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7일 화요일

신명기 10:6-22 다시 만든 두 돌판과 법궤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다시 만든 두 돌판과 법궤
신명기 10:6-22

6이스라엘 자손이 브에롯 브네야아간에서 발행하여 모세라에 이르러서는 아론이 거기서 죽고 거기 장사되었고 그 아들 엘르아살이 그를 이어 제사장의 직임을 행하였으며 7또 거기서 발행하여 굿고다에 이르고 굿고다에서 발행하여 욧바다에 이른즉 그 땅에는 시내가 많았었으며 8그 떄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이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고 그 일은 오늘날까지 이르느니라 9
그러므로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10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야를 산에 유하였고 그 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시고 11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서 백성 앞서 진행하라 내가 그들에게 주리라고 그 열조에게 맹세한 땅에 그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12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4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16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17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19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20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21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목도한바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였느니라 22애굽에 내려간 네 열조가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1. 두 돌판을 다시 만들라고 하심

하나님께서 처음에 주신 두 돌판을 모세가 깨뜨려 버렸기 때문에 다시 돌판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모세가 처음에 주신 두 돌판을 깨뜨려 버렸습니까?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을 보고 분노해서 그것을 때려 부수기 위해서 깨뜨려 버린 것입니다. 이제 두 돌판은 깨졌기 때문에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다른 것으로 금송아지를 때려 부술 수는 없었습니까? 꼭 돌판으로 금송아지를 때려 부셨어야 했습니까? 모세가 다른 돌로 깨뜨릴 수도 있었지만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것을 보고, 속에서 불이
나서 잠시도 참을 수가 없어서, 손에 들고 있던 돌판을 던져서 부수는 바람에 돌판이 깨졌습니다. 이 백성이 너무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돌판 깨뜨린 것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지 않으시고 다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사실은 안 깨뜨렸으면 좋았겠지만 죄를 미워해서 깨뜨렸으니까 다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처음 두 돌판은 모세가 다듬어서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다가 거기에 친히 글자를 써서 모세에게 준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죄가 너무 미워서, 격동이 되어 그 돌판을 깨뜨려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첫째 돌판은 거저 주셨지만, 이제 둘째 번 것은 거저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글자는 하나님께서 써 주시지만 돌판은 “네가 다듬어 가지고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둘째 번 돌판은 우리가 다듬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거저 받았지만 이제는 거저 받는 것이 아닙니다. 돌판을 다듬으려면 얼마나 힘과 노력과 정성이 많이 들어가겠습니까? 돌판을 정으로 쪼고 깎아서 비석을 만들려고 하면 그 노력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도 네가 만들어야지 이제는 거저 안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돌판을 만들어서올라가면 글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써 주신다는 것입니다.

처음 은혜, 처음 사랑, 처음 하나님 말씀을 회복하라

처음 것을 안 깨뜨렸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 악해져서 금송아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성질이 급한 모세가 던져서 깨뜨려 버린 것입니다. 처음 믿음과 처음 받은 말씀의 은혜와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방심 부주의하다가 죄를 너무 미워하는 바람에
격동을 받아서 깨뜨려 버린 것입니다. 처음 사랑과 말씀의 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처음에 말씀 받을 때는 생명이 되고 감사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성경을 보았는데 얼마 가다가 깨뜨려 버렸습니다. 

한춘화 선생이라는 이화여자대학교 사감선생님이 명륜교회에 나왔었는데, 하나님 은혜에 너무 감격해서 예레미아서를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처음 은혜라고 합니다. 그렇게 받은 은혜를 가지고 믿음을 지키면서 지금까지 왔으면 굉장히 좋은 신자가 될 뻔했는데, 그만 방심 부주의하다가 통일교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왜 통일교로 갔는지 심방 가서 물어봤더니 자기 아들이 말을 좀 못해서 ‘떠떠떠떠’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통일교에 가면 말 잘하게 해준다는 말을 듣고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 가도 말 잘하지 못한다”고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가 말하는 것은 다 틀렸고, 본래부터 그렇게 낳았는데 어떻게 통일교에 가면 낫겠느냐, 그것은 속이는 것이니 미혹 받지 말라”고 했지만 듣지 않고 통일교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명륜동 4가에 한 3~4억원 되는 좋은 집을 팔아서 통일교에 내고 결국 쫄딱 망했습니다. 그 다음엔 통일교회에서 나왔습니다. 나온 후 몇 년 있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이가 많지도 않았는데 세상을 떠나서 좀 안됐습니다.

처음 은혜와 사랑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달고 꿀송이 보다 더 달아서 성경말씀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으면서 즐거워합니다. 이 처음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십니다. 그런데 삼가 조심하지 않고 간직하지 못하다가, 격동이 될 때에 누르지 못하고 깨
뜨려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다 깨뜨려 버리고 다시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지 않으십니다. “네가 돌을 다듬어서 돌 비석 둘을 만들어 가지고 올라오면 써주지만, 만드는 것은 네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둘째 번은 거저먹지 못합니다. 힘을 많이 써서 노력을해서, 어느 정도 도달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옛날 글자를 다시 써주십니다. 그러면 다시 처음 사랑을 찾으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이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볼 때에 감격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 보게 됩니다. 말씀이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더 달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까지 나가려면 돌 비석을 다듬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돌 비석을 다시 다듬어서 하나님께서 전에 주신 대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다시 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금식기도 해야 합니다. 그것도 얼마나 힘듭니까? 그래도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기도하려고 힘쓰면 그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글자를 새겨 주십니다.

우리도 그렇게 노력해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그냥 가지고 나가면 참 좋지만 가다가 대개 다 잃어버립니다. 처음 은혜 받은 다음엔 너무 기뻐서 이젠 몸 바쳐서 하나님 일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어떤 강사가 부흥회할 때 은혜 받았으면 그 강사가 가는데마다 은혜 받으려고 따라가고, 물인지 불인지 추운지 모르고 따라 다닙니다. 늘 그대로 하면 믿음이 성장합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갑니다. 실력 없는 자가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할 실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한 줄도 모르고,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나가다가 돼지가 밥통을 엎
어놓는 것처럼 다 엎어놓고 마는 것입니다. 다 엎어 놓은 다음에는 옛날 신앙이 다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얼음판에 넘어진 송아지처럼 눈만 멀뚱멀뚱 하고, 이제는 기도해도 은혜가 안 되고, 말씀을 보아도 은혜가 안 되서 설익은 개고기 뜯어먹듯 억지로 봅니다. 옛날에는 어땠습니까? 처음 은혜와 처음 사랑 받았을 때는 하나님 말씀이 꿀보다 달아서 구구절절이 은혜와 감사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은혜를 잃어버린 다음에는 설익은 개고기 뜯는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없고 맛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끝났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돌을 다듬어서 가지고 오면 써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회개하고, 돌을 다듬듯이 다시 네 자신을 만들어 가지고 재출발을 하라는 것입니다.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입니다. 재출발해야 합니다. 새벽기도 재출발, 성경 읽는 것 재출발, 믿는 일하는 것 재출발, 전도하는 것 재출발을 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 금년에 다시 만든 돌판 둘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돌판을 만들어 하나님께 가면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글자를 써주십니다. 글자 써주신 것을 받아 가지고 오면 다시 옛날로 돌아갑니다.옛날의 구원의 즐거움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즐거움과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여 세상 것은 다 분토와 같이 여겨지는 신앙의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글자는 하나님께서 써주시지만 돌은 자기가 다듬어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하기를 결심합니까? 다시 하기를 결심합니다! 이제 돌판 둘을 다듬기를 결심합니다! 또 다시 시내 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금식할 것을 결심합니다! 이렇게 결심함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요새 40일 금식 기도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모세는 장사이기 때문에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40일을 견뎠지만, 보통사람은 물을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금식할 때 물을 먹고 하면 좀 할 수 있지만, 물까지 안 먹으면 20일도 못 가서 죽습니다. 모세는 천하장사이기 때문에 40일을 굶고도 십계명을 새긴 큰 돌 비석을 양 손에 하나 씩 들고 내려온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모세가 얼마나 장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 안 마시고 40일을 금식하면서 버틴 것입니다. 보통사람은 물을 먹으면서 금식해야 합니다. 물 안 먹으면 며칠 못 갑니다. 

그리고 40일은 금식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40일 금식기도한 사람들은 대개는 교만해지고 자랑합니다. 40일 금식하면 대부분 그렇게 됩니다. 자기가 못한 것을 자랑해야 하는데 잘한 것을 자랑하게 되니까 잘못된 것입니다. 자랑을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없습니다. 40일 금식
하고 자랑하면 은혜가 다 떨어지고 껍데기만 남습니다. 또 그것을 자랑하면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래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한 사람도 별것 없습니다. 그러니까 금식기도는 할 수 있는데, 40일은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물을 먹으면서 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모세가 다시 40일 금식 기도하려고 올라갔다는 것은 다시 새 출발을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다듬어서 두 돌비석을 만들어 가져가는 것이 새 출발입니다. 이렇게 새 출발하는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안 만들어서 안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안 써주십니다. 아무리 처음과 같이 거저 달라고 하면 안 주십니다. 만들어 가지고 가야만 주게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만들고 힘쓰고 노력해야 주도록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궤에다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손에 갖고 있으면 또 깨뜨릴 염려가 있으니까 궤에다가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간수를 잘 하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야 함

본문 6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브에롯 브네야아간에서 발행하여 모세라에 이르러서는 아론이 거기서 죽고 거기 장사되었고 그 아들 엘르아살이 그를 이어 제사장의 직임을 행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아론이 어디서 죽었습니까? 브에롯 브네야간에서 이르러서 거기서 장사되었다고 했습니다. 민수기 20장 23-24절에 “여호와께서 에돔 땅 변경 호르산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니라 가라사대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론이 호르산에 모세와 같이 올라가서 아론은 죽고, 모세만 내려 왔다고 했습니다. 아론이 먼저 죽었습니다. 아론이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습니까? 

아론은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반석에서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한 것을 믿지 않고, 또 ‘우리가 물을 내랴’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하고 믿지 않고, 망령되이 말하다가 아론과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우리가 물을 내자”고 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께서 해줄 것을 믿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소개 해야지, 자기가 준다고 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리고 또 믿어야 합니다. 모세는 잘 믿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하니까, 반석에서 명해
야 하는데 화가 나서 반석을 쳐서 물을 냈습니다. 또 막대기로 한번이 아닌 두 번이나 쳐서 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고, 믿지 않고, 또 망령되이 행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아론은 호르산에서 먼저 죽고, 모세는 몇 년 후에 비스가 산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죽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으면 얼마 못 가서 죽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믿지 않고, 내가 하려고 하고 하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망령되이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말씀을 전부 다 겸손하게 믿어야 합니다.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낸다는 것을 왜 못 믿고 반석을 쳐서 물을 냈습니까? 이것은 전에 막대기로 쳐서 물을 냈기 때문에 이번에도 쳐야 물이 나올 줄 안 것입니다. 이번에는 명해서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자기의 체험적인 지식, 곧 자기의 경험적인 과거의 지식 때문에, 믿지
아니하고 과거대로 하려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하나님 명령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아론이 죽기 전에 의복을 벗어서 엘르아살에게 입혀주고 엘르아살이 아버지를 대신하여서 제사장이 됐습니다.

본문 7-8절에 "또 거기서 발행하여 굿고다에 이르고 굿고다에서 발행하여 욧바다에 이른즉 그 땅에는 시내가 많았었으며 그 떄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이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고 그 일은 오늘날까지 이르느니 "고 하였습니다. 아론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워서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그러므로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 지파에게는 기업을 안 주셨습니다. 여호와가 기업이고, 또 제물을 레위 지파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본문 10-12절에 “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야를 산에 유하였고 그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서 백성 앞서 진행하라 내가 그들에게 주리라고 그 열조에게 맹세한 땅에 그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언제나 두렵고 떨림으로 잘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도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도라는 것은 길과 방향과 방법을 가리킵니다. 하
나님께서 명하는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보통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성품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깁니까? 부모는 어떻게 섬깁니까?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예수를 믿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용돈을 드리고, 의복이나 이부자리를 잘 해드리고,음식을 잘해드리는 것입니다. 음식이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첫째,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릴
때는 신령과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시간 늦어지는 사람은 마음을 다 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시간 반시간이나 한 시간 전에는 나와야 합니다. 늦어지는 교인은 시원치 않은 교인입니다. 미리 나와서 기도하면서 준비해야 합니다. 교역자들도 미리 나와서 기도하면서 준비하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는 반시간
전에 미리 나와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다른 나라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저보고 설교하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반시간 전에 나가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 목사님은 예배시간이 5분전이 되었는데도 안 나오는 것입니다. 거의 예배시간이 다 되니까 부리나케 나오더니 사회를 봤습니다. 교인들도 반시간전에는 얼씬도 안합니다. 거의 예배시간이 다 되니까 교인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이 사회하고 제가 강도를 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목사도 시원치 않습니다. 왜 예배시간이 다 되어서 나옵니까? 그것이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까? 교인들도 예배시간 다 되어서
오거나 늦는 것은 정성이 아니라 그 반대인 무성의한 것입니다. 또 신령과 진정으로 영적으로 섬기라고 하셨는데 늦어지는데 어떻게 영적으로 섬기겠습니까? 세상에서 살다가 교회에 와서는 신령한 세계를 발견하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미리 와서 기도하지 않으면 신령한
세계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시간 전에 미리 와서 기도하고 신령한 세계를 발견해서 영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요구하시는 것은 본문 13절에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는 것은, 괴롭게 하기 위해서 억지로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네 행복을 위해서 지키라는 것입니
다. 이것을 지키면 네 행복이 더하기 때문에 네 영이 살고, 하나님의 복이 오고, 장수하게 되기 때문에 이 명령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는 것은 성경말씀을 지키고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잘 찾
아서 그대로 지켜나가면서 하나님을 섬겨야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은 5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둘째는 하나님의 도를 행하고. 
셋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넷째는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다섯째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하나씩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게 해 주시옵소서. 둘째, 하나님의 도를 행하게 해 주시옵소서.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 주시옵소서. 넷째,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해 주시옵소서. 다섯째,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게 해 주시옵소서. 이것만 하면 하나님 요구에 합격입니다.

4. (정욕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속하는) 마음에 할례를 하라

본문 14-16절에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직 네 열조를기뻐하시고 사랑하셔서 그 신앙을 갖은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잘 믿는 그 열조와 우리를 사랑하셔서 만민 중에 택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몫 쓰시려고 소망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셔서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것은 본문 16절의 말씀대로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는 것은 첫째는 마음의 정욕을 제거하고, 둘째는 하나님께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마음의 정욕을 제거해야 합니다. 마음의 정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거하고, 들어오면 즉시 물리치고 잘라 버려서 언제나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목을 곧게 하지 말라는 것은 순종을 잘하라는 것입니다. 목이 곧은 것은 순종하지 않고 뻣뻣하게 자기 고집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개를 숙일 줄 알고, 목을 순종 시킬 줄 알고, 목을 온화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목이 뻣뻣하면 경화증이 생깁니다. 언제나 마음이 온유하고, 순종할 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제 생각대로 박박 우기고 나가면서, 자기가 제일인줄 알고, 아무리 좋은 말을 해주어도 안 듣습니다. 이렇게 제 생각과 판단이 제일인 줄 알고 제 생각대로 판단하는 목이 곧은 백성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목이 곧은 교역자는 못씁니다. 목이 온유하여서 언제나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목을 곧게 하여 버티면 부러집니다. 독사는 목을 꼿꼿하게 머리를 쳐든다고 합니다. 사람이 오면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머리를 꼿
꼿하게 세우는 것은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때 막대기를 가져와서 톡 치면 모가지가 달랑 떨어진다고 합니다. 뻣뻣할 때 치면 부러지게 되어있습니다. 목이 뻣뻣한 것들은 한번만 치면 부러집니다. 목을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멍에를 맬 줄 알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교역자들은 온유하고 겸손하여서 머리를 숙이고 순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5.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라

본문 17절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뛰어나시고, 주의 주시고, 크고 능하신 두려우신 분이시라는 것
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뇌물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8-19절에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아와 과부를 돌봐주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본문 20-2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목도한바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였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를 두렵고 떨림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친근히 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영광되게 하기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크고 두려운 일을 너희에게 행하신 것을 잊지 말고 언제나 마음에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크고 두려운 일을 행하여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본바탕, 근본은 종입니다. 근본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없어질 자였는데, 하나님께서 큰 이적과 기사로 구해내서 오늘날 이곳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일본에 36년 동안 종살이하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종살이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아십니까? 일본에 합병되기 전에 일본 사람들이 많이 와서 세력을 썼는데, 조선의 명성왕후를 죽였다고 합니다. 아직도 조선의 왕이 있었는데도 일본 사람이 왕을 만나려고 왔다가 왕후를
칼로 죽였습니다. 일본 사람이 만나자고 하면 안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의 세력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한일합방이 되어 36년간 종살이 하였습니다. 한국 땅에 일본 사람들이 와서 살았습니다. 그때 일본 사람이 전부 정치를 했습니다. 은행장, 수리조합장 등 장급은 일본 사람이 했고,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말 잘 듣는 사람만 2인자를 했습니다. 국민학교나 중고등학교 교장은 다 일본 사람이 하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도 일본 사람이 교장이었는데 그 교장 집에 서로 물을 길어 주겠다고 야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물을 길어다 줘야지 교장이 잘 봐주기 때문입니다. 교장이 봐주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종살이 했었습니다. 

초등학교에 가서 저는 우리나라 말을 못 썼습니다. 조선말을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일본어만이 국어라고 해서 일본말만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압 받고 소제(掃除,청소)를 매일 해야 했습니다. 또 일본 사람이 되어도 일본 사람대접 못 받고 일본 사람의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이런 종살이 하던 것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것을 늘 감사해야 합니다. 6.25사변 때에 건져주신 것도 늘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을 감사 못하면 안 됩니다. 자기의 본바탕과 근본을 생각하지 않으면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전에 비참했던 상태를 늘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본문 22절에 “애굽에 내려간 네 열조가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에 내려간 이스라엘 백성이 칠십 인 이였는데 이제는 60만 명이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도 일제시대 때에는 얼마 없었습니다. 서울에도 30만 명밖에 안 되고 한국사람 전체도 얼마 없었습니다.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전부 쇠멸하는 민족말살정책을 써서, 한국 사람을 쇠멸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한국 사람이 사천만 명 이상입니다. 서울은 지금 천만 명이 넘었습니다. 이와 같이 번성케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 때는 비행기를 탈수 없었습니다. 비행기가 가면 온 동네에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구경했습니다. 부산에 피난 갔다가 왔는데 채 선생이 미국을 간다고 해서 나갔습니다. 그때에는 여의도 비행장이었습니다. 가보니까 100명 정도 탈만한 자그마한 프로펠러 비행기 하나가 섰습니다. 그때 비행기를 처음 보니깐 날개도 만져보고 다 만져봤습니다. 그때는 미국으로 직접 가는 비행기가 없었습니다. 너무 작아서 일본의 동경에서 갈아타야 했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비행기를 볼 때도 굉장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우리나라의 747점보 비행기는 400명이나 타는 것인데, 미국, 모스크바, 북경, 알마타, 심양, 일본, 인도네시아 등 여러 곳을 갑니다. 하나님께서 이만큼 되게 해주신 것과 전의 것을 생각하면서 언제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전에 못 살 때를 생각해 보면 감사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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