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안 신학을 한 모세
출애굽기 3:1-12
1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 하는고 하는 동시에 4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7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8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9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애굽기 3:1-12
1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 하는고 하는 동시에 4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7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8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9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심
40년간 미디안 신학을 한 모세
모세는 40년동안 애굽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애굽의 모든 학술을 다 배웠습니다. 그 다음에 40년간 미디안에 가서 미디안 신학을 했고, 그 후 40년은 나가서 일을 하였습니다. 학과를 40년에 마치고, 그 다음에 한 것은 미디안 신학이었는데, 이 미디안 신학이 아주 중요 합니다.
본문 1절에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라고 하였습니다. 미디안은 광야가 있는 곳이고, 산이 있는 곳입니다.
즉 거친 광야와 호렙산이 있는 곳인데, 도시도 아니고 사람이 사는 동네도 아닙니다. 그곳은 거친 광야 생활을 하는 곳이고 산중에서 수양하는 곳이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아무 보잘 것 없는 곳이지만 그 곳에서 얻은 것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미디안 신학을 하지 않
고 애굽에서 학술만 배웠으면 안 될 뻔 했습니다. 과거에 모세가 애굽에서 학술을 다 배운 다음에 자기가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 하겠다고 나갔다가 사람만 한 명 죽이고 말았습니다. 과거에는 자기가 하겠다는 것과 완력과 혈기가 가득 하였는데, 그대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미디안으로 쫓겨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40년간 미디안 신학을 하는 동안에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그 곳에서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사명을 주실 때까지 미디안 신학을 계속 해야 되겠습니다.
미디안 신학은 깊은 기도, 깊은 명상, 깊은 반성, 깊은 회개, 깊고 신령한 영적생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생활입니다. 40년 동안 과거의 모든 것을 반성하면서 깊은 회개를 한 것입니다. 과거에 자기가 하겠다고 한 것과 사람을 죽인 일과 자기가 무엇이든 할 줄 알았
던 것을 40년간 깊이 반성하며 회개를 하였습니다. 40년간 얼마나 많은 회개를 했는지 우리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가 한 것은 양을 치면서 기도한 것 밖에는 없습니다.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어디 갈 곳도 없어, 매일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명상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고 신
령한 세계를 찾았습니다.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도 모세가 미디안 신학을 한 것과 같은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신학교와 신학대학원에서 이렇게 해야 합니다. 신학교나 신학대학원 졸업한 후에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졸업 후에도 미디안 신학을 계속 해야 됩니다. 3년 신학공부 한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미디안 신학을 해야 쓸 만한 목회자가 나옵니다. 모세가 40년간 하였는데, 이제부터 우리도 미디안 신학을 할 작정을 해야 되겠습니다. 40년간 작정하고 하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
1) 떨기나무와 같은 자를 택하심
본문 2-3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 하는고 하는 동시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비의적(秘儀的) 현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모세가 큰 구경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이 큰 구경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일 아름답고, 광채가 나고, 영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구경은 하나님 구경입니다. 하나님 구경을 한번 해보면 세상 것은 다 분토와 같이 여겨지고 구경 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시나무에 불이 붙었으니까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가시나
무에 전부 불이 붙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광채가 나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지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크고 아름다운 백향목에 불이 붙지 않고 왜 가시나무에 불이 붙었겠습니까? 하나님은 백향목 같이 유명하고 훌륭하여 세상에서 잘난 사람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시고, 가시나무와 같이 아무 보잘 것 없는 그런 사람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
시떨기나무 같아서 아무 보잘 것이 없고 고통 가운데 있는데, 그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시나무와 같은 사람을 불러서 쓰십니다. 훌륭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29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시나무 같은 자를 불러서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시나무와 같은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부터도 가시나무 같은 자이고, 우리는 모두 가시나무 같은 자들입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비천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2) 내게 있는 것으로 끝까지 할 때 나타나심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사명을 주실 때에, 모세는 출애굽기 4장 10절에서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난 부족하니까 할 수 없다. 말 할 줄 모른다’ 하면서 모세와 같이 거절해서는 안 됩니다. 가시나무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면, 보리떡 다섯 개와 같이 아무 보잘 것 없고 제일 하등한 떡이지만 하나님께 바칠 때, 그것으로 많은 역사를 일으켜서 오천 명 이상을 먹이고도 남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있는 것이 얼마 되느냐? 있는 것을 가지고 오너라”고 하시면, 우리는 대답하기를 “우리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습니다”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금년에 창광교회 주차장을 장만해야 되는데, ‘무엇을 가지고 할까’ 하는 걱정이 들어왔습니다. 교인들도 형편이 어렵고 경제적 상태가 좋지 못한데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염려가 조금 들었지만 해결되었습니다. 어떻게 해결이 되었겠습니까? 돈 벌어서하고 경기가 좋아지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네게 있는 것을 가지고 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없다, 없다’ 하면 안 됩니다. 없는 것 가지고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네게 있는 것 가지고 하라’는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 ‘없다, 없다’ 해도 세 가지 줄 것이 있다고 합니다. 도둑에게 줄 것이 있고, 쥐에게 줄 것이 있고, 딸에게 줄 것이 있다고 합니다. 세 가지는 있습니다. 아무리 ‘없다, 없다’ 해도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 하라는 것입니다. 있는 것이 보리떡 다섯 개 뿐이라도 그것을 바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지고 아주 큰 역사를 이루어 놓으십니다. 우리도 좋은 것을바라지 말고, 없다고 하지 말고,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현재 있는 것을 가지고 하면 됩니다. 보리떡은 보리떡에, 떨기나무는 떨기나무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면 다 됩니다. 그러면 세계 제일이 됩니다. 떨기나무에 하나님의 불꽃이 나타났는데 그보다 아름다운 것이 세상 어디 있겠습니까? 세계 어디에 가도 없습니다.
광야 호렙산의 가시떨기나무가 외부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세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거친 광야와 산중에 아무 보잘 것 없지만 가장 중요 합니다. 그래서 미디안 광야와 산골짜기, 곧 보잘 것 없는 곳에서 미디안 신학을 하면 그 이상 더 좋은 신학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역경이 닥치고 어려움이 닥치고 앞길이 잘 열리지 않아도, 미디안 신학을 하는 줄 알고 나가면 됩니다. 미디안 신학이라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미디안 신학입니다. 또 먹을 것이 없어도 미디안 신학입니다. 보잘 것 없어도 미디안 신학입니다. 끝까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모세야, 모세야’하고 부르시는 날까지 미디안 신학을 계속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이 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3) 신을 벗어야 하나님께서 만나주심
본문 4-5절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였습니다. 신을 벗어야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모세가 40년간 매일 신 벗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신을 다 벗어 놓으면 참으로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자기를 다 벗어 놓아야 됩니다. 제가 하겠다는 것을 다 벗어 놓아야 됩니다. 자기의 욕심과 인본주의를 다 벗어버려서 자기가 없어져야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시간이 오랫동안 걸립니다. 10년, 20년을 해도 아직 다 신을 못 벗습니다. 40년을 하니까 이제야 신을 벗은 것입니다. 자기라는 것이 이만큼 강합니다. 자기 욕심, 완력, 수단, 제가 하겠다는 것, 자기라는 자체를 다 벗어 놓은 사람만 하나님의 참된 종이 됩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해도 욕심이 가득하고, 완력으로 하려고 하고, 수단방법으로 하려고 하고, 자기중심이고, 물질주의면, 하나님의 종으로 쓰지 못합니다. 자기중심이 모두 다 없어져야 됩니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다 없어져야 됩니다. 하나님만 위해야 됩니다.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모두 다 없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것만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내 자유가 있으면 안 됩니다. 내 자유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를 위하는 것이 다 없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완전히 벗어지고 자기 신을 다 벗으면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손에 쥐어주십니다. 출애굽기 4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시니, “지팡이입니다”라고 대답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의 손에 쥔 지팡이를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로 바꾸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의 지팡이를 가지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지팡이로 홍해바다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도 내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 할 때 아말렉을 물리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어디서 받았습니까? 미디안 신학에서 받았습니다. 미디안 신학을 안 한 사람은 지팡이가 없습니다. 글자만 얼마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자기를 벗어버리고, 오랫동안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기를 벗어버린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를 들려주십니다. 그리고 사명을 주십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 받은 것을 하나님께서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2. 사명을 주심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을 알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본문 7-8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고,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고, 우고를 알아주는 하나님이시며, 내려가셔서 그들을 건져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건져내시고 그 땅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당하는 것을 다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고 그들을 인도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을 알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본문 7-8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고,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고, 우고를 알아주는 하나님이시며, 내려가셔서 그들을 건져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건져내시고 그 땅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당하는 것을 다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고 그들을 인도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현재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당하는 것이 많습니다. 안 믿는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귀에게 붙잡혀서 죄악의 종이 되어 세상에 빠져서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많습니다. 본문을 볼 때, 이북에 있는 성도들이 생각납니다. 이북에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합니까? 얼마나 부르짖겠습니까? 순교당하고 말 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내는 일이 우리의 사명임
본문 10-12절에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의 손에서 건져 내고 그들을 인도해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북에 있는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버리실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이북에 하나님의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했고, 교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또 농촌노회가 있었습니다. 농촌 한 군에 노회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황해도에 교회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또한 전국에 교회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의 성도들이 지금 다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일부는 죽었지만 일부는 살아서 지금 하나님의 권고하시는 날을 기다리는 성도가 많습니다. 그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건져 내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성경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내야 되겠느냐?’ 하실 때 미디안 신학을 한 사람을 보내십니다. 한국에 신학교가 너무 많아서 일 년에 신학교 졸업생이 약 오천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너무 많아서 어디에 쓰느냐?’ 하는 염려가 있는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북의 문을 열어 주
시고, 그곳에 가서 복음 전하라고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는 오천 명이든 오만 명이든 가야 됩니다. 그 곳이 ‘내 백성’이 고통당하는 곳이고 부르짖는 곳입니다. 고난당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건져 내시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갑자기 교회를 세우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이북 외에도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나라가 많습니다. 구 공산권, 이슬람 교권 등이 그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슬람교권에는 지금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 래도 거기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 내는 일을 하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런 사명감을 가지고 미디안 신학을 계속 해 나가야 합니다. 몇 십 년을 해도 아직 먼 줄 알아야 됩니다. 계속해 나가고, 계속 자기를 다 벗어 버리고, 신을 벗고, 하나님을 발견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구경을 더 많이 하고 참여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보내실 때 가야 합니다. 언제 보내실지 모르기 때문에 그동안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할 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해야 되느냐? 돈이 있느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0장 9-10절에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가는 것이 진짜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기 때문에, 일꾼이 먹을 것을 다 받게 해 놓으셨습니다.
또한 모세가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걱정할 때, 하나님께서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보내는 곳에 가면 정녕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하시며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정녕 함께 하기 때문에 다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안 도와줘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베드로가 사도행전 8장 3절에서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할 때,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므로 은과 금은 없지만 반드시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나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귀신을 내쫓고 가는 곳마다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가신다고 해주셨는데도 계속해서 모세가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하니, 33장 17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
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해 주시고, 일을 하시는 분도 하나님께서 하시니까, 하나님만 믿고 지팡이를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들려서 뱀 꼬리를 잡아 능력의 지팡이로 삼아야 함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세에게 “그것을 땅에 던져라”고 하실 때에, 던지니까 뱀이 되었습니다. 또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고 하실 때에, 꼬리를 잡으니까 뱀이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출 4:3-4). 모세의 손에 들리면 지팡이가 되지만, 모세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면 뱀이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붙들렸고 하나님께 붙들린 모세의 손에서 붙들리면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가 되고, 모세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이 되어 뱀이 되는 것입니다. 즉, 마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서 “그 꼬리를 잡으라”고 하실 때,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뱀의 꼬리를 잡으면 지팡이가 됩니다. 자기가 먼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그 종의 손에 붙들리면 뱀이 지팡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뱀의 꼬리를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뱀 꼬리를 하나 잡으면 지팡이가 한 개가 되고, 뱀 꼬리 둘을 잡으면 지팡이도 두 개가 됩니다. 자꾸 잡아서 많아져도 괜찮습니다. 꼬리를 잡으면 지팡이가 되고 놓으면 뱀이 됩니다. 하나님께 붙들리면 잡을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 제는 능력의 지팡이를 가지고 홍해도 가르고, 반석에서 물도 내고, 이 지팡이를 가지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 하여 아말렉도 이기는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미디안 신학을 하고 나가는 하나님의 종들 앞에 이런 역사가 반드시 있습니다. 하수 물을 지팡이로 칠 때 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심판권이 있습니다. 이런 능력의 지팡이를 가지고 나가서 뱀을 지팡이를 만들고, 고통 가운데서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살려내고 이들을 인도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다 해야겠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사명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는 미디안 신학을 계속해서 사명을 다 하는 우리가 다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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