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심
출애굽기 3:1-12
1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7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8내가 내
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9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애굽기 3:1-12
1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7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8내가 내
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9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
사십 년간 양을 친 모세
본문 1절에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쳐 나와 미디안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 무리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호렙 산은 시내 산과 같은 산입니다. 모세가 양을 먹이면서 광야 서편으로 갔습니다.
사도행전 7장 22-23절에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나이 사십이 되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사십이 되도록 애굽의 학술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미디안에서 40년간 양을 쳤습니다. 양도 오래 친 것입니다. 일곱 살쯤 되기까지는
집에서 부모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배우고 만들어졌고, 그 다음에는 애굽의 학술을 사십 세까지 배웠으며, 그 다음에 미디안으로 도망 쳐서 사십 년 동안은 장인의 양을 쳤습니다. 사도행전 7장30절에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양을 사십 년 동안 친 것입니다. 사십 년이 찼을 때 천사가 불꽃가운데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40세에 나와 장인의 양을 40년간 쳤으니, 80세가 될 때 까지 양을 친 것입니다. 모세의 팔자도 아주 궁합니다. 태어난 지 석달 만에 나일강에 내다버려졌고, 애굽 궁전에서 자라나고, 미디안으로 도망쳤으며, 거기서 사십 년간 양을 쳤습니다. 양치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얼마나 비참한 가운데 있는지 모릅니다.
회개하여 변화된 모세
그런데 모세가 사십 년간 양을 치면서 한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면서 무엇을 했다고 했습니까? 물매 던지는 연습을 한 것입니다.
짐승이 오면 때리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다윗이 연습을 얼마나 잘 했는지, 물매를 던지면 호리(毫釐)라도 틀림이 없이 정확히 딱딱 맞추었습니다. 그만큼 연습을 잘한 것입니다. 사사기 20장 16절에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인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
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고 했습니다. 호리도 틀림이 없다는 것은 털끝 만큼도 어김이 없이 딱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연습을 잘 한 사람이 사사 때도 있었고, 다윗도 그 사람들만큼 연습을 해서 한 번 물매를 던지면 털끝만큼도 어김없이 딱 들어가 맞도록 한 것이 분명 합니다. 다윗은 양을 치면서 물매 던지는 연습을 한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짐승이 오면 때려잡는 훈련도 여러 해 동안 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윗은 양을 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어 살았고 또 신앙의 연단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골리앗과 싸우면서 물맷돌을 던지니까 골리앗의 이마에 딱 들어박힌 것입니다. 일호라도 틀림없이 맞추는 실력이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골리앗의 눈썹 사이를 맞추느냐, 눈알을 맞추느냐는 것은 다윗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어디를 맞추든지 단번에 쓰러집니다. 다윗이 이마의 중간에 맞춰서 쓰러뜨려야겠다 하고 몇 바퀴 돌리다가 내던지니까 던진 돌이 이마에 쏙 들어가 꽂혔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을 꺼꾸러뜨렸잖습니까? 다윗이 우연히 한 번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여러해 동안 연단을 많이 받아서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 모세는 미디안에서 사십 년 동안 무엇을 하였습니까? 분명히 무엇인가를 하였습니다. 무엇을 했겠습니까? 회개했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아무것도 모르고 날뛰며 자기가 하려고 사람 죽인 것을 회개했습니다. 회개를 사십 년 동안 한 것입니다. 또 자기가 완력으로 하려고 했던 것을 다 회개했습니다. 자기가 무엇인가 할 줄 알았던 것, 자기가 말과 행사가 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 하나님께 회개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말과 행사가 능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말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 회개하고 나니까, ‘나는 말 할 줄 모릅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회개하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계속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계속 사모하고 찾고, 또 찾고 계속 찾으며 나아가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좇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웠습니다. 창세기를 다 배운 것입니다. 2500년의 구원역사를 다 배웠는데, 얼마나 많이 배운 것입니까? 그 말씀을 묵상하고 새김질하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소망했습니다.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인도될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하신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바라보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만 사모하고,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인줄 알고, 과거에 제가 하겠다고 한 것을 다 회개한 것입니다. 사십 년간 회개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모하고 말씀을 좇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모했습니다. 이것은 열왕기상 14장 8절의 다윗의 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
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고 계속 사모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좇고 좇으며 사모함으로 계속 하나님을 찾고 또 찾으며 애를 많이 씁니다. 한 번 기도하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니고, 계속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영접하려고 합니다. 계속 하나님을 좇으려고 하고 계속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 하나님께 상달이 됐습니다. 모세가 몇 년 만에 상달이 됐습니까? 사십년 만에 되었습니다. 상달 되도록까지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도 하나님께 상달이 되고, 그 부르짖는 것도 하나님께 상달이 되고, 모세가 명령을 지켜 하나님을 사모하고 찾는 것도 상달이 되었습니다. 상달이 되도록까지 해야 됩니다. 중간에 그만두지말고 상달 되도록 까지, 사십 년이 되도록 계속해야 합니다. 마침내 상달이 되어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고 계속 사모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좇고 좇으며 사모함으로 계속 하나님을 찾고 또 찾으며 애를 많이 씁니다. 한 번 기도하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니고, 계속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영접하려고 합니다. 계속 하나님을 좇으려고 하고 계속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 하나님께 상달이 됐습니다. 모세가 몇 년 만에 상달이 됐습니까? 사십년 만에 되었습니다. 상달 되도록까지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도 하나님께 상달이 되고, 그 부르짖는 것도 하나님께 상달이 되고, 모세가 명령을 지켜 하나님을 사모하고 찾는 것도 상달이 되었습니다. 상달이 되도록까지 해야 됩니다. 중간에 그만두지말고 상달 되도록 까지, 사십 년이 되도록 계속해야 합니다. 마침내 상달이 되어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심
하나님께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심
본문 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모세에게 찾아왔습니다. 여호와의 사자, 곧 천사가 찾아왔지만, 실제는 여호와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난 것은 하나님께서 비의적(秘儀的) 현상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비의적 현상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알 수 있는 모양으로 나타내 보이시는 것을 말합니다. 천사는 천사인데 사실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이용해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야곱도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해서 이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야곱이 천사하고 씨름했습니다. 그런데 씨름에서 이긴 다음에 하나님을 이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천사를 이겼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천사는 천사인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빙자해서 찾아오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천사하고 씨름하였으나 하나님하고 씨름한 것입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천사가 이겼습니다. 천사가 하나님인데, 하나님께서 야곱한테 지시겠습니까? 천사가 이겼지만 야곱이 환도뼈가 부러지고 회개했으니 결국 야곱도 이겼습니다. 둘 다 이긴 것입니다. 야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니까 이긴 것 아닙니까? 또 하나님께서도 야곱을 복종시키셨으니까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은 둘 다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것은 힘이 세서도 아니고 기술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이기는 생활입니다. 하나님도 이기시고 야곱도 이기고, 둘 다 이겼습니다. 둘 다 이기는 씨름을 한 것입니다. 지는 씨름은 안 합니다. 이기고 또 이깁니다. 야곱의 씨름은 둘 다 이깁니다. 요새 둘 다 이기는 씨름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둘 다 이겼으면 비겼다고 하지, 이겼다고 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40년 간 광야 생활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찾은 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왔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온 것은 하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심
본문 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셨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이 하나님께서 찾아 온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 불이 붙는 것 처럼 보여진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셨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이 하나님께서 찾아 온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 불이 붙는 것 처럼 보여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셨다고 하였습니다. 레바논 백향목에 불이 붙은 것이 아니고, 떨기나무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불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떨기나무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떨기나무는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 같은 자가 다 떨기나무입니다.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은 다 떨기나무인 줄 알아야 합니다. 레바논 백향목은 애굽에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들은 애굽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종살이하던 자들인데, 떨기나무와 같이 아무 보잘 것 없는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아무 보잘 것 없는 떨기나무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셨으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찾아오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가 통달한 자를 쓰시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자, 약한 자, 미련한 자, 무식한 자, 없는 자,
멸시 받는 자들을 쓰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29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 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떨기나무 같은 자들만 모였습니다. 어디서 온 떨기나무입니까? 고향이 어디입니까? 우리가 다 떨기나무들입니다. 백향목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도 떨기나무고, 여러분도 떨기나무입니다. 뭐 볼 것 없는 사람들이 다 와서 앉아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 들어 보십시오. ‘나는 떨기나무가 아니고 레바논 백향목입니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 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없습니다. 다 떨기나무 같은 자들만 하나님께서 불러다가 모아놓으셨습니다. 떨기나무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떨기나무에 불이 붙으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떨기나무에 불이 붙으니 아주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빛이 나고 광채가 나고 아주 훌륭해졌습니다. 떨기나무들끼리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니까 아주 아름답고 귀하고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백향목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더 낫습니다. 백향목이 이 불 빛보다 아름답겠습니까? 떨기나무 가지마다 불빛입니다. 가시마다 불빛이고, 자잘한 가시까지도 전부 불빛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너무 아름다워서 모세가 ‘나도 구경 좀 해야겠다’ 하고 찾아간 것입니다.
떨기나무 가운데 불이 붙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황송하고, 얼마나 부끄러운 것 밖에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찾아오셔서 불이 붙으니까 떨기나무가 전부 황금으로 만든 것처럼 광채가 납니다. 금덩어리와 같은 광채가 납니다. 떨기나무가 얼마나 황송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찾아와 주신 것에 대해서 너무 황송하고 너무 부끄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니까 보잘 것 없었던 떨기나무가 이렇게 아름답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신을 발견함
모세가 큰 광경을 보러감
본문 3절에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 하는고 하는 동시에”라고 하였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으니까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나무가 되었습니다. 제일 존귀한 나무가 되었고, 영광스러운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하고 가게 되었습니다. 구경하러 간 것입니다. 너무 좋아서 너무 아름다워서 보러 갔
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나무가 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통 불이 붙으면 다 타고 사라지는데, 이 불은 사라지지 않고 전부 불빛이 계속 타오르는 것입니다.
모세가 큰 광경을 보러감
본문 3절에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 하는고 하는 동시에”라고 하였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으니까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나무가 되었습니다. 제일 존귀한 나무가 되었고, 영광스러운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하고 가게 되었습니다. 구경하러 간 것입니다. 너무 좋아서 너무 아름다워서 보러 갔
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나무가 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통 불이 붙으면 다 타고 사라지는데, 이 불은 사라지지 않고 전부 불빛이 계속 타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에 대해 너무 황송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큰 광경을 보리라.” 구경하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떨기나무마다 전부 불빛입니다. 금보다 더 아름답고 광채가 납니다. 그래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하고 찾아 갔습니다. 하나님 구경하러 찾아 간 것입니다. 구경 가운데 제일 좋은 구경은 하나님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무슨 구경이 좋다, 무슨 구경이 좋다 해도 가보면 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구경하는 것이 세계에서 제일 좋은 구경이고, 천상천하에 제일 좋은 구경이고, 역사적으로 제일 좋은 구경입니다.
하나님 구경이 제일 좋은 구경인줄만 아십시오. 한 번 하나님 구경하기 시작하면 눈이 다른 데로 안 갑니다. 거기만 다 가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시시합니다. 한국에서는 무슨 구경이 좋다고 합니까? 설악산이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설악산에 가면 돌멩이만 있고 골짜기만 있습니다. 또 뭐가 좋다고 합니까? 제주도랍니다. 제주도에 내가 6․25사변 때 살다 왔는데 좋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미국에 그랜드캐년이 좋답니다. 그런데 그랜드캐년에 가보니까 골짜기가 깊이 패여 나간 것입니다. ‘여기가 좋다, 저기가 좋다’라며 좋다고들 하는데, 세계에 좋은 곳이 없는 줄만 아십시오. 세상에는 다 시시한 것들만 있습니다. 사람도 누가 잘 생겼다고 하는데, 잘 생기기는 뭐가 잘 생겼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 구경, 하나님 구경이 제일 좋은 구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구경을 좀 하러 가야 되겠다.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구경을 좀 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몇 년 만에 하나님 구경했습니까? 모세는 사십 년 만에 구경했습니다. 빨리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회개를 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찾고, 그 다음에 점점 간구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서 상달될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구경이 하나님 구경인 줄 알고, 언제나 하나님을 구경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제일 즐거운 것은 무엇입니까? 술 먹는 사람들은 술을 한잔 쭈욱 들이키고 ‘카하~’ 하면서 즐거워합니다. 또 방탕하는 사람들은 방탕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방탕 하는 것이 뭐가 좋습니까? 방탕은 집안을 다 망하게 하는 길입니다. 시편 43:4절에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극락(極樂)이고 제일 즐겁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사는 것이 제일 즐겁고, 하나님 구경이 제일 아름다운 구경입니다. 또 하나님 말씀의 음성이 제일 즐겁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죽은 영혼을 소생시킨다고 했습니다(시 19:7; 23:3). 우리는 하나님 구경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 구경을 하였기 때문에 이제 거기서 떠나지 못합니다
모세를 부르시고 신을 벗으라고 하심
본문 4-5절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오는 것을 보시고 “모세야, 모세야”하고 부르시니, 모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계신 곳으로 점점 가까이 가니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4-5절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오는 것을 보시고 “모세야, 모세야”하고 부르시니, 모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계신 곳으로 점점 가까이 가니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하는 것은 성도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왜 거룩한 땅입니까?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기 때문에 거룩한 땅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거룩한 땅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사는 곳은 거룩한 땅입니다. 땅이 좋아서 거룩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니까 거룩한 땅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성도에게 있으니까 거룩한 땅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곳에서 삽니다. 성도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있고, 성도는 하나님과 같이 살기 때문에 거룩한 곳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신 벗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니까 거룩한 땅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성도에게 있으니까 거룩한 땅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곳에서 삽니다. 성도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있고, 성도는 하나님과 같이 살기 때문에 거룩한 곳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신 벗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신을 벗어야 종이 됩니다. 신 신고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은 종이 아닙니다. 자행자지(自行自止), 곧 제 맘대로 돌아다니는 것은 종이 아닙니다. 신을 벗으면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돌아다니려는 생각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완전한 종이 됩니다. 모세가 신을
벗는데 몇 년 걸렸습니까? 사십 년 걸렸습니다. 이제야 신을 벗게 되었습니다. 벗어버려야 됩니다. 신을 벗는 것은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죄를 점점 벗어버리고, 자기 성격을 점점 벗어버리고, 욕심을 점점 벗어버리고, 교만을 벗어 버리고, 이기주의를 벗어버리고, 완력으로 하려던 것을 다 벗어버려야 됩니다. 제가 하려던 것을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벗어버리면 종이 되고 안 벗어 버리면 종이 못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사람만 죽이고 그만 두는 것입니다. 벗어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 한다고 해도 사람만 죽이고 그만 둡니다. 벗어야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종이 되었는데, 이제는 신을 벗는 생활을 계속 해야겠습니다. 모든 것을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제가 하겠다고 한 것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기주의와 고집과 제 생각, 제 뜻대로 나갔던 것을 다 벗어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종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신을 벗으면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 신을 점점 다 벗어 버리면,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것입니다.
벗는데 몇 년 걸렸습니까? 사십 년 걸렸습니다. 이제야 신을 벗게 되었습니다. 벗어버려야 됩니다. 신을 벗는 것은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죄를 점점 벗어버리고, 자기 성격을 점점 벗어버리고, 욕심을 점점 벗어버리고, 교만을 벗어 버리고, 이기주의를 벗어버리고, 완력으로 하려던 것을 다 벗어버려야 됩니다. 제가 하려던 것을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벗어버리면 종이 되고 안 벗어 버리면 종이 못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사람만 죽이고 그만 두는 것입니다. 벗어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 한다고 해도 사람만 죽이고 그만 둡니다. 벗어야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종이 되었는데, 이제는 신을 벗는 생활을 계속 해야겠습니다. 모든 것을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제가 하겠다고 한 것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기주의와 고집과 제 생각, 제 뜻대로 나갔던 것을 다 벗어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종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신을 벗으면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 신을 점점 다 벗어 버리면,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는데 얼마나 황송합니까? 그래서 얼굴을 가렸다는 것입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들은 이렇게 황송해서 얼굴을 가리우게 됩니다. 그 다음에 신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아서 자기 신을 벗으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제가 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을 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신을 벗지
않았을 때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모세가 애굽에서 사람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신을 벗지 않고 제가 하겠다고 할 때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사람 죽이는 일 밖에 못합니다. 그러므로 신을 다 벗고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자기가 할 것이 하나도 없어야 됩니다. 자기는 전적무익하고 전적부패한 자로 알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만 이루어지도록 해야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너무나 황송해서 모세가 얼굴을 가리웠습니다.
4.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심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을 아시고 인도하여 내시기 위해 오심
본문 7-8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
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성도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우고를 알고”라고 하였으니, 그들의 근심과 걱정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 이르려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성도의 고통을 보시고, 부르짖음을 들어주시고, 그 우고를 다 알아주셔서 마침내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국에 있는 성도들의 고통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주시고, 부르짖는 것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이북에 있는 성도들이 고통을 많이 당합니다. 그들이 밤낮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 부르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고 또 고통을 알아주시고, 봐 주시고,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을 믿습니다. 기도할 때에 이북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많이 하십시오. 또 이북에도 교회를 세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버리시겠습니까? 싸라기 하나라도 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한 알갱이라도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 내어 아름답고 광대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내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땅은 아름답고 광대한 땅
입니다. 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런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얼마나 황송합니까?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백성들이 지금 다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간역과 중노동으로 인해서 학대를 받고, 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는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셔서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를 인도하시는 곳은 이런 곳입니다. 성도를 아름답고 광대한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찬송가에도 “참 아름다워라”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그곳은 어디를 가리킵니까?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아름다운 땅으로 주님이 인도해 주시고, 또 광대한 땅으로 성도를 인도해 주시고, 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꿀송이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사는 땅이 아름답고 광대한 땅인 줄 아십시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줄 아십시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고, 오늘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곳이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아름답습니까? 아름답습니다. 광대합니까? 광대합니다. 젖과 꿀이 흐릅니까? 젖과 꿀이 흐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젖과 꿀이 흘러내립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아직도 가나안 족속이 있습니다. 가나안, 헷, 아모리, 브리스, 히위, 여부스 족속이 있습니다. 그 곳으로 인도할 것인데, 그들을 점점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데, 그들을 정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지 못하
면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인도해도 거기서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족속을 정복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방해하는 자들, 원수들, 반대하는 자들, 마귀의 종들을 정복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나안 족속이 강해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다 정복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사람이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순종하면 그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면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인도해도 거기서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가나안 족속을 정복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방해하는 자들, 원수들, 반대하는 자들, 마귀의 종들을 정복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나안 족속이 강해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다 정복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사람이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순종하면 그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인도할 사명을 주심
본문 9-12절에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
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명을 주셨지만,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하여 자기는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정녕’ 모세와 함께 있을 것이니까 순종만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데 왜 안 되겠습니까? 순종만 하면 다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9-12절에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
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명을 주셨지만,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하여 자기는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정녕’ 모세와 함께 있을 것이니까 순종만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데 왜 안 되겠습니까? 순종만 하면 다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네가 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해서 시내 산까지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시내산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하셨습니다. 그곳까지 인도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발견한 곳까지 인도하십니다. 모세가 은혜 받은 곳, 모세가 사명 받은 곳까지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우리가 은혜 받은 데까지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발견한 것만큼 다른 사람을 그리로 인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만큼 인도할 수 있고, 자기가 하나님 안에 들어간 것만큼 하나님 백성을 그리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먼저 해야 됩니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말 안 듣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교인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합니다. 교인들은 말 안 듣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었는데, 제가 하나님 앞에 잡히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잡겠습니까? 자기가 먼저 하나님 앞에 잡히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못 잡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아이들도 자기 말을 안 듣습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교인들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교인들만 나쁘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나쁩니까? 목사가 나쁩니다. 문제는 교역자입니다. 자기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교인들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라’고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호렙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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