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26 가인과 아벨 이병규목사 창광교회
1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 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네가 밭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16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17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18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25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1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 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네가 밭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16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17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18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25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1. 아담이 두 아들을 낳음
본문 1-2절에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은 제일 첫 사람입니다.
본문 1-2절에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은 제일 첫 사람입니다.
인류 제일 첫 사람인 아담이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가인이고 작은 아들은 아벨이었습니다.
2.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심
본문 3-6절에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하였
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맏아들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기 때문에 땅에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또 아벨은 양치는 자이기 때문에 양의 첫 새끼와 첫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
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입니다. 산제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제사가 되었습니다. 죽은 제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산제사가 있고 죽은 제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께서 받으시는 제사가 있고, 받지 않으시는 제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의 제사는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셨겠습니까? 아벨은 자기 아버지에게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피를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들은 것이 있었습니다. 희생을 가지고 나가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을 아담이 하나님께 배워
서 자기 아들에게 가르쳐 줬습니다. 아벨은 자기 아버지에게서 배운 대로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피와 희생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양의 피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아버지로 부터 아벨과 같이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심
본문 3-6절에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하였
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맏아들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기 때문에 땅에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또 아벨은 양치는 자이기 때문에 양의 첫 새끼와 첫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
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입니다. 산제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제사가 되었습니다. 죽은 제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산제사가 있고 죽은 제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께서 받으시는 제사가 있고, 받지 않으시는 제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의 제사는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셨겠습니까? 아벨은 자기 아버지에게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피를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들은 것이 있었습니다. 희생을 가지고 나가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을 아담이 하나님께 배워
서 자기 아들에게 가르쳐 줬습니다. 아벨은 자기 아버지에게서 배운 대로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피와 희생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양의 피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아버지로 부터 아벨과 같이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
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맞지 않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농사해서 지은 좋은 것으로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드렸지만 하나님 앞에 맞지 않는 제사였습니다. 말씀에 맞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바른 제사
1) 하나님의 말씀에 맞아야 함
아벨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제사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앞에 바로 드리는 산제사를 드리려면, 하나님 말씀대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께 제사 드려야 됩니다. 성경 진리에 맞지 않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제사입니다. 아무리 잘한다 해도, 아무리 정성을 다 한다 할지라도, 성경에 맞지 않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양의 피를 가지고 가는 제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맞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에 맞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또 양의 피를 가지고 나왔어도 이사야 당시 때 사람들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안 받으셨습니다. 이사야 1:11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
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당시 때 사람들이 많은 양을 잡아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양이나 소의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벨이 드린 양의 피는 받으셨는데, 이사야 당시 사람들의 피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안 받으셨습니까? 이사야 당시 때 사람들은 양의 피만 가지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2) 양의 피가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함
아벨은 양의 피를 가지고 나올 때에, 장차 그리스도가 와서 희생해 줄 것을 바라보고 믿고, 또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아도 양의 피만 가지고 나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양의 피가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면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첫째는 성경에 맞아야 되고, 하나님 말씀에 맞아야 됩니다. 성경에 어긋나는 것은 전부 다 하나님께서 안 받아주십니다. ‘성경에 맞느냐, 안 맞느냐’ 언제나 그것을 봐야 합니다.
둘째는 제물의 피가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속을 믿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면서 드리는 영적인 제사입니다. 아벨은 이러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다 죽은 제사입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이 다 죽은 제사이고, 양의 피를 가지고 나왔지만 그 피가 상징하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 한 것도 죽은 제사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제사가 아니면 다 죽은 제사입니다. 성경대로 믿는 교회, 성경대로 믿는 신앙, 바른 성경대로 나가는 교회가 중요합니다. 또 그 다음에는 성경만 가지고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실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고, 구속의 주님을 영접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영적인 제사를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늘 드려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바른 예배
1) 진리와 영감으로 드리는 예배
오늘날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는 진리에 맞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것도 성경에 맞아야 하고, 성경대로 바로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맞는 예배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교역자가 강도하는 것도 성경대로 가르쳐야 하고, 교인들은 성경대로 가르쳐 주는 그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성경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입니다.
그 다음에 영적인 제사인지를 따져야 됩니다. 성경에 맞아야 되고, 영적 면이 있느냐 없느냐를 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역사가 있는 예배를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입니다. 영
적인 것이 없으면 죽은 제사입니다. 아무리 보수하려고 해도 영적인 면이 없는 제사는 그것은 죽은 제사입니다. 생명이 살지 못 합니다.
2)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는 예배
또한 예배에는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셨고 열납 하셨습니다.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아벨도 알고 가인도 알았습니다. 가인이 자기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 것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또 아벨은 자기의 제사를 받으신 것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제사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알고, 자기 마음에도 기쁨이 생기고, 이해가 되고, 감동이 되고, 새로운 역사가 있고, 힘이 납니다. 은혜의 역사가 속에 있게 됩니다. 그런데 제사를 안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죽은 제사를 드리면 속이 냉랭하고, 감동이 없고, 생명의 역사도 없고, 예배당에 갈 때나 올 때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좋은 말을 듣기는 들었지만 그것이 자기 생명이 되는 것 아닙니다. 좋은 말을 들은 것뿐입니다. 속의 생명의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새 그런 교회가 많습니다. 좋은 말만 해주는 교회가 많습니다. 목사가 여러 책을 많이 보고, 여러 가지 좋은 말들을 준비해서 좋은 말을 많이 해 줍니다. 처음 듣는 말, 철학적인 말, 또 과학적인 말, 사회학적인 말, 정치적인 말 등의 좋은 말들을 많이 듣습니다. 들을 때는 그럴 듯하지만 예배당 밖에 나가면 다 없어집니다. 속에 역사가 없는 것은 죽은 제사입니다.
요새는 인터넷이라는 것이 나와서 컴퓨터에서 여러 사람들이 설교한 것이 나옵니다. 인터넷에 한국의 유명한 목사들의 말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또 미국에 유명한 목사들의 말들도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몇 백 개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컴퓨터에 앉아서 눌러만 놓으면 다 본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여러 가지 지식적인 말, 선교학적인 말, 여러 가지 좋은 말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어떤 목사가 나와서 설교를 하면 ‘아이고 이 목사 설교 잘했다’고 합니다. 또 ‘어디서 그렇게 좋은 말이 많이 나왔나?’ 합니다. 공부를 많이 안했어도 PC 통신으로는 많이 공부한 사람처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PC로 보면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만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까? 좋은 말이 많이 나왔는데 생명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생명은 PC 통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엎드려서 기도하는데서 나옵니다. 자기가 선한 싸움을 싸우는데서 나옵니다.
자기가 자라나는 데서 나옵니다. 자기가 이기는 데서 나옵니다. 생명의 역사가 나오려면, 많이 기도해야 되고, 회개해야 되고, 영적인 감동이 있어야 되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말을 안 해도, 또 늘 하던 말이라도 성령의 역
사가 있으니까 생명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형제들아,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말 한마디에도 온 교회가 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서로 사랑하자’ 한 마디 했을 때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만큼 사도 요한은 영적 세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산제사를 드리도록 우리가 항상 힘을 써야 되고, 산제사 드리는 교회가 되도록 항상 힘을 써야 됩니다. 까딱하다가는 죽은 제사, 성경에 맞지 않는 제사, 또한 영적 생명이 없는 제사,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가 없는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형식적인 교인들만 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또 자기도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언제나 마음에 만족이 없습니다. 그런 제사를 드리는 것에는 언제나 만족이 없고 감사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예배당 나와
서 좋은 말을 듣고 가서 그저 자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죽은 제사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
1) 진리와 영감으로 드리는 예배
오늘날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는 진리에 맞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것도 성경에 맞아야 하고, 성경대로 바로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맞는 예배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교역자가 강도하는 것도 성경대로 가르쳐야 하고, 교인들은 성경대로 가르쳐 주는 그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성경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입니다.
그 다음에 영적인 제사인지를 따져야 됩니다. 성경에 맞아야 되고, 영적 면이 있느냐 없느냐를 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역사가 있는 예배를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입니다. 영
적인 것이 없으면 죽은 제사입니다. 아무리 보수하려고 해도 영적인 면이 없는 제사는 그것은 죽은 제사입니다. 생명이 살지 못 합니다.
2)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는 예배
또한 예배에는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셨고 열납 하셨습니다.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아벨도 알고 가인도 알았습니다. 가인이 자기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 것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또 아벨은 자기의 제사를 받으신 것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제사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알고, 자기 마음에도 기쁨이 생기고, 이해가 되고, 감동이 되고, 새로운 역사가 있고, 힘이 납니다. 은혜의 역사가 속에 있게 됩니다. 그런데 제사를 안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죽은 제사를 드리면 속이 냉랭하고, 감동이 없고, 생명의 역사도 없고, 예배당에 갈 때나 올 때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좋은 말을 듣기는 들었지만 그것이 자기 생명이 되는 것 아닙니다. 좋은 말을 들은 것뿐입니다. 속의 생명의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새 그런 교회가 많습니다. 좋은 말만 해주는 교회가 많습니다. 목사가 여러 책을 많이 보고, 여러 가지 좋은 말들을 준비해서 좋은 말을 많이 해 줍니다. 처음 듣는 말, 철학적인 말, 또 과학적인 말, 사회학적인 말, 정치적인 말 등의 좋은 말들을 많이 듣습니다. 들을 때는 그럴 듯하지만 예배당 밖에 나가면 다 없어집니다. 속에 역사가 없는 것은 죽은 제사입니다.
요새는 인터넷이라는 것이 나와서 컴퓨터에서 여러 사람들이 설교한 것이 나옵니다. 인터넷에 한국의 유명한 목사들의 말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또 미국에 유명한 목사들의 말들도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몇 백 개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컴퓨터에 앉아서 눌러만 놓으면 다 본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여러 가지 지식적인 말, 선교학적인 말, 여러 가지 좋은 말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어떤 목사가 나와서 설교를 하면 ‘아이고 이 목사 설교 잘했다’고 합니다. 또 ‘어디서 그렇게 좋은 말이 많이 나왔나?’ 합니다. 공부를 많이 안했어도 PC 통신으로는 많이 공부한 사람처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PC로 보면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만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까? 좋은 말이 많이 나왔는데 생명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생명은 PC 통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엎드려서 기도하는데서 나옵니다. 자기가 선한 싸움을 싸우는데서 나옵니다.
자기가 자라나는 데서 나옵니다. 자기가 이기는 데서 나옵니다. 생명의 역사가 나오려면, 많이 기도해야 되고, 회개해야 되고, 영적인 감동이 있어야 되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말을 안 해도, 또 늘 하던 말이라도 성령의 역
사가 있으니까 생명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형제들아,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말 한마디에도 온 교회가 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서로 사랑하자’ 한 마디 했을 때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만큼 사도 요한은 영적 세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산제사를 드리도록 우리가 항상 힘을 써야 되고, 산제사 드리는 교회가 되도록 항상 힘을 써야 됩니다. 까딱하다가는 죽은 제사, 성경에 맞지 않는 제사, 또한 영적 생명이 없는 제사,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가 없는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형식적인 교인들만 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또 자기도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언제나 마음에 만족이 없습니다. 그런 제사를 드리는 것에는 언제나 만족이 없고 감사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예배당 나와
서 좋은 말을 듣고 가서 그저 자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죽은 제사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
3. 가인이 아벨을 죽임
가인에게 분한 마음이 들어옴
본문 5-6절에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라고 하였습니다. 가인이 심히 분했다고 하였습니다. 왜 분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동생의 제사는 받고, 자기 제사는 안 받으시니까 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생의 제사를 받으셨으면, 도리어 잘됐다 해야지 무엇 때문에 분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잘된 것인가 하면, ‘내 제사는 안 받으셨는데 네 제사는 어떻게 받으셨나? 너는 어떻게 했기에 하나님께서 받으셨느냐? 나 좀 가르쳐 달라’고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동생이
가르쳐 주면 자기도 양을 잡아서 제사 드리고, 또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면, 자기의 제사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가인은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이 배 아파서 분이 났습니다. 그리고 분해서 그만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선을 행치 아니할 때 죄가 들어옴
본문 7절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치 아니할 때에 죄가 문에 엎드린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회개해야 됩니다. 그 때 좀 더 지가면
죄가 들어오게 됩니다. 죄가 들어와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선을 행치 아니할 때에 악이 들어온다는 것을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속에 악이 안 들어오게 하려고 ‘악이 못 들어온다. 악아, 물러가라. 악은 안 된다. 못 들어온다’고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을 행치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역부족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악을 이깁니까? 선을 행하면 악은 물러갑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악과 싸워서 이기려고 하면 못 이기지만 선을 행하면 악이 물러갑니다. ‘고통이 들어온다. 근심 걱정이 들어온다’ 할 때, 근심걱정 안 해야 되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됩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고, 선한 말씀을 받아드리고, 자기가 선을 행하려고 하면 악은 물러갑니다. 선한 사람이 되려고 하고, 선을 행하려고 하고, 사랑 하려고 하면 악이 다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선을 행치 아니할 때에 죄가 문에 엎드렸다가 들어오는 줄 알고, 항상 선을 행하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항상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고, 사랑하고, 용납하고, 어떻게 하면 선을 행할 수 있을까 힘을 써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악을 점점 물러가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 사람 속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가인이 아벨을 죽임
본문 7절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치 아니할 때에 죄가 문에 엎드린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회개해야 됩니다. 그 때 좀 더 지가면
죄가 들어오게 됩니다. 죄가 들어와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선을 행치 아니할 때에 악이 들어온다는 것을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속에 악이 안 들어오게 하려고 ‘악이 못 들어온다. 악아, 물러가라. 악은 안 된다. 못 들어온다’고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을 행치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역부족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악을 이깁니까? 선을 행하면 악은 물러갑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악과 싸워서 이기려고 하면 못 이기지만 선을 행하면 악이 물러갑니다. ‘고통이 들어온다. 근심 걱정이 들어온다’ 할 때, 근심걱정 안 해야 되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됩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고, 선한 말씀을 받아드리고, 자기가 선을 행하려고 하면 악은 물러갑니다. 선한 사람이 되려고 하고, 선을 행하려고 하고, 사랑 하려고 하면 악이 다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선을 행치 아니할 때에 죄가 문에 엎드렸다가 들어오는 줄 알고, 항상 선을 행하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항상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고, 사랑하고, 용납하고, 어떻게 하면 선을 행할 수 있을까 힘을 써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악을 점점 물러가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 사람 속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가인이 아벨을 죽임
본문 8절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책망하시며 회개하라고 재촉하셨습니다. “네가 왜 분해서 그렇게 하였느냐? 또 안색은 왜 변했느냐?”고 하시며 회개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왜 낯을 들지 못하느냐? 네가 선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 그러면 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고 하시며 회개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씀하신 것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몇 번을 말씀 하셨지만 가인은 회개하지 아니하고 더욱더 시기하는 마음이 들어서 자기 동생 아우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4. 하나님의 심판
가인의 죄 값을 심판하심
본문 9-11절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고 하시니까 가인이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아주 뻔뻔합니다. 하나님이 누군지 알고 하나님께서 다 보셨는데 하나님을 속여 먹으려고 합니까? 또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하면서 죄의 책임이 없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가인의 죄 값을 심판하심
본문 9-11절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고 하시니까 가인이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아주 뻔뻔합니다. 하나님이 누군지 알고 하나님께서 다 보셨는데 하나님을 속여 먹으려고 합니까? 또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하면서 죄의 책임이 없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본문 10절에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핏소리가 호소되었기 때문에 가인의 아우가 죽은 것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1-12절에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땅에서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죄를 지었으니까 죄 값은 저주인 것입니다. 생명을 죽인 죄가 아주 큰 죄입니다. 사람을 죽인 다음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생명을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효력을 네게 주지 않을 것이다. 또 너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저주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범죄하여 땅도 저주를 받고 사업에도 저주가 미쳤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이리저리 떠돌며 유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13-14절에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면 이렇게 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벌을 받으리라’ 하시면 받습니다. 또 죄 값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영원히 건질 수 없을 만큼 고통을 받습니다.
“주께서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오니 내가 주의 낯을 뵙지 못하리니”라고 하였는데, 죄의 값은 하나님을 뵙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땅에서 유리 할 때에 나를 만나는 사람이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하였는데, 무서운 두려움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언제 죽일지 모르는 두려움이 들어왔습니다.
“다른 사람이 죽일까봐”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누가 죽인다는 것이겠습니까? 아담의 아들이 가인과 아벨 둘이었는데, 아벨이 죽었으니까 자기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가인과 아벨 이외에 아담의 자손이 또 있었던 모양입니다. 있어도 다 기록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담의 아들이 여럿이 있었지만 다 기록하지 않고 가인과 아벨만 기록하고, 그 다음에 또 새로 낳은 셋만 기록했습니다. 성경은 역사를 기록하는 목적이 아니고, 구원의 도리를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필요한 것만 기록을 한 겁니다.
본문 11-12절에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땅에서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죄를 지었으니까 죄 값은 저주인 것입니다. 생명을 죽인 죄가 아주 큰 죄입니다. 사람을 죽인 다음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생명을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효력을 네게 주지 않을 것이다. 또 너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저주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범죄하여 땅도 저주를 받고 사업에도 저주가 미쳤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이리저리 떠돌며 유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13-14절에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면 이렇게 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벌을 받으리라’ 하시면 받습니다. 또 죄 값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영원히 건질 수 없을 만큼 고통을 받습니다.
“주께서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오니 내가 주의 낯을 뵙지 못하리니”라고 하였는데, 죄의 값은 하나님을 뵙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땅에서 유리 할 때에 나를 만나는 사람이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하였는데, 무서운 두려움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언제 죽일지 모르는 두려움이 들어왔습니다.
“다른 사람이 죽일까봐”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누가 죽인다는 것이겠습니까? 아담의 아들이 가인과 아벨 둘이었는데, 아벨이 죽었으니까 자기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가인과 아벨 이외에 아담의 자손이 또 있었던 모양입니다. 있어도 다 기록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담의 아들이 여럿이 있었지만 다 기록하지 않고 가인과 아벨만 기록하고, 그 다음에 또 새로 낳은 셋만 기록했습니다. 성경은 역사를 기록하는 목적이 아니고, 구원의 도리를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필요한 것만 기록을 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심
본문 15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는다고 하시면서 가인에게 표를 주셨습니다. 어디다가 표를 주셨습니까? 이마에 주신 것 같습니다.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되는 표를 주신 것입니다. 이 표는 누구나 다 보고 알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쳐다보면 ‘가인을 죽이면 벌을 칠 배나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
으신 것입니다. 그 표는 무슨 표겠습니까? 하나님의 증표를 가인에게 주셨는데, 무슨 영수증과 같고 죽였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마에다 해 놓으신 것입니다. 에스겔 9:4절에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마에 표를 줬다고 한 것은 아마도 가인이 사람을 죽였으니까 살인한 가인의 이마가 살기등등한 이마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죽일 때 얼마나 살기가 등등해서 죽였겠습니까?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죽였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를 콱 물고 살기가 등등해서 죽였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살기가 등등하고, 강퍅하고, 완악한 것이 이마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딱 보면 ‘아! 저 사람 큰일 낼 사람이다. 저 사람한테 가까이 갔다가는 큰일 난다’고 된 모양 같습니다.
마음이 어떠한지 얼굴에 표로 나타남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압니다. 근심하는 사람인지, 평안한 사람인지, 이마를 보면 조금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연세가 있는 사람인데, 불쾌한 이마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그렇게 살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 사람의 환경이 이마에 다 새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마음과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항상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얼굴이 평안합니다. 악의가 없습니다. 또 얼굴을 봐도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선한 마음, 항상 기뻐하는 마음, 모든 사람을 용서해주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좋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시험하는 사람이 있어도 좋은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고운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좋은 생각을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어디서나 자기가 선한 사람이 되고, 얼굴에도 선한 것이 나타나고, 선한 인격이 됩니다. 그러나 사기횡령 해먹고, 다른 사람과 싸우고 다투고, 물어뜯고, 얼굴에 살기가 등등한 사람은 벌써 딱 보면 압니다. ‘저 사람을 가까이 하면 안 되겠다’고 얼굴에 표가 나타나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가인의 얼굴이 보기 좋았겠습니까? 사람을 죽이고 돌아가는데 평안히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할지 몰라 하며 돌아갈 것 아닙니까? 가인에게 표를 주셨다고 하였는데, 그런 뜻이 이마에 나타난 것 같습니다.
이마를 좋게 하고 다니십시오. 선한 얼굴, 가지런한 얼굴, 고운 얼굴을 하고 다녀야지 좋은 것을 갖다가 바른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운 얼굴, 선한 얼굴,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얼굴, 모든 사람을 도와주려하는 얼굴이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사람은 웬만하
면 병도 안 납니다. 한의사들이 말하기를, 근심, 걱정, 사욕, 불쾌한 마음, 애간장이 녹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지면 병이 생긴다고 합니다.
암도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즐겁게 살라는 것입니다. 건설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잘 해주실 것을 믿고 살라는 것입니다. 안 되도 하나님께서 잘 해주실 것을 믿고 살아야 됩니다. ‘지금은 안 되지만 잘되게 해 줄 것이다’라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잘 되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믿음으로 나가면 잘되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잘 되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고, 항상 평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또 그렇게 하면 얼굴에 다 나타납니다. 아무리 잘생긴 사람도, 근심하고 걱정하며, 사람을 죽이려고 생각하면서 1년만 다니면 아주 흉악한 자가 됩니다. 보기에 흉악한 자가 됩니다. 지금보다 더 칠 배나 흉악해 집니다. 여러분들이 흉악한 자가 되려면 그저 남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싸우는 생각을 갖고, 악한 마음과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밤낮 1년만 다니면, 남들이 척 보면 다 나타납니다. 이 사람이 1년 동안에 무슨 일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다 아는 것입니다. 믿음 못 지킨 것을 다 안다는 것입니다.
암도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즐겁게 살라는 것입니다. 건설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잘 해주실 것을 믿고 살라는 것입니다. 안 되도 하나님께서 잘 해주실 것을 믿고 살아야 됩니다. ‘지금은 안 되지만 잘되게 해 줄 것이다’라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잘 되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믿음으로 나가면 잘되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잘 되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고, 항상 평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또 그렇게 하면 얼굴에 다 나타납니다. 아무리 잘생긴 사람도, 근심하고 걱정하며, 사람을 죽이려고 생각하면서 1년만 다니면 아주 흉악한 자가 됩니다. 보기에 흉악한 자가 됩니다. 지금보다 더 칠 배나 흉악해 집니다. 여러분들이 흉악한 자가 되려면 그저 남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싸우는 생각을 갖고, 악한 마음과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밤낮 1년만 다니면, 남들이 척 보면 다 나타납니다. 이 사람이 1년 동안에 무슨 일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다 아는 것입니다. 믿음 못 지킨 것을 다 안다는 것입니다.
5. 죄악의 성장
가인의 계대
본문 16-19절에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
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가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에녹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담은 1대고, 가인은 아담으로부터 2대, 3대는 에녹입니다. 이 에녹은 신실한 에녹이 아닙니다. 4대는 이랏, 5대는 므후야엘, 6대는 므드사엘, 7대는 라멕입니다. 라멕은 아담의 7대손입니다. 가인의 계통을 내려가다 보면 또 살인을 합니다. 가인의 계통으로 7대손은 라멕인데, 그가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셋 계통의 7대손은 에녹입니다. 이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승천했습니다(창 5:24). 에녹이 가인의 계통에도 있고, 셋의 계통에도 있습니다.
본문 20-21절에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라멕에게 아들이 둘이 있었습니다. 맏아들은 야발인데, 이는 장막에 거하며 육축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농사한 모양입니다. 또 둘째 아들 이름은 유발인데,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음악가라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음악가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수금, 퉁소 등 각종 악기가 다 나왔다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라멕의 셋째 아들은 두발가인이었는데,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였습니다. 그때부터 동철기계가 나온 것입니
다. 동과 철을 캐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캐지 않고도 땅에 드러나 있는 것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철을 가져다 달궈서 두드리면 철제 무기가 됩니다. 또는 철로 만든 기계가 되는 것입니다. 동 같은 것도 땅에 드러나 있는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누런 돌덩어리 같은 것이 보이면 그것을 가져다가 달궈서 도구로 사용했을 것 같습니다.
아담의 7대손에서부터 벌써 동과 철이 나왔던 것입니다. 아담의 7대 손이면 주전 몇 년입니까? 아담의 10대손이 노아이고, 노아의 10대손이 아브라함이고, 아브라함은 약 주전 2000년 전 사람이고, 거기서 13대가 더 올라 가니까, 대략 3천 3백 년 전입니다. 주전 3천 몇 백 년 전에 벌써 철기와 동기가 나온 것입니다. 청동시대, 철기 시대가 주전 3천 3백 여년 전에 시작되었고, 이것을 만드는 기계가 다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라멕의 자손 중에서 고대문명이 나온 것을 가리킵니다.
가인의 후손 라멕이 사람을 죽임
본문 23절에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라멕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싸우다 죽인 것 같습니다. 자기 아내보고 하는 말이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다.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다”고 하였는데, 자기가 상처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라멕이 싸우다가 상처를 입은 것 같습니다. 이것을 보면 살인이 본래 가인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7대손에 내려 와서 더 큰 살인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가 점점 장성한 것입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죄도 많아집니다. 죄도 장성한다는 것입니다. 라멕은 싸우다가
자기 상처를 입었고, 자기 상처를 입힌 사람을 죽였습니다.
본문 24절에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공포도 늘어나고, 벌도 늘어났습니다. 라멕은 가인이 살인한 것 보다 더 큰 살인을 했고 죄가 점점 커나갔습니다. 가인은 벌이 칠 배라 그랬는데, 라멕은 벌이 77배라고 하였습니다. 죄는 점점 장성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장성합니다. 더 커지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가 점점 커져 나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죄를 짓다가 점점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싸움도 처음엔 조금만 하다가 점점 크게 싸우게 되고, 좀 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점점 크게 싸우게 되면 창상을 내고, 상처를 입고, 상처 낸 사람을 죽이고 하니까 벌이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공포도 점점 더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사람 죽였으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죽일 것이다’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가인 죽인 자는 벌을 칠 배나 받는다고 그랬지만 자기를 죽인 자는 벌을 칠십칠 배나 받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회개 하지 않으면 죄도 장성하고 공포도 점점 커나가게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아주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작은 죄가 들어왔을 때 회개해야지, 그것을 물리치지 않으면 점점 자라나서 커지고, 그 다음에는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게 되고, 자기 죄에 벌벌 떨게 됩니다.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항상 준비해야합니다. 죄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날마다 선을 행하려고 힘을 쓰고, 기도하려고 힘을 쓰고, 하나님을 찾으려고 힘을 쓰고, 믿음으로 살려고 힘을 쓰고, 말씀대로 순종 하려고 힘을 쓰는 것입니다. 그 때에 죄가 점점 없어지는 것입니다. 힘을 안 쓰면 안 됩니다. 죄가 점점 커 나가면 큰 변을 만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납니다. 처음에 작은 죄를 지었을 때 바로 회개하면 사고가 나지 않을 텐데, 회개 하지 않고 나가다가 점점 큰 사고가 나서 마지막엔 쫄딱 망합니다. 다른 사람까지 망하게 만듭니다. 벌을 칠십칠 배나 받아야 되니까 다른 사람도 망하게 되는 것 아
닙니까? 죄를 가지고 나가게 되면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6. 신앙의 계대를 주심
본문 25-26절에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하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 대신에 다른 아들을 주셨습니다. 택한 백성을 하나 주셨다는 것입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는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창세기 4장 마지막에 와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였는데, 그럼 그 전에는 안 불렀습니까? 아벨이 산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것 아닙니까? 이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였는데, 3대째에 내려가서 부른 것입니다. 이때야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전에 여호와의 이름을 안 부른 것이 아니고 이제 구원의 하나님임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라는 뜻은 ‘구원의 주’라는 뜻입니다.
언약대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이때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라며 구원의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저 하나님을 우러러 존경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 대신에 셋을 주었고, 셋이 그 다음에 아들을 낳아서 계통이 계승해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때부터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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