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9일 일요일

사무엘상 23:1-29 셀라하마느곳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셀라하마느곳
사무엘상 23:1-29

1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2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3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4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5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거민을 구원하니라 6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었더라 7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로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붙이셨도다 그가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8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 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9다윗이 사울의 자기를 해하려 하는 계교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10다윗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의 연고로 이 성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11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주의 종의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가 내려오리라 12다윗이 가로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 13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14다윗이 황무지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황무지 산골에도 유하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시니라 15다윗이 사울의 자기 생명을 찾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황무지 수풀에 있었더니 16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17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 18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거하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19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가로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편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20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 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붙일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21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22혹이 내게 말하기를 그가 심히 공교히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 은적하였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23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탐지하고 실상을 내게 회보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천천인 중에서 그를 찾아내리라 24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편 마온 황무지 아라바에 있더니 25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혹이 다윗에게 고하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26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27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28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블레셋 사람을 치러 갔으므로 그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29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거하니라 

1. 다윗이 그일라를 구원함

하나님의 명령에 의지하여 그일라 백성들을 구원함

본문 1절에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피난 생활을 하는 중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라고 하는 동네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다 탈취해갔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때 다윗이 피난 생활을 했지만 자기가 피해 있는 부근 동네에 이렇게 블레셋 사람이 와서 탈취해가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하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본문 2-3절에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
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하기는 해야겠는데 그래도 하나님께 물어보고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서 하나님께 기도해 보았습니다.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리이까”하고 물어
보니 여호와께서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하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에 다윗과 함께 있는 육백 명 가량 되는 사람들이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피난 생활
하는 처지에 유다나라에 있기만 해도 무서운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면 우리의 소문이 더 나고 원수가 많아질 텐데 어떻게 가서 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서워하면서 답변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본문 4-5절에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니라 다윗이 이
와 같이 그일라 거민을 구원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다시 하나님께 가서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하리이까”하고 물어보니 하나님께서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고 거듭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블레셋 사람들을 치사 그일라를 구원하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고 빼앗겼던 그일라 사람들의 가축을 도로 찾고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했습니다. 이렇게 위급한 가운에 있는 때에라도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일, 하나님의 구원운동,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위태한 가운데 있지만 생명을 내놓고 나가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명령에 의지해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붙들어 주실 것을 믿고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구원한 것입니다.

2. 다윗이 그일라에서 사울을 피하여 이동함

에봇을 입고 기도한 다윗

본문 6-7절에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었더라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로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붙이셨도다 그가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일라에 다윗이 갔다는 보고가 사울 왕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생각하기를 ‘다윗은 이제 꼼짝 못 하고 나한테 잡혔다, 그일라라는 도시는 성에 빙 둘러 있고 또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이므로 그 문 앞에만 가면 꼼짝을 못 하고 다 잡힐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군사를 모집하고 그일라로 내려가 다윗을 잡아오려고 작정하였습니다.

본문 8-11절에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 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다윗이 사울의 자기를 해하려 하는 계교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다윗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의 연고로 이 성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주의 종의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가 내려오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이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 에봇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겉옷(두루마기)와 같은 옷인데, 하나님께 물어보고자 하는 때에 그 옷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사울이 내려온다는 말을 듣고 다윗이 제사장에게 에봇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의 연고로 이 성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주의 종의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라고 하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사울이 너를 잡으러 올 것이다’라고 답변하여 주셨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의 배은망덕

본문 12절에 “다윗이 가로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또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라고 물어보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이 너를 잡아준다’라고 답변하셨습니다. 여기를 보면 그일라 사람들이 참 맹랑한 사람들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쳐서 그들의 가축을 다 빼앗아 가고 그들이 다 점령을 당해 많이 죽고 블레셋 사람들의 종이 될 뻔한 것을 다윗이 건져주었는데 사울 왕이 다윗을 잡으러 온다고 하니까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 왕에게 내어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 사람들이 참 배은망덕합니다. 자기를 구원해준 다윗과 그와 같이한 사람들을 어떻게 잡아내줄 수가 있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일라 사람들의 배은망덕한 면도 생각해야 하지만 또 한 가지 고려할 것이 있습니다. 즉, 만약 사울이 내려온 다음에 그들
이 다윗을 잡아주지 아니하면 사울이 그일라 사람들을 다 몰살시킬 기세이기 때문에 그들이 죽을 각오를 해야만 다윗을 잡아주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자기네가 사울에게 다 죽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다윗을 잡아 줄 것인가가 걸린 문제였습니다. 물론 다윗만 잡아 주면 그일라 사람들이 평안하고 잘 살 수가 있고 그렇게 하면 하나도 손해가 없고 핍박도 없습니다. 도리어 사울 왕한테 칭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안 잡아 주면 사울이 와서 그일라를 포위하고 그 성을 전부 다 멸망시키려고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자기들이 죽지 않으려고 다윗을 잡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죽기를 두려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함

그런데 이러한 환난 때에는 자기의 생명을 내놓지 않으면 왕이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을 안 잡아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아끼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다 잡아줍니다. 못 잡아 줄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기를 두려워하면 못 할 짓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자신을 죽인다고 하면 그때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하지 못할 일을 많이 하게 됩니다. 공산당 정권 때에 여기서 남로당원들이 이북에 많이 들어갔는데 이북에서 “숙청한다”고 하면서 남로당원들 중 유명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서 많이 죽였습니다. 그때 이강국 씨 같은 사람은 자기 아내가 앞장서서 죽였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들이 앞장서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왜 죽였는가 하면 만약에 죽이라고 하는데 안 죽이면 자기를 죽인다고 하므로 죽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죽지 않으려고 자기 남편 죽이는 데에, 자기 형제 죽이는 데에, 자기의 부모 죽이는 데에 앞장을 선 것입니다. 그러한 데에 앞장서지 않으려면 자기가 죽을 각오를 해야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을 각오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그일라 사람들도 다윗을 안 내주면 전부 다 몰살을 당하겠기에 내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죽을 고비에 빠지면 못 할 짓이 없습니다.

기도의 위력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상황을 다윗에게 미리 알게 해주셨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다윗이 잡혀 죽을 뻔했는데 그가 미리 하나님께 기도해 봄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기도해보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리 다 알게 해주십니다. 기도하고 항상 깨어있고 은혜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주시고 앞으로 오는 화를 면케 해주시고 또 앞길을 선한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기도하지 않고 인간의 생각대로 나가는 사람은 평지에 가다가도 그만 꺼꾸러져 죽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아무리 다윗과 같이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 안에 갇히는 함정에 빠진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벌써 적이 오기 전에 미리 다 피하게 만들어 놓으십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깨어서 새벽에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길 때에 특별 기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어려운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죽을 고비에서 건져주시고 함정에서 건져주십니다. 기도 안 하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 되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고비에서 건져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사 잡히지 않게 하심

본문 13-14절에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이 황무지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황무지 산골에도 유하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
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이 온다고 하고 그일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울의 손에 붙인다고 하므로 그일라에서 피하여 나갔는데, 이것은 사울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다윗이 그일라에서 나가 황무
지 요새, 십 황무지 산골 이렇게 사방으로 피해 다녔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매일 찾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붙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붙이시면 사람은 못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손에 붙이시면 다윗이 잡혀 죽을 것이나 하나님께서 붙이지 않으시면 사울이 아무리 매일 찾으려고 돌아다녀도 하나님께서 못 찾게 하십니다. 사울이 다윗이 없는 곳으로만 다니고 또 사울이 올 만하면 떠나게 만들고 또 돌아와서 찾다가 못 찾을 데로 가게 만들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든지 안 잡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만능으로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아무리 하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하면 딱 잡히는 곳으로만 갑니다. 그러나 하
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화를 다 면케 해 주시고 잡으러 다니는 사람에게 안 잡히도록 만들어 주시고 머리털 하나라도 상치 않도록 보호해주십니다.

3. 요나단이 다윗을 면회함

요나단의 신앙과 다윗과의 언약

본문 15-17절에 “다윗이 사울의 자기 생명을 찾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황무지 수풀에 있었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
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그 수풀 속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그 수풀에 피하여 있는 다윗을 찾아가 만났습니다. 만나서 요나단이 다윗으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습니다. 본문 17절에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수풀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들어가서 다윗을 만나 다윗이 피난을 다니느라 쓰러질 정도인데 찾아가 힘 있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든 것입니다. 다윗이 연약할 때에 가서 강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요나단이 참으로 좋은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연약할 때에 가서 힘 있
게 도와주는 일이 귀한 일입니다. 수풀 속, 찾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다윗을 찾느라고 요나단이 많이 힘을 쓰고 수고했을 것 같습니다. 요나단이 수고하는 가운데 찾아 만나서 연약한 가운데 있는 다윗이 힘있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주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입니다. 또 자신도 가장 선하고 귀한 일을 한 것이고 다윗에게는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일이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했습니다. 다윗의 생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고 어느 순간에 잡힐지 모르는데 가서는 “너는 잡히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니 다윗에게 그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요나단이 하는 말이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내 부친 사울이 너를 잡으러 다녀도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을 요나단이 어떻게 알았습니까?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라는 말이 그 다음에 나오는데 요나단이 다윗이 왕 될 것을 알았습니다.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 다윗을 왕으로 삼아놓았는데 그것을 듣고 알았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하여간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요나단이 알고 자기 아버지 사울도 아는 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어 놓으셨는데 왕이 되기도 전에 죽이실 리가 있습니까? 아무리 사울이 찾으러 다녀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워놓으셨기 때문에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을 믿었습니다. 또 사울이 아무리 찾아서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워놓으셨는데 왜 죽이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우리 아버지 사울이 아무리 해도 너를 찾지 못하고 너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라고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보고도 너 역시 확실히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왕으로 세워놓으셨는데 네가 왜 죽겠느냐 죽을까 봐 두려워하지 말고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단의 생각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자기는 다윗 다음에서 나라를 받들어 나갈 자인 줄로 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안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잘 되고 이스라엘도 견고해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을 요나단이 알았습니다. 요나단이 자기보다 다윗이 더 나은 것을 다윗이 골리앗을 죽일 때에 알았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다윗이 자기보다 분명히 몇 배가 낫다고 여겼습니다. 자기는 나가지 못 했고 또 이스라엘 장사들이 전부 못 나갔고 또 자기 아버지 사울도 못 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나가서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과연 다윗이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되겠다, 앞으로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면 이스라엘 나라가 잘 되겠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나단은 ‘나보다는 다윗이 훨씬 더 낫다, 앞으로 다윗이 왕이 되어야 우리 이스라엘 나라가 바로 되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다’라고 생각을 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바로 순종하려 한 것입니다. 자기의 자격을 바로 알고 다윗을 바로 알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도 바로 알고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믿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다음에 요나단을 왕으로 세우려는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 사울은 자기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요나단이 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왕이 될 수 있지만 자기가 왕이 되어서는 이스라엘을 건질 수가 없습니다. 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자
기보다 나은 사람이 왕이 되어야지 자기가 왕이 되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 그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 또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이어야 하며 그래야 하나님의 일이 잘 되고 이스라엘 나라가 잘 되고 자기도 잘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로 알았기 때문에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요나단은 명예 영광심이 절대 없습니다. ‘나는 낮아져도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 드리고 이스라엘 나라만 잘 되면 족하다, 나의 위치만 잘 지키고 할 일만 바로 하면 이것으로 만족하다, 내가 왕이 되어서 무엇을 하겠느냐, 하나님의 나라만 잘 되어야지 내가 왕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잘못 되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 도리어 하나님께 화를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을 내세웠습니다.

본문 18절에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거하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언약을 하였는데 이 언약은 앞으로 다윗이 왕이 된 다음에 요나단에게 잘해주겠다는 그런 언약일 것입니다. 언약을 하고 다윗은 수풀에 거
하고 요나단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4. 십 거민이 다윗을 밀고(密告)함

본문 19절에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가로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편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있는 사울에게 가서 다윗이 하길라 산 수풀에 숨어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본문 20절에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 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붙일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윗을 왕의 손에 붙여주겠으니 왕은 내려오라고 하였습니다. 

5. 사울이 다윗을 자세히 탐지하여 보고하게 함

헛된 말로 그일라 사람들을 위해 복을 구한 사울

본문 21-22절에 “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혹이 내게 말하기를 그가 심히 공교히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 은적하였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너희가 나를 긍휼이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한다’고 하였는데 그들이 복을 받겠습니까? 이것은 이기주의입니다. 자기가 다윗을 잡으려고 하는데 그 일을 도와주었다고 복을 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악한 일 하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무슨 복을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복 받기를 원한다고 해서 다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복을 받을 믿음이 있어야 복을 받고 복을 받을 행위를 해야 복을 받는 것이지 복 받기를 원한다고 해서 다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대로 행해야 복을 받고 믿음을 가져야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 받기 원한다는 말을 할 때에 기뻐하면 안 됩니다. 축복해준다고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헛된 말입니다. 사실은 화를 받을 것인데 복을 받겠습니까? 행동은 화 받을 행동을하면서 말로 복을 받는다고 해야 어떻게 복을 받습니까? 요새 축복한
다고 하는 자들 중에 이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행동은 벌 받을 행동을 하면서 “축복한다, 복 받아라”라고 합니다. 복 받을 만한 행동이 없고 믿음이 없고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서 가서 축복해주면 복을 받는다고 해서 허튼 소리를 퍼부어 주는 것은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하고 복 받을 만한 믿음이 있고 복을 받을 만한 행위가 있어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행해야만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복 받는다는 말을 듣지 말고 함부로 그런 말을 해도 안 됩니다. 복을 받지도 못할 것을 어떻게 복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울이 다윗을 찾아 죽일 결심을 함

본문 22-23절에 “혹이 내게 말하기를 그가 심히 공교히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 은적하였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탐지하고 실상을 내게 회보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천천인 중에서 그를 찾아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자세히 은적을 살펴서 다윗이 어디에 숨었는지 숨은 곳을 잘 탐지하고 실상을 자신에게 알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천천인 중에서 그를 찾아내리라”고 하
였습니다. 여기서 ‘천천인’이라고 하였는데 천씩 천 번이면 천만입니다. 유다 백성이 그때 한 천만 명이 되는 모양입니다. ‘거기에서 찾아내서 그를 죽일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6. 다윗의 위기를 면하여 주신 하나님

다윗이 위급한 상황에 처함

본문 24-25절에 “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편 마온 황무지 아라바에 있더니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혹이 다윗에게 고하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
라가서는”이라고 하였습니다. 십 황무지에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왔는데 다윗은 거기에서 떠나 마온 황무지로 갔습니다. 이에 사울이 그리로 다윗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거의 다 잡히게 되었습니다. 본문 25절에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라고 하였는데 위에서
잡으러 오니까 이제는 아래로 내려간 것입니다. 다윗이 내려가기 힘든 바위로 내려가서 마온 황무지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사울이 듣고 또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 갔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6절에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사울의 군대가 그 산에 다 닥쳤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군대는 이쪽으로 가고 다윗의 군대는 산 저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제 산만 넘어오면 잡히는 것입니다. 에워싸고 잡으려고 하므로 조그만 있으면 잡히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육백 명이고 사울의 군대는 몇 천 명가량쯤 되었습니다. 사울의 군대는 산
이쪽에 있고 다윗의 군대는 산 저쪽에 있으므로 조금만 가서 삥 둘러 그들을 위하면 잡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살려주시는 하나님

본문 27절에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에게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다윗을 잡는다고 하다가 그들이 다 쳐들어오면 어떡하겠습니
까? 그래서 사울이 다윗 잡으려는 것을 그만 두고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러 갔습니다.

본문 28-29절에 “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블레셋 사람을 치러 갔으므로 그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급히 쳐들어오기 때문에 사울이 그들과 싸우러 갔습니다. 사울
의 군대가 다 가버리고 다윗이 잡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잡혔을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의 문제였습니다. 몇 시간만 있었으면 다 잡힐 뻔했는데 갑자기 블레셋 사람이 싸우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이 철수하므로 다윗이 안 잡힌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
을 다윗이 ‘셀라하마느곳’, 즉 ‘분리하는 바위’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한 패는 이쪽에 있고 한 패는 저쪽에 있어서 조금만 있었으면 잡힐 뻔한 것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고 그 지방의 이름을 ‘셀라하마느곳(분리하는 바위)’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다윗을 살려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몇 시간만 가만히 두셨으면 다 잡히겠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들이치게 만들어 사울의 군대가 다 그리로 가서 다윗으로 안 잡히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살려주는 것이 아니라 하
나님께서 살려주십니다. 구원해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다 죽게 되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블레셋 사라들이 들이치게 만드셔서 사울의 군대가 다 그리로 갔으므로 다윗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다윗이 피난을 다니면서도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해주었던 일, 아무리 곤궁하고 위태한 가운데에 있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위급할 때에 구원해준 일,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주는 일을 잊지 않았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다윗은 아무리 어려운 가운데에 있어
도 또 자기 편은 소수이지만 그일라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침노를 받아 다 죽게 되었을 때에 그들을 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군대가 많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했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연약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백성 구원하는 일을 해나갔습니다.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해주었는데도 그 다음에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올 때에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믿고 있으면 안 됩니다. ‘내가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해 주었으므로 그일라 사람들이 사울이 오면 나를 보호해주지 않겠는가? 그들이 내 편이 되지 않겠는가? 다 내 편이 되어 사울과 더불어 싸우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의 살 궁리를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일라 사람들도 자기의 살 궁리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안 잡아주면 자기네가 몰살을 하겠으므로 자기가 살기 위해 잡아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성품이 나빠서 잡아 주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다윗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해보고 거기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자리를 옮겼습니다. 우리도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나아가면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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