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일 월요일

창세기 5.1~31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신앙 이병규목사 계약신학

창세기 5:1-32

1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6셋은 일백오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8그가 구백십이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9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10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1그가 구백오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12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3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그가 구백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15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그가 팔백 구십오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18야렛은 일백육십이세에 에녹을 낳았고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그가 구백 육십이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3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므두셀라는 일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28라멕은 일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31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32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1. 아담에서 야렛까지의 계보

하나님께서 아담과 여자를 창조하심

창세기 5장에서는 아담의 계보로 셋의 후예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10대손 노아와 그의 세 아들까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아담 자손의 계대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을 때 영혼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육신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시고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을 먼저 창조하신 것입니다.
왜 여자는 흙으로 창조하지 않으시고 갈비뼈로 창조하셨겠습니까?
아담에게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로 사랑하라’고 그렇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고하였습니다. ‘사람’이라는 말이나 ‘아담’이라는 말은 같은 뜻입니다. 아담하면 사람이고, 사람하면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이라는 이름이 별다른 이름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의 아들 셋의 계통

본문 3절에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셋의 계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첫째 아들은 가인이고 둘째 아들이 아벨인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 대신 셋을 주셔서 택한 백성의 계통이 계승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본문 4-5절에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이 93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 때는 900세 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 천 년 간 살도록 해 놓으신 것 같습니다. 아담이 93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한 것을 보면 여러 자녀를 많이 낳았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는 구원의 도리에 필요한 사람들만 기록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6-17절에 “셋은 일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이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 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오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 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팔백 구십오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셋은 105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912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에노스는 905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또 게난은 910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마할랄렐은 895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마할랄렐은 900세를 못 살았습니다.

본문 18-20절에 “야렛은 일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육십이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야렛이 에녹을 낳았는데 962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962세니까 여기까지는 제일 오래 산 것입니다.

2. 에녹의 신앙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신앙

본문 21-24절에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에녹이 65세에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시작하였는데, 300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지 않고 승천하였습니다. 히브리서11:5-6절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신앙인데, 우리도 에녹의 신앙을 본받아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되겠습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 

그러면 에녹의 신앙은 무슨 신앙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얻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지,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고 진노하게 하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요한복음8:29절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 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혼자 두지 아니하시고 오셔서 늘 동행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나 어떠한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는 것을 찾아봐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저렇게 해야 기뻐하시겠는가? 가야지 기뻐하시겠는가, 안 가야 기뻐하시겠는가? 싸워야 기뻐하시겠는가, 안 싸워야 기뻐하시겠는가? 참아야 기뻐하시겠는가, 참지 않고 속에 있는 것을 다 불어 넣어야 기뻐하시겠는가?’ 하면서 늘 찾아봐야 합니다.
또 ‘순종해야 기뻐하시겠는가, 순종하지 않아야 기뻐하시겠는가? 십일조를 해야 기뻐하시겠는가, 안 해야 기뻐하시겠는가? 기도하러 가야 기뻐하시겠는가, 기도하러 가지 않아야 기뻐하시겠는가?’ 하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어떻게 지냈다고 하였습니까? 세상에서 자기 좋은 것을 차지했다고 하였습니다(눅 16:25).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내가 좋은 것을 다 차지하여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는가, 안 찾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찾아야 기뻐하시겠는가? 용서해야 기뻐하시겠는가, 용서해 주지 않아야 기뻐하시겠는가?’를 잘 찾아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가라고 하실 때 무엇이라고 대답하였습니까? 예레미야 1:6절에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안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안 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까? 가는 것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자신이 아이인데 어떻게 가느냐는 것입니다. 말할 줄도 모르고 가서 감당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가지 않아야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순종해서 가면 하나님께서 감당하게 해 주십니다. 어떻게 해야 기뻐하시겠는가를 잘 찾아봐야 합니다. 무조건 자기 생각대로 하고, 자기 고집, 자기 표준, 현재 그대로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찬송가에 ‘내 모습 이대로 바칩니다’라고 한 것이 있는데, 저는 이 찬송가처럼 부르기 싫습니다. 자기 모습이 얼마나 잘났다고 이 모습 이 대로를 가져갑니까? ‘내 모습 회개함으로 옵니다’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었는데,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만 걸어가야 합니다. 참고 견뎌야 기뻐하실 것 같으면, 참고 견뎌야 합니다. 또 니느웨로 가야 기뻐하실 것 같으면, 니느웨로 가야 합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야 기뻐하실 것 같으면,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쳐라’할 때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항상 행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첫째 길입니다.

2) 항상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앙 

히브리서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며칠 만에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 시간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앙을 가지는 것이 에녹의 신앙입니다. ‘내 뜻과 정성을 모두 합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면서 어제도, 오늘도 매일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신앙입니다.

3) 하나님을 찾고 상 주실 것을 믿는 신앙 

그 다음에는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반드시 계셔서 다 살피시고, 들어주시고, 보아주시고,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네가 찾으면 만난다’고 하였습니다. 안 찾으면 만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아 29:13-14절에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15:2절에는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생활을 하여 동행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 찾으면 상주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기쁘시게 하면 상 주실 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입니다.

4) 언제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신앙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은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늘 의지하고 늘 생각하고 늘 교통하고 늘 하나님의 인도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입니다. 항상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생활, 항상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하는 생활, 항상 하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려는 생활, 항상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바라보고 나가는 신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입니다. 우리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것은 에녹의 신앙입니다. 에녹의 신앙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매일 나아가고, 믿음으로 하고, 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은 신앙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은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살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계속 의뢰하고, 하나님을 힘입어서 모든 것을 하고, 순종하고,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고 상을 바라보며 나가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죽지 않고 승천한 에녹

에녹이 몇 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하였습니까? 65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동행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65세 되지 않은 사람은 아직도 희망이 많습니다. 이제부터 동행할 수 있습니다. 또 65세가 넘었다고 하더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하였습니다.

에녹이 승천을 한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렇게 부활해서 데려가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재림하실때 살아서 믿는 사람은 죽지 않고 산 채로 변화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간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변화되어 하나님 앞에 갈 것을 에녹이 승천함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또 에녹이 승천한 것을 보니까 우리도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으면 산채로 변화되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또 죽은 사람은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해서 산 사람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므두셀라에서 노아까지의 계보

므두셀라가 라멕을 낳음

본문 25-27절에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구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므두셀라는 에녹의 아들인데 969세를 살았습니다. 제일 오래 살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제일 장수 한 사람이 므두셀라입니다. 에녹의 아들이 제일 장수하였습니다.
또 두 번째로 오래 산 사람은 에녹의 아버지 야렛입니다. 962세를 살았습니다. 에녹의 가정이 제일 오래 살았습니다. 에녹은 365세까지 살고 승천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노아인데 950세를 살았습니다. 네 번째로 오래 산 사람은 아담으로 930세를 살았습니다. 아담이 제일 오래 살아야 하는데 다섯 번째로 오래 살았습니다. 여섯 번째는 아담의 아들 셋이 912세를 살았습니다. 그 다음 일곱 번째는 910세로 게난이 오래 살았습니다. 여덟 번째는 에노스가 905세로 오래 살았습니다. 아홉번째는 마할랄렐이 895세로 오래 살았습니다. 열 번째는 라멕이 777세로 오래 살았습니다. 아담의 10대까지 자손 중에 가장 짧게 산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가 가장 먼저 죽었습니까? 라멕이 먼저 죽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이 이렇게 오래 살았습니다. 수명이 차차 짧아졌고, 노아 홍수 다음에는 급격히 짧아지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950세였지만, 모세 때에 가서는 120세로 수명이 짧아진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칠, 팝십, 혹은 더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백세 넘게 사는 사람이 쉽지 않습니다. 세계 인류 역사상 제일 오래 산 사람은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인데 969세로 제일 오래 살았습니다. 므두셀라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둘째로 오래 산 사람은 에녹의 아버지 야렛인 것을 보면, 에녹의 영향으로 아버지도 오래 살고 아들도 오래 산 것 같습니다. 또 에녹은 죽지 않고 산 채로 승천하여 올라간 것입니다. 우리의 표본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다 부활하는데 그 표본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 다음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지는데, 천년왕국 시대에는 한 900세 이상, 약 천 년 간 살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원상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을 나온 다음에도 950세 정도 살았습니다. 천년왕국 시대에는 마귀를 가둬 잡아 놓으니까 죄가 없던 에덴동산이 원상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가서는 약 천 세까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천년왕국이 끝난 다음에는 백보좌 심판이 있고 하나님께서 다 데리고 올라가십니다. 또 안 믿는 사람도 부활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백보좌 심판대에서 오른쪽에는 양, 왼쪽에는 염소로 나누십니다. 오른쪽의 양은 믿는 사람이므로 하늘나라로 다 데려가시고, 왼쪽의 염소는 영원한 지옥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라멕이 노아를 낳음

본문 28-29절에 “라멕은 일백 팔십 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수고로이 일하고 먹게끔 해 놓으셨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에 수고로이 먹게 해 놓으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일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그런데 수고로 일하는 사람에게 노아와 같은 신앙의 좋은 아들이 나면 큰 안위가 됩니다. 믿음 좋은 사람이 있으면 큰 안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자기 부모들을 안위해 드려야 되고, 부모들은 믿음으로 노아와 같이 기르면 큰 안위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30-31절에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칠백 칠십 칠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고 하였습습니다.

노아가 세 아들을 낳음

본문 32절에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오백 세에 자녀를 낳은 사람이 있습니까? 노아의 윗세대에서는 130세, 205세, 70세, 65세, 187세에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노아가 셈과 함과 야벳을 제일 늦게 낳은 것 같습니다. 노아가 오 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고, 이 아이들이 자라서 며느리를 데려온 후에 홍수가 났습니다. 첫 아들이 25세쯤 빨리 결혼했다고 하고, 셋째까지 결혼했으면 한 30년은 걸렸을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의 나이가 늦어도 530세 쯤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방주 지으라는 명령이 내려왔는데 그 때는 며느리들도 들어왔을 때입니다.

방주는 70년간 지었으니까 노아의 나이가 한 육 백세쯤 되었을 때 홍수가 내렸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다고 합니다. 창세기 6: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120년이 되리라”고 한 말씀은 120년 후에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데로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육체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120년 있다가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것이고 방주 짓는 기간은 120년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된 다음부터 120년 후에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노아 500세 이전부터 사람들이 타락된 것입니다. 120년 후에 심판한다는 말씀은 노아가 500세 되기 이전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들이 다 자라서 결혼하고 방주를 지은 다음에 홍수가 내렸기 때문에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다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노아가 이렇게 방주를 지어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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