의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의를 만들려면 얼마나 수고를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의 하나 만드는 것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은 일생 동안 신구약 성경을 다 지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최종에는 죽기까지 복종하시면서 십자가에서 완전한 의를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마지막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 이루었다”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가져가면 됩니다. 누구나 다 가져가도 아무 하자가 없는 완전무결한 의를 믿음의 그릇만 가져가면 거저 받
습니다. 믿기만 하면 거저 주시므로 다 가져 가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의를 받아 가지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의를 받은 것은 천하보다 귀하고 금보다 귀한 것입니다. “의”가 바울에게는 보배가 되어, 그 의를 가지고 늘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속에 슬픈 마음이 들어오면 의를 꺼내어 보며 “내가 이것이 있는데 왜 슬퍼하나”하며 즐거워하여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의가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갈 때에 죄인이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죄인이라고 안 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찬송가에 뭐라고 했습니까? “죄인 오라고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의인이지만 사실은 다 죄인입니다. 

마치 거지가 거지 옷을 입고 깡통을 차고 김치 조각, 콩나물 조각, 고추장 등을 얻어먹으러 다녔는데, 세계 1등 부자인 자기 형을 오랫만에 만났습니다. 서로 한참 붙들고 울다가 “너 어쩌다 신세가 이렇게 되었느냐?”고 형이 동생한테 물으니 “난 그저 이렇게 얻어먹으러 다닌다”고 동생이 말할 때에 형이 “그것 안 된다”고 하며 연필을 꺼내어서 억만불짜리 수표를 써주면서 “너, 이것 갖고 가면 잘 살 수 있으니 이것 받아라”하면, 동생이 이제는 부자입니까? 거지입니까?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아직도 깡통 그냥 차고 다니고 의복도 거지 의복이므로 아직도 거지입니다. 그래도 억만불짜리가 하나 있으므로 이것만 가지고 은행에 가면 다 사고도 남습니다. 집 사고, 자동차 사고, 비행기 사고도 남습니다. 부자입니까? 거지입니까? 거지 종자가 있습니까? 거지 종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없으면 거지이고, 돈이 많으면 부자입니다. 그러므로 동생이 부자 아닙니까? 부자입니다. 그런데 외모로 볼 때에는 아직도 거지란 말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속에 하나님의 의를 받은 것을 생각하면 완전한 의인임에 틀림없는데, 아직도 행동이 깡통 차고 다니고 하수도, 쓰레기통에 가서 주워 먹으며 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분명하지 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는 “주여,쓰레기통에서 주워 먹다가 왔사옵니다, 죄인입니다” 해야 되고, 그 다음에 속에서 꺼내어 볼 때에는 뭐라고 해야 됩니까? “의인이 분명합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가 행한 것을 볼 때에는“죄인이 나왔습니다”하며 용서해 달라고 해야 되고, 속에 받은 것 즉 그리스도의 의를 볼 때에는 “의인이 나왔습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죄인 나오라”고 할 때에도 가고, “의인 나오라”고 할 때에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의인입니다. 최종에는 의인으로 가는 것이지 죄인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즉 돈이 없어야 거지지 깡통 찼다고 거지입니까? 돈이 있는데 왜 거지입니까?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의 행동을 볼 때에는 죄인이므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죄인이 나왔사옵니다”라고 회개해야 되고, 또 하나님의 의를 받은 것이 있으므로 의인으로서 정정당당하게 언제나 하나님 앞에 걸어 나가야 됩니다. 죄인이 아니라고 하면 안 됩니다. 죄 짓고 왔는데 왜 죄인이 아닙니까? 거지 노릇 하다가 왔는데 죄인 아니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더러운 짓을 하고 왔는데 더러운 자라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날마다 죄를 회개 하면서 의를 입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본문 23-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는데 어떻게 의를 입었나? 그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의를 입은 것은 믿음으로 값없이 예수님의 의를 받아서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

본문 25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가 되었었는데 예수님의 피로 화목제를 드려서 우리와 화목을 시키시고 전에 지은 죄를 다 간과 하셨습니다. “간과”는 책망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는 것입니다. 즉 전에 지은 죄를 예수의 피를 보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혀서 의롭게 해 주셨습니다.

2. 자랑하지 못함

본문 26-27절에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이제 의롭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의인이 되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왜입니까? 행위로 의인이 됐어야 자랑하겠는데 행위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무슨 법을 자기가 지킴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무엇으로 되었습니까? 믿음의 법으로 의를 거저 받았으므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본문 28절에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만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자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항상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본문 31절에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역사를 주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나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도리어 굳게 세웁니다. 율법은 구원을 받으려고 굳게 세우는 것이 아니고, 구원 받았으므로 감사함으로 율법을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율법은 구원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 율법을 굳
게 세워나가는 일은 중요한일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었으면 회개해야 됩니다. 왜 죄를 지었습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지 않아서 죄를 지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능력,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며, 순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을 배우고, 여러 가지 고난을 참고 견디며, 죄와 싸우기를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 죄를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담배를 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면 담배를 다 끊을 수 있습니다. 또 마약도 다 끊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것 하나 못하겠습니까? 또 음란, 방탕도 다 끊을수 있습니다. 우상 섬기는 것, 안식일 지키지 못하는 것, 부모 공경 하지 못하는 것, 도적질 하고 살인하는 것 등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전적 부패하므로 믿는 사람도 육신으로 살면 죄만 짓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새생명으로 살면 다 이길 수 있고 다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죄를 안 짓는가? 예수 믿는 사람도 가다가 실수해서 죄를 짓는 수가 있습니다. 방심, 부주의할 때에 죄가 들어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즉시로 결심하고 일어서면 다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워 나간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믿음으로 감사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는 것이고, 자기 영이 사는 것이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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