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방법은 결과에 상관없이 심판받음
로마서 3:4-8
로마서 3:4-8
4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냐 6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3:4 결코 그럴 수 없다. 사람은 다 거짓되어도,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기록된 것과 같으니, "주께서말씀하실 때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하심이다." 라고 하였다.
3:5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내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는데,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는 말이냐?
3:6 결코 그럴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느냐?
3:7 그러나 나의 거짓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더 풍성하여 그분의 영광이 되었다면, 왜 내가 여전히 죄인처럼 심판을 받아야 하느냐?
3:8 또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한 일을 행하자." 라고 말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은 우리가 이렇게 말한다고 비방하는데, 그들이 정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3:5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내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는데,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는 말이냐?
3:6 결코 그럴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느냐?
3:7 그러나 나의 거짓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더 풍성하여 그분의 영광이 되었다면, 왜 내가 여전히 죄인처럼 심판을 받아야 하느냐?
3:8 또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한 일을 행하자." 라고 말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은 우리가 이렇게 말한다고 비방하는데, 그들이 정죄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1.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심
본문 4절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신실하지 않은 사람이 유대사람에게 있어 더러는 믿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폐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때려서라도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 의지대로 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것은 하십니다. 막대기로 때려서라도 하십니다. 매를 때려서 복종시키는 일도 하시고, 정말 그 일을 하도록 꺾어 내버리시고 참 감람나무에 돌 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여서라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일은 하고야 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매를 때리실 때에는 빨리 회개하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자주 매를 맞지만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매를 맞아도 깨닫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꺾어 내버리시고 다른 것을 갔다가 붙일 수밖에 없습니다. 잠언 29장1절에,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갑자기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신실하신 약속, 구원계획을 반드시 이루어 나가고야마는 하나님이십니다. 일을 맡은 사람들이 신실하지 못하고 안 믿고 불순종하고 나갈 때에, 그 때는 하나님께서 막대기를 들어서 판단하십니다. 그러나 그때에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십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한다고 그랬습니까? 그 가지를 꺾어 내버린다고 하십니다. 돌 감람나무에서 가지를 꺾어서 참 감람나무에 붙여서라도, 하나님께서 감람나무 열매를 맺고자 하실 때에는, 약속하신 대로 틀림없이 이루어 놓고야 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에 한번 약속했으면 그것은 벌써 따 놓은 당상입니다. 성경말씀에 한번 말씀한 것은 따 놓은 당상이고, 다 먹고 들어간 것입니다. 안 될 염려 전혀 없습니다. 천지가 다 변해도 되고, 천지가 다 없어져도 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성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은 신실성을 가지고 있으시기 때문에 성취하고자 하시는 것은 반드시 성취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사람은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매를 때려서라도, 안 되면 꺾어 내버리고 돌 감람나무 가지를 꺾어 붙여서라도 하나님은 하시고야 마시는 분이십니다. 기어코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구원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복이고, 우리가 이 구원운동에 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허락하신 복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배우고, 이 말씀을 잘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셔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계획하신 바를 다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구원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복이고, 우리가 이 구원운동에 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허락하신 복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배우고, 이 말씀을 잘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셔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계획하신 바를 다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어떤 사람들이 믿지 아니하고, 순종치 아니하고 거역하고, 또 신실치 못하게 나가면, 첫째로 막대기를 들어서 때려서라도 회개시키시려 하십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꺾어 내버리고, 다른사람들을 보충을 해서라도 하나님의 생명운동을 계속하시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계속되어 나가도록 하나님께서는 만들어 나가십니다. 그것이 본문의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하심을 얻으시고 판단하실 때에 이기려 하심과 같으니라’는 뜻입니다.
2. 유대인의 불의로 이방이 구원받은 것에 대한 변론
본문 5절에, “그러나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을 하리요. 내가 사람이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고 했습니다. 뭔가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무슨 문제냐 하면,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했다”는 말을 합니다.
유대 사람들이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이방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성취가 되었다고 하면, 유대사람이 믿지 않는 불의함이 도리어 이방사람을 건져내는 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참 감람나무 가지를 꺾어 버려낸 자리에 돌 감람나무를 붙였습니다. 참 감람나무가 열매를 안 맺었기 때문에 돌 감람나무를 갔다 붙였는데, 결국 유대사람이 믿지 않고 불순종했기 때문에 구원이 이방사람에게 나갔습니다.
그러면 유대사람이 불의한 일을 행한 한 것으로 인해 이방을 구원하는데 공로가 된 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면 유대사람이 믿지 아니하고 불순종한 것 때문에 이방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하면, 그 불의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느냐고 합니다.
누구 불의 때문에 의가 이루어졌습니까? 유대인의 불신과 불의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이방사람을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 졌다는 말입니다. 본문의 ‘그럼 무슨 말 하겠느냐?’는 말은 나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대해 바울이 답변을 하였는데, “내가 사람이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냐?”고 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유대사람에게 진노를 나타냈다는 말입니다. 유대사람에게 진노를 나타내신 하나님께서 잘못한 것이냐고 반문합니다. 바울은 ‘유대사람의 불신과 불의가 이방사람을 구원하는 의를 이루었다고 보면, 유대사람이 잘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에게 답변을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사람들에 대하여 진노하지 않으셨느냐? 그럼 하나님은 잘못했단 말이냐?”고 합니다.
불의한 일 자체는 죄임
유대인의 불의한 일 자체는 잘못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에 어떤 다른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한다면, 그 잘못 때문에 누가 구원받았다고 해서 잘못한 것이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고, 잘못한 것 자체는 잘못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누가 잘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유익 보는 일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실수하고 잘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유익을 봤다고 하면, 잘못한 그 사람을 잘했다고 해야 되겠습니까? 남에게 득이 되었어도 잘못했다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진노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진노하는 것이 불의하시냐?’, 하나님의 진노가 옳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을 보고 잘못한 것이라고 인정해야 하는데, 그 불의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잘못을 책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가 잘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유익 보는 일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실수하고 잘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유익을 봤다고 하면, 잘못한 그 사람을 잘했다고 해야 되겠습니까? 남에게 득이 되었어도 잘못했다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진노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진노하는 것이 불의하시냐?’, 하나님의 진노가 옳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을 보고 잘못한 것이라고 인정해야 하는데, 그 불의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잘못을 책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령 부잣집을 도둑질해서 가난한 사람을 주었다고 하면, 가난한 사람을 살려준 것은 좋지만 도적질 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도적질해서 가난한 사람을 살려주었다고 해서, 도적질 한 것이 괜찮은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도적질 한 것 자체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 사람 잘못한 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유익을 봤다고 해서, 유익을 본 것으로 인해 그 사람 잘못이 가려지지 않습니다.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본문 6절에, “결코 그렇지 아니하리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불의한 일 때문에 의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 불의한 일을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죄입니다.
그렇게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 하시겠습니까?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죄는 죄대로 벌하시는 하나님이시지, 그 죄악의 결과로 의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용납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 자체는 다 죄고, 그 결과로 좋은 일이 이뤄졌다고 해도 그 죄 자체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도 그렇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한 것 때문에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잘못한 것을 심판 안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한 것은 다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결과가 좋다고 악한일이 용납되지 않음
6.25 사변 난 것을 보면, 이북에서 김일성이 한국에 남침을 해서 6.25사변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UN군이 왔고, 미국에서 많은 원조가 왔습니다. 인민군이 이북에 깔려 들어가고, 이북에 있던 많은 교회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남으로 나왔습니다.
이곳에도 6.25때 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6.25사변 안 생겼다면 아직도 못 나오고 공산 치하에 있었을 텐데, 김일성의 6.25사변 덕택으로 남한에 나온 사람 많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6.25사변이 큰 유익을 많이 준 셈입니다. 죽은 사람도 물론 많지만, 6.25사변 났기 때문에 이북에 많은 기독교인이 남한에 나오기도 하고, 미군이 와서 한국에 지금까지 주둔하기도 하고, 또한 많은 원조를 받기도 했습니다.
만일 6.25 사변 안 났다고 하면 한국은 벌써 공산당 다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공산당이 뭔지 몰랐는데, 6.25사변 나면서 공산군이 이남에 내려와서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를 다 보여 주었습니다. ‘공산주의 맛을 봐라’, ‘현물세를 내라’, 또 ‘독보회를 나오너라’, ‘여성 동맹은 모여라’고 했습니다. 조사를 해서 현물세를 내라고 하고, 또 무슨 군대를 나오라고 하고, 또 뭘 하라고 하니까, 공산주의가 뭔지 이때 톡톡히 맛을 봤습니다.
그 맛을 안 봤으면, 요새 한국 사람들 공산주의가 다 좋다고 했을 것 같습니다. 6.25때 맛을 봤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미군이 한국에 안 오고, 원조 안 해주었다면 한국 사람들 다 거지 될 뻔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6.25사변 일으킨 김일성이 옳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깡패한테 얻어맞아 거의 죽어가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시키고 온 가족이 다 그 아이를 위해서 치료되도록 잘해주었습니다. 그럼 그 아이는 매 얻어맞은 덕택으로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게 되고, 의복도 많이 얻어 입고 많은 유익을 봤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깡패가 때린 것이 옳습니까? 결코 옳지 않습니다. 물론 매 맞았기 때문에 그 아이가 유익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혜택을 받고, 또 앞으로도 그 아이에게 관심이 많아지겠지만, 그러나 때린 사람은 나쁘다는 말입니다.
결과가 좋다고 해서 악한 사건이 용납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일이 용납된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시겠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을 보면 악은 악대로 심판하시고, 심판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십니다. 의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악한 사람의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3. 바울의 말을 유대인들이 거짓을 보태 공격함
가룟 유다가 구원사역에 공로가 있는가 물음
본문 7절에, “그러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여기 더 한심한 말이 또 하나 나왔습니다. “내가 거짓말 하고 악한 일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참되심이 더 풍성하게 되었다고 하면 내가 왜 죄인처럼 심판을 받겠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하는 사람들은 가룟 유다와 같은 종류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아먹음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안 팔아먹었다면 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겠습니까? 십자가 못 안 박혔으면 구속 사업을 어떻게 하였겠습니까? 가룟 유다가 팔아먹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예수님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아먹은 것이 우리의 구원사역에 공로가 된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안 팔아먹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아서 구속을 못했을 텐데, 팔아먹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까 가룟 유다를 어떻게 죄인처럼 심판을 받게 하겠는가 하고 말합니다. 가룟 유다가 잘못한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구속이 이루어지고 영광이 이루어졌다고 하면, 가룟 유다가 어떻게 죄인처럼 심판을 받겠느냐는 말입니다.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하는 것이 옳은지 물음
본문 8절에,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을 이루기 위해서 악을 행하자는 말도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악을 행해도 그 악이 도리어 선한 일을 이루어 나가는 경우기 많기 때문에, 선을 행하기 위해서 악을 행해야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 방법은 악을 행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어떠한 악을 행했어도 선한 목적을 이루면 괜찮지 않겠느냐’라고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을 돌렸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들의 불의한 일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다’는 말을 했습니다. 바울의 그 말은 유대사람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이방사람들이 많이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다는 말인데, 이것을 반 거짓말로 고쳐서, 선을 행하기 위하여 악을 행하라고 바울이 말했다고 바꿔 말했습니다.
사실은 바울이 선을 이루기 위해여 악을 행하자고 말한 것이 아니고, ‘유대사람이 악을 행했기 때문에 이방사람들이 구원이 나가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아서 영광이 되었다’라는 말을 한 것을 가지고, 이제 유대인들이 반 거짓말을 보태서 바울에게 뒤집어 씌웠습니다. 로마서 5장 20절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말도 다 비슷한 것입니다.
4. 목적과 방법이 다 선해야 함
바울이 그 말에 대해 뭐라고 답변합니까? 본문 8절 후반절에 보면,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는 대답 한마디입니다. ‘선을 행하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고 말하는데 대한 답변은 ‘정죄 받을 만한 일이다’라는 것입니다.
악은 악대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불의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 악은 심판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 악한 방법을 써서는 안 됩니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그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해도, 악한 방법을 쓰면 그것은 죄입니다. 그것은 심판 받아야 옳습니다. 우리는목적도 선하고 방법도 선해야 합니다. 불의한 방법을 써서 어떠한 선을 옹호하려는 것은 마땅히 심판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공산주의는 다 같이 잘 살기 위해서 무자비하게 투쟁해도 된다고 합니다. 다 같이 잘 살자는 것은 좋은데 방법이 틀렸습니다. 공산당 방법으로 무자비한 투쟁을 하라는 것입니다. 폭력을 가하고 무자비하게 투쟁을 해서라도 그 목적을 달성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별의 별 수단을 다하고 어떤 투쟁을 해서라도 이루면 된다는 것이 틀렸습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아도 괜찮다는 것, 다 전복을 시켜도 괜찮다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요새 해방신학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탄압받는 사람들을 해방을 시키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합니다. 정치적인 탄압, 인종적인 탄압, 경제적인 탄압을 받는 민족을 해방시키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신신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무슨 수단을 써서 해도 괜찮다고 하면서 폭력적 수단을 행사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탄압받는 사람을 건져내기 위해서 폭력적인 수단, 혁명적인 수단을 써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와 같은 것입니다. 악한 방법, 불의한 방법, 남을 죽이는 방법을 써서라도 어떻게 하든지 그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것이 해방신학자들인데, 그게 공산주의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남의 것을 빼앗고 부잣집을 도적질해서 가난한 사람 주는 것이 옳다는 것과 같습니다. 도적질 한 자체는 틀렸지만 가난한 사람 주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하면서 그것이 옳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심판하시겠습니까? 그런 생각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심판받을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십니다. 악을 이용해서 의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복잡한 것이 아니고 간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선한 방법을 쓰라
선을 이루기 위해서 악을 행하는 일은 정죄 받는 일입니다. 자체가 악이니까, 그 목적이 선한 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닙니다. 정죄 받는 일이라는 걸 우리가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선한 목적을 위한다고 좋지 않은 방법, 거짓된 방법 불의한 수단방법을 써가지고 선하다는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데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런 죄 가운데 빠지면 그것은 죄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한 사람의 교만을 낮추기 위해서 중상모략 해서 꼼짝 못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의 교만함이 낮아지긴 하지만, 중상 모략한 것 자체는 죄입니다. 그 결과로 그 사람의 교만함을 낮춘 것은 좋다고 해도, 모략중상한 것은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벌 받을 자가 됩니다. 모략중상한 자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방법이 선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교만한 것을 낮추려면, 첫째로 하나님께서 낮추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까지 기다리고 기도 하면서 선한 방법을 언제든지 써나가야 합니다. 그것에 악한 방법을 써서 교만함을 낮추었다고 하면, 자기는 벌 받고 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가 쓰는 방법은 선해야 합니다.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때가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선한 방법을 써야 하고,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해주시는 때가 옵니다.
대학생들이 데모하는 것도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 완력을 가지고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방법도 선해야 하고, 또한 때를 기다리고 합법적으로 질서 있게 해야 되는 것이지, 자기들 목적이 좋다고 해서 목적을 달성하려고 이런 불순한 방법, 불의한 방법을 쓰고나간다면 그것은 안 됩니다. 그것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모든 것이 다 같습니다. 방법은 선한 방법을 써야 합니다. 목적이 선하면 방법도 선해야 합니다. 목적달성을 위해서 방법으로 불순한 방법을 쓰면 그것은 심판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상관없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선한 결과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자기가 지은 죄 값은 자기가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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