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8일 토요일

사무엘상 10:1-27 사울이 왕으로 세워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사울이 왕으로 세워짐
사무엘상 10:1-27

1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 2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비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를 인하여 걱정하여 가로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 3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께 뵈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이 너와 만나리니 하나는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하나는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하나는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진 자라 4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 손에서 받으리라 5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 곳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6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7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8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 9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10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11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이 사울의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12그 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비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가로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13사울이 예언하기를 마치고 산당으로 가니라 14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사울이 가로되 암나귀들을 찾다가 얻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15사울의 숙부가 가로되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고하라 16사울이 그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의 말하던 나라의 일은 고하지 아니하니라 17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18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19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20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21베냐민 지파를 그 가족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지라 22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23그들이 달려가서 거기서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크더라 24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25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26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은 그와 함께 갔어도 27어떤 비류는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1. 사울이 기름 부음을 받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을 세워주심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을 삼았습니다. 사무엘상 8장 7절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였는데 사무엘은 왕 세우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 또 여호와께서도 그들이 왕을 세워달라는 일을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왕 노릇하는 것을 싫어해서 인간의 왕을 세워달라고 구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왕 없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므로 두 번째 방법으로 왕을 세워 왕의 제도를 알게 해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멍에에는 세 가지 멍에가 있는데 제일 좋은 멍에는 하나님의 멍에를 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멍에가 제일 좋은 멍에입니다. 그 멍에를 메지 않으면 그 다음에 나무 멍에가 옵니다. 인간의 제도와 법에 얽매이게 해서 다스리는 것이 왕의 제도입니다. 누구나 다 자유가
좋지, 얽매이고 억압당하며 강제로 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왕을 세우는 것은 제도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제도에 얽매이고 법에 얽매이고 법의 통치를 받는 것이고 왕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전에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실 때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자유, 믿음, 은혜, 기쁨과 즐거움으로 다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멍에를 메지 않으면 그 다음에 왕의 멍에를 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왕을 세워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내가 왕이 되는 것을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나무 멍에를 메워야만 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 멍에가 없으면 인도할 수 없기 때문에 왕을 세워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왕을 세운 다음에는 왕의 멍에를 잘 메고 나가야 합니다. 왕에게 순종하고 제도에 복종해야 합니다. 또 잘못하면 왕의 제재를 받고 왕이 징계하는 것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순경 없는 나라, 경찰서 없는 나라, 왕이나 대통령 등 통치자 없는 나라가 없습니다. 통치자가 한 명씩 다 있습니다. 또 법을 만들어 놓고 법을 지키지 않으면 경찰서에 넣는 것입니다. 이북에서는 경찰서를 ‘내무서’라고 했습니다. 이름만 내무서라고 붙였지 내용은 같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이 통치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나무
멍에를 메워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나무 멍에는 천년왕국 때에나 다 벗겨집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가면 예수님이 왕이시기 때문에 다른 왕은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나라 전부가 예수님의 통치를 받기 때문에 세상 나라의 왕들은 다 없는 것입니다. 

나무 멍에를 메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무슨 멍에가 온다고 했습니까? 예레미야 28장 12-13절에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를 만들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나무 멍에를 메라고 해도 안 메니까 쇠 멍에를 강제로 메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바벨론 나라에 붙이겠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에 붙여서 강압적으로, 강제로 끌고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멍에가 몇입니까? 세 개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멍에, 예수의 멍에입니다. 그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 그것을 잘 안 메면 그 다음에는 나무 멍에가 옵니다. 제도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 멍에도 안 메면 무엇이 옵니까?
쇠 멍에가 와서 원수가 끌고 갑니다. 다 잡아가는 것입니다.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 가지 멍에 가운데 제일 좋은 멍에를 메고 나가야 합니다. 아무래도 메기는 메야 하는데 무슨 멍에를 메어야겠습니까? 하나님의 멍에를 잘 메라는 것입니다. 순종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서라’하면 서고 ‘돌라’고 하면 돌면서 하나님의 멍에를 잘 메고 나가면 나무 멍에도 안 오고 쇠 멍에도 안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멍에를 잘 메고 나가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하고 자기 주장대로 이기주의와 인본주의로 나가면 나무 멍에가 옵니다. 그것도 안 메면 그 다음에는 쇠 멍에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제는 왕을 세워주라고 하셨는데, 어떤 사람을 세워야겠습니까? 사울을 사무엘에게 보내야 되는데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아버지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려서 자기 아들 사울에게 암나귀를 찾아오라고 사환 한 사람과 함께 보냈습니다. 사울 일행이 사방을 돌아다녀도 암나귀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곳에 갔는데 그곳이 사무엘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환이 그곳에 가서 보니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암나귀를 어떻게 찾아야 하겠는지 물어보려고 사무엘에게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날 사무엘에게 “내일 이맘때에 한 사람이 올 텐데 그 사람이 이제 이스라엘 왕이 될 사람이다, 너는 그 사람을 왕으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은 그것도 모르고 잃어버린 암나귀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간 것입니다. 어제 저녁에 내일 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셨고 오늘은 왔기 때문에 사무엘은 ‘이 사람이다’라고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사울을 보고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9장 21절에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울의 겸손입니다. 자기가 제일 작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사람이고 베냐민 지파 중에도 제일 미약한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들어서 쓰시는 것입니다. 사울이 이렇게 겸손할 때에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셨고 교만할 때에는 심판하셔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고 왕권을 주시지만 교만하면 멸망시키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데리고 가서 청한 손님들 가운데 수석에 앉히고 소의 넓적다리를 하나 갖다 주면서 먹으라고 대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붕에 올라가서 모든 담화를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동이 틀 때에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세워 놓아야
합니다. 사무엘이 일찍 일어나서 물론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이고 그 다음에 지붕에 올라가서 사울과 담화하며 모든 얘기를 해 주었을 것입니다. 

사울이 기름 부음을 받음

본문 1-2절에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를 삼지 아니하셨느냐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비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를 인하여 걱정하여 가로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 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이 왕이 되었습니다.

본문 3-4절에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께 뵈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이 너와 만나리니 하나는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하나는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하나는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 손에서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벌써 점심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도시락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고 가면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떡 세 덩이 가운데 두 덩이를 주게 되어 있으므로 먹을 것은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나아가면 먹을 것도 다 준비해 놓으셨다가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산에 들어감

본문 5절에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의 고
향 기브아 근처에 있는 산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합니다. 또 그곳에는 블레셋 영문이 있습니다. 그 산에 선지 학교를 세웠다고 합니다. 영문이라는 것은 블레셋 사람의 부대가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또 그곳이 하나님의 산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생도들은 요새로 말하면 신학생입니다.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구약시대에는 이런 것을 가지고 다녔나 봅니다. 여러 악기를 가지고 노래하고 춤추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 전도할 때에 구약시대와 같이 악기를 가지고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의 방법과 신약시대의 방법은 다릅니다.
약시대의 방법을 신약시대에 쓰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예언도 하고 거문고도 타고 하나님의 신이 임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의 뜻을 꿈으로도 알게 해 주었습니다. 또 제비를 뽑게 해서 알게 해 주셨는데 이것들은 전부 구약시대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들려주시고 꿈으로 알려주시던 것은 구약시대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그런 방법이 아닙니다. 

요새 신비주의자들이 박수를 치고 일어서서 춤도 추며 요란하게 합니다. 미국 세크라멘토에 ‘모세’라는 목사가 있는데, 오래 전에 나를 한 번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예 악단이 따로 있고 강단에는 한 열한 가지 정도 되는 악기를 놓고 연주하며 노래하고 교
인들이 일어나서 춤을 춥니다. 손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춤추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것입니다. 정신이 한 절반쯤 빠져 나간 사람들 같았는데 정말 제 정신 아닙니다. 그래서 나 보고 설교를 하라고 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김상옥 권사 아들이 통역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 김상옥 권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렸는데 은혜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내가 잠깐 있다가 고린도전서 14장을 펼쳐서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고 이렇게 어지럽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여간 잘못됐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즉, 이렇게 떠들썩하고 어지럽게 하는 것은 성경대로 바로 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다시 갈 수 없는 곳입니다. 하여간 아닌 것은 아니라고 가르쳐 주고 와야지 누가 가르쳐 주겠습니까? 

한번은 관악산 기도원에 갔는데 나 보고 구국기도회 설교를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 주겠다고 하면서 구국기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구국기도 하느라고 다 차려놨는데 잘못됐으니까 하지 말라고 하니까,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구국 기도가 무엇이냐? 구국은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지 사람이 구국기도를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했지 세상 나라 구하라고 하지 않았다”라고 내가 전해주고 왔습니다. 우리는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있는 것이지 세상 나라 운동하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 나라의 대통령 선거 운동, 또 시장 선거 운동, 도지사 선거 운동, 국회의원 선거 운동을 교회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세상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운동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구약시대의 방법과 신약시대의 방법은 다릅니다. 구약시대 방법을 사용하면 전부 파괴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방법대로 제비 뽑는 일도 하고 예언하는 일도 하고 춤도 추면 야단법석일 뿐입니다. 예언하느라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파도 있습니다. 온 교회가 방언을 하며 예언하는 교회가 세검정에 하나 있었는데, 결국 그런 것은 다 없어지고 쫄딱 망했습니다. 성경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예언한다고 하면서 서로 마주 앉아 좋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 자기 속에서 나오는 말을 하니, 다 망하게 된 것입니다. 또 이렇게 나가면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본문 6절에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의 무리들 앞에 갔는데 그들과 함께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크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선지 학교로 인도했겠습니까? 사울을 변화시켜 새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왕이 되려면 새로운 은혜를 받아야 할 것 아닙니까? 또 마음도 새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선지 학교로 인도하셨고 이제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쓰시려고 선지 학교가 있는 곳으로 데려 가셨고 사울은 그들과 같이 은혜 가운데 잠겼습니다.

본문 7절에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네가 기름 부음을 받은 다음에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너와 함께 할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
다. 

2. 사울이 예언자의 무리에 들어감

사울이 예언자의 무리에 들어감

본문 8-9절에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을 떠나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쓰시려고 마음도 새 마음을 주셔서 새 사람이 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신이 사
울에게 크게 임하여 왕의 직분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본문 11-12절에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이 사울의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그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비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가로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사울도 거기서 예언을 하고 신의 감동을 받고 은혜 가운데 있으니 사람들이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속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사울은 선지자가 아니지만 선지학교에 가서 은혜의 분위기에 싸여 은혜 가운데 들어가니까 예언도 하고 이렇게 선지자와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른 예언은 오직 성경말씀임

이때의 예언은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것 같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그런 예언이 아닙니다. 예언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언한다는 것은 ‘내일 비가 온다, 네가 어떻게 된다, 잘 된다, 잘 못 된다. 네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사업에 실패한다, 돈 번다, 아들이 죽는다, 산다’, 이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예언은 이런 예언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이 예언입니다. 성경말씀을 깨닫는 것이 예언이고 새로 깨달아서 성경말씀을 말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성경말씀을 말하는 것이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허튼 소리하는 것이 예언이 아닙니다. 예언한다고 허튼 소리들을 하는 교회가 있는데 그것은 예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허튼 소리입니다. 마귀가 미혹 하는 소리입니다. ‘네가 무슨 죄가 있다, 어떻게 되겠다, 네가 뭐하고 살았다, 네가 언제 죄를 지었다, 앞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는 등 이런 것을 말해주는 예언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남의 비밀을 알아서 폭로시키고 또 거짓말로 갖다 붙이는 것은 다 마귀의 역사입니다. ‘예언 한다’고 하는 곳에는 아예 가지도 마십시오. 그것은 마귀 역사입니다.
에스겔 13장 2-4절에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의 예언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좌우간 마음에서 나는대로 하는 예언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자기 마음에서 생각하는 지시라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마음을 하나님으로 아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하나님으로 알기 때문에 마귀에게 끌려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혹되지 말아야 하며 신약시대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인줄로만 알면 되겠습니다.

3. 사울을 왕으로 제비 뽑음

사울을 왕으로 제비 뽑음

본문 17-21절에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를 그 가족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 모아 놓고 왕이 될 사람을 제비 뽑자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뽑았습니까?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오라고 한 것입니다. 한 지파에 천 명씩 열 두 지파가 나왔습니다. 일만 이천 명이 나온 것입니다. 제비를 뽑았는데 어느 지파가 당선되었습니까? 베냐민 지파가 뽑혔습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를 또 그 가족대로 제비 뽑았습니다. 베냐민 지파 안에도 가족이 각각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제비를 뽑으니 사울의 가족이 뽑혔습니다. 사울의 가족 중에서 또 뽑으니 사울이 뽑힌 것입니다. 

제비의 뽑음도 하나님께서 작정하심

그러면 제비를 뽑아 놓고 기름을 부었습니까? 기름을 부어 놓고 제비를 뽑았습니까? 기름을 부어놓고 제비가 잘못 나오면 어떡합니까?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워 놓으셨다’라고 말씀하시고 기름을 부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제비를 뽑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
으로 기름을 부어 놓았는데 다른 사람이 뽑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 사건이 생기는 것입니다. 일만 이천 명이나 나왔는데 다른 사람이 뽑히면 어떻게 합니까? 차라리 뽑아 놓은 다음에 기름을 부었으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제비 뽑은 다음에 기름도 붓고 왕이 된 다음에 선언하면 좋을 텐데,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시고 기름을 부은 다음에 제비를 뽑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나왔는데 누가 나올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잠언 16장 33절에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제비를 뽑아도 여호와께서 작정한대로 된다는 말입니다. 그냥 뽑으면 사울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오면 큰 문제가 생기므로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왕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라’고 하셨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제비를 뽑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됩니다. 아무리 몇 만 명이 와서 제비를 뽑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뽑히는 것입니다. 사울이 왕될 것을 확신하고 뽑은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울이 나왔는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신 것 같습니다. 성경에 천사를 보내서 제비 뽑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제비 뽑는 사람의 손가락을 붙잡아서 이리로 가게 만든 것입니다. 열 두 지파니까 열 둘 가운데 하나를 뽑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뽑지만 사실은 천사가 손을 붙들고 뽑게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또 가족들이 뽑을 때도 천사가 그 손을 붙들고 딱 붙잡아서 뽑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딱 뽑히게 된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을 택하려고 해야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만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짐

만사는 100%,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정확합니다.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 나가십니다. 아무리 제비 뽑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하나님의 일은 잘못되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일만 이천 명이나 왔지만 하나님께서 섭
리하셔서 혹은 천사를 보내 감동을 시키셔서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정대로 꼭 되어 나갑니다. 만사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되는 줄 알아야 합니다. 만사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당나귀도 왜 잃어버렸습니까? 사울을 사무엘에게 인도해야겠는데, 가라면 가겠습니까? 당나귀를 잃어버려서 찾으러 가는 길에 그리로 간 것입니다. 당나귀를 잃어버린 것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내일 이맘때에 사람을 보낼 것이다, 그 사람이다’하고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기름을 부어라’하시고 기름을 부으니까 ‘제비를 뽑아라’ 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기도했겠습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 해놓으셨는데 왜 안 나오겠습니까?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이 다른 제비를 뽑으려고 하면 아이의 손을 잡고 이것을 붙잡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리로 손을 옮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다른 것을 붙잡으려고 하면 이리로 옮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붙잡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은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도 감동을 시키시고 손도 주장하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꼭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틀림없이 사울도 왕으로 세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도 제비 뽑는 것이 옳습니까? 요새는 옳지 않습니다. 제비 뽑는 것은 구약시대의 방법이고 신약시대의 방법은 성경을 보고 성경대로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방법을 지금도 쓰면 안 됩니다. 제비를 뽑는 일, 예언하는 일, 꿈꾸는 일, 묵시 보는 일, 또 환상을 보는
일, 우림과 둠밈 등, 이런 것은 전부 다 구약시대 방법인데 이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예배도 구약시대식으로 여러 악기를 가지고 춤추며 하는 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신약시대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이지 구약시대와 같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법이 다른 것입니다. 요새도 제비를 뽑아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또 성령의 감동과 하나님의 섭리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고 해야 합니다.

4. 사울의 겸손

본문 22절에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행구는 짐짝인데 사울이 왜 거기에 가서 숨었습니까? 왕으로 당선되었으니 기뻐 뛰어야 하는데 왜 숨었습니까? 겸손한 자세입니다.자기는 부족하고 할 수 없는 자인 줄 알고 짐짝 속에 가서 숨었습니다. 그리고 숨어있는 사울을 하나님이 행구 사이에 있다고 가르쳐 주셔서 거기서 데려왔습니다. 

본문 23-27절에 “그들이 달려가서 거기서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크더라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은 그와 함께 갔어도 어떤 비류는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그는 잠잠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왕을 세웠다고 즐거워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고 왕을 섬기려고 따라갔습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사람들은 왕의 만세를 부르고 반대파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반대파가 있게 마련입니다. 마귀가 있기 때문에 반대파도 있게 마련입니다. 반대할 때 사울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반대파들을 다 잡아 죽이라고 하였습니까? 그냥 잠잠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담지 못 합니까? 반대할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앞으로 자기 일만 하면서 잠잠히 나가는 것입니다. 공의로 심판 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자기 길만 걸어갔습니다. 사울이 반대 한다고 속상했겠습니까? 속상하지 않았습니다. 반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속상하지 않았습니다. 참새는 참새 소리하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이고 매미는 매미소리하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인데 뭐가 속상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자기 길을 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파인 비류들과 싸울 것이 아닙니다. 속상할 것도 아니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자기 길만 가는 것입니다. 자기 갈 길만 가는 것입니다. 자기 책임만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은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십니다. 
 
이것을 보니 사울이 왕의 자격이 됩니다. 행구 사이에 가서 숨은 것이라든지 자기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제일 작은 자라고 한 것이든지 또 감당치 못할 자라고 한 것은 사울의 겸손을 말해 줍니다. 이와 같은 사울을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워 놓으셨고 먹을 것도 주
시며 또 신에게 감동도 되게 만드셨습니다. 새 마음과 새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왕의 만세를 부르고 따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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