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6일 수요일

요한계시록 2:8-11 열흘 동안의 시험 가운데 충성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열흘 동안의 시험 가운데 충성하라
요한계시록 2:8-11

8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9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10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1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1. 죽은 교회도 다시 살려주시는 예수님

본문 8 절에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라고 하였는데 서머나 교회에 예수님의 나타나신 모양은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처음이요 나중이라는 말은 우리 구원의 시작이 예수님이요 나중도 예수님께서 다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구원 역사를 처음에 시작하셨고 나중까지 완성시키시는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이라는 것은 부활의 주님인 동시에 왕성하는 역사를 하시는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십니다. 기독교도 다 죽은 것 같지만 다시 살아나서 왕성하는 그와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독교가 다 없어지는 것과 같은 때가 많았습니다. 네로 황제, 도미니안 황제 같은 때에는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잡아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지상에 기독교가 다 없어지는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때 성도들은 산 중과 암혈과 토굴로 이렇게 다니면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교회가 다 없어진 것과 같이 되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300 년 후에 다시 기독교가 일어났는데 온 세계 다 일시에 기독교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313 년 니케아 회의 때에는 많은 교회와 많은 교역자
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죽었다 살아나신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기독교도 죽은 것과 같지만, 예수님이 다시 살려주시면 살아납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다 죽은 것 같지만 다시 살려주시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북의 기독교가 다 죽은 것 같습니다. 이북에 지상에는 보이는 교회가 별로 없습니다. 평양에 광고하기 위해서 한두 개 만들어 놓은 것이고 기독교가 다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제 다시 살려주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성경대로 되는 것입니다. 다시 살려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또 세계 어디에나 기독교가 다 없어질 것 같지만 다시 살려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2. 믿음 지키는 자가 받는 훼방

본문 9 절에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는 예수 믿는다 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로마서 2 장 마지막 절에 보면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다”라고 하였고 성경에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을 유대인이라고 표현한 곳이 많습니다. 자칭 예수 믿는다 하는 사람들이 이 ‘자칭 유대인’입니다. 교회에 환난이 들어오면 교회가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믿음을 지키면서 환난 당하는 성도와 믿음 양보하고 세상에서 잘 살려고 하고는 사람이 생깁니다. 믿음을 지키면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진리를 양보하면 세상에서 부요하게 됩니다. 야고보서 1:9-10 절에 보면,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고 하였습니다. 낮은 형제는 믿음 지키다 낮아진 사람으로 그는 높아진 것을 자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반면 믿음 양보하고 신앙 양심을 양보하고 진리를 양보하고 부요해진 사람은 도리어 낮아졌단 말입니다. 낮아진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본문 9 절에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하였는데 믿음 지키면서 환난과 궁핍을 당하는 성도를 예수님이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잘 못 지키면서 부요한 자들은 벌써 낮아진 자이고 마귀에게 진리를 양보한 자입니다. 진리를 양보한 사람은 사탄의 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북에 있는 성도들이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는데 실상은 그들이 부요한 자들입니다. 이제 하늘나라에 가보면, 이북에서 믿음 지키면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고, 강제수용소에 가서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고 온 사람들을 만날텐데, 그런 사람들이 실상은 부요한 자들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신앙의 자유가 있고 마음대로 믿음 지킬 수 있지만, 이런 곳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성도에게는 이북에 있는 성도들만한 믿음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늘 평안하고 너무 자유스럽고, 모든 것이 너무 풍성하니까, 이북에 있는 성도같이 믿는 일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하늘나라 가보면 이북에서 믿음 지킨 성도는 다 면류관을 받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는 성도들은 평안한 가운데서 믿음을 잘 못 지키고 육신 중심, 세상 중심, 방탕, 술 취하고 돌아가다가 하나님 앞에 가면 하늘나라에서 보잘 것 없을 것 같습니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라고 하였는데, 믿음 지키면서 환난을 당하고, 생활에
궁핍을 당하는데 궁핍은 생활적인 면, 경제적으로 믿음을 지키다가 궁핍을 당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노니” 하신 것은 그런 자들을 알아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알아주는 것이 크고 또 실상이 문제입니다. 환난과 궁핍을 당해서 다 빼앗기고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고 죽을 지경을 당해서 순교 당하고 하지만, 실상은 그들의 신앙이 부요해서 하늘나라에 가서 면류관 상을 많이 받을 것입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라는 것은 너를 훼방하던 자들,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의 훼방을 아노니 라는 말로, 그들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양보하고 믿음 안 지키는 사람들이 믿음 지키는 사람들을 훼방한다는 말입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라고 했는데, 진리를 양보한 사람은 진리를 지키는 사람을 훼방합니다. 옛날에도 훼방하고 지금도 훼방합니다. 이상하게 믿는다, 독선주의다, 이상한 사람들이다, 고집쟁이들이다 라고 하면서 믿음 지키는 사람을 훼방합니다.

왜정 말단에 신사 참배 바람이 들어왔을 때에도 신사 참배 안 하려고 거부하고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총회는 신사참배를 가결했습니다. ‘신사 참배는 국가 의식이기 때문에 해도 괜찮다’라고 하면서 교회에서 가결해 놓고, 신사 참배를 다 하도록 만들어 놓고, 안 하려고 거절하고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을 비방했습니다. 저건 독선주의자들이다, 고집쟁이들이다, 자기네만 예수 믿는 것이냐, 하면서 믿음 지키는 사람들을 훼방했습니다. 자기는 안 지키니까, 믿음 지키는 사람을 훼방한 것입니다. 요새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주일날 나오라고 할 때 우리 교인이 안 나간다고 하니까 ‘네가 뭐라고 주일날 안 나오느냐, 나는 교회 장로다. 장로도 직장에 다 나오는데 네가 집사도 하나 못 된 자가 뭘 안 나온다고 하느냐? 무슨 교회 다니느냐? 이상한 교회 다닌다’하면서 이렇게 훼방 할 때가 때때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 안 지키는 신자들이 믿음 지키는 신자를 볼 때에 보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훼방하는 것입니다. ‘이상한 교회다, 이상하게 믿는다, 저건 율법주의 교다, 저들은 고집쟁이다, 어떤 목사가 가르쳤느냐, 그 목사가 못된 목사다, 교회가 못된 교회다, 그 교회 나가지 말아라, 그 교회 안 나가면 나도 교회 나간다’라면서 훼방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남편이 자기 부인이 우리 교단 교회 나오니까, 그 교회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남편이, “네가 이상한 교회 안 나가고 다른 교회 나가면 나도 교회 다니겠다”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집사 하나가 양보하고 남편 구원하기 위해서 남편 따라서 다른 교회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그 교회 못 나가게 하려고 자기 나간다고 그런 것일 뿐 믿으려고 나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보 같은 집사가, 남편 구원한다는 욕심을 가지고 남편하고 다른 교회 나갔단 말입니다. 그렇게 남편이 몇 번 나가고 난 후, 남편이 나가긴 뭘 나갑니까? 몇 번 나가고 관두고 그 집사 믿음만 다 떨어지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믿으려고 하고, 바른 교회 나가고, 바른 진리 배우고, 바른 진리 지키려고 하면 반드시 훼방이 옵니다. 그래도 거기 넘어가면 안 됩니다. 당연한 것이 왔다, 올 것이 왔다, 성경대로 되었다 이렇게 믿고 진리 양보하지 아니하고 계속 나가야 됩니다. 그 집사는 자기 믿음만 떨어지고 지금, 교회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남편은 몇 번 나가고 안 나갔다고 합니다.


3. 열흘 동안의 시험 가운데 충성하라

본문 10 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는데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 지키려면 장차 고난이 올 것을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하는 말은 마귀가 종들을 시켜서 마귀의 종이 사람 속에 들어가서 그들을 시켜서 환난을 받게 한다는 말입니다. 또 옥에 던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귀의 종들이 장차 너희를 감옥에 던진다는 말입니다. 감옥 생활을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믿음 안 지키는 사람을 마귀가 이용하면 다 마귀의 종이 됩니다. 믿음 안 지키는 사람을 마귀가 이용합니다. “마귀가 너희를 시험을 받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합니다. 사람을 ‘옥에 던진다’는 것은 마귀의 종이 너희를 감옥에 던진다는 것입니다.

이 환난 때에 목사가 목사를 감옥에 잡아넣은 사람 많습니다. 일제시대 때, 최권능 목사를 오산 교회 목사가 잡아넣었답니다. 최권능 목사가 숨어 있었는데, 그곳에도 조그마한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산 교회 목사가 일본 경찰에 고발해서, 최권능 목사를 잡아가게 했습니다. 최권능 목사는 숨어 있는 곳에서 오산 교회 나가지 말라고 했답니다. “오산 교회는 신사 참배하는 교회이니, 거기 나가야 생명이 없다. 죽은 어머니 젖을 빨면 피가 나오지 젖이 나오는 것이 아
니다. 그 사람들은 다 죽었으니까 거기 나가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것을 오산 교회 목사가 들은 모양입니다. 화가 나서 자기를 ‘죽은 어머니’라고 한다고 최권능 목사를 경찰에 고발해서 잡아갔답니다. 최권능 목사가 그때 잡혀서는 감옥에 있다가 순교 당했습니다. 마귀가 잡아 준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믿음 안 지키는 마귀의 종들이, 사람을 이용해서 믿음 지키는 사람을 감옥에 던지고 환난을 당하게 합니다.
옛날에는 진짜 감옥에 던졌지만, 지금 감옥이라는 것은 사람을 똘똘 몰아치워서 고립 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디 융통할 수가 없고 자유가 없고 고립시켜놓는 것입니다.

똘똘 몰아서 감옥에 갇히게 할 것인데 십일 동안입니다. 내내 오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열흘이면 다 끝장납니다. 환난이 올 때에는 “일생 동안 내가 어떻게 감옥 생활할 수 있느냐? 일생 동안을 이렇게 몰아치워가지고 신앙에 고립 당하고, 나를 왜 나가서 모든 것을 못하게 하느냐?” 라고 생각하지만 열흘이면 다 끝난다는 말입니다. 열흘만 참으면 됩니다. 열흘 동안 환난입니다. 다니엘 1 장 12 절에 보면 다니엘도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하매” 라고 하였고 또, 창세기에도 보면 10 번이나 품 값을 속였다고 야곱이 하였고, 리브가는 약혼을 했는데 열흘 더 있다 가라고 했습니다. 십 수는 인간의 만수입니다. 육체의 만수. 육체가 감당할 만한 숫자가 열흘입니다. 육체의 만수. 하나, 둘, 셋, 하고 세면 열 하고 끝장나고 다시 열하나로 내려오지 않습니까? 또 열씩 열하면 백 아닙니까? 또 백 하나로 내려옵니다. 열흘은 만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환난이 올 때에 열흘 동안 환난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모든 믿음 지키는 데서 오는 환난은 열흘 동안 환난입니다. 전에 당한 환난도 열흘 동안, 현재에 당하는 환난도 열흘 동안, 이북의 성도들이 당하는 환난도 열흘 동안, 대한민국에서 믿음 지키다가 당하는 환난도 열흘 동안, 미국에서 당하는 것도 열흘 동안, 열흘이면 하나님께서 끝장을 내주십니다. 열흘 동안이면 하나님이 자유와 해방을 주십니다. 그래서 환난 당할 때에 닷새다, 엿새, 칠 일, 팔 일, 구일 하면 하나님께서 이제 됐다, 이제는 다 감옥에서 나오라고 하시며 자유와 해방을 준다는 말입니다. 열흘이면 자유와 해방을 받습니다. 그 열흘 동안만 참으면 됩니다. 열흘은 육체의 만수, 세상 만수가 열흘입니다. 열흘이 다 차면 하나님께서 이제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그 열흘만 참으면 됩니다. 환난이 들어올 때는 며칠 참으면 됩니까? 열흘만 참으면 됩니다.
또 만수가 있는데 내내 환난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 동안 환난 당할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얼마 동안 당하다가 하나님께서 이젠 되었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환난을 거둬 가십니다.

열흘 동안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옵니다. 죽인다, 내쫓는다, 큰 환난을 맞는다, 다 망한다고 하며 핍박합니다. 열흘 동안 그렇게 힘들지만, 그래도 성경에 입각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열흘 동안만 참으면 열흘이 다 끝나면 “됐다, 이제는 해방이다, 감옥 문을 열어라!”라고 큰 소리 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가족이 핍박을 한다고 하면 가족도 열흘 동안만 하고 관둡니다. 하다하다 못해서 열흘 동안 하고서 “에이 이제 할 수 없다!”면서 이제 자기 뜻대로 하라고 합니다. 열흘
동안은 뭐 형편없이 “죽인다, 내쫓는다, 이제는 다 망한다, 죽여버리고 만다, 모가지 잘라서 목을 비틀어치우고 만다, 열흘 동안은 생활비를 안 준다, 굶어 죽게 한다” 하다가 그 열흘만 차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해방시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핍박해도 안 되니까 “에이 이젠 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 내가 관둬야지 가족 식구인 내가 관둬야지 별 수 없다” 하고 포기합니다. 교회 못 나가게 하다가, 열흘 동안만 참고 나가면 이 사람은 내버려 둡니다. 나가겠으면 나가라고 말입니다. 암만 말을 해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매를 때리다가도 열흘 동안만 때리고 내버려둡니다. 때려죽이기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또 죽을 각오하고 나가니까 어쩔 수없습니다. 
선천의 김경숙 집사 남편이 공산당인데 부인을 교회 못나가게 하려고 때려죽이려고 생각을 했답니다. ‘교회 나가면 죽인다’ 하면서 다듬이 방망이, 한 40 cm 길고 손목만큼 굵은 방망이를 가지고 아예 죽이려고 교회 갔다 오는 것을 냅다 때렸답니다. 대문 간에서 때린 것을 집안까지 끌고 들어와가지고 때렸는데 죽은 줄 알고 내다 버렸습니다. 이북에서는 공산당들이 하나 죽여도 괜찮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죽이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래도 잘 참고, 그 다음날 새벽에 새벽
기도 나갔다 오고, 교회 나가지 못하게 죽이려고 했던 남편에게, 아침에 조반을 잘 차려가지고 갖다 놨습니다. 조반 잡수라고 아침을 해다 갖다 놨습니다. 남편이 아무리 공산당이라고 해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아침에 죽었으면 장사지내려고 했는데 어떻게 새벽 기도를 또 나갔다 오고, 이렇게 조반을 또 하고, 내게 대해서 원한을 품지 않고 이렇게 하느냐. 이것을 보니까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이 계시니까 저 사람이 죽지 않았지 어떻게 안 죽었겠느냐’ 하고는 나도 이제는 공산당 그만 두고 예수 믿어야 되겠다고 했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예수 믿었습니다. 김경숙 집사가 열흘 동안 그 시험을 당했는데, 죽이겠다 할 때까지 다듬이 망치로 때릴 때까지 그저 열흘 동안 당한 것입니다. 남편도 열흘 되니까 이제는 손을 바짝 들었습니다. 그 남편이 이제는 하나님 계신 것을 알고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열흘 동안 환난만 참으면 해방을 주십니다. 열흘 동안 환난을 참으면,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열흘 동안만 죽도록 충성하란 말입니다. 믿음 지키는 데 죽도록 충성하란 말입니다. 어떻게 일생 동안 그렇게 하고 사나 하지만, 일생 동안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흘만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열흘이 다 차면, 자유와 해방이 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면류관은 상급인데 상급으로 생명이 자라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상급으로 생명이 자라나고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으로 생명이 더 커집니다. 면류관 받습니다. 


4. 열흘 환난을 이긴 자가 받는 복 

본문 11 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는 것입니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서 이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열흘만 참으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귀가 아니고 귀때기입니다. 소 귀때기 같은 것, 소가 귀때기 다 있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듣습니까? 소 귀에다 암만 말해도 못 듣습니다. 우이독경(牛耳讀經)이라는 말이 있는데 ‘소 귀에다 경을 읽는다’는 말입니다. 말해봐야 귀에 안 들린다는 말입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했는데, 둘째 사망은 지옥입니다. 영적 사망인데 이기는 자는 무엇을 이기는 자입니까? 열흘 동안 환난을 이기는 자입니다. 영적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 사람은 생명이 죽음을 당합니다. 이긴 사람은 영적 생명의 역사가 계속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것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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