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5일 일요일

민수기 21:4-18 불뱀을 보내시고 물을 주시는 하나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불뱀을 보내시고 물을 주시는 하나님
민수기 21:4-18

4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6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10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오봇에 진쳤고 11오봇에서 진행하여 모압 앞 해 돋는 편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쳤고 12거기서 진행하여 세렛 골짜기에 진쳤고 13거기서 진행하여 아모리인의 지경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건너편에 진쳤으니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것이라 14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15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고을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 하였더라 16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17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가로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18이 우물은 족장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홀과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1. 불뱀의 재앙과 놋뱀의 구원

이스라엘이 원망하여 불뱀에게 죽게 하심

이스라엘이 광야 길에서 식물과 물이 없어 원망하였습니다. 그러자 불뱀들이 나와서 백성을 물어서 많이 죽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징계로 보내신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했으므로 그 불뱀들을 내보내서 많이 물어죽게 했습니다. 

본문 4-5절에 “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라고 하였는데, 에돔 땅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에돔 땅을 둘러서 행하려 했습니다. 에돔 땅으로 곧장 갔으면 길도 좋고 가까울 것이었지만 에돔 왕이 못 가게 막았습니다. 또 에돔과 싸우면 이길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형제간에 싸우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에돔 땅을 돌아서 가게 되었습니다. 돌아서 가는데 백성들의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길이 상당히 험했고, 또 가기에 아주 힘들었던 모양이라 마음이 상했다는 것입니다. 또 물도 없었습니다. 이에 마음이 상해서그 다음에는 백성들이 원망을 했습니다.

본문 5절에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만나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광야에
서 박한 식물 외에 좋은 풀과 기름진 식물이 없습니다. 채소도 없고 먹을 것이 많지 않아서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6절에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불뱀에 한 번 물
리면 죽는 것입니다. 독사인 모양입니다. 불뱀에 물리면 죽는데, 많은 사람이 물려서 죽었습니다.

본문 7절에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불뱀들이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불뱀을
내보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데 백성이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모세 마음대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인도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원망하였으므로 그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거역하는 일이고 방해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서 백성을 많이 물게 하셨습니다. 불뱀이 사방에 왔다갔다 다니면서 무는데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회개했습니다. 뭐라고 회개했습니까?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한 그 죄를 회개했습니다. 원망할 때는 죄인 줄 모르고 했습니다.
원망해도 괜찮은 줄 알고 한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불뱀이 나와 물어서 다 죽어 넘어가니까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고 모세에게 간구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장대에 달린 뱀을 바라보면 살게 하심

본문 8-9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니까 여호와께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달았습니다. 뱀에게 물린 자마다 나가서 놋뱀을 쳐다보면 다 산다는 것입니다. 살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불뱀에게 다 물립니다. 불뱀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모릅니다. 사방마다 돌아다니며 왔다 갔다 하니까 이것이 어디로 들어올지 모릅니다. 불뱀이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많은 불뱀이 나와서 마당, 들, 방에까지 들어와서 물려고 왔다 갔다 하니까 언제 물릴지 모릅니다. 까딱하다가는 물리고, 물리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사는 길을 주셨는데, 어떻게 하면 산다고 했습니까? “놋으로 불뱀 모양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다 달라”고 하셨습니다. 장대는 막대기입니다. 높은 막대기 위에다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뱀에 물린 사람이 그것을 쳐다만 보면 전부다 살 수가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죄를 범하면 마귀에게 물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면 구원 얻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15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광야에서 뱀을 들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상징적으로 예표해서 가르쳐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뱀을 든 것과 같이 장차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려 죽으신다는 것입니다.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속해주실 것을 예표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것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앙망하면 다 산다는 것입니다. 뱀은 마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죄를 범하면 마귀에게 물립니다. 원망하는 것 자체가 벌써 믿음에서 떠났으니까 마귀에게 물린 꼴을 당한 것이 아닙니까? 마귀에게 물리면 그 다음에는 죽습니다. 심령의 역사가 다 죽습니다. 믿음이 다 죽습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그 영적 생명이 다 죽고 맙니다. 생명의 역사가 다 죽습니다.
그러니까 죄를 범하면 마귀에게 물린다는 것이고 그래서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떠나서 말씀대로 바로 나가야 됩니다. 바로 나가야 되겠는데 그렇지 않고 죄를 지으면 마귀에게 물려서 다 죽고 맙니다. 그런데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살 길을 또 열어주셨습니다. 살 길이 무엇입니까? 놋뱀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쳐다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고 앙망하는 생활을 하면 마귀에게 상처받은 것이 다 나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30-31절에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45장 22절에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라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절에는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3장 1절에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일이 중요한 일입니다. 뱀을 보지 말고, 또 땅의 것을 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사모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계속 바라보는 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마귀에게 상처받았던 것을 다 낫게 해주십니다. 가만히 놔두면 죽을 것인데 그 죽을 것을 낫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생겨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됩니다. 주님을 바
라봐야 합니다. 주님만 바라보면 더욱더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고, 또 권고해주시고, 새 힘을 주시고, 상처를 싸매주시고, 강건케 해주시고, 강하게 해주십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이길 수 있음

계속 바라봐야 합니다. 계속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예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기도를 많이 하는 생활은 주님을 많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몇 번씩 기도했다고 했습니까?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고넬료가 기도한 시간은 오후 세시인데,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됐다.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해서 구원의 말씀을 들어라”고 하셨습니다(행 10:1-5). 그래서그가 베드로를 청해서 구원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까?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앙망하는 생활, 바라보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새벽기도를 안하는 사람은 바라보는 시간이 그만큼 없는 것입니다. 집에서 하는 것보다 교회에 나와서 하는 기도가 더 잘 됩니다. 또 교회에 나와서 하는 것보다 기도원에 가서 하는 것이 더 잘되고, 기도원에서도 산에 올라가서 하면 더 잘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에 가셔서 기도하시지 않았습니까?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시고, 산에도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제일 높은 어느 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까? 헤르몬 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앙망하고 사모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앙망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고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9절에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 마귀를 내보낼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지 않고, 독사와 불뱀과 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막대기를 하나 가지고 있다가 들어오는 뱀마다 그 머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뱀을 이길 수 있습니까? 한 놈 죽이면 두 놈이 오고, 두 놈 죽이면 네 놈이 오고, 열 놈 죽이면 스무 놈 오고, 스무 놈 죽이면 사십 놈이 오고, 백 놈 죽이면 이백 놈이 옵니다. 그런데 막대기 가지고 되겠습니까? 전부 다 불뱀인데 언제 다 죽이겠습니까? 죽이면 또 더 많이 오는 것입니다. 불뱀하고 싸워서는 못 이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것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며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땅의 것을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주여, 바라봅니다”하고 계속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뱀이 점점 없어집니다. 물렸던 것도 다 낫습니다. 기도 한 번 하면 절반이 없어지고, 또 한 번 더하면 절반이더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 기도하면 그 전부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까 막대기로 때려죽이려 할 때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 죽이면 둘 나오고, 둘 죽이면 열 나오고 계속 나옵니다. 못 견딥니다. 마귀 시험은 예수님을 바라봐야 이기지 자기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벽기도를 해야 합니다. 새벽기도를 하다가 안하는 사람들이 좀 생겼는데, 불뱀한테 물려봐야 됩니다. 벌써 발가락을 물렸을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기도 안하는 사람은 벌써 불뱀한테 물린 것입니다. 마귀한테 물려서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손가락이 아프
다’, ‘발가락이 아프다’하며 돌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또 기도하는 것을 다 들어주십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은 주시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것으로 주십니다. 기도하면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양잿물을 달라고 자꾸 졸라대도 양잿물은 안 줍니다. 그러나 사탕은 하나 사줍니다. ‘이거나 먹어라. 양잿물은 못쓴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면 반드시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불뱀을 이기라는 말씀입니다.

이전에 보니 미국 사람들의 병원과 군대 위생병들 옷에 무슨 마크가 달려 있는데, 막대기를 하나 세워서 뱀이 꾸불꾸불하게 감고 있는 마크였습니다. 그것을 옷에 붙이고, 또 양쪽 옷깃에도 그것을 붙였는데, 이 성경말씀을 가지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위생병이나 의사가 사람을 고쳐주지 않습니까? 누가 생각한 것인지 잘 한 것 같습니다. ‘놋뱀을 보면 낫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불뱀이 많은 줄 알아야 합니다. 불뱀이 많습니다. 마당에, 길에, 논에, 밭에, 들에, 산에도 불뱀이 있습니다. 집 안에는 불뱀이 없을까요? 집 안에도 한 놈 있는 집도 있고, 두 놈 있는 집도있습니다. 집 안에도 있습니다. 없는 집도 있습니다. 이제 이기는 것은 어떻게 해야 이긴다고 했습니까? 싸워서 이긴다고 했습니까? 쳐다봐야 이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쳐다보라는 것입니다. 장대에 단 그 놋뱀을 쳐다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에서 가르치신 말씀에 있기 때문에 확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낫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정에서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면 그 뱀이 못 들어옵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살면 안 되고, 돈을 바라보고 살아도 안 되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뱀이 못 들어옵니다. 어느 때에 뱀이 들어왔습니까? 원망할 때 들어왔습니다. 죄 지을 때 들어오는 것입니다. 죄 지을 때에 불뱀이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반대하고 방해하였습니다. 그래서 불뱀이 나왔던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놋뱀을 만들어서 막대기에 달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놋뱀을 쳐다보면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셨습니다.

2. 오봇에서 비스가 산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케 됨

하나님께서 은혜로 진행하게 하심

본문 10-13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오봇에 진쳤고 오봇에서 진행하여 모압 앞 해 돋는 편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쳤고 거기서 진행하여 세렛 골짜기에 진쳤고 거기서 진행하여 아모리인의 지경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건너편에 진쳤으니 아르논은 모
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진행합니다. 진행해서 오봇에 진을 쳤다가, 또 모압 앞에 해 돋는 편 이예아바림에 진을 쳤다가, 거기서 또 나가서 세렛 골짜기에 진을 쳤고, 거기서 진행하여 아모리인의 지경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건너편에 진을 쳤습니다.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4-15절에 “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 할 때에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셔서 여러 곳을 무사히
통과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심

본문 16-18절에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가로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이 우물은 족장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홀과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라고 하였습니다. 물이 없어서 원망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샘을 주셨습니다. 우물물이 생겼습니다. 우물물이 솟아나왔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반석에서 물이 나왔는데, 지금은 땅에서 나온 것입니다. 물이 없어서 다 죽겠다고 원망했는데, 하나님께서 우물을 주셨습니다. 땅에서 물이 나오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물을 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가로되 우물물아 솟아나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이 “우물물아 솟아나라”고 하니까 솟아났습니다. 처음에는 물이 조금 솟아난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족장들이 땅을 팠습니다. 조금 솟아났는데 파니까 많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홀과 지팡이로 파니까 점점 더 많이 나와서 이스라엘 육십만 명과 모든 짐승이 다 먹고도 남을 수 있는 많은 물이 땅에서 솟아나왔습니다. 굉장히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물을 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땅에서 물이 나게 하실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전에는 어디에서 물이 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르비딤과 가데스에서 물을 주셨습니다(출 17:6-7; 민 20:6-11). 그리고 그 장소들을 므리바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는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해서 물을 줬지만, 이번에는 땅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처음에 나와라 할 때에는 조금 솟아나오고 그 다음에 지팡이와 막대기로 파니까 점점 더 샘이 커져서 많은 물이 나와 많은 사람이 다 먹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나왔겠습니까? 땅에서 샘 나오는 것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봤습니까? 미국에 옐로우 스톤 파크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땅에서 물이 나옵니다. 물이 안 나오다가 갑자기 솟아올라서 10m 이상 쫙 올라갑니다. 그 때 물줄기의 굵기는 드럼통만큼 굵은 것 같은데, 이것이 10m 이상 계속 올라갑니다. 그런 물이 한 10분정도 나옵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는 뚝 그칩니다. 뚝 그치면 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올라간다고 합니다. 두 시간 동안 멎었다가 갑자기 물이 또 확 올라가는데 드럼통만큼 굵은 물줄기가 천장보다 더 높이 올라갑니다. 올라가서 사방으로 퍼져서 내립니다. 아마 이것도 그런 샘물일 것 같습니다. 물이 안 나오다가 갑자기 한참을 나오고 또 멎었다가는 갑자기 나오고 하는 샘이 있는데, 그것을 간헐천이라고 합니다. 간헐이라는 것은 그쳤다가 나오고 또 그쳤다가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베데스다 못은 못 속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못 속에서 갑자기 솟아오르다 그치곤 한다고 하였는데, 옐로우 스톤 파크의 물은 못이 아닙니다. 그냥 육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육지인데 물이 나오면 다 흘러내려가고 물이 고이지 않습니다. 땅에서 두 시간씩 올라오는
것입니다. 이 물이 이전에는 시간을 꼭꼭 지켰다고 합니다. 2시간 있으면 틀림없이 물이 나오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그것도 시간을 안 지킨다는 것입니다. 2시간 조금 더 있다 나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고 물어보니까 옆에 사람들이 온천을 개발해 지하수를 끌어서 온천물을 퍼 올린다는 것입니다. 물을 퍼 올리니까 물줄기가 그곳으로 나가서 제 시간을 못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보통 한 2시간 정도 있으면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그렇게 올라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물이 없던 곳인데 어떻게 하니까 올라갔습니까? “우물물아 솟아나라”하니까 올라갔습니다. 그 다음에 조금 있으니까 충분히 솟아나오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럴 때 “홀과 지팡이로 파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물이 많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다 먹고 또 짐승도 다 먹고도 물이 남았습니다.

원망과 걱정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함

이스라엘이 원망 안 해도 될 뻔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물이 없다고 원망하지 않았습니까? 본문 5절에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물도 없고 식물은 만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했습니다.
그러다가 불뱀이 나와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장대에 매단 놋뱀을 보고 살았는데, 원망을 안했다면 불뱀이 안 나왔을 뻔 했습니다. 원망했기 때문에 불뱀이 나온 것입니다. 믿음을 안 쓰니까 뱀이 나왔습니다. 먹을 물이 없어도 하나님께 무슨 계획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물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다 죽이려고 해놓으셨겠습니까? 물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서든 물을 주셔서 먹게 하실 줄을 믿으며 원망 안하고 나갔으면, 그 다음에 “우물물아 솟아나라” 할 때에 말만 하면 될 뻔 했습니다. 또 원망 하지 않고 지팡이로 파라고 할 때 파기만 하면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원망을 안 해도 하나님께서 물을 주십니다. 만나도 주시고 살 길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데, 믿지 않고 ‘물이 없어 죽게 됐다’, ‘뭐가 없어 죽게 됐다’, 또 ‘채소를 못 먹어서 죽게 됐다’고 원망하였으니, 그만큼 불뱀에게 물려서 손해만 봤습니다. 그러므로 원망, 불평, 훼방, 후회하지 말아야 됩니다.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못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것이 원망입니다. 왜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다 주실 것을 믿어야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또 물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주실 줄 믿고 믿음으로
나가면 됩니다. 물이 없다고 원망하면 안 됩니다. 믿고 나갔다면 불뱀은 안 나왔을 것이고, 물은 또 물대로 나왔을 것입니다. 얼마나 좋을 뻔 했습니까? 그러니까 원망하는 사람만 손해입니다.

뱀에게 물린 사람은 어떻게 하면 낫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면 낫습니다. 바라보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주여, 바라봅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 바라봅니다’ 하며 기도하는 생활, 곧 바라보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생활을 하면 예수님께서 그 사람과 같이 계시고 또 불뱀을 다 물리쳐주시고 불뱀에 물린 것도 낫게 해주십니다. 바라보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샘물도 나게 해주시고 모든 앞길을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무엇 때문에 걱정이다, 무엇 때문에 큰일 났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물이 없어 걱정이다’, ‘먹을 것이 없어 걱정이다’, ‘불뱀 때문에 걱정이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걱정입니까? 바라보지 않아서 걱정인 것입니다. 또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다’, ‘무엇 때문에 걱정이다’, ‘무엇 때문에 큰일이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라보지 않아서 그렇게 된 줄 알면 됩니다. 바라만 보면 됩니다. ‘불뱀 때문에 큰일났다’, ‘지금 퉁퉁 붓는다’, ‘지금 또 한 마리가 온다’ 하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라보지 않고 원망하기 때문에 다 물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은 물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물리쳐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뱀이 맥을 못 춥니다. 자꾸 바라보는 사람이 뱀에게서 물리면 어떻게 됩니까? 바라보는사람을 불뱀이 물면, 오히려 뱀이 뒤로 나가 쓰러질 것입니다.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불뱀이 물면, 그 사람은 퉁퉁 붓고 다 죽습니다. 그러나 물려서 죽게 되었어도 바라만 보면 삽니다. 바라보는 사람은 또 다른 데 가서 물린다고 해도 해로움을 받지 않습니다. 

바라보는 사람은 독한 것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6장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해를 못 줍니다. 뱀이 꼼짝 못 합니다. 독을 마셔도 해를 못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보는 생활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망하던 것을 회개하고, 불평 불만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 물이 없다 뭐가 없다 하지 말고 바라만 보라는 것입니다. 순종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뱀한테 물렸어도, 점점 죽어가도 바라만 보면 다 낫습니
다. 다 낫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라보는 사람은 뱀이 와도 괜찮습니다. 해를 못 줍니다. 바라보기만 하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와서 머물고,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게 해주시고, 항상 전진하고 향상되도록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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