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의 신앙
사무엘상 20:1-17
1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와서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관대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 2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대소사를 내게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내 부친이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3다윗이 또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4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5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제 삼일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6네 부친이 만일 나를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7그의 말이 좋다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 8그런즉 원컨대 네 종에게 인자히 행하라 네가 네 종으로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케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거든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부친에게로 데려 갈 것이 무엇이뇨 9요나단이 가로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있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결심한줄 알면 내가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10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부친이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고하겠느냐 11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12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거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 때에 내 부친을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보내어 네게 알게 하지 않겠느냐 13그러나 만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하거늘 내가 이 일을 네게 알게 하여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14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17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사무엘상 20:1-17
1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와서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관대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 2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대소사를 내게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내 부친이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3다윗이 또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4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5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제 삼일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6네 부친이 만일 나를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7그의 말이 좋다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 8그런즉 원컨대 네 종에게 인자히 행하라 네가 네 종으로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케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거든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부친에게로 데려 갈 것이 무엇이뇨 9요나단이 가로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있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결심한줄 알면 내가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10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부친이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고하겠느냐 11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12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거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 때에 내 부친을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보내어 네게 알게 하지 않겠느냐 13그러나 만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하거늘 내가 이 일을 네게 알게 하여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14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17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1. 다윗이 요나단에게 사울의 의향을 타진하게 함
본문 1-2절에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와서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관대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대소사를 내게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내 부친이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사울 왕이 있는 곳,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기를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부친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관대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이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대소사를 내게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내 부친이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하며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절에 “다윗이 또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또 염려하기를 사울이 요나단이 다윗과 친한 줄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요나단이 알면 슬퍼할까봐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요나단에게 알리지 아니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는 것은 이제 까딱하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다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대로 다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5-6절에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제 삼일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네 부친이 만일 나를 자세히 묻거든 그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라고 하였습니다, 월삭은 매달 초하루절기를 지키는 때입니다. 즉, 초하루 날 절기 지키는 때에 다윗이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어 다윗은 “그러나 나를 보내어 제 삼일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네 부친이 만일 나를 자세히 묻거든 그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 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그의 말이 좋다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이 말한 대로 말할 때에 사울이 좋다고 하면 다윗이 평안할 것이고, 사울이 노하면 다윗을 해하기로 결심한 줄로 알겠다고 하였습니다. ‘월삭에 다윗이 마땅히 왕을 모시고 음식을 같이 해야 하는데 그날에 나가지 않으면 왕이 물어볼 것이다, 물어보면 고향에 제사하러 갔다고 하라, 형이 불러서 갔다고 하라, 그때에 왕이 노하면 나를 죽이려고 결심한 것이고 평안하면 나를 죽이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0장 25-29절에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았고 요나단은 섰고 아브넬은 사울의 곁에 앉았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으나 그러나 그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 이튿날 곧 달의 제 이일에도 다윗의 자리가 오히려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뇨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가로되 청컨대 나로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나로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에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월삭이 되었는데 왕이 앉아서 음식을 먹을 때에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았고, 요나단은 섰습니다. 아브넬은 사울의 곁에 앉았고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첫날에 다윗이 자리를 비운 것은 ‘무슨 사고가 있어서, 혹은 부정한 일이 있어 오지 않았는가보다’라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월삭 제 둘째 날이 되었는데도 다윗이 오지 않자 사울이 요나단에게 왜 다윗이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이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가로되 청컨대 나로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나로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이 이 일이 있기 얼마 전에 다윗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벽에 박으려고 두 번 창을 던졌습니다. 또 딸을 주고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다윗은 들창문으로 내려가 도망쳤습니다. 또 다윗을 죽이려고 데려오라고 할 때 병이 나서 못 간다고 하니 다시 사자를 보내서 침상 채로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침상 채로 가져오면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침상 채 가져오려고 할 때에 다윗은 벌써 도망치고 우상만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다윗이 라마 나욧으로 도망하여 사무엘에게 갔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에게로 간 줄 알고 사울이 다윗을 잡아오라고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 사자가 라마 나욧으로 다윗을 잡으러 갔는데 거기서 사무엘이 수령으로 있고, 선지자의 생도들이 예언하는 것을 보고 같이 다 예언을 하였습니다. 선지자의 무리가 예언하는 것에 사울이 보낸 사자들도 참여해서 같이 예언을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사자를 보내니 두 번째 사자들도 거기서 같이예언을 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잡아오라고 세 번째 사자를 보냈는데, 세 번째 사자들도 예언을 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네 번째는 사울이 직접 갔습니다. ‘내가 가봐야겠다’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라마 나욧에 가서 사무엘과 선지자의 생도들이 예언을 하는 것을 볼 때에 사울도 예언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왜 사울 왕에게 돌아왔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고, 사울 왕은 다윗이 정녕 월삭에 식사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첫 날에 다윗이 안 왔을 때 ‘아, 무슨 부정한 일이 있어서 오지 않았나보다’라고 생각을 했고, 둘째 날에 또 오지 않을 때에 “왜 오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서 라마 나욧으로 갔는데 왜 다시 사울 왕이 있는 곳으로 왔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또 다윗이 와서 “왕이 나를 찾을 것이다, 월삭에 분명히 왕을 모시고 내가 식사를 해야 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연히 다윗이 사울 왕을 모시고 식사하는 것이 원리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사울도 같이 식사할 줄 알고 있고, 다윗도 “내가 왕을 모시고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왜 왔겠습니까? 죽이겠다고 하여 다윗이 도망쳐서 라마 나욧으로 갔는데, 그 다음에 다윗을 잡아오려고 사자를 세 번씩이나 보냈고, 또 사울 왕도 잡으러 왔는데 왜 사울 왕이 있는 곳으로 다시 왔느냐는 것입니다.
라마 나욧에서 사울이 예언을 하였는데 이 예언을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성령의 감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그때 사무엘이 거기에 있었으므로 아마도 “화목하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 말고, 화목하고 잘 지내라”고 권면을 했을 것 같습니다. 또 사울도 하나님의 말씀이 옳으며 자기의 잘못도 깨달아 어느 정도 회개한 것 같습니다. 사울이 예언을 하였을 때 회개하지 않았겠습니까? 자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했을 것 같습니다. 또 거기서 사무엘이나 다윗 앞에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서약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회개한다고 하고, 사무엘이 “가라, 화목하라”고 하니, 사울에게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로 와서 첫 날에 바로 요나단에게 말을 하지 않고 얼마동안 사울왕을 섬긴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월삭에 다윗이 마땅히 식사 자리에 앉을 줄 안 것을 보니 처음으로 왔다고 한다면 이렇게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다윗도 본문 5절에 “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라고 한 것을 볼 때에 사울 왕은 그가 분명히 올 것으로 안 것 같습니다. 즉, 얼마동안 다윗이 사울 왕을 섬긴 것 같습니다. 사울이 어느 정도 회개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얼마 동안 다윗이 사울을 섬겼지만 사울 왕의 행동이나 태도를 볼 때 또다시 마귀가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관대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라고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사울에게 다시 마귀가 들어가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에 요나단이 “사울 왕이 죽이지 않을 것이다, 너를 죽이려고 할 것 같으면 내가 네게 다 알게 하리라, 네 소원이 무엇이냐? 다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대답하기를 “내가 삼 일 동안 숨어있을 것인데 이제 곧 월삭이다, 월삭에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식사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터인데 내가 숨어서 가지 않을 테니 네 부친이 묻거든 베들레헴으로 형들이 청해서 형들을 만나러 갔다고 하라, 하나님께 제사하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형들이 오라고 청했으므로 베들레헴으로 갔다고 말하라, 그때에 왕이 좋다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작정을 한 것입니다.
2. 요나단과 다윗이 언약을 세움
본문 10-11절에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부친이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고하겠느냐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들로 가서 언약을 맺고 신호를 하였습니다.
본문 10-11절에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부친이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고하겠느냐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들로 가서 언약을 맺고 신호를 하였습니다.
본문 12-16절에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거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부친을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보내어 네게 알게 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만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하거늘 내가 이 일을 네게 알게 하여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요나단의 신앙이 나타나 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 왕의 아들이요, 사울 왕의 왕권,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또한 사울 왕은 요나단에게 왕위, 즉 나라를 물려주려고 작정한 것이 분명합니다. 사무엘상 20장30-31절에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네 나라는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 아닙니까? 사울 왕이 자기 나라라고 하지 않고, 요나단에게 네 나라라고 한 것을 보면 벌써 왕위를 요나단에게 물려주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요나단도 이것을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왕으로 세워야 할 줄 알았
습니다. 지금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왕으로 세우겠다고 합니다. 또 왕으로 세우면 자신이 왕이 되는 것입니다. 왕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왕위를 다윗이 계승해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알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습니다. 지금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왕으로 세우겠다고 합니다. 또 왕으로 세우면 자신이 왕이 되는 것입니다. 왕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 주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왕위를 다윗이 계승해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알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본문 13-14절에 “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죽지 않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죽지 않게 해달라고 하고, 요나단은 피난 다니는 다윗에게 자기를 죽이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릴 줄을 알았습니다.
본문 16-17절에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또 문제입니다. 다윗의 대적은
누구입니까? 요나단의 아버지가 아닙니까? 이것을 보면 요나단은 앞으로 다윗을 왕으로 세워서 이스라엘을 통치해야 할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된 다음에 자기를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없앨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을 보면 요나단이 앞날을 내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왕이 될 것을 안다면 왕의 아들 입장에서 그 자를 죽일 것입니다. 죽이면 왕위가 자기에게 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될 줄로 알았습니다. 또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하며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다 알았습니다.
누구입니까? 요나단의 아버지가 아닙니까? 이것을 보면 요나단은 앞으로 다윗을 왕으로 세워서 이스라엘을 통치해야 할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된 다음에 자기를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없앨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을 보면 요나단이 앞날을 내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왕이 될 것을 안다면 왕의 아들 입장에서 그 자를 죽일 것입니다. 죽이면 왕위가 자기에게 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될 줄로 알았습니다. 또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하며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다 알았습니다.
3.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며 자신의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간 요나단
요나단이 왜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지 않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습니까?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요새는 서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하는데, 자기에게 오는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그것도 보통 자리가 아니고 왕위인데 말입니다. 왕위가 자기에게 오게 되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윗의 아들들은 서로 왕이 되겠다고 싸우지 않았습니까? 다윗의 아들 중에 누가 왕이 되려고 했습니까? 압살롬이 아버지를 내쫒아 죽이고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또 아도니아가 다윗이 늙은 다음에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솔로몬이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다윗의 아들들도 자기들이 서로 왕이 되겠다고 싸웠습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이고 다윗은 유대 지파로 서로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형제끼리도 서로 왕이 되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요나단은 자기에게 돌아오는 왕위를 다윗에게 주려고 이렇게 애를 썼겠습니까?
이것이 요나단의 믿음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왕위를 돌리려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이 하시고 다윗을 쓰시는 것을사울도 다윗도 자기도 그리고 온 백성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증거도 확실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나라를 구원하는 일에는 다윗이 제일입니다. 자기보다 썩 낫고, 자기 아버지보다도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골리앗과 싸울 때에 나타났습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에 자기 아버지는 못 나갔습니다. 자기도 못 나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나가서 승리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것을 보니 이스라엘 나라를 구원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인도하는 일에는 다윗이 제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하는 일마다 지혜롭게 행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이 요나단보다 썩 나았습니다.
여러 면으로 나았습니다. 둘째, 제일 나은 사람, 이스라엘 구원에 제일 유력한 사람을 세워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이스라엘 나라가 더 잘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자기가 잘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잘 못되어도, 왕이 못되어도 이
스라엘 나라만 잘 되면 나는 만족하다는 신앙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잘 되게 해야겠다는 정신은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또 자기 지파 이기주의도 아닙니다. 베냐민 지파가 잘 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잘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은 자기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는 길이 됩니다. 이런 면에서 요나단은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려고 작정을 한 것이었습니다. 즉,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알았고, 다윗이 여러 사람들 중에 제일 나은 자이기 때문에 그가 왕이 되어야 이스라엘
의 구원이 잘 되어갈 것을 믿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자기 구원을 잘 이루어 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요나단은 다윗에게 왕위를 돌아가게 하려고 작정하여 모든 면에 힘을 썼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이런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일과 쓰시는 사람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잘 되게 하며 전체가 잘 되게 해야 합니다. 자기 이기주의로 나아가면 안 됩니다. 자기 지파 이기주의도 안 됩니다. 베냐민 지파라고 하면서 베냐민 지파 이기주의로 나아가면 안 됩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지방 관념, 즉 자기 지방 사람을 내세우려는 생각을 하는데 이런 생각은 악한 것입니다. 어느 지방 사람이든지 나라가 잘 되게 할 사람을 내세워야 합니다. 무조건 자기 지방 사람을 내세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가 잘 되고, 나라 전체가 잘 되는 방향에서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유능한 사람을 내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자기 지방 사람만 내세우면 안 됩니다. 우리 교역자들 중에는 지방 색채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혀 자기 지방 중심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일이 잘 되고, 교회가 잘 되고, 우리나라 전체가 잘 되게 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교단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착스럽게 지방 색채를 가지고 나가는 교역자가 더러 있습니다. 죽어도 자기 지방 사람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자는 사람 구실을 못합니다. 죽어도 자기지방 사람만 내세우고, 자기지방 사람에게만 투표하다 보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믿음도 아니고 애국자도 아니며 국가를 망치는 것 밖에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초월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내세우시는가를 생각하고, 누구를 세워야 교회가 잘 되겠는가 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어떤 사람을 세워야 우리나라 전체가 잘 되겠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조건 자기 지방 사람을 염두에 두고 그 사람에게 투표해야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악한 생각이며 애국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것들을 초월해야 합니다. 초월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눈이 어두워지고 지방이 우상이 됩니다. 모든 것을 바로 판단하지 못하게 됩니다.
초월해서 나아가야 바로 됩니다. 저는 이북 사람이라도 이북 사람 봐 줘야겠다는 생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북 사람이면 뭐합니까? 어디 사람이든지 잘할 사람, 자격이 있는 사람, 또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 이 나라를 바로 세워나갈 사람에게 투표해야지, 이북 사람, 이남 사람, 어느 도(道) 사람 할 것이 뭐 있습니까?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손바닥만 한국 땅에서 어디 사람, 어디 사람 하면서 자기지방 관념을 가지고 나가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초월해야 합니다.
요나단처럼 초월해서 자기에게 왕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다윗에게 왕위를 주겠다고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요나단이 위대하지 않습니까? 다윗보다 요나단이 더 위대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되고 자기의 구원도 바로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도 바로 됩니다. 명예, 영광심,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생각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만 잘 되면 된다, 나는 안 돼도 하나님의 일만 잘 되면 되지 않겠는가? 내가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해서 하나님의 일이 더 잘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좋
겠는가?’,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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