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소원
빌립보서 3:4-11
빌립보서 3:4-11
4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3:4 비록 나도 육신을 신뢰할 것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떤 이가 육신을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러하다.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고, 베냐민 지파이고, 히브리인 가운데 히브리인이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고,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이다.
3:7 그러나 내게 유익하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기며,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3:9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이다.
3:10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능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고자 한다.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고, 베냐민 지파이고, 히브리인 가운데 히브리인이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고,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이다.
3:7 그러나 내게 유익하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기며,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3:9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이다.
3:10 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능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고자 한다.
1. 육체의 자랑하던 것들
본문 4-6절에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 만에 할레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에게는 육체로 자랑할 만한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육체로 자랑하는데, 바울도 육체로 자랑한다면 자랑할 것이 많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모태(母胎)로부터 하나님을 공경한 것입니다. 출생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것은 모태로부터 하나님을 공경했다는 뜻입니다. 또 그는 이스라엘 족속이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가리킵니다. 당시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이방사람들, 그들은 다 개 따위의 짐승과 같다’라고 취급했습니다. 바울은 베냐민 족속이었습니다. 베냐민 족속은 양반입니다. 역사적으로 열 지파가 북쪽 이스라엘로 갈라져 나가 혼열 민족이 되었는데,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남쪽 유다나라에 남아 순수한 아브라함의 혈통을 계승하였습니다. 그래서 양반 족속인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바울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인은 히브리 말로 ‘건너가는 자’라는 뜻인데, 그것은 갈대아 우루에서 건너온 백성들, 즉 순수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의미입니다. 섞인 것이 없습니다. 또 바울은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 교파는 정통 보수파입니다. 사두개파는 교리가 잘못되어서,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파는 천사나 영광과 내세가 다 있다는 것입니다. 교리적으로 말하면 정통입니다. 바울이 바로 정통파에 속한 그런 바리새교인이었습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였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기 까지 바리새 교회들에게 충성했습니다.
또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스스로를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볼 때 흠이 없을 만큼 바울이 모든 것을 잘 했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갖다놔도 번듯합니다. 어디에 갖다놔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어디에 갖다놔도 베냐민 지파라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 교파라고 하면 당시 세상이 알아주는 보수파입니다. 또 앞서 언급한대로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했습니다. 즉,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공부를 많이 한 율법 학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이 모든 면에 원만하게 행했다는 것입니다. 또 할례파들이 할례를 가지고 자랑하지만 바울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니 할례파 가운데에서도 우수한 할례파에 속합니다. 이렇게 어디 갖다놔도 바울이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율법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는 자였습니다. 육체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다 드러내 놓고 자랑하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 했고, 또 우러러 볼 만 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세계를 발견함
본문 7절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이겁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에 유익하게 여기던 것들을 다 해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너무 고상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거기다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전에 자랑하던 것이 전부 해가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한번 발견하고 보니 예수님 아는 지식이 너무 고상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예수님의 그 세계를 영적으로 발견한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발견하니 그 세계를 발견하게 되고, 그 세계를 발견하니 예수님께서 거기 계십니다. 그 예수님이 너무나 아름답고 영광스럽습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발견하면 예수님이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럽습니다. 예수님의 세계는 빛의 세계입니다. 영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을 발견하면 기쁘고 충만합니다. 그곳은 기쁨의 세계, 즐거움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발견하여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이상 좋은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보배롭고 존귀합니다. 그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심령이 소생하고 새 생명을 얻습니다. 그 세계는 극락의 세계입니다.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시편 43장 4절에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극락의 하나님이십니다. 극락의 하나님이시니 예수님도 극락의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밖에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즐거움이 충만합니다. 예수님의 세계는 즐거움이 충만한 세계입니다. 극락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을 발견하면 마음이 거기에만 가있고 떠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베드로가 ‘내가 여기 있는 게 좋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가 보배로우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니 그 전 세상에서 추구하던 모든 것이 다 쓰레기와 같습니다. 그것들은 다 생명이 없고 빛도 없고 낡아질 것이고 썩어질 것들입니다. 부패하는 것들이고 쇠하여 지는 것들이고 냄새나는 것들입니다. 그리스도를 한번 발견하고 보니 세상의 모든 것이 여기에 비할 바가 안 됩니다.
이제 세상을 보니 쓰레기통과 같고 배설물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은 항상 극락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세상의 좋은 것으로 갖다 주어도 그것은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못쓰겠다고 내버린 것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들을 가지고 즐거워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 영광스럽고 보배로운 것,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예수님으로 더불어 즐거워합니다.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과거에 유익한 것으로 여겨 자랑하던 것들이 전부 다 해가 되었습니다. 손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방해물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베냐민 지파, 율법으로 흠이 없는 것, 바리새인 교파, 이러한 것들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보니 전부 방해물이 됩니다. 예수님만이 보배이고 예수님만을 따라가야 하겠는데, 전에 자랑하던 것들이 방해가 되니 버려야겠습니다. 그런데 버리려고 하니 아깝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는 데 방해물입니다. 그런 것들 가지고서는 예수님을 못 따라갑니다. 그것은 마치 신랑을 따라가야 하는데 친정에서 장난감 많이 해준 것이 있어서 그것 버리기 아까워서 잘 못따라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롯의 아내는 자기 집에 해 놓은 것들이 아까워서 소돔 고모라에서 나가다 뒤를 돌아보았고 소금기둥이 됐습니다. 전부가 방해물입니다. 다 내버리고 가야 하는데 내버리기가 아깝습니다. 번쩍번쩍하는 것들, 과거에 그것들로 한 몫 보고 살았는데 다 내버리려니 아깝습니다. 애착이 있습니다. 아직도 좋아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데 해가 됩니다. 방해물이입니다. 육신으로 좇던 것은 예수님을 따라갈 때 전부 방해물입니다.
잉꼬부부가 있는데 잉꼬부부가 방해물입니다. 떼 내버리고 가야 하는데 잉꼬부부가 되서 따라오고 떼 내버릴 수도 없고 그러니 방해물입니다. 보통으로 살아야지 지나치면 방해물입니다. 어떤 가정을 방문하니까 그 집에서 한 남자가 쑥 나옵니다. 그 부인만 우리교회 나오는데, 그 남자가 저더러, 안에 있다고 들어가 보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요?” 하니까 동거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인에게 밖에 나간 분은 누구인가 물었더니 영감이라는 것입니다. 그 집안은 부부간을 동거인으로 하고 사는가 봅니다. 잉꼬부부보다 낫습니다. 경주 김가, 전주 이가, 안동 김가, 이런 양반들은 허풍을 떨곤 합니다. 자기네 여러 조상들이 왕을 해먹었다, 장관을 해먹었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왕이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는지 장관들이 얼마나 사람을 많이 죽였는지 모릅니다. 조상 잘난 거 없습니다. 양반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조상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믿었다, 정통파다, 이러한 것들 다 예수님을 발견하고 따라가는 데 방해물입니다. 과거에 한문학자다, 한문학자라면 좋은 것 같은데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데 방해가 됩니다. 성경을 배워주면 집에 가서 한문책과 대조해 봅니다. 공자와 대조합니다. 맞으면 좋고 안 맞으면 잘 안 믿습니다. 그럴 바에 한문 모르는 것이 낫습니다. 과거에 한문 많이 공부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쑥쑥 들어가지 못합니다. 들어가다가 한문에 걸립니다. 그래서 많은 고생을 합니다. 고생하다가 한문 버리고 예수님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한문 배운 것을 내세우고 나가면 예수님을 믿는데 조금만 믿습니다. 한 절반만 믿습니다. 얼마나 방해입니까.
과거에 유익하던 것들이 전부 다 방해물이고 손해가 됩니다. 육신으로 좋아하고 자랑하던 것들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데는 전부 방해물이 됩니다. 확실합니다. 없는 것이 낫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믿습니다. 세리와 창기 이런 자들이 잘 믿습니다. 한국에도 양반들이 예수님 잘 믿지 않았습니다. 바닥의 사람이 예수님을 잘 믿었습니다. 세상에서 떵떵거린다면 잘 못 믿습니다. 또 믿어도 그런 사람들은 자꾸 걸립니다. 전에 자랑하던 것들을 가지고 믿으니 자꾸 걸려서 고생하게 됩니다. 그러니 과거에 유익하던 것들이 다 해가 된다는 것이 맞습니다.
3. 바울의 소원
그리스도를 아는 것
그리스도를 아는 것
바울도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보니 과거에 유익하던 것들이 다 해가 됐습니다. 나아가 유익하던 것들 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이 다 그리스도의 세계에 들어가는 데 해가 되었습니다. 또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그러한 것들을 가지고는 그리스도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본문 8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첫째는 아는 것이고 둘째는 얻는 것입니다. 예수를 아는 것이 첫째입니다. 아는 데 더 알아야 하고 또 영으로 알아야 합니다. 영의 세계에 들어가야 하고 그리스도를 좀 더 발견해야 합니다. 발견한 만큼 보배롭고 영광스럽고 즐겁고 기쁩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을 멀찍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아름답지 않지, 가까이 가보십시오. 좀 더 발견하고 좀 더 예수님을 알고 좀 더 가까이 가보면 예수님만큼 좋은 것이 천상천하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도 아직도 조금만 압니다. 하나님을 알아도 조금만 압니다. 하나님이 지구(地球) 만하다고 하면 우리는 모래알만큼 안다고 보면 될 겁니다. 좀 더 알아 나가야 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을 좀 더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도 예수님을 좀 더 아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알아야 다 알겠습니까? 그리스도는 무한하십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무한히 알아나가야 합니다. 계속 알아 나가야 합니다. 본문 8절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얻는 것
첫째가 아는 것이라면 둘째는 그리스도를 얻는 것입니다. 안 다음에는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소유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소유할 수 있는가? 예수님이 심중에 끊임없이 오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심중에 끊임없이 모시는 생활, 예수를 얻는 것, 예수님의 생명력이 내 속에서 계속 역사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 모시는 것입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그 힘으로 사는 생활이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만 보고 있
지 말고 가서 예수님을 얻으십시오. 소유하십시오. 예수님을 소유하면 부자가 되고 예수님을 한번 잃으면 거지가 됩니다.
예수님 소유하면 부자가 됩니다. 예수님 한 번 잃으면 거지가 됩니다. 예수님 소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북에서 부르던 것인데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이북의 공산당 환란이 동남풍 서북풍 서남풍 환란이지만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향기 날린다 그 공산당 환란에서 예수향기 날린다고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북의 심을철 목사님께서 많이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을 소유한다 해서 이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 한 번 얻으면 나는 부자가 되고 한 번 잃으면 나는 거지가 되고 예수님 한 분이면 지옥도 천국이 되고 예수님 없으면 천국도 지옥이 되고 예수님 없는 사업은 성공도 안 되고 실패하고 예수님 있는 생활은 만사 유익합니다.
아무리 동남풍 서남풍 다 불어도 예수님 한 분 계시면 거기서 예수님의 향기가 날립니다. 예수님을 소유합니다. 소유한다는 말은 ‘중심에 모신다, 끊임없이 모신다, 예수님의 생명력이 속에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소유한다, 얻는다는 말은 내가 그를 힘입어서 그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알고, 둘째는 예수님을 소유해야 합니다. 잠시라도 예수님 소유 못하면 안 됩니다. 중생한 영혼 속에는 예수님께서 늘 계십니다. 우리 마음에 언제나 예수님을 모시는 생활을 못하면 그만 생명력이 없습니다. 마음에 끊임없이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생명력이 있고 언제나 그를 힘입어서 사는 생활이 예수님을 모시는 생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
셋째는 9절에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셋째로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는 사람이 되려고 바울이 힘을 썼습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데만 그치지 말고 예수님을 얻어서 잘해야 되고 그 다음엔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한마디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화(化)하는 것입니다. 내 인격이 예수 그리스도와 화하고, 본질과 본성이 예수 화하고,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예수님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아서 나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아야 합니다. 온전히 내가 예수님께 이용만 당하니까, 예수님만 나타나고 발견이 됩니다. 예수님께 이용당하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내 주장 내 뜻 하나도 없어지고 내 볼 장 보는 것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이용물이 되서 피동(被動)되어서 예수님만 나타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는 것 아닙니까? 내 몸과 맘 예수님께 심신이 젖어서,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서 나타나십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사람은 참 귀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보면 어떤 예수님인지 알게 됩니다. 아, 예수님께서 저런 분이구나 다 알게 됩니다. 온전히 예수님께 이용만 당하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세 가지 단단한 식물을 먹는 것입니다. 지금 초보적으로 하면 슬슬 넘어가고 관둡니다. 초보적으로 예수님 알고, 얻고, 발견된다고 하면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단한 식물, 영의 안식으로 깊은 도리, 이것을 먹어야 우리가 자라날 수 있기 때문에 단단한 식물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젖이나 먹어서는 자라지 못합니다. 힘도 없고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자기의 힘이 되고 양식이 되고 자라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데 그저 믿는다 간판만 갖다 붙이지 말고, 예배당에 왔다갔다 껍데기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어도 별로 변화가 없고, 개꼬리 삼년 묵어야 황모 못 된다고 하듯이 밤낮 깨꼬리 되지 말고, 이제는 예수님을 좀 더 알아야 합니다. 작년보다 좀 더 알고 좀 더 얻고 발견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일 년만 지나도 상당한 유익이 됩니다. 한 해가 지나가고 또 한 해가 지나가도 아무것도 못하고 지나가면 허송세월만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금년에는 이것을 결심하고 나서야 합니다. 즉, 내가 예수님을 좀 더 발견해야 되겠다. 성경 읽으면서 발견하고 기도하면서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예수 그리스도시냐 얼마나 좋으냐 얼마나 좋길래 다른 사람들이 이러나 하면서 알아 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좋은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 발견 못한 것입니다. 아직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세계에 못 들어 간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발견하고 믿어야 합니다. 실제로 발견하면 그 이상으로 좋은 것이 없습니다. 가장 존귀하고 보배롭고 영광스럽고 세상 모든 것이 여기에 비할 수 없습니다. 세상 것은 이에 비하면 쓰레기통과 같습니다. 배설물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세계를 발견하고 이 세계를 걸어가는 사람은 저 세상 내려다보면 천하게 내려다보입니다. 술집에서 술 먹고 둘이서 쌍쌍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화장실 안에서 구더기들이 쌍쌍이 왔다 갔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럽기 한이 없고 유치하기 한이 없습니다. 형편없습니다. 이 세계를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알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어 가져야 합니다.
발견만 하고 얻지 못하면 안 됩니다. 가다가 밭에서 무엇을 발견했죠? 보화를 발견했는데 숨겨두고 돌아가서 자기는 다 팔아다가 그 밭을 사서 그 보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전부 보화입니다. 영적인 예수 그리스도, 영적인 세계, 전부가 보화입니다. 일단 발견하면 가서 자기 것을 팔아서 그 보화를 사야만 자기 것이 됩니다. 얻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그것에 희생이 들어가야 되고 노력이 들어가야 되고 내 것을 포기해서 거기에 투자를 하고 일심정력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얻고, 얻은 다음에는 그 안에서 발견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화하는 것입니다. 인격과 성품과 성질과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 화하는 것입니다 인격이 온전히 이용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이용물이 되고 피동 되는 것입니다. 이용되고 피동 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사람 안에서 나타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울은 힘썼습니다. 발견하려 함에 힘을 쓰는 것입니다. 힘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라고 하였듯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난 벌써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가 됐다, 그 의의 위에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생활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벌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의가 됐습니다. 의인이 됐는데 그 이상의 그리스도를 얻고 발견되고 그 안에서 의를 건설해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얻었으니까 우리가 다 얻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저 얻은 것입니다. 예수의 의를 받았고 예수님의 구속을 우리가 힘입었기 때문에 모든 죄사함 받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도 다 사함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의를 예수님이 이루어서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믿음으로 거저 주셨습니다. 거저 받았으니까 구원받았다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달음박질입니다. 그것을 알기를 힘을 씁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이 자기에게 이루어지는 것
본문 10-11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바울의 네 번째 소원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이 자기에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부활의 권능,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만 자기에게 이루어진다고 하면 이것은 만물을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 권능이 자기 속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바울에게 능력이 많이 있습니다. 현재에 있는 능력도 많이 있지만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에 비하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자기가 다 입고 하나님 앞에 가기를 원합니다.
믿는 방법은 무엇인가? 부활의 권능을 자기가 입는 방법이 있는데,
본문 1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하였듯이,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려면 먼저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참예하려면 먼저 예수님의 순종에 참예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 순종하셨습니다. 신, 구약 성경을 다 순종하고 죽기까지 하나님을 복종했는데 먼저 예수님과 같은 순종에 참예하고 그 다음에 예수님과 같은 인내에 참예하고 예수님과 같은 고난에 참예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순종, 고난, 인내에 참예하고 예수님과 같은 죽음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같은 권능이 그 사람에게 입혀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힘든 것입니다. 거저 먹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같은 순종을 하면 예수님과 같은 고난이 옵니다. 예수님은 신구약 성경 다 지켜 나가셨습니다.
하나도 안 빼놓으시고 다 지켜 나가니까 대단히 큰 고난이 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이 옵니다. 그것을 다 참아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부활의 권능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거기에 동참하려고 힘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매일 힘쓰는 것입니다.
한강 물이 흘러 내려오는데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진리는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조그만 고기가 올라가면 마찰이 적고 큰 고기는 마찰이 큽니다. 한강 절반만한 고기가 올라가면 절반만큼 고통이 오고 물이 몰려오니까 한강만한 고기가 올라가면 한강 물 전체가 반대합니다. 고기가 클수록 고난이 심합니다. 순종도 이와 같습니다. 이 세상이 거슬러 내려가는 세상인데 우리가 올라가는데 조금 순종하면 환난이 작게 옵니다. 조그만 고기, 멸치 같은 것, 송사리 떼 만 한 것 올라가면 물이 그 만큼 밖에 고통이 없습니다. 작으니까 그렇습니다. 숭어나 큰 것 큰놈이 올라가면 그만큼 물의 반대가 심함니다. 그만큼 고통이 옵니다. 그만큼 힘이 있어야 합니다. 큰 고기는 그만큼 반대가 심해서 그만큼 힘이 있어야 합니다. 좀 더 큰 고기는 반대가 더 심합니다. 한강 절반만한 게 올라가면 한강 물 절반만한 물이 내리밉니다. 그래도 올라갑니다. 그만큼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한강만한 물고기는 한강 물 전체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까 그만큼 고난이 많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구약성경을 전체를 다 순종하셨기 때문에 다 거슬러 올라가셨습니다. 세상 전체를 다 거슬러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그만한 인내가 있었고, 그만큼 고난이 왔고 그 다음엔 죽으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은 천상천하에 모든 것을 이길만한 그런 권능이 왔습니다. 그런 권능에 사도 바울도 참예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포부가 큽니다.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다 거슬려 올라가는 신앙 가지고 가야 그만큼 고난이 오겠는데 송사리만큼 가려다 죽으면 뭐합니까? 좀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에 참예한다, 그리스도의 순종 다 한다, 다 겪어 나간다, 그래서 죽는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만한 권능이 오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그만한 권능에 참예한다고 바울은 힘을 많이 썼습니다. 편안하게 예수님 믿겠다는 사람들, 고난 안 받고 믿겠다는 사람들은 송사리와 마찬가지 입니다. 새끼손가락만한 것 모래무치 등 조그마한 물고기들이 되고 싶습니까? 큰 인격자가 되서 하늘나라에 올라가야지 새끼손가락만도 못한 채 올라가면 안 됩니다. 큰 인격자가 영광으로 면류관 써서 나가는데 모래무치 만한 것 송사리만한 것이 되면 되겠습니까? 쉽게만 먹어서 그렇습니다.
교역자들도 너무 평안하게 교회 다닐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떤 목사들은 개척교회 보내달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이만하면 됐으니까 다시 가서 개척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는 현재 있는 교회가 편안하니까 고난 많은 교회를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 교역자가 바로 됐습니다. 소망을 가져야지 교회 하나 맡아서 평안해서, “그거나 하다 죽자”하면 너무 소망이 없습니다. 소련 갈 사람은 가고, 중공 갈 사람은 가고, 각자 나서야 합니다. 바울과 같이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려면 고난이 와야지,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참예합니까? 올라가야합니다. 거기서 참고 견디면 그 다음엔 큰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노력하고 생명까지 희생될 각오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으니까 나도 죽자 죽을 각오를 하고 나서자 죽기까지 복종하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 그 권능에 참예하려는 욕망이 있어야 합니다.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썩어질 소망은 소용이 없습니다. 큰 소망을 가지고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10-11절을 다시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려고, 예수님의 고난에 먼저 참예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그런 큰 고난에 참예하면 예수님과 같은 부활의 능력, 부활의 권능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집니다. 누구나 다 이런 신앙을 가져야 되고 선교사로 나가서 고난 받을 각오도 하고 나가는 사람을 우리가 뒤에서 도와주면 동참한 상급이 같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 빌립보 교인들이 도와주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상급을 같이 받는다고 했고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빌립보 교인들이 다 같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상급을 같이 받습니다. 우리도 구 공산권 선교사 파견하고, 선교사는 생명 내놓고 나가고, 우리는 뒤에서 도와주고, 모든 정성과 물질과 마음으로 기도로 거기에 참예하면, 그 상급을 같이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에 참예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입니다. 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 순종해서 오는 고난을 잘 참고 견디면서 죽기까지 복종하면, 그만큼 그리스도의 권능이 이루어지고, 선교사나 개척교회에 파송하고 여러 면으로 도와주고 자기의 모든 물질을 기울여서 도와준다고 하면, 거기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급이 같고 이루어지는 것도 같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이 감옥에 갇힌 다음에 자기도 생명 내놓고 나도 갇힐 각오를 하고 더욱 힘 있게 전도를 했는데 그것은 바울이 감옥에 갇힌 데 함께 참예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만한 권능이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이루어 진 것입니다. 마음으로 참예를 했으니까 그만한 각오를 가지고 전도를 했으니까 물질로 공궤를 했으니까 거기에 참예한 것이 됐습니다. 우리도 여러 면으로 참예하는 데 힘쓰는, 순종하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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