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때
고린도후서 6:1-2
고린도후서 6:1-2
1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라.
6:2 말씀하시기를 "은혜를 베풀 때에 내가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라고 하셨다. 보아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
6:2 말씀하시기를 "은혜를 베풀 때에 내가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라고 하셨다. 보아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
1. 주와 함께 일함
고린도후서 6장 1~2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 하는 사람은 누구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입니까? 1절에 보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같이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붙잡으시고 자기 일을 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요, 하나님의 병기입니다.
일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지체고 도구로서 하나님과 일하는 것입니다. 주의 일은 자기 혼자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해나가야 됩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 것
힘든 시기를 은혜의 때로 주심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는데, 2절에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은혜 베풀 때에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또 구원의 날에는 도와준다고 그랬습니다.
은혜 받을 때가 언제고 구원의 날은 언제입니까? 은혜 베풀 때는, 환난, 시험, 고통, 십자가, 이런 것이 오는 때가 은혜 베풀어 줄 때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구원의 날은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준 다음인데, 이것이 합격이 된 다음에는 하나님이 구원해 줍니다.
설령 낙제가 되어도 구원해 줍니다. 은혜 베풀어 줄 때를 지난 후, 낙제된 사람을 건저주시고 합격된 사람도 건져주십니다. 합격된 사람은 한반 올려 보내주고 낙제된 사람은 재시험을 칩니다. 재시험을 쳐서 재시험에서도 또 낙제되면 또 치고, 늙어 죽더라도 재시험을 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주시는 때가 있는데, 그때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나에게는 언제가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시는 때였습니까? 물고기 뱃속에 있을 때가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는 때입니다. 그때 요나가 부르짖었습니까?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이 들어줬습니다. 은혜 베풀어 줄 때에 하나님께서 들어준다고 했습니다. 요셉에게는 언제가 은혜 받을 때입니까? 종살이 할 때에, 감옥에 갇혔을 때에, 형제들에게 팔려갔을 때, 그때에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들어줬습니까? 들어주시고 건져주셨습니다. 구원의 날에 건져줬다는 말입니다. 다니엘에게는 언제가 은혜 베풀어 줄 때입니까? 사자 굴에 들어갈 때, 또 우상의 제물이나 왕의 진미를 안 먹으려고 할 때, 그 생명 내 놓고 왕의 명령을 어길 때, 그때가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 줄 때입니다. 열흘 동안 은혜의 때를 주시고 하나님께서 건져줬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은혜 베풀어 줄 때가 있고 구원할 날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합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 환난, 고통, 감옥, 매장, 시련이 몰아치는 것 그런 고통이 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난관, 고기 뱃속과 같은 그런 때, 그 때가 은혜 베풀어 주는 때입니다.
사자 굴 시험 오는 때, 그때가 하나님 은혜 베풀어 주는 때이니까 헛되이 보내면 안 됩니다.
헛되이 보내는 건, 원망하고 불평하고, 사람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찾아다니는 것은 헛되이 보내는 것입니다. 사람을 찾아다니는 건 뭐하는 것입니까? 은혜 베풀어 주는 때를 헛되이 보내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것은 은혜 베풀어 주는 때를 헛되이 보내는 것입니다. 헛되이 안 보내려면 책임을 자기가 지고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주여 죽겠습니다. 건져 주시옵소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독사꼬리를 잡을 것
썩어질 것을 삼켜 먹을 수 있는데, 독사가 오는 것을 꼬리를 잡으면 지팡이로 사용할 수가 있는데, 자신이 꼬리를 안 잡고 독사 온다고 해서 벌벌 떨고 두려워하고 원망 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독사가 와도 괜찮습니다. 독사가 오더라도 그 꼬리를 잡으니까 모세에게 능력의 지팡이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 상황에서 독사를 능력의 지팡이로 만들 생각으로 해야 하는데, 독사가 온다고 미워하고, 싸우려고 하면 안 됩니다. 독사하고 머리를 마주 하고 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독사하고 받아치면 독사가 물게 되고 그러면 누가 손해납니까? 자기가 손해납니다.
또는 하나님께 “주여, 왜 독사를 보냈나이까? 탁 죽이시옵소서”하면, 벌써 하나님 은혜 받을 때를 다 헛되이 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고, “독사가 왔습니다. 꼬리를 잡아야 하오니 힘을 주시옵소서”하고 주의 명령대로 잡아치우면, 그게 능력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 베풀 때 은혜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능력의 지팡이가 되에 구원의 날에 한몫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홍해바다 건널 때 한몫 쓰고, 반석에서 물 낼 때 한몫 쓰고, 또한 산에 올라갈 때 한몫 쓰게 됩니다. 일할 때 지팡이가 필요한데, 독사하고 서로 머리대고 싸우는 건 아주 어리석은 것입니다. 어떤 과정에서는 남편이 독사가 됩니다. 남편 때문에 부인이 늘 싸운다고 합니다. 이젠 못살겠다고 합니다. 부인이 남편 보기만 해도 싫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한데 와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주려고 그 남편 보내준 줄로 알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남편은 제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하여간 대단한 모양입니다.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주시려고 자기에게 그런 남편 만나게 해주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날 기도시키려고 이런 남편 만나게 해 줬으니 기도 많이 해야겠다’고 해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하고, 남편에게 잘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서 남편 보기만 하면 또 눈이 삐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직도 기도를 덜한 것입니다. 그 뿌리가 안 빠져나갔습니다.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쪽 빠져나가도록 기도해야겠는데, 뿌리가 아직 남아서 또 눈이 삐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좀 더 기도해야 합니다. 금식기도라도 해야 합니다. 철야기도도 하고 호리라도 남김없이 뿌리가 쪽 빠져나가도록 회개하면, 남편이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든다는 건 꼬리를 잡는 것입니다. 꼬리를 잡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능력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독사의 꼬리를 잡았으니까 능력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가자”하면 가고, “뭘 사오라”하면 사오고, “예배당 가자”하면 가고, “새벽기도 가자”하면 끌고 오는 것입니다. 남편이 새벽기도를 같이 가면 능력이 배가 될 것 같습니다. 혼자 가는 것 보다 남편 호위병 하나 데리고 가니까 깡패 만날 일도 없을 것입니다. 꼬리 잡는 게 이게 꼬리 잡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아니하고, 참 하나님 은혜를 다 받아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에 구원을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십시오. 은혜주려고 전부 시험, 환난, 고통을 준 것인데,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서 그저 하나님께 은혜 받을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때에 은혜 받아서 자기가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크게 올라가는, 그런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3. 은혜 받을 때를 스스로 만들 것
시험, 환난, 고통이 오는 그때가 은혜 받을 때
시험, 환난, 고통이 오는 그때가 은혜 받을 때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것이 없는 사람은 은혜 받을 때를 자기가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은혜 받을 때를 주는 사람은 좋은데, 그걸 안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환난, 고통, 시험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는 자기가 만들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그것은 모세와 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모세가 왕자의 지위를 버림으로 은혜 받을 때를 만듦
히브리서 11장 24~26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만들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는데,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었습니다. 이것이 은혜 받을 때를 만든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 애굽의 모든 재산, 향락, 다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은혜를 못 받습니다. 은혜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너무 좋고, 편안하고, 권세가 있고 향락이 있는데 어떻게 은혜 받겠습니까? 그래서 모세는 자기가 은혜 받을 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 내다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는 길에 나서고,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 받는 길에 나섰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를 위해 다 버림으로 은혜 받을 때를 만듦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도 가만있으면 괜찮은데 다 내놓고 주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또 자기 자신까지 희생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고린도후서 12장 15절에,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였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와서 자기 것을 내놓으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원해서 자기 모든 재물을 허비하고, 자신까지 주를 위해 몸 바쳐서 고난을 자처하고, 십자가를 지고 자신까지 허비하면서 일생을 하나님 앞에 바쳤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받을 때를 자기가 만든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것인데,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놓고는 돈은 다 없애고, 고난을 받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미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거 정신 나갔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정신 나간 것 같지만, 미쳤다고 하지만, 진실하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6장 24절에,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5장 13절에,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해도 너를 위한 것이다’,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는 미치고 정신 나간 것 같지만, 정신이 온전해도 주를 위해서 희생하고, 자기 스스로를 고난 받게 해서 은혜 받을 때를 만든 것입니다.
핍박을 받아야 은혜도 옴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핍박이 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이 온다고 했는데, 핍박이 올 때가 은혜 받을 때입니다. 우리가 왜 평안한가? 그건 경건하게 살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씀을 지키려고 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핍박이 옵니다.
그리고 은혜 받을 때를 만드는 방법은 화목하려고 하고, 분별하려고 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를 쓸 때에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애통하게 여기고,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화목하고, 또 영을 분별하고, 진리를 분별하려고 애를 쓸 때에 은혜 받을 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는 만들어서 은혜 받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신약시대는 은혜 받을 만한 때임
주께서 큰 잔치를 배설하고 다 초대함
본문 2절 하반 절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때라 하십니다.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그랬는데, 여기서 ‘지금’은 신약시대를 가리킵니다.
신약시대는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시대 전체는 은혜 받을 때고 구원의 날이 됐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사람들을 다 청했습니다. 누가복음 14장16~20절에,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소를 잡고 잔치하는 건, 예수그리스도께서 와서 우리를 위해서 구속의 희생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다 와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안 왔습니까? 밭 사러 가고, 소를 사서 시험하러 가고, 장가가느라고 안 왔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오셔서 구속의 재물이 되셨습니다. 다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는 “와서 얼마든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라, 신령한 잔치에 참여하라”고 하셨는데, 사람들이 소 사러 가고, 밭 사러 가고, 장가가는 바람에 오지 않았습니다.
5. 은혜 받을 때를 헛되이 보내지 않는 자가 되라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가 되어야 함
신약시대는 언제든지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인줄 알아야 되는데,
신약시대에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에 은혜 받고, 구원의 날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습니까?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사람,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 이 은혜 받을 때를 헛되이 보내지 않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언제나 심령이 가난하고, 간절히 사모하고, 애통하는 그런 사람이 언제나 은혜를 받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됩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말은 점점 죄에서 나오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영혼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런데 사모하는 마음이 없고, 자기 볼 장 보러 가는 사람, 애통함이 없는 사람은 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24-26절에,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화가 있습니다. 배부른 자, 웃는 자,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자가 화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이 왜 화가 있느냐 하니, 이것은 진리를 양보하고 세상주의로 나가니까 모든 사람이 칭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나간다고 하면 모든 사람에게 핍박이 옵니다. 말씀을 안 지키고 진리를 양보하고 세상주의로 나가니까 모든 사람이 칭찬을 합니다. 그래서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천국에 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여기 나오는 것은 진짜 약대(낙타)입니다. 성경에 나온 것은 진짜 바늘구멍이고 진짜 약대입니다. 진짜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부자는 천국에 절대 못 들어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습니까? 부자가 가난한 사람이 되어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요한 마음, 부자도 그 부요한 마음을 다 버리고 가난한 심령과 가난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만 자기 것을 삼고 가난한 자리에 내려가서 가난한 심령으로 애통하며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나는 부자다”하고 배 쭉 내밀고 가는 건 하늘나라에서 멀리 떠난 사람입니다. 그의 재물과 더불어 망할 사람입니다.
이 신약시대는 언제나 은혜의 때이고 구원의 날인데, 우리가 늘 사모하고, 가난하고, 언제나 애통해야만 늘 구원을 이루어 나가고 은혜를 받아 나갈 수가 있습니다.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기도도 하고 말씀도 배우려 합니다. 배부른 사람에게는 말씀을 줘 보았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께 참예하려는 자가 되어야 함
그리고 어떤 사람이 신약시대에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 하면, 늘 그리스도께 참예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에게 참예해야 되겠다”하면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 1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의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려고, 그의 고난에 참예 하려고 애쓴다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언제나 은혜 받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이 계속 구원을 이뤄나갈 수 있습니다.
사명에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함
그 다음에 어떤 사람이 신약시대에 늘 은혜 받을 수 있는가 하면, 사명에 충성하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을 향해서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줄 알면서도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돌에 맞을 줄 알면서도 나가서 전하지 않았습니까? 자기 사명감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너무 핍박이 심해서 전도 안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또 나가서 했는데, 그의 속에 불붙는 게 올라와서 안 하려고 해도 아니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0장 9절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전하러 나갔습니다. 그만두려고 하니까 속에서 불붙는 것 같고, 골수에 사무치니까 “핍박이 와도 나가야겠다”하고 계속 나가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명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갔고, 또 자기의 재물과 자기 자신을 다 희생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신약시대에 언제나 은혜 받는 사람이고, 언제나 구원의 날에 참예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매일 은혜 받는 사람이고, 매일 구원의 날에 참예하는 사람입니다.
신약시대는 어떤 사람이 매일 은혜를 받고 구원에 참예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첫째는 심령이 가난하고 간절히 사모하고 애통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에 참예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사명에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신약시대에 매일 은혜 받고 매일 참예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6. 평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은혜 받을 때를 만들 것
하나님의 은혜 받을 때를 세 가지로 얘기를 했습니다. 어떤 때가 은혜 받을 때인가 하면, 환난과 핍박과 고통과 시험이 올 때가 하나님의 은혜로 붙들어 주시는 때이고, 그런 뒤에 구원의 날이 옵니다. 그게 없는 사람은 자기가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이 편안하다면 언제 환난이 옵니까? 먹을 게 있고, 누가 와서 자신을 멸할 사람 없습니다. 새벽기도 안하고 늦게 자도 누가 와서 왜 안하냐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심방에 대해서 왜 안 하냐고 하면, ‘까짓 거 이사 가서 관두지 뭐’라고 합니다. 이사 갈 때 말도 안하고 도망갑니다. 그런 것은 은혜 받을 때를 다 지나보내는 것이고, 나중에 비참하게 후회할 날이 옵니다. 결국 불쌍한 자가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스스로 은혜 받을 때를 만들어야 됩니다.
만드는데 어떻게 만들라고 했습니까? 모세와 같이, 자기의 모든 것을 평안한 것을 내놓고 부요한 것을 내놓고 높은 지위 다 내놓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으려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고생 받는 길로 다 내놓고 나서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 편안한 교회는 내놓고, 개척교회 하는 곳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볼 때는 좋은 교회나 편안한 교회가 좋습니다. 과거에 개척하려고 수고했던 사람이 이제는 좀 편안해 지니까 “가만히 있지 뭐 하러 또 개척하려고 나가느냐?”하고 맙니다.
우리는 은혜 받으러 나가는 것입니다. 편안하게 가만히 있는 상태는 은혜 받을 때가 다 지난 것입니다. 어떤 목사가 “나는 지금 다섯 번째인가 개척을 한다”고 하기에, 제가 “다섯 번이 뭘 많이 한 것이냐? 최권능 목사님은 칠십 다섯 교회를 개척했는데, 다섯 교회 한 것은 아직 멀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에 최권능 목사님은 일흔 다섯 교회를 개척했겠습니까? 몇 번 더 개척하면 큰 은혜 받는 것입니다.
하여간 보따리 싸놓고 있다가 개척할 때는 나서야 합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하늘나라에서 참 상급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지금이 늘 ‘은혜 받을 때’ 입니다. 일흔 다섯 번이나 개척교회를 했으니까 그 얼마나 고생하면서 은혜 받을 때를 만들었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현 생활이 편안해지면 또 고생하려고 나가는 것입니다. 한 목사가 김포동부교회가 좀 나아졌으니까 또 개척하려고 나가야겠다고 늘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보내준다고 가만있으라고 했었는데, 다른 곳에 개척 보내주기 전에 천당에 갔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미리 보내줄걸, 그렇게 갑자기 갈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개척교회 나간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알겠습니까? 보통은 뭘 하나 해놓고도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 세금 뚝 자르고 나가서, “여기서 죽도록 안 나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은혜 받을 때를 평생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은혜 받으러 나가야 하는데 왜 안 내보내주느냐?”하는 게 좋은 것입니다.
평안한 게 좋은 게 아닙니다. 평안할 때는 썩어지고 맙니다. 모세와 같이, 바울과 같이 하는 것이 은혜 받을 때를 만드는 것입니다. 경건한 생활을 하고자 할 때에 은혜 받을 때를 만드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는 언제나 은혜 받을 때이며, 언제나 구원의 날입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심령이 가난하고, 사모하고, 애통하고, 또 그리스도에게 참예하고, 사명감에 충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만 언제나 은혜 받고, 구원의 은혜에 참예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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