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벧엘에서 계시를 받음
창세기 28:1-14
1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2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3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었더니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미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6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7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9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10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세기 28:1-14
1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2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3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었더니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미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6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7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9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10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 이삭이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냄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게 됨
본문 1-2절에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밧단아람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장자축복을 받고 형을 피하여 쫓겨가는 길입니다. 야곱이 쫓겨난데에는 야곱이 잘못한 것도 포함이 됩니다. 인본주의를 쓴 것 때문에 핍박받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인본주의를 안 썼다고해도 쫓겨나게 되어있습니다. 인본주의를 안 써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에서가 미워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기 때문에 에서가 미워하는 것도 있지만, 장자의 축복은 장자인 에서가 받아야 되는데 동생이 받았기 때문에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다고 하였습니다. 인본주의를 안 쓰고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해 주었다고 해도 여전히 미워하고 핍박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인본주의를 쓴 까닭에 형을 더 격노하게 했고 핍박이 커졌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게 됨
본문 1-2절에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밧단아람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장자축복을 받고 형을 피하여 쫓겨가는 길입니다. 야곱이 쫓겨난데에는 야곱이 잘못한 것도 포함이 됩니다. 인본주의를 쓴 것 때문에 핍박받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인본주의를 안 썼다고해도 쫓겨나게 되어있습니다. 인본주의를 안 써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에서가 미워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기 때문에 에서가 미워하는 것도 있지만, 장자의 축복은 장자인 에서가 받아야 되는데 동생이 받았기 때문에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다고 하였습니다. 인본주의를 안 쓰고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해 주었다고 해도 여전히 미워하고 핍박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인본주의를 쓴 까닭에 형을 더 격노하게 했고 핍박이 커졌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여 보냄
본문 3-4절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 준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기를 빌었고, 특히 장자의 축복인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은 그리스도에 대한 복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야곱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장자의 축복을 주고 또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지금 우거하는 가나안 땅을 야곱에게 주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장자의 명분과 장자의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 곧 장자의 축복은 장차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신령한 복입니다. 그것을 야곱이 받았기 때문에 육신에 속한 에서가 핍박을 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받은 까닭에 야곱은 피난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가는 길은 무슨 길이라고 하였습니까? 피난 가는 길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에게 핍박을 받아서 피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첫째가 핍박이고 둘째가 피난입니다. 무엇 때문에 핍박을 받습니까? 장자의 축복을 받은 까닭에, 또 장자의 축복으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핍박을 받았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에게 핍박을 받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육에 속한 자가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신령한 자를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9절에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또 에서와 야곱이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함께 못 삽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육체를 따라 계집종에게서 난 자와 신령한 자가 같이 있을 수가 없다고 하시며 육체를 따라 난 아들인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30절에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내어 쫓으라’는 것은 육에 속한 자와 신령한 성도가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에 속한 자를 쫓아내라
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때와는 반대로 지금은 신령한 자가 쫓겨나는데, 야곱은 핍박을 받아서 피난을 가는 길입니다. 피난을 가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야곱을 불러서 “아브라함의 복이 네게 있길 원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해서 여러 족속이 네게서 나기를 원한다”고 축복하였습니다. 핍박을 받아서 쫓겨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고 갑니다. 장자의 축복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핍박을 받고 쫓겨서 피난 가는 길이지만 하나님의 복은 야곱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고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었더니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미 리브가의 오라비더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부친의 말대로 밧단아람에 사는 외삼촌 라반에게로 갔습니다.
2. 에서가 이스마엘의 딸을 취함
본문 6-9절에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 하는 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에서가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하여 본처인 가나안 사람의 딸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딸 가운데서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에서도 그 부모님께 효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부모님을 잘 섬기고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아내를 취한 것을 보면 효도하는 마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한 것은 야곱보다 에서가 더 잘한 것 같습니다. 야곱이 부모님께 효도한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아버지를 속이고 밧단아람에 가서 20년 동안 처갓집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부모님을 별로 공경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에서가 야곱보다 나은 면이 더 많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한 면이 나았고, 동생을 용서해 준 면이 더 낫습니다. 또 동생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진실하게 다 용서해준 것을 보면 너그럽습니다. 그렇지만 에서는 믿음이 없습니다. 인간적인면은 상당히 좋고 효도도 잘하고 용서하는 마음도 있는데,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인간적인 면은 에서만 못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효도하지 못하고 형도 속였습니다. 또 밧단아람에서 20년 동안 있다가 돌아올 때에도 형을 속였습니다. 형이 있는 가나안으로
따라간다고 하고는 숙곳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또 속였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 주신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인본주의 쓰고 죄 지은 대가는 세상에서 다 받습니다.
본문 6-9절에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 하는 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에서가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하여 본처인 가나안 사람의 딸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딸 가운데서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에서도 그 부모님께 효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부모님을 잘 섬기고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아내를 취한 것을 보면 효도하는 마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한 것은 야곱보다 에서가 더 잘한 것 같습니다. 야곱이 부모님께 효도한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아버지를 속이고 밧단아람에 가서 20년 동안 처갓집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부모님을 별로 공경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에서가 야곱보다 나은 면이 더 많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한 면이 나았고, 동생을 용서해 준 면이 더 낫습니다. 또 동생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진실하게 다 용서해준 것을 보면 너그럽습니다. 그렇지만 에서는 믿음이 없습니다. 인간적인면은 상당히 좋고 효도도 잘하고 용서하는 마음도 있는데,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인간적인 면은 에서만 못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효도하지 못하고 형도 속였습니다. 또 밧단아람에서 20년 동안 있다가 돌아올 때에도 형을 속였습니다. 형이 있는 가나안으로
따라간다고 하고는 숙곳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또 속였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 주신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인본주의 쓰고 죄 지은 대가는 세상에서 다 받습니다.
3.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잠
돌베개를 베고 잠자는 고난의 길
본문 10-11절에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잤습니다.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져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고 누워 자게 되었습니다. 신령한 믿음을 가진 까닭에 육에 속한 자에게 핍박을 받아 쫓겨 가는 길입니다. 부모님과 작별을 하고 미지의 지경을 향해서 가는 길입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는 알수 없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났습니까? 어머니는 다시 못 만났고 아버지는 다시 만났습니다. 떠날 때 어머니가 다시 데려오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형의 노가 풀리면 내가 사람을 보내서 너를 다시 데려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다시 못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영영 작별하고 가는 길이 된 것입니다.
돌베개를 베고 잠자는 것은 고난의 길입니다. 의지 할 데가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어 외롭고 홀로 가는 길입니다. 또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길입니다. 외삼촌댁까지 평안히 갈 수 있을지, 무사히 지내게 될지, 앞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예측 할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잠자는 생활은 핍박 받는 생활, 고난의 생활, 외로운 생활, 부모친척 고국산천을 다 떠나서 가는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생활입니다.
아무도 안도와 준다고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안도와 주기 때문에 기도를 더 많이 하였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안도와 주는 것 때문에 그날 밤에 기도를 많이 했고, 외로운 것 때문에 기도를 더 많이 했고 고통스러운 것 때문에 기도를 더 많이 했고, 핍박받
아 가는 길이기 때문에 기도를 더 많이 했고, 또 앞에 무슨 일이 닥칠지 예측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기도를 더 많이 하였습니다. 기도를 더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만 맡기고 나갈 수 있었고, 그렇게 한 까닭에 그날 밤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환난과 고통은 도리어 우리에게 기도를 많이 하게 합니다. 야곱도 환난을 당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잠잤기 때문에 기도를 더 많이 한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풍랑을 인하여 더 빨리 가고, 환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기도를 더 많이 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된 것입니다. 평안한 생활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환난과 핍박이 많은 것이 조금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고 기도를 조금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여기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못합니다. 만일 여기에 여관이 있어서 그 여관에서 대접을 받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좋은 이부자리에서 잤다면 계시를 받았겠습니까?
개꿈이나 꾸는 것이지 계시는 못 받습니다. 심령이 깨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신령한 세계에 들어갑니다. 우리도 믿음을 쓰려고 애쓰고, 기도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영이 깨어 있을 때에는 신앙의 단 꿈을 꿉니다. 그러나 마음을 푹 놓고 방종할 때에는 썩어진 꿈만 꿉니다. 야곱이 영이 깨어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잤으므로 이런 신령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믿음으로 간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붙들고 가는 길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가는 길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아 가는 길이기 때문에 기도를 더 많이 했고, 또 앞에 무슨 일이 닥칠지 예측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기도를 더 많이 하였습니다. 기도를 더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만 맡기고 나갈 수 있었고, 그렇게 한 까닭에 그날 밤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환난과 고통은 도리어 우리에게 기도를 많이 하게 합니다. 야곱도 환난을 당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잠잤기 때문에 기도를 더 많이 한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풍랑을 인하여 더 빨리 가고, 환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기도를 더 많이 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된 것입니다. 평안한 생활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환난과 핍박이 많은 것이 조금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고 기도를 조금 더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여기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못합니다. 만일 여기에 여관이 있어서 그 여관에서 대접을 받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좋은 이부자리에서 잤다면 계시를 받았겠습니까?
개꿈이나 꾸는 것이지 계시는 못 받습니다. 심령이 깨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신령한 세계에 들어갑니다. 우리도 믿음을 쓰려고 애쓰고, 기도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영이 깨어 있을 때에는 신앙의 단 꿈을 꿉니다. 그러나 마음을 푹 놓고 방종할 때에는 썩어진 꿈만 꿉니다. 야곱이 영이 깨어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잤으므로 이런 신령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믿음으로 간 것입니다. 장자의 축복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붙들고 가는 길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가는 길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성도에게 유익임
오늘날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생활은 이와 같은 생활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 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가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참된 믿음을 가지면 이런 고난의 길이 닥칩니다. 현재는 안 닥쳐도 이런 길이 앞으로 반드시 닥치게 됩니다. 찬송가에도 “내 고생 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돌베개를 베고 잠자는 것은 외롭고 고달픈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는 그런 길입니다. 자기 혼자 당하는 일입니다.
성도가 고통당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또 교역자들이 개척교회 하느라 고통당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개척교회 하느라고 고통당하고 먹을 것이 없고 도와 줄 사람이 없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게 됩니
다. 교회에 큰 시험이 들어오면 그 때에 보따리를 싸가지고 산에 가는 것입니다. 산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 하면, 그 때에 신령한 것을 많이 받게 됩니다. 평안한 가운데 있을 때에는 썩어지는 것입니다.
성도가 환난 당하는 것은 유익한 것입니다. 그 환난 때문에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환난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시편 119: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시편 119편 67절에 “고난당하
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는데, 왜 유익이라고 하였습니까?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는 것입니다. 또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그전
에는 방종하고 방탕하였으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잠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젊었을 때에는 고난을 좀 당해보아야 합니다. 젊어서 고난은 금 주고도 못 산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젊은 사람들이 개척교회를 하면서 고난을 좀 당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이 고려대학교를 나와서 신학교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개척교회 여섯
개를 세웠는데, 주를 위해서 고난당하는 길을 걸어 나가겠다고 각오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해서 다른 목사에게 주고, 자신은 다른 곳에 가서 또 개척해서 다른 목사에게 주고 다른 데로 갔다고 합니다. 누가 하나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너
무 고생이 많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산에서 기도하다 죽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다시 재출발을 했는데, 지금도 교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정신이 바로 되었습니다. 부인이 남편에게 아무리 십자가 노릇을 해도 죽자하고 기도하면 부인이 꼼짝하지 못합니다. 그것 때문에 못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핍박해도 ‘기도하다 죽자’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부인이 꼼짝 못합니다. 이기선 목사님도 댁에서 사모님이 바가지를 많이 긁었다고 합니다. 너무 바가지를 많이 긁으니까 쫓아내지도 못하고, 또 때리면 목사가 사람 때렸다고 소문 날 것이고, 그래서 금식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사나흘 동안 먹지 않고 금식을 하면 먹으라고 한답니다. 무엇이나 다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젊은 교역자들이나 조사들이 신학교 졸업해서 앞에 말씀한 죽을 각오하고 기도한 목사처럼 개척교회를 일곱 개 정도씩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얼마나 많아지겠습니까? 또 하늘나라에 가면 다 상을 받습니다. 교회를 개척 하는 가운데 고난을 많이 받는 것이 좋습니다.
국가적으로도 고난을 많이 받은 나라가 받은 것이 많습니다. 외국에서 한국교회 목사를 보내 달라는 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고난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 식민지 생활을 겪었고 공산당의 환난과 여러 가지 시련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제일 낫다고 합니다. 예레미야애가 3:27-28절에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고 고난당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평안한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
다. 모든 것이 잘 되고 평안하고 앞길이 술술 열려 나가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당하고 역경을 만나고, 막히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돌베개를 베고 자야 되고, 베개 벨 것도 없는 이런 고난의 길을 걸을 때에 하나님께서 신령한 것을 많이 주십니다. 약속하신 모
든 복을 이런 사람에게 다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자는 생활입니다. 많은 시련을 겪고 많은 고난을 받는 가운데 하나님께 받는 은혜와 체험이 많습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잠잤기 때문에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좋은 것입니다.
4. 야곱이 벧엘에서 계시를 받음
하나님의 계시가 야곱에게 꿈으로 나타남
본문 12-13절에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꿈으로 하나님께서 계시를 준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꿈으로 계시를 주신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특별계시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꿈으로 계시를 주시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에는 꿈과 음성과 환상과 우림과 둠밈 등을 통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계시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꿈은 보통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의 꿈과는 다른 꿈입니다.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까지 닿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 문이 열리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가게 합니다. 땅에서 하나님에게까지 통하게 하는 사닥다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으
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하나님 앞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고”라고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이 세상 모든 성도들이 교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사람에게 오고, 사람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와 교통하시게 됩니다.
장자의 축복의 내용은 그리스도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해준 축복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는 복입니다. 이 장자의 축복이 야곱의 꿈에 나타난 것입니다. ‘네가 이것 때문에 고난당했다’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습니다. 이 장자의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축복인데, 아브라
함에게 허락한 축복이 이와 같이 흘러 내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고,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이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해 주신 것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너 누운 가나안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다”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본문 14절에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네 자손’은 믿음의 자손을 가리킵니다. 미래에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많아지겠다는 것입니다. 땅의 티끌 같이 많아지고 동
서남북에 편만해 지고 땅의 모든 족속이 야곱과 그의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네 자손’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 3장16절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네 자손’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네 자손’을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복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에 편만하고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고 땅의 티끌같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많이 번성하게 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이루어짐
야곱이 인본주의를 안 썼어도 하나님께서 복중에서부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예정해 놓았는데(창 25:23), 아버지 이삭과 야곱이 잘못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정신을 안 차려서 잘못한 것입니다. 복중에서부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하셨으니까, 야곱에게 축복해 주겠다고 했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해 주겠다고 한 것은 진리를 버린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께서 아이들이 모태에 있을 때에 준 말씀을 버리고 장자에게 축복을 해주겠다는 것은 인간의 전통을 따라 간 것입니다. 전통을 따라 장자에게 축복을 해주는 것은 진리를 버리고 육신의 생각을 따라 간 것입니다. 전통과 육신의 생각과 인정을 따라서 장자에게 축복을 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삭은 먹을 것을 잘 해주는 큰 아들을 더 사랑하고 좋아했습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해 주겠다는 자체가 말씀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세워서 장차 하나님의 축복이 내려 갈 것을 알게 해 주셨는데, 그 말씀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전통과 인정과 먹자주의로
기울어 졌습니다. 음식을 얻어먹고 장자의 축복을 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금식을 하고 축복 해줘도 시원치 않은데, 음식을 얻어먹고 장자의 축복을 해주겠다는 것은 이삭이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맏아들 에서에게 축복해 주겠다고 한 것은 네 가지 잘못을 한 것입니다. 첫째는 말씀 버린 것, 둘째는 전통 따라간 것, 셋째는 인정 따라간 것, 넷째는 먹자주의로 먹고 해주겠다고 한 것이 잘못 됐습니다. 요즘도 아이들을 축복해 준다고 하면서 별미축복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별미를 먹고 나서 축복해준다’, ‘연보해야 축복해준다’, ‘연보 조금 더 낸 것 가지고 무슨 축복을 받겠다고 하느냐? 조금 더 가져와라’ 하는 축복은 다 잘못 된 것입니다.
야곱이 인본주의를 안 썼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일단 에서가 사냥을 해서 음식을 만들어 이삭에게 축복을 받으러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이 그것으로 에서에게 축복해 주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이것은 아니다’라고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축복해 주려고 해도 축복이 안 되게 만드셨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맏아들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해도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아들, 셋째, 넷째도 다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또 이새가 말하기를 양치는 조그만 아이 하나가 더 있는데 쓸 데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데려와 보라고 해서 다윗이 겨우 온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삭에게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을 것입니다.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려고 해도 입이 막혀서 축복이 안 나가게 만드셨을 것입니다. 축복이 에서에게는 안 나오고 야곱에게 술술 나오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요셉이 그의 두 아들을 야곱에게 데려갔을 때, 맏아들 므낫세에게 야곱의 오른손이 가도록 하였으나 야곱은 손을 어긋 맞겨 얹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라고 하였지만, 야곱이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라고 하면서 그대로 어긋맞겨 축복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팔을 어긋 맞기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인본주의를 안 썼어도 하나님의 예정이 틀림없이 반드시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에서가 짐승을 못 잡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에서가 해가 지도록 못 잡게 하고 그때 이삭이 야곱에게 음식을 가져오라고 해서 축복해 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될 텐데, 야곱이 인본주의 써서 환난을 조금 더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세 가지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잘못한 것 때문에 핍박받기도 하고, 장자의 축복 때문에 핍박을 받기도 하고, 장자의 축복과 인간의 잘못한 것이 더해져서 환난이 더 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여간 장자의 축복은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인본주의를 안 썼어도 하나님께서 복중에서부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예정해 놓았는데(창 25:23), 아버지 이삭과 야곱이 잘못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정신을 안 차려서 잘못한 것입니다. 복중에서부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하셨으니까, 야곱에게 축복해 주겠다고 했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해 주겠다고 한 것은 진리를 버린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께서 아이들이 모태에 있을 때에 준 말씀을 버리고 장자에게 축복을 해주겠다는 것은 인간의 전통을 따라 간 것입니다. 전통을 따라 장자에게 축복을 해주는 것은 진리를 버리고 육신의 생각을 따라 간 것입니다. 전통과 육신의 생각과 인정을 따라서 장자에게 축복을 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삭은 먹을 것을 잘 해주는 큰 아들을 더 사랑하고 좋아했습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해 주겠다는 자체가 말씀을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세워서 장차 하나님의 축복이 내려 갈 것을 알게 해 주셨는데, 그 말씀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전통과 인정과 먹자주의로
기울어 졌습니다. 음식을 얻어먹고 장자의 축복을 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금식을 하고 축복 해줘도 시원치 않은데, 음식을 얻어먹고 장자의 축복을 해주겠다는 것은 이삭이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맏아들 에서에게 축복해 주겠다고 한 것은 네 가지 잘못을 한 것입니다. 첫째는 말씀 버린 것, 둘째는 전통 따라간 것, 셋째는 인정 따라간 것, 넷째는 먹자주의로 먹고 해주겠다고 한 것이 잘못 됐습니다. 요즘도 아이들을 축복해 준다고 하면서 별미축복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별미를 먹고 나서 축복해준다’, ‘연보해야 축복해준다’, ‘연보 조금 더 낸 것 가지고 무슨 축복을 받겠다고 하느냐? 조금 더 가져와라’ 하는 축복은 다 잘못 된 것입니다.
야곱이 인본주의를 안 썼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일단 에서가 사냥을 해서 음식을 만들어 이삭에게 축복을 받으러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이 그것으로 에서에게 축복해 주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이것은 아니다’라고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축복해 주려고 해도 축복이 안 되게 만드셨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맏아들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해도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아들, 셋째, 넷째도 다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또 이새가 말하기를 양치는 조그만 아이 하나가 더 있는데 쓸 데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데려와 보라고 해서 다윗이 겨우 온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삭에게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셨을 것입니다.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려고 해도 입이 막혀서 축복이 안 나가게 만드셨을 것입니다. 축복이 에서에게는 안 나오고 야곱에게 술술 나오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요셉이 그의 두 아들을 야곱에게 데려갔을 때, 맏아들 므낫세에게 야곱의 오른손이 가도록 하였으나 야곱은 손을 어긋 맞겨 얹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라고 하였지만, 야곱이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라고 하면서 그대로 어긋맞겨 축복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팔을 어긋 맞기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인본주의를 안 썼어도 하나님의 예정이 틀림없이 반드시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에서가 짐승을 못 잡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에서가 해가 지도록 못 잡게 하고 그때 이삭이 야곱에게 음식을 가져오라고 해서 축복해 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될 텐데, 야곱이 인본주의 써서 환난을 조금 더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세 가지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잘못한 것 때문에 핍박받기도 하고, 장자의 축복 때문에 핍박을 받기도 하고, 장자의 축복과 인간의 잘못한 것이 더해져서 환난이 더 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여간 장자의 축복은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 위해 고난을 작정하고 나가야함
야곱이 이렇게 쫓겨나서 고난을 받게 된 것은 장자에 축복 때문입니다.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 때문에 형에게 미움을 받고 쫓겨나고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본주의를 써서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 것 때문에 조금 더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인본주의를 써서 강도가 좀 강해진 것뿐이지 인본주의를 안 썼다고 해도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형이 미워하고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핍박을 안 받으려면 장자의 축복을 내 놓으면 안 받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약속, 즉 아브라함의 신앙과 진리를 가진 까닭에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다른 것 때문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신령한 신앙과 말씀을 붙들고 따라가는 신앙에는 환난이 정해져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잘하면 조금 덜 받고, 사람이 잘못하면 조금 더 받는 것 뿐 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게 되고, 장자의 축복에 대한 신앙이 더 견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신앙과 진리 때문에 여러가지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진리 문제가 아닌데 사람이 잘못해서 받는 핍박도 있는데, 그것은 스스로 고쳐야 됩니다. 야곱의 경우와 같이 진리 문제와 자신의 잘못한 것이 더해져서 더 커진 핍박에 대해서 먼저는 자기 죄 삯으로 받는 줄 알아야 하고, 진리에 대해서는 양보하면 안 됩니다. 진리 때문에 받는 핍박과 고난은 당연히 받도록 정해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핍박을 피하려고 진리를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여러 가지 고난이 많이 있지만 아브라함에게 하락하신 약속의 복을 받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인 줄 알고 즐거워하고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고난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고, 그 고난 때문에 영이 깨어나게 되고, 더 하나님을 사모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언제나 이기며 반드시 성취됨
언제나 진리는 이깁니다. 야곱이 가진 진리는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진리인데, 그 진리는 반드시 이기고 또 이깁니다. 지금은 고난당하는 가운데에서 죽을 지경에 빠져서 아무 보잘 것이 없습니다.혼자서 돌베개를 베고 잠자고, 밤에 짐승이 와서 물면 죽을 수밖에 없는 풍전등화와 같은 야곱의 생명이지만, 야곱에게는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는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네 자손이 땅의 티끌과 같이 반드시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하고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즉, 고난이 많지만 진리는 이기고. 진리의 길은 마침내 복 받는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진리가 이긴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나가게 됩니다. 지금은 야곱이 혼자이고 돌베개를 베며 들에서 도적을 만날 수도 있고 짐승을 만나서 죽을 수도
있는 알 수 없는 일이 많지만, 그래도 야곱이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같이 하십니다. 또 야곱에게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는 반드시 이기고 또 이기고, 성취되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벌써 이겨 놓은 것이고, 또 계속해서 이 진리는 승리해 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좋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나갑니다.
지금 아무리 일이 안 되고 고통이 오고 다 틀어지는 것 같고 시시해지는 것 같지만, 진리는 이긴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성경말씀에 진리는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2절에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백마 타고 나온 운동은 이기고 또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구원 운동, 복음 운동은 절대 지지 않습니다. 구원운동은 절대 지는 법이 없고, 절대 실패가 없고, 이기고 또 이깁니다. 진리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진리만 있으면 이기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는 종자는 절대로 썩는 법이 없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면 더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진리는 반드시 이기고 반드시 성공합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많은 승리와 대승리와 최후승리는 진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신학교의 경우도 인가가 안 나오고 또 못하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시련이 많이 오지만 문제없습니다. 그래도 해보는 것입니다. 금년에도 인가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대학교 인가가 쉽지 않은데, 작년에 신학교의 경우 열 몇 건의 인가 신청이 모두 기각되었다고 합니
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기 위해서 인가서류를 제출했습니다. 인가를 내 주던지 안 내 주던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긴 것입니다. 설사 인가를 안 내준다고 해도 우리는 이기는 것입니다. 안 내줘도 공부 시켜야 합니다. 공부 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많이 있
습니다. 이 방법대로 해서 못하게 하면 저 방법대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르칠 것만 제대로 가르쳐 놓고 그 다음에 합격되면 목사 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인가 있는 대학교를 졸업해야 목사 된다는 말이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 세상국가에서 인정해 주는 사람만 목사 되라
는 성경 구절이 없습니다. 세상국가에서 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사실 진리운동은 세상국가에 제재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인가를 내주면 내주는 대로 하는 것이고, 또 안내주면 안내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계속해서 전파해 나갈 것이고, 마침내 이길 것입니다. 못하게 하지 못합니다. 진리운동이 망한 적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진리 운동을 막은 적이 많이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막을 수 있지만 끝까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반드시 진리는 이기고, 또 이기며 나가는 것입니다.
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기 위해서 인가서류를 제출했습니다. 인가를 내 주던지 안 내 주던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긴 것입니다. 설사 인가를 안 내준다고 해도 우리는 이기는 것입니다. 안 내줘도 공부 시켜야 합니다. 공부 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많이 있
습니다. 이 방법대로 해서 못하게 하면 저 방법대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르칠 것만 제대로 가르쳐 놓고 그 다음에 합격되면 목사 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인가 있는 대학교를 졸업해야 목사 된다는 말이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 세상국가에서 인정해 주는 사람만 목사 되라
는 성경 구절이 없습니다. 세상국가에서 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사실 진리운동은 세상국가에 제재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인가를 내주면 내주는 대로 하는 것이고, 또 안내주면 안내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계속해서 전파해 나갈 것이고, 마침내 이길 것입니다. 못하게 하지 못합니다. 진리운동이 망한 적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진리 운동을 막은 적이 많이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막을 수 있지만 끝까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반드시 진리는 이기고, 또 이기며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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