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한 일을 행치 말고원수를 사랑하라
출애굽기 23:1-13
1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3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찌니라 4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찌며 5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 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찌니라 6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7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9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 10너는 육 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제 칠 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찌니라 12너는 육 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 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13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출애굽기 23:1-13
1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3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찌니라 4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찌며 5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 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찌니라 6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7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9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 10너는 육 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제 칠 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찌니라 12너는 육 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 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13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1. 부정한 일을 행하지 말 것
본문 1절에,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라고 하였습니다. 허망한 풍설 즉 허망한 말이 많이 돌아가는데, 허망한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됩니다. 확실하지도 않고 사실이라는 증거도 없는 말을 듣고, 그것을 전하면 이 세상이 다 허망한 세상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근거도 없는 말, 확실치 않은 것, 사실인지 알아보지도 않는 허망한 말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듣고 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악인과 연합하여 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고 악한 사람과 연합해서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모함하는데 참여하지 말고 그것에 대한 증인이 되지 않아야겠습니다.
본문 2절에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하면 무조건 옳은 줄 알고 따라갑니
다. 또 많은 사람이 안 되었다고 하면 또 안 된 줄 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다수가 옳다고 해도, 그것이 ‘성경에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양심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공의를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를 따라 정당한 증거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거를 잘못하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재판할 때 거짓 증거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습니다. 거짓 증거를 하면 유익이 돌아오고, 거짓 증거를 안 하면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거짓 증거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거짓 증거해서 아무리 유익이 많아도 하나님께 심판 받으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거짓증거하면 안 됩니다.
본문 3절에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두호하는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의 송사라도 정당하게 해야 됩니다. 공의롭게 정당한 판단을 해야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려고 두호하고 편벽되이 하면 공의가 굽어집니다. 공의가 굽어지면 그 세상이 어지러운 세상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두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이라고 멸시해서도 안 됩니다.
무노동 무임금은 세계적이고 공통적인 합법화 된 법입니다. 노동하지 아니하면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입니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너무 데모를 자꾸 하니까, 노동하지 않고 데모해도 임금을 줘야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하지 않았는데 임금을
주면 그 사람은 망하는 것 아닙니까? 그 공장이 망할 것 아닙니까?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노동하지 않고, 데모만 하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줘야 된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두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권력 있는 자의 송사라고 두호해도 안 됩니다. 아무 권력 없는 사람의 송사라고 해도 두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공의롭고 공평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고,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두호하거나 권력 있는 사람을 두호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대가를 받습니다. 그 보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라고 하였습니다. 허망한 풍설 즉 허망한 말이 많이 돌아가는데, 허망한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됩니다. 확실하지도 않고 사실이라는 증거도 없는 말을 듣고, 그것을 전하면 이 세상이 다 허망한 세상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근거도 없는 말, 확실치 않은 것, 사실인지 알아보지도 않는 허망한 말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듣고 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악인과 연합하여 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고 악한 사람과 연합해서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모함하는데 참여하지 말고 그것에 대한 증인이 되지 않아야겠습니다.
본문 2절에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하면 무조건 옳은 줄 알고 따라갑니
다. 또 많은 사람이 안 되었다고 하면 또 안 된 줄 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다수가 옳다고 해도, 그것이 ‘성경에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양심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공의를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를 따라 정당한 증거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거를 잘못하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재판할 때 거짓 증거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습니다. 거짓 증거를 하면 유익이 돌아오고, 거짓 증거를 안 하면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거짓 증거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거짓 증거해서 아무리 유익이 많아도 하나님께 심판 받으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거짓증거하면 안 됩니다.
본문 3절에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두호하는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의 송사라도 정당하게 해야 됩니다. 공의롭게 정당한 판단을 해야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려고 두호하고 편벽되이 하면 공의가 굽어집니다. 공의가 굽어지면 그 세상이 어지러운 세상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두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이라고 멸시해서도 안 됩니다.
무노동 무임금은 세계적이고 공통적인 합법화 된 법입니다. 노동하지 아니하면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입니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너무 데모를 자꾸 하니까, 노동하지 않고 데모해도 임금을 줘야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하지 않았는데 임금을
주면 그 사람은 망하는 것 아닙니까? 그 공장이 망할 것 아닙니까?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노동하지 않고, 데모만 하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줘야 된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두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권력 있는 자의 송사라고 두호해도 안 됩니다. 아무 권력 없는 사람의 송사라고 해도 두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공의롭고 공평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고,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두호하거나 권력 있는 사람을 두호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대가를 받습니다. 그 보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2.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가 악할지라도 원수의 잃어버린 소나 나귀를 만나면 돌려주라 본문 4-5절에,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찌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 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찌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길을 잃어버린 그 소나 나귀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잃어버린 소나 나귀를 만났는데 가만 두는 것은 양심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면 가만 두지 말고, 그 사람에게로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보통은 원수가 망하는 것을 원합니다. 원수의 소나 나귀가 다 죽어서 없어지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원수가 악할지라도 원수의 잃어버린 원수의 소나 양을 만나면, 돌려주어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만 내버려 둬서 원수의 소나 양이 없어지는 것을 좋아하고 봤는데도 모른 척하고 안 돌려주면 그것은 자기가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에는 원수가 악한 사람이었지만 그 다음에는 자기도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그 악에 대한 보응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났으면 반드시 그 사람에게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가 잘 되기를 기도하며 선한 사람이 되라
본문 5절에,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 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찌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또 미워하는 사람의 나귀가 짐을 싣다가 엎드러졌을 때 ‘잘 됐다, 나귀의 다리가 뚝 부러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나귀라도, 짐을 싣다가 엎드러졌으면 가서 짐을 들어주고 일으켜 세워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한 일입니다. 그것이 믿음을 쓰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려 졌는데도 도와주지 않으면 자기가 악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수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 졌으면 버려두지 말고 그 짐을 부리어주고 일으켜 세워주란 것입니다. 요새 같으면 미워하는 사람의 자동차가 웅덩이에 빠졌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잘 됐다’하면서 못 본 척 하지 말고 가서 그 자동차를 건져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선한 일 입니까? 그러니까 믿는 사람은 언제나 선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원수가 잘못 된 것 좋아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가 잘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또 도와 주고, 그러면 내가 선한 사람이 됩니다.
또 그렇게 선을 이루어 놓으면 언젠가는 원수가 회개하고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원수가 바로 서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선한 일을 했으니까, 선한 일의 보응을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그러니까 원수를 사랑하고 또 원수를 도와주고, 길 잃어버린 소나 양을 찾아서 원수에
게 돌려주고, 나귀가 짐 싣고 가다가 엎드러졌으면 가서 짐을 들어주어 일으켜서 건져내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가 마땅히 할 바입니다.
지연, 혈연, 학연에서 벗어나 성경대로 공정하게 판단하라
성도가 이렇게 모든 원수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공평한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가난한 사람을 두호해도 안되고, 가난한 편에 서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또 권력 있는 자의 편에서도 안 됩니다. 어느 편에 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편, 공의 편에
서라는 말입니다. ‘내가 이편에 서서 좀 도와주어야겠다, 권력 있는 사람 편에 서서 도움을 받아야겠다, 가난한 사람이 불쌍하니까 내가 구해주어야겠다’ 이렇게 해서 공정하게 하지 못하면 자기가 공의로운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다 공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 지방 사람의 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늘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기 학교 같이 다녔다고 해서 그 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또 혈연, 자기 동족이라고 해서, 자기 동성이라고 해서 그 편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뚤어집니다, 공정하게 되지 못 합니다.
언제나 공의롭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어느 것이 옳으냐’를 생각하면서 바로 서야지 ‘누가 우리 지방 사람이냐, 누가 동창생이냐’ 해서 도와주면 안 됩니다. 또 ‘누가 우리 친척이냐, 경주 김 씨냐’하면서 도와주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경주 김 씨라도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하고, 재판할 때에 바른 판결을 해야 합니다. 자기와 같은 김 씨라고 해도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바로 해야 됩니다. 편벽되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당파 사람도 도와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대통령 선거 할 때도 바로 하면 됩니다. ‘누가 내게 도움 주겠느냐, 우리 지방 사람이냐, 누가 우리 친척이냐’라는 것을 보지 말고 ‘어떤 사람을 해야 나라가 바로 되겠느냐, 정직하냐, 어떤 사람이 해야 이 나라를 바로 이끌 수가 있겠느냐’ 는 것을 보고 해야 됩니다. 편벽되이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복을 받지 못합니다. 바로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을 해야 바로 하는 것일까’하고 생각하는 중에 있습니다. 아직 정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 지방사람, 이북사람, 이남사람, 그런 것 정한 것도 없습니다. 요새 성이 이씨가 둘이 나왔던데 성이 같다고 도와주는 것 아닙니다. 또 어디 지역 사람이라고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떤 사람을 찍어야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나라를 바로 다스릴 수 있고, 능력이 있는가를 지금 찾는 중에 있습니다.
나 같이 생각 하는 사람이 아마 많을 것입니다. 바르게 정치할 사람을 찾는 중에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러니까 언제나 공의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공평하고 정직하게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모두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3. 공평
가난한 자의 송사라도 공평하게 하라
본문 6-7절에,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도와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판소에서도 가난한 사람처럼 보이면 다 무시해버립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라 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난한 사람 송사라고 특별히 도와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 되었는데 옳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잘못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잘못되었으면 잘못되었다고 해야지 왜 옳다고 합니까? 또 가난한 사람이 잘했으면 잘했다고 해야지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왜 공평치 않게 합니까?
거짓을 멀리하고 진실하라
본문 7절에,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거짓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것을 멀리하고 정직하게 하고 솔직하게 해야 됩니다. 진실하게 해야 됩니다. 말이 진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짓말하고, 속이고, 말 한 마디 해놓고 책임 안지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진실한 것입니다. 진실한 것이 믿음인데, 진실을 떠난 것은 믿음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일도 거짓되게 하지 말고 언제나 진실 하라는 것입니다.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또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죄 있다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가 없고 의로운 사람을 왜 죄가 있다고 합니까? 왜 이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합니까? 사실 나쁜 일을 했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
나 나쁜 일을 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아야 됩니다.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의로운 자를 악하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바로 해야 됩니다. 돈 먹지 않은 사람을 돈 먹었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의로운 사람을 정죄하는 것 아닙니까?
또 자기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기를 미워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할 리가 있나, 미워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또 좀 미워할 일이 있다고 해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좋지, 미워한다고 생각 하면서 살면 뭐가 좋겠습니까? 그러다 둘이 만나면 좋겠습니까? 닭이 소 쳐다보듯 서로 쳐다보면 그것이 뭐가 좋겠습니까?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만나면 반가운 얼굴로 서로 좋게 지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아집니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 고 미워하지 않는데 미워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알지도 못하고 추측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사실도 아니고,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어느 날 교회에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왜 안 나왔냐 고 알아보니까 “목사님이 미워해서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자기를 미워해서 안 나온답니다. 그래서 “미워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왜 할머니를 미워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 안다”는
것입니다. 교회 나왔다가 인사하니까, 인사하는 것을 안 받더라는 것 입니다. 다른 데만 쳐다보고 안 받더랍니다. 자기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다른 사람만 쳐다보고 다른 사람하고만 인사하고, 자기가 인사하는 것은 안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날 이렇게 미워하는데, 교회 나가면 무엇 하겠느냐’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목사님을 도와 주려면, 내가 안 나가야 도와주는 거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목사님이 나를 미워하면 죄 짓는 것이니까, 내가 교회 안 나가서 목사님이 미워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목사를 도와주느라고 교회에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참 마귀가 간교하게 속여서 갖다가 붙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절대 미워하지 않으니까 오해를 풀라고 했습니다. 물론 인사를 못 할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고의적으로 안 한 것이 아니고, 교회에서 성도들이 한꺼번에 나가면 이 사람 저 사람을 다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하고 인사하다가 그 할머니가 인사하는 것을 못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인사를 안 받은 것은 사실인가 봅니다.
그래서 내가 사과하고, 고의적으로 안 받은 것이 아니니까 이젠 다 풀고 교회에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지, 안 나오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안 나오는 것은 마귀를 도와주는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나왔습니다. 몇 년 동안 잘 나오다
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장례를 해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무죄한 자, 의로운 자를 악하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이 확실히 드러나기 전에는 남의 말이나, 추측으로 오해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죄하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생각하는 것은 마귀에게 유익이 됩니다. 또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을 없는 것처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가령 목사가 인사를 안 했다 합시다. 고의적으로 안 했다고 합시다. 그래도 ‘고의적으로 미워할 리가 있나’ 하고 자꾸 와서 인사하는 것입니다. 계속 인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도, 자꾸 인사하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돌이킵니다. 그리고 보통은 미워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진짜로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친절하게, 미워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대우합니다. 믿음으로 교제를 잘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워하는 마음이 좀 있었어도 얼마 있으면 다 없어
집니다. 다 회개하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조금 미워한다고, ‘미워한다, 미워한다’하면 미움만 점점 더 커지고 마귀가 역사하고 시험에 빠집니다. 둘 다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나중에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겨야 됩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도 이기고, 또 핍박하는 것도 이기고, 멸시하는 것도 사랑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원수도 사랑으로 다 이겨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성도의 할 일입니다. 미워한다고 해서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멸시한
다고 해서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멸시와 천대를 해도 적극적으로 사랑으로 이기면 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가 하는 일입니다.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므로 받지 말라
본문 8절에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뇌물을 받으면 눈이 어두워지고 말이 구부러집니다. 바른 말을 하지 못 합니다.
뇌물 받는 사람은 눈이 어둡게 되고 말을 굽게 합니다. 정치가들이 뇌물을 받아 놓으면 바른 말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또 어떻게 바른 정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다른 사람이 뇌물 받는 것을 어떻게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나 국민이나 누구든지 뇌
물을 받지 않아야 됩니다.
뇌물을 받으면 눈이 어둡게 됩니다. 뇌물을 받은 정치가는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또 바른 말을 하지 못 합니다. 뇌물을 받은 교회나 교인들은 다 눈이 어두워집니다. 절대 뇌물을 받지 말고, 바른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밝히 보고 바로 일하고, 바른 말을 해서 바로 처리해야겠습니다.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잘 대접하라
본문 9절에,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그네 대접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손님 대접을 잘 해야 됩니다. 나그네 대접 잘하는 사람을 직
분자로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나그네 대접 잘하는 사람이 장로가 되어야 되고, 나그네 대접 잘하는 사람이 집사도 되어야 됩니다. 또 권찰이나 교인들도, 나그네 대접 잘하는 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복음을 위하여 순회하면서 복음 전도하는 나그네를 우리가 잘 대접해야 되겠습니다.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던 것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네가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을 때를 생각하여 다른 나그네를 잘 대접 하라는 것입니다. 또 특별히 너희 중에 이방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4. 안식
육년 동안은 땅을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칠년 해에는 놔두라
본문 10-11절에 “너는 육 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 칠 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육 년 동안은 농사해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육 년 동안 매해 기경해서 농사하여 먹고, 제 칠 년째 되는 해는 갈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포도원도 그렇고, 밀밭도 그렇고, 감람나무도 그렇고 육 년 동안은 잘 가꾸어서 포도나 감람나무 열매를 따고, 제 칠 년째에는 따지 말고 내버려두라
는 것입니다. 곡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육 년 동안은 곡식밭을 갈아서 농사를 지어서 먹고, 제 칠 년째 되는 해는 갈아서 농사하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말입니다.
제 칠년에는 그 남은 것을, 가난한 자와 짐승들이 먹게 하라
그러면 칠 년에 나는 열매는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본문 11절에 “제 칠 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제 칠 년에는 논이나 밭을 갈지 말고 묵혀
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묵혀 둔 곳에서 곡식이 나는 수가 있으니까,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들짐승도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짐승도 사랑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포도원과 감람나무도 육 년 동안은 그 열매를 따지만, 제 칠 년째에는 따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먹으라는 것입니까? 가난한 사람이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 들짐승이 가서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짐승까지도 먹을 것을 염려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 성도들은 왜 염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가난한 사람들과 들짐승까지 먹을 것을 염려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반드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해서 주십니다.
육 년 동안 농사하고 제 칠 년째에는 농사하지 않고 밭을 묵혀두면, 거기에서도 열매가 맺지 않겠습니까? 감람원이나 포도원은, 칠 년째에도 많이 날 것 같습니다. 육년 동안 해마다 포도나무, 감람나무의 열매를 따면 칠 년 째에도 딸 것 아닙니까? 그럼 농사하던 것은 어떻게
됩니까? 밀이나 곡식을 갈지 않고 내버려두면 곡식이 납니까? 농사해 본 사람 말해 보십시오. 조금은 난다고 합니다. 조금 나니까 그 조금 나는 것을 가난한 사람이 먹으라는 것입니다.
저는 벼농사를 해봤는데, 벼를 베고 나면 벤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싹이 납니다. 새파랗게 싹이 나서 올라옵니다. 그루터기 마다 물이 있는 데는 다 올라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커서 잎사귀가 몇 개 나오는데,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추운 지방은 서리 맞아 다 쓰러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 같이 더운 나라의 지방은 이모작, 삼모작 하니까 가만 내버려 두어도 그것이 커서 또 벼 이삭이 열릴 것 같습니다. 또 이삭이 떨어지는데 떨어졌던 알들이 싹터서 나오기도 할 것 입니다. 조 알이나 곡식의 알들이 떨어져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떨
어졌던 곡식알들에서 싹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추운 지방은 나오다가 서리만 오면 다 쓰러지고 마는데 더운 지방에서는 이모작이나 삼모작을 하는 데는 그것이 커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대만에서는 이모작을 한다는데, 이스라엘에서도 이모작, 삼모작 한답니다. 다 더운 데니까 곡식알이 떨어져 추수한 다음에도 알이 나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벼가 다 익은 다음에 우박이 오면, 벼 알이 땅에 많이 떨어집니다. 얼마 전에 천안에 우박이 왔다는소리를 들었습니다. 평택에 추수하기 전 우박이 많이 떨어졌다는데 우박에 떨어졌던 벼 알이 얼마 있으면 저절로 납니다. 날이 춥지만 않으면 그것이 자라나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칠 년 되는 해에 묵혀 두었던 밭에서 난 곡식은 가난한 사람이 먹게 두라는 것입니다. 또 짐승들이 와서 먹게 두어두라는 것입니다. 감람원이나 포도원도, 제 칠 년에 나는 것은 따다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짐승이 먹게 두어두라는 것입니다. 모든 열매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육 년 동안 농사하면 칠 년 먹을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곧 육 년 동안 농사해도 칠 년을 먹을 것을 주시니까, 가난한 사람과 짐승 들을 위해 칠 년 되는 해에는 땅 묵혀 두라는 것입니다. 남기지 않고 다 가져가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짐승들은 무엇을 먹느냐는 것입니다.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와 짐승까지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좋은 법을 하나님께서 내셨습니다.
요새는 칠 년째에도 다 농사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농사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고, 또 짐승도 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자기만 먹으려고 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도 좀 주면서 먹어야 됩니다. 농사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 좀 주면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또 짐승도 좀 생각해서 짐승 먹을 것을 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요새는 짐승이나 새에게 먹을 것 주는 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새가 먹을 것을 매일 갖다 줍니다. 저수지에 가보면 오리가 수십 마리가 있는데. 먹을 것을 매일 준답니다. 또 겨울에는 산에 있는 노루나 양이 먹을 사료를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에 노루나 양이 많이 뛰어다닙니다.
우리 한국도 이제 좀 배워야겠습니다. 우리 한국도 산의 짐승들에게 먹을 것 좀 주십시오. 지금. 눈이 많이 내려서 산에 먹을 것이 없어 동물들이 동네에 내려오면 먹을 것을 주어 먹여서 올려 보냅니다. 그것도 이 성경에 맞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옛날에는 다 잡아먹었습니다. 옛날에는 눈이 많이 오는 날에 산에서 노루나 멧돼지가 내려오면 다 잡아 먹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먹을 것을 줘서 올려 보낸답니다. 상당히 나아졌지 않습니까? 서양 사람들한테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짐승을 잡아먹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그
러나 그냥 놓아주는 사람도 많이 생겼습니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동물들을 보호하는 운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육일동안은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본문 12절에 “너는 육 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 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육 일 동안은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칠일 안식일은 쉬라는 것입니다.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고 하였는데 숨을 돌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숨을 돌린다는 것은 좀 숨을 내쉬면서 편안히 휴식한다는 뜻입니다. 엿새 동안에 부지런히 일했으니까, 좀 쉬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너무 피곤하고 고달프니까 제 칠일에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는 것입니다. 짐승들도 좀 숨을 돌리게 푹 쉬게 가고 그 다음 날부터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쉬는 것이 참 좋습니다. 육신적으로도 주일날 쉬는 사람이 건강하다고 합니다. 육 일 동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은 사람에게 아주 좋다고 합니다. 그것은 건강법 가운데도 제일 좋은 건강법입니다. 그런데 쉬지 않고 계속 일하는 사람은 일하다가 쓰러집니다. 그러나 주
일날 쉬는 사람은 계속 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주일날 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또 엿새 동안 세상 일 하다가 제 칠일에는 교회에 하나님의 안식세계에 참여하니까, 영의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영적 안식도 취하고 육신의 안식도 취하는 날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주일날 쉬지 못하는 사람은 목사입니다. 목사가 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강단에 서서 몇 시간을 설교하니까, 쉬지 못합니다. 또 반장들도 물론 쉬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들은 월요일 날 목사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목사들은 월요일 날 무조건 다 쉰답
니다. 주일날 일했으니까 전도도 다 쉰답니다. 월요일 날 하루 쉬면 좋겠습니다.
하여간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 쉬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육신도 평안히 쉬고, 또 종들도 평안히 쉽니다. 쉬니까 몸도 평안해지고, 마음도 평안해지고, 정신도 안정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적 안식 세계에 들어가니까 얼마나 영이 안식을 얻어 평안힙니까? 영적으
로 안식을 얻으면 평안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잘 쉬라는 것입니다. 칠일 날은 잘 쉬어야 합니다. 영이 안식을 하여야 되고, 육신도 안식하여야 되고, 세상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일날은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주일날 육신의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사로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세계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본문 13절에,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찌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잘 지키라고 했습니다.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 명령만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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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가 악할지라도 원수의 잃어버린 소나 나귀를 만나면 돌려주라 본문 4-5절에,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찌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 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찌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길을 잃어버린 그 소나 나귀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잃어버린 소나 나귀를 만났는데 가만 두는 것은 양심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면 가만 두지 말고, 그 사람에게로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보통은 원수가 망하는 것을 원합니다. 원수의 소나 나귀가 다 죽어서 없어지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원수가 악할지라도 원수의 잃어버린 원수의 소나 양을 만나면, 돌려주어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만 내버려 둬서 원수의 소나 양이 없어지는 것을 좋아하고 봤는데도 모른 척하고 안 돌려주면 그것은 자기가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에는 원수가 악한 사람이었지만 그 다음에는 자기도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그 악에 대한 보응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났으면 반드시 그 사람에게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가 잘 되기를 기도하며 선한 사람이 되라
본문 5절에,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 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찌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또 미워하는 사람의 나귀가 짐을 싣다가 엎드러졌을 때 ‘잘 됐다, 나귀의 다리가 뚝 부러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나귀라도, 짐을 싣다가 엎드러졌으면 가서 짐을 들어주고 일으켜 세워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한 일입니다. 그것이 믿음을 쓰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려 졌는데도 도와주지 않으면 자기가 악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수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 졌으면 버려두지 말고 그 짐을 부리어주고 일으켜 세워주란 것입니다. 요새 같으면 미워하는 사람의 자동차가 웅덩이에 빠졌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잘 됐다’하면서 못 본 척 하지 말고 가서 그 자동차를 건져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선한 일 입니까? 그러니까 믿는 사람은 언제나 선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원수가 잘못 된 것 좋아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가 잘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또 도와 주고, 그러면 내가 선한 사람이 됩니다.
또 그렇게 선을 이루어 놓으면 언젠가는 원수가 회개하고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원수가 바로 서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선한 일을 했으니까, 선한 일의 보응을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그러니까 원수를 사랑하고 또 원수를 도와주고, 길 잃어버린 소나 양을 찾아서 원수에
게 돌려주고, 나귀가 짐 싣고 가다가 엎드러졌으면 가서 짐을 들어주어 일으켜서 건져내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가 마땅히 할 바입니다.
지연, 혈연, 학연에서 벗어나 성경대로 공정하게 판단하라
성도가 이렇게 모든 원수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공평한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가난한 사람을 두호해도 안되고, 가난한 편에 서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또 권력 있는 자의 편에서도 안 됩니다. 어느 편에 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편, 공의 편에
서라는 말입니다. ‘내가 이편에 서서 좀 도와주어야겠다, 권력 있는 사람 편에 서서 도움을 받아야겠다, 가난한 사람이 불쌍하니까 내가 구해주어야겠다’ 이렇게 해서 공정하게 하지 못하면 자기가 공의로운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다 공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 지방 사람의 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늘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기 학교 같이 다녔다고 해서 그 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또 혈연, 자기 동족이라고 해서, 자기 동성이라고 해서 그 편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뚤어집니다, 공정하게 되지 못 합니다.
언제나 공의롭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어느 것이 옳으냐’를 생각하면서 바로 서야지 ‘누가 우리 지방 사람이냐, 누가 동창생이냐’ 해서 도와주면 안 됩니다. 또 ‘누가 우리 친척이냐, 경주 김 씨냐’하면서 도와주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경주 김 씨라도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하고, 재판할 때에 바른 판결을 해야 합니다. 자기와 같은 김 씨라고 해도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바로 해야 됩니다. 편벽되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당파 사람도 도와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대통령 선거 할 때도 바로 하면 됩니다. ‘누가 내게 도움 주겠느냐, 우리 지방 사람이냐, 누가 우리 친척이냐’라는 것을 보지 말고 ‘어떤 사람을 해야 나라가 바로 되겠느냐, 정직하냐, 어떤 사람이 해야 이 나라를 바로 이끌 수가 있겠느냐’ 는 것을 보고 해야 됩니다. 편벽되이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복을 받지 못합니다. 바로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을 해야 바로 하는 것일까’하고 생각하는 중에 있습니다. 아직 정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 지방사람, 이북사람, 이남사람, 그런 것 정한 것도 없습니다. 요새 성이 이씨가 둘이 나왔던데 성이 같다고 도와주는 것 아닙니다. 또 어디 지역 사람이라고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떤 사람을 찍어야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나라를 바로 다스릴 수 있고, 능력이 있는가를 지금 찾는 중에 있습니다.
나 같이 생각 하는 사람이 아마 많을 것입니다. 바르게 정치할 사람을 찾는 중에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러니까 언제나 공의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공평하고 정직하게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모두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3. 공평
가난한 자의 송사라도 공평하게 하라
본문 6-7절에,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도와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판소에서도 가난한 사람처럼 보이면 다 무시해버립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라 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난한 사람 송사라고 특별히 도와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 되었는데 옳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잘못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잘못되었으면 잘못되었다고 해야지 왜 옳다고 합니까? 또 가난한 사람이 잘했으면 잘했다고 해야지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왜 공평치 않게 합니까?
거짓을 멀리하고 진실하라
본문 7절에,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거짓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것을 멀리하고 정직하게 하고 솔직하게 해야 됩니다. 진실하게 해야 됩니다. 말이 진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짓말하고, 속이고, 말 한 마디 해놓고 책임 안지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진실한 것입니다. 진실한 것이 믿음인데, 진실을 떠난 것은 믿음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일도 거짓되게 하지 말고 언제나 진실 하라는 것입니다.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또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죄 있다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가 없고 의로운 사람을 왜 죄가 있다고 합니까? 왜 이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합니까? 사실 나쁜 일을 했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
나 나쁜 일을 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아야 됩니다.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의로운 자를 악하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바로 해야 됩니다. 돈 먹지 않은 사람을 돈 먹었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의로운 사람을 정죄하는 것 아닙니까?
또 자기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기를 미워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할 리가 있나, 미워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또 좀 미워할 일이 있다고 해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좋지, 미워한다고 생각 하면서 살면 뭐가 좋겠습니까? 그러다 둘이 만나면 좋겠습니까? 닭이 소 쳐다보듯 서로 쳐다보면 그것이 뭐가 좋겠습니까?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만나면 반가운 얼굴로 서로 좋게 지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아집니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 고 미워하지 않는데 미워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알지도 못하고 추측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사실도 아니고,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어느 날 교회에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왜 안 나왔냐 고 알아보니까 “목사님이 미워해서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자기를 미워해서 안 나온답니다. 그래서 “미워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왜 할머니를 미워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 안다”는
것입니다. 교회 나왔다가 인사하니까, 인사하는 것을 안 받더라는 것 입니다. 다른 데만 쳐다보고 안 받더랍니다. 자기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다른 사람만 쳐다보고 다른 사람하고만 인사하고, 자기가 인사하는 것은 안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날 이렇게 미워하는데, 교회 나가면 무엇 하겠느냐’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목사님을 도와 주려면, 내가 안 나가야 도와주는 거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목사님이 나를 미워하면 죄 짓는 것이니까, 내가 교회 안 나가서 목사님이 미워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목사를 도와주느라고 교회에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참 마귀가 간교하게 속여서 갖다가 붙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절대 미워하지 않으니까 오해를 풀라고 했습니다. 물론 인사를 못 할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고의적으로 안 한 것이 아니고, 교회에서 성도들이 한꺼번에 나가면 이 사람 저 사람을 다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하고 인사하다가 그 할머니가 인사하는 것을 못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인사를 안 받은 것은 사실인가 봅니다.
그래서 내가 사과하고, 고의적으로 안 받은 것이 아니니까 이젠 다 풀고 교회에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지, 안 나오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안 나오는 것은 마귀를 도와주는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나왔습니다. 몇 년 동안 잘 나오다
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장례를 해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무죄한 자, 의로운 자를 악하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이 확실히 드러나기 전에는 남의 말이나, 추측으로 오해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죄하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생각하는 것은 마귀에게 유익이 됩니다. 또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을 없는 것처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가령 목사가 인사를 안 했다 합시다. 고의적으로 안 했다고 합시다. 그래도 ‘고의적으로 미워할 리가 있나’ 하고 자꾸 와서 인사하는 것입니다. 계속 인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도, 자꾸 인사하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돌이킵니다. 그리고 보통은 미워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진짜로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친절하게, 미워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대우합니다. 믿음으로 교제를 잘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워하는 마음이 좀 있었어도 얼마 있으면 다 없어
집니다. 다 회개하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조금 미워한다고, ‘미워한다, 미워한다’하면 미움만 점점 더 커지고 마귀가 역사하고 시험에 빠집니다. 둘 다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나중에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겨야 됩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도 이기고, 또 핍박하는 것도 이기고, 멸시하는 것도 사랑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원수도 사랑으로 다 이겨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는 것이 성도의 할 일입니다. 미워한다고 해서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멸시한
다고 해서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멸시와 천대를 해도 적극적으로 사랑으로 이기면 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가 하는 일입니다.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므로 받지 말라
본문 8절에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뇌물을 받으면 눈이 어두워지고 말이 구부러집니다. 바른 말을 하지 못 합니다.
뇌물 받는 사람은 눈이 어둡게 되고 말을 굽게 합니다. 정치가들이 뇌물을 받아 놓으면 바른 말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또 어떻게 바른 정치를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다른 사람이 뇌물 받는 것을 어떻게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나 국민이나 누구든지 뇌
물을 받지 않아야 됩니다.
뇌물을 받으면 눈이 어둡게 됩니다. 뇌물을 받은 정치가는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또 바른 말을 하지 못 합니다. 뇌물을 받은 교회나 교인들은 다 눈이 어두워집니다. 절대 뇌물을 받지 말고, 바른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밝히 보고 바로 일하고, 바른 말을 해서 바로 처리해야겠습니다.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잘 대접하라
본문 9절에,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그네 대접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손님 대접을 잘 해야 됩니다. 나그네 대접 잘하는 사람을 직
분자로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나그네 대접 잘하는 사람이 장로가 되어야 되고, 나그네 대접 잘하는 사람이 집사도 되어야 됩니다. 또 권찰이나 교인들도, 나그네 대접 잘하는 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복음을 위하여 순회하면서 복음 전도하는 나그네를 우리가 잘 대접해야 되겠습니다.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던 것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네가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을 때를 생각하여 다른 나그네를 잘 대접 하라는 것입니다. 또 특별히 너희 중에 이방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4. 안식
육년 동안은 땅을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칠년 해에는 놔두라
본문 10-11절에 “너는 육 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 칠 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육 년 동안은 농사해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육 년 동안 매해 기경해서 농사하여 먹고, 제 칠 년째 되는 해는 갈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포도원도 그렇고, 밀밭도 그렇고, 감람나무도 그렇고 육 년 동안은 잘 가꾸어서 포도나 감람나무 열매를 따고, 제 칠 년째에는 따지 말고 내버려두라
는 것입니다. 곡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육 년 동안은 곡식밭을 갈아서 농사를 지어서 먹고, 제 칠 년째 되는 해는 갈아서 농사하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말입니다.
제 칠년에는 그 남은 것을, 가난한 자와 짐승들이 먹게 하라
그러면 칠 년에 나는 열매는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본문 11절에 “제 칠 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제 칠 년에는 논이나 밭을 갈지 말고 묵혀
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묵혀 둔 곳에서 곡식이 나는 수가 있으니까,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들짐승도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짐승도 사랑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포도원과 감람나무도 육 년 동안은 그 열매를 따지만, 제 칠 년째에는 따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먹으라는 것입니까? 가난한 사람이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 들짐승이 가서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짐승까지도 먹을 것을 염려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 성도들은 왜 염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가난한 사람들과 들짐승까지 먹을 것을 염려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반드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해서 주십니다.
육 년 동안 농사하고 제 칠 년째에는 농사하지 않고 밭을 묵혀두면, 거기에서도 열매가 맺지 않겠습니까? 감람원이나 포도원은, 칠 년째에도 많이 날 것 같습니다. 육년 동안 해마다 포도나무, 감람나무의 열매를 따면 칠 년 째에도 딸 것 아닙니까? 그럼 농사하던 것은 어떻게
됩니까? 밀이나 곡식을 갈지 않고 내버려두면 곡식이 납니까? 농사해 본 사람 말해 보십시오. 조금은 난다고 합니다. 조금 나니까 그 조금 나는 것을 가난한 사람이 먹으라는 것입니다.
저는 벼농사를 해봤는데, 벼를 베고 나면 벤 그루터기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싹이 납니다. 새파랗게 싹이 나서 올라옵니다. 그루터기 마다 물이 있는 데는 다 올라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커서 잎사귀가 몇 개 나오는데,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추운 지방은 서리 맞아 다 쓰러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 같이 더운 나라의 지방은 이모작, 삼모작 하니까 가만 내버려 두어도 그것이 커서 또 벼 이삭이 열릴 것 같습니다. 또 이삭이 떨어지는데 떨어졌던 알들이 싹터서 나오기도 할 것 입니다. 조 알이나 곡식의 알들이 떨어져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떨
어졌던 곡식알들에서 싹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추운 지방은 나오다가 서리만 오면 다 쓰러지고 마는데 더운 지방에서는 이모작이나 삼모작을 하는 데는 그것이 커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대만에서는 이모작을 한다는데, 이스라엘에서도 이모작, 삼모작 한답니다. 다 더운 데니까 곡식알이 떨어져 추수한 다음에도 알이 나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벼가 다 익은 다음에 우박이 오면, 벼 알이 땅에 많이 떨어집니다. 얼마 전에 천안에 우박이 왔다는소리를 들었습니다. 평택에 추수하기 전 우박이 많이 떨어졌다는데 우박에 떨어졌던 벼 알이 얼마 있으면 저절로 납니다. 날이 춥지만 않으면 그것이 자라나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칠 년 되는 해에 묵혀 두었던 밭에서 난 곡식은 가난한 사람이 먹게 두라는 것입니다. 또 짐승들이 와서 먹게 두어두라는 것입니다. 감람원이나 포도원도, 제 칠 년에 나는 것은 따다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짐승이 먹게 두어두라는 것입니다. 모든 열매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육 년 동안 농사하면 칠 년 먹을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곧 육 년 동안 농사해도 칠 년을 먹을 것을 주시니까, 가난한 사람과 짐승 들을 위해 칠 년 되는 해에는 땅 묵혀 두라는 것입니다. 남기지 않고 다 가져가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짐승들은 무엇을 먹느냐는 것입니다.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와 짐승까지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좋은 법을 하나님께서 내셨습니다.
요새는 칠 년째에도 다 농사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농사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고, 또 짐승도 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자기만 먹으려고 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도 좀 주면서 먹어야 됩니다. 농사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 좀 주면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또 짐승도 좀 생각해서 짐승 먹을 것을 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요새는 짐승이나 새에게 먹을 것 주는 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새가 먹을 것을 매일 갖다 줍니다. 저수지에 가보면 오리가 수십 마리가 있는데. 먹을 것을 매일 준답니다. 또 겨울에는 산에 있는 노루나 양이 먹을 사료를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에 노루나 양이 많이 뛰어다닙니다.
우리 한국도 이제 좀 배워야겠습니다. 우리 한국도 산의 짐승들에게 먹을 것 좀 주십시오. 지금. 눈이 많이 내려서 산에 먹을 것이 없어 동물들이 동네에 내려오면 먹을 것을 주어 먹여서 올려 보냅니다. 그것도 이 성경에 맞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옛날에는 다 잡아먹었습니다. 옛날에는 눈이 많이 오는 날에 산에서 노루나 멧돼지가 내려오면 다 잡아 먹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먹을 것을 줘서 올려 보낸답니다. 상당히 나아졌지 않습니까? 서양 사람들한테 배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짐승을 잡아먹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그
러나 그냥 놓아주는 사람도 많이 생겼습니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동물들을 보호하는 운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육일동안은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본문 12절에 “너는 육 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 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육 일 동안은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칠일 안식일은 쉬라는 것입니다.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고 하였는데 숨을 돌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숨을 돌린다는 것은 좀 숨을 내쉬면서 편안히 휴식한다는 뜻입니다. 엿새 동안에 부지런히 일했으니까, 좀 쉬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너무 피곤하고 고달프니까 제 칠일에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는 것입니다. 짐승들도 좀 숨을 돌리게 푹 쉬게 가고 그 다음 날부터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쉬는 것이 참 좋습니다. 육신적으로도 주일날 쉬는 사람이 건강하다고 합니다. 육 일 동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은 사람에게 아주 좋다고 합니다. 그것은 건강법 가운데도 제일 좋은 건강법입니다. 그런데 쉬지 않고 계속 일하는 사람은 일하다가 쓰러집니다. 그러나 주
일날 쉬는 사람은 계속 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주일날 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또 엿새 동안 세상 일 하다가 제 칠일에는 교회에 하나님의 안식세계에 참여하니까, 영의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영적 안식도 취하고 육신의 안식도 취하는 날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주일날 쉬지 못하는 사람은 목사입니다. 목사가 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강단에 서서 몇 시간을 설교하니까, 쉬지 못합니다. 또 반장들도 물론 쉬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들은 월요일 날 목사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목사들은 월요일 날 무조건 다 쉰답
니다. 주일날 일했으니까 전도도 다 쉰답니다. 월요일 날 하루 쉬면 좋겠습니다.
하여간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 쉬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육신도 평안히 쉬고, 또 종들도 평안히 쉽니다. 쉬니까 몸도 평안해지고, 마음도 평안해지고, 정신도 안정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적 안식 세계에 들어가니까 얼마나 영이 안식을 얻어 평안힙니까? 영적으
로 안식을 얻으면 평안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잘 쉬라는 것입니다. 칠일 날은 잘 쉬어야 합니다. 영이 안식을 하여야 되고, 육신도 안식하여야 되고, 세상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일날은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주일날 육신의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사로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안식세계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본문 13절에,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찌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잘 지키라고 했습니다.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 명령만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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