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5일 일요일

사도행전 6:8-15 스데반의 전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스데반의 전도
사도행전 6:8-15

6:8 스데반이 은혜와 능력이 충만하여 백성 가운데 매우 놀라운 일들과 표적들을 행하였다. 
6:9 구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 중 자유인이라고 불리는 자들의 회당에 속한 몇 사람과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일어나서 스데반과 논쟁을 벌였다.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것을 그들이 당해 낼 수 없으므로, 
6:11 그들이 사람들을 매수하여 "그가 모세와 하나님께 대하여 모독적인 말들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 라고 말하게 하였다. 
6:12 그들이 백성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을 선동하여 그에게 몰려가 그를 붙잡아 공회로 끌고 가서, 
6:13 거짓 증인들을 세워 이렇게 말하게 하였다.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르는 말들을 쉬지 않고하며, 
6:14 이 사람이 '나사렛 사람, 예수께서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해 준 관례들을 고치실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 하니, 
6:15 공회에 앉아 있던 모든 자들이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았는데,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1. 스데반의 은혜와 권능의 전도
스데반은 성령, 지혜가 충만하며 칭찬 듣는 사람임

본문 8절에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게 행하였다고 하였는데, 스데반은 일곱 집사들 가운데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고,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고, 교인들 중에도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3절). 그런 사람에게 재정을 맡기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래야 신임할 수 있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본문 9절에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쌔”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다 이방에서 예루살렘에 온 유대인들인데 이들이 스데반과 변론하였습니다. 구레네는 아프리카 흑인종이 있는 곳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애굽 북부에 있는 곳으로 아프리카 북단입니다. 길리기아는 바울의 고향이며 소아시아 지방으로 요단강 건너편에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여러 사람”이란 소아시아로 터어키쪽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여러 곳에서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이 각 회당에서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했습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전도

본문 10절에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스데반이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므로 사람들이 능히 당치 못했습니다. 유식한 말이 힘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리 학식이 없어도 옳은 말을 할 때에 힘이 있으며 또 하나님께서 같이 하십니다.

2. 유대인들이 거짓 증인을 세워 스데반을 죽이려 함

본문 11절에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스데반의 말을 감당하지 못한 유대인들이 거짓 증인을 세워서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고 거짓증거를 하게 했습니다.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왜 모독하겠습니까? 그런데 유대인들이 거짓 증인을 세워서 “스데반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우리가 들었다”고 하며 거짓 증거를
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큰 죄입니다. 스데반이 사실 모세를 모독하고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하면 그것은 사형 받을 죄입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면 죽이는 때입니다. 이렇게 스데반에게 거짓 증인을 세워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본문 12-13절에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공회가 모였는데 이 공회는 예수님을 정죄해서 죽인 공회입니다. 그 공회에서 스데반을 잡아갔습니다.

본문 13-14절에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증인들이 뭐라고 합니까? 거짓 증인들은 스데반이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모세가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거짓 증거하였습니다. 즉 예수가 성전을 헐겠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고, 모세가 전하여준 규례를 고치겠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몇 가지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스데반을 거짓 증인을 세워서 죄를 만들어 뒤집어 씌워서 죽이려고 하는데, 죄가 두 가지입니다. 무엇입니까? 성전을 훼방했다는 것과 그 다음에는 모세의 율법을 고치겠다고 말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즉 “나사렛 예수가 이 성전을 헐겠다고 하였다”는 것과 “모세가 전하여 준 율법을 고치겠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리라”(요 2:19)고 하신 말씀을 악용한 것입니다.

“헐겠다” 한 것이 아니고 이 성전을 “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겠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사흘 만에 일으킨다”는 말은 안하고 “헐겠다”고 하는 말만 갖다 붙인 것입니다. “헐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고 너희가 “헐면”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을 “헐겠다”고 한 것은 말을 바꾸어서 한 것이며, 반 거짓말입니다. 그 다음에 짓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사렛 예수가 이 성전을 헐겠다” 이것 한 마디만 갖다 붙였습니다. 조금만
고쳐서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은 한 마디만 고치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나쁜 말이 됩니다. 또 사형할 만한 말이 됩니다. 즉, 좋은 말이라도 한 마디만 고치면 악한 말이 됩니다.

남이장군이 쓴 시 구절 중 남아이십 미평국(男兒二十 未平國:나이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을 남아이십 미득국(男兒二十 未得國:나이 이십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고쳐서 남이장군이 반역했다고 모함을 하여 죽였습니다. 즉 미평국(未平國)의 “평”자를, “득”자로 고쳐 미득국(未得國)으로 하여 남이장군을 참소하였습니다. 이처럼 말 한 마디만 고치면 충신을 역적으로 몰아서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 한 마디 고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마귀가 말 한 마디 고
치는 것을 가지고 잡아 먹습니다.

하와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고쳤습니까?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로 고쳤습니다. 즉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것은 없는 말씀을 붙인 것이고, 또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빼고 “죽을까”로 붙였습니다. 한 마디 갖다 붙였기 때문에 마귀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거짓 증인들이 이렇게 말 한마디를 비슷하고 다르게 꾸며서 스데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이 사람들이 죽이려고 하는 것을 이미 알고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3.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됨

본문 15절에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려고 거짓 증인을 세워 살기가 등등해서 나가는데 스데반은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쳐다본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려고 거짓 증인을 세우고, 정죄를 하고, 살기가 등등한 이런 사람들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스데반은 어디를 보았겠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고, 예수님을 바라 볼 때에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나도 예수님과 같이 되는 구나” 하는 생각으로 너무 기뻐서 그 때에 스데반의 얼굴이 어떻게 되었다고 하였습니까? 스데반을 죽이려고 거짓 증인을 세워 악평(惡評)을 하는데도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왜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습니까? 스데반의 심령 속에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고, 성령으로 기쁨이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기선 목사님의 말씀처럼 ‘나 같은 것도 예수님의 길을 가는구나’라고 생각하니 너무 기뻐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은 고난 받는 길이며 말씀을 전하다가 죽는 길입니다. 나도 이 말씀 전하다가 고난 받는 길을 가게 되었으니 너무 기뻐서, 그 기쁨이 얼굴에까지 나타나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다 죽는 길로 가게 되었으니 너무나 기쁘다, 나 같은 것도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가는구나’라고 생각하니 너무 기뻐서 그 기쁨이 얼굴에까지 나타나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된 것입니다. 스데반은 언제나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으로 기뻐하는 사람, 그리고 생명력이 속에서 역사하고 믿음이 충만하므로 얼굴에까지 나타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가신 발자취를 따라 간다는 것이 영광스러운 길인 줄 알았습니
다. 그리고 죽어도 십자가 지고 나가는 것, 고난 받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기뻐서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습니다.

7장에 보면 스데반이 전도했습니다. 성경을 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모세, 이삭, 야곱 등 구약성경을 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때에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어야 했는데, 도리어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였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이렇게 크게 나타났고 말씀의 역사가 이렇게 크게 드러났는데, 그것을 거역하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짓는 것입니까? 심판이 더 큽니다.
성령의 감동과 말씀의 역사가 크게 나타날 때에 거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거역하면 죄가 더 큽니다. 더욱 더 악해집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을 끌고 나가서 때려 죽였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 때 죽지 않은 것보다 더 큰 복을 받았습니다. 스데반이 그때에 전도하다가 죽었으므로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순교자의 반열은 영원히 빛나는 반열입니다.

스데반이 말씀 전하다가 말씀을 위해서 죽었으므로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받았을 것입니다. 또 육신을 위해서 살면 반드시 다 죽을 것인데, 죽을 것이 영의 역사에 삼킨바 되어 갔으므로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큰 자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그 때에 안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순교 안 당했으면 몇 년 더 살았겠습니까? 그 때에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40세 되었다고 합시다. 80세에 세상 떠나는 것으로 한다면 40년 더 사는 것입니다. 40년
더 살고 죽는 것이나, 그 이전에 죽는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이제 스데반이 죽은 지 2000년이 되었는데, 2000년 전에 40년 더 살지 못한 사람이나 더 산 사람이나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에는 40년이 큰 것 같지만 100년이 지나가고, 300년이 지나가고, 500년이 지나가고, 1000년이 지나가면, 40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입니다. 조금 더 살고 하늘나라에서 면류관을 못 받는 것보다 아무래도 죽을 것인데 40년 못 살아도, 더 일찍 죽어도 하늘나라에서 면류관 상급을 받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스데반이 순교 당한 것이 큰 복입니다. 죽지 않은 것보다 더 큰 복입니다. 이것은 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복입니다. 스데반은 집사의 직분을 맡아 봉사하고 전도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님과 영적 교통하는 생활을 하므로

또 하늘을 우러러보므로 즉, 예수님과 영적 교통하는 생활을 하므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성령으로 영적 교통하는 생활은 기쁜 생활입니다. 또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이려고 한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또 순교 당하면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 하나님과 교제하고 신령한 세계에서 주님으로 즐거워하는 생활, 이것이 얼굴을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 예수님과 교통하는 생활은 이 세상을 초월해서 사는 생활입니다. 또 세상을 떠나면 순교자의 반열에 참여하고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크고 그것이 또 기쁜 일이므로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환경을 초월해서 항상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는데 성도는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하려면 언제나 영적 세계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되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리에서 살면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 세상을 초월해서 영의 세계에서 성령의 인도대로 사는 생활은 항상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또 이제 세상 떠나면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되므로 더 좋은 일입니다. 또 주님이 생명이 되었으니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죽이겠다는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 것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으로 즐거워하고, 영적 세계에서 살고, 성령으로 살고, 믿음으로 사는 그 생활을 해야만 되겠습니다. 그것이 항상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어떤 악한 환경이 닥친다고 해도 항상 기뻐하는 생활, 이것이 믿음입니다. 또 쉬지 말고 기도하는 생활,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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