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1-5 하와가 뱀에게 미혹됨
1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1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 뱀이 가장 간교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께서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나무에서 나는 모든 것을 먹지 마라고 말씀하셨느냐?" 라고 물었다.
3:2 그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기를 "동산나무 열매를 우리가 먹어도 되지만,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너희가 죽지 않도록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라.' 고 말씀하셨다." 하니,
3:4 그 뱀이 그 여자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고 말하였다.
1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1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 뱀이 가장 간교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께서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나무에서 나는 모든 것을 먹지 마라고 말씀하셨느냐?" 라고 물었다.
3:2 그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기를 "동산나무 열매를 우리가 먹어도 되지만,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너희가 죽지 않도록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라.' 고 말씀하셨다." 하니,
3:4 그 뱀이 그 여자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고 말하였다.
1. 뱀의 유혹의 방법
본문 1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하였습니다. 에덴동산에 뱀이 들어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고 하였는데 간교한 마귀가 뱀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하였는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아무 것도 들어와 끼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늘 교통해야 됩니다.
그런데 뱀이 그 가운데 들어와 끼었다는 것입니다. 뱀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들어와 끼어서 교통을 막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뱀의 역사입니다.
뱀이 간교한 자체가 벌써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증거입니다. 마귀가 뱀을 간교하게 이용해서 사람을 미혹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와서 뭐라고 말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라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하시지 않는 것’이 많은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의미가 그 가운데 내포되어 있습니다. ‘참으로’라고 물음으로써 하나님이 ‘참으로 안 하는 것도 많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미혹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말씀하신 좋은 것들은 뱀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먹으라고 하신 것은 생명나무의 실과 말고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면은 하나도 얘기하지 아니하고, 부정적으로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는 것만 얘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있는 것 하나만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모든 것을 다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라고 바꿔 놓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하면서 격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벌써 과장하고 또 사람을 격동시키는 질문입니다. 뱀이 질문에 ‘참으로’ 라는 말로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고, ‘모든’이란 말을 갖다 붙여서 과장시키고, ‘먹지 말라’는 말만 하여서 나쁘게 생각하게 해놓았습니다
2. 하와가 뱀에게 미혹된 원인
동산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지키지 못함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곳에 사람을 두어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습니다(2:15). 다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모든 것을 자기 위치에 놓고, 자기 위치에서 자기 직무를 감당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뱀의 말을 보면 그 간교한 것이 드러납니다. 뱀이 여자에게 와서 “먹지 말라고 하더냐?” 한 그 때에 여자가 동산을 잘 지키고, 동산을 잘 다스렸다면 벌써 다 알았을 것입니다. 뱀의 말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또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뱀이 ‘하
나님이 참으로’라고 말한 것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 참이신데, ‘참으로’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참이 아닌 것이 있는 것처럼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위치를 떠난 것입니다.
그 태도는 정상적인 태도에서 떠난 것이고, 곧 간교가 섞였다는 것입니다. 뱀의 마음이 자기 위치에서 떠났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이간 붙이려는 태도가 나왔고, 또 동산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고 물어보았고, 거짓말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음 자체가 거짓
말이 되어 나왔던 것입니다. 또 먹지 말라고 하는 것부터 말하고는 먹으라고 하신 것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 것을 보니까 마귀가 이간을 붙이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동산을 잘 다스렸다면, “이것이 마귀구나. 야! 뱀아, 너는 어찌하여 그 모양이냐? 네 태도가 틀렸다. 너는 지금 네 위치가 아니다. 너는 말하는 것 자체가 벌써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서 어디에다 대고 ‘참으로’라는 말을 갖다 붙여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그런 참람된 말을 하느냐? 다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을 그렇게 거짓말로 갖다 붙이느냐? 입 다물고 모두 엎드려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뱀의 머리를 발로 꼭 밟아서 낮춰놓고, 꼼짝 못하게 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마귀가 백 마리가 와도 괜찮습니다. 동산을 잘 지키고 있었다고 하면 마귀가 백 마리가 와도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뱀이 아니라 더 큰 구렁이가 오게 되어도 관계가 없습니다. 구렁이가 오면 꼼짝 못하게 해놓을 수 있습니다. 동산만 잘 다스렸다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산을 잘 다스리지 못하니까 뱀이 월권 행동하는 것도, 간교하게 와서 미혹하는 것도 분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간교하게 오고, 말로 월권하고, 태도로 월권 행동을 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이간 붙이는 참람 된 말과 행동을 한 것입니다. 동산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뱀이 들어오고, 또 뱀이 올 때 거기에 말려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외에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으라고 주셨고, 생명나무도 주셨는데, 그것을 적극적으로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서 옳다고 주장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좋다, 옳다, 감사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와 같은 면을 약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면, 하나님께서 복 주신 면, 감사한
면이 너무 희미합니다. 벌써 이것이 다스리지 못하고 지키지 못한 증거입니다.
뱀과 대화를 나눔
본문 2절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와 뱀 사이에 대화가 있었습니다. 뱀하고 무슨 대화가 되겠습니까? 뱀하고 대화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뱀에게는 “야, 너는 안 되겠다. 가만히 엎드려 가라”고 하는 것밖에는 할 것이 없습니다. 대화할 바가 못 됩니다. 마귀와 무슨 대화를 합니까? 마귀를 인정해주니까 그와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인정을 안 하면
대화가 안 됩니다. 뱀이 물을 때, 여자가 대답하는 것 자체가 틀렸습니다.
벌써 뱀이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모든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라고 말한 것 가운데는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다 먹지 않고 어떻게 살겠느냐’ 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사람을 괴롭게 하는 하나님인 줄로 생각나도록 가져다 붙인 것입니다.
은혜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얘기하지 아니하고, 먹지 말라고 하고, 못 살게 하고, 사람을 괴롭게 하는 하나님으로만 생각나도록 이 말을 갖다 붙인 것입니다.
뱀이 물었을 때 여자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본문 2절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대답한 것을 살펴보면, “먹을 수 있으나”부터 틀렸습니다. 바로 대답하려면 “하나님께서 동산의 여러 가지 실과를 다 먹으라고 하셨다. 또 생명나무를 주셨다”고 해야 되겠는데, 적극적인 면이 벌써 약해진 것입니다. “먹을 수 있으나”라고 한 것을 보면, 안 먹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희미해짐
그 다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에 대해서 본문 3절에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하나님께서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여자가 여기에서는 없는 것을 가져다 붙였습니다. 또 그 다음에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하였는데, “죽을까”를 가져다 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는데, 나무 이름부터 잘못 말했습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선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동산 중앙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하는 것보다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했어야 하는데, 선악에 대해서 조금 희미해 진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에 대한 그 관념이 너무 희미합니다. 악에 대한 싸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악을 범하면 죽는다는 것이 너무 약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정녕 죽으리라’는 것을 ‘죽을까’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형시킨 것입니다.
그것은 하와가 말씀을 잘 지키지 못한 증거입니다. 동산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하와가 동산을 잘 지켰다면 빈틈없이 하나님께 모든 마음을 기울이고,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상태에 있었고,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을 잘 지키는 가운데 있어야 하기 때문
에 이렇게 말했을 리가 없습니다. 잘 지켰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이 모든 동산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다 먹으라고 하셨다. 생명나무도 주셨다. ‘네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라고 해야 되겠는데, 하나님 말씀을 변형시켜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악과 따먹기 전에 벌써 마귀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하와가 넘어갔습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가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마귀가 들어온 것입니다. 마귀가 오기 전에 벌써 희미해 진 것입니다. 뱀이 말할 때, 벌써 하와는 동산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뱀이 오기 전에 벌써 잘 못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뱀이 오게 된 것입니다. 뱀이 쑥쑥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동산 잘 지키고 잘 다스렸다면, 뱀이 오지도 못할 것이고, 또 와도 쫓아 냈을 텐데, 그만 자기 자신이 벌써 방심부주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뱀이 들어오는 문을 잠그지 않고 열어놓음
하와는 선악에 대한 그 철저한 관념도 없었습니다. 악을 범하면 죽는다는 사상도 희미해지고, 마음도 지키지 못하고 방심 부주의하였습니다. 그래서 동산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기 위치도 못 다스리고, 뱀의 위치도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뱀이 들어온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오는 대문을 활짝 다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뱀이 들어오는 문을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뱀이 슬슬 다니다보니까 문 활짝 열어놓은 집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 그 집에 들어가야 되겠다’ 하고 그 집에 들어온 것입니다.
하여간 뱀이 들어오는 문을 열어놓지 않고 있어야 됩니다. 뱀이 들어오는 문을 아예 다 닫고 동산을 잘 봉하여 잠근 동산이 되어야 됩니다. 동산은 항상 잠궈 놓아야지 그렇지 않고 열어놓으면 뱀이 들어와서 그만 동산을 다 어지럽게 만들고, 혼란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말씀을 지키지 못하게 만듭니다. 말씀에서 떠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동산을 잠궈 놓고 잘 다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잘 지켜야 됩니다.
아가서 4:12절에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성도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라는 것입니다. ‘잠갔다’는 것이나 ‘덮은 우물’, ‘봉한 샘’과 같은 것은 다
외부에서 잡동사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뱀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잘 잠가놓고, 잘 다스리고, 잘 지키는 그런 성도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참된 성도입니다. 잠가놓지 아니하고, 봉해놓지 아니하고, 그저 활짝 열어두면, 어중이, 떠중이들이 다 와서 먹습니다. 참새도 와서 먹고, 까마귀도 와서 먹고, 뱀도
와서 먹는 것입니다. 그들이 들어와서 다 먹어치우면 동산이 그만 다 더러워지고 빼앗기고 말게 됩니다. 하와는 동산을 잠가놓지 아니하고, 대문간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활짝 열어 놓고는, 아무나 와도 좋다는 것입니다. 뱀도 와도 좋고, 까마귀가 와도 좋고, 그저 뭐 다 열어놓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뱀이 안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뱀이 안 와도 다른 것이 옵니다. 뱀만 옵니까? 마귀가 뱀만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이용할 수 있습니다. 쥐새끼도 이용할 수 있고, 별 것 다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예 문을 잠가 놓고 안 들어오게 해놓으면 아무리 종류가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도 못 들어오게 됩니다. 가증한 종류들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마귀에게 이용당할 만한 자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산만 잘 잠가놓고 잘 지킨다면, 아무리 와도 끄떡없습
니다. 문이 열려있어야 들어오지, 잘 지키면 못 들어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설명해 주고,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일심정력으로 계속한다고 하면 뱀이 들어와도 괜찮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했다. 그것을 왜 물어보느냐? 말을 왜 틀어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느
냐?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면 다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산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방심부주의 하여 동산을 지키지 못하고, 뱀이 들어올 때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생명으로 삼지 못하고, 하나님과 수시로 교통하지 못하고, 방심부주의하고 있는 것이 다스리지 못한 것입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하였습니다. 에덴동산에 뱀이 들어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고 하였는데 간교한 마귀가 뱀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하였는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아무 것도 들어와 끼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늘 교통해야 됩니다.
그런데 뱀이 그 가운데 들어와 끼었다는 것입니다. 뱀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들어와 끼어서 교통을 막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뱀의 역사입니다.
뱀이 간교한 자체가 벌써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증거입니다. 마귀가 뱀을 간교하게 이용해서 사람을 미혹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와서 뭐라고 말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라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하시지 않는 것’이 많은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의미가 그 가운데 내포되어 있습니다. ‘참으로’라고 물음으로써 하나님이 ‘참으로 안 하는 것도 많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미혹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말씀하신 좋은 것들은 뱀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먹으라고 하신 것은 생명나무의 실과 말고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면은 하나도 얘기하지 아니하고, 부정적으로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는 것만 얘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있는 것 하나만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모든 것을 다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라고 바꿔 놓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하면서 격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벌써 과장하고 또 사람을 격동시키는 질문입니다. 뱀이 질문에 ‘참으로’ 라는 말로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고, ‘모든’이란 말을 갖다 붙여서 과장시키고, ‘먹지 말라’는 말만 하여서 나쁘게 생각하게 해놓았습니다
2. 하와가 뱀에게 미혹된 원인
동산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지키지 못함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곳에 사람을 두어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습니다(2:15). 다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모든 것을 자기 위치에 놓고, 자기 위치에서 자기 직무를 감당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뱀의 말을 보면 그 간교한 것이 드러납니다. 뱀이 여자에게 와서 “먹지 말라고 하더냐?” 한 그 때에 여자가 동산을 잘 지키고, 동산을 잘 다스렸다면 벌써 다 알았을 것입니다. 뱀의 말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또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뱀이 ‘하
나님이 참으로’라고 말한 것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 참이신데, ‘참으로’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참이 아닌 것이 있는 것처럼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위치를 떠난 것입니다.
그 태도는 정상적인 태도에서 떠난 것이고, 곧 간교가 섞였다는 것입니다. 뱀의 마음이 자기 위치에서 떠났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이간 붙이려는 태도가 나왔고, 또 동산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고 물어보았고, 거짓말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음 자체가 거짓
말이 되어 나왔던 것입니다. 또 먹지 말라고 하는 것부터 말하고는 먹으라고 하신 것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 것을 보니까 마귀가 이간을 붙이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동산을 잘 다스렸다면, “이것이 마귀구나. 야! 뱀아, 너는 어찌하여 그 모양이냐? 네 태도가 틀렸다. 너는 지금 네 위치가 아니다. 너는 말하는 것 자체가 벌써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서 어디에다 대고 ‘참으로’라는 말을 갖다 붙여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그런 참람된 말을 하느냐? 다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을 그렇게 거짓말로 갖다 붙이느냐? 입 다물고 모두 엎드려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뱀의 머리를 발로 꼭 밟아서 낮춰놓고, 꼼짝 못하게 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마귀가 백 마리가 와도 괜찮습니다. 동산을 잘 지키고 있었다고 하면 마귀가 백 마리가 와도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뱀이 아니라 더 큰 구렁이가 오게 되어도 관계가 없습니다. 구렁이가 오면 꼼짝 못하게 해놓을 수 있습니다. 동산만 잘 다스렸다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산을 잘 다스리지 못하니까 뱀이 월권 행동하는 것도, 간교하게 와서 미혹하는 것도 분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간교하게 오고, 말로 월권하고, 태도로 월권 행동을 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이간 붙이는 참람 된 말과 행동을 한 것입니다. 동산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뱀이 들어오고, 또 뱀이 올 때 거기에 말려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외에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으라고 주셨고, 생명나무도 주셨는데, 그것을 적극적으로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서 옳다고 주장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좋다, 옳다, 감사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와 같은 면을 약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면, 하나님께서 복 주신 면, 감사한
면이 너무 희미합니다. 벌써 이것이 다스리지 못하고 지키지 못한 증거입니다.
뱀과 대화를 나눔
본문 2절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와 뱀 사이에 대화가 있었습니다. 뱀하고 무슨 대화가 되겠습니까? 뱀하고 대화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뱀에게는 “야, 너는 안 되겠다. 가만히 엎드려 가라”고 하는 것밖에는 할 것이 없습니다. 대화할 바가 못 됩니다. 마귀와 무슨 대화를 합니까? 마귀를 인정해주니까 그와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인정을 안 하면
대화가 안 됩니다. 뱀이 물을 때, 여자가 대답하는 것 자체가 틀렸습니다.
벌써 뱀이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모든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라고 말한 것 가운데는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다 먹지 않고 어떻게 살겠느냐’ 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사람을 괴롭게 하는 하나님인 줄로 생각나도록 가져다 붙인 것입니다.
은혜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얘기하지 아니하고, 먹지 말라고 하고, 못 살게 하고, 사람을 괴롭게 하는 하나님으로만 생각나도록 이 말을 갖다 붙인 것입니다.
뱀이 물었을 때 여자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본문 2절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대답한 것을 살펴보면, “먹을 수 있으나”부터 틀렸습니다. 바로 대답하려면 “하나님께서 동산의 여러 가지 실과를 다 먹으라고 하셨다. 또 생명나무를 주셨다”고 해야 되겠는데, 적극적인 면이 벌써 약해진 것입니다. “먹을 수 있으나”라고 한 것을 보면, 안 먹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희미해짐
그 다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에 대해서 본문 3절에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하나님께서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여자가 여기에서는 없는 것을 가져다 붙였습니다. 또 그 다음에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하였는데, “죽을까”를 가져다 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는데, 나무 이름부터 잘못 말했습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선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동산 중앙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하는 것보다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했어야 하는데, 선악에 대해서 조금 희미해 진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에 대한 그 관념이 너무 희미합니다. 악에 대한 싸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악을 범하면 죽는다는 것이 너무 약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정녕 죽으리라’는 것을 ‘죽을까’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형시킨 것입니다.
그것은 하와가 말씀을 잘 지키지 못한 증거입니다. 동산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하와가 동산을 잘 지켰다면 빈틈없이 하나님께 모든 마음을 기울이고,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상태에 있었고,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을 잘 지키는 가운데 있어야 하기 때문
에 이렇게 말했을 리가 없습니다. 잘 지켰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이 모든 동산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다 먹으라고 하셨다. 생명나무도 주셨다. ‘네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라고 해야 되겠는데, 하나님 말씀을 변형시켜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악과 따먹기 전에 벌써 마귀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하와가 넘어갔습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가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마귀가 들어온 것입니다. 마귀가 오기 전에 벌써 희미해 진 것입니다. 뱀이 말할 때, 벌써 하와는 동산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뱀이 오기 전에 벌써 잘 못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뱀이 오게 된 것입니다. 뱀이 쑥쑥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동산 잘 지키고 잘 다스렸다면, 뱀이 오지도 못할 것이고, 또 와도 쫓아 냈을 텐데, 그만 자기 자신이 벌써 방심부주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뱀이 들어오는 문을 잠그지 않고 열어놓음
하와는 선악에 대한 그 철저한 관념도 없었습니다. 악을 범하면 죽는다는 사상도 희미해지고, 마음도 지키지 못하고 방심 부주의하였습니다. 그래서 동산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기 위치도 못 다스리고, 뱀의 위치도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뱀이 들어온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오는 대문을 활짝 다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뱀이 들어오는 문을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뱀이 슬슬 다니다보니까 문 활짝 열어놓은 집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 그 집에 들어가야 되겠다’ 하고 그 집에 들어온 것입니다.
하여간 뱀이 들어오는 문을 열어놓지 않고 있어야 됩니다. 뱀이 들어오는 문을 아예 다 닫고 동산을 잘 봉하여 잠근 동산이 되어야 됩니다. 동산은 항상 잠궈 놓아야지 그렇지 않고 열어놓으면 뱀이 들어와서 그만 동산을 다 어지럽게 만들고, 혼란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말씀을 지키지 못하게 만듭니다. 말씀에서 떠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동산을 잠궈 놓고 잘 다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잘 지켜야 됩니다.
아가서 4:12절에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성도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라는 것입니다. ‘잠갔다’는 것이나 ‘덮은 우물’, ‘봉한 샘’과 같은 것은 다
외부에서 잡동사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뱀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잘 잠가놓고, 잘 다스리고, 잘 지키는 그런 성도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참된 성도입니다. 잠가놓지 아니하고, 봉해놓지 아니하고, 그저 활짝 열어두면, 어중이, 떠중이들이 다 와서 먹습니다. 참새도 와서 먹고, 까마귀도 와서 먹고, 뱀도
와서 먹는 것입니다. 그들이 들어와서 다 먹어치우면 동산이 그만 다 더러워지고 빼앗기고 말게 됩니다. 하와는 동산을 잠가놓지 아니하고, 대문간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활짝 열어 놓고는, 아무나 와도 좋다는 것입니다. 뱀도 와도 좋고, 까마귀가 와도 좋고, 그저 뭐 다 열어놓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뱀이 안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뱀이 안 와도 다른 것이 옵니다. 뱀만 옵니까? 마귀가 뱀만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이용할 수 있습니다. 쥐새끼도 이용할 수 있고, 별 것 다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예 문을 잠가 놓고 안 들어오게 해놓으면 아무리 종류가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도 못 들어오게 됩니다. 가증한 종류들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마귀에게 이용당할 만한 자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산만 잘 잠가놓고 잘 지킨다면, 아무리 와도 끄떡없습
니다. 문이 열려있어야 들어오지, 잘 지키면 못 들어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설명해 주고,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일심정력으로 계속한다고 하면 뱀이 들어와도 괜찮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했다. 그것을 왜 물어보느냐? 말을 왜 틀어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느
냐?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면 다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산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방심부주의 하여 동산을 지키지 못하고, 뱀이 들어올 때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생명으로 삼지 못하고, 하나님과 수시로 교통하지 못하고, 방심부주의하고 있는 것이 다스리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 위치에 바로 서지 못함
자기 위치에 바로 서야 되겠는데, 자기도 자기 위치에 서지 못하고, 뱀도 뱀의 위치에 놓지 못한 것입니다. 엉성해져서 뱀을 사람 위에다가 놓고, 사람인 자기는 뱀 아래에다 놓은 것처럼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벌써 위치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 하
셨습니까? 우리는 뱀과 대화할 위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동물을 만들어 놓으시고 사람에게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름도 지어주고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하와는 뱀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뱀이 자기 위에 올라갔는데 그것도 모르고 지금 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뱀이나 사람이나 다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아무나 감히 왈가왈부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뱀이 “다 먹지 말라 하더냐? 참으로 그랬느냐?”고 하는 것은 참람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 잘 만들고 동산을 잘 지키고 다스리면, 뱀이 아니라 구렁이가 와도 괜찮습니다. 뱀이 백 마리가 와도 괜찮고, 만 마리가 와도 괜찮습니다. 끄떡없습니다. 대문 밖으로 왔다갔다만 하지, 이 안에는 못 들어옵니다.
그런데 다스리지 못하니까 자기 위치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위치를 떠났으니까 뱀도 자기 위치를 떠났는데, 뱀이 자기 위에 올라간 것도 모르고 뱀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험이 딱 들게 해 놓은 것입니다. 자기가 그렇게 만들어놓고 뱀이 와서 시험을 하면
다 당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대문을 열어놓으니까 뱀이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이고, 뱀이 들어오면 또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구나 자기가 만들어놓고 당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시험이 들어오게 만들어놓고 시험당하는 것입니다. 누가 만들어 놓습니까? 교역자가 시험 들어오게 만들어놓습니다. 그래 놓고는시험이 들어올 때 머리 싸매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뭐 하러 싸 맵니까? 자기가 대문을 안 열어놨으면, 마귀, 뱀이 못 들어 왔을 텐데, 자기가 뱀을 들어오게 만들어놓고 뱀이 들어오면 걱정하고 앉아 있습니다. 그런 교역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뱀이 들어오게 만들어놓고 걱정 근심을 하는 것은 다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안 만들었으면 안 당할 텐데 왜 만들어 놓고 당합니까?
3. 뱀이 여자를 다시 유혹함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면 마귀에게 사로잡힘
본문 4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죽을까 하노라” 하고 하와가 대답을 하니까, 뱀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면서 한 걸음 더 위에 올라가서 내려 누르는 것입니다. 결코 안 죽는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거짓말입니
다. 하나님의 말씀에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반대로 선악과를 따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내리 눌러놓았습니다.
뱀의 말은 독소가 있습니다. 뱀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할 때, 벌써 쑥 들어가는 것입니다. 독이 하와의 속으로 쑥 들어오면, ‘결코 안 죽겠구나’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 가리어지는 것입니다. 흐려 집니다. 의가 없습니다. 맑은 심령이 다 흐려져서 뱀의 독소에 사로잡
힙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그 거짓된 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마귀의 말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고, 동산을 잘 다스리고 지켰다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을 마귀가 하지도 못합니다. 설령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마귀에게 “야, 어디서 그런 말을 하느냐? 왜 안 죽느냐? 말씀에 죽지 않는다고 했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할 수 있습
니다. 그런데 말씀에 굳게 사로잡혀 있지 않는 하와에게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이 쑥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죄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교만을 넣어줌
본문 5절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악과라는 말을 안 합니다. 뱀도 안하고 하와도 안 하고, 둘 다 죄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둘의 대화를 살펴보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이라고 하면서, 선악과에 대해 ‘그것’, ‘이것’ 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또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만 말하여 죄에 대한 말은 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도할 때 지옥 간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옥에 간다는 말을 하지 말고, 죄라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또 하와는 ‘눈이 밝아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을 흐리멍텅하게 듣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같이 되겠습니까? 또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둘이 될 것이 아닙니까? 또 자기 남편도 하나님과 같이 되고, 하나님이 또 성별까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 때라도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을 어떻게 용납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창조자이시고 자기는 피조물인데, 어떻게 하나님과 같이 됩니까?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는 교만을 쑥 넣어주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높여주고, 교만을 갖다 넣어줍니다. 그렇게 사람을 높여서 하나님에게까지 높이려고 하고, 교만을 갖다가 넣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만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까지 높아지려고 하면 이런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다가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본래 천사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고 하다가 쫓겨났습니다. 그리고는 또 사람도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와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가 그 말을 좋게 들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참람 된 것입니까? 하와도 아주 얌체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말을 곧이 듣고 있습니까? 그것이 말이 됩니까? 남편과 같이 되겠다는 말도 들으면 안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그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습니까? 마귀는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를 꼭 누르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독점해서 자기 혼자 다 해 먹으려고, 너를 아주 발로 밟으려고 이러는 것이다. 따먹기만 하면 네가 밟혀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거짓으로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인격을 잔뜩 높여줍니다. 또 ‘네 인격이 얼마나 고상한 인격이냐? 그런데 이렇게 눌려서나 살면 되겠느냐? 자유는 다 갔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귀의 말이 그저 근거 없는 말은 아닙니다. 반은 거짓말입니다. 반 거짓말을 가지고 와서 눈이 밝아지는 체하는 것입니다. 선악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아는 것을 하나님과 같이 자기에게 맞는 것은 선이요,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악이라고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표준으로 살던 사람에게 자기 표준대로 살라는 것이요, 하나님을 위하여 살던 자에게 자기를 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이시기 때문에 그것이 맞지만, 피조물인 우리는 자신이 표준이 될 수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귀의 반 거짓말을 큰 미혹이요 죄악의 큰 함정인 것입니다.
자기 위치에 바로 서야 되겠는데, 자기도 자기 위치에 서지 못하고, 뱀도 뱀의 위치에 놓지 못한 것입니다. 엉성해져서 뱀을 사람 위에다가 놓고, 사람인 자기는 뱀 아래에다 놓은 것처럼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벌써 위치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 하
셨습니까? 우리는 뱀과 대화할 위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동물을 만들어 놓으시고 사람에게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름도 지어주고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하와는 뱀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뱀이 자기 위에 올라갔는데 그것도 모르고 지금 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뱀이나 사람이나 다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아무나 감히 왈가왈부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뱀이 “다 먹지 말라 하더냐? 참으로 그랬느냐?”고 하는 것은 참람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 잘 만들고 동산을 잘 지키고 다스리면, 뱀이 아니라 구렁이가 와도 괜찮습니다. 뱀이 백 마리가 와도 괜찮고, 만 마리가 와도 괜찮습니다. 끄떡없습니다. 대문 밖으로 왔다갔다만 하지, 이 안에는 못 들어옵니다.
그런데 다스리지 못하니까 자기 위치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위치를 떠났으니까 뱀도 자기 위치를 떠났는데, 뱀이 자기 위에 올라간 것도 모르고 뱀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험이 딱 들게 해 놓은 것입니다. 자기가 그렇게 만들어놓고 뱀이 와서 시험을 하면
다 당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대문을 열어놓으니까 뱀이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이고, 뱀이 들어오면 또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구나 자기가 만들어놓고 당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시험이 들어오게 만들어놓고 시험당하는 것입니다. 누가 만들어 놓습니까? 교역자가 시험 들어오게 만들어놓습니다. 그래 놓고는시험이 들어올 때 머리 싸매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뭐 하러 싸 맵니까? 자기가 대문을 안 열어놨으면, 마귀, 뱀이 못 들어 왔을 텐데, 자기가 뱀을 들어오게 만들어놓고 뱀이 들어오면 걱정하고 앉아 있습니다. 그런 교역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뱀이 들어오게 만들어놓고 걱정 근심을 하는 것은 다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안 만들었으면 안 당할 텐데 왜 만들어 놓고 당합니까?
3. 뱀이 여자를 다시 유혹함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면 마귀에게 사로잡힘
본문 4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죽을까 하노라” 하고 하와가 대답을 하니까, 뱀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면서 한 걸음 더 위에 올라가서 내려 누르는 것입니다. 결코 안 죽는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거짓말입니
다. 하나님의 말씀에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반대로 선악과를 따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고 내리 눌러놓았습니다.
뱀의 말은 독소가 있습니다. 뱀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할 때, 벌써 쑥 들어가는 것입니다. 독이 하와의 속으로 쑥 들어오면, ‘결코 안 죽겠구나’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 가리어지는 것입니다. 흐려 집니다. 의가 없습니다. 맑은 심령이 다 흐려져서 뱀의 독소에 사로잡
힙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그 거짓된 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마귀의 말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고, 동산을 잘 다스리고 지켰다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을 마귀가 하지도 못합니다. 설령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마귀에게 “야, 어디서 그런 말을 하느냐? 왜 안 죽느냐? 말씀에 죽지 않는다고 했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할 수 있습
니다. 그런데 말씀에 굳게 사로잡혀 있지 않는 하와에게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이 쑥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죄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교만을 넣어줌
본문 5절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악과라는 말을 안 합니다. 뱀도 안하고 하와도 안 하고, 둘 다 죄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둘의 대화를 살펴보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이라고 하면서, 선악과에 대해 ‘그것’, ‘이것’ 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또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만 말하여 죄에 대한 말은 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도할 때 지옥 간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옥에 간다는 말을 하지 말고, 죄라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또 하와는 ‘눈이 밝아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을 흐리멍텅하게 듣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같이 되겠습니까? 또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둘이 될 것이 아닙니까? 또 자기 남편도 하나님과 같이 되고, 하나님이 또 성별까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 때라도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을 어떻게 용납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창조자이시고 자기는 피조물인데, 어떻게 하나님과 같이 됩니까?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는 교만을 쑥 넣어주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높여주고, 교만을 갖다 넣어줍니다. 그렇게 사람을 높여서 하나님에게까지 높이려고 하고, 교만을 갖다가 넣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만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까지 높아지려고 하면 이런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다가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본래 천사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고 하다가 쫓겨났습니다. 그리고는 또 사람도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와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가 그 말을 좋게 들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참람 된 것입니까? 하와도 아주 얌체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말을 곧이 듣고 있습니까? 그것이 말이 됩니까? 남편과 같이 되겠다는 말도 들으면 안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그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습니까? 마귀는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를 꼭 누르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독점해서 자기 혼자 다 해 먹으려고, 너를 아주 발로 밟으려고 이러는 것이다. 따먹기만 하면 네가 밟혀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거짓으로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인격을 잔뜩 높여줍니다. 또 ‘네 인격이 얼마나 고상한 인격이냐? 그런데 이렇게 눌려서나 살면 되겠느냐? 자유는 다 갔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귀의 말이 그저 근거 없는 말은 아닙니다. 반은 거짓말입니다. 반 거짓말을 가지고 와서 눈이 밝아지는 체하는 것입니다. 선악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아는 것을 하나님과 같이 자기에게 맞는 것은 선이요,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악이라고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표준으로 살던 사람에게 자기 표준대로 살라는 것이요, 하나님을 위하여 살던 자에게 자기를 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이시기 때문에 그것이 맞지만, 피조물인 우리는 자신이 표준이 될 수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귀의 반 거짓말을 큰 미혹이요 죄악의 큰 함정인 것입니다.
말씀으로 생명을 삼고 있지 못하니까 속이 비었던 것입니다. 주인이 없습니다. 속에 주인이 있어야 되겠는데 없었습니다. 말씀이 아니면 다 내쫓아 버려야 되겠는데, 말씀이 주인이 못되었으니까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말이 들어와
마귀가 주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와의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늘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모든 것을 자기 위치에 놓고, 자기 직무를 잘 감당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순종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마음을 기울이고,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교통하는 상태에 있고,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는 가운데 서서,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마귀가 주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와의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늘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모든 것을 자기 위치에 놓고, 자기 직무를 잘 감당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순종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마음을 기울이고,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교통하는 상태에 있고,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는 가운데 서서,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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