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와 야곱이 장자권을 매매함
창세기 25:1-34
창세기 25:1-34
1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2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 3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4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5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6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 7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라 8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9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11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 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 12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후예는 이러하고 13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14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15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16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십이 방백이었더라 17이스마엘은 향년이 일백 삼십 칠세에 기운이 진하여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18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 19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이삭은 사십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22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동이가 있었는데 25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세이었더라 27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 28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30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32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1. 아브라함의 별세
본문 1-8절에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라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는데, 후처가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삭을 낳았을 때 아브라함이 백세라고 하였고, 137세에 사라가 죽자 후처를 취하여 여섯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삭을 낳았을 때는 아브라함의 몸이 죽은 것과 같아서 생산할 수 없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다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그 후에도 아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힘을 주시면 걷어가지 않으시고, 계속 그 힘을 자기 힘으로 만들도록 해주십니다. 그리고 여섯 아들이 또 여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어 열조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기 전에 그 후처가 낳은 아들들과 이삭을 멀리 떨어지게 했습니다. 동방으로 갈라져 나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9-11절에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 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다음에 이삭과 이스마엘, 두 아들이 막벨라 굴에 장사를 했는데, 막벨라는 전에 사라가 죽었을 때에 사서 매장한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다음에 이삭과 이스마엘, 두 아들이 막벨라 굴에 장사를 했는데, 막벨라는 전에 사라가 죽었을 때에 사서 매장한 곳이었습니다.
본문 12-18절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후예는 이러하고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십 이 방백이었더라. 이스마엘은 향년이 일백 삼십 칠세에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마엘로부터 열두 아들이 나와서 열두 방백이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은 137세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아들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 거했습니다. 서자의 아들들이 동방으로 다 옮겨갔다는 것입니다. 앗수르로 가는 쪽에 이스마엘의 아들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2. 이삭이 두 아들을 낳음
본문 19-22절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사십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했는데, 20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습니다. 그런데 쌍둥이를 잉태하였고, 그들이 태 속에서부터 싸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데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본문 23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여쭤보니, 두 국민이 리브가의 복중에 있는데, 두 국민, 곧 두 민족이 그 복중에서부터 나뉜다고 하셨습니다.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는데,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24-26절에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동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세이었라”고 하였습니다. 결혼해서 20년 만인 60세에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맏아들은 털이 많아서 에서라고 이름을 짓고, 둘째 아들은 먼저 나온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해서 야곱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아들들이 다 컸습니다.
3. 장자의 명분을 매매함
본문 27-28절에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라서 늘 사냥한 고기로 아버지를 잘 대접했기에 아버지는 에서를 좋아했습니다. 또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라서 집에서 어머니께 잘 봉사하였으므로 어머니는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을 사랑한 것은 먹는 것이 좋고 자기에게 잘 대접한다고 좋아한 것입니다. 또 어머니는 야곱이 집에서 조용히 심부름을 잘하니까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가정이 바르게 서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둘을 똑같이 사랑해야 하는데, 왜 아버지는 큰 아들만 사랑하고, 어머니는 작은 아들만 사랑합니까?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본문 29-34절에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16-17절에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것은 망령된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망령되다는 것은 온전한 정신으로 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었습니다.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는데, 에서가 사냥을 갔다가 곤비해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동생이 죽을 쑤고 있으니까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고 했습니다. 팥죽이라 하지 않고 붉은 것을 먹게 하라고 했기 때문에 에서의 별명은 ‘붉은’이라는 뜻을 가진 에돔입니다. 그러자 야곱이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서가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고는 팔겠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의 요구대로 맹세한 다음에 그 팥죽과 떡을 먹고 그 대가로 장가의 명분을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긴 것이고,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산 것입니다.
4. 장자의 명분의 유익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음
그러면 장자의 명분이 무엇이기에 야곱이 사려고 애를 썼습니까?
우선 장자의 복은 아버지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입니다. 신명기21:17절에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장자의 권리는 호주를 계승하는 것이고, 또 두 몫을 받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여러 아들이 있지만, 장자에게는 두 몫을 준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갑절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했는데, 이것도 장자의 명분에 속하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이라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 장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큰 복입니다. 재산으로 하면 갑절로 받을 것이고 또 호적권을 갖게 됩니다. 호적권을 받게 되면 그 가족에 대한 감독권과 통솔권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모든 복을 물려받는 권한입니다. 그것이 장자의 명분, 장자의 복입니다. 장자의 명분과 복은 같이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받음
또한 장자의 명분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을 물려받는 것입니다. 창세기 12: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장자의 명분에 속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 곧 이름이 창대해진다는 것과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복 자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약속하셨는데, 이것을 물려받는 것이 장자의 명분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사면 장자의 복을 다 사는 것입니다.
야곱이 원한 장자의 명분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물려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약속 받은 장래의 것을 물려받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약속을 물려받는 것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고, 곧 장자의 명분입니다. 창세기 15: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였는데,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겠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나게 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사람이 많아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물려받는 장자의 명분입니다.
5. 야곱과 에서의 신앙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사모하고 에서는 그렇지 않음
유대 사람의 족보는 아브라함에게로부터 내려오는데, 아브라함의 신앙과 믿음,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복, 또한 아브라함에게약속하신 그리스도,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장래에 대한 신령한 것과 영원한 것, 창대케 된다는 것, 전부가 다 장자의 명분에 속하는 것입니다. 또 영원한 복, 신령한 복, 영적인 복, 하늘나라의 복, 전부 다 장자의 복에 속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러한 장자의 복을 사모했습니다. 자기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믿음을 통째로 받으려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아브라함이 살아간 그 복을 물려받으려고 힘썼습니다. 장래의 것과 신령한 것, 아브라함에게 말씀해주신 축복을 어떻게든 자기가 다 받으려는 강한 마음이 야곱에게 있었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사려고 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물질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아브라함의 순종,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한 일, 이삭이 하나님을 경외한 일, 그것들 전부를 야곱은 자기가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모든 복, 아브라함에게 허락한그리스도,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영원한 내세의 축복과 신령한 복을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하고 연구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에서가 좋아하는 팥죽을 만들어 팔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장자의 명분이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그저 장자라 하고 부르는 것뿐이지 그렇게 중요한 것인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배고파서 죽게 됐는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 있겠느냐고 하면서, 야곱에게 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보다 물질이 중요하고 먹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장자의 명분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하고 당장에 먹고 사는 것을 더 큰 문제로 생각했습니다. 먹는 문제, 육신 문제, 세상 문제가 첫째입니다. 그에게는 먹는 것이 중요하고, 육신이 잘 되는 것이 중요하고,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 반대입니다. 야곱은 먹는 것이 첫째가 아니고 장자의 복이 첫째입니다. 물질이 첫째가 아니고 장자의 복이 첫째입니다. 육신이 사는 것이 첫째가 아니고 장자의 복이 첫째입니다. 현실의 문제가 첫째가 아니고 내세와영원한 복이 첫째였습니다.
시험이 올 때 자신이 사모하는 것이 드러남
야곱과 에서는 결국 자기 원하는 대로 나가게 됩니다. 야곱은 야곱대로, 에서는 에서대로 소망하고 갈망하며 욕망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 나가는데, 여기서 에서와 야곱의 차이가 드러난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욕구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욕망대로, 소원대로 나아갑니다.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취합니다. 에서는 육신의 생명이 중요합니다. 물질이 중요하고 육신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야곱은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이 중요합니다. 장자의 복만 받으면 다른 것은 다 희생해도 괜찮고 모든 것을 다 희생해도 장자의 복만 받으면 된다는 신앙입니다. 물질보다, 세상 것, 육신적인 것, 육신의 생명보다도 장자의 복을 받아야 되겠다고 사모하는 마음이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잘 몰랐지만 위급한 때에, 결정적인 때에 나타납니다. 중요한 대목장에 가서, 곧 시험이 들어올 때, 육신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육신 중심으로 기울어지게 되고, 물질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물질 쪽으로, 세상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 쪽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하고, 아브라함의 신앙, 하나님의 허락한 세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말씀의 복을 받으려고 하며, 영원한 축복과 신령한 복을 받으려고 사모하는 야곱에게는 그것을 받을 기회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을 기회를 주십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이 중요한지 모르고 나아가기 때문에 마침내는 팔아먹게 되었습니다. 어느 것이 중요합니까?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중요합니까,하늘나라에서 잘 되는 것이 중요합니까? 세상 영광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하늘나라에서의 영광이 중요합니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이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몹시 기뻐합니다. 그런데 저는 ‘저 사람이 주일날 운동을 해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나는 주일날이라서 못합니다” 하고 탈락 되면 하늘나라에 가서 신령한 금 면류관을 받게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번 올림픽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금 면류관 감입니다. 야곱이었다면 그런 상은 내버렸을 것입니다.
러시아에 있는 진미라 전도사님의 아들이 바이올린을 잘하는데, 러시아에서 일등도 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합니다. 미국에도 음악 대회가 많이 있는데 거기에 출전하려고 학교에서 팀을 짜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 주일날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이 학생이 “나는 주일날 못하겠습니다”라고 했답니다. 한 사람이 못하면 다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시험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버틴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팀이 전부 다 못나갔다고 합니다. 그것 참 잘한 것 같습니다. 거기서 1등하면 굉장히 수익이 많았겠지만 말입니다. 요즘 금메달을 따면 3천 5백만 원 받고, 매달 100만원씩 받는다고 하는데, 주일날이라고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늘나라에 가면 몇 백배가 됩니다. 이것이 세상의 것이냐 하늘나라의 것이냐, 육신의 것이냐 신령한 것이냐, 육신의 복이냐 신령한 복이냐, 물질이냐 하나님의 복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시험입니다.
물질과 현세를 좇아가는 에서
에서도 안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에서도 하나님을 공경합니다. 에서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눈물 흘린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축복해준 다음에 에서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 축복을 자기에게도 해달라고 했습니다. 또한 효도하려고도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창세기 26:34-35절에 “에서가 사십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헷족속의 딸을 취했는데, 그가 이방 여인이므로 그들이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에게 근심이 되니까, 효도하기 위해서 다른 여자를 취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8:9절에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에서가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이스마엘의 딸 하나를 취해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효도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가르쳤을 텐데, 왜 믿음이 안 들어갔겠습니까? 에서는 물질주의이며 현실주의, 육체주의였기 때문입니다. 말씀보다 물질을 더 귀중히 여기고 육체의 배를 채우는 것이 목적인 사람은 에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신령한 것을 육체의 배가 부른 것보다 더 추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길이 다른 것입니다. 둘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이삭의 자손이며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달랐습니다. 이삭은 잘 믿는 가정이었고 또 맏아들을 더 좋아하니까, 만날 때마다 맏아들에게 잘 가르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 어머니도 아들에게 가르쳤겠지만, 에서에게는 믿음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있어도 물질주의 신자, 육체주의 신자, 세상주의 신자에게는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기를 버려야만 믿음이 들어가는데, 자기를 버리지 않고, ‘일단은 육체가 잘살아야 한다. 또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한다’ 하면서 내세보다 세상과 물질을 더 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에서가 그런 신앙을 가졌으므로 장자의 명분보다 팥죽 한 그릇으로 당장 자기의 곤란한 것을 면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현재 곤란한 것을 참으면서까지 장래 잘되는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야곱은 ‘지금 내가 못 먹고 양보해도 장래에 잘 돼야겠다. 영이 잘 되고, 또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다 받아야겠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복 가운데 그리스도를 내가 영접해야겠다’ 하는 믿음으로 팥죽을 형에게 양보한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었습니다. 믿음을 팔아먹고 신앙 양심을 팔아먹었습니다. 신앙을 팔아먹고 진리를 팔아먹고 하나님의 복을 다 팔아먹고 하나님께서 장차주신다는 약속의 복을 다 팔아먹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팔아먹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장자의 축복이고, 그것이 천하보다 귀한 것인데, 그것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었습니다. 요즘은 팥죽 한 그릇에 6~7천원 .정도 되는데, 그 가격에 팔아먹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요새 사람들도 몇 푼 안 되는 것에 신앙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일 안 지키고 돈 벌러 나가는 것은 진리를 팔아먹는 것입니다. 또 믿음 안 지키고 돌아가는 것은 믿음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약속의 복은 돈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인데 다 팔아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복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대대손손 한량없는 복을 받는 것인데, 그것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마 듣고도 잊어버리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먹는 것과 자기의 육신중심, 세상중심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에서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에서가 복 받기를 원해서 자기 아버지에게 축복해달라고 눈물 흘리며 애원했지만 근본이 잘못되었습니다. 근본이 물질주의이고 세상주의고 육체주의였습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런 육체주의와 세상주의가 많습니다. 믿는 것은 둘째로 하고 세상이 첫째, 물질이 첫째, 자기가 첫째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해도 육체가 잘되는 것이 첫째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것이 첫째가 아니었습니다. 물질은 희생하더라도 아브라함의신앙을 계승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다 받으려고 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려고 하고, 아브라함의 축복의 나라, 신앙의 나라를 계승하려고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복이 이삭에게 갔고, 이삭의 복이 야곱에게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그러한 신령한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영적 신앙이 있는 사람, 내세의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사모한 야곱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은 에서와는 달리 야곱이 사려고 애를 쓴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아브라함의 신앙을 물려받아야겠다는 것이 장자의 명분을 사모하는 것이고, 또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약속을 다 받아야겠다는 것은 영원한 것을 받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지키고 말씀지키고, 아브라함처럼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잘못 되어도 내세가 더 잘되는 것입니다. 육신이나 물질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중요합니다. ‘말씀이 중요하다. 말씀이 생명이다. 말씀대로 믿어야 되겠다’는 신앙이 장자의 명분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받도록 해주십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신앙을 받으려고 하면 우리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도 우리가 받으려고 하면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받는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주신 그 내용의 복을 다 물려받는 것입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계승하는 것, 곧 아브라함에게 허락해 준 그리스도를 자기가 계승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브라함에 허락한 그 나라를 계승하는 일이 장자의 명분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귀히 여기며 그토록 받으려고 애를 썼고, 물질을 희생하면서까지 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장자의 명분을 사모하는 신앙을 가지고 장자의 복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에서와 같이 팔아먹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 팔아먹는 자, 진리를 양보하는 자, 신앙 양심을 팔아먹는 자, 하나님을 팔아먹는 자가 되면 불쌍한 자인 것입니다. 망령된 자가 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복에서 다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교훈삼아 어떻게 하든지 장자의 축복을 받고자 사모하고 그 복에 반드시 참여하는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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