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2일 목요일

레위기 1:1-17 구약 시대의 5대 제사와 그 뜻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구약 시대의 5대 제사와 그 뜻
레위기 1:1-17

1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3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4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6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9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0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
이면 흠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11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12그는 그것의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그 기름을 베어 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다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13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4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 15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고 피는 단 곁에 흘릴 것이며 16멱통과 그 더러운 것은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17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단 윗 불 위의 나무위에 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구약시대의 5대 제사와 그 뜻에 대해서 은혜 받고자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다섯 가지의 큰 제사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번제, 둘째는 속죄제, 셋째는 소제, 넷째는 속건제, 다섯째는 화목제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 다섯 가지 제사를 늘 드리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제사인데, 그 뜻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신약시대에는 제사의 의식은 폐했지만 그리스도에게 적용이 되므로 이 다섯 가지 제사는 오늘날 우리도 그 신령한 뜻을 취해서 이 제사 법대로 하나님을 바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1. 번제

번제는 불에 전부 다 태우는 제사입니다. 소나 양이나 비둘기로 번제를 드리되 전체를 다 불사르는 제사입니다. 먼저 소나 양으로 제사를 드리고자 할 때에는 그 제사 드리고자 하는 사람이 소나 양을 회막으로 끌고 가야 합니다. 즉 말하자면 성전으로 끌고 가야 합니다.
끌고 가서 회막문에서 소에게 안수를 해야 합니다. 소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안수를 한 다음에 거기서 소를 잡아야 합니다. 소를 잡기 전에는 회막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에다 안수를 하는데, 안수하는 목적은 자기 죄를 소에 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내 죄를 전부 소에게 전가시킨다는 뜻으로 안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제사 드리는 사람이 거기서 소를 잡아야 됩니다. 잡아서 머리를 자르고 가죽을 벗기고 피를 내야 됩니다. 그리고 그 피를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피를 단 사면에 뿌려야 됩니다. 그 다음에 각을 뜨고 기름을 잘라 내야 됩니다. 제사 드리는 사람이 각을 떠야 됩니다. 그리고 기름은 제사장에게 주어서 단 위에 불사르고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어야 됩니다. 물로 씻어서 전부를 진 밖에 내다가 다 불살라야 됩니다.

이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인데, 피 흘림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가려면 마땅히 죽어야 된다, 또 피를 흘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대신에 이 송아지가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대신에 죽으신 것을 우리가 확실히 깨닫는 것입니다. 또 소를 회막문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잡는 것처럼 예수님을 내가 죽인 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피를 내가 흘리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소를 각 뜨고 기름을 잘라 내는 것처럼, 예수님을 내가 죽인 것입니다. 그 팔과 다리를 십자가에 못 박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운 것이 나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피는 단 사면에 쏟고 기름과 내장은 다 물로 씻어서 불태워야 되는데, 이것은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여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고, 또 내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나가서 회개하면서 ‘나는 마땅히 예수님과 같이 죽어야 됩니다. 내가 피를 흘려야 됩니다. 내가 제물의 각을 뜨고 머리를 자르는 것처럼, 내 죄 때문에 내가 마땅히 머리를 자르고 각을 뜰만한 자입니다’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복하면서 자신 전체를 하나님 제단에 바쳐 놓는 것입니다. 자신이 마땅히 죽어야 될 자인 줄로 알고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제물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비둘기로 제사 드릴 때, 번제 드리는 경우에는 비둘기 머리를 비틀어 끊으라고 했습니다. 머리를 비틀어 끊어서 단 위에 불사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비참하게 죽으실 것을 가리킵니다. 제사장이 비둘기 머리를 비틀어서 끊어서 단위에 드려야 됩니
다. 그 다음에 몸을 쪼개되 아주 쪼개지는 말고 몸은 통째로 옹근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이와 같이 비둘기 머리를 비틀어 끊은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비참한 고난을 당하신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희생에 감격에 넘쳐서 예수님의 희생에 감격하여 예수님께서 온 몸을 바치신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 앞에 제물로 바쳐드리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2. 속죄제

속죄제는 우리 죄를 대속하는 제사입니다. 속죄제의 제물은 흠 없는 짐승을 드리되, 제사장이 범죄하면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아 드리고, 이스라엘 온 회중이 하나님의 금령을 범하면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리며, 족장이 죄를 범하면 수염소를 예물로 드려야 하고, 평민의 경우는 암염소나 어린 암양으로 제사를 드립니다. 속죄제의 경우도 번제와 같이 희생 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회막문에서 제물을 잡아야 됩니다. 회막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나타내는데, 제물 없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를 제사장이 손가락에 찍어서 일곱 번 단에 뿌리고 향단에 바른 다음 남은 피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습니다. 그리고 제물의 모든 기름,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허리 근방의 기름, 간에 덮인 거풀 등은 단에서 불살라야 됩니다. 나머지 가죽과 고기와 머리와 다리와 내장 등은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에 가져가서 불살라야 됩니다. 이것이 속죄제입니다.

우리 죄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이 세상에 오셔서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속죄제의 희생 제물이 하나님 앞에 피 흘려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향단에 바르고 전부를 제단 밑에 쏟은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 주시고 피를 다 쏟으셔서 제단과 향단을 하
나님 앞에 거룩하게 만들어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께서 속죄해 주신 것에 대해 늘 감격이 넘치고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께 바쳐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다 흘려주셨습니다. 제물의 피는 생명을 가리키고, 기름은 힘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명 전체와 힘과 마음과 정성 전체를 다 들여서 우리를 위해서 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나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나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주님이십니다. 마치 소를 자기가 잡는 것처럼 예수님을 내가 죽인 것으로 생각해야 되
고, 내가 예수님의 각을 떴다고 생각해야 되고, 내가 예수님을 죽여 내장과 그 모든 것을 떠낸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깊이 생각하고 언제나 겸손히 주님을 경외하고 또 주님을 본받아서 자기 자신도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제물이 되신 것
처럼, 나도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내 머리도 바치고 마음도 바치고 생명도 바치고 힘도 바치고 재물도 바치고 내 모든 환경도 바쳐서 고난 받으면서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만 하나님 앞에 합당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3. 소제

소제는 희생의 피 없이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제 하나만 드리는 것이 아니고 번제나 속죄제와 같이 소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레위기 2장 1-2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고 했습니다. 고운 가루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놓아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사가 소제입니다.

고운 가루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루가 되는 것처럼 희생함으로 의를 이루어 주신 것을 가리킵니다. 신구약 성경을 예수님께서 다 지키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가루가 되기까지, 곧 죽기까지 복종하시면서 하나님의 의를 완성시켜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성령으로 했다는 것이고, 유향을 놓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향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을 가진 참사람으로서, 또 신성으로는 참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고운 가루가 되기까지 하나님의 의를 완성시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큰 의만 이루어 주신 것이 아니라, 작은 의 하나라도 빠짐없이 우리에게 의를 입혀 주시려고 하나님의 의를 완성시키시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그 의를 믿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받았는데, 믿음으로 받은 의는 하나님 앞에 완전무결한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조금도 결함이 없는 의,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선언할 수 있는 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시되 가루가 되기까지 희생하시고 성령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도록 의를 완성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속죄제와 번제로 죄 사함을 받았고, 소제로 의롭다 하심을 입었습니다. 믿는 사람은 사죄를 받을 뿐 아니라 칭의까지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 믿는 사람은 모두가 의인입니다. 의인이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속의 은혜로 우리가 의인이 된 것입니다. 이제 의인이 되어 그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갑니다. 죄인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의인으로 나갑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제와 번제로 죄를 사함 받았고, 소제로 이제는 완전무결한 의를 입어서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늘나라 갈 때에는 의인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의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가루가 되기까지 희생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 주신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2절에 “믿는 사람은 담대함과 당당히 하나님 앞에 나아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어주신 의를 믿음으로 받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간다고 한 것입니다.

소제의 예물에서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모든 유향을 다 불사르고 남은 것은 제사장에게 주었습니다. 소제를 드릴 때 생가루로 드리기도 하고, 또 레위기 2장 4절에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라고 했는데,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를 드리는 것도 있습니다. 또 번철에 부친 것으로 드리는 것도 있고,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는 것도 있다고 했습니다(5, 7절).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떡을 만들어서 화덕에다 굽는데, 무교전병 즉 무교병을 만들어서 화덕에다 굽는 것입니다. 또 번철에 부치는 것은 빈대떡 부치듯 부쳐 드린다는 것입니다. 또 솥에 삶아서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드리는 것도 있습니다. 생가루로 드리는 것, 화덕에 굽는 것, 번철에 부치는 것, 솥에 삶아서 드리는 것,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고난을 당하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화덕에 굽는 것과 같은 고난, 번철에 부치는 것과 같은 고난, 솥에 삶는 것과 같은 고난을 예수님께서 당하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소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고난 당하셨는가를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의를 이루실 때에 거저 쉽게 이루신 것이 아닙니다. 가루가 되기까지 희생 하시되 화덕에 굽는 고난, 번철에 부치는 고난, 솥에 삶는 것과 같은 고난을 예수님께서 당하시면서 우리 죄를 대신 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2장 11절에는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세상에 머리 둘 곳도 없이 고난 받으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였습니다(마 8:20). 머리 둘 곳이 없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상징하기 위해서 꿀을 넣지 말고 소금만 넣으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언약 성취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언약 성취, 즉 영원불변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 말씀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4. 속건제

속건제는 속죄제와 같다고 했는데,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가지고 제사를 드리되, 범죄한 사람의 힘이 그에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로 제물을 삼고, 그것도 안되면 소제처럼 예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피는 단 사면에 뿌리고 기름은 불사르고 남은
것은 제사장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이 속건제는 어떤 때 드리느냐 하면, 레위기 5장 1절에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재판장이 증인으로 불러서 본 일이나 아는 일에 대해 증거 하라고 할 때 증거 안 하면 죄가 됩
니다. 그 때 회개하고 속건제를 드려야 됩니다. 또 윗사람이 무슨 일처리를 바로 하려고 증거를 얻기 위해서 아랫사람에게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하라고 할 때에 진술 하지 아니하면 그것이 죄가 되므로 회개하고 속건제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레위기 5장 4절에 “혹 누구든지 무심 중에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그 사람의 무심 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것이니”라고 하여 속건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무심 중에 맹세한 것, 즉 맹세를 잘못한 것이든지 서원한 것을 갚지 않은 것에 대해서 속건제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작정한 것을 하지 못한 것이나 또 서원한 것을 갚지 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이 죄인데, 마땅히 죽어야 될 줄 알고 자기 대신에 어린 양이나 염소를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을 것 대신에 그것이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다시 갚아야 합니다.

그리고 레위기 5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범과 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너의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수양을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라고 하였
습니다. 여호와의 성물에 대해서 그릇 범한 죄에 대해 속건제를 드려야 합니다. 성물에 대해서 그릇 범했다는 것은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한 것을 뜻합니다. 또 십일조를 드려도 온전한 십일조를 못 드린 것이나 첫 열매를 드리지 못한 것도 포함됩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 한 것
이나 주일을 지켰다고 해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지 못 한 것이 성물에 대해서 그릇 범한 것입니다. 십일조를 안 드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이 마땅히 죽을 죄인 줄 알고 하나님께 나와서 속건제를 드려야 합니다. 또 십일조를 드려도 작은 것만 드리고 큰 것은 안 드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그마한 수입에 대한 십일조는 드리지만, 몇 천 만원, 몇 억대의 십일조는 뚝 잘라 먹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죄입니다. 그런 것이 마땅히 죽을 죄인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속건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키기는 하지만 예배 시간에 참여 하고 나가서 사사로운 일하는 것도 죄인 줄 알아야 합니다. 주일 하루를 온전히 거룩하게 지내지 못한 것이 허물입니다. 하루 종일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리고 뜻을 드리고 거룩하게 주일을 지켜야 되겠는데, 이렇게 하지 못하고 사사로운 일하고 세상 생각하고 육신의 정욕대로 나가면, 이 사람은 주일을 거룩하고 온전하게 지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 속건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또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는데, 첫 열매를 드리지 못한 것이 하나님 앞에 속건제를 드려야 될 죄입니다.

속건제를 드릴 때는 속죄제와 같이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고가서 자기가 그 희생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제물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리고 기름은 불사릅니다. 그리고 그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어 주신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내 죄 때문에 피 흘려 죽으시고 나를 위해 단 사면에 피 뿌려 주신 주님께 감사를 해야됩니다. 마땅히 죽어야 될 자인 나 대신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하면서 속건제를 늘 드리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죄를 하나 지을 때마다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나와서 회개하고 제사 드리고,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되도록 항상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물에 대해 죄를 지었다면, 흠 없는 수양을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야 합니다. 또 성물에 대한 범과를 갚되 그것에 오분지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성물도 오분지 일을 더해야 되고 남의 물건에 손해 준 것도 오분지 일을 더해서 돌려주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야 됩니다. 또 레위기 5장 17-18절에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 그는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부지 중에 그릇범한 허물을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금령 중 하나를 범한 것에 대해 속건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만 양심에 가책 받는 일을 했고 하나님 말씀에 위반 되는 일했으면, 마땅히 죽을 자인 줄 알고 제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 앞에 속건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죄 때문에 죽으신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속건제를 드리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5. 화목제

마지막으로 화목제가 있습니다. 화목제는 레위기 3장에서 말씀하였는데,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과도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드리는데, 수컷이나 암컷은 상관없이 흠 없는 것으로 드리면 됩니다. 이 제물도 회막문에서 안수해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
죄를 소나 양에게 전가해야 됩니다. 또 자기가 잡아야 됩니다. 그 죄 때문에 자기가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피를 단 사면에 뿌리고 기름을 단 위에 불살라야 됩니다. 또 가슴은 요제로 드리고 우편 넓적다리는 거제로 드려야 됩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는데, 소나 양이나 염소와 같은 화목제물이 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다 걸머지시고 피 뿌려서 우리를 위해서 죽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소에게 안수하고서 소를 자기가 잡는데, 자신이 죽
어야 될 죄인인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고 사람과 화목하지 못한 내가 죽어야 될 자다’, ‘소를 내가 잡는 것처럼 내가 나를 죽여야 마땅하다’, ‘내가 예수님을 죽였다’, ‘각을 뜨고 머리를 자르는 것처럼 내가 예수님을 못 박았다’,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웠고 손과 발에 못 박았다’ 하고 생각하면서, 화목하지 못한 것이 이렇게 큰 죄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과도 화목해야 됩니다. 사람과 화목하지 못했던 것도 화목제를 통해서 화목해야 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과도 화목해야 합니다. 화목하지 못한 것은 아직도 자기가 죽지 못한 것이고,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제물로 삼지 못한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감격에 넘쳤다면, ‘나 같은 죄인을 예수님이 살려 주었는데,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 못해주겠는가? 나는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는데, 다른 사람이 내게 빚진 백 데나리온을 탕감해 주지 못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는데,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화목제를 받아들이지 못한 증거이고 그리스도 밖에 사는 증거이고 자기가 죽지 못한 증거입니다. 자기가 화목 제물이 되어야 됩니다. 죽은 사람은 화목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서로 싸우고 다툽니다. 그런데 망우리에 있는 공동 묘지에 가면 그곳에서 죽은 사람이 서로 싸우는 일은 몇 백 년이 지나가도 한 번도 없습니다.
그저 고요합니다. 죽은 사람이 왜 싸우겠습니까? 싸우는 것은 다 자기가 살아서 아직 화목 제물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화목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인 줄 알고, 자기가 죽어야 되는 죄인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그 죄 때문에 자기가 예수님을 죽인 줄 알고 하나님과 먼저 화목을 하고 사람과도 화목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화목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막힌 사람입니다. 다 터져 놓아야 합니다. 화목해야 하나님의 것이 우리에게 옵니다. 마태복음 7장 2절에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과 막히면 하나님과도 막힙니다. 긍휼 없는 자는 긍휼 없는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마 5: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모든 사람과도 화목해야 됩니다. 화목하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화목을 해야 합니다. 화목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화목 제물 되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증거이고, 자기가 화목 제물이 되지 못한 증거이며, 자신이 죽지못한 증거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가 죽고 진정한 화목제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서 모든 사람과 화목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6.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제사를 드려야 함

구약시대에 다섯 가지의 큰 제사가 있었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바로 드려야 됩니다. 레위기 10장 1-2절에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
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도 제사장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켜 그들이 여호
와 앞에서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다섯 가지 제사를 드리되 향로에 불을 담아서 향연과 같이 제사를 드려야 되는데,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서 드렸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여호와의 명하신 불로 제사 드려야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
로 제사 드리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 사람을 죽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의 명한 불, 즉 여호와께서 시키시는 대로 제사 드려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제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사를 드려야 되고, 말씀에 맞는 제사여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말씀대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설립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열심,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종교 운동,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성령 운동,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종교 사업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에 어긋나는 예배와 말씀에 어긋나는 열심은 다 다른 불입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심은 있었으나 그 열심은 지식을 따라 된 열심이 아니기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의 의를 거역했다고 하였습니다. 열심이 좋기는 좋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되지 않는 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성경에 맞는 교회를 세워야 되고, 예배도 성경에 맞는 예배를 드려야 되고, 성령운동도 성경에 맞는 성령 운동을 해야 되고, 각종 종교 운동도 성경에 맞는 종교 운동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갈라디아 1장에 다른 복음에 대해 말씀하였데, 복음은 복음이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성경 그대로, 하나님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것만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릇된 신비주의와 신신학은 모두 다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또 해방신학은 사회를 구원하겠다는 것인데, 육신의 억압이나 제도의 억압에서 해방시키겠다는 것으로 이것도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은 영적해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 해방, 곧 영적 생명운동이지 육신의 운동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7장 21-22절에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라고 했습니다. 종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받은 것이고, 제도적인 종에서 자유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영적 구원운동을 해 나가야 되지, 기독교 사회주의나 기독교 국가주의로 나가는 것은 복음 운동이 아닙니다. 오늘날 NCC 계통에서 한국을 통일시키겠다고 이북과 연합해서 예배드리겠다는 것은 다 잘못된 불입니다.
또 성령 운동에 대해서도, 감동과 열심도 정상적으로 해야 합니다. 성경에 맞도록 해야 합니다. 감동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육신의 감동과 영적 감동이 있는데, 육신의 감동이 굉장히 큽니다. 또 영적 감동에도 외부적 감동과 내부적 감동,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신비주의자
들이 좇는 감동은 영적인 감동이라고 하더라도 내적 감동이 아닌 외부적 감동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 갔을 때에 호렙산 굴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바람, 지진, 불이 지나갔습니다. 그것은 다 영적 외부적인 감동입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고, 지진이 있고 불이 있었으나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은 외부적인 감동입니다. 이들이 다 지나간 후에 고요한 중에 세미한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이 영적 감동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교회, 말씀대로 드리는 예배, 말씀 안에 있는 성령의 감동, 말씀대로 되는 열심, 말씀대로 되는 종교 운동, 이런 일을 해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은 다른 불을 드리다 죽은 것처럼 이 나라가 하나님께 제사하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하는 제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다섯 가지 제사를 드리되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불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는 하나님 앞에 심판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맞는 불을 드려서, 즉 하나님 말씀에 맞는 운동을 해서, 성령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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