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5일 일요일

민수기 20:1-21 반석 생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반석 생수
민수기 20:1-21

1정월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서 백성이 가데스에 거하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 장사하니라 2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3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4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8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찌니라 9모세가 그 명대
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 10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14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의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 15우리 열조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우리가 애굽에 오래 거하였더니 애굽인이 우리 열조와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16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당신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에 있사오니 17청컨대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나 통과하게 하지 아니하고 우물 물도 공히 마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왕의 대로로만 통과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좌편으로나 우편으로
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 한다 하라 하였더니 18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통과하지 못하리라 내가 나가서 칼로 너를 맞을까 염려하라 19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우리가 대로로 통과하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줄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통과할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하나 20그는 가로되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21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의 그 경내로 통과함을 용납지 아나히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 

1. 미리암이 가데스에서 죽음

여선지자 미리암의 공로

본문 1절에 “정월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서 백성이 가데스에 거하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 장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신 광야에 이르러서 미리암이 거기서 죽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0-21절에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
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고 하며 미리암이 노래를 했습니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이인데 아주 훌륭한 여선지자였습니다. 노래하는 것만 봐도 참 잘하지 않습니까? 보통 여자 같으면 이렇게 노래할 수 없습니다. 또 이
스라엘이 애굽에서 모세가 자라날 때에 공로가 아주 많았습니다.
모세를 갈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버려야만 했을 때 미리암이 어떻게 했습니까? 강둑에서 지켜보다가 바로의 공주가 갈 상자에 있는 모세를 데리고 갈 때, 따라가서 모세의 어머니를 유모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이렇게 미리암이 모세를 나일 강에서 건져내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또 홍해 바다 건넜을 때에도 노래한 것은 선지자로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표로서 노래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미리암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많은 도움을 주고 많은 공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이 들려서 한 주간 동안 진 밖에 쫓겨나서 있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가까이에서 일하다 보면 모세의 결점을 보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모세를 존경하는 마음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쓰시는 면만 봐야 언제든지 모세를 존경하게 됩니다. 그러나 육신의 부족한 면을 보게 되면 보통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비방하다가 문둥병 들려서 죽을 뻔 하고, 칠 일 동안 밖에 나가서 갇혀 있다가 들어왔습니다. 

또 모세를 비방한 것을 보면 교만해 진 것입니다. 오랫동안 하나님 앞에서 쓰임을 받다보니 자기도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교만해져셔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이 들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다시 모세를 ‘주’라 부르고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모세를 받들어 주다가 가데스에 와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세보다 나이는 위니까 벌써 80세가 넘었을 것입니다. 이런 미리암이 이 세상을 떠나서 가데스에서 모든 백성이 장사를 지냈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함

본문 2-5절에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 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어서 원망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다가 많이 죽었습니다. 원망하다가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염병으로 치니까 많이 죽은 것입니다. 또 고라당도 죽었는데 일만 사천 칠백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도 물이 없어서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죽게 되었다고 원망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물이 없어서 원망을 하기 시작하다가 다른 것들도 없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사막이라서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민수기 11장 5절에서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라고 하였고, 또 출애굽기 16장 3절에는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하면서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물이 없다고 원망을 하면서 왜 우리를 이 물 없는 사막으로 인도해서 죽게 했느냐고 하였습니다. 

3. 반석에서 물이 나옴

본문 6절에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막 문에 엎드렸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밖에는 구할 데가 없었습니다. 엎드려서 기도하니까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본문 7-9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찌니라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
팡이를 취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0-11절에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고 하였는데 반석에서 물을 내긴 내었지만 명하여 내지 않았습니다. 이번이 반석에서 두 번째 물을 내는데 전에는 반석을 쳐서 물을 냈지만 이번에는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7장 6-7절에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때는 애굽에서 나온지 얼마 안 된 때의 일입니다. 애굽에서 나온지 한 달 조금 넘어서 신 광야의 르비딤에서 있던 일입니다. 호렙산에서 가까운 곳인데 백성이 물이 없어서 원망하니까 그때는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하셨는데, 물이 많이 나와서 백성들이 먹었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므리바라 또는 맛사라고 하였는데 므리바는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39년이 지난 후에 가데스에서 다시 또 반석에서 물을 냈는데 그곳도 므리바 또는 맛사라고 했습니다. 므리바는 다투었다는 뜻이고 맛사는 시험했다는 뜻입니다. 처음에 애굽에서 나와서 약 한 두 달 쯤 채 못 되었을 때 물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반석을 쳐
서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서 많은 사람이 마셨습니다. 그 후 시내산을 거쳐서 광야를 거쳐서 39년 후에 다시 또 물 없는 곳에 왔는데 이곳은 가데스라는 곳입니다. 거기서 다시 또 물이 없어서 원망을 했습니다. 처음에 물이 나온 곳은 르비딤이고 이번에는 가데스인데, 둘 다 므리바 곧 다툼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에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실 때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석을 명하여 물이 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먼저하고 다릅니다. 39년 후에 또 물을 내는 것입니다.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신 것은 오랫동안 연단을 받아서 예전보다 많이
자라나고 진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치는 것보다 명하는 것이 더 권위가 있지 않습니까? 약 40년간 연단을 받았으니까 이제는 명해서 물을 내도 될 만큼 실력이 많이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뭐라고 했습니까? 본문 10절에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해주신다고 했어야 하는데 우리가 반석에서 물을 내줄 것이다 라고 한 것이 잘못입니다.

반석을 두 번 친 이유

본문 11절에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고 하였는데 전에 르비딤에서는 몇 번 쳤습니까? 한 번 쳐서 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번 친 것입니다. 이번에는 명해서 물을 내라고 하셨기 때
문에 명령만 하면 될 것인데 왜 명하지 않고 두 번 쳤겠습니까? 말만으로는 반석에서 물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친 것입니다. ‘반석이 단단한데 말로만 해서 어떻게 물이 나오겠냐’하는 생각일 것입니다. 지팡이로 때려야 나올 것 같고, 한 번 때려서는 조금 나올 것 같고,
두 번 때려야 물이 나올 것 같아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해서 물을 내랴”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물을 내시는 것인데, 자기들이 물을 내는 것처럼 한 것이 잘못입니다. 또 패역한 너희여 한 것을 보면 백성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했어야 되겠는데 ‘패역한 족속들이다 독사 새끼와 같은 것들이다’라고 생각하니 일이 잘 안 됩니다. 긍휼이 없는 자는 긍휼 없는 심판을 받는다고 했는데 아무리 백성들이 패역해도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안 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함으로 죄 용서해달라고 기도한 것처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백성들이 하도 못되게 구니까 “패역한 너희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모세가 망령되이 말한 까닭

모세가 이렇게 된 것은 백성들의 책임이 있습니다. 시편 106편32-33절에 “저희가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음으로 저희로 인하여 얼이 모세에게 미쳤나니 이는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얼이 모세에게 미쳤나니”라고 한 것은 백성들이 하도 원망하고 못되게 하여 모세를 격동시키니까 모세도 그 영향을 받아서 그 얼이 모세에게 미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심령을 거역해서 모세는 우리가 너희를 위해서 물을 내랴 라고 망령되이 말한 것입
니다. 내가 물을 낼 수 없고 하나님께서 물을 내신다고 해야 되는데, ‘우리가 낸다’라고 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이 큰 바벨론은 내가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고 ‘나’ 소리 세 번 하다가 망했습니다. ‘내가 물을 내랴 우리가 물을 내랴 내가 해야 되겠다’라는 말이 망령된 말입니다. 또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4.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책망하심

격동되어 믿음을 잃어버린 모세

본문 12절 상반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라고 하였습니다. 나를 믿지 아니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했으면 물을 내어 주실 것인데, 명한 대로 하면 될 것을 안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말씀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실 때, 던지면 고기를 잡을 줄로 믿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명해서 물을 내게 하라 한 말씀을 믿고 명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두 번 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물을 내랴’고 한 것과 ‘두 번 친 것’이 믿지 아니하고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2절 하반절에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
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명하면 되는데 백성들로 인해서 그 심령이 격동이 되었기 때문에 명하지 않았습니다. 격동이 되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의 마음은 온유하지 격동된 것이 아닙니다. 격동되어서 무엇을 하는 것은 다 믿음이 아닙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격동 받지 말아야 합니다. 다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안정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순종하면 일을 하나님께서 다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내가 할 생각이 들어왔고, 말씀대로 하면 잘 안 될 것 같고, 자기가 해야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왔는데 이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언제나 내가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오면 벌써 느부갓네살왕처럼 망할 길로 들어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대로 받아
야지 ‘내가 해서 큰 것을 하겠다. 잘 하겠다. 물을 내겠다. 안 내겠다.’고 할 것이 아닙니다. 물이 나고 안 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도 자기가 다른 사람 앞에 잘했다는 소리 들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말하는 것처럼 천진난만하게 기도를 해야지, 말 잘하고 못하는 것은 관계가 없습니다. 말 잘하려고 써가지고 나와서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말을 잘하든지 못하
든지 그 시간에 성령께서 감동하시는 대로 해야지, 미리 써가지고 나와서 말 잘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예수 인도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님이 인도하신다고 하였는데 ‘내가 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책망한 것입니다. 

그리고 왜 두 번을 쳤습니까? 전에 행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두 번 친 것 같습니다. 처음 같으면 두 번 안 쳤을지 모르는데 전에 39년 전에 한 번 쳐서 물 나온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번에는
명해서 물을 내라고 하셨지 전에 하던 대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 하던 대로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전에 하던 대로 해서 무엇이 좀 되었다고 해도, 그대로 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말씀대로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순종이 살 길이다

또 내가 하겠다는 것은 백 번 다 실패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겠다는 생각을 그만 두고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무조건 순종만 할 생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물이 나왔는데 요단강에서 상당히 멉니다. 요단 강은 염해 바다인 사해 바다 남쪽에서 내려가서 왼쪽으로 가야 되기 때문에 가려면 상당히 먼 길입니다. 정탐꾼 보낸 것은 어디서 보냈습니까? 정탐꾼도 가데스 바네아에서 보냈습니다. 아주 먼 길을 정탐꾼을 보내서 정탐해 오라고 한 것 같습니다. 홍해 바다를 쑥 내려가서 시내 산이 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까지 왔으나 하나님께서 못 들어가게 하셔서 돌게 된 것입니다. 고양이 쳇바퀴 돌듯 돌았습니다. 광야에서 40년간 돌았으니까 얼마나 돌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명대로 하면 다 되고, 내가 하겠다는 것은 완전실패인 줄 알아야 됩니다.인간의 생각, 혈기, 오기, 내가 해야 되겠다. 인간의 결심 등은 다 실패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대로 다 순종하는 것만 사는 길입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해야 됩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게 하는 것인데 우리가 물을 낸다고 한 것은 ‘내’가 나타난 것 입니다. 이것이 믿지 아니한 증거이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증거입니다. 내가 했다고 했으니까 하나님이 나타나지 못한 것이고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것입니다. 본문13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고 하였습니다. 

5. 이스라엘의 요청을 에돔 왕이 거절함

본문 14-21절에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의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 우리 열조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우리가 애굽에 오래 거하였더니 애굽인이 우리 열조와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당신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에 있사오니 청컨대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나 통과하게 하지 아니하고 우물 물도 공히 마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왕의 대로로만 통과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좌편으로나 우편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 한다 하라 하였더니 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통과하지 못하리라
내가 나가서 칼로 너를 맞을까 염려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우리가 대로로 통과하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줄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통과할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하나 그는 가로되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의 그 경내로 통과함을 용납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고 하였습니다. 지나가자고 하는데 못 지나가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 길에 에돔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를 지나가야 가깝기 때문에 에돔 나라 왕에게 좀 지나가자고 했습니다. 너희는 우리 형제라.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에돔은 에서 족속인데 에서는 야곱과 형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곱의 자
손이고 에돔 족속은 에서의 자손으로 형제간입니다. 그런데 형제간이면서 그 나라 땅으로 좀 지나서 가기를 구했는데 못 지나가게 했습니다. 지나 갈 때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밭이나 포도원이나 손해를 하나도 안 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물을 먹게 되면 값을
내고 대로로만 가겠다고 하는데, 못 가게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았다고 했습니다. 잘 된 것입니까? 형제간인데 야곱의 자손이 애굽에 가서 400년간 종살이하다가 지금 나오는 것입니다.
많은 백성, 유아들, 짐승들 거느려서 피곤하니 그 나라 좀 지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로 못 지나가면 돌아서 가야 되는데 그 나라를 돌아서 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사막에 길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손해 하나도 안 주고 지나간다고 부탹했는데 못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게 했으면 큰 복을 받을 것인데, 그만 지나가지 못하게 해서 복을 못 받았습니다. 

또 이때 못 지나가게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싸웠다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싸웠다면 이스라엘이 이길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이 이깁니까?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에 많이 번성을 했습니다. 제일 좋은 옥토에서 잘 먹고 고기 가마 옆에서 늘 배부르게 먹고 또 채소도 많이 먹고 수박, 오이, 마늘, 파, 포도, 석류 등 가장 좋은 과일을 먹고 떡을 배불리 먹으면서 많이 번성을 한 것입니다. 또 잘 먹고 노동하고 잘 먹고 운동을 해서 애굽 사람보다 많이 번식을 했습니다. 이만큼 번식된 나라가 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애굽에 갈 때는 70인이 갔는데 400년 후에 장정만 63만 3500명이 되었으니 나올 때는 8,400배가 된 것입니다. 모세로부터 다윗까지 500년인데 그 후에 얼마나 번성했습니까? 다윗이 인구 조사할 때 130만이라고 하였으니까 배밖에 증가하지 못했습니다. 또 다윗부터 예수님까지 500년간인데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130만이 되었는지 얼마 더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많이 번식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에서 400년 동안 번식한 것은 8,400배나 번식했기 때문에 유래가 없는 번식입니다. 

그 이유로 첫째는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리라고 하신 축복 때문입니다. 둘째는 제일 좋은 옥토에 데려다 놓고 매일 고기를 배부르게 먹고 제일 좋은 것들, 오이, 부추, 파, 마늘, 생선, 외 등을 먹고 또 나일 강의 물을 마시면서 좋은 데서 자면서 먹고 또 노동했기 때문에
이만큼 번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제일 많이 번성한 백성이 유대 백성입니다. 에돔 나라에도 그만한 것이 있었습니까? 고기가 넘쳐서 배부르게 먹고 또 과일, 채소, 부추, 오이, 호박 같은 것이 그렇게 많이 있었겠습니까? 먹을 것이 많지 않은 나라는 번식을 못 합니
다. 먹을 것이 많고 환경이 좋아야 번식을 하지 환경이 좋지 못하면 번식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에돔은 애굽만큼 좋은 땅이 아니기 때문에, 에돔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만큼 번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애굽이 당시에 세계에서 제일 강대국이라 애굽에서 모든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애굽의 모든 학술, 기술, 전술, 기계 등이 세계 제일인데 거기서 자라난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전쟁하면서 나가서 전쟁의 경험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강대국들과 똑같
습니다. 애굽에서 배운 학술, 전술이 있고 또 발달한 애굽의 문명, 무기, 싸우는 법, 모든 기구, 기계들을 가지고 나오며 40년 동안 훈련 받았는데 그들을 누가 당하겠습니까? 숫자도 많고, 전법이 고상하고, 학식이 많고, 능수능란한 군대들입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 갈 때 계속 치고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가나안 군대들이 못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에서 족속을 치고 들어가도 꼼짝 못하고 얼마 안 가면 그 나라를 정복을 하고 통과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대도 에서 족속이 못 지나가게 하니까 모세가 양보하고 돌아가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6. 에돔 나라를 그냥 돌아서 간 이스라엘

신명기 23장 7절에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너의 형제니라”고 하였는데 에돔 사람은 에서 족속입니다. 야곱의 형으로 형제니까 싸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싸우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모세가 안 싸운 것입니다. 싸우면 이길 것이 분명했습니다. 숫자적으
로도 상당히 많고 애굽에서 훈련시켰기 때문에 당할 수가 없습니다.
사막에 사는 족속은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목축이나 하고 있어서 지식도 학술도 십분지 일도 못 따라옵니다. 또 전술이 있습니까? 좋은 기계가 있습니까? 싸우면 얼마 안 가면 다 물리치고 그 땅을 통과할 수가 있는데 왜 안 싸우고 돌아서 갔습니까? 성경에 형제와 싸우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돌아간 것입니다. 돌아가면 얼마나 고생을 할지, 또 많은 사람이 죽을 지도 모릅니다. 또 가다가 사막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고, 물 없는 곳을 만날 지도 모르지만 성경에 형제간에 싸우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양보하고 돌아가자고 한 것입니다.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100% 다 이깁니다. 사막에서 양이나 치던 에돔 사람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세계 일류 가는 모든 학술을 다 배운 사람들입니다. 능수능란한 사람들이고, 또 모든 기계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이고,
또 숫자는 8,400배가 증가해서 나왔습니다. 어떻게 사막에서 8,400배가증가했겠습니까? 잘 먹고 모든 것이 풍성하고 운동하고 건강해야만 번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우면 이길 수 있지만 그래도 성경에 싸우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형제간 양보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려면 고생이 많고 많은 희생이 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라고 돌아간 것입니다. 

7. 에돔 족속이 이스라엘을 지나가지 못하게 한 이유

믿음이 없어서 못 지나가게 함

에서 족속이 왜 이스라엘 백성이 못 들어오게 했습니까? 첫째는 믿음이 없어서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형제지간이므로 믿음이 있었으면 영접했어야 하는데 에서족속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에서도 하나님을 공경했습니다. 그래서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고도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것을 보면 믿는 사람들입니다. 

장자의 명분은 내세의 복이고 신령한 복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파는 물질주의, 현실주의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에서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자손들도 그 믿음을 본받아서 육신중심, 물질 중심, 현실주의 신앙으로 물려 내려온 것입니다. 하나님 공
경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신앙은 물질보다도 내세의 것,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 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같이 섬기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하고 에서 족속의 신앙하고는 아주 다릅니다.
에서는 땅에 속한 신앙, 물질주의, 육신주의, 현실주의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야곱의 말씀주의, 신령한 것, 장자의 축복,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받는 신앙인데, 그것이 또 자손들에게 물려 내려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은 야곱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또 에서 족속의
신앙은 에서의 신앙입니다. 신앙이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셨다고 해도 믿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인도해 내셨다고 해도 믿음이 없으니 그것이 다 귀에 안 들어옵니다. 

불신해서 지나가지 못하게 함

또 한 가지는 의심 때문에 못 지나가게 했습니다. 신임이 안 갑니다. 아무리 아무도 안 다치게 하고 곧장 길로만 간다고 해도 또 행여나 가다가 또 어떻게 할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고 의심과 피해 망상증으로 못 지나가게 한 것입니다. 그래도 믿을 것은
믿어야 됩니다. 무조건 의심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을 것은 믿고 믿지 않을 것은 안 믿어야지 무조건 의심만 하고 나가는 사람은 못 삽니다. 

까치가 둥지를 동네 가운데에다 틉니다. 까치는 산 깊은 곳에 둥지를 틀지 않습니다. 동네 집 옆에, 대로 가에, 여기로 말하면 연세대학교 앞에 나무들, 봉원동 가까운 나무, 우리 기도원 가는 데 길가에, 나무들에도 까치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깊은 산에 들어가면 까치 둥지가
없습니다. 왜 거기다 틀었겠습니까? 까치가 왜 동네 가운데다 둥지를 틉니까? 동네 가운데 둥지를 틀면 다른 짐승들이 해하지 않습니다. 가령 깊은 산골에 둥지를 틀면 뱀이 올라와서 알이나 새끼를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짐승도 와서 잡아먹을 수 있는데 동네 가운
데 틀어놓으면 거기는 안 옵니다. 연대 앞에 독사가 오겠습니까, 여우가 오겠습니까, 곰이 오겠습니까? 든든한 곳, 사람은 자기를 해하지 않을 것을 믿고, 해할 짐승들이 안 올 데에다 트느라고 거기에다 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맞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까치도 사람 믿고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신임하고 동네 가운데다 둥지를 틉니다. 그렇기에 믿을 만한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까치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믿지 못하고 도둑질 해가지 않겠나, 빼앗아 가지 않겠나, 무엇을 어떻게 하지 않겠나, 의심하는 사람은 까치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의심하면 손해가 납니다. 

믿을 것은 믿어야지 믿지 못 하면 하나님의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가 왔을 때 도둑놈이 오지 않았나, 우리 집에 왔다가 밤에 우리 식구를 해하지 않겠나를 의심했다면 엘리야를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믿고 보니까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믿고 다락에 모시고 3년 6개월 동안 공궤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애돔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절대 해하지 않을 것이 확실한데도 그것을 못 믿고 의심을 해서 백성을 보내서 싸우자고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하면 받게 될 복

그러면 만일 지나가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큰 복을 받을 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지나가게 했더라면 호박이 하늘에서 넝쿨째 떨어질 뻔했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기회를 그만 놓치고 큰 복을 못 받았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가려면 상당히 시일이
많이 걸려야 됩니다. 60만이 지나가려면 몇 달이 걸릴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에돔 족속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에서족속의 신앙과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자기네 신앙은 현실주의 신앙이고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은 신령한 신앙이니까 야곱으로부터 내려오는 그 신령한 신앙을 에서 족속이 받을 뻔했습니다. 그것 하나만 받아도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 신앙을 배울 뻔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이 지나가면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이북에서 소련 사람들이 지나갈 때 이북 사람들이 소련인에게 배운 것이 많습니다. 나쁜 것도 배웠고 좋은 것도 배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갔으면 좋은 신앙, 아브라함의 정통적인 신앙을 본받을 뻔했는데 그만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또 어떤 복을 받을 것을 못 받았습니까? 시내 산에서 받은 율법을 가지고 오는데 지나가면 그 사람들에게 십계명을 알려주고, 모세의 율법 613가지를 얘기도 해 주었을 것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도와주지 않다가 제일 좋은
기회를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생으로 청해서라도 배워야 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복을 못 받았습니까? 지나가게 했더라면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봤을 것인데 그것을 못보게 된 것입니다. 굉장히 큰 것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을 영접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
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영접해서 그렇게 큰 복을 받았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또 애굽의 학술과 애굽의 모든 기술을 능수능란한 사람들한테 배웠을 것입니다. 이들은 광야에서 양이나
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애굽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 기회 다 잃어버린 것이고 또 애굽의 전술을 배울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지나가게 했더라면 그 나라가 아주 강해질 뻔했습니다. 그래서 견고한 나라가 되어서 망하지 않을 뻔했습니다. 아무리 원수가 와도 다 물리치고 넉넉히 이길 뻔했는데 그만 이
좋은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에서 족속이 4세기경에 망했습니다.
모세가 주전 15세기에 지나갔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쏟아 내려주는 좋은 복을 받을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한 1000년 후에 점점 나라가 쇠퇴해서 나바티아인의 침략을 당해서 이 에돔 나라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시는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됩니다. 가서 모셔 오려고 해도 힘이 드는데, 찾아왔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런데 그것을 그만 믿음이 없고, 또 의심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가게 해달라고 할 때 거절하여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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