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생활
로마서 5:1-8
로마서 5:1-8
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는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우리로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자 또는 화평이 있고 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
5:2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기뻐한다.
5:3 이뿐 아니라 우리는 환난 중에서도 기뻐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다.
5:5 그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아니하니,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부어졌기 때문이다.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정해진 때가 되어,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
5:7 의로운 자를 위하여 죽는 자가 많지 않고, 선한 자를 위하여 용감히 죽을 자가 간혹 있기는 하나,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5:2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기뻐한다.
5:3 이뿐 아니라 우리는 환난 중에서도 기뻐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이다.
5:5 그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아니하니,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부어졌기 때문이다.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정해진 때가 되어,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
5:7 의로운 자를 위하여 죽는 자가 많지 않고, 선한 자를 위하여 용감히 죽을 자가 간혹 있기는 하나,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1. 썩어질 소망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소망입니다. “바란다”는 것은 소망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다고 했습니다. 소망의 주를 든든히 잡아야 풍랑에 요동하지 않습니다.
소망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 썩어질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망은 소망인데 다 썩어지고 말 것이므로 사실은 소망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있는데, 부자는 날마다 연락하며 호사생활을 하였는데 그 부자의 소망은 다 썩어질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다가 죽으면 마귀에게 이끌려 지옥 가는데 그것이 무슨 소망입니까? 또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런 소망을 가지면 다 썩어지고 맙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도 없습니다.
야고보서 4:13에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일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고, 누가복음 12:20에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해 쓸 것을 많이 쌓아두고 “평안히 먹고 마시자, 즐거워하자”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어리석은 소망이고 썩어질 소망입니다. 농사를 잘해서 여러 해 먹을 것을 쌓아 놓고, 또 사업을 잘해서 여러 해 쓸 것을 많이 쌓아 놓았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다 썩어지고 말 것입니다. 또 권세를 누리는 소망, 즉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권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해도 그것도 썩어질 소망입니다.
마태복음 20:25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들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라고 하였는데, 세상에서 남을 주관하는 높은 권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다 어리석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밤에 영혼을 불러가면 그 높은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다 없어지고 맙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좋은 의복, 좋은 집에서 살아야겠다, 높은 자리에 앉아야겠다, 공부를 많이 해서 명예출세 해야겠다”등이 다 썩어질 소망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2. 참된 소망
외부적인 소망
1)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소망
그러므로 영생하는 소망, 참된 소망을 위하여 일하여야겠습니다. 참된 소망을 두 가지로 나누면 외부적인 소망, 대내적인 소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참된 소망을 가져야겠는데, 그러면 무엇이 참된 소망인가? 그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소망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소망, 하나님의 의를 세워 나가는 소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소망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소망은 썩지 않는 소망입니다. 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소망은 썩지 않는 소망입니다. 그 나라를 위한 소망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소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이루어 나가는 소망, 즉 천국운동, 복음운동, 구원운동입니다.
복음을 전파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지옥 갈 사람들을 건져 내어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커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처음에는 겨자씨 한 알만 했다가 점점 자라나서 크게 됩니다. 처음에는 작은 돌이 내려 왔지만 점점 커져서 태산을 이루고 그 다음은 온 천하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커나가는 소망은 전도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 교회가 부흥되는 일, 다른 사람을 살려 나가는 일, 교회를 세우는 일, 선교하는 일,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확장되어 나가는 일 등으로 우리가 이런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예루살렘에서만 하면 안 됩니다. 유다로 나아가야 됩니다. 또 유다에서만 하면 안 되고 사마리아로 나아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땅 끝까지 이 복음이 전파되어서, 구원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일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 소망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봉사하고, 순교 당하고, 희생하고, 충성해 나가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 또 하나님의 의를 세워 나가는 것이 소망인데, “의(義)”는 성경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불의를 용납하지 아니하고, “의(義)”만을 위해서 삽니다. “의(義)”는 천하를 주어도 안 바꾸고, 목숨을 내어 놓고라도 의를 지키는 것이, 즉 진리를 지키는 것이 의를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의를 이루어 나가는 소망, 의를 지키는 소망, 의를 세워 나가는 소망, 그것이 산 소망입니다. 의가 아니면 천하를 다 주어도 안 가집니다. 의는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생명보다 의를 더 중요히 여기기 때문에 생명을 내어 놓고라도 하나님의 의를 지켜 나가고, 세워 나가는 것이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의가 없어서 다 망하게 되었는데 의를 세워 나가므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게 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예루살렘에서만 하면 안 됩니다. 유다로 나아가야 됩니다. 또 유다에서만 하면 안 되고 사마리아로 나아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땅 끝까지 이 복음이 전파되어서, 구원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일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 소망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봉사하고, 순교 당하고, 희생하고, 충성해 나가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 또 하나님의 의를 세워 나가는 것이 소망인데, “의(義)”는 성경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불의를 용납하지 아니하고, “의(義)”만을 위해서 삽니다. “의(義)”는 천하를 주어도 안 바꾸고, 목숨을 내어 놓고라도 의를 지키는 것이, 즉 진리를 지키는 것이 의를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의를 이루어 나가는 소망, 의를 지키는 소망, 의를 세워 나가는 소망, 그것이 산 소망입니다. 의가 아니면 천하를 다 주어도 안 가집니다. 의는 절대 양보하지 않습니다. 생명보다 의를 더 중요히 여기기 때문에 생명을 내어 놓고라도 하나님의 의를 지켜 나가고, 세워 나가는 것이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의가 없어서 다 망하게 되었는데 의를 세워 나가므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소망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소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겠는데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모든 면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일에 소망을 두어야겠습니다. 즉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소망을 두고 거기에 도달하여야 합니다.
대내적인 소망
1)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소망
그 다음에 대내적인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즉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소망이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여야겠다,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 나가야겠다”는 소망입니다. 요한일서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성도는 예수님의 영광체와 같은 영광체로 변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소망을 가진 자는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해야만 예수님을 많이 닮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소망,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소망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3. 소망을 이루어 나가라
본문 3-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소망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것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몸에 하나님의 영광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어 나가려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소망인데,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자기에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란 처음에는 바라만 보다가 그 다음에는 자기 몸에 그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처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만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영광에 참여할 것을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환난을 당합니다. 그래서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며,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나갑니다.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소망이 자기 몸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 소망입니다. 로마서 8:23-24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고 하였습니다.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소망입니다. 즉 몸의 구속을 이루어 나가는 소망입니다.
만물구속
로마서 8: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만물이 다 탄식한다고 하였습니다. 만물이 왜 탄식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이르기를 바라보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이 나타나서, 만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이르기를 원해서 탄식하는 것입니다. 즉 만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참된 성도에게 바로 이용당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만물도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것, 즉 죄 짓는 데에 이용당하는 것을 탄식 합니다.
무당들이 하얀 깃발, 빨간 깃발 등을 띄워 놓는데 바람에 날려서 깃발들이 다 낡아진 것을 보면 “저 깃발들이 얼마나 탄식하겠나?” 생각을 해봅니다. 통곡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만물이 탄식하는 것입니다. 또 무당들이 점하는데 이용당하는 음식들, 물건들이 얼마나 탄식하겠습니까? 무덤에 가서 절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무덤에 가서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절하면 우상숭배인데 자기 몸에 입은 의복이 탄식하며 또 제사음식. 제사상에 차려 놓은 음식들이 탄식합니다. 성도는 제사에 참여하면 안 됩니다.
만물이 죄에 이용당하므로 탄식하는데 만물이 원하는 바는 이것이 아닙니다. 만물이 원하는 것은 원 목적에 바로 이용되는 것입니다. 원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으로 만물이 직접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고 만물이 성도에게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즉 성도는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만물은 성도에게 바로 이용당해야 됩니다. 그러면 만물이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또 하나님이 직접 만물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성도에게 역사하시고, 그 역사가 만물에게 미치면, 만물이 원 목적에 도달합니다.
만물이 탄식하고, 만물이 소망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당하기를 원해서 소원을 두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주기도에 첫째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둘째가 “나라이 임하옵시며”입니다. “나라이 임하여 달라”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이루어 달라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같은 것입니다. 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도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하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있어야 된다는 것,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소망입니다.
몸의 구속
우리 몸의 구속을 이루어 나가는 일은 우리 몸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일입니다.
몸이 죄 가운데 있습니다. 전적 부패한 인간으로 우리 속에 죄가 많습니다. 몸의 구속이란 중생한 영과 성령이 합작을 해서 우리 몸을 죄 가운데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즉 몸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으므로 점점 죄를 물리치고 죄 가운데서 나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일이 몸의 구속입니다. 죄지을 생각이 들어오면 그것은 구속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에게 끌려가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구속을 이루어 나가는 일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죄는 점점 멀리하고, 끊어 버리고, 선한 마음을 품고, 선한 일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몸이 이용당하는 일이 몸의 구속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용당하는 일이 우리의 소망 생활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용당하는 것은 큰 복입니다. 평안히 사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의복을 입고, 평안히 눕고 쉬자, 여러 해 쓸 것을 쌓아 놓았다”하는 것은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밤에 네 영혼을 찾으면 예비한 것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는데, 아주 어리석은 자입니다. 평안히 쉴 생각은 그만 두어야 합니다. 나이 많아도 쉴 생각은 그만 두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오라고 하시는 날 때까지 하나님의 일을 하다 가야 됩니다.
심방 좀 맡으라고 했더니 나이가 많아서 못한다고 합니다. 나이가 몇 살이냐?고 하니까 일흔 한 살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젊었습니다. 뭐 나이가 많습니까? 심방해야 됩니다. 심방하는 것이 큰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위로해 줄 양에게 가서 위로해 주어라, 가서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라, 돌보아 주어 약한 사람을 강하게 하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붙들어 주어라” 할 때에 가서 하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습니다. 안하면 소망생활이 아니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소망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시는 데까지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그 나라를 위해서 일해야 됩니다. 심방할 사람이 심방 안하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다 거두어 가십니다. 몸이 약하다고 하면 몸이 더 약해지고, 힘이 없다고 하면 힘이 더 없어집니다. 그러나 심방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같이 하십니다. 그 나라를 위한 소망, 그 의를 위한 소망,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소망, 자기 몸의 구속을 이루어 나가는 소망, 자기를 만들어나가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는데 의와 진리와 거룩하심을 입은 새사람, 즉 하나님을 닮아가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고향을 찾는 것은 어떻습니까? 구정이라고 해서 고향 가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11:15-16에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안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실 본향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본향을 사모했습니까?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며 계속 나갔습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사니까 하나님이 기뻐서 더 나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이 세상 고향 찾는 것은 썩어질 소망입니다.
하늘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면서 그 소망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소망을 이루어 나가려면 무엇을 받아야 된다고 하였습니까? 환난은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하였는데 모든 환난을 다 참고 견디며 연단을 받아 나가면서 소망을 이루어 나가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소망을 바라보고 즐거워하지만 말고 소망이 자기 몸에 이루어 나가야 됩니다. 자기 몸에 소망을 이루어 나가는 생활 즉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 나가는 생활, 몸의 구속을 이루어 나가는 생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이루어 나가는 생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 나가는 생활, 이것이 소망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다 주십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9:26-27에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하는 것이 소망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또 바울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목표를 두고 달음박질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모든 참된 성도들이 이 소망을 가지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면서 소망을 이루어 나가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큰 환난이 와도 그 환난가운데서 연단을 받아 인내를 이루고, 소망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죽으면 좋겠다”는 것은 소망을 이루겠다는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소망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야지,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소망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야 됩니다. 썩어질 소망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아무 도시에나 가서 일년간 장사해 돈을 벌어서 잘 살아야 되겠다는 것은 다 썩어질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디에 가서 구경한다고 하는데, 구경 아무리 해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디가 좋다”하며 다녀 보아도 다 그것이 그것입니다. 제일 좋은 구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출애굽기 3장에 있습니다. 가시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그 불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제일 좋은 구경은 하나님 구경입니다. 하나님 구경하면 제일 좋은 구경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을 썩어질 소망에 두지 말고, 썩지 아니할 소망, 산 소망, 보이지 않는 소망. 그 나라와 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 자기 몸에 구속을 이루어나가는 일 등에 소망을 두고 그 소망에 도달해서 하나님 앞에 가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그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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