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9일 일요일

사무엘하 1:1-27 다윗의 조가(弔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다윗의 조가(弔歌)
사무엘하 1:1-27

1사울의 죽은 후라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와서 시글락에서 이틀을 유하더니 2제삼일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에서 나왔는데 그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저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다윗이 저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4다윗이 가로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뇨 너는 내게 고하라 저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서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중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5다윗이 자기에게 고하는 소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6그에게 고하는 소년이 가로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 보니 사울이 자기 창을 의지하였고 병거와 기병은 저를 촉급히 따르는데 7사울이 뒤로 돌이켜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또 내게 이르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에 들었나니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10저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 서서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11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13다윗이 그 고한 소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14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16다윗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찌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17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명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9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이 일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찌어다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찌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부음을 받지 않음같이 됨이로다 22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찌어다 저
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25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26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27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1. 다윗이 이스라엘의 패전 소식을 들음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

본문 1-3절에 “사울의 죽은 후라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와서 시글락에서 이틀을 유하더니 제삼일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에서 나왔는데 그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저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저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절에 ‘사울의 죽은 후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와 시글락이라는 곳에 거하며 이틀을 유하매 제삼일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었는데 저가 다윗 앞에 엎드려 절하며 한 소식을 알렸습니다. 

본문 4절에 “다윗이 가로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뇨 너는 내게 고하라 저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서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중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그 소식은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다윗이 “너는 어디 사람이냐? 어디서 왔느냐?”하고 물어 보니 그 사람이 “이스라엘 진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이 죽은 것은 사실인데 이 사람은 그 계기를 타서 다윗을 속여 자기 명예와 영광을 얻으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교만과 불순종

먼저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일을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교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다가 죽었습니다. 사울이 겸손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셨는데 교만하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니 마침내는 죽는 데까지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왕이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이렇게 제거시키신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17절 상반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스스로 작게 여길 때, 겸손할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왕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교만해진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그로 왕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 그 왕권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옮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2-23절에도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제사하는 것보다 낫고 거역하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버린 사람,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사람의 왕권은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십니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서 왕권을 거두어 가셨기 때문에 사울이 마침내는 전쟁 마당에 나가서 죽어 왕권을 다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울이 겸손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교만해지니 하나님께서 왕권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또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며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그 왕권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 마지막이 비참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잘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하늘에 상급을 쌓은 요나단

요나단은 선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안 사람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 모든 면에서 바로 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요나단이 영광을 하나도 보지 못하고 자기 아버지를 따라서 전쟁 마당에서 죽었습니다. 

요나단의 선한 면들은 성경 사무엘상에 여러 가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생명을 내놓고 싸운 일, 자기 아버지를 잘 공경하고 순종한 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운 줄을 알고 다윗으로 왕 세우는 일에 전적으로 협조한 일 등이 그 예들입니다.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는 일만 해도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그 왕권이 자기에게 돌아올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사울이 자기 아버지이니 사울이 죽으면 자기가 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아버지의 왕권이 아들인 자기에게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다윗으로 이스라엘의 왕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을 알고 그 뜻에 순종했습니다. 나아가 다윗을 앞으로 왕으로 세우기 위해 여러 가지로 다윗을 도왔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여러 번 죽이려고 할 때에 아버지에게 다윗은 죄가 없다고, 다윗을 죽이지 말라고 간하기
도 했습니다. 또 아버지 사울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말라고 여러 번 간청했습니다. 요나단이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가만히 있으면 자기가 왕이 될 수도 있는데 자기가 왕 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이 왕이
되어야하는 줄 알고 어떻게 하든지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자기 아들 요나단의 마음을 알고 엄한 책망을 많이했습니다. ‘패역무도한 계집의 자식’이라는 말도 하고 ‘네가 이렇게 모략을 해서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도 했습니다. 사울이 여러 가지로 요나단에게 책망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를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뜻도 지켜 나가고 왕의 면류관을 내어 놓으며 자기가 희생하고 낮아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에게도 요나단이 잘 했습니다. 아버지가 잘못할 때에는 잘못하지 말라고 여러 번 아버지께 가서 말씀드렸습니다. 잘못하는 일에는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아버지로서, 부모로서는 잘 공경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순종했습니다. 또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자기의 사명도 끝까지 잘 지켜나갔습니다. 아버지가 전쟁하러 나갈 때 자기도 같이 나갔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자기의 사명입니다. 또 아버지에 대한 순종입니다. 요나단이 여러 번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나라와 싸우는 마지막 전쟁까지 요나단이 아버지와 같이 나가서 이스라엘의 원수 블레셋과 더불어 싸우고 이스라엘을 지키다 자기 아버지와 같이 전사한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요나단입니다. 부모에게 바로 한 요나단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는 데 바로 한 요나단입니다. 또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 점에도 바로 한 요나단입니다. 다윗을 극진히 사랑하고 끝까지 도와준 요나단입니
다. 다윗이 여러 번 죽을 뻔했지만 요나단이 도와줘서 죽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이 세상에서 햇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영광 하나 얻지 못하고 아버지 따라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갔다가 거기서 전사당하고 말았습니다. 요나단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
께 바로 하고 충성했지만 무슨 상 하나 받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전쟁에 나가 죽지만 않았어도 다윗이 왕이 되고 난 다음 다윗이 요나단을 높이고 아주 잘 대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죽었으니 세상에서는 아무 상도 받지 못하고 아무 유익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요나단의 선한 삶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해 줍니까? 하나님께서 해 주십니다. 내세에 가서 해 주십니다. 요나단이 세상에서 하나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서 온전한 채로 전부 다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좀 받았다면 하늘나라 가서는 받을 것이 그만큼
감소될 뻔했는데 세상에서 하나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전부 다 하늘나라에 가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갚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상급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높임을 받은 사람, 대접을 받은 사람, 선을 행한 대가를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받지 못한 것은 전부 하늘나라에 가서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선한 일을 행하든지 또 주를 위해서 어떠한 봉사를 하든지 그 대가를 세상에서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도 받지 않고 고생만 하고 십자가만 지고 죽도록 충성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면 그 사람의 상급이 더 큰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 것이 하늘나라에 가면 더 커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알아주고 높여주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그만큼 상급이 감소됩니다. 세상에서 선한 일에 대한 대가를 다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면 남은 상급이 하나도 없습니다.

2. 아말렉 사람이 다윗에게 거짓 보고함

본문 5절에 “다윗이 자기에게 고하는 소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했습니다. 이에 본문6-10절에 “그에게 고하는 소년이 가로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 보니 사울이 자기 창을 의지하였고 병거와 기병은 저를 촉급히 따르는데 사울이 뒤로 돌이켜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또 내게 이르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에 들었나니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저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 서서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 소년의 이 말은 거짓말입니다. 사무엘상 31장 4-5절에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자살했습니다. 먼저는 사울이 병기 든 사람에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병기 든 사람이 심히 두려워 사울을 죽이지 못하니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여 그 위에 엎드러졌다고 했습니다. 또 병기든 자가 사울의 죽은 것을 보고 자기도 칼에 엎드러져 자살했다고 했습니다. 아말렉 사람은 자기가 전쟁 마당에 나가서 부상당한 사울을 만났는데 자기에게 죽여 달라고 하여 자기가 그를 죽였다고 거짓말한 것입니다. 아말렉 사람이 전쟁 마당에 나갈 수도 없고 사울이 아말렉 사람과 말한 일도 없습니다. 아말렉 사람은 거짓말을 해서 다윗에게 자기를 잘 보이려고 한 것입니다. 명예, 영광을 얻어 다윗이 왕이 되면 높은 지위를 얻으려는 속셈인 것입니다. 많은 유익을 볼 생각을 하고 이렇게 와서 거짓말로 다윗에게 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말렉 소년이 사울의 면류관과 팔 고리를 어떻게 가지고 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울 왕이 전쟁에 나가면서 면류관을 쓰고 갔을 리는 없습니다. 아마도 어딘가에 면류관을 두고 나갔을 것인데 그것을 이 사람이 가지고 온 것 같습니다. 아말렉 사람은 사울의 면류관과 팔 고리를 가지고 와서 자기가 사울 왕을 죽였다, 즉 다윗의 원수를 갚고 온 것처럼 말하면 다윗이 크게 기뻐하면서 자기를 존귀케 해 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3. 다윗이 사울의 죽은 소식을 들은 뒤에 옷을 찢고 금식함

본문 11-12절에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그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모든
사람들도 다 옷을 찢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했습니다. 

잠언 24장 17절에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 잠언 17장 5절에도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고 하였습니
다. 과거에 사울이 다윗을 여러 번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원통하게 생각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1대 왕으로 공적이 많았습니다. 사울의 치리기(治理期)에 이스라엘이 견고해졌고 외적을 많이 물리쳤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권세가 그 부근에 다 퍼졌습니다. 사울이 잘못한 것이 많았지만 건국의 공력이 상당히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윗은 사울이죽음을 접한 뒤에 그가 생전에 잘못한 것은 보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했었던 과거는 접고 그 사람의 공로를 보았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공력을 세웠는가를 떠올리며 그 사람을 위해 슬퍼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러한 점을 잘 보고 배워야 하겠
습니다. 사울의 약점이나 사울이 실수한 것, 또 자기를 섭섭하게 한 것 등은 잊어버리고 그 사람의 잘한 일, 그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이 잘된 일, 그 사람이 큰 공로를 세운 일 등을 떠올리며 다윗이 애통하고 옷을 잡아 찢으며 슬퍼했습니다.

4.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죽임

본문 13-15절에 “다윗이 그 고한 소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다시 한 번 “는 어디 사람이냐?”하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하고 말했습니다. 이에 다윗이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사울 왕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인데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쓰시는 왕을 네가 어찌하여 기름부음을 받지 않은 사람처럼 죽였느냐?”하고 소년 중 하나를 명하여 그를 죽이도록 하였습니다.

본문 16절에 “다윗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찌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처형한 것은 먼저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죽인 큰 죄를 다스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은 자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기름부음 받은 그 종에게 손해가 가게 한 죄는 마땅히 죽임 당할 큰 죄임을 알린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나라에 거짓과 명예 영광심, 탐욕이 들어오려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데에 거짓과 탐욕, 명예 영광심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용납하면 이스라엘 나라가 다 부패해지고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초대교회에 아나니아 부부를 통해 들어 온 죄와 같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에도 아나니아 부부를 통해 명예 영광심, 탐욕, 거짓의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 부부가 땅을 팔아 얼마는 감추고 자기들의 명예 영광을 위해 다 팔아 교회에 바친다고 거짓말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탐욕과 거짓, 명예욕이 교회에 들어온 것을 아나니아 부부를 처벌함으로써 정화하였습니다. 지금도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처형함으로서 이스라엘 나라가 정화되어 나가게 됩니다. 

5.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다윗의 조가

다윗이 조가를 부름

본문 17-18절에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명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는 조가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본문 19절에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영광이었습니다. 사울이 처음에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 전쟁할 때에 전쟁을 잘 했고 이스라엘 나라를 크게 만들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이스라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을 영화롭게 하였으며 또 이스라엘의 영광이 되었던 왕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잘못한 것이나 실수한 것, 또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혐의, 섭섭한 마음이나 보복하는 마음, 지금 다윗에게 이런 것은 절대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진 일, 이스라엘 나라가 영화롭게 된 일을 노래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면서 이스라엘의 영광이 산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또 ‘두 용사가 엎드러졌다’고 했는데, 사울과 요나단이 용사였습니다. 훌륭한 용사가 엎드러졌다고 다윗이 슬퍼했습니다.

본문 20절에 “이 일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찌어다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가드와 아스글론은 둘 다 블레셋 나라인데,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 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왜 딸들이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면 여자들은 싸움의 상황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가 상대편 나라의 누가 죽었다고 하면 기뻐했던 모양입니다. 원수가 죽었다고 하면 즐거워하며 개가를 불렀던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를 존중히 여겨야 함

본문 21절에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찌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부음을 받지 않음같이 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길보아 산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습니다. 다윗은 길보아 산이 저
주를 받을 산이라고 했습니다. 길보아 산에는 우로(雨露), 즉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물 낼 밭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두 용사의 방패가 길보아 산에서 버린 바 되었고 사울의 방패가 기름부음을 받지 않은 자 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이 기름부음 받는 것을 늘 귀중한 일로 생각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기름을 부어서 왕 세워 놓은 일을 신성 불가침의 귀한 일로 생각하고 기름부음 받은 왕을 존귀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기름부음 받은 왕이 길보아 산에서 죽었다는 것은 그 산이 저주 받을 만한 그런 곳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교역자가 기름부음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교역자들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역자를 들어 쓰시는 면을 알고 늘 그들을 존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공적을 칭송하며 죽음을 애도함

본문 22절에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울과 요나단이 용맹스럽게 잘 싸운 것을 상징합니다.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않았다’는 것은 연전연승(連戰連勝), 계속해서 싸워 이기고 또 싸워 이기고, 원수를 죽이고 또 죽인 요나단이라는 뜻입니다. 또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았도다’라는 것은 사울이 한 번 전쟁하러 나가면 원수를 반드시 격퇴하고 돌아왔다는 의미입니다. 사울의 칼이 헛되게 돌아온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잘 싸운 사울 왕이고 이렇게 계속 전쟁에서 승리한 용맹스러운 요나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가 죽은 다음에 그 사람의 잘한 것을 칭찬해주는 점을 여기서 배워야겠습니다. 못한 것을 들어 말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수 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저주받은 왕이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또 레위지파가 제사해야 하는데 자기가 제사했고 교만해졌습니다. 여러 가지 잘못한 점이 많습니다. 또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잘못한 것이 많지만 다윗은 사울의 모든 것을 용서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한 것까지 용서했습니다. 털끝만큼도 사울 왕에게 혐의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그가 잘한 면을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건설해 나가며 원수를 많이 물리치고 전쟁 마당에서 용감하게 싸워 이긴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런 다윗이 복을 받고 이스라엘 나라도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한 면만 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못한 면은 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에게 섭섭하게 한 것은 생각하지 맙시다. 다윗은 사울 때문에 죽을 뻔한 것이 몇 번이고 사울 때문에 피난 다니느라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잘한 면, 하나님께서 쓰신 면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도 그런 면만 보고 사울의 죽음에 슬퍼한 다윗의 신앙을 본받아야겠습니다.

또 우리가 자기 섭섭한 것, 자기 억울한 것을 생각하면 믿음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또 다른 사람의 잘한 면을 존경할 수가 없게 됩니다. 다윗은 사울 때문에 자기가 억울하고 손해 본 면이 있었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죽을 지경에 빠졌던 면이 있었지만 그것은 다 잊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충성을 잘 했는가?, 이스라엘을 위해 전쟁에 나가서 얼마나 용맹 있게 싸워 원수를 물리쳤는가?, 이러한 것을 보고 사울의 죽음을 애석히 생각했습니다. 사울을 귀히 여기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진정으로 슬퍼했습니다.

본문 23절에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였다고 했습니다. 요나단은 죽을 때에도 아버지 사울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나단이 아버지에 대한 효도를 잘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아버지를 공경하고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요나단이 살았을 때에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아버지를 잘 섬겼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 잘 싸운 선한 요나단입니다. 그가 아버지를 순종하고 공경하기 위해서 그 곁을 끝까지 떠나지 아니하고 늘 사랑스럽게 지내다가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않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답다고 다윗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것을 지금 말해주는
것입니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라고 한 것은 사울과 요나단이 얼마나 빠르고 강했는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용맹을 다윗이 우러러 볼 수밖에 없습니다.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했던 그들을 다윗도 아주 존경하며 귀히 여기고 있습니다. 세상 떠난 다음에도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찌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이 통치할 때에 이스라엘 여자들이 붉은 옷, 좋은 옷, 화려한 옷을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금 노리개를 많이 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사울 왕 때에 이스라엘이 얼마나 부강해졌는지, 사울의 공적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사울 왕 때에 이스라엘 여자들이 붉은 옷, 화려한 옷을 입고 금 노리개 찼던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너희에게 이렇게 해준 왕이 죽었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이냐’라며 여자들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더불어 사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5-26절에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의 사랑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여러 번 죽이려고 했지만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해서 죽이지 못하게 했고 죽을 고비에서도 많이 건져 주었습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 그 사랑을 다윗이 알고 죽은 다음에라도 요나단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고 지금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이렇게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 그 사람이 베푼 사랑을 알게 됩니다. 죽은 다음에라도 압니다. 선을 베풀면 그 사람이 모를 것 같아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죽은 다음에라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나단과 같이 살았을 때에 많은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한 일 한 것에 대한 대가를 이 땅에서 하나도 못 받아도 괜찮습니다. 사랑만 하고 선만 행하고 그 수고에 대한 대접은 하나도 못 받아도 하늘나라에 가서 전부 다 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접 못 받는 것이 도리어 낫습니다. 이 세상에서 대접 좀 받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또 사랑 좀 받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받지 않아야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귀합니다. 또 요나단이 심어놓은 사랑과 선은 요나단이 세상에서는 받지 않고 하늘나라에 가서 받게 되었지만 요나단의 아들이 그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
버지가 심어 놓은 그 사랑과 선을 요나단의 아들이 이제 조금 있으면 받게 됩니다. 아버지가 선을 심어 놓으면 아들이 선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세 진 사람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다윗과 같이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졌으면 그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늘 기억하고 죽은 다음에라도 그 사랑을 깊이 생각하고 그 자손에게라도 어떻게 하든지 갚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다윗과 같이 기회만 있으면 갚으려고 하는 그런 믿음을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겠습니다. 
 
본문 27절에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라고 하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두 용사, 이스라엘의 병기가 여기서 엎드러졌다고 슬퍼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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