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素祭)
레위기 2:1-16
1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2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4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병을 드릴 것이요 5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6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7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8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9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0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11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12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 13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14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15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16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레위기 2:1-16
1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2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3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4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병을 드릴 것이요 5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6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7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8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9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0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11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12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 13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14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15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16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1. 고운 가루로 드리는 소제
가루는 예수님의 희생을 가리킴
본문 1-2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고 하였습니다. 소제는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고 곡식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섞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소제로 드리는 고운 가루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 주실 것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전폭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하여 ‘하나님의 의(義)’를 완전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큰 것만 이룬 것이 아니라 작은 것까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의를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자신을 고운 가루가 되는 것과 같이 세밀하게 희생하시면서 의를 행하셨습니
다. 즉 예수님은 고운 가루와 같이 세밀한 부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시므로 의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물로 온전히 드리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완전한 의를 이루셨고, 그 의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전가시켜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희생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께서 일생동안 이루신 완전한 의를 받았습니다. 그 의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을 받을 수 있는 의입니다. 그 의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법정에 설 때에 의인이라고 선언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일생 동안 이루어 놓으신 ‘의’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의’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고 선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를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의 의는 자신이 율법을 행한 의이고, 성도의 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은 의입니다. 바리새인이 율법으로는 흠이 없으리만큼 행하였다고 하여도, 그 의를 가지고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가 행한 의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행한 의로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에게는 의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갑니다.
인간이 아무리 힘을 많이 써서 의를 행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사야 64장 6절에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의는 하나님 앞에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받아야만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의’입니다. 그 ‘의’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 의로, 그 의를 받은 사람이어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 의를 기초로 해서 성경말씀대로 행한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큰 자입니다. 많이 행한 사람은 더 큰 자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고 믿기만 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작은 자입니다. 하늘나라에서 큰 자는 영광도 크고 면류관 상급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것까지 다 행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가 힘입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기름은 성령을 가리킴
그 다음에 가루에 기름을 부으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시며 의를 이루실 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를 이루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기름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를 이루실 때에 성령으로 이루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구약 성경을 다 실행하셨습니다. 즉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다 복종하셔서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그 의를 받은 우리도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로 삼아 놓고, 자신을 가루로 하나님께 바치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가루에 기름을 부으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시며 의를 이루실 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를 이루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기름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를 이루실 때에 성령으로 이루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구약 성경을 다 실행하셨습니다. 즉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다 복종하셔서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그 의를 받은 우리도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로 삼아 놓고, 자신을 가루로 하나님께 바치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유향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가리킴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라고 하였는데, 유향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향기를 가리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5-16절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못 박히신 것은 대속의 향기, 의의 향기, 생명을 살리는 향기를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 주시므로 예수님의 향기가 온 세상에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려, 그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였는데(마 26:6-13), 그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서 부어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향기는 온 집안에 가득할 뿐 아니라 온 세계에 예수님의 구속의 향기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 향기는 하늘나라에도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운 가루 같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시면서 완전한 의를 이루어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도 의의 길을 걸으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라고 하였는데, 유향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향기를 가리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5-16절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못 박히신 것은 대속의 향기, 의의 향기, 생명을 살리는 향기를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 주시므로 예수님의 향기가 온 세상에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려, 그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였는데(마 26:6-13), 그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서 부어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향기는 온 집안에 가득할 뿐 아니라 온 세계에 예수님의 구속의 향기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 향기는 하늘나라에도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운 가루 같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시면서 완전한 의를 이루어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도 의의 길을 걸으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였는데, 희생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생활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으면 더러운 냄새가 나옵니다. 남을 비방하거나 악담하는 것은 악한 냄새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겠는데, 인정으로 나가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못나갑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악평하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잡으러 모친 마리아와 동생들이 왔을 때, 예수님께서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이며, 자매이며, 모친이다”라고 하였습니다(막 3:31-35). 예수님은 인정으로 기울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가신 발자취는 전부 향기로운 발자취입니다. 인정으로 기울어지면 그것은 향기로운 냄새가 아니고, 좋지 못한 냄새입니다.
성도가 정성을 다해서 연보하는 것도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입니다(빌 4:18). 그러므로 십일조를 안 드리는 사람은 십일조를 드려야 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도 충성한다고 하였습니다(눅 16:10). 지극히 작은 것은 재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물질에 충성하는 자가 큰 것에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림
본문 3절에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바치고 소제물의 남은 것은 제사장에게 돌려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희생의 생활을 하시므로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다음에 모든 택한 백성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신령한 양식으로 나눠 주신 것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피를 마시고 예수님의 살을 먹어야만 생명이 삽니다. 요한복음 6장 53절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바로 바치는 생활을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살려내는 생활을 하여야, 소제를 하나님께 합당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2. 불에 익힌 것으로 드리는 소제
본문 4-10절에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소제물을 불에 익혀서 드리는 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덕에 굽는 것이나 번철(燔鐵)에 부치는 것이나 솥에 삶는 것은 다 불을 통과하는데, 불은 환난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환난을 당하시면 서 하나님께 제물이 되셨음을 상징합니다. 화덕에 구어서 드리는 소제는 빈대떡처럼 번철에 부쳐서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입니다. 이 제사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반죽하여 무교병이나 무교전병을 만들어 화덕에 구워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무교병과 무교전병은 누룩을 넣지 않고 넓적하게 만든 떡인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것과 성도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바쳐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조각으로 나누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산산이 깨져 희생당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화덕이나 번철에 굽는 것, 솥에 삶는 것과 같은 고난을 당하시면서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가물치가 사람 몸에 좋은 약이라고 해서 산 가물치를 끓는 물에 넣으면 가물치가 후닥닥 뛰어 나오려고 하다가 그 뜨거운 물이 사람의 얼굴에 튀어서 부상을 당한다고 하는데, 가물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큰 고난입니까?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실
때에 솥에 삶는 것과 같은 고난, 번철에 부치는 것과 같은 고난, 화덕에 굽는 것과 같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그 고난으로 의를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의’ 하나 양보하지 않으시려고 고난을 다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안 당하시려
면 얼마든지 안 당하실 수 있습니다. 열두 영(營) 되는 천사를 보내셔서 원수들을 다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화덕에 굽는 것과 같은 고난, 번철에 부치는 것과 같은 고난, 솥에 삶는 것과 같은 고난을 자원해서 다 당하셨습니다. 작은 고난에서부터 큰 고난까지 다 당하셨습니다. 죽기까지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때에 솥에 삶는 것과 같은 고난, 번철에 부치는 것과 같은 고난, 화덕에 굽는 것과 같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그 고난으로 의를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의’ 하나 양보하지 않으시려고 고난을 다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안 당하시려
면 얼마든지 안 당하실 수 있습니다. 열두 영(營) 되는 천사를 보내셔서 원수들을 다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화덕에 굽는 것과 같은 고난, 번철에 부치는 것과 같은 고난, 솥에 삶는 것과 같은 고난을 자원해서 다 당하셨습니다. 작은 고난에서부터 큰 고난까지 다 당하셨습니다. 죽기까지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또한 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물을 드리려거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찢고 그 위에 기름을 부어 소제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다 깨져 나가는 것을 의미 합니다. 번철에 부쳤다고 해도 그것을 다 또 조각조각 찢어서 희생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를
가져다가 불사르고 남은 것은 제사장에게 돌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셨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의와 뜻을 이루어 놓고, 그 다음에 그것을 제사장에게 준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날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우리의 생명의 떡으로, 생명의 양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난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당하신 고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큰 고난은 의를 이루시기 위해서 당하신 고난입니다. 의를 양보하면 고난을 당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자원해서 그 고난을 다 당하시면서 의의 길을 걸어가셨고, 우리에게 그 의를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 대신 친히 모든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의가 어떠한 의인 줄 바로 알고 감사하며, 우리도 의를 위해서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3. 누룩과 꿀을 넣지 말고 소금을 칠 것
누룩(죄)과 꿀(인간적, 세상적인 것)을 넣지 말아야 함
본문 11절에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누룩이나 꿀을 넣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소제물에 누룩을 넣으면 안 됩니다. 또
꿀도 넣으면 안 됩니다. 누룩은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보통은 부패시키는 물질인데, 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털끝만큼도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물에는 누룩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룩을 넣지 말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없이 하나님께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누룩(죄)과 꿀(인간적, 세상적인 것)을 넣지 말아야 함
본문 11절에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누룩이나 꿀을 넣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소제물에 누룩을 넣으면 안 됩니다. 또
꿀도 넣으면 안 됩니다. 누룩은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만 보통은 부패시키는 물질인데, 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털끝만큼도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물에는 누룩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룩을 넣지 말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없이 하나님께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또 꿀을 넣지 말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머리 둘 곳이 없는 것을 가르칩니다. 누가복음 9장 58-62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꿀을 넣지 않은 것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는 하셨는데, 머리 둘 곳이 없으니까 꿀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인간적인 달콤한 것, 세상적인 달콤한 것을 넣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친이나 가족에 대한 의무는 감당해야 하지만, 거기에 얽매이거나 빠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가족 때문에 뒤돌아보면 안 됩니다. 의무는 감당해야 하지만 뒤를 돌아보는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같은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친을 제자에게 부탁하시기는 했지만 모친에게 얽매이지는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또 모친의 말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한 것입니다. 꿀을 넣지 않았습니다. 소제물에 누룩과 꿀을 넣지 말고, 그것을 전부 가져다가 ‘불사르라’, ‘화제로 삼아라’는 것입니다.
처음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함
본문 12절에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라고 하였습니다. 누룩과 꿀을 하나님께 처음 익은 것으로는 드릴 수 있으나, 향기로운 냄새를 내게 하기 위해서 단에 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역대하 31장 5절에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꿀을 풍성히 드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23장 17절에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고운 가루에다 누룩을 넣어서 만들고 하나님께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오순절에 처음 익은 곡식을 가지고 제사드릴 때는 누룩을 넣어서 바치라고 하셨으나, 여기 본문에 있는 소제에는 누룩이나 꿀을 넣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익은 곡식을 하나님께 바칠 때 누룩도 넣고 꿀도 넣으라는 것은 인간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바치라는 뜻입니다. 누룩을 넣는 것은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며, 꿀을 넣는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오락과 세상 모든 즐거움도 다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꿀과 누룩의 처음 것을 바치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또 죄인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면서 바치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것을 누리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치고 그다음에 인간적인 것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것을 자기가 취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먼저 바치는 생활, 곧 세상 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때에 먼저 하나님께 바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첫 월급을 타서 바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결혼할 때에 금식기도하고 결혼식 하는 사람도 있고, 또 결혼하고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간 세상의 모든 것을 취하기에 앞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누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처음 익은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생활입니다.
인간적인 것을 자기가 취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먼저 바치는 생활, 곧 세상 것을 하나님께서 주실 때에 먼저 하나님께 바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첫 월급을 타서 바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결혼할 때에 금식기도하고 결혼식 하는 사람도 있고, 또 결혼하고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간 세상의 모든 것을 취하기에 앞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누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처음 익은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생활입니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쳐야 함
본문 13절에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는 말씀입니다. 치지 말 것은 무엇입니까? 소제물에 누룩과 꿀은 넣지 말고, 기름을 붓고 유향을
놓으며 소금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말하자면 소금에는 언약성취, 희생, 희생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 이 세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언약성취는 영원불변의 언약성취입니다. 그 다음에는 희생과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소제물에 소금이 빠지면 안 됩니
다. 언약성취의 정신이 빠지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소제물이 되기 위해서 고운 가루가 되어 바쳐졌고, 말씀대로 순종해서 바쳤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이 언약성취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는데(요 19:30),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안지시면, 즉 고난을 받지 않으시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안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원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는 뜻은 두 번째이고, 첫째는 하나님의 명령을 죽기까지 복종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시면서 둘째 목적인 우리를 구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7-8절에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기 위해서 죽으셨고, 그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소금입니다. 언약성취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희생하셨고, 또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소금을 반드시 쳐야 됩니다.
본문 13절에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는 말씀입니다. 치지 말 것은 무엇입니까? 소제물에 누룩과 꿀은 넣지 말고, 기름을 붓고 유향을
놓으며 소금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말하자면 소금에는 언약성취, 희생, 희생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 이 세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언약성취는 영원불변의 언약성취입니다. 그 다음에는 희생과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소제물에 소금이 빠지면 안 됩니
다. 언약성취의 정신이 빠지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소제물이 되기 위해서 고운 가루가 되어 바쳐졌고, 말씀대로 순종해서 바쳤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이 언약성취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는데(요 19:30),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안지시면, 즉 고난을 받지 않으시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안 받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원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는 뜻은 두 번째이고, 첫째는 하나님의 명령을 죽기까지 복종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시면서 둘째 목적인 우리를 구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7-8절에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기 위해서 죽으셨고, 그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소금입니다. 언약성취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희생하셨고, 또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소금을 반드시 쳐야 됩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도 소제물의 생활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성취를 언제나 앞세워야 됩니다.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우리가 언제나 모든 것을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겠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가루가 되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또 제물이 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희생하여 자기 생명도 살고, 다른사람의 생명도 살리는 길을 가야 합니다. 이러한 소금을 치는 일, 기름을 치는 일, 성령으로 말미암아 향기가 나는 소제물의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4. 첫 이삭으로 드리는 제사
본문 14-15절에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첫 이삭으로 소제를 삼을 때에는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하여, 즉 볶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 찧기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볶아 찧어서 소제를 삼으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수난 당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소제물이 되어, 볶는 데까지, 삶는 데까지 나갈 뿐만 아니라, 찧는 데까지 나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수난을 비참하게 당하신 것입니까? 볶기만 해도 큰 수난인데, 거기다가 절구에 찧어서 가루가 되도록 까지 고난당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볶아서 찧는 데까지 나가는 고난을 당하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거기다 기름을 붓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향기가 되도록 하여, 소제가 되도록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본문 16절에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고 하였습니다. 화제는 제물을 불살라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이렇게 볶는 생활, 찧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볶는 것은 삶는 것과 비슷
합니다. 물 없이 삶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이렇게 편철에 굽는 것처럼 볶아대고 거기다 대고 찧어서 가루가 되기까지를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예수님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 가야 됩니다. 볶는 고난과 찧는 고난까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하시면서 구속해 주셨는데, 우리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제물이 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볶아서 찧는 데까지 나가는 생활을 해야만 예수님의 가신 길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운 가루가 되셔서 제물을 드리신 것, 즉 우리를 위해서 고난당해 주신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볶아서 찧는 데까지 나가는 생활, 화덕에 굽고, 번철에 부치고, 솥에다 삶기까지 나가는 고난, 그리고 여기에다 유향을 섞고, 기름을 붓고, 누룩과 꿀을 넣지 않는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누룩과 꿀을 제외시키고 소금만 넣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우리도 그 고난에 참여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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