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과 부정한 기간
레위기 12:1-8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3제 팔 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4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5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일을 지나야 하리라 6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취하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하여 회막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7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자녀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8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레위기 12:1-8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3제 팔 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4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5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일을 지나야 하리라 6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취하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하여 회막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7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자녀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8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1. 해산 후 부정한 기간
실수로 살인한 경우를 위해 도피성을 주심
본문 1-5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제 팔 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 육일을 지나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실수로 살인한 경우를 위해 도피성을 주심
본문 1-5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제 팔 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 육일을 지나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 일 동안 부정하다고 하였습니다. 부정한 기간이 7일이고, 제 팔 일에는 낳은 남자 아이의 양피를 베라고 하였습니다. 양피를 베라는 것은 할례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제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도 애를 낳은 후 7일 동안은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 곁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정한 기간인 7일이 지나서 제 8일이 되서야 비로소 할례를 받을만한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할례 후 산혈이 깨끗해지려면 33일이 지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낳으면 부정한 기간이 며칠 동안입니까?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라고 하였는데, ‘이 칠’은 7일이 두 번이므로 14일입니다. 여자를 낳으면 남자와 달리 14일 동안 산모가 부정합니다. 그리고 산혈이 깨끗해지려면 66일이 지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 곁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정한 기간인 7일이 지나서 제 8일이 되서야 비로소 할례를 받을만한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할례 후 산혈이 깨끗해지려면 33일이 지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낳으면 부정한 기간이 며칠 동안입니까?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라고 하였는데, ‘이 칠’은 7일이 두 번이므로 14일입니다. 여자를 낳으면 남자와 달리 14일 동안 산모가 부정합니다. 그리고 산혈이 깨끗해지려면 66일이 지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면 왜 부정해 집니까? 아이를 낳으면 왜 부정한 기간이 있습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해산고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인류가 범죄한 다음에, 곧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에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을 죄의 값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것입니다. 시편 5편 5절에는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부정한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해산을 할 때에 피를 많이 흘리는 데, 피가 부정한 것으로 취급됩니다. 신체가 파괴되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 흘리는 피는 부정한 것으로 취급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왜 남자를 낳으면 7일간 부정하며 33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해지고, 여자는 그 배인가 하는 것입니다. 즉 왜 여자는 14일간 부정하고, 66일이 지나야 하는가 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장차 남자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장차 남자 가운데 태어나실 것을 가리키는 예언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9장 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전도서 7장 28절에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아들이 우리에게 났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남자로 나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남자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피를 흘려주실 것을 예언했기 때문에, 곧 장차 그리스도께서 남자로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에 여자보다는 남자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7수는 만수입니다. 하나님의 내정수의 기간에는 부정하다가 완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일 동안은 부정하고 8일만에 깨끗해져서 할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33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해진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예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감당하셨습니다. 에스겔 4장 6절에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일 일이 일 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1일을 1년이라고 하면, 본문의 33일은 33년이 됩니다. “일 일이 일 년이니라”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33년이 되는 해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것입니다.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왜 남자를 낳으면 7일간 부정하며 33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해지고, 여자는 그 배인가 하는 것입니다. 즉 왜 여자는 14일간 부정하고, 66일이 지나야 하는가 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장차 남자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장차 남자 가운데 태어나실 것을 가리키는 예언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9장 6절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전도서 7장 28절에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아들이 우리에게 났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남자로 나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남자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피를 흘려주실 것을 예언했기 때문에, 곧 장차 그리스도께서 남자로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에 여자보다는 남자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7수는 만수입니다. 하나님의 내정수의 기간에는 부정하다가 완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일 동안은 부정하고 8일만에 깨끗해져서 할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33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해진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예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감당하셨습니다. 에스겔 4장 6절에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일 일이 일 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1일을 1년이라고 하면, 본문의 33일은 33년이 됩니다. “일 일이 일 년이니라”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33년이 되는 해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것입니다.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2. 해산 후 제사를 드릴 것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면 제사를 드릴 것
본문 6-7절에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된 어린 양을 취하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하여 회막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
이 깨끗하리라 이는 자녀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고 하였습니다.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면, 즉 남자를 낳은 지 33일이 되면, 번제를 위해서 어린양을 잡아 드리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해서 제사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비둘기 새끼를 가지고 왔습니다. 누가복음 2장 23-24절에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다음에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경대로 하려고 한 것입니다. 번제는 소나 양으로 드리는 것이지만, 힘이 못 미치는 사람에게는 비둘기로 드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8절). 그러므로 가정이 부유하지 못한 마리아는 번제와 속죄제를 위해 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아이를 낳고 정결케 되는 기간이 지나면 번제와 속죄제, 두 가지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남자를 낳으면 며칠 만에 제사를 드립니까?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이라고 하였는데, 남자는 33일이 찬 다음에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66일이 찬 다음 성전에 가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두 가지 제사를 드린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번제이고, 또 하나는 속죄제입니다. 번제를 위해서 어린 양을 가지고 가고, 속죄제를 위해서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가지고 가서, 번제와 속죄제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결케 되어 제사 드리는 때가 8일째인지 33일 후 인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2절에 7일 동안 부정하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5장 26-29절에 “무릇 그 유출이 있는 날 동안에 그의 눕는 침상은 그에게 불결한 때의 침상과 같고 무릇 그의 앉는 자리도 부정함이 불결의 부정과 같으니 이런 것을 만지는 자는 무릇 부정한즉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그의 유출이 그치면 칠 일을 센 후에야 정하리니 그는 제팔일에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자기를 위하여 취하여 회막문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피의 유출이 있을 때에는 부정한 기간인 7일을 지내고 제 8일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해산한 후, 며칠만에 제사를 드렸습니까? 누가복음 2장 21-24절에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지 8일에 할례를 한 것이고, 제사는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서 드린
것입니다. 제 8일에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누가복음 1장 57-60절에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그 모친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난지 8일에 할례를 행한 것만 기록하고 제사 드린 것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것입니다. 제 8일에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누가복음 1장 57-60절에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그 모친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난지 8일에 할례를 행한 것만 기록하고 제사 드린 것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본문 4절에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라고 하였고, 그때가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찼다고 하였습니다.
7절에는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고 하였습니다. 33일이 되어야 산혈이 깨끗하다고 하였고, 또 제사를 드려야 산혈이 깨끗하다는 것을 보면, 제사를 드리는 때와 정결해 지는 때는 33일 후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를 낳은 다음에 33일 후에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를 낳으면 66일이 지난 다음에 제사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마다 속죄제와 번제를 드릴 것
아이를 낳은 다음에 두 가지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번제와 속죄제 입니다. 속죄제를 드리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먼저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는 말씀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 16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고난이 죄로 말미암아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속죄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은 범죄한 결과 하나님께 벌로 받은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아이를 해산하면서 죄를 지은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해산할 때 너무 고통이 심하니까 불평하고 원망하고 또 여러 가지 합당치 않은 언사를 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속죄제를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해산을 하느라 믿음을 잘 못 지켰습니다. 해산하는 동안에 믿음을 잘 지키면서 해산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너무 아파서 정신이 나가서 믿음은 다 집어치우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또 여러 가지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속죄제를 반드시 드려야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겠다는 욕심으로 기울어진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들 하나 낳으면 좋겠다는 욕심, 또는 딸을 낳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욕심입니다. 그냥 아들을 낳든지 딸을 낳든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감사히 받아야 하는데, 자기가 욕심 부렸던 것에 대한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서 믿음 잘 못 지킨 것, 또는 욕심이 생긴 것 등의 죄에 대해 속죄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 마음으로 회개하며 속죄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단지 이제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만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슨 일 한 가지를 하고 지나갈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하지 못한 것을 찾아 회개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서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바로 서는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사건이 하나 지난 다음에 그냥 지나가면 희망이 없습니다. 반드시 그 사건에서 자기가 믿음 못 지킨 것이나 잘못 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혈기 부렸던 것, 욕심 부렸던 것 등을 찾아서 회개하고 통과를 해야 합니다. 물욕, 정욕, 사욕이 있었는지 회개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등을 좇은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눈으로 볼 때에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보는 것을 다 가지겠다는 욕심인데, 어떤 것을 통과할 때 그런 욕심을 부리기 쉽습니다. 또 불평하기 쉽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잘 통과하지 못한 것
을 찾아서 회개하고 바로 서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지 점점 바로 서 나갈 수 있습니다. 해산 할 때마다, 곧 일이 생길 때마다, 일이 하나 지나갈 때마다, 또 고통이 한번 지나갈 때마다, 이것이 내 죄의 값으로 오지 않았는가, 욕심으로 하지는 않았는가, 불평하지 않았는가, 너무 고생이 심해서 믿음 못 지킨 것이 있지 않았는가, 거기서 믿음으로 잘 통과 했는가를 돌이켜 보고,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한 가지를 통과한 다음에는 반드시 속죄제를 드려야겠습니다. 믿음 잘못 지킨 것을 찾아서 회개하고 깨끗하게 바로 서서 다시 새출발을 해야겠습니다.
또한 번제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번제는 왜 드립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아이와 자기가 여생을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번제물과 같이 이제는 제단에 다 바쳐놓고 살고자 한다는 신앙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아이와 내 몸을 다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해산을 하다 죽는 사람도 많은데, 하나님께서 죽지 않게 살려 주시고, 아이를 순산하게 해주셨으니, 여생을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속해 주셨기 때문에 은혜로 이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로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는 주를 위해서 몸을 바치고, 주를 위해서 희생적 정신을 가지고 살고자 합니다’ 하는 믿음으로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욥기 1장 5절에 “그 잔치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아들들의 생일잔치가 지날 때마다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도 드리고 속죄제도 드렸습니다. 사건이 지날 때마다, 생일잔치가 지날 때마다, 큰일이 지날 때마다, 욥이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던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무슨 시험이 하나 지나갈 때마다, 어떤 사건이 지나갈 때마다, 고통이 지나갈 때마다, 또 나한테 섭섭한 마음이 지나갈 때마다, 날마다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지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건이 지날 때마다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개하는 제사가 속죄제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여 몸을 바치는 제사는 번제입니다. 주를 위하여 살겠다는 것입니다. 며칠 만에 제사를 드려야 합니까? 남자아이를 낳으면 33일 만에 드려야 하고, 여자 낳으면 66일 만에 드려야 합니다. 산혈이 깨끗해진 다음에 제사를 지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가 제사를 드릴 때와 어떤 관계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마음이 깨끗해진 다음에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뒤숭숭하고, 흐리멍텅하고, 불만이 가득 들어왔고, 편하지 않은 마음인데, 제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33일 동안 회개하는 기간을 가지고, 깨끗하고 고요한 마음이 된 다음에 속죄제를 드리고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깨끗해지고 새출발을 하게 됩니다. 감사제물을 바치고 새사람으로 새출발을 하는 회개를 하고 바로 서서 제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일순간 더러워질 수도 있지만 그다음에 깨끗해지는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 더러워져서 오래가면 못씁니다. 한 번 더러워졌다고 해도 거기서 청결함을 받아야 됩니다. 회개하고 바로서고, 새로운 결심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몸을 바쳐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한 번 실수해서 내내 더러운 것으로 살면 못쓰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나오라는 것입니다.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고 번제를 드려서 새출발을 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사건이 지날 때마다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개하는 제사가 속죄제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여 몸을 바치는 제사는 번제입니다. 주를 위하여 살겠다는 것입니다. 며칠 만에 제사를 드려야 합니까? 남자아이를 낳으면 33일 만에 드려야 하고, 여자 낳으면 66일 만에 드려야 합니다. 산혈이 깨끗해진 다음에 제사를 지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가 제사를 드릴 때와 어떤 관계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마음이 깨끗해진 다음에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뒤숭숭하고, 흐리멍텅하고, 불만이 가득 들어왔고, 편하지 않은 마음인데, 제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33일 동안 회개하는 기간을 가지고, 깨끗하고 고요한 마음이 된 다음에 속죄제를 드리고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깨끗해지고 새출발을 하게 됩니다. 감사제물을 바치고 새사람으로 새출발을 하는 회개를 하고 바로 서서 제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일순간 더러워질 수도 있지만 그다음에 깨끗해지는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 더러워져서 오래가면 못씁니다. 한 번 더러워졌다고 해도 거기서 청결함을 받아야 됩니다. 회개하고 바로서고, 새로운 결심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몸을 바쳐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한 번 실수해서 내내 더러운 것으로 살면 못쓰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나오라는 것입니다.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고 번제를 드려서 새출발을 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제사를 드려서 속함을 받고 정결하게 됨
본문 8절에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서 정결하게 됩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했는데,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자신을 바치는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싸우면 더러워지는 것이므로 싸운 것으로 내내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며칠이 되기 전에 화목을 해야 합니까? 해가 지기
전에 화목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자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죄가 다 있습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면서,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다시 새출발을 해야 합니다. ‘죄를 지었어도 망하지 않게 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다. 예수님께서 나 때문에 죽어주셨기 때문에 망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몸을 바쳐서 주를 위해서 일생동안 살겠습니다’고 하면서 번제를 드리는 믿음을 가지고 또 화목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양을 잡아서 화목제를 드리고, 일부는 제사장을 주고, 식구들과 친구들, 그리고 다툰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나눠 먹으면서 화목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새출발을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새출발을 하는 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실수하지 않는 것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실수 했지만 다시 새출발을 하는 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새출발을 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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