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1일 토요일

고린도후서 4:1-15 질그릇에 담긴 보배.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질그릇에 담긴 보배
고린도후서 4:1-15

1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3만일 우리 복음이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12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13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14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15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 보배가 무엇인가

질그릇에 담긴 보배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하십니다. 본문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질그릇은 우리의 인간성, 우리의 몸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의 육체는 질그릇과 같습니다. 찬송가에도 ‘진흙과 같은 나를 빚으사 당신의 형상을 이루소서’하고 했는데, 인간은 질그릇과 같습니다. 질그릇과 같이 아무 생명이 없고, 맥이 없고, 가치가 없는 우리, 툭 치면 깨지는 질그릇과 같은 인간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보배를 담았다고 했습니다. 보배는 보화와 같은 의미인데, 이 보배를 담아놓으셨습니다. 보배가 무엇입니까? 이 보배부터 알아야 합니다. 본문 6절에,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다고 했습니다.

본문 4절에,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라고 했는데, 복음이 보화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라고 했는데, 예수님과 같은 영광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일 때에, 믿을 때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시작이 됩니다.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는데, 그렇게 자라나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중생이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형상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일생동안 자라나야 되는 것입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른다’는 것은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시작되었기에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보배입니다. 믿는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그것이 보배이고 ‘믿음’이 보배입니다. 그리고 복음 전하는 직분이 보배입니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 인간 속에 있는 보배, 믿는 사람 속에 있는 보배가 무엇인가 하면, 그렇게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복음이 속에 있다’, ‘복음이 보배다’에서의 복음이고, 
둘째는 중생할 때에 ‘하나님의 형상이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형상이 시작된 그것이 보배입니다. 
셋째로 복음전하는 직책이 영광의 보배입니다. 그 세 가지인데 한 가지를 더하면, ‘주의 영이 같이하시는 것’이 또한 보배가 됩니다. 질그릇은 우리 인간의 육체이고, 보배는 위의 세가지입니다. 이 보배를 질그릇에 담아놓았는데, 세 가지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첫째, 복음이 보배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형상이 시작된 그것이 보배입니다. 셋째, 복음전하는 직분이 보배입니다. 이 세 가지를 질그릇에 담아놓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질그릇과 같은 우리 인간에게 이러한 보배를 담아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배와 함께 계심

믿는 사람에게는 보배가 다 있습니다. 보배에도 작은 보배가 있고 큰 보배가 있고, 자라난 보배가 있고 자라나지 못한 보배가 있는데, 그래도 있기는 다 있습니다. 우리 몸, 우리 육체는 질그릇입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보배를 담아놓으셨습니다. 성도에게는 그 보배가 다 있습니다. 성도 한 사람이 오면 보배 하나가 온 줄로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귀한 보배인가’해야 합니다. 이것은 금보다 귀한 보배이고, 은보다 귀한 보배이고, 보석보다 귀한 보배입니다. 값으로 칠 수 없는 보
배가 우리에게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배와 같이 하는 게 있습니다. 보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위에서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보배를 가지고 있는 성도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같이 계십니다. 얼마나 귀한 보배인지, 예수님께서 같이 계셔주십니다. 같이 계시지 않으면 그 보배를 마귀에게 다 빼앗길까봐 같이 계셔주시는 것입니다.

2. 보배를 써 먹으라

믿음을 쓰면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이 함께함 

보배 가지고만 있지 말고 보배를 써먹으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귀한 보배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돈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돈을 쓰지 못하고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호주머니에다가 돈을 많이 넣고 다닌다고 합니다. 주머니에다가 돈을 많이 넣고 다녀도 그 돈을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그 사람이 죽고 나면 그 돈을 누가 가져갈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길바닥에서 죽는다면 그 호주머니의 돈 다른 사람
이 다 가져가고 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보배를 가지고 있기는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 보배를 써먹지를 못합니다. 보배를 써야 합니다. 보배 쓰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보배를 써야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나가서 전도하는 것이 보배 쓰는 것입니다. 본문 7절 다시 보십시오.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이 이 보화를 가지고 쓰는 사람에게 있다고 하십니다. 보배를 쓰는 것은 다시 말하면 믿음을 쓰는 것인데, 믿음을 쓰면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이 그 사람에게 같이 하십니다. 믿음을 안 쓰면 같이 안 하시고 그 능력을 베풀어주시지 않으십니다.

본문 8-9절에, “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보배를 가진 사람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보배를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해주십니다. 그 보배의 역사가 나타나고 예수님의 능력이 같이하시기에 그 능력의 심히 큰 것이 나타납니다. 아무리 몰아치고, 사방으로 우겨 싸고, 고립시키고, 왕따를 시켜도 보배를 가진 사람은 싸이지 아니합니다. 보화를 쓰는 사람은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살다보면 답답한 일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답답한 일을 당할 때 낙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보화를 가진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다 이기고 찬송하면서 나갑니다. 

최 권능 목사의 아들이 죽었는데, 아들의 장례를 따라가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하면서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하니까, 최 목사가 “아니, 아들이 천당 가는 이 한 몫 보려고 예수 믿는데 오히려 이 날이 얼마나 좋은 날인가!”하면서 기뻐했다고 합니다. 최 권능 목사 속에 보화가 많이 자라난 것 같습니다. 아들이 죽은 다음에 낙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셨더라면 어떻게 우리 아들을 죽이셨겠는가?”라고 합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죽을 때가 되어서 죽는 것입니다. 최 목사처럼 예수를 믿고 천당 가는 한 몫 보는 것을 생각하면 답답한 일을 안 당합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핍박을 당해도 버린바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사람이 세상에 많습니다.
믿는 자들은 핍박을 많이 당해도 보화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과 같이하기 때문에 버린바 되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은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믿는 사람을 거꾸러뜨리고 망하게 하려해도 다시 일어납니다. 그것은 속에 보화가 있기 때문에 그렇고,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이 그 사람과 같이 하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것이 보화는 보화입니다.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죽지 않습니다. 망할 것 같아도 망하지 않습니다. 솟아나지 못할 것 같아도 솟아납니다.

복음 전하는 예수님의 길

본문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가는데, 그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신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에는 예수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한다고 나옵니다.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진다’는 ‘예수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신 것을 몸에 지니고 간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을 살리시기 위해서 죽으셨는데 그 길로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죽는 길, 절대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는 길, 날마다 죽음의 위험을 당하고 체험하면서 걸어가는 길, 이것이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의 길,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내놓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죽으셨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서 죽을 각오하고, 죽는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입니다. 

본문 11절에,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서 날마다 죽음에 넘기워진다는 것입니다. 믿음 지키다가 죽을 각오하고, 죽는 데에 넘기워지면서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됩니다.

복음 폭탄

본문 12절에,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죽음에 넘기어지면서 복음을 전해 놓으면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려놓게 됩니다. 우리가 죽음에 넘기우면서 복음을 전하면, 자기에게도 생명이 역사하고 다른 사람도 살리게 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해 놓으면, 말로만 전달되고 마는 게 아니라 복음 자체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복음 속에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폭탄과 같아서 그 속에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능력의 역사가 있습니다. 폭탄을 던지는 사람이 변변치 않더라도 그 폭탄 자체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어느 사람을 통해서 일단 던져놓고 나면 그 사람을 정복해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리고 복음 전할 때에 예수님께서 같이하십니다. 자기 혼자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같이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복음을 가지고 역사하셔서 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지극히 큰 능력이 함께 있다고 했는데, 돌 같이 굳은 사람도 복음을 전해 놓으면 깨뜨려서 정복을 시켜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8:18-20절을 보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복음 전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전도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역사를 하셔서 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믿게 만듭니다. 그런 뒤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성경 가르쳐주라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능력이 없습니다. 폭탄 터트리라고 주었는데 터트리지 않고 있으면 그것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터트리지 않으면 폭탄 굴러다녀도 돌과 같은 것이 됩니다. 아니, 돌만도 못하게 됩니다. 무엇에 쓰겠습니까? 굴러다니다가 고물 상인이 주워가면 고물이나 되는 것입니다. 고물상 주고 엿이나 하나 사먹는 샘입니다. 그 복음의 폭탄 터지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게 됩니다. 

복음 폭탄을 터트려야 능력이 나옵니다. ‘내가 전도해서 저 사람 믿을 수나 있겠나?’ 이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하는 게 아니고, 전도만 해놓으면 만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의 폭탄이 터지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그 능력으로 역사를 하시는 것이고, 정복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복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 될 것 같아도 됩니다. 거저 예수
믿으라고 전하는 것보다는, 성경말씀을 한마디라도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제가 목욕탕에서 어느 변호사 한사람을 만났기에 그 사람에게 전도를 해야겠는데, 변호사가 되어서 잘 안들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느니라(벧전1:24-25)”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변호사가 아무리 돈 많고 해도 그것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산다”고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변호사가 “전도하는 것도 자유고, 안 믿는 것도 자유다”라도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 잘 배웠습니다. 변호사 자격 있었습니다. 이다음에 만나면 또 다르게 전해야겠습니다. 

하여간 자꾸 폭탄을 던져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속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유’라고 해도 폭탄이 터지는데‘자유’입니까? 예수님이 만능으로 역사하시는 대도 ‘자유’입니까? 아무튼 계속 전해야 합니다. 안 듣는다고 해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만능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만능이 같이하십니다. 그러면 결국 그 사람을 정복하셔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복음 전할 것

금년에는 우리가 전도하는 해로 정해야 합니다. 교회가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작년에 몇 사람이나 전도했는지 우리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전도 안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전도를 한다고 해도 폭탄을 던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못해도 한 사람이 한 사람씩은 전도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 한 사람씩은 전도해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전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기도를 하고 자기 주변에 전해야 합니다. 자기 가족부터 전도를 해야 합니다. 

자기 가족은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 하는데, 어느 유년부 주일학교 아이가 집에서 할아버지의 귀에 대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소리를 질러서 그 할아버지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 할아버지 교회에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나왔겠지요. 그 할아버지를 집에서 아들도 전도 못하고, 며느리도 전도 못하고 하니까 손자가 나와서 귀에다 대고 전도한 것입니다. 매일 한번 씩 귀에다가 대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하면 그 할아버지 믿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전도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데, 그저 “예수 믿으세요”라고 광고만 하지 말고, 아예 폭탄을 던져놓아야 합니다.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역사할 줄을 믿고 전해놓으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권세를 소유하신 예수님이 그 능력으로 역사를 하셔서 모든 백성으로 제자를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같이 계시는 예수님께서 보배를 써먹으라고 하십니다. 보배를 써보십시오. 아무리 가까운 사람에게라도 보배를 써먹어 보고, 아무에게라도 전도해보십시오. 매일 몇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전에 장영실 장로라고 있었는데, 이 장 장로는 전남 김해사람으로 국회의원에 출마도 했던 사람인데, 매일 한명씩 전도하기로 작정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자려고 누웠는데 생각해보니 그날 전도를 못했더랍니다. 매일 한 사람씩 전도하기로 했는데 그냥 자는 것은 양심상 안 되겠더랍니다. 그래서 도로 다시 입고 밖으로 나가서 길에 지나가는 사람 한명에게 전도를 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일 년에 한 사람씩만 전도했어도 십 년이면 열 사람 전도하는 것인데, 이십 년이면 몇 사람입니까? 20명, 삼십 년이면 30명, 오십 년이면 50명, 오십 년이면 교회가 하나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믿는 것은 안 됩니다. 30배, 60배, 100배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습니다. 금년에는 하나님의 심히 크신 능력이 같이 하실 것이니까 이를 믿고, 보배가 우리 속에 있으니까 그 보배를 써 먹어야 합니다. 

복음이 보배이고, 하나님의 형상이 보배이고, 복음전하는 사명이 보배입니다. 영광의 사명이 우리에게 있으니까 우리가 나가서 이 사명을 써서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살려내는 일, 구원해내는 일해야 합니다. 멀리 가서 이방사람에게 전하지 못해도 제 집 근처 다니면서 전할 사람 많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저 만나는 사람에게 대화 식으로 전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배를 써서 점점 큰 보배가 되나가야 합니다. 보배가 자라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점점 더 자라나서 고린도후서 3장에 있는 말씀대로 우리가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입니다. 우리가 점점 자라나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고, 주의영으로 말미암아 자라는, 보화가 크게 되는, 큰 보화를 가지고가는 저희가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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