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제(和睦祭)
레위기 3:1-17
1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2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3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4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5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6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7만일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 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8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9그는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그 기름 곧 미려골에서 벤 바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10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11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니라 12만일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13그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14그는 그 중에서 예물을 취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15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16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7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레위기 3:1-17
1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2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3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4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5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6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7만일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 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8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9그는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그 기름 곧 미려골에서 벤 바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10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11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니라 12만일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13그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14그는 그 중에서 예물을 취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15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16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7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1. 번제
레위기 1장에서 말씀하신 번제는 전부를 다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소나 양으로 드리는데 흠 없는 수컷을 가져다가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자로 이 세상에 오셔서 흠 없이, 죄 없이 하나님께 우리를 대신한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번제를 드리는 사람이 소를 가지고 와서 회막문에서 잡아야 합니다. 번제 드리는 사람, 곧 자신이 제물을 직접 잡아야 됩니다. 회막문에서 소머리에 안수를 하고 소를 잡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소가 죽는
것이며, 안수하는 것은 자기의 죄가 소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소를 잡을 때, 예수님께서 내 죄 값으로 죽으신 것이고, ‘내가 죽였다. 내 손으로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그 소의 피를 받아서 제사장에게 주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사면에 뿌린다고 하였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려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실 것을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회막문에서 제물을 죽이고 피를 뿌려야만 회막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막은 하나님의 성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회막에는 마당이 있고, 그 다음에 휘장이 있고, 그 다음에 성소가 있습니다. 마당까지는 들어갈 수있지만 성소에는 피가 없이는 못 들어갑니다. 예수의 구속의 피가 아니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 죄의 문제가 희생의 피로 해결되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를 대신하여 소를 죽이는 것처럼 마땅히 자기가 죽어야 될 자인 줄 알고, 자신 대신 소가 죽은 것을 생각하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희생해 주실 것을 믿고 회막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죽을 벗기라고 하였습니다. 가죽은 태우지 않습니다. 가죽은 태우지 않고 제사장이 가진다고 했는데,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외모를 다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외모는 볼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었고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사 53:2). 이것은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외모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섬길 때 물론 외모도 단정해야 되지만, 외모 혹은 의식주의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각을 뜹니다. 머리를 자르고 각 부분으로 자릅니다. 그리고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습니다. 물로 씻는다는 것은 말씀으로 거룩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은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의 제물을 드리실 때에도 말씀대로 거룩하게 제물을 드리셨고, 또 우리
자신들도 말씀대로 우리 심령을 거룩하게 하고, 또 우리 정강이, 즉 발걸음을 다 거룩하게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됩니다. 전부 다 불로 태우는 것은 몽땅 다 불살라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장, 머리, 정강이, 할 것 없이 전부 다 하나님께 불에 태워
서 산 제물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자신들도 말씀대로 우리 심령을 거룩하게 하고, 또 우리 정강이, 즉 발걸음을 다 거룩하게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됩니다. 전부 다 불로 태우는 것은 몽땅 다 불살라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장, 머리, 정강이, 할 것 없이 전부 다 하나님께 불에 태워
서 산 제물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비둘기로 제사드릴 때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머리를 비틀어서 끊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비참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냥 죽는 것만 해도 괴로운데, 머리를 비틀어 끊어버려 죽이니까 얼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 죄를 위해서 이렇게 새의 머리가 비틀어져서 죽는 것처럼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비참하게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갈라서 내장과 더러운 것은 제하여 버렸습니다. 멱통과 더러운 것은 합당치 않으니까 제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속에 있는 부패성을 다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께 산 제물이 되어야 됩니다. 또 몸을 아주 찢지 않는 것은 옹근 채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통째로 다 하나님께 바쳐야 됩니다. 전체를 바쳐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번제의 뜻은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올라가는 제사입니다. 불에 태워서 올리는 제사입니다.
번제의 뜻은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올라가는 제사입니다. 불에 태워서 올리는 제사입니다.
2. 소제
레위기 2장에 있는 소제는 곡식 가루나 기름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희생과 같이 드리는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소제를 드릴 때 제물은 고운 가루입니다. 밀가루와 같은 고운 가루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고 불살라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이루신 완전무결한 의를 상징함
소제라는 뜻은 선물이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몸 바쳐주신 것, 즉 희생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 의를 이룬 것을 가리킵니다. 가루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가리키는 데, 그리스도께서 희생을 하시면서 자신은 다 깨지고 부스러지고 가루가 되면서 완전한 의를 이루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의를 이루어 주실 때에 자신의 것은 다 내놓으셨습니다.
하나도 자신의 것이 없습니다. 온전히 우리를 위해서 다 희생하시고 깨지시고 가루가 되시고 자신을 죽여서 의를 이루셨습니다. 고운 가루는 작은 의를 말하는데, 큰 의에서부터 작은 의까지 완전무결하게 우리를 위해서 당신을 희생하면서 의를 이루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큰 것만 아니고 작은 것까지 입니다. 우리가 의를 이루어 나갈 때에 큰 것만 알고 작은 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또 십일조 드릴 때에 작은 것만 드리고, 큰 십일조는 안 드리면 안 됩니다.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 까지, 가루도 고운 가루가 되기까지 우리가 다 자신이 깨져 나가면서 예수님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자들이 되어야 됩니다. 자기가 살아 있으면 안 됩니다. 덩어리가 그냥 있으면 안 되고 깨져야 됩니다. 또 크게만 깨지는 것이 아니라, 가루가 되도록 깨져야 됩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이런 예수님의 희생을 본받아야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시면서 완전무결한 의를 이루셨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다 지키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셨습니다. 기름을 붓고 유향을 넣으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도록 아름다운 희생의 의의 향기로서 하나님께 바쳐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희생의 제물이 되심
그리고 소제물 가운데 일부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불사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기념물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기 위하여, 소제물 중에서 기름 섞은 고운 가루 한 움큼과 유향을 취하여 불살라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됩니다. 그 다음에 남은 것은 제사장이 가져다 먹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바쳐드리고, 그 다음에 성도가 그것을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먼저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을 바쳐 드렸고,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고, 그 다음에 우리 믿는 사람에게 당신의 몸을 생명의 떡으로 나누어 주셨습니다.
소제에는 고운 가루로 드리는 것도 있고, 화덕에 구워서 드리는 것, 번철에 부쳐서 드리는 것, 또 솥에 삶아서 드리는 것 등, 모두 네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가루에 기름을 부어서 날 가루로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가 있고, 그 다음에는 고운 가루를 기름을 섞어서 화덕에 구워
서 떡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린 제사도 있습니다. 무슨 떡을 만들어야 된다고 하였습니까? 무교병이나 무교전병을 드리는데, 누룩을 넣으면 안 됩니다. 죄악의 요소 일체가 포함될 수 없습니다. 누룩은 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번철에 부쳐서 빈대떡이나 부침개처럼 부쳐서 드리는 것이 있었는데, 부칠 때는 찢어서 드려야 됩니다. 조각조각 찢으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솥에 삶아서 하나님께 바친 것도 있었습니다.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은 것을 가물치 삶는 것처럼 삶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소제물이 되시는데, 당신의 몸을 바치실 때에 이렇게 화덕에 굽거나, 번철에 부치거나, 또 솥에 삶거나 할 때, 다 불로 삶는 것입니다. 불같은 고난을 다 통과해서 하나님께 바침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고난을 뜻하는 것입니다. 화덕에 굽는 것도 고난을 통과하는 것이고, 번철에 부치는 것도 고난을 통과하는 것이고, 솥에 삶는 것도 고통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난이 심하겠습니까? 산 것을 솥에 들어가서 끓일 때에 얼마나 고통이 심하겠습니까? 그만한 고난을 당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에 감격에 넘치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일부를 하나님께 또 바치고, 남은 것은 제사장에게 돌렸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마음을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다음에 사람에게 당신의 몸을 생명의 떡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먼저 하나님께 순종을 바로 하고, 봉사의 직무와 대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희생의 제물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소제물에 누룩과 꿀을 넣지 말아야 함
그리고 소제물에 무엇을 넣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넣지 않을 것이 두 가지인데, 꿀과 누룩입니다. 그것은 소제물에 합당치 않습니다. 누룩은 부패성의 요소인데, 부풀게 하는 것이므로 소제물에 합당치 않습니다. 생긴 그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거기에 허풍 소리로 좀
크게 만드는 것과 같이 부풀어 일어서게 해서 무엇을 가감시키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꿀, 즉 단 것을 넣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꿀도 소제물에 합당치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고 하셨습니다(눅 9:58). 머리 둘 곳이 없는 생활이 꿀 없는
생활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인정에 기울어지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제자 베드로이지만, 그가 마귀 노릇할 때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고(마 16:23), 자신의 모친과 형제들이 찾아왔을 때, 아무리 어미요, 형제요, 누이라도,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하시면서 나가보지 않으셨습니다(마 12:48). 마귀 시험이 들어올 때 인정이라는 것이 없으셨습니다. 인정을 쓰면 안 됩니다. 원리원칙대로, 진리대로 해야 합니다. 자기 의무를 감당하면서 인정에 기울어 지지 않는 생활이 꿀을 제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진리대로만, 하나님 중심으로만 모든 것을 행해서 드리는 제물이 되어야겠습니다. 성도들도 진리의 말씀대로, 원리원칙대로 나가고, 하나님 뜻에 의해서 움직여야지, 인정으로 기울어지면 신앙 생활하지 못 하고 소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꿀을 제하는 생활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 좋게 하고, 또 자기 인정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것이 꿀인데, 이런 사람은 소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꿀을 다 제거 시켜야 됩니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쳐야 함
그 다음에 소제물에 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소금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데나 소금을 안치면 안 됩니다. 소금은 언약성취, 희생봉사,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소제를 드릴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언약성취입니다. 말씀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제일 첫째라는
것입니다. 말씀이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도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첫째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첫째라고 하였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 구원하는 것은 둘째 목적이고, 첫째 목적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바로 소금 치는 것입니다.
우리도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선을 행하든지,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든지, 첫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그것은 안 해야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본주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하나님을 복종하는데 첫째 목적을 두어야 됩니다. 이것이 언약 성취이고,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양보하면 맛 잃은 소금이 됩니다. 신앙 양심을 양보해도 맛 잃은 소금이 됩니다. 맛 잃은 소금은 하
나님께서 내어 버리시고, 세상 사람들은 발로 밟고, 자기는 맛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지키고 신앙양심을 지켜야만 맛있는 소금이 됩니다. 신앙양심을 안 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인간의 생각대로 돌아가는 것은 소금은 안치고 꿀만 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소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언제나 소금을 쳐서 희생하여 남을 살려나가야 합니다.
희생 봉사하여 남을 살리는 생활, 그것이 성도가 소제물이 되는 생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소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첫 이삭으로 소제를 드릴 때는 볶아 찧은 것으로 해야 함
첫 이삭으로 소제를 드릴 때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볶고 또 찧어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볶는 것만 해도 큰 것인데, 찧어서 가루로 만들어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이렇게 볶는 것 같은 수난, 찧는 것 같은 수난이 있었습니다. 볶은 다음에 절구에 찧는 것입니다. 쇠 절구에 찧든지 무슨 절구에 찧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볶는 것만 해도 큰 고난인데, 찧는 고난은 또 얼마나 큰 고난이겠습니까? 납짝해져야 됩니다. 다 부스러지고 가루가 되어야 됩니다. 자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은 소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볶는 고난을 당하시고, 또 찧는 데까지 나가는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러한 고난을 체험을 하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어디까지 나가야 예수님의 고난을 체험할 수 있겠습니까? 볶고 또 찧는데 까지, 죽는 데까지, 다 부스러져서 없어지는 데까지 나가야 합니다. 자기 형체가 없어질 때까지 나가야만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제물로 하나님께 바쳐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향기롭게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첫 이삭으로 소제를 드릴 때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볶고 또 찧어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볶는 것만 해도 큰 것인데, 찧어서 가루로 만들어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이렇게 볶는 것 같은 수난, 찧는 것 같은 수난이 있었습니다. 볶은 다음에 절구에 찧는 것입니다. 쇠 절구에 찧든지 무슨 절구에 찧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볶는 것만 해도 큰 고난인데, 찧는 고난은 또 얼마나 큰 고난이겠습니까? 납짝해져야 됩니다. 다 부스러지고 가루가 되어야 됩니다. 자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은 소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볶는 고난을 당하시고, 또 찧는 데까지 나가는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러한 고난을 체험을 하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어디까지 나가야 예수님의 고난을 체험할 수 있겠습니까? 볶고 또 찧는데 까지, 죽는 데까지, 다 부스러져서 없어지는 데까지 나가야 합니다. 자기 형체가 없어질 때까지 나가야만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제물로 하나님께 바쳐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향기롭게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3. 화목제
레위기 3장은 화목제에 대한 것으로 첫째, 소로 드리는 화목제(1-5절). 둘째, 양으로 드리는 화목제(6-11절). 셋째, 염소로 드리는 화목제(12-17절)의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 3장은 화목제에 대한 것으로 첫째, 소로 드리는 화목제(1-5절). 둘째, 양으로 드리는 화목제(6-11절). 셋째, 염소로 드리는 화목제(12-17절)의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화목제의 희생을 드리라고 하셨는데, 화목제는 평안제(平安祭), 또는 감사제(感謝祭)라고도 합니다. 시편 107편 22절에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 행사를 선포할지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화목제는 하나님과 화목하는 제사이고, 또 사람과 사람사이에 화목하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과 먼저 화목을 하면 사람끼리도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과 참으로 화목을 하려면 사람과도 화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에 제물을 하나님 앞에 드리려고 하다가 형제가 네게 원망하는 일이 생각나면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을 하고, 그 다음에 와서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께 바른 제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하고 원수가 돼서 제사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사람과 화목을 하고 제사 드려야 되고, 하나님과 참으로 화목을 했다고 하면 사람과도 화목을 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화목제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소로 드리는 화목제
본문 1절에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화목제 희생을 드릴 때는 무엇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까?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번제는 흠 없는 수송아지, 또는 수양이나 수염소로 드렸는데, 화목제는 암컷도 드리라고 했습니다. 암컷을 드리라는 것을 보면, 이것은 성도도 이 화목제에 참여할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동시에 예수님만 화목제의 제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암컷, 즉 성도들도 화목제의 제물로서 바쳐드려야 될 것을 가리키셨습니다.
본문 1절에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화목제 희생을 드릴 때는 무엇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까?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번제는 흠 없는 수송아지, 또는 수양이나 수염소로 드렸는데, 화목제는 암컷도 드리라고 했습니다. 암컷을 드리라는 것을 보면, 이것은 성도도 이 화목제에 참여할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동시에 예수님만 화목제의 제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암컷, 즉 성도들도 화목제의 제물로서 바쳐드려야 될 것을 가리키셨습니다.
1) 예수님의 피로 화목하게 됨 본문 2절에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라고 하였고, 회막문에서 잡으라고 하였으며, 또 아론의 자손 제사장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번제와 같습니다. 회막문에서 안수 하는 것도 같고, 또 거기서 소를 잡는 것도 같고, 피를 제사장이 단 사면에 뿌리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희생의 피 없이는 하나님 앞에 들어 갈 수도 없고, 가까이 나갈 수도
없고, 화목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서 희생해 주신 것을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예수님의 피로만 하나님께 나가야 가까이 나갈 수 있고, 회막에 갈 수 있고, 또 회막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 송아지에게 안수하라는 것은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자기의 죄를 다 그 송아지에게 전가시키라는 것입니다. 넘겨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송아지를 잡으라는 것은 자신이 죽을 것 대신 송아지가 죽는 줄 알고 체휼하라는 것입니다. 또 제사장이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리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셔서 희생을 당하시고 피를 뿌려서 우리 죄를 속해 주신 다음에 그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나가야만 하나님과 화목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화목하게 됨 본문 3-5절에 “그는 또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고 하였습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에 불사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을 불사릅니까? 내장에 덮인 기름입니다. 내장 사르는 것이 아니고 내장을 덮은 기름입니다. 또 내장에 붙은 기름과 콩팥, 콩팥 위에 있는 기름, 또 허리 근방에 있는 기름, 간에 덮인 꺼풀, 이것들을 다 취해서 번제단 위에서 불사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콩팥을 가져다가 불사르라고 하셨겠습니까? 또 그 기름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성령을 상징하는 기름은 이것들과 다릅니다. 소제 드릴 때 기름 부은 것은 곡식 기름입니다. 소기름과 같은 동물성 기름이 아니고, 곡식에서 짠 기름을 가져다가 소제물에 섞어서 떡을 만들어서 제사 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즉, 곡식기름입니다. 소제에 섞은 기름은 식물성 기름입니다. 소제물에 섞는 기름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화목제에서 제물인 소에게서 취한 기름은 동물성 기름입니다. 지방을 가져다가 불사르는 것입니다. 소제물에 섞는 기름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고, 여기 지방은 힘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희생 제물의 피는 생명을 가리키고, 그 기름은 힘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기름과 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이 기름을 번제단 위에서 불살랐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가져다가 불사르라고 하셨는데, 콩팥과 간에 덮인 꺼풀도 불사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장기(臟器)가 여러 가지인데, 본문에서는 간과
콩팥 둘만 나왔습니다. 아마도 우리 속에 있는 장기 가운데 콩팥과 간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간은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로만 보아도 약 3천 가지의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장은 우리 몸의 모든 불순물을 걸러 내는 역할을 합니다. 즉, 매우 중요한 역할
을 하는 이 두 장기의 기름을 불사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콩팥은 완전히 다 떼어서 불사르고, 간의 꺼풀과 그 옆의 기름도 다 가져다가 불사르라고 하였습니다. 또 ‘허리 근방에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기울여 하나님께 다 바치심으로 마치 불
사르는 것과 같이 우리의 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장에 덮인 기름’과 같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또 ‘신장을 가져다가 불사른다’는 것은 주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그 뜻을 분별하여 하나님께 바른 제물이 되라는 뜻입니다.
콩팥 둘만 나왔습니다. 아마도 우리 속에 있는 장기 가운데 콩팥과 간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간은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로만 보아도 약 3천 가지의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장은 우리 몸의 모든 불순물을 걸러 내는 역할을 합니다. 즉, 매우 중요한 역할
을 하는 이 두 장기의 기름을 불사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콩팥은 완전히 다 떼어서 불사르고, 간의 꺼풀과 그 옆의 기름도 다 가져다가 불사르라고 하였습니다. 또 ‘허리 근방에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기울여 하나님께 다 바치심으로 마치 불
사르는 것과 같이 우리의 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장에 덮인 기름’과 같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또 ‘신장을 가져다가 불사른다’는 것은 주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그 뜻을 분별하여 하나님께 바른 제물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간은 담력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담대히 제물로 바쳐진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담대히 제물로 바쳐지셨습니다. 여호수아 2장 9절에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
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간담이 다 녹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간과 쓸개가 녹아 없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사기가 다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용기가 다 없어지고 아무런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힘이 간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또 ‘간이 크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까? 이 말은 용기가 있다,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즉 간이 모든 힘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간담이 녹았다’는 것은 ‘힘이 다 없어졌다’, ‘맥을 못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간을 화목제물로 가져다 바쳐야 합니다. 가져다가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가져다가 불살라 바치셨습니다. 우리도 다 가져다가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온전한 화목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서 화목제물의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기울여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마26:39). 여기서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는 것은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지되 고난은 받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고난 없는 십자가를 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조금 면제하고 십자가를 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를 지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에도 십자가를 지러 올라간다고 하셨습니다. 또 제자들에게도 당신이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십자가를 당면했을 때에 그것을 지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원리 원칙대로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 너무나 심하기 때문에 그것을 조금 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만대만민(萬代萬民)의 죄가 예수님께 모두 전가되고 예수님께서 그 고난을 한꺼번에 다 받아야 하겠는데, 그것이 엄청난 고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기도하실 때에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큰 고난을 다 받으시기로 각오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도 마음이 아픈 데로 기울어지면 온전한 제물이 못 되
겠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각오를 하시고 나가신 것입니다.
겠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각오를 하시고 나가신 것입니다.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받쳐야만 온전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마음은 딴 데 가 있으면서 예물만 달랑 들고 오면, 누가 그것을 기쁘게 받겠습니까? 단 마음으로 바치지 않고, 할 수 없어서 마지못해 바치면, 안 됩니다. 예수
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드릴 때에, 그 고난이 너무 심해서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아픈 데로 다 가고 또 얼굴은 찡그리면서 바쳐지신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흠 있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흠 없는 제사가 되려면 아무리 아프고 쓰린 십자가라도 마음
이 하나님 앞에 열납 되고 하나님과 교통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바쳐야만 그것이 흠 없고 아름다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렇게 되시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피땀 흘리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리신 예수님의
기도는 몸 속, 곧 내장에 있는 기름을 다 가져다가 바친 것입니다. 내장에 붙은 것과 그에 속한 것, 곧 모든 힘과 정성을 다 모아 바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화목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또 신장, 곧 콩팥은 분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을 바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희생적 제물이 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친히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단 마음으로 자원해서 하나님께 힘 있는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끝까지 의를 완성하신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의를 완전히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죽으실 때에도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죽으실 때에도 의를 이루며 죽으셨기 때문에, 모든 악과 불의(不義)의 세력을 완전히 다 이기는 담력을 가지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우리를 위해서 온전한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을 알고 감사하며, 성도들 사이에, 또 다른 사람들 간에 화목해야 하겠습니다.
3) 화목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모셔야 화목하게 됨 우리가 화목하려면 화목제물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모셔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화목제 물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희생해야 화목이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부산 성결 교회의 최 목사님이 저에게 “마태복음 5장에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라는 구절이 있는데, 화목케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보니, “희생을 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희생을 해야 화목이 되지, 희생 없이는 화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 목사님이 이제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 가르친 말씀이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희생을 해야 화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이들에게도 잘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가 세상 떠난 다음에도 자식들이 부모한테 배운 것을 생각합니다. 좋은 말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또 사경회 때 데리고 오는 것이 좋습니다. 한 마디라도 얻어 들으면, 그 아이들이 커서 그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무튼 화목을 하려면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도 화목 제물로 희생을 해야 합니다. 희생 없이는 화목이 안됩니다. 사람들이 왜 싸웁니까? 서로 희생을 안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자기만 위하고 자기 의견만 세우고 자기 배만 채우고 자기 이익만 보려고 하니 싸우는 것입니다. 한 편이 희생을 하면 싸우지 않습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다른 사람들이 못 되게 굴 때에
‘하나님이 내 꼴을 보고 참았기 때문에 나도 참자’ 하고 참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내 꼴이 그 꼴보다 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내 꼴을 보고 참으셨는데, 나도 참아야 하겠다’ 하고 참는 것이 좋습니다. 희생하니까 인내가 나오고 화목이 되는 것입니
다. 참는 것이 화목입니다. 또 희생하는 것이 화목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셔야 화목이 됩니다. 그리고 화목제물을 죽이는 것처럼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자기가 죽어야 합니다. 자기 사상, 자기 생각과 뜻, 자기 위하는 것들을 다 잘라 버려야 합니다. 머리를 자르고 각을 다 떠야 합니다. 예전에 자행자지(自行自止)하던 것들 을 다 각을 떠서 전부 제단에 불살라 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기 생각과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 뜻대로 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뜻대로만 걸어가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화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꼴을 보고 참았기 때문에 나도 참자’ 하고 참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내 꼴이 그 꼴보다 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내 꼴을 보고 참으셨는데, 나도 참아야 하겠다’ 하고 참는 것이 좋습니다. 희생하니까 인내가 나오고 화목이 되는 것입니
다. 참는 것이 화목입니다. 또 희생하는 것이 화목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셔야 화목이 됩니다. 그리고 화목제물을 죽이는 것처럼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자기가 죽어야 합니다. 자기 사상, 자기 생각과 뜻, 자기 위하는 것들을 다 잘라 버려야 합니다. 머리를 자르고 각을 다 떠야 합니다. 예전에 자행자지(自行自止)하던 것들 을 다 각을 떠서 전부 제단에 불살라 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기 생각과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 뜻대로 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 뜻대로만 걸어가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화목이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과도 화목해야 함 그리고 화목제물을 번제로 드릴 때, 먼저 하나님께 일부를 드립니다. 감사하므로 화목제 희생을 드리는 것이면 무교병과 유교병을 감사 희생과 함께 예물로 드리되,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하나님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 줍니다. 그리고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 곧 자기 가족과 친척들,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는 것입니다. 먹을 때에 제사 드린 당일에 먹을 것이 있고 이튿날까지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화목제
드리는 것은 당일에 다 먹어야 합니다. 이튿날까지 두면 안 됩니다.
하루에 다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생의 예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예물이면 이튿날까지 먹되 삼 일에는 불살라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화목제는 제물로 소나 양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곡식가루를 빚어 기름을 섞고 무교병을 만듭니다. 또 유교병을 만들어서 제사 드
리기도 합니다. 제물 중 일부는 하나님께 바치고 일부는 제사장에게 줍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가족과 친척이 모여서 먹습니다. 감사로 화목제를 드릴 때에는 당일에 다 먹어야 합니다. 이튿날 까지 두었다 먹으면 안 됩니다. 그날에 다 먹어 치워야 합니다. 그러나 서원이나 자
원하는 예물로 드릴 때에는 그 이튿날 까지 먹습니다. 삼 일까지 두면 안 됩니다. 이러한 것들을 어기면 하나님께 화목제가 상달되지 못합니다.
소나 양을 잡아 화목제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피 흘리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무교병을 만들어 드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몸을 희생하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목제물의 의미인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을 하고 사람과 화목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물을 나눠 먹을 때에 어떤 사람을 청해야 하겠습니까? 미운 사람, 고운 사람을 다 청해야 합니다. 무조건 다 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날에 다 와서 나눠 먹어야 하는데, 왜 당일에 모두 먹으라고 했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날에 다 나눠 먹어야 화목이 잘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좀 두었다 먹으려고 솥 안에 몇 개 가져다 놓으면, 괜히 사람들만 오라고 하였지 결과적으로 먹을 것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목하려면 자기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두었다 먹을
생각을 하지 말고 다 나눠주어야 합니다. 나눠주어야 화목이 되는 것 입니다.
즉, 우리가 화목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모셔야 하고, 그 다음에는 다 나눠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바치고 그 다음에 제사장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사장은 오늘날의 교역자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다 나눠 먹으라는 것입니다. 두었다가 나중에 먹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끼지 말고 다 나눠 먹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에 ‘하나님과 화목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과 화목하는 것이 둘째입니다. 사람과 화목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
까? 마태복음 7장 2절에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참 마음으로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도 용서해 주지 않으십니다. 일만 달란
트 빚진 사람이 친구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것을 탕감해 주지 않아서 그 일만 달란트를 하나님께서 다시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형제가 우리에게 잘못한 것은 백 데나리온 빚진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에게 조금 빚진 자들에게 야박하게 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만 달란트를 다시 받으십니다. 일만 달란트나 되는 큰 죄를 우리가 탕감 받았는데, 다른 형제가 내게 진 죄는 얼마나 됩니까? 백 데나리온입니다. 백 데나리온은 일반 달란트의 60만 분의 일에 해당합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께 탕감 받은 것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은 매우 조그마한 것입니다. 60만 분의 일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만 달란트 탕감해 준 것을 도로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참마음으로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또 사람들과 화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5) 화목한 자는 소망을 가지고 환난도 즐거워 함 로마서 5장 1-4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
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고 즐거워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과 화평했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할 수 있다는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소망입니다. 즉, 이제는 나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영광의 소망을 바라봄으로써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그 즐거움 때문에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소망이 크므로 환난 가운데에서도 즐거워 합니다. 왜 즐거워 한다고 했습니까?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기 위해서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그 자리에 나가는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는데, 소망대로 만들어져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만들어 지려면 이제는 환난이 와야 합니다. 환난이 오면 인내가 생깁니다. 인내가 생기면 연단이 되어 소망에 도달하는 데까지 나간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에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환난도 즐거워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고,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환난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화목제물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과도 화목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도 즐거워해야 하겠습니다. 또 영광에 도달할 자격을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즐거워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양으로 드리는 화목제
본문 6-7절에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만일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 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라고 하였습니다.
양으로 드리는 화목제는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만 가져다 드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은 소가 아닌 양으로 제사를 드리고, 또 양으로 드리기도 어려운 사람은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제사 드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라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개의 경우 없어서 못한다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없는 것을 받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고, 그 상태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며 제물을 바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8-11절에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그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그 기름 곧 미려골에서 벤 바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아 제사장은 피를 가져다 단 사면에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화목제의 희생 중에서 화제로 드릴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미려골에서 벤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 또 콩팥과 허리 근방에 있는 기름, 간에 덮힌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해서 하나님께 화제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화제니,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먼저 드려서 여호와께서 그 식물(食物)을 받으시게 하고, 그 다음에 남은 것을 제사장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남은 것을 가족과 친구를 모아서 다 같이 나눠 먹습니다. 이것이 화목제를 드리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여호와께 드리는 식물이니라”라고 한 것을 보면 여호와께서 화목제로 드리는 식물을 잘 받으시고 잡수시며 만족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앞에 놓고 성도들끼리 화목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잘 받으시는 음식이 됩니다.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도가 화목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서로 화목을 잘 하면 부모를 대접하는 것 아닙니까?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다투면서 부모에게 음식만 사다준다고 하면 그것은 부모를 대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화목하면서 부모를 대접해야 진짜 대접입니다. 자녀들끼리 화목하지 못하면서 부모에게 대접을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그것은 참된 부모 대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 다음에 성도들끼리 서로 화목해야 하겠습니다. 화목하지 못할 사람을 찾아서 화목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찾아서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와 관계가 막힌 사람을 찾아서 화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화목을 하려면 자기가 먼저 사랑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희생하고 먼저 사랑하면 화목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기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잡수시는 음식이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화목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음식입니다. 화목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걱정시키는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서로 화목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도 깨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태복음 7장 1-2절에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비판을 받고 하나님의 헤아림을 받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하겠습니까? 다른 사람하고 화목을 해야 하나님과 화목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받아 나갈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잘못을 해도 자기가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그 사람과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자기도 다른 사람도 복을 받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나라이 임하옵시고’라는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막힌 곳이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막힌 것이 없이 서로 다 화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잘 잡수시는 것이며 하나님을 바로 대접하는 것이 됩니다.
염소로 드리는 화목제
본문 12-17절에 “만일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그 중에서 예물을 취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피는 생명이고, 기름은 힘을 가리킵니다. 생명과 능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생명과 모든 힘을 다 바치고, 간 꺼풀, 즉 담력을 가지고 담대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또 콩팥, 즉 분별력을 가지고 드려야 합니다. 또 내장, 즉 전심전력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바쳐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꼬리의 기름진 것을 포함하여 희생물의 전체를 다 바쳐서 하나님께 화목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꼬리를 남기지 말라는 것은 완전히 다 바치라는 것입니다. 몽땅 바치라는 것입니다. 조금도 미련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다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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