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4일 토요일

레위기 27:1-31 무르는 법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무르는 법
레위기 27:1-31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3너의 정한 값은 이십세로 육십세까지는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 4여자이면 그 값을 삼십 세겔로 하며 5오세로 이십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이십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십 세겔로 하며 6일개월로 오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은 오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은 삼 세겔로 하며 7육십세 이상은 남자이면 그 값을 십오 세겔로 하고 여자는 십 세겔로 하라 8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너의 정가를 감당치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의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 9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 10그것을 변개하여 우열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생축으로 생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며 11부정하여 여호와께 예물로 드
리지 못할 생축이면 그 생축을 제사장 앞으로 끌어 갈 것이요 12제사장은 그 우열간에 정가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 13그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라 14사람이 자기 집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제사장이 그 우열간에 정가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 15그 사람이 자기 집을 무르려면 정가한 돈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자기 소유가 되리라16사람이 자기 기업된 밭 얼마를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두락수대로 정가하되 보리 한 호멜지기에는 은 오십 세겔로 계산할지며 17그가 그 밭을 희년부터 구별하여 드렸으면 그 값을 네가 정한 대로 할 것이요 18그 밭을 희년 후에 구별하여 드렸으면 제사장이 다음 희년까지 남은 연수를 따라 그 값을 계산하고 정가에서 그 값에 상당하게 감할 것이며 19밭을 구별하여 드린 자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한 돈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그것이 자기 소유가 될 것이요 20그가 그 밭을 무르지 아니하려거나 타인에게 팔았으면 다시는 무르지 못하고 21희년이 되어서 그 밭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여호와께 바친 성물이 되어 영영히 드린 땅과 같이 제사장의 기업이 될 것이며 22사람에게 샀고 자기 기업이 아닌 밭을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렸으면 23너는 정가하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희년까지 계산하고 그는 너의 정가한 돈을 그 날에 여
호와께 드려 성물을 삼을지며 24그 밭은 희년에 판 사람 곧 그 기업의 본주에게로 돌아갈지니라 25너의 모든 정가를 성소의 세겔대로 하되 이십 게라를 한 세겔로 할지니라 26오직 생축의 첫새끼는 여호와께 돌릴 첫새끼라 우양을 물론하고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는 구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 27부정한 짐승이면 너의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하여 속할 것이요 만일 속하지 아니하거든 너의 정가대로 팔지니라 28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29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30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31사람이 그 십분 일을 속하려면 그것에 그 오분 일을 더할 것이요

1. 여호와께 사람을 드리기로 서원했을 때 속전으로 드리는 법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 사람이 성전에서 일 하기로 약속했다는 뜻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사람을 하나님께 바쳐서 앞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서원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녀 중 남자 아이 하나를 교역자가 되게 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렸을 때 그 아이를 바쳐서 하나님을 위한 일꾼이 되게 하겠다고 서원을 했는데, 아이가 자라서 교역자의 길로 나가지 않았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기를 때에는 ‘이 아이를 앞으로 교역자로 바치겠습니다’ 하고 길렀지만, 그 아이가 성장하여 교역자의 길로 갈 수 없게 된
경우에는 본문의 말씀에 있는 법대로 하면 됩니다. 즉, 돈으로 속전을 내면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다가 못 드렸으니 대신 돈으로 속전을 내는 것입니다.

본문 3-7절에 “너의 정한 값은 이십세로 육십세까지는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삼십 세겔로 하며 오세로 이십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이십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십 세겔로 하며 일개월로 오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은 오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은 삼 세겔로 하며 육십세 이상은 남자이면 그 값을 십오 세겔로 하고 여자는 십 세겔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속전은 이십 세로 육십 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이 은 오십 세겔이고, 여자는 삼십 세겔을 내라고 했습니다. 은 오십 세겔이 얼마입니까? 세겔은 경중(輕重)이 있다고 합니다. 경형과 중형이 있는데, 중형은 한 세겔이 14그램이고, 경형은 한 세겔에 7그램이라고 합니다. 14그램이면 세 돈 반쯤 됩니다. 은 한 돈에 2,000원쯤 하므로 한 세겔은 7,000원쯤이 됩니다. 이러한 계산으로 은 오십 세겔이면 35만원쯤
이 됩니다. 사람 하나에 35만원이니 아주 싼 값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싸게 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 나이가 어리면 더 쌉니다. 오 세로 이십 세까지는 남자이면 이십 세겔이고, 여자이면 십 세겔입니다. 또 일 개월에서 오 세까지는 남자이면 오 세겔이고, 여자는 삼 세겔입니다. 그리고 육십 세 이상은 남자이면 십오 세겔, 여자는 십 세겔입니다. 이렇게 속전을 내라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너의 정가를 감당치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의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별과 나이에 맞게 정해진 대로 속전을 내야하는데, 서원자가 가난해서 그렇게 낼 형편이 못 되면, 제사장에게 가서 사정을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사람의 가난한 형편을 참작해서 조금 적게 물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특별히 생각하셔서 가난 때문에 무엇을 못 하는 일이 없도록 이렇게 사랑으로 이 법을 정해 주셨습니다.

2. 생축으로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한 경우

본문 9-10절에 “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 그것을 변개하여 우열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생축으로 생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생축은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했던 것을 바꾸지 못합니다. 바꾸려고 하면 둘 다 가져다가 바쳐야 합니다. 둘 다 거룩하다면 둘 다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바치기로 했다가 못 바칠 때에는 이십 세 이상 오십 세까지의 경우 오늘날의 35만원에 해당하는 은 50세겔을 하나님께 가지고 와서 바치라고 하셨습니
다. ‘우리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하다가 못 바치기 때문에 돈을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하면서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짐승의 경우 소나 양이나 무슨 다른 짐승들을 기르면서 하나님께 바치려고 작정을 했으면 그것을 꼭 바쳐야 합니다. 다른 것과 바꿀 수 없습니다. 바꾸면 둘 다 가져다가 바쳐야 합니다. 

본문 11-13절에 “부정하여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못할 생축이면 그 생축을 제사장 앞으로 끌어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우열간에 정가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 그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부정하여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못할 생축들이 있습니다. 가령 나귀나 노새 따위는 부정해서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없는 짐승들입니다. 또 토끼나 새김질하지 아니하고 쪽발이 갈라지지 아니한 짐승들도 하나님 앞에 부정한 짐승들입니다. 이러한 짐승들은 하나님께 바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부정한 짐승들은 직접 하나님 앞으로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제사장에게 가져갑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우열 간에 정가를 매기고 그 정가에서 오분의 일을 더해서 하나님께 바치면 됩니다.

3. 자기 집을 드리기로 했다가 무르는 경우

본문 14-15절에 “사람이 자기 집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제사장이 그 우열간에 정가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 그 사람이 자기 집을 무르려면 정가한 돈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자기 소유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집을 바치려고 하나님께 작정을 했는데, 무를 생각이 들면 그 집의 정가를 매긴 다음에그 값을 제사장에게로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값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하나님께 바치면 됩니다. 가령 집값이 천만 원이라고 하면, 그 값의 오분의 일인 이백만 원을 보태 천이백만 원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집값에 더한 오분의 일은 벌금에 해당합니다. 한 번 작정했다가 변경한 것에 대한 벌금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번 작정한 다음에는 어지간하면 그대로 해야 합니다. 변경하지 말고, 작정한 그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벌금의 정도
를 떠나 한 번 벌금 문 것은 벌금 문 것으로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만큼 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한 것을 부득이하여 변경할 경우에라도 그 만큼 벌을 받을 것으로 알고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 앞에 작정한 것은 그대로 이행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분의 일을 더하여 바쳤다고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내 그것이 벌금으로 남습니다. 벌 받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한 번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한 것은 그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벌금을 내지 않고 마음도 평안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또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자체가 은혜인 것입니다. 바치는 사람이 복 된 사람입니다. 어머니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젖 뗄 무렵 아이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랬더니 사무엘의 어머니가 얼마나 복을 받았습니까? 또 사무엘이 얼마나 복을 받았습니까? 또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잘 되었습니까? 다 잘 되었습니다. 또한 동방박사가 무엇을 바쳤습니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예수님께 나귀를 바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큰 복을 받았습니다. 나귀까지 매우 영광스런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귀를 타시고 영광 나타내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치는 것이 하나님께 복 받는 길입니다.

4. 전토를 드리기로 했다가 무르는 경우

본문 16-21절에 “사람이 자기 기업된 밭 얼마를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두락수대로 정가하되 보리 한 호멜지기에는 은 오십 세겔로 계산할지며 그가 그 밭을 희년부터 구별하여 드렸으면 그 값을 네가 정한 대로 할 것이요 그 밭을 희년 후에 구별하여 드렸으면 제사장이 다음 희년까지 남은 연수를 따라 그 값을 계산하고 정가에서 그 값에 상당하게 감할 것이며 밭을 구별하여 드린 자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한 돈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그것이 자기 소유가 될 것이요 그가 그 밭을 무르지 아니하려거나 타인에게 팔았으면 다시는 무르지 못하고 희년이 되어서 그 밭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여호와께 바친 성물이 되어 영영히 드린 땅과 같이 제사장의 기업이 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밭에 대하여 벌금으로 책정된 돈을 해마다 물어 나가다가 그 밭을 팔 생각이 나면, 밭을 아주 팔아서 남은 돈을 다 물어야 합니다. 또 돈을 물어도 그 밭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희년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50년 만에 희년이 돌아오면 밭은 원 주인에게 다 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바치기로 하고 그 값을 물어 나가다가 중간에 팔아먹은 사람은 희년이 되어도 그 밭을 되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벌입니다. 하나님께 바치기로 하고 그 값을 계산해서 물어 나가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바치려고 한 것을 다른 사람
에게 팔아먹었으므로 거기에 대한 벌이 있는 것입니다. 희년이 되도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밭은 제사장의 소유가 됩니다. 

본문 22-24절에 “사람에게 샀고 자기 기업이 아닌 밭을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렸으면 너는 정가하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희년까지 계산하고 그는 너의 정가한 돈을 그날에 여호와께 드려 성물을 삼을지며 그 밭은 희년에 판 사람 곧 그 기업의 본주에게로 돌아갈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기업으로 받은 것이 아니고 딴 지파에게서 산 밭을 하나님께 바칠 생각이면, 그 밭의 정가대로 제사장이 희년까지 계산하여 그 돈을 여호와께 드리면 됩니다. 그리고 희년이 되면 밭의 본 주인에게 돌려보냅니다. 기업의 본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밭을 사서 하나님께 바쳤어도 희년이 되면 본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주라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너의 모든 정가를 성소의 세겔대로 하되 이십 게라를 한 세겔로 할지니라”고 하였는데, 이십 게라를 한 세겔로 계산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세겔은 7그램, 중형으로는 14그램입니다.

5. 생축의 첫 새끼는 여호와의 것임

본문 26-27절에 “오직 생축의 첫 새끼는 여호와께 돌릴 첫 새끼라 우양을 물론하고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는 구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짐승이나 새끼를 낳으면 제일 처음 낳은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애굽인에게 내리신 장자의 재앙 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장자 재앙 때 애굽인의 첫 소생은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것만을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새끼를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으셨기 때문에 죽이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첫 새끼는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알고 아예 하나님께 바칠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경우 팔지 못하고 속하지도 못합니다. 무조건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바꾸지 못 합니다. 그대로 드려야 합니다.

본문 27절에 “부정한 짐승이면 너의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하여 속할 것이요 만일 속하지 아니하거든 너의 정가대로 팔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부정한 짐승일 경우에는 부정한 짐승을 팔아서 바치든지 팔 생각이 없으면 정가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6. 여호와께 아주 바친 것들에 대하여

본문 28-29절에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아주 바친
것은 속하지 못하며 죽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주 바친 자’는 원어로 ‘헬렘’이라고 하며 ‘저주 받아 죽게 됨’의 뜻이 있습니다. ‘아주 바친 자’는 ‘저주 받아 죽게 되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저주 받아 죽게 된 자는 다시 속하지 못하고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나안 족속 같은 사람들입니다.

7. 십일조에 대하여

본문 30-31절에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사람이 그 십분 일을 속하려면 그것에 그 오분 일을 더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땅의 곡식이나 나무 과실의 십분의 일을 돈으로 바치려면 얼마를 바치면 됩니까? 오분의 일을 더해서 바쳐야 합니다. 가령 곡식 백 가마니를 수확했으면 십일조는 열 가마니입니다. 그런데 그 열 가마니를 돈으로 바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가마니에 사만 원씩이라고 하면 열가마니에 사십만 원입니다. 즉, 사십 만원의 오분의 일인 팔 만원을 더해서 모두 사십팔만 원을 바치면 됩니다. 그러나 곡식이나 열매 등을 그대로 바칠 때에는 십분의 일만 바치면 됩니다. 하나님께 돈으로 바칠 때에 오분의 일을 더해서 바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소나 양에 대해서, 본문 32-34절에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 그 우열을 교계하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속하지 못하리라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양이나 소를 먹여서 그 십분의 일을 바칠 때에는, 막대기 하나를 건너 잡고 짐승들로 하여금 그 아래로 지나가게 해야 합니다. 소나 양이 막대기 아래를 지나갈 때에 헤아려서 열 번째 지나가는 것을 잡아 하나님께 바치면 됩니다.
그렇게 사람이 보기에 좋은 놈, 큰 놈, 작은 놈의 여부를 떠나 열 번째로 지나가는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열 간에 바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열 번째 지나가는 것이 부족한 것이 있어도 바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대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아브라함 때부터 드렸습니다. 창세기 14장 18-20절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
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람이 멜기세덱이라는 제사장을 만나 그 제사장에게 자신의 얻은 것들의 십분의 일을 바친 일이 십일조의 시작입니다.
또 십일조는 레위 사람, 즉 제사장을 위해서 바친다고 했습니다. 민수기 18장 21절에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 족속은 세상의 일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십일조로써 그들의 생활비를 보장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날 교인들도 먼저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십일조는 무엇에 쓰는가 하면 교역자들의 생활비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환난 때, 교회가 모이지 못할 때에도 십일조를 떼어서 교역자의 생활비로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자기 가까운 사람에게만 드리지 말고 원리원칙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자기를 인도하는 교역자에게 물론 주어야 합니다. 또 자신이 과거에 성경을 배우고 은혜를 받았던 교역자, 자기를 인도해 준 그 교역자와 가족에게 혹 교회가 모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십일조를 주어야 합니다.

교역자 역시 십일조의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다. 느헤미야 10장 38절에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하나가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십일조의 십분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골방 곧 곳간에 두되”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 받은 레위 사람들은 거기서 또 십일조를 떼어서 하나님 앞에 바치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받은 교역자들도 그것에서 다시 십일조를 떼어 하나님의 곳간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은 대제사장에게 가져다주는 일도 있었는데, 레위 사람이 받은 십일조에서 다시 십일조를 떼어 하나님의 곳간에 두든가 아니면 대제사장에게 주는 두 가지 경우인 것입니다. 

신명기 14장 2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
는데, 또 그 십일조를 나누는 십일조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성전 있는 곳에 가서 여러 사람과 나누는 십일조가 있는데, 삼년마다 십일조를 드려서 그 십일조를 나누는 것입니다. 신명기 26:12절에 “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제 삼년마다 십일조를 또 떼라는 것입니다. 삼년마다 십일조를 한 번 더 떼서, 그것으로 성전에 가서 먹는 일도 하고 다른 사람 도와주는 일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 십일조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원 십일조는 자기가 나가는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쳐야 합니다. 원 십일조에서 떼서 구제하거나 다른 곳을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가지고 누구를 구제하거나 다른 교회를 도와주는 일, 개척교회를 하는 일, 교회 기념물을 세우는 일 등은 하나님 앞에 다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남을 돕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가운데 빠진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또 다시 말하지만 십일조는 자기가 나가는 교회에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자기가 나가는 교회에 온전히 바치는 것이 합당합니다. 자기가 나가는 교회, 은혜를 받는 교회, 자기가 섬기는 교회에 십일조를 온전히 바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로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물론 매번 떼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매번 떼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12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화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 바치는 생활을 하면 복 받습니다. 십일조를 바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바치지 아니한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면 반드시 저주받는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매 맞을 날이 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재산은 구멍 뚫어진 전대에 담아진 것과 같아서 다 빠져나갈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재산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치시면 재산은 하루 아침에 다 없어집니다. 이북에서 부자 교인들이 십일조를 안 드리고 돌아가다가 하루 아침에 재산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재산이 자기 살을 먹는다고 했는데(약 5:3),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안 드리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 받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의 가지고 있는 것을 깨뜨리십니다.
또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온전한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다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다 하나님께 바쳐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즉, 온전한 십일조가 되려면 소득의 십분의 일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다 하나님께 바쳐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십일조를 하나님께 가져다가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것으로 모두 하나님께 바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아야 합니다. 자기의 몸도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하나님께 몸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돈만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로 바치는 돈에 대하여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자기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바치고 그 다음에 연보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정신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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