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5일 일요일

민수기 11:1-9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감사하며 전진하라 이병규성경강해 계약신학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감사하며 전진하라
민수기 11:1-9

1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2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3그곳 이름을 다베라라 칭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연고였더라 4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5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 7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8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빻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9밤에 이슬이 진에 내릴 때에 만나도 같이 내렸더라

1. 백성의 원망과 하나님의 심판의 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시내 산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11개월 5일 동안 시내산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 이년, 이월, 이십 일에 구름이 떠올라서 시내산을 떠나 광야로 들어섰습니다. 민수기 10장 11-12절에 “제 이년 이월 이십 일에 구름이 증거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행하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고 하였는데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물러서 거기 있게 된 것입니다. 그 때에 백성들이 악한 말로 원망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절에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셔서 진 끝만 불을 붙여 심판하셨습니다. 죄 짓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전부 다 멸망을 시켜야 되지만 진 끝만 불을 붙여 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키시기 위함입니다. 전 진을 다 멸망시켜야 마땅하지만 끝머리만 징계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실 때에 끝을 징계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한 쪽 모퉁이만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발을 징계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손을 징계하시고 어떤 사람은 또 다른 부분, 곧 일 부분만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죄를 생각하면 다 멸망 받아야 되지만 다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끝 부분만 좀 징계하셔서 회개시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회개해야 됩니다.

본문 2절에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회개하고 기도하니 그 불이 꺼졌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멎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체를 다 징계하신 것이 아니고, 진 끝만 징계하셨는데 회개하면 벗어나게 됩니다. 가족으로 말하면 끝에 있는 사람만 징계하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요긴한 사람을 징계하시는 때도 있습니다. 모세의 아내가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습니다. 제일 요긴한 사람을 징계하실 때도 있지만 끝을 징계하셔서 회개시키려고 하시는 것 입니다. 그때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고 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그 불이 꺼졌습니다.

본문 3절에 “그곳 이름을 다베라라 칭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연고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베라’라는 뜻은 각주에 보면 불사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지방의 이름을 다베라라 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바란 광야에 머물면서 뒤를 돌아보고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감사하며 전진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2. 탐욕으로 구하는 백성에게 만나를 내리심

이스라엘의 한 무리가 먼저 탐욕을 품음

본문 4-6절에 보면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도 그 탐욕을 배워서 탐욕을 품은 것입니다. 믿음 없는 한사람이 원망을 하고 탐욕을 품으니 다른 사람들도 본받아서 탐욕을 품고 원망을 한 것입니다.

이 원망은 믿음 없는 사람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또 욕심도 믿음 없는 사람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원망이 믿음 없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다른 사람들까지 원망하게 되고, 욕심도 믿음 없는 사람이 먼저 품어 다른 사람까지 욕심을 품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나니아 부부
가 재산 얼마를 감추어 놓고 다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누가 먼저 이야기했겠습니까? 아나니아의 부인 삽비라가 먼저 감추자고 했을 것 같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먼저 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 중에 누가 먼저 범죄를 했습니까? 하와가 먼저 했습니다. 언제나 믿음이 없는 사람을 통해 마귀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12제자 가운데는 누구를 통해서 마귀가 들어왔습니까? 가룟 유다를 통해서 마귀가 들어왔습니다. 먼저 원망하고 먼저 믿음 없는 말을 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부을 때 ‘그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서 구제했으면 좋을 것이라’고 가룟유다가 불평하였습니다. 가룟 유다가 먼저 믿음 없는 말을 하니까 다른 제자들도 따라서 불평했던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먼저 불평하는 것입니다. 또 믿음 없는 사람이 먼저 원망하는 것입니다. 또 믿음 없는 사람이 먼저 탐욕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본받아서 원망하고 탐욕을 품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을 언제나 조심하고 믿음 없는 사람의 말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을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과거 애굽에 있었던 때를 돌아봄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 중에 불만불평이 들어와서 원망하며 울었습니다. 무엇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까? 고기를 먹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먹지 못해서 백성들이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말로 원망을 하였습니다. 민수기 11장 18절에 “또 백성에게 이르기 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있었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민수기 16장
13절에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애굽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 거기서 왜 우리를 이끌어 내서 이 광야에서 죽이려 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 3절에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는 고기를 배불리 먹고 또 생선과 외와 수박도 먹고 부추와 파와 마늘도 먹어서 정력이 쇠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못 먹으니까 정력이 쇠해졌다는 것입니다. 애굽에 있었던 때가 좋았는데 ‘왜 이리로 우리를 인도해 내었는냐’라고 원망을 하였습니다. 광야에서는 만나 하나밖에 없으니까 너무 쇠약해졌다는 것입니다.

과거 애굽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현실과 비교함

그러면 만나만 먹는다고 죽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나 속에 죽지 않고 살만큼 영양을 고루 고루 섞어서 내려 보내주시기 때문에 만나만 먹어도 절대 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만나만 먹어도 안 죽었습니다. 만나만 먹었어도 여호수아는 110세까지 살았고, 모세
는 120세까지 살았습니다. 40년간 먹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양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먹던 것을 생각을 하며 그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는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를 맘대로 먹고, 또 생선도 값없이 많이 먹고 채소, 수박, 외, 마늘이나파 등을 먹었는데 지금은 그것을 먹지 못하니까 쇠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쇠약해졌어도 죽지 않게 해주신 것입니다. 또 정력이 쇠해졌어도 광야 40년 동안에 아이를 많이 낳게 해주셨습니다.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60만명이 넘도록 아이도 낳게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해놓으셨는데 애굽에 있을 때만 못하다는 것을 가지고 지금 원망하고 불평하고 우는 것입니다. 애굽에 있던 생활이 그리워서 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있었을 때 어떤 생활이었습니까? 애굽은 감옥생활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잘 먹었다고 합시다. 그래도 감옥 생활이 좋습니까? 또 나와서 잘 못 먹는다고 합시다. 애굽에서 나와 해방된 것이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감옥에서 하루 세 끼씩 주어서 먹는 것보다,
먹을 것이 없어도 감옥에서 나와 자유롭게 한 끼를 먹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애굽에서는 자유가 전혀 없었고, 강제 노동을 하면서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또 ‘벽돌을 더 많이 구워라’고 하면서 중노동을 시켜 이스라엘 백성을 쇠멸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자를 낳으면 산파를 시켜서 나일 강에 빠뜨려 죽이라고 하면서 학대를 받고 형편없이 고생만 하였는데 그때가 좋았다고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애굽 생활에서 무슨 희망이 있었습니까? 애굽에 그냥 있었으면 이스라엘 백성은 점점 쇠멸하게 됩니다. 바로 왕이 쇠멸 정책을 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점점 약하게 만들어서 다 멸절시키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애굽에서 잘 먹었다는 것만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물론 잘 먹었을 것입니다.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도 많이 먹었고 배부르게 떡과 생선과 수박과 외와 부추와 마늘도 많이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못먹어도 애굽에서 해방된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매일 아침 만나를 내려 주심

만나는 본문 7절에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하얀 색임을 알 수 있습니다. 8절에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빻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
라”고 하였는데, 아주 좋은 양식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왔습니다. 만나가 무엇같이 생겼습니까? 깟씨 같다는 것은 가는 씨와 같다는 것입니다. 또 진주와 같은 것인데 새벽마다 눈과 같이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이슬이 올 때 깟씨만큼 작은 양식이 같이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거두어다가 백성들이 맷돌에 갈기도 하고 절구에 찧기도 하고 또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어서 먹었는데 그 맛은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다’라고 하였습니다. 아주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만나가 내려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 오기 전에 벌써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게 하였습니다. 본문 9절에 “밤에 이슬이 진에 내릴 때에 만나도 같이 내렸더라”고 하였습니다. 광야에 가다가 먹을 것이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다가 매일 아침 이슬이 내릴 때마다 만나를 먹게 하면서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

1) 해방되어 자유의 사람이 되게 해주심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큰 것을 알지 못하고 작은 것 때문에 불평하는 것입니다. ‘小貪大失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는데 작은 것을 탐해서 큰 것을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큰 것이 무엇입니까? 애굽에서 나온 일, 해방 받은 일,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애굽은 감옥이요, 쇠풀무 속에서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명기 4장 20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풀무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라고 하였는데 쇠풀무와 같은 애굽에서 인도해서 자기 백성을 삼아 주신 것이 크다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나온 것이 큰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와서 잘못 먹는다고 불평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에는 자유가 전혀 없고 쇠멸하게 되었었지만 이제는 자유와 해방을 받아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이제는 종이 아니고 자유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 백성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쇠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서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 주신 것입니다.

2)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심

낮에는 뜨거운 사막에서 구름으로 덮어주시고, 밤에는 춥지 않도록 불로 훈훈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 이렇게 해 주셨습니까? 물론 애굽에 있었을 때에 지금보다는 잘 먹었을 것입니다. 잘 먹기는 먹었겠지만 그 때, 자유가 있었습니까? 그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로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셨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지금은 애굽에 있을 때보다 잘 못 먹습니다. 생선이 있겠습니까? 오이가 있겠습니까? 사막에 수박, 부추, 마늘, 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다 못 먹어도 하나님께서 같이 해 주시는 것이 몇 억 만 배 더 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해 주시는 것 아닙니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덮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3) 시내 산에서 직접 말씀을 주심

그리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셔서 십계명, 또 모세 오경, 율법으로 말하면 613가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율례와 법도와 십계명이 새긴 돌판 둘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없던 것입니다. 창세 이후로 하나님께서 직접 산에 강림하셔서 말씀을 주시고 돌에 말씀을 새겨주신 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이렇게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는데 원망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 가운데는 그리스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십계명과 율법 가운데는 그리스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죄를 깨닫게 해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안식일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에게 영적 안식과 영원한 안식을 주실 것을 예표한 계명입니다. 참 좋은 계명입니다. 그래서 십계명 가운데서 제일 요긴한 계명이 4계명입니다. 안식일 지키라는 계명이 십계명 가운데 제일 좋은 계명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이렇게 시내 산에서 직접 말씀들을 주신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금보다 귀하고 정금보다 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생명을 찾으라고 말씀을 주셨으니 감사함으로 살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살지 않고 왜 애굽을 돌아봅니까? 현재 고기를 좀 못 먹는다고 울기는 왜 우냐는 것입니다. 또 수박과 외와 생선 못 먹는다고 왜 웁니까? 자유와 해방이 더 큰 것이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인도해주시고 보호해주시는 것이 더 큰 것이고, 또 말씀 주신 것이 더 큰 것 아닙니까? 이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전에 종살이하면서 잘 먹던 것을 생각하고 에굽에서 괜히 나왔다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안 나올 것을 나왔다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있었더면 더 좋을 뻔했는데 왜 우리를 인도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전에 살던 것이 더 좋아 보인 것입니다.

4)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반드시 허락해 주심

이제는 애굽에서 살던 것이 더 좋았다고 원망하지 말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며칠 있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1장 2절에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까지 열 하루 길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호렙 산은 시내 산인데 거기서 세일산을 지나 요단강을 건너가면 가나안 땅입니다. 거기까지 열 하루 길이라는 것입니다. 벌써 시내 산을 떠나서 3일 동안 왔습니다. 민수기10장 33절에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팔 일만 가면 들어가는 것입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가나안 땅이 이제 팔 일만 가면 도착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즐겁습니까? 이제 팔 일 있으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한 가나안 땅, 사백여 년 동안 고대하던 가나안 땅, 사모하고 기다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못참고 원망한 것입니다. 만나만 겨우 먹고 연명해서, 애굽에서 먹던 고기나 생선이나 채소나 수박 같은 것을 못 먹어도, 이제 며칠 있으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400여 년간 기다리던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430년 이상을 지난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땅입니다. 거기가 본향입니다. 가나안 땅이 제 2의 본향입니다. 제 1 본향은 하늘나라이고 조금 있으면 제 2의 본향에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쁘지 않습니까? 너무나 기뻐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습니다. 이북에서 나온 사람이 있습니까? 이성봉 집사가 황해도에서 왔다고 했는데 고향에 간다고 하면 기쁘겠습니까? 예, 기쁘겠습니다. 고향에 간다고 하면 밥 안 먹어도 된답니다. 이영훈 목사 아버지도 황해도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열흘 있다가 간다고 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죽만 한 끼 먹어도 기쁩니다. 그런데 옛날 애굽에서 고기와 생선 좀 먹던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못 먹는다고 원망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진짜 감사할 것이 가득 찼는데 원망만 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좀 고생스럽고, 먹을 것은 만나밖에 없고, 채소도 먹지 못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죽을 것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채소나 생선을 못 먹어도 살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죽을 것을 주시겠습니까? 그런데 원망하고 불평하고 후회하는 것은, 믿음을 다 내어버린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감사해야 됩니까?
첫째는 해방되어 자유의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둘째는 무엇을 감사해야 됩니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같이 해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셋째는 무엇을 감사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말씀 주신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모세오경을 다 주셨는데 그 말씀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말씀을 가지고 하루 종일 즐거워하고 백 년을 즐거워해도 한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이제 팔 일만 있으면 들어가게 된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복을 허락해 주심

오늘날로 말하면 현재 우리에게 주신 영적 자유와 생명의 세계에 사는 것이 감사하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는 것이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낮에 해가 상치 아니하도록, 밤에 달이 해치 아니하도록 보호해주신 것이 감사하지 않습니까? 또 말
씀 주신 것이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그 말씀대로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세의 계명 가운데는 그리스도가 내포해 있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고 붙들어 주신 것, 또 영적 자유와 해방을 주신 것, 보호해주시는 것, 또 귀한 생명의 말씀을 주신 것들을 헌 신짝같이 다 내버렸습니다. 그리고 전에 종살이 할 때 조금 잘 먹던 것을 생각하면서 뒤를 돌아다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먹었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지금은 잘 못 먹는다고 하는데, 못 먹으면 또 못 삽니까? 전처럼 잘 먹어야 잘 삽니까? 전에만 못 해도 하나님께서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사막 지대를 걸어가면서 종살이 할 때 잘 먹던 것만큼 먹겠습니까? 그것은 욕심입니다. 이제는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 도중에 있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다 먹을 수 있습니까? 고기 잡으러 다니고 파농사하고 오이농사하고 수박농사를 언제 하겠습니까? 그것을 못 먹어
도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주신 것을 가지고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도 애굽을 보지 말고, 현실에 자족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함

1) 자족하는 생활을 해야 함

지금 너무 기쁘고 소망이 가득 찼는데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좀 잘 살던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못 살고 괴로워도 지금이 이전보다 몇 억 만 배 더 나은 줄을 알고 감사해야 됩니다. 현실에 자족해야 됩니다. 현실에서 자족을 배우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8절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셔서 먹게 해주시니 감사한 것이지, 무엇을 더 좋은 것을 먹겠다고 하겠습니까? 만나만 먹고 40년을 살아도 까딱없게 해 주셨습니다. 건강을 유지하게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감사하며 자족하는 믿음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먹을 것만 있으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먹을 것을 먹었으면 된 것입니다. 하루 세 끼 먹었으면 만족할 줄 아십시오. ‘겨우 쌀이나 사다 먹고 고기는 못 먹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건강하게 해 주십
니다. 고기 못 먹고 김치 한 쪽만 먹는 어떤 할머니도 96세를 살다가얼마 전에 세상 떠났습니다. 고기를 못 먹는 집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96세를 사신 것입니다. 고기 먹는 사람이 96세를 살겠습니까? 고기먹는 사람이 더 못 삽니다. 고기 먹으면 지방이 혈관에 껴서 혈압이 올라가고 콜레스테롤이 생기고 지방간이 생겨 좋지 않다고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이 고기를 먹습니다. 왜 할 수 없이 고기를 먹는가 하면 밥만 한 그릇 먹으면 괜찮겠는데 자꾸 뚱뚱해져서 밥을 조금 먹습니다. 밥을 조금 먹으니까 칼로리가 좀 모자랍니다. 그래서 보충을 해야 되니까 할 수 없이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그래도 될 수 있는 대로 안먹으려고 하는데 밥 한 그릇씩 먹으면 고기는 안 먹어도 괜찮습니다.
시골서 농사하는 사람들이 고기 먹습니까? 옛날 시골서는 고기 못 먹었습니다. 닭 잡아먹었는데 그것도 손님이 와야 한 마리 잡아먹었습니다. 아이들은 닭의 발목 하나, 닭 머리를 얻어먹고 고기는 손님이 다 먹는 것입니다. 그래도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이 그때는 다 건강했
습니다. 치과 한 번 안 가도 이가 그대로 다 있고 병원 안 가도 다 건강했습니다. 그러니까 잘 못 먹는다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밥하고 김치 하고만 먹어도 다 살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또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면 먹어도 괜찮습니다. 이것이 현실에서 자족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자족해야 되겠습니다.

2)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함

또 여러 가지 시험이 많이 오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모든 시험을 다 이기면서 통과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은 안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 16절에는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신명기 8장 3-4절에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네게 여러 가지 시험 당하게 하는 것은 너를 낮추시고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려고 시험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또 감당치 못할 시험은 안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감당케 해 주실 것이니까 모든 염려는 하나님께 맡기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순종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면서 통과해야만 되겠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면서 통과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먹을 것을 염려 하는 것은 마귀 시험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한 말씀처럼 새가 날아다니면 일할 때 먹을 것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틀림없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주시지 않습니다. 어디서나 일해서 벌어먹으려고 날아만 다니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은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3) 뒤를 돌아보거나 현실에 후회하는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함

그리고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곧 뒤를 돌아다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회하는 것은 믿음을 배반한 것입니다. ‘괜히 이렇게 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했다. 저 사람하고 안 했어야 되는데 괜히 결혼했다. 누구 때문에 했다. 팔자가 사나워서 저런 사람하고 결혼했다’고
하면서 후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눈으로 보고 결혼했는데 왜 후회하느냐 말입니다. 괜히 원망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회해야 쓸데없습니다. 또 후회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후회해야 죄만 짓는 것입니다. 후회하는 것은 마귀역사입니다. 마귀시험입니다. 그러므로 일절 후회하지 말고 현실에서 자족을 배우고 감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병신 다리가 효자 아들보다 낫다’고 했는데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악처가 효자 열 보다 낫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내가 악처라도 효자 열 보다는 낫습니다. 악한 것만 보지 말고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면서 살면 됩니다. 없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쓰러져 가는 집도 없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병신 다리가 됐으면 ‘이것은 효자 아들보다 낫다’, 또 악처가 있으면 ‘효자 열보다 낫다’고 하면서 후회하지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에 대해서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4) 현실을 감사히 받고 승리하는 생활을 해야 함

어떤 부부가 싸우다가 이혼하려고 도장까지 꺼냈는데, 이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주 잘 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남편은 가정 세미나의 선생이 되어서 원만하지 못한 가정을 모아놓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남편에게 ‘왜 전에는 이혼하려고 했느냐’고 물어보니까 부인이 집 안을 청소하지 않고 많이 늘어놓는답니다. 옷을 벗어서 사방에 늘어놓기 때문에 매일 싸우다가 이혼까지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냥 놔두고 살자’는 결심을 했답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아주 화평해졌습니다. ‘치워라, 치워라’ 하지 않고, 늘어놔도 가만있으면 좋아하지 않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싸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밥 해주면 먹고, 밥 안 해주면 빵 하나 먹어도 영양 부족 안 걸립니다. 미국에 있는 사람들 보니까 아침에는 빵 한쪽하고 우유 한 컵만 먹고 다 나갑니다. 직장에도 가고 학교에도 가고 밥 안 해 먹습니다. 그래도 건강합니다. 그러니까 밥 안 해준다고 싸우지 말고 밥 안 해줘도 가만히 있으십시오. 늘어놔도 가만있고 그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부엌에 가는 길, 방에 가는 길, 화장실 가는 길 몇 개만 치워놓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냥 사는 것입니다. 그래도 화평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것 때문에 싸우는 것보다 화평 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남편이 탈선된 행위를 하면 못하도록 최소한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다 안 되면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하다가 안 되면 내버려 둬야지 술 먹는 사람보고 ‘술 먹지 말라’고 해서 안먹으면 좋지만, 계속 먹는데 매일 싸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버려 두고 사는 것입니다. 먹는 사람이니까 또 먹겠거니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해서 그 사람이 회개하여 바로 되기를 기다려야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실을 감사히 받고 현실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감사하고 현실에서 승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을 정복해야 됩니다. 현실에서 감사하고 현실에서 자족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평안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싸우지 말고 잘 살라
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자족을 배우고 감사하게 사는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불평하지 말고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지 가만히 있으면 저 혼자 그러다가 그만두는 것입니다. 소리가 날 수가 없습니다.

현실을 승리적으로 통과하고 정복하여 가나안으로 전진해야함

이제는 현실을 승리적으로 통과하는 동시에 현실을 정복하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과거에는 불만, 불평, 원망을 하였지만 이제는 현실에 만족하고 승리하는 생활을 해서 믿음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정복하라는 것은 믿음으로 전부 다 화합을 시키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두 인도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을 받으면서 현실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을 도피하는 자가 되지 말고 원망하는 자도 되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을 하나님께서 주신 줄을 알고 감사히 받아서 거기서 할 일이 있고, 피할 길이 있고, 거기서 살 길이 있는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거기서 현실을 정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잘 정복해서 그것을 자기의 소유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이용하고 정복해서 자기의 유익을 삼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21-23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
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바울이 옳다, 아볼로가 옳다, 게바가 옳다’ 싸우지 말고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우리를 위해서 있는 것이니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용하면 다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 현실을 정복해서 우리의 유익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 하는데 이용을 하고 현실을 자기 즐거움으로 삼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것을 감사하고, 불평불만하지 말고, 전에 죄짓고 종살이 하면서 좀 잘 살았던 것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자유와 해방 받은 것을 감사하고 이전보다 먹을 것이 부족해도 영의 자유와 해방, 하나님 말씀의 즐거움으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이
것이 가나안으로 가는 세계입니다. 말씀을 지키면서 잘 살지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말씀을 안 지키고 잘 사는 것은 사망입니다. 쇠풀무 가운데서 잘 살면 무엇 합니까? 신앙 못 지키고 세상에 빠져서 잘 살면 무엇 합니까? 애굽은 세상입니다. 세상 따라가다가 잘 살아도 그것은 쇠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이제는 말씀을 따라가고, 세상을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직장이 떨어져서 사는 것이 이전만 못 해도 ‘여기가 생명이요 자유요 소망이 있는 곳이다’라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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